10.
해리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로 맞는 열여덟 살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탁상달력을 손에 쥐고 들여다보는 해리의 옆으로 스네이프가 데운 와인을 들고 왔다. 해리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스네이프는 피식 비웃으며, 다리를 꼰 채 제 몫의 잔만 홀짝였다. 해리는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라는 표정으로 무안한 손을 거뒀다. 해리가 며칠 전부터 말을 했기에, 스네이프도 오늘이 해리의 생일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달력을 쳐다보며 티를 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지.
스네이프는 생일선물을 준비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선물을 준 대상은 릴리, 혹은 릴리, 아니면 릴리였다. 릴리에게 줄 수 없게 된 뒤에는 선물 자체를 사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교수가 된 뒤에야 덤블도어에게 책을 선물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여자아이나 지긋한 노인에게 어울릴법한 선물만 알았다. 해리 포터에게는 리본 달린 머리띠도, 어려운 글이 적힌 책도 어울리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새삼 제가 해리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한단 걸 알았다. 해리가 좋아하는 것……. 그걸 생각하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 스네이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데운 와인의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스네이프의 혀에 감돌았다. 해리가 달력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리는 허리를 숙여 스네이프에게 입을 맞췄다. 와인의 맛을 훔치는 것처럼 입 안을 혀로 샅샅이 훑었다. 치사하게, 혼자만 마셔요? 스네이프는 해리의 뻔뻔함에 가끔 몸이 굳었다. 이제는 교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사이긴 했지만, 해리의 행동은 그 전과는 아주 달라져서, 스네이프는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달라지는 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 것이 확인 되면? 스네이프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떨떠름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해리가 싫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가 연인다운 부드럽고 달콤한 합을 맞춰주기엔, 너무도 딱딱한 목석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생각보다 적극적이라고 놀랍다 말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여전히 자신이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해리 포터가 생각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진짜 자신보다 좀 더 딱딱하고 메마른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어쨌든 이렇게, 해리에게 줄 선물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오늘이 생일이라는 걸 들어 알았지만, 결국 당일까지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릴리를 사랑할 때엔 그녀에게 세상 모든 걸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해리를 사랑하는 순간엔 왜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지. 같은 감정인데, 왜 사람마다 다를까….
사실 스네이프도 알고 있었다. 해리는 자신이 뭘 줘도 기뻐할 녀석이었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정말 진심으로 해리가 기뻐하고 원할 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알지는 못했다.
“오늘 제 생일이네요.”
“벌써 여러 번 말했다, 포터.”
“이상해요… 열여덟 생일이 두 번이라니.”
“흠.”
소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붙인 채, 손에 머리를 가볍게 기댄 스네이프가 비스듬히 앉아 해리를 바라보았다. 달력을 보는 얼굴이 오묘해 보이더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나.
“작년엔 버로우에서 생일을 보냈어요. 선물도 많이 받았고….”
“아하…. 전 세계 팬들이 마법세계 영웅의 탄생일을 축하해주었겠군….”
“전 세계까지는 아니고요…. 그 영웅 소리 좀 그만 해요, 세베루스. 그래도 그 날, 두들리가 여태 받아본 생일선물만큼은 받아본 것 같아요.”
“네 머글 사촌 말인가. 그래, 오클러먼시를 가르칠 때 본 적이 있지. 질투하던 포터 네 얼굴도.”
“정말…. 우리는 서로의 과거에 대해 너무 알아서 큰일이죠.”
레질리먼시, 펜시브……. 불우한 어린 시절, 사랑한 사람, 고통, 좌절, 기쁨, 두려움……. 기억을 통해 본 서로에 대해, 스네이프도 해리도 모르는 게 없었다. 더 깊게 파고들면, 해리에 대한 예언을 훔쳐 들은 것도 바로 스네이프였다. 볼드모트와 해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그였을까. 스네이프가 만약 그 예언을 듣지 못했다면, 해리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지도 몰랐다. 해리는 이 얽히고설킨 인연의 끝에,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스네이프는 아직도 본인의 입으로 솔직하게 얘기해주지는 않았다.
“같은 날 생일인데, 과거의 저는 버로우로 가고, 지금의 저는 세베루스랑 단둘이 생일을 보내겠죠. 정말 기묘해요, 생각할수록….”
“그래서, 실망스럽다고?”
“그럴 리가 있어요? 최고죠.”
뻔뻔스러워.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해리를 보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스네이프는 부엌으로 들어가 오븐을 예열하고, 밀가루, 설탕, 우유, 계란 등을 지팡이로 불러내었다. 재료들이 절로 계량컵에 맞춰 정확히 부어졌다. 어느새 해리가 스네이프의 뒤로 다가와 그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았다. 스네이프는 자연스럽게 해리의 품에 등을 맡긴 자세가 되었다. 케이크 만드는 거예요? 해리의 질문에 스네이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루를 체에 쳤다. 마법으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정성에 해리는 감동했다.
“알았으면 방해되니까, 비키지? 포터.”
지팡이를 휘둘러 설탕을 섞은 계란을 휘핑시키며 스네이프가 툭 말을 뱉었다. 하지만 해리는 저 오늘 생일이에요, 라는 말로 반항의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스네이프는 기가 차긴 했지만, 밀착해 붙어오는 해리의 단단한 몸이 싫지 않았다. 스네이프의 마른 허벅지로 해리의 두터운 허벅지가 살짝살짝 부딪쳤다. 오랫동안 했던 퀴디치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이었다. 스네이프는 이렇게 해리가 다 자란 수컷임을 상기할 때마다, 허리께가 움츠러들었다. 욱신거리며 돋는 이 느낌이 성욕인 걸 알아차렸을 땐, 스네이프도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아직 젊은가보지. 아니면 뒤늦게 맛을 알고 불탔다던가….
스네이프는 휘핑이 다 된 계란에 체 친 가루를 넣고 주걱으로 섞었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신경은 온통 제 허리를 끌어안은 해리의 근육이 잡힌 팔과 어깨에 놓인 해리의 턱, 제 얼굴에 스치는 그의 숨결에 쏠려 있었다. 직접적으로 닿는 해리의 뜨거운 체온에 꼭 섹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박혀본 적은 없는데, 왜 상상이 되는 건지. 스네이프가 짧고 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반죽을 세게 저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주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게 케이크 시트예요?”
“…그래, 포터.”
대답을 하는데 어지러운 현기증이 돌았다. 스네이프가 다시 눈을 꾹 감았다. 손이 조금이지만 떨렸다. 해리의 입술이 자신의 귀와 너무 가까이 있었다. 계속 해리가 자신과 섹스할 때 내던 헐떡이는 숨소리가 생각났다. 미친 게 아닐까……. 물론 자신은 해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스네이프는 이렇게 갑작스러운 성욕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비정상이 된 것 같았다. 해리가 시시때때로 저를 보던 눈에서 욕망을 느낀 적은 많았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그건 젊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야 처음 연애를 해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는 호흡을 가다듬고, 섞어진 반죽의 절반 정도를 덜어 버터 한 덩이와 섞었다. 요정이 만든 바닐라향 가루도 조금 섞었다. 반죽에서 좀 더 케이크 같은 냄새가 풍겼다. 해리가 코를 킁킁거리다가 웃었다.
“맛있는 냄새나요.”
그걸 꼭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말해야겠나, 포터? 스네이프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래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어, 밑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버터와 섞인 반죽 절반을 다시 나머지 반죽과 섞고서 스네이프가 마법으로 틀을 불러냈다. 유산지가 깔린 틀에 반죽을 붓자, 해리가 딱 1개 분량이네요! 하고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 정도야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이었다. 기포를 빼기 위해 지팡이를 휘둘러 반죽이 부어진 틀을 바닥 가까이에 떨어뜨린 뒤, 예열 된 오븐에 넣으며 스네이프는 하나 끝냈군, 싶어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해리는 여전히 스네이프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시트 굽는데 얼마나 걸려요?”
“25분 정도.”
“딱 적당한 시간이네요.”
“……? 무슨 소리지?”
“한 번 하는 데 25분이면 괜찮잖아요, 세베루스?”
간신히 발기를 억누르고 있던 스네이프의 성기로 해리의 손이 감겨들었다. 바지 위로 해리의 손의 모양이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몸이 확 굳었다. “너…!” 스네이프가 휙 해리를 흘겨보며 소리치다가 헉, 목구멍 안으로 소리를 삼켰다. 귀두가 있는 부분을 해리의 엄지손가락이 쓸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다급히 밀가루가 흩어져있는 조리대에 양 손을 올렸다. 흰 가루가 묻은 손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 것이 빠르게 딱딱해지고, 해리의 손 안에서 울컥울컥 커져가는 게 느껴졌다.
“윽, 흣…. 하지 마, 포터….”
“거짓말…. 계속 몸이 닿아있었는데, 흥분한 거 모를 줄 알았어요…?”
해리가 스네이프의 바지 벨트에 손을 옮겼다. 스네이프는 벌게진 얼굴로 숨만 겨우 골랐다. 해리에게 자꾸 속마음을 들키는 게 창피하면서도, 어쩐지 아주 깊은 곳에서는 쾌감으로 다가왔다.
“맛있는 냄새는 여기서도 나네요….”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스르르 거둬내자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불룩하게 도드라진 뼈에 입술을 묻고서, 해리가 얇은 살을 이로 잘근거렸다. 스네이프의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바지 속으로 들어간 해리의 손이 속옷 안까지 들어왔다. 액이 분비되기 시작하자 해리가 스네이프의 살덩이를 쥐고 흔드는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앞으로 알알이 흩어진 밀가루가 하얗게 점멸했다. 벌어진 입에서 갈무리되지 못한 침이 조리대로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마른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해리는 지금, 스네이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거울을 소환해버리는 건 어떨까, 그런 짓궂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래가 뜨거워졌다. 해리는 한 손으로 그의 것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스네이프의 바지를 엉덩이가 보일만큼만 내렸다. 까만 옷 사이에 하얗고 작은 둔부만 내놓은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해리는 그의 이런 귀여운 모습을 자신만 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들떴다.
스네이프의 어깨선을 혀로 핥으면서 해리가 속삭였다. 뒤로 손 뻗어서, 제 바지도 내려주세요, 세베루스…. 해리가 입고 있는 바지는 고무줄로 허리가 조여져서, 스네이프가 보지 못하는 자세에서도 쉽게 벗길 수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스네이프가 조심스레 두 손을 뒤로 뻗었다. 밀가루가 묻어있는 그의 손 탓에, 해리의 체크무늬 바지에 하얀 얼룩이 묻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쿡쿡 웃었다. 제 짓궂은 요구를 들어주는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한 사람을 이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해리가 느끼는 이 감정은 자신이 믿겨지지가 않을 만큼이었다. 그 대상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것까지도. 그리고 제일 믿기 어려운 것은, 이 감정을 받아들여주고 있는 그였다. 어떻게 그 어렵고 복잡한 사람이 자신을 위한 자리를 마음 한편에 내어주었을까. 그래서 해리는 그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놀랍고, 감사하고, 기뻐서. 그는 자신에게 너무도 완벽한 생일 선물이었다. 평생의 생일동안 그를 받을 수 있을까. 그를 원해도 괜찮을까. 해리는 그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귀여운 모습도, 그의 멋있는 모습도, 그냥 세베루스 스네이프 그 자체를 혼자만이 알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이대로 평생, 둘이서만 숨어서……. 해리의 속에선 그런 음험한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했다.
“아, 으응…….”
허리 위로 그의 상의를 걷어내고, 늘씬한 허리가 자극에 무너지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구멍 안에 해리의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 있었다. 해리는 손가락을 좌우로 벌리기도 하고, 안쪽을 빠르게 쑤시기도 했다. 무엇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던 좁은 곳이 저로 인해 넓어지는 광경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흥분됐다. 스네이프가 양 손으로 조리대를 꽉 잡고서 숨을 헐떡였다.
“아파요?”
“이…정도는.”
목소리는 버거워 보이는데. 해리는 스네이프가 오기를 부리는 건지, 정말로 참을 수 있는 수준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해리는 구멍을 쑤시지 않는 나머지 손으로 스네이프의 턱을 쥐었다. 그리고서 스네이프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스네이프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붉어져있었다. 탁하게 풀린 까만 눈과 해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쾌감. 짜릿한 정복욕과 소유욕이 치솟았다. 해리의 귀두 끝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스네이프가 먼저 해리의 입술을 찾아왔다. 해리는 그의 입술을 빨아들이면서, 그의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어냈다. 얼른 넣고 싶은 마음에 허리까지 뻐근해졌다. 스네이프가 목구멍으로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웃음이 터질 뻔한 걸 참았다. 그도 자신을 원한다는 걸 느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사랑해요. 그 말을 뱉으면서, 해리는 조금은 성급하게 스네이프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아……!”
정말이지, 이 안은 너무 좁고 어두운 천국이다. 스네이프가 탁하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해리가 양 손으로 스네이프의 허리를 붙잡았다. 해리는 곧바로 빠른 피스톤질을 했다. 길을 터놨던 덕인지, 삽입이 훨씬 수월했다. 전과는 다른, 처음부터 급하고 거친 섹스였다. 스네이프는 아팠지만, 눈을 꽉 감고 신음을 참아냈다. 그리고 곧, 그 아픔에도 적응이 된 쾌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하지만 이 자세에선 해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섹스도 거칠었다. 스네이프는 뒤에서 자신에게 박고 있는 사람이 해리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그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세… 자세 바꾸, 지, 헉, 흡…. 포터….”
“하아, 하… 왜요…? 난 이 자세도 좋은데….”
“네, 가 안 보이니까, 읏, 이상……해….”
“이상하다고요? 읏, 뭐가…?”
“……다른 사람 같, 윽….”
스네이프는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지, 귀가 빨개졌다. 뒤에서 붉어진 귓등을 바라보며 해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하, 정말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해리는 이건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신은 그를 더 놀리고 싶어졌다.
“……내가 아닌 거 같아서 불안했어? 세베루스.”
“포… 포터, 건방지게 무슨…… 으흑!”
콰악, 해리는 아까보다 더 세게 스네이프의 안에 박아 넣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오늘만은 내 마음대로 해도 용서해주었으면.
“근데 내가 아닌 것 같았으면서도, 잔뜩 흥분했잖아. 음란하긴, 세베루스…….”
“으흑… 너… 포터, 가만 안 둘, 윽…으흑! 아…!! 너무 빨…라! 읏, 허억…!”
“이런 거 좋아해? 세베루스. 아픈 거.”
“아…하악, 크읍, 너…! 끝, 나고…! 두고… 봐…!”
“이런, 겁나는데, 세베루스. 좋아…. 아무 소리 못하게, 하아, 만들어줄게…….”
해리는 꼭 제가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악역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동안 싫다는데도 영웅이라고 놀려대던 스네이프에게 자그마한 복수를 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그런 건 핑계였다. 그냥, 해리는 즐거웠다. 섹스를 할 때만큼은 스네이프도 자신에게 흐무러지니까. 이런 유치하고 못된 장난을 쳐도, 스네이프가 자신을 받아들여주니까. 해리는 그게 좋았다. 두고 보자고 소리치면서도, 자신의 성기를 물고 있는 스네이프의 내벽의 감도가 더 좋아진 것을 해리는 느낄 수 있었다. 빨개진 귓등으로, 스네이프의 앞모습이 얼마나 붉어져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해리는 점점 더 짓궂게 굴고 싶어졌다.
“…아, 하하, 하….”
까맣게 타버린 케이크 시트를 오븐에서 꺼내며 해리가 머쓱하게 웃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흘겨보면서 뒤쪽을 닦아내었다. 음, 못된 장난에 몰입하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저… 세베루, 아니… 교수님. 과거로 돌아가는 회중시계 쓸까요…?”
“됐어. 포터, 뚫린 입이라고 케이크는 먹고 싶나보지?”
“교수님이 만들어주신 건데….”
“그걸 누구 때문에 못 먹게 됐는데.”
타지 않은 부분이 있나 살펴보다가, 해리가 입을 비죽였다.
“교수님도 저랑 같이 정신 못 차리셔서 태운 거잖아요….”
“뭐라고?”
스네이프의 한 쪽 눈썹의 끝이 치켜 올라가고, 언성이 높아졌다.
“엄청 좋아하셔놓고…. 다 알아요. 세 번이나 사정하셨잖… 악!”
“레비코푸스.”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해리가 발버둥을 쳤다. 덕분에 발목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바지가 덜렁거리는 성기는 감춰주었다.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서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아주 고소하단 얼굴로 해리와 눈을 마주쳤다. 해리는 학창시절 스네이프 교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끝에 피가 모자랄 때까지 거기 매달려있어라, 포터.”
해리의 얼굴이 벌써부터 백지장이 되었다.
정말로 피가 발끝에서 다 빠져나간 것은 아닐 테지만, 공중에서 땅으로 돌아온 해리는 한참을 골을 붙잡고 신음해야 했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싸늘한 얼굴이었으나, 일말의 배려를 베풀어주었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자, 해리의 손앞으로 날아간 컵에 찬 물이 따라졌다. 으으… 고마워요 세베루스…. 해리가 컵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사실, 병 주고 약주냐 느니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여기서 더 까불었다간 무슨 벌을 받을지 몰라 겁이 났다. 레비코푸스에 한 번 더 당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혹시 몰라, 접근금지령이라도 떨어질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케이크는 그냥 포기하는 걸로 하죠….”
“흐응. 그럼? 생일을 이대로 보내겠다? 며칠을 그렇게 생일이라고 떠들어대더니.”
“아, 그래요. 제가 그렇게 말했는데 선물도 준비 안 하셨죠!”
“…….”
여기선 스네이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간 열심히 고민해 봤었는데, 결국 뭘 줘야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도 어쩐지 부끄러워서, 대답 없이 팔짱을 낀 채 앉아있었다.
“…케이크가 선물이 될 수도 있었겠지.”
그래도 한 마디도 않는 건 스네이프 성격상 맞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스네이프를 올려다보던 해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저한텐 세베루스가 선물이에요. 진심으로요. 하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준비해주시지 않을까 기대는 했었는데…….”
“그거 참 미안하군.”
말은 퉁명스럽게 하지만, 스네이프도 왜 선물을 준비 못했을까가 계속 후회되었다. 그냥 옷이라든지 먹을거리라도 사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처음으로 서로 마음이 통해 사귀는 사람에게 ‘아무거나’ 선물해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을 축복하는 선물로, 아주 가치 있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게 스네이프의 본심이었다. 해리에게 직접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창피해서, 입을 열 수 없었지만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해리에게 ‘자신이 선물’이란 말을 직접 들으니, 예상했던 말이었지만 역시나 기뻤다. 스네이프에게도 용기가 있어서, 해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직접 전해줄 수 있었다면 해리를 좀 더 기쁘게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이런 자신이 굉장히 못나게 느껴졌다. 해리는 어쩐지 낯빛이 좋지 못한 그를 바라보며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 물 컵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은 스네이프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세베루스? 왜 그래요? 자신이 또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나? 선물 같은 거 없어도 되는데,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후회가 되었다. 해리가 한 팔을 뻗어 스네이프의 어깨를 끌어안고, 조심스레 눈을 맞췄다. 그가 까만 눈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세베루스, 저, 선물 없어도 돼요. 난 당신만 있으면 되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포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실수가 맞아.”
“세베루스!”
“원하는 걸 말해봐라. ‘나’라느니 그런 말 말고.”
해리가 더럭 또 제 이름을 말하려는 입을 지팡이로 막으며, 스네이프가 빠르게 말했다. 해리는 입술을 꽉 누르는 지팡이를 쳐다보며(눈이 가운데로 몰려 우스꽝스러운 얼굴이었으나, 놀랍게도 스네이프는 단 1초도 웃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베루스 말고 내가 원하는 선물? 뭐, 사실 생각해보면 갖고 싶은 게 많기는 했다. 퀴디치에 관련된 용품이라면 다 좋았고, 옷을 받아도 좋았고, 그가 직접 만든 음식도 좋고 그냥 그가 밖에서 사온 음식이라도 좋았다. 어차피 스네이프와 함께 보내는 생일인데, 이미 선물 받은 기분인 걸. 해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제 입술에서 지팡이를 치워냈다.
“음, 하나 떠올랐는데요.”
“뭐지? 당장 나가서 사올 수 있는 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스네이프를 보며 해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이내 사르르 미소가 걸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 딱히 돈은 안 들걸요? 우린 마법사니까.”
“뭐라고, 포터? 네 말은… 꼭 마법을 써서 훔치라는 걸로 들리는군.”
“아뇨, 아뇨! 그냥, 진짜 돈이 안 들어서 그래요. 그보다 그걸 선물로 받기 전에, 우리 잠시 같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준비?”
“네. 밖에 나갈 준비요.”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의 문을 가리키며 해리가 가볍게 말을 던졌다. 스네이프는 약간 의아했지만, 어쨌든 집안에서 선물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야되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해리는 선물에 돈은 들지 않는다더니, 자신의 지갑은 챙겼다. 스네이프는 제 지갑도 아니고 본인 것을 챙겨드는 해리를 보고 미간을 팍 찌푸렸다.
“포터, 내 지갑을 챙기지 않고 뭐하는 거지?”
“아, 버릇대로 이걸 집었네. 좋아요, 세베루스. 여기, 지갑 챙겨요.”
해리가 던진 지갑을 한손으로 받아낸 스네이프가, 물끄러미 지갑을 내려다보다 다시 해리를 바라보았다.
“돈은 필요 없다더니?”
“가서 먹을 음식을 사려고요.”
“가서 먹을? 어디로 갈 생각인가?”
“그건 따라와 보면 알지요. 세베루스도 아는 곳이에요.”
둘 모두 공통분모로 아는 장소? 스네이프는 더욱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무리 떠올려도 그건 이 집과 호그와트, 고드릭 골짜기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호그와트는 해리가 지금으로선 갈 수 없는 장소였고, 고드릭 골짜기 역시, 딱히 생일에 가야할만한 이유가 있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도 개중엔 제일 갈만한 장소인 것 같았다.
“고드릭 골짜기인가, 설마?”
“아뇨. 헛짚으셨네요.”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는 간지러운 행위는 아주 풋풋하게 느껴졌지만, 그것에 서로가 감상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둘은 마트 뒤편의 공원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겁도 없군, 포터. 대낮부터 머글이 있을 법한 곳으로….”
“하하. 여긴 사람이 별로 안 와요. 있었어도 한두 명쯤일 텐데, 오블리비아테(기억 수정 마법)를 쓰면 되니까.”
“막무가내로군. 설마 오러 임무를 할 때 그러고 다녔나?”
“뭐, 가끔은요. 빨리 장이나 봅시다, 세베루스.”
대책 없는 녀석이군. 뭐, 물론 해리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스네이프는 충분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보다는, 지금 해리가 아직도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제 동반순간이동을 할 이유도 없으니 놓아도 될 텐데. 해리도 스네이프가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알아챘는지, 입구로 들어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바로 묻지 않고 스네이프와 잠시간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놓을까요,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아니… 네가 땀만 안 흘린다면 상관없지, 포터. 그 대답에 해리가 싱긋이 웃었다.
마트 내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빵을 고르고, 고기와 음료수, 맥주도 구입한 해리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텐트와 의자도 구입했다. 텐트 안을 살펴본 스네이프는 텐트 안이 넓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좁은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지팡이가 꽂힌 뒷주머니를 슬쩍 더듬는 걸 보고 해리가 얼른 직원의 시선을 돌렸다.(“저기, 저 텐트는 왜 빨간색인가요? 멀리서 보면 산불이 난 것 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직원과 해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 스네이프가 마침 텐트의 해체를 마치고 가방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직원이 당황해서 새 제품을 드릴게요! 소리쳤지만, 스네이프가 몹시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로 됐소, 라고 말하는 데에 압도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직원은 자신이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은 쓰지 않았다.─)
“머글 눈앞에서 마법이라뇨! 세베루스가 훨씬 만만찮잖아요.”
“네 말마따나 오블리비아테를 쓰면 되는 것 아닌가, 포터?”
오만하게 입 꼬리를 끌어올리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해리의 눈에 꽤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에 해리는 걸음을 걸으면서, 푸하핫! 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해리와 스네이프 쪽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뭔가 가슴이 크게 박동하는 것 같았다. 들뜨는 기분이었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무모함을 느낄 때는, 해리의 인생의 순간마다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을 다시 잡고서, 당당하게 사람들의 시선 사이를 걸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짓을 하러 가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정작 화장실에 들어와서 돌아본 스네이프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해리를 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하자는 건 아니겠지.”
“제가 그렇게 짐승 같아 보이세요?”
“충분히 그렇다만? 포터.”
스네이프가 비꼬며 대답했다. 해리는 사실 오늘 한 행동으로 할 말이 없는 입장이긴 했다. 해리가 어깨를 으쓱거리곤,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둘밖에 없던 화장실로 한 지긋한 노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 노인을 본 해리는 빠르게 스네이프의 손목을 낚아채고 눈앞의 칸으로 들어갔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힘에 의해 칸으로 딸려가는 와중에, 막 화장실로 들어온 남자의 동그래진 눈을 분명히 보았다. 해리가 칸에 잠금 쇠를 거는 소리가 보기 좋게 울렸다. 이십대 남자와 서른 후반의 남자가, 남자화장실 칸에 손잡고 같이 들어가는 꼴을 보이다니…….
“어이, 포터. 이게 뭐하잔…”
“쉿.”
해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었다. 스네이프는 화낼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다시 순간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이 온통 나무들로 빽빽했다. 스네이프는 순간 금지된 숲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곧 그 장소가 아닌 걸 깨달았다. 그 곳보다는 정돈된 느낌이 들었고,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스네이프도 알아차렸다. 이곳은 딘의 숲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처럼 낙엽이 덮인 얼어붙은 땅이 아니어서 금방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해리는 음식봉투와 텐트가방을 든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 근처 어딜 텐데….”
“여기엔 왜 온 거지? 포터.”
“아, 저 쪽인가.”
스네이프의 말은 못 들은 것 마냥, 해리가 앞장을 섰다. 스네이프는 물어보는 걸 그만두고 잠자코 해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푸르게 올라온 잔디와 흙을 밟으며 숲을 거니는 기분은 꽤 좋았다. 공기가 상쾌했고, 숲 속은 시원했다. 가끔씩 나뭇잎 사이로 새나 다람쥐 같은 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앞서 걸으며 몇 번 두리번거리고, 약간 헤매더니 이내 찾던 것을 발견해냈다. 둘의 앞에는 연못이 고여 있었다. 스네이프도 눈에 익은 연못이었다. 해리는 연못 옆에서 텐트를 펼쳤다.
완전히 펴진 텐트는 겉에서 봤을 땐, 샀을 때 모습 그대로 작았다. 하지만 해리가 텐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모습은 마트에서 본 그대로가 아니었다. 천장이 높아졌고, 방 두 개와 화장실, 부엌이 생긴 텐트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거, 우리 집이네요.”
‘우리’ 집이라. 뭐, 함께 산 지 몇 달이니 충분히 그렇게 부를 만 했다.
“새로 사서 채울 수는 없으니 집을 그대로 복사했다. 부엌에서 물을 틀면, 집에 물을 쓰는 것과 똑같지.”
“대단해, 완전히 집을 통째로 가져온 것 같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음식들은 안 샀어도 됐겠는데.”
“산거야 먹으면 되잖나. 그보다 포터, 여긴 대체 왜 온 거지? 갑작스럽게 캠핑이라도 하고 싶었나? 그건 이전에 질리도록 한 줄 알았는데.”
마법을 걸어 저절로 펴진 접이식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러면서 스네이프는 눈앞의 연못에 조용히 시선을 두었다. 나무 사이로 동그랗게 파여 있는 연못에, 햇빛이 부딪쳐 빛을 산란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었다. 머리 위로 높게 바람소리가 들렸다. 스네이프는 겨울, 얼어붙어 잠잠한 연못 아래로 고드릭의 칼을 흘려 넣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네이프에겐 고작 반 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질리도록 한 게 캠핑이었죠. 하지만 세베루스랑은 처음이잖아요?”
주변의 마른 낙엽과 가지들을 주워 모으며 해리가 대답했다. 가늘고 마른 가지들로 이뤄진 장작에 능숙하게 불을 피우는 해리의 모습은, 확실히 캠핑에 도가 튼 느낌이 나긴 했다.
“겨울에 왔을 때는 너무 추웠었던 기억만 있는데, 지금 오니까 딱 좋네요. 오늘은 비도 안 올 것 같고요.”
하늘을 흘낏 올려다보며 해리가 말했다. 아씨오, 주전자. 텐트 안에서 주전자가 날아와, 불이 붙은 장작 위에 올라앉았다. 해리는 밑바닥이 그슬리지 않도록 그걸 다시 공중에 조금 띄웠다. 물을 붓고 티백을 넣은 주전자가, 장작불 위에 동동 떴다. 해리는 불 앞에 쪼그려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급하게 나온 캠핑이라 이런 건 준비 못했었는데, 스네이프가 텐트에 부린 마법 덕에 한결 편해졌다.
해리는 다 끓은 찻물을 컵 두 개에 따랐다. 스네이프에게 하나를 건네며 해리도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해리에게 이런 감상적인 취미는 별로 없었지만, 스네이프와 나란히 숲 속에 앉아 아름다운 연못을 감상하는 기분은, 썩, 아니, 꽤 괜찮았다. 물론 이게 자신의 생일선물은 아니었다. 그저 생일선물을 받기까지의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훗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고 기억될 만큼, 모든 게 좋았다. 어디선가 노랫소리 같은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차를 홀짝이던 스네이프가 해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왜 여길 왔는지, 해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직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해리는 벌써 다 마신 컵을 내려놓고, 연못에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훌쩍 큰 키와 넓어진 등을 바라보며 스네이프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호그와트 입학식이 끝나고, 기숙사로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선 11살의 해리 포터의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릴리와 제임스의 아들. 너무나 혐오스런 존재이지만 앞으로 자신이 보호해야만 할 존재가 드디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던 날이었다. 그 날의 기억은, 박제된 필름 컷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다 자란 해리의 뒷모습에 그 작은 뒷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 달라진 등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도, 또 감정도, 이렇게나 달라질 줄은 몰랐다. 해리에 대해 느끼는 모든 것이 온통 놀라운 일 뿐이었다.
“해리.”
“네. …어! 이름 불러주셨네요.”
부름에 뒤를 돌아보던 해리가, 곧 이름이 불린 걸 깨닫고는 헤실 웃어보였다. 멍청한 건 전혀 변하지 않았지. 스네이프는 턱에 손을 괸 채,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해리가 스네이프에게로 다가오려 걸음을 뗐다. 스네이프는 손을 들어 저지하며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해리가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금세 스네이프는 해리의 옆으로 다가왔다. 연못 앞에 해리와 나란히 선 스네이프가 오른손을 뻗어 해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해리는 가늘고 긴 스네이프의 하얀 손가락이, 약간 그을린 자신의 뺨을 만지는 대로 가만히 보고 서있었다.
“…사랑한다.”
아주, 조용하고 심상한 말투였다. 뺨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해리는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시선을 올려 스네이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리는 이런 걸 생일선물로 기대하진 않았다. 너무나 큰 걸 받아버린 느낌이었다. 해리가 두 팔을 뻗어 스네이프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자기 뭐예요…. 정말 세베루스의 페이스는 따라갈 수가 없어….”
“글쎄. 포터, 너보다야 그럴까.”
“아뇨, 저보다 세베루스가 훨씬 그래요. 지금 사랑한다고 해주실 줄은 몰랐다구요.”
“……언제 해야 적당한 말일지 몰라서,”
해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에 묻었던 고개를 들어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흰 뺨이 약간 붉어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이라고 하기엔, 맞붙어있는 가슴으로 서로의 박동이 크게 느껴졌다.
“하고 싶을 때…… 해버렸군.”
스네이프가 시선을 돌렸다. 태연한 척 하는 게 조금 힘들어진 것 같았다. 해리는 제 가슴이 아주 세고 빠른 박자로 쿵쾅쿵쾅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해리가 고개를 숙여 스네이프의 입술을 찾았다. 스네이프가 양 손을 해리의 등허리에 조용히 올렸다. 바깥에서는 처음 나눠보는 키스였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머물다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생일 축하한다, 해리 포터.”
“고마워요, 세베루스. 정말 최고의 생일선물이에요….”
“이걸… 바라고 있었나?”
“아뇨, 아닌데…. 제가 바란 것보다 더, 더, 더! 좋아요.”
“흐음…. 그래, 이제 말해줄 때도 됐지 않았나? 네가 생각한 내게 받고 싶은 생일선물이 뭔지.”
“음, 제 생각엔… 그건 조금 더 날이 어두워졌을 때,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엉큼한 거면 연못에 빠뜨리고 그대로 두고 가겠다, 포터.”
“아니에요!”
픽, 웃음을 흘리며 스네이프가 해리의 몸에서 떨어졌다. 아니라니까 다행이군. 여유로운 얼굴을 되찾은 스네이프가 음식봉투로 다가갔다. 해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는 어렵고 겁이 났지만, 막상 뱉고 보니 그렇게 힘든 말도 아니었다. 차라리 어려운 마법주문을 외우는 게 혀가 꼬여 더 어렵겠지. 그 간단한 말은, 해리를 기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안정을 가져와주었다.
마법 같군. 과연, ‘사랑’은 ‘마법’이다.
─
11편이랑 연달아 써서 올리고 싶었는데, 애매해서 10편만 써서 올려요.
해포세계관에서 사랑이 진짜 마법이잖아요...(해리를 볼드모트로부터 보호해준)
그게 전 참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해리가 기대하는 생일선물이 뭘지 눈치채신 분 있어도, 속으로만 짐작해주세요ㅠ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