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인가... 잠에서 깨고 쭉 다시 잠에 들지 못했던 것 같다.
전 날 저녁 설사를 하고도 새벽에 또...ㅠㅠ
근데 내 방을 바라보면 너무 아늑해서 기분이 좋았다.

저 일회용 실내화를 신을 때마다 찾아 신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두 켤레 뜯어서 다 쓸 걸.

저 하얀 조명 있는 부분 지금 보니 무언가가 폭발한 것 같이 찍혔네.
저 조명 뒤쪽에 콘센트가 있어서 와이파이 구성품인 돼지코를 끼우고, 와이파이도 충전하고 휴대폰도 충전했다.
연결 케이블을 두 개나 줘서 돼지코 하나에 선 두 개를 함께 쓸 수 있어 좋았다.

이건 맛있다고 봐서 전 날 저녁 편의점 들렸을 때 낱개가 싸길래 두 개를 구입했다.
한 개는 아침 먹기 전에 출출해서 까먹고,
남은 하나는 까먹고 있다가 저녁에 해리포터놀이기구를 줄 서서 기다리며 먹었다.
통통한 빼빼로 세 개를 초코바 안에 넣은 맛이다. 맛있다.

이건 아침식사였던 카츠동? 도시락.
고기와 밥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밥 위에 얹어서 먹었다. 어제 저녁 도시락보단 괜찮았던 것 같다.
씻고 편의점에 나가서 사왔다. 퇴실이 11시인데 10시쯤 먹었던 듯.
먹는데 밖에서 퇴실하는 사람들, 방 청소하는 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도 ㄴㅑㄴㅁ먀냠냐ㅑ냠
11시 5분 전에 내려가 체크아웃 했다.

신호를 기다리며 찍었다. 숙소에서 JR난바역으로 걸어가는 길.
3월초인데 피어있는 노란 꽃이 예뻤다. 그리워질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찍었다.

자, 건너자~ 미련 없이.

구글맵은 친절하였지만 내 위치는 제대로 캐치해주지 못했다. 몇 번 왔다갔다 헤맸다.
지도를 보며 정반대로 가는 것은 나의... 습관.(?)
그냥 이 길로 쭉 가다가 오른편에 역 건물이 있는데, 옆길로 빠졌었다.
덕분에 소방서도 보고 작은 마트도 보았다.

역 맞은편 길에 있는 조형물.
처음에 진짜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가 아니란 것을 알고 놀란 것을 기념하고자(ㅋㅋ) 찍었다.

이게 JR난바역이다.
저 버스가 나가려는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한참을 정지해있었다.
사진 찍느라 몰랐는데 아마 내가 건너가길 기다려준 것 같기도 하다.
난 기다리는 것이 편해서 항상 느긋하게 차를 보내주는 편이다.

여기로 들어가면 내부가 나온다. 저 사람은 직원이었던가...?

내부는 작은 편이다. 유니버셜시티까지 표값을 190엔으로 알고 있다가 알림판에는 180엔이어서 조금 당황했다.
일본은 목적지까지 요금이 적혀있고, 그 요금대로 돈을 넣고 티켓을 뽑으면 된다.
근데 개찰구 앞에서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나 걱정이 돼서 한참을 표 넣길 망설이니, 직원이 동공지진을 하며 날 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뛰쳐 나와 도와줄 기세길래 얼른 표를 기계에 집어넣었다. 그 여성 분이 안도하는 것이 보였다.(ㅋㅋㅋ)

이 차를 타고 이마미야역까지 간다. JR난바->이마미야->니시쿠조->유니버셜시티 도착이다.
환승할 때마다 계속 그 자리가 여성전용칸이길래 그렇게 탔다.

사람이 없다. 앞 좌석에 한국인여성 두 명이 탔다. 한국인이 보일 때마다 일본 같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야채가 부족한 것 같아서 사먹은 야채주스. (샐러드는 딱히 땡기는 게 보이지 않았다.)
차내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며 마셨다. (대기가 길다.)
온갖 야채가 들어갔으나 맛은 당근맛밖에 안 난다. 난 당근맛을 좋아해서 잘 마셨다.

이마미야역에 잘 내렸습니다~ 정말 일본스럽다.

계단을 내려와서.(캐리어를 들고 있는 무릎부상자는 공포체험을 했다.)
니시쿠조로 가기 위한 안내가 잘 되어있다.

다행히 올라가는 건 에스컬레이터.

여기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아빠랑 아침 먹었냐 어디냐 카톡을 나누었다.
저 코난 빌딩에 한 번 들어가보고 싶은 느낌~

차가 왔다.
타고 가는데 낯선 역 이름들이 계속 나와서 동공지진...
잘 못 탄 게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걱정 부자) 내려야하나? 기다려볼까?

그러다 벤텐초역 이름을 듣고 진정을 했다.

여기가 니시쿠조역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다들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 가나 보다.

내 옆에는 딸아이와 엄마 둘이 탔다. 사무~ 하면서 춥다는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는데, 사실 별로 안 추웠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추위를 한 번 맛보면 이 정도에 사무 소리가 안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따뜻한 오사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다들 유니버셜 가는 것처럼 보이고 들떠 있어서 놀이동산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기 가려고 일본에 왔는데!

와아아

와아아아아 도착했다.


숙소를 케이한유니버셜타워로 잡았는데, 역 입구와 제일 가까이에 있다. 아랫층에 로손이 있는 건물이다.
3시 체크인이라서 짐을 맡기는데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ㅠㅠ
정말 어제 숙소에 한국인 직원이 있던 것은 세상 편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직원이 친절해서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안내종이를 받아 나왔다.
이 때부터 계단을 내려와서 다리 통증이 갑자기 악화되었다. 급한 대로 약을 먹었지만 계속 아파서 걱정스러웠다.

유니버셜 거리는 내 생각보다 길었다. 실물은 항상 사진보다 큼직큼직 시원스럽다.
역에서 놀이동산입구까지 체감상 한 5분은 걷는 것 같다.

15주년 기념 장식이 여전히 달려 있었다. 이걸 내가 보는 구나.

유니버셜 지구본과 셀카도 여러장 찍었지만 만족스럽진 못했다.
그리고 아까 로손에서 모찌롤 사오는 걸 까먹어서, 사진을 찍고 이 때 갈등을 좀 했다.
다리 아픈데 또 다시 돌아가서 사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사오기로 결정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다녀왔다.
결론은 사서 들어가길 잘한 것 같다.

모찌롤 사고 다시 되돌아오다가 고릴라친구를 발견해서 찍은 모양이다.

입장을 기다리며... 내가 여기에 진짜로 오다니!
e티켓 출력한 종이를 들고서 기분이 정말 오묘했다.
바코드에 QR코드 찍으면 입장이 된다. 내 앞 여학생은 잘 안 돼서 직원이 했는데, 난 한번에 쉽게 됐다.
이 때가 오후 한 시쯤이었다.

와 사진으로만 보던 입구야! 이것만 보면 얼마나 넓은지 실감이 안 간다. 일단 기념품샵 먼저 가보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대략 어디에 돈을 얼만큼 쓸건지 분류해봄.
2박 3일 여행이었고 4만 2천엔을 환전했다.

기내용 20인치 캐리어. 짐을 싸기 전에 찍어보았다.

첫 해외여행인 만큼 캐리어도 첫 캐리어. 새 캐리어. 이쁜 블루색.
짐을 다 싼 캐리어 무게를 공항저울에 측정해보니 5kg 정도.
여행 내내 너무 가벼웠고 잘 굴러갔다.

(누구나 다 찍는다는 여권과 보딩패스샷! 나도 찍었다!)


한 시간밖에 못 자고 새벽 5시 15분에 출발 해 대구공항으로 갔다. 태워다주신 아빠 고마워요.
잘 몰라서 티웨이항공 줄이 서있길래 섰더니 제주도행이었다. 어쩐지 아무도 여권을 안 들고 있더라니...
오사카행은 아직 오픈하기 전이어서 줄을 1등으로 섰다. (오픈은 5분도 안 걸림)
인터파크에서 예약한 내역을 인쇄한 e티켓을 여권과 함께 내밀었다.
1등으로 줄 섰지만 보딩패스(실물 탑승권)는 옆사람이 먼저 받았다. 난 2등.


첫 끼니는 공항내 2층 본죽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퍽퍽하고 차가워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야할 것 같아서 마음은 조급하고... 사실 널널했는데 첫 경험이라 긴장했다.
수속은 사람이 없어서 급속도로 착착...
2층에서 국제선 탑승을 하고, 들어가기 전 아빠와 포옹. 들어간 후 아빠와 전화, 엄마와도 전화.
딸의 첫 해외여행(그것도 혼자)에 나보다 엄마가 더 긴장하셨다.

탑승 대기를 하며 가져온 시집을 읽었다.
제일 좋아하는 시인인 허연 시인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시집이다.
우연치않게 펼친 장에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이 상황에 맞는 시를 마주했다.
시를 읽으며 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안 가 본 나라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렜다.
나는 뭐 넘어진 부처 같은 문화재를 보고자 하는 열망은 없었으니까.

최대한 앞으로 배치해달라고 했더니(입국수속을 빨리 받으려고) 5번째 줄을 받았다. 창가자리로.
첫 해외여행, 힐링을 위한 여행인데 무조건 창가를 받아야 한다.
제주도는 두 번 가봤기에 세번째 비행이었다.
창 아래로 작아지는 네모네모 건물들은 정말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찍질 못했다.

나는 일본에서 외국인이니까 입국신고서와 휴대품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꼭 볼펜 챙겨가기!)
미리 인터넷에서 알아본대로 작성했다. 승무원 분이 전체 영문대문자로 쓰길 권했다.
내 옆에는 노부부가 탑승했는데, 작성이 덜 된 칸에 잠깐 참견도 해주고.
할아버지 분이 아내 것까지 다 작성을 하셨다.
아, 티웨이는 일본까지 가는 국제선에 생수를 한 컵 준다. 물... 시원하고 달다. ㅎㅎ

운이 좋아서 입국수속을 초고속으로 마쳤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오래 걸리면 2시간도 걸린다는 말에 긴장하고 갔는데, 맥이 빠지면서도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글로벌 와이파이를 간사이공항 1층에서 수령하고,
와이파이를 연결해 가족에게 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한글이 있으니 꼭 한국공항 같기도 하다. 피치피치한 간사이공항이다.

난바행 라피트 탑승권 구입.
내가 찾아본 가격보다 조금 비쌌다.
1270엔. 기념으로 표를 갖고 오고 싶었지만 개출구에서 낼름 잡아먹어버린다.
사진이라도 찍어 놔서 다행이다. 일본 돈을 이 때 처음 써봤다. 두근두근.

라피트 열차는 꼭 디즈니랜드 같은 꿈의 공간으로 떠날 것 같은 느낌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예뻐서 조금 비싸더라도 일본 온 기념으로 타보고 싶었다. 타길 잘 한 것 같다. 사람도 적고 널널했다.

일본 오기 전 먹어볼 것들을 찾아보면서 궁금했던 이로하스 모모.
비행기 내에서 마신 생수 한 컵이 전부기 때문에 목이 타서, 고민하다가 기차를 타기 전 철로 옆의 매점에서 구입했다.
중년의 여성주인이 웃으면서 건네주었다. 라피트 티켓을 준 젊은 여성직원은 무뚝뚝했는데, 이 분의 미소에 기분이 좋아졌다.
150엔이어서 고민했지만, 산 보람이 있었다. 사실 정신이 없어서 캐리어를 차내에 묶어놓다가 옆에 두고 까먹었는데,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ㅠㅠ(너무나 다행)

마신 소감은...! 진짜 복숭아를 딱 한 입 씹었을 때 느끼는 과즙 맛 그대로다. 100%.
이프로 농축한 맛이 절대 아니다. 그렇게 묘사한 사람들이 미웠다. 하마터면 그래서 못사먹을 뻔 했잖아...
진짜 맛있다. 일본에서 먹은 것 중에 이게 내 입엔 제일 맛있었다. 일본에서 처음 먹은 것이.ㅋㅋ
여행 마지막날에 100엔에 파는 걸 보고 또 사먹었다.

라피트 화장실 거울도 열차 창문이랑 똑같이 생겼다.
여러분 라피트에 타세요! 예쁘고 편하고, 예쁩니다.
나 라피트 홍보대사 같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일본 풍경이 너무나 감성적이고 아름다워서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일본 가서 기차를 꼭 타보는 것을 추천.
마지막날에 리무진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갔는데, 기찻길 옆 풍경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아름다웠다.
열심히 동영상을 찍으며, 이 풍경을 엄마와 함께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 난 다시 일본에 오고 싶어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없이 2층 주택들밖에 없는 동네, 그리고 모든 집이 다 다르게 생겼으며 다 다르게 예뻤다.


라피트에서 내리고. 약간의 방황 끝에 금방 숙소로 가는 출구를 발견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보고 간 보람이 있다. 금방 익숙한 길을 따라 걸어서 숙소를 찾았다.
난카이난바역 북쪽출구에서 한 3분 거리? '그램퍼스 인 오사카' 라는 호텔이다.
내가 간 날에 한국인 직원이 있어서 편하게 짐을 맡겼다.
그리고 배고파서 숙소 옆 패밀리마트에서 계란샌드위치를 사고 덴덴타운으로.


구글맵을 켜고 동인지를 사러 갔다. 처음 가본 애니메이트나 케이북스, 라신반... 신세계였다.
회지가 이렇게나 많아... 커플링 별로 분류 돼있어...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곳이라 휴대폰은 잠시 넣어두고 책 쇼핑을 했다.

여긴 그냥 역으로 돌아오면서 일본스러워서 찍었는데...
절 같은 곳인가? 가정집인가? 잘 모르겠다.

일본은 자판기 천국답게 정말로 어딜 가나 자판기가 있었다.
눈여겨봤는데, 이로하스 모모는 의외로 흔하지 않다. 그리고 있다면 150엔. 150엔에 그냥 사서 마시길.
일본스럽다며 여기도 찰칵찰칵.

담배자판기도 보았다. 앞에는 남자들 뿐이다.

로손 맞은편의 하얀 건물이 난카이난바역이다.
역 입구와 가까워졌다.

로손은 일본 가기 전엔 기대했는데, 막상 일본에선 봐도 무감했다.

저 빌 공(空) 자는 뭘까, 일본적이다, 찍었는데.
다니면서 알고보니 주차장에 있는 표시다.
여긴 자전거 주차장이어서 있었나 보다. 비어있으면 초록불이 켜져 있다.

힘들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남아서 역내 상점들을 보며 앉아서 계란샌드위치를 먹었다.
처음 한 입을 먹었을 때 느꼈던 충격이 아직도 선하다.
분명히 맛있다고 했는데... 1박2일 소금복불복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소금 알갱이들이 씹힌다.ㅠㅠ
충격적으로 짜다.
다시는 사먹지 않았다. 이거 먹어서인지 유제품을 많이 먹어선지, 저녁에 배탈도 났다.

내가 앉았던 자리를 기억하고 싶어서 찍었다. (가운데 의자.)

난카이난바역 남쪽출구로 나오면 이런 풍경이다.
처음에 내가 구글맵으로 찾은 숙소 가는 길은 여기여서 처음 북쪽출구로 나왔을 땐 당황했다.
라피트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면 북쪽출구이므로,
그램퍼스 인 오사카를 찾는다면 프레이저 레지던스 난카이 오사카(호텔)라고 안내되어있는 출구로 나오면 된다. 그리고 직진.
그래도 헷갈린다면, 제일 왼쪽편 출구이다.


도심에 저런 고가도로가 있는 게 신기했다. 정말 일본 애니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저 곳에 가만히 서서 일본의 도시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보았다.


사실 이 전에 난바파크스를 구경했는데, 사진이 없다. 강풍이 불어서 사진 찍을 정신이 없었나 보다.
정말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건물 안으로 빨리 빨리 들어갔다.

해보고 싶었던 빠칭코.
오소마츠가 만날 하던 건데... 여자 혼자라서 들어가기가 겁났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다.
이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익숙한 역 북쪽출구에서 숙소까지의 직진 길이 나온다.

아... 그리운 길이다. 여러 번 왔다갔다 했는데.
쭉 걸어가면 파란 간판의 숙소가 있다.


숙소를 들러 휴대폰 배터리를 새로 갈고 나왔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길래 다시 돌아가 우산도 챙겨 나왔다.
마주한 직원 분과 조금 뻘쭘... 이래서 날 기억하신 것 같다.ㅋㅋ 정식 체크인 때 내 이름을 알아보시던.


그리고 구글맵을 켜고 도톤보리로 갔다.

도톤보리는 사진으로 봤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훨씬 크고 탁 트인 시야로 보였고, 다니기에 간단한 느낌이 들었다.
명동에 청계천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이치란 라멘으로 갔다.
이치란 라멘은 먹을 계획이 전혀 없었으나, 비투비 창섭이 맛있다고 노래를 부르길래 궁금했다.
안 먹고 가면 그 맛이 궁금해 후회할 것 같았다.

1호점은 줄이 조금 길어서, 걸어서 2분 거리의 2호점을 찾았다. 작은 다리만 건너면 금방이다.
어차피 1호점이라고 본점이 아니고 체인점이니까 다 똑같다. 웨이팅 없는 게 최고.
자판기에서 라멘과 계란 주문표를 구입했다. 티켓이 나온다... 자판기와 구식 티켓의 나라 일본.
90년대 감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중국인? 한국인? 묻는 직원에게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어로 적힌 주문표를 또 따로 준다.

그리고 주문했습니다. 라멘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 라멘을 정말 좋아한 나라서, 본토의 라멘, 그것도 한국인들에게 칭찬받는 라멘 맛이 궁금했는데.
첫 입부터 돼지냄새가 나며... 깊은 감칠맛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떠올리니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냥... 맛없었다, 는 것만 기억이 난다.
나중에 저녁에 친구랑 카톡하는데 라멘이 맛없었다고 하니 친구가 최애라멘이라며 이치란을 추천했다.
친구에게 내가 먹은 게 이치란이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당황했다. 이치란은 모두에게 맛있지 않습니다...
정말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먹은 라멘들이 훨씬 맛있었다.

앗치치혼포에서 타코야끼를 사서 돈키호테 맞은편 벤치에 앉아 먹었다.
금방 만든 걸 바로 가져왔는데도 형태가 망가져버렸다.ㅠㅠ 저 파는 차가웠다.
그리고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은 타코야끼가 훨씬 맛있었다... 속이 너무 덜 익은 반죽 같은 식감이다.
일본에선 음식에 많이 실망했다. 음식때문에 다시 가기 싫어지는 나라다. 그것만 빼면 다 좋았는데.
한국에선 일식을 좋아했는데, 난 사실 일본 흉내를 낸 한식(ㅋㅋ)을 좋아한 건가 보다.

도톤보리는 실물보다 사진이 더 멋지게 나왔다.

신사이바시 상점가에 들어왔다. 강 앞에 바로 있다.

디즈니스토어에서 발견한 인형. 너는 정체가 뭐니...?
데려오고 싶었는데. 캐리어에 안 들어간다며 데려오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 2천엔대였는데...
저 망충함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정면은 더 못생겼다.

글리코상은 어딨는지 몰라 다리가 엄청나게 아픈데 어떻게 찾아가지, 싶었는데.
신사이바시 상점가 입구에서 바로 보였다. 뒤돌면 있었던 것이다.
사진에선 작아보이지만 도톤보리의 실물은 어딜 보아도 큼직큼직했다.

퓨어구미?젤리를 사서 돌아가는 길. 이 젤리도 너무 셔서 맛없었다.
일본음식 실망 3연타...(계란샌드위치,이치란라멘,젤리) 눈물이 난다.ㅋㅋ
길을 건너 주황색간판의 다이고쿠드럭에서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숙소가 나온다.
저녁에 밥 먹고 저 드럭스토어에서 쇼핑을 했다. 숙소 근처에서 사길 잘한 것 같다.

내 방은 405호. 히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복도 끝방이다.

혼자 자는데 침대가 두 개라니!
오른쪽 침대를 썼다. 수건은 야무지게 다 썼지만.
옷걸이 옆에 욕실문이 있다. 조금 높은 곳에 욕실이 있다.
하룻밤에 7천엔이었는데 숙소에서 현금으로 결제를 했고, 방도 아늑하고 좋았고, 한국인 직원도 있고, 전체 금연실이고.
난바에 간다면 다시 묵고 싶은 숙소다.
다만 잘 때 밖의 도로에서 소음이 들린다. 숙소의 큰 단점이 방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걸린 층 안내도.
8층에서 묵으면 뷰가 좀 좋을까? 내 방에선 옆 건물 계단이 보였다.

전등이 하얀 불이어서 아쉬웠다. 노란 빛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리가 아파서 목욕을 하고, 쉬다가 저녁을 사러 나갔다.
욕조가 굉장히 깊어서 170이상의 큰 키인 내가 다리를 쭉 뻗을 수 있고, 몸이 물에 다 담겼다.
이틀 전 나온 비투비 신곡을 들으며(요즘 덕질중이다) 다리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었다. (욕조가 굉장한 만족감을 주었다.)
숙소 옆에 편의점 패밀리마트가 있어서 거길 애용했다. 도시락 종류는 별로 없지만... 밥을 먹기 위해.

도시락마저도 날 실망시켰다. 하...일본음식...
먹을만했지만 치즈가 들은 것처럼 느끼했다. 내가 치즈를 좋아하는데도. 여기에 치즈는 안 들어갔는데도.
참 희한하다.

후식.
쟈지규뉴푸링.
우유푸딩이다.

녹은 우유 아이스크림 맛이다. 맛있다. 녹은 우유 아이스크림 맛이니까.
이걸 먹고 일본의 우유 푸딩 맛을 알게 되어서 다시는 사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안 사먹었다.
나메라카 푸딩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사먹어볼걸ㅠ
유제품으로 인한 설사 탓에 겁먹은 것도 있는 듯 하다.

이것은 하겐다즈 겨울한정판? 인가... 암튼 비싼 간식이다.
인절미가루가 뿌려진 것.

냉동되었었는데 어떻게 떡이 이렇게 흐물흐물 잘 늘어날까? 신기했다.
사실 밥 먹고 푸딩 먹고, 나가서 드럭스토어 쇼핑을 끝낸 뒤 두번째 목욕을 하면서 욕조에 몸 담근 채 먹었다.
이건 비쌌지만 산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본격 간식은 맛있는 일본이다.

욕조가 깊은 게 보이나요...? 사진으로 찍으면 실물과는 항상 다른 느낌이 난다. 실물의 멋짐이 형편없어진다.


사실 오른쪽 무릎 부상이 있는 채로 떠나서 걱정한 일본여행이었는데, 역시나 이 날 밤 무릎이 찢어져나가듯이 아팠다. 걸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유니버셜 스튜디오 가는데... 그러다가 드럭스토어에서 사온 진통제(이브A 60정)를 고민 끝에 먹었다.
생리통 용도로 사온 거였는데... 무릎 통증에도 괜찮을까? 하면서.
먹자마자 걷기도 힘들었던 다리가 안 아파졌다... 이것은 기적의 약이다! 란 생각을 번뜩 하고서, 다음 날 가서 두 통을 더 사왔다.
총 4통을 샀지만 후회는 없다. 꼭 효능을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라면서... 1회 2정 투약으로 내 일본여행은 보다 더 나아졌다. ㅎㅎ

13.

 

 

 

 

“해리 쩐쟁님!”

 

 

널고 있는 티셔츠 뒤로, 아이의 명랑한 목소리가 났다. 티셔츠로는 빛이 투명하게 비쳤다. 그 티셔츠 옆으로 해리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환하게 웃었다. 동료교사인 레이첼의 아들 찰스였다. 찰스는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잘도 뛰었다. 어이쿠! 급한 마음에 아이가 해리의 앞에서 넘어질 뻔했다. 아이를 안아 올리며, 해리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네 살이었던 찰스는 어느새 다섯 살이 되었다. 작년 여름에 엄마 따라 놀러오라 말했던 작은 아이가 이젠 체육교실에 다녔다. 해리는 조금 더 가늘어지고, 조금 더 길어진 아이의 팔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봄이었다.

 

 

“이거요, 쩐쟁님 주려구….”

“이거? 어, 이거 선생님 흉터랑 꼭 닮았네.”

 

 

그러고 보니 고사리 같은 손 안에 번개모양의 작은 나뭇가지가 들려있었다. 집 정원에서 주웠다며, 선물이라고 내미는 것에 해리는 웃음이 났다. 이거 주려고 그렇게 빨리 뛰어왔어? 넘어지잖아, 찰스. 해리가 품에서 찰스를 내려놓으며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찰스는 씩씩하고 용감해서 괜찮아요! 아이의 명랑한 목소리에 해리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씩씩하고 용감한 건 해리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다. 넌 그리핀도르에 들어가겠는걸, 찰스. 영문 모를 소리에 찰스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해리는 그저 싱긋 웃으며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렸다. 이 마을엔 릴리 이후 마법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찰스가 만약 마법사라면 재밌을 것이다. 호그와트에 들어가서 해리 포터라는 이름을 듣게 되고, 번개모양 흉터에 대해서도 알게 된 뒤, 그 위대한 마법사들의 영웅이 제게 ─머글들의 운동인─ 농구를 가르쳐줬다는 걸 알면. (게다가 해리는 뛰어난 퀴디치 수색꾼이었는데 말이다.)

 

 

“해리, 찰스! 여기 있었네.”

“아, 레이첼. 이거 봐요, 찰스가 제게 선물을 줬어요.”

“하하, 어제 저걸 발견하고는 방방 뛰면서 해리 선생님 줄 거라고, 줄 거라고─ 난리도 아니었다니까요, 해리.”

 

 

레이첼이 다가오자 찰스가 쪼르르 달려가 엄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뭇까지, 해리 쩐쟁님한테 줘떠! 그래, 잘했어. 선생님이 마음에 드신대? 레이첼의 눈빛이 다정하게 찰스를 돌아보았다. 해리의 눈빛도 꼭 레이첼처럼 다정하고 따듯했다. 해리는 그들을 볼 때마다 저 역시 저런 가정을 꾸리고 싶어졌다. 자신은 부모의 애정을 맘껏 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그랬을까, 해리는 화목한 가정에 유독 눈이 갔다. 1년 가까이 어린이들이 다니는 체육교실에서 일했기 때문에, 사실 해리는 매일같이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리는 가끔씩 그들을 보면서, 제 아들이나 딸에게 퀴디치와 농구를 가르쳐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세베루스는 애를 못 낳지만, 뭐. 어떤가. 상상이면 없는 자식도, 손자까지도 생겼다. 저와 스네이프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는 어떤 생김새일까, 누구 성격을 더 닮았을까 생각하는 것은 즐거웠다. 저를 꼭 닮아서는 스네이프처럼 똑똑하고 차분한 아이를 상상하다가, 스네이프를 닮은 얼굴로 활발하고 퀴디치도 잘하는 아이를 상상하면 그저 즐거웠다. 마법의 힘으로 남자도 임신이 가능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수업시간에 그런 약이나 주문을 배운 기억은 없었다. 아, 할 수 있었어도 세베루스는 노산이니까 힘들겠다, 생각하면 아쉬움이 좀 덜어지기도 했다. 사실 해리는 정말 임신이 가능만 하면 제가 대신 할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어쨌든 언제나 상상으로만 그쳤다.

 

 

“해리? 무슨 생각해요?”

“아… 저도 자식 낳고 싶단 생각이요. 레이첼이랑 찰스를 보니까.”

 

 

해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레이첼은 해리의 대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이 아직 계획이 없다고 그래요?”

 

 

그녀는 해리의 ‘부인’이 남자인 줄은 몰랐다.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 따지자면 ‘결혼’부터 하기 전이었다. 스네이프는 본인도 모르는 새 해리의 직장에서 해리와 결혼한 사이로 되어 있었지만, 딱히 해리는 그걸 정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글쎄요, 아직 안 물어봐서요. 근데 어차피 낳지는 못해요.”

“네?! …아, 혹시…?”

“아! 아뇨, 아뇨. 불임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요. 그냥, 제 부인이 남자라서 그래요.”

“아하…. 그렇구나, 그거 정말 다행……. 남자였어요?!”

“어… 그냥 결혼했다고만 했었죠.”

“어머! 그랬구나…. 내가 멋대로 여자라고 단정 지었네, 미안해요! 그래서 부인 안 보여준 거였어요? 그동안….”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요, 제 부인의…… 성격이 좀.”

 

 

하하…하하핫…. 해리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레이첼은 자신이 편견을 갖고, 반려를 여자라고 단정 지은 것에 대해 계속 사과했다. 해리는 정말로 괜찮았지만, 레이첼이 그렇게 말해주어서 내심 고마웠다. 처음으로 남들 앞에 스네이프와 자신의 관계를 내보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해리 본인이었다. 사실은 스네이프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는 저녁 내내 기분이 오묘했다. 해리가 저를 집요하게 보는 시선은 이미 익숙했다. 하지만 오늘 저녁의 것은 느낌이 약간 달랐다. 해리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기도 하고, 평소랑 같은 것 같기도 하고, 할 말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해리가 말을 해도 중요한 말은 쏙 빼놓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만 좀 쳐다보지.”

 

 

결국 스네이프가 입 밖으로 말을 내었다. 해리는 아, 하더니 눈을 옆으로 굴리고 헛기침을 했다. 왜 저래? 이번에야말로 스네이프는 확신했다. 평소 같으면 그만 보라는 제 말에 능구렁이같이 굴었을 해리였다. 뭔가가 있군. 턱을 괴고 해리를 보면서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아직 5월 2일은 일주일 남았는데.”

 

 

해리는 다시 한 번 스네이프의 시선을 피했다. 스네이프는 레질리먼시를 써서 머릿속을 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곧 그만두었다. 연인 사이에 그런 마법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신뢰라는 낯간지러운 단어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해리의 교수였고 가르치는 입장이었을 때나 할 법한 주문이었다. 달라진 관계인 해리에게 멋대로 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해리가 자신에게 끝내 감출 비밀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건 놀라울 정도의 신뢰였지만, 스네이프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바야흐로 1999년 5월 2일이 코앞인 날이었다. 작년 여름, 해리의 생일을 기점으로 겨울까지는 마음 편히 지냈지만, 요즈음 해리는 다시 미래 자신이 살던 세계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서 전전긍긍이었다. 스네이프와 해리 단 둘만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다. 돌아가서 지니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걱정하는 게 90%이상 같았지만, 스네이프는 모른 척 해주었다. 자신 역시 해리의 주변 인물들 앞에 해리의 연인으로서 서는 게 부끄럽고 민망해서 해리를 생각해줄 틈이 없었다. 해리의 주변 인물들, 이라 하면 멀게 느껴지지만 실상 그들은 위즐리 가족이나 자신의 옛 제자들, 옛 동료교수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갑자기 살아 돌아와 마법세계 영웅인 해리 포터의 연인이라니…… 리타 스키터가 쓴 삼류 기사도 이보다는 설득력이 있겠다, 싶었다.

 

 

스네이프는 끙, 앓는 소릴 내며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해리가 눈치를 보며 다시 스네이프 쪽을 흘낏거렸다.

 

 

“…있잖아요, 세, 세베루스.”

“…드디어 말할 용기가 생긴 건가? 실로 그리핀도르 출신다운 용감함이로군, 포터?”

“슬리데린다운 엄청난 빈정거림이셨어요, 세베루스. 아, 그게…… 어, 그러니까.”

“대체 뭔 소릴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지?”

“그러니까, 마법으로 남자도 임신 가능해요?”

“……계속 그렇게 뜸을 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포터.”

 

 

순식간에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들고서 눈을 번뜩였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뽑아드는 동작은 오싹할 만큼 민첩했다. 비록 오랜 시간 데스이터 생활을 그만뒀지만, 그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다. 해리는 그 기백에 놀라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물론,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더 물러날 곳은 없었다. 해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일단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지그시 노려보다, 지팡이를 휙 하고 거뒀다.

 

 

“갑자기 임신이라니, 황당하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그게, 우음, 전 세베루스와 평생 살 거고, 우리 사이에 아이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싶어서…….”

“……누구 맘대로. 내가 언제 평생 살아준댔지?”

“네? 저랑 헤어질 생각도 없으시면서 무슨 소리세요.”

 

 

이런 해리의 발언에는, 스네이프도 더 삐죽거리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해리는 정말로 부끄러울 정도로 스네이프의 내면을 정면으로 찔러 들어왔다. 해리의 태도에는 아무런 망설임조차 없었다. 의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에 해리는 의심 없이 확신했다. 그 직선의 시선이 스네이프로 하여금, 거짓 투정도 부릴 수 없게 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그런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내심,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자신의 성격상, 해리가 말 안 해도 제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그 말은 프러포즈인가?”

 

 

하지만 해리를 당황시키고 싶기는 했다. 해리는 아무 생각이 없어보였다가, 방금 제 말을 프러포즈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함께 평생 살고, 아이도 낳고 싶다, 라….”

“그…그게 그렇게…되나……요.”

“그게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포터.”

 

 

스네이프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해리를 비웃었다. 그리고는 스네이프가 포크를 들어 구운 야채를 뒤적였다. 해리의 속내도 알고, 놀리기도 했으니 한껏 마음이 편해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리는 귀까지 붉어져서 식탁 위의 음식들만 뚫을 듯이 보고 있었다.

 

 

“남자와 남자 사이에선 아이가 생기지 않지. 아무리 마법을 부려도. 자궁을 만든다고 해도 어쨌든 그건 여자의 신체기관이니까, 남자가 임신한다곤 볼 수 없어.”

“아, 역시 그런가요….”

 

 

해리는 이제 다소 시무룩해보였다. 여태 한 섹스가 얼만데 당연히 임신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도 남지 않았을까. 역시 해리 포터는 멍청했다, 사람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하지만 일하는 곳에서 아이들과 항상 함께 하는 해리이니,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다른 집 자식들도 그렇게 예뻐해 주는데, 포터가 제 자식은 얼마나 예뻐할까. 스네이프의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봐도, 해리는 좋은 아빠가 돼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스네이프 자신에 그 그림을 대입해보면, 좋은 아빠가 돼줄 자신이 없어졌다. 보고 자랐던 제 아버지였던 자는 인간쓰레기였고, 저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인생을 산 게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릴리가 결혼한 후로는 한 번도 결혼이나 자식 같은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스네이프로선 처음 해보는 생각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자식은 가지지도 못하는데, 침울해지는 게 우스웠다. 스네이프는 조금 씁쓸해졌다.

 

 

“저, 세베루스.”

“왜, 포터.”

“사실… 저, 직장에선 제가 결혼한 유부남인 줄 알아요.”

“뭐라고?”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동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더라고요. 성별은 모르고요. 그래서 결혼했다고 말했었는데.”

“포터, 그런 걸 네 맘대로…!”

“그건 죄송해요. 하지만 세베루스를 제 부인이라고 칭하는데 기분이 좋아서….”

“하, 참나…! 갈수록 가관이군. 부인? 내가 부인이라고?”

 

 

스네이프의 이마에서 혈관이 툭 불거질 것 같이 도드라졌다. 해리는 아까부터 스네이프의 심기를 거슬리는 게 잘하는 행동인가 싶긴 했지만, 1년 후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오해를 받았던 것도, 스네이프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모두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었다.

 

 

“그냥, 전 세베루스와 제가 결혼한 사이로 오해받는 게 기뻤어요. 그 분은 성별을 모르고 세베루스를 여자인 줄 알았을 뿐이고요. 어…그리고 오늘 세베루스가 남자라고 말했더니, 그랬던 거냐고 몰랐다고 사과하셨어요.”

“…….”

“아까 제가 한 말 프러포즈 아니냐고 하셨는데… 저한테 너무 당연한 미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의식을 못했어요. 제 미래에 이제 세베루스가 있는 게 당연해서…요.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려니까 쑥스럽고, 무엇도 준비 못해서 죄송하기도 하고…. 아이 못 낳으면 어때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저, 세베루스랑 결혼하고 싶어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 아니, 그 말을 했었어야 했던 것 같아요….”

 

 

해리는 말을 끝내고 한참, 스네이프를 쳐다보지 못하고 그릇만 내려다보았다. 스네이프 역시 해리처럼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이 없었다. 정말 뜬금없는 프러포즈고, 형편없는 프러포즈였다. 실망하셨을까, 황당하신 걸까? 두려우면서도 해리는 스네이프가 이 프러포즈를 거절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스네이프의 사랑에 대한 신뢰는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해리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어깨 아래까지 길어진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가렸다. 해리는 오른손을 뻗어서 스네이프의 까만 머리카락을 한 쪽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꾹 다물린 입술과 눈물이 맺혀있는 스네이프의 눈가가 벌겠다. 이런 형편없는 고백이었는데도, 해리는 제 마음을 알아주는 스네이프가 고마웠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자존감이 낮았고, 제 사랑을 온전히 받는 것에 겁냈었는지도 이제는 알았다. 작년 여름, 자신의 생일 다음날, 모든 게 박살날 것만 같았지만 오히려 사랑은 견고해졌다. 둘은 서로를 똑바로 마주했고, 서로를 알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꺼낸 자신의 말에 눈물이 고이는 스네이프의 속마음이 어떨지도 알 수 있었다.

 

 

“…포터.”

“네, 세베루스.”

“…나 역시, 생각도 못했지만, 너와 같은 말을 했어야 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요?”

“…그래.”

 

 

결국엔 스네이프의 눈에서 고여 있던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해리는 그의 얼굴을 감싼 손의 엄지로 눈물을 훔쳐 주었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따듯한 열기가 퍼졌다.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도 여전히 기뻤다.

 

 

“결혼, 이라고 하니까 거창하지만… 사실 지금 사는 거랑 똑같을 거예요. 그래서 둘 다 생각도 못하고 있던 건가 봐요. 당연해서.”

 

 

‘당연하다.’ 그 말이 스네이프는 참 뜨겁게 느껴졌다.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네이프는 제게 다가와 내려다보는 해리를 마주 올려보았다. 자연스럽게, 해리의 품에 몸이 맡겨졌다. 스네이프는 자신을 끌어안아주는 해리의 양팔에 얼굴을 묻었다. 해리의 온도는 늘 같았고, 항상 안온했다.

 

 

 

 

“새삼스러운데, 머리가 많이 길었네요.”

“그렇지. 한 번도 자르지 않았으니까.”

 

 

침대에 나란히 누워, 시트 위로 흐트러진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해리가 말했다.

 

 

“5월 2일이 되기 전에 자르는 게 나을까…. 세베루스가 너무 예뻐져서 다들 몰라보면 어떡하죠.”

“눈에 콩깍지가 몇 겹으로 꼈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나도 별로 반갑지 않은 말이고, 포터.”

“예쁜데 어떡해요. 참나, 저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고요. 더 과거로 돌아가서 학생이었던 저랑 교수님이었던 세베루스한테 미래에 우린 한 침대에 알몸으로 누울 거야, 이러면 아바다케다브라 맞는다고요.”

“미친놈으로 보고 널 성 뭉고 병원에 입원시키겠지.”

“하하. 우리 진짜 남들 보기에 미쳐 보이겠어요. 진짜 좀 두렵다….”

 

 

1년 후가 되는 1999년 5월 2일이 되기까지 정확히는 5일밖에 남지 않았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둘은 함께 살았고, 서로를 알았고, 사랑을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 편엔 두려움이 생겼다. 특히나 지니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해리는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지니에게는 1년이 아니라 단 하루 만에 해리의 감정이 식어 이별을 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니와 그런 식으로 헤어지면, 위즐리 가족들과도 관계가 나빠질지 몰랐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각오해야할 이유는 충분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와 죽을 때까지 함께 살고 싶었다. 그거면 되었다.

 

 

“아이 있잖아요.”

“뭐야, 아직도 그 얘기 안 끝났나?”

“칫, 저 정말로 아이 키우고 싶다고요. 임신 안 될 거 뻔히 알면서도 꺼낸 말인데. 그래서, 입양은 어때요? 진짜 우리 사이에서 나온 아이는 아니지만. 세베루스 생각을 듣고 싶어서.”

“입양? 글쎄…. 솔직히 말해 난 좋은 부모가 돼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스네이프는 숨기지 않고 속에 있던 생각을 말했다. 해리가 옆에서 뚫어져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 녹색 눈은 불보다도 더 뜨거운 열기를 뿜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돌렸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세베루스는 솔직히 말해 좋은 연인도 아니거든요.”

“너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아뇨. 하지만 그래도 전 세베루스가 좋아죽겠어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사무치게, 미치도록, 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부모도 될 수 있어요. 세베루스는.”

“무슨 그런 이상한 논리가 다 있나….”

“완벽한 아빠나 완벽한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고요. 물론 제 엄마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그래. 릴리는 그랬겠지.”

 

 

해리가 눈을 감았다. 나지막한 목소리의 중얼거림이 스네이프의 귀로 들어왔다.

 

 

“그냥… 전 알겠는데… 세베루스는 절대 나쁜 부모는 아닐 거라고….”

 

 

스네이프가 눈을 감은 해리의 얼굴을 조용하게 바라보았다. 해리가 입 꼬리를 올려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는 스네이프도 웃음이 조금 터졌다.

 

 

“어렸을 때, 말포이한테 하던 거 보면 애도 잘 다루던걸요. 말포이가 스네이프 교수님을 얼마나 따랐는데.”

 

 

해리가 다시 눈을 떠서 스네이프를 돌아보았다. 웃음기가 어린 흰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워보였다. 해리는 얼른 한 팔을 어깨에 둘러 그를 당겨 안았다. 스네이프의 몸에선 이제 마른 책의 냄새만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선 해리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같은 샤워용품을 쓰고, 한 침대를 써야만 비슷해지는 그런 냄새였다. 작년 여름에 스네이프는 자신이 결국 떠나갈 거라고 생각했다는데, 그로부터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될 때까지 해리의 이 마음은 전혀 식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사랑하게 된 게 아닐까,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해리에게 처음으로 생긴 진정한 가족이었던 시리우스, 그에게 느꼈던 애정과 비슷한 감정을 스네이프에게 느낄 때가 있었다. 이제 해리에게 스네이프는 ‘가족’이었던 것이다.

 

 

스네이프가 저에게 감사를 느낀다는 것을 해리는 알았다. 이런 겪어본 적 없는 애정을 이제는 고마워하고 있다고, 스네이프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해리는 그에게 생명을 주었고, 평안을 주었고, 사랑을 주었다. 어쩌면 해리는 스네이프에게 구원을 준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해리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구원은 서로에게 모두 영향을 미쳤다.

 

 

“지금, 과거의 저는 다가오는 교수님의 추도식에 마음이 무거울 거예요.”

“…그렇겠군.”

“말해주고 싶다. 5일 후면 세베루스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행복하다고요….”

 

 

스네이프를 안은 채로 말하던 해리가, 그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스네이프도 해리에게 안겨서 과거의 자신에게 현재의 일을 말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누구 말마따나 아바다케다브라를 맞을 발언이겠군. 정말로 자신이 해리 포터를 사랑하게 될 줄은, 자신과 해리 포터가 제일 믿지 못할 일이었다. 그것이 우습고, 즐거워서 스네이프는 지금 안고 있는 해리의 허리를 좀 더 붙여 안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해리? 일을 그만둔다니.”

“원래 계약도 다 됐고, 이사를 가서요. 레이첼, 이런, 눈물은 흘리지 마세요….”

“오, 찰스가 해리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나도 그렇고요, 물론. 아쉬워서 어떡하지….”

“저, 그래서… 제가 사는 집으로 레이첼의 가족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와주실래요?”

“물론, 물론이죠! 오늘 저녁에 가면 될까요? 세상에, 해리의 집에 초대받다니! 떠나는 건 너무 슬프지만 이건 정말 기쁘네요, 해리.”

 

 

해리는 울면서 웃는 레이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언제라도 다시 놀러올게요, 말하는 해리는 진심이었다. 레이첼, 찰스와 동생인 웨이드의 생일마다 찾아올게요. 마법사들의 이동은 머글보다 빠르니까요.

 

 

해리는 그리고 출근 마지막 날의 근무를 즐겁고, 아쉬운 마음으로 보냈다. 아이들은 해리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한바탕 울음을 쏟았다. 해리도 사랑스런 아이들과의 이별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해리는 이게 진짜 이별이 아닐 거라고, 마지막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어서 오세요, 레이첼, 아담 씨. 찰스, 웨이드도 어서와.”

 

 

해리는 문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레이첼의 가족은 어두컴컴한 스피너즈 엔드의 분위기에도 웃고 있었다. 해리도 그들을 향해 웃었다. 그들의 저녁식사에 처음 초대받은 후, 종종 해리는 함께 그들과 식사를 했었다. 그러나 스네이프도 살고 있는 집으로는, 그들 가족을 해리가 초대할 수가 없어 항상 마음이 쓰였다. 이 집은 스네이프가 태어났을 때부터 살았던 집이었다. 릴리 에반스조차 들이지 못했던, 그의 감추고 싶었던 민낯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집으로 손님을 초대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로 해리는 스네이프가 정말로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해리는 이 초대를 허락해준 스네이프에게도 고마웠고, 기뻤다.

 

 

“이쪽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예요.”

“…반갑소.”

 

 

그렇다고 스네이프가 그들을 열렬히 환영해줄 리는 없었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세베루스 스네이프이니까’ 말이었다. 스네이프는 딱딱한 말투로 인사하고 손을 내밀었다. 레이첼은 무뚝뚝한 스네이프에게 다소 놀란 듯 했지만, 내밀어진 하얀 손에 악수하며 웃었다. 해리 말대로 성격이 좀, 그렇구나? 그녀는 눈짓으로 해리와 대화했다. 해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찰스를 안아들어 식탁으로 갔다. 아빠에게 안긴 웨이드가 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집이 아늑하네요.”

 

 

레이첼이 말했다. 해리는 그 말이 빈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집의 분위기는 1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낡은 소파와 테이블도 새 것으로 바꿨고, 커튼도 밝게 바꿨다. 그러나 제일 달라진 것은, 비어있던 집을 채운 사람의 온기였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충분히 이럴 수 있었던 집이 그 오랜 시간 방치되었었던 게 안타까웠다. 또, 이제 해리가 스네이프와 함께 이 곳을 떠나 제 집으로 돌아가면 집이 빌 테지만, 그 때는 전만큼 쓸쓸하고 어둡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첼의 가족들과 해리와 스네이프는 부엌으로 들어섰다. 미리 마법으로 길쭉하게 만들어놓은 식탁엔 하얀 식탁보와 촛대가 놓여있었다. 긴 식탁에, 해리와 스네이프가 준비한 음식들을 놓고, 레이첼이 사온 와인과 빵, 치즈를 놓았다. 레이첼부부가 아이들을 의자에 앉히는 사이, 해리가 스네이프의 귀 뒤로 다가가 속삭였다.

 

 

“괜찮아요?”

“뭐, 그래. 저 여자는 몰리 위즐리와 비슷한 인상이군.”

“아, 저도 그 생각 했는데. 정말 좋으신 분들이에요.”

“…그렇게 보인다. 식사 하지.”

 

 

먼저 레이첼 가족들이 자리에 다 앉았을 때, 부부의 앞에 해리와 스네이프가 앉았다. 레이첼은 아까부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의 반려라기에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했는데, 스네이프가 전혀 예상 외의 인물이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럴 만도 하죠, 저 조차도 예상 못했는데. 해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레이첼이 사온 빵을 집어 들었다.

 

 

“스네이프 씨? 라고 부르면 될까요…. 둘은 어떻게 만난 사이예요?”

“아…… 학교에서 만났소.”

 

 

스네이프는 갑작스레 자신이 대화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옆에서 해리가 웃으며 제가 학생이고, 세베루스가 교수님이었어요, 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해리는 식탁 밑으로 스네이프의 손을 잡아주었다. 스네이프는 손의 감촉에 힐끗, 해리를 돌아보았다. 아까보다 좀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교수셨구나! 어쩐지, 집에 책도 많고… 해리가 그 책들을 다 읽을 것 같진 않았거든요.”

 

 

레이첼이 윙크를 하며 해리를 보았다. 해리는 저도 가끔은 읽어요, 운동에 관련된 것은.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걸 가르쳤나요?”

“아, 그건…. 약물을 만드는….”

“네? 약물?”

“아, 그게! 화…화학 교수님이셨어요. 그래서 약물 실험을….”

“…그렇소. 난 화학을 가르쳤지.”

 

 

스네이프는 화학이 뭔지 몰랐지만, 뻔뻔하게 대답했다. 레이첼과 아담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저보다도 너스레를 잘 떠는 스네이프에게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잘 참아냈다. 스네이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여유롭게 와인 병을 집어 들어 코르크를 땄다.

 

 

 

 

 

식탁 위의 촛불에 불이 은은하게 타올랐다. 레이첼부부와 함께 해리와 스네이프가 잔을 들었다. 새삼스럽게도 해리는 이제야 정말 이별이 실감이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웨이드의 얼굴과, 앞에 놓인 구운 감자를 오물거리는 찰스, 맛있다고 연신 말해주는 레이첼과 아담 씨를 바라보면서, 해리는 1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이구나, 그렇지만 이게 정말로 마지막은 아니었다. 해리는 이 저녁식사를 오래도록 추억할 것을 알았다.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이 스피너즈 엔드에서의 기억이 그랬듯이.

 

 

 

 

 

 

 

 

스네이프 교수님 생일에 맞춰 올리느라고 급하게 썼다..ㅠㅠ;;

너무 축하해요 교수님! 오래오래 해리랑 행복하세요ㅠㅠㅠㅠㅠ

완결이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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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스네이프는 비틀거리다 벽에 손을 짚었다. 턱 끝이 사정없이 떨려, 이가 딱딱 소리를 냈다. 처음, 이곳에 해리를 데려왔을 때 해리의 모습처럼 지금 자신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복제한 텐트 안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여긴 진짜 자신의 집이었다. 썰렁한 집 안은 인기척 없이 적막했다. 언제 해리가 제 뒤를 쫓아 이 집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갑자기 사라진 자신 때문에 해리가 경황이 없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그 짧은 순간을 노려야했다.


“아씨오, 투명망토!”


스네이프는 눈을 꽉 감고, 쥐어짜듯 소리쳤다. 2층의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벽장이 홱 젖혀지더니 투명망토가 빠르게 날아왔다. 스네이프는 투명망토를 낚아채서 바로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몇 백 미터를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숨이 가빴다. 지금 해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일 이후로 어떻게 되는 걸까.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과 후회가 난무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이 모든 생각으로부터 유리되고 싶었다. 스네이프는 눈을 감은 채, 복잡한 머릿속을 더듬어 한 장소를 떠올렸다.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푸르른 언덕의 위였다. 스네이프가 주변을 황급히 두리번거렸다. 언덕으로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투명망토의 밑자락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스네이프의 어지러운 머릿속과는 몹시도 다른 곳이었다. 이곳은 너무도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스네이프의 시야에 몇 번이고 무너졌다 아무렇게나 다시 쌓아놓은 것 같은 모양의 집 한 채가 들어왔다. 자신이 살던 네모반듯한 집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의 집.


1년 전 생일은 버로우에서 보냈다고 해리가 말했다. 생일 다음날인 오늘은 토요일이었고, 주말이 꼈으니 해리가 이 집에서 자고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피해서, 또 다른 해리를 보러온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곳의 해리는 자신이 아닌 지니와 사귀고 있었다. 그런 해리를 보러오고 싶었다니, 스네이프는 스스로를 자조했다. 살에 난 생채기를 일부러 건드려보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이곳,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시간 속의 해리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지금 해리의 모습과, 지니를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이 다를지 스네이프는 궁금했다.


비교하고 싶었다니, 정말 우스운 동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해리의 모습에서, 그녀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것인지. 그 반대로 완전히 상처받을 수도 있었다. 사실 이 후자 쪽이 더 현실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리를 피해서 왔으면서도, 스네이프의 안에서 해리를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만 커졌다. 이상한 굴레. 스네이프는 해리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 마음은 사실 당연했다.



스네이프는 버로우의 창가 근처로 조용히 다가갔다. 순간, 정원의 땅신령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스네이프가 있는 쪽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땅신령은 도로 흙속으로 돌아갔다. 스네이프는 투명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면, 바로 부엌이 보였다. 몰리가 냄비를 젓고 있었다. 해리가 아직 이 공간에 있을까, 스네이프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때 계단에서 조지 위즐리가 내려왔다.


“일어났니? 조지.”

“네, 엄마─. 하암─ 오늘 아, 아─침─ 은 뭐예요?”

“적당히 하품해라. 아침은 호박수프란다.”


의자를 빼어 앉는 조지의 옆으로, 막 내려온 퍼시와 지니가 자리를 잡았다. 스네이프는 한동안 붉은 머리카락을 매력적으로 찰랑거리는 지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그녀에게서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지니는 밝고 경쾌했고, 아름다웠다. 릴리 역시 그랬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지니를 좋아하다 왜 자신을 좋아하게 됐는지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 그대로, 스네이프 역시 평생 미워할 것 같던 해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논리적이지 못했다.


위즐리 가족이 식사를 시작했지만, 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이 집에 해리가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해졌다. 자신은 과거에 해리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해리가 마법부에서 오러로 일한다는 것밖에는.


“오오, 맛있는 냄새….”


기지개를 켜며 론 위즐리가 느지막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 곁에도 역시 해리가 보이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그만 여길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몰리 아줌마.”


스네이프가 뒤를 돌았을 때, 등 뒤로 익숙하지만, 더 예의바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일같이 듣던 목소리였는데. 스네이프는 그 목소리에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렇게 텐트에 홀로 둔 채 도망쳐놓고, 그 목소리가 반가워서 울컥했다. 스네이프는 다시 뒤를 돌았다. 창 너머로 해리가 보였다. 지금의 해리보다 머리가 좀 더 길어서, 그가 학생이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방금까지 울고 있던 해리가 거짓말같이 눈물을 그치고, 눈앞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닮았지만, 해리 본인이 맞지만, 지금 눈앞의 해리는 스네이프가 모르는 해리였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저 해리는 지금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다.


스네이프는 빨래를 말리러 나온 몰리가 문을 열었을 때, 그 틈을 타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해리는 론과 조지와 함께 카드놀이를 했다. 지니는 해리의 옆에서, 거꾸로 앉아 의자의 등받이에 고개를 얹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스네이프는 그들 근처 소파에 앉았다. 해리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고작 1년 전의 얼굴일 텐데도, 해리는 지금보다 훨씬 앳돼보였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헝클어진 머리를 간간히 쓸어 넘기며 카드를 쥔 채 고심하는 얼굴. 해리는 고작 카드게임 정도에 고민하고, 열 올리는 모습이 어울렸다. 자신 때문에 고민하는 해리는 너무 아파보였다.


지니는 가끔씩 해리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지고 있는 해리를 격려하다가, 론의 실수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해리는 결국 카드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지니의 옆에서 해리는 계속 미소를 생글거렸다. 스네이프는 저 미소가 익숙했다. 해리는 자신을 보면서도 저렇게 다정하게 웃곤 했다. 아주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눈. 그러나 지금 그 녹색 눈이 향하는 곳은, 자신이 아니라 지니 위즐리였다. 스네이프는 지니를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과, 자신을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날 그녀보다 더 사랑해주길 바랐다니, 그것은 너무 우스운 욕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해리는 언제나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해주었을 뿐이었다. 풍선처럼 팍, 터져버리는 얄팍한 재질이 아니라.


가끔씩, 해리가 뭔가를 아는 것처럼 자신이 앉아있는 곳을 똑바로 쳐다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스네이프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걱정이 들진 않았다. 저 해리는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해리 역시도, 자신의 행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해리가 절 얼마나 걱정할지. 스네이프도 퇴근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해리를 기다린 적이 있어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았다. 그 때는 해리를 사랑하기도 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 해리와 첫 키스를 했었다.


해리와 처음으로 나눈 것들.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많았다. 그게 얼마나 값진 가치인지 자신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저는 그걸 한참 몰랐다. 그랬다면, 오늘 아침같이 해리를 울릴 일도, 자신이 도망쳐 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왜 당연한 것처럼 미래의 이별을 받아들였을까. 해리와 헤어지기 싫었다. 한 번 자각하니 그것이야말로 아주 단단하고도 당연한 욕심이었다. 답은 단순했다. 사랑은 원래 그랬다.


지니의 손을 잡고 해리가 밖으로 나갔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들뜬 눈과 다정한 태도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놀랍도록 질투가 들지 않았다. 지금 그녀를 사랑하고, 그 후 저를 사랑할 해리 포터를 스네이프는 알았다. 몸을 일으킨 스네이프는 아까부터 눈길을 끌던 트리의 앞으로 다가갔다. 모든 물건들이 난잡하게 굴러다니는 버로우다웠다. 크리스마스는 벌써 반년 전의 일인데도, 트리는 덩그러니 구석에 세워져있었다. 하, 스네이프가 낮게 읊조렸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론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조지는 유령이라도 봤냐며 낄낄거렸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암사슴 모형이 트리에 걸려있었다.



해리는 한동안 충격에 얼어붙어 있었다. 사고는 멈췄는데, 하반신과 손의 떨림은 좀체 멈춰지질 않았다. 방금 있었던 일은, 스네이프를 재회한 뒤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내가 떠날 거라고 믿었다면서, 본인이 그렇게 훌쩍 사라져버렸다. 해리는 지난 1년간, 스네이프의 사라진 시신을 찾으며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실제의 그가 눈앞에서 또다시 사라졌다. 해리는 눈앞이 온통 캄캄해졌다. 왜? 어째서? 물음표가 계속 해리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지금 상황이, 누구 한 사람이 사라지지 않고는 해결될 수없는 상황이었던 걸까? 스네이프가 사라질 만한 곳을 해리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과거의 자신도 금방 스네이프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항상 스피너즈 엔드의, 자신의 집에 있었다.


해리는 지팡이를 찾아 들고, 스네이프와 자신이 사는 집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적막한 집안에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직접 둘러보지 않았어도 직감적으로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며 해리가 울분을 토했다.


“젠장, 젠장, 제기랄……!!”


어디에? 어디로 가야 세베루스가 있지? 그의 머릿속을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해리는 눈물이 났다. 그를 모르는, 그를 몰랐던 자신이 한심했다.


우선, 다시 스네이프가 돌아올 가능성을 생각했다. 해리는 숲의 텐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온 텐트 역시, 적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적막은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커다란 바위처럼 아팠다. 해리는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와 뒹굴었던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렴풋이 마른 책의 냄새가 났다. 스네이프의 냄새였다. 해리는 이불을 꽉 끌어안았다. 그가 제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이렇게 꽉 붙들고 있었어야 했다. 후회는 언제나 가장 늦은 순간에 했다.


해리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텐트 주변을 정리했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있었지만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해리는 벌게져 따끔거리는 눈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스네이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찾아나서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가 돌아오기를 믿고 기다려야 맞을까. 해리는 예전부터 이런 유형의 선택지에 약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해리는 일단 이렇게 텐트 주변을 서성이며 물건을 정리하는 척, 시간을 끌어볼 뿐이었다. 울어서 뜨거운 얼굴 때문에 못 앞에 꿇어앉아서 세수를 했다. 못의 물 온도는 정신이 확 들만큼 차가웠다.


예전엔 이 못 속에서 고드릭의 칼을 보았다. 그 때처럼 어두운 밑바닥을 내려다보지만, 지금은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스네이프, 제발. 닿지 않는 대상자에게 해리는 간절한 목소리를 흘렸다. 이 못 속에 죽은 듯이 빠져있으면 스네이프가 나타나서 구해주지 않을까. 해리는 충동적으로 차가운 물에 머리를 반쯤 들이밀었다. 어지러운 해리의 머릿속으로 기이한 노랫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정신이 나갈 징조일까, 하지만 해리는 이 노래가 어딘가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제도 이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 스네이프와 끓인 찻물을 나눠 마시며, 이 연못을 바라볼 때 노랫소리 같은 새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 아니었던 걸까? 못 위로 비친 해리의 얼굴 그림자 위로, 큰 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해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퍽스!”


해리는 놀라 눈만 끔벅거렸다. 원체 어지러웠던 머리가 더 멍했다. 퍽스가 하늘을 빙빙 돌다가 해리의 팔에 내려앉았다.


“여기서…살고 있었니?”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밀어진 해리의 손가락을 퍽스가 애교 있게 깨물었다. 젖은 해리의 짧은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추도식에서 만난 후, 퍽스와는 두 번째 재회였다. 하지만 시기상으로 따지면 첫 재회는 미래에 있을 일이었다. 해리는 과거로 돌아와 있기 때문이었다.


“어…혹시, 갑작스럽지만… 퍽스, 너 스네이프 교수님을 찾을 수 있겠니…?”


이 순간에 이렇게 불사조 퍽스가 나타난 건 운명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리는 생각했다. 스네이프를 살릴 수 있었던 것도 퍽스가 눈물을 흘려주어서였다. 그러나 퍽스는 가만히 해리의 눈을 응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간절함만큼은 절실했기에, 해리는 씁쓸해졌다. 하지만 따스한 생명체가 곁에 있다는 것은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교수님이 사라졌어. 세베루스가……. 내가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어야 했어. 잘못은 나한테도 있었는데. 그래, 서로 참고 숨겨둔 것들이 터진 거지. 나는 세베루스를 사랑한다면서 그에 대해 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퍽스의 눈이 해리의 그늘진 얼굴을 향했다.


“나는 바보야.”


퍽스가 대답이라도 하듯,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좀처럼 웃지 못했던 해리도 슬며시 웃었다.


“세베루스도 바보고.”


해리가 퍽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얌전히 쓰다듬을 받을 줄 알았던 퍽스는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펼쳤다. 다시 가려고? 해리는 위로가 되는 존재였던 퍽스가 금방 떠나려고 하자,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퍽스는 해리를 두고 미련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해리는 쓸쓸하게 서서, 사라지는 불사조의 꽁지에 대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운이 빠지자, 졸음이 몰려왔다. 이것이 일종의 도피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못 옆의 잔디에 몸을 천천히 뉘었다.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세베루스가 보고 싶어.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어……. 욕심은 그득그득 차올랐지만 정작 그가 없었다. 해리는 까무룩, 잠에 빠져 들었다.


꿈에서, 또 퍽스가 나왔다. 퍽스, 넌 참 따듯하구나. 불사조라서 그런가. 해리는 중얼거리면서 퍽스를 쓰다듬었다. 퍽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상하고 기묘하지만 불사조의 노랫소리는 듣기 좋았다. 해리는 점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도 점점 맑아졌다. 불현듯 해리는 눈을 번쩍 떴다. 해리의 눈앞에서 퍽스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거, 아직도 꿈속인가? 해리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 해리의 눈이 점점 더 크게 떠졌다.


암사슴 패트로누스였다.


“세베루스?! 돌아왔어요?!”


현실인지, 꿈인지. 태양 아래의 패트로누스는 밤보다 더 투명했다. 암사슴뿐만 아니라 그 옆엔 해리의 수사슴 패트로누스도 함께였다. 해리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네이프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해리는 약간의 실망과 동시에 여전한 놀라움을 느끼며 패트로누스를 바라보았다. 암사슴은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퍽스는 암사슴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노래를 불렀다.


“퍽스, 설마… 네가 데려온 거야?”


퍽스는 대답인 듯이 해리의 머리 위에 앉아, 해리의 이마를 부리로 쪼았다. 해리는 이게 정말 놀랍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 숲속으로 사라진 패트로누스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목적이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목적이 생겨 그걸 이루기 전까진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해리는 허리를 굽혀 암사슴과 눈을 마주쳤다. 암사슴의 투명한 눈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스네이프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맞아….”


‘패트로누스에게는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까.’ 바로 어제 스네이프가 제게 말해주었던 것이었다.


“내게 세베루스를 찾아줄 수 있겠니……?”


암사슴의 눈이 해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해리는 실제의 시간보다 더 길게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그 겨울,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암사슴이 저를 완벽한 장소로 인도해줄 거란 희망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곧이어 암사슴이 옆으로 몸을 틀었다. 퍽스가 해리의 앞으로 내려앉았다. 해리는 퍽스에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등 위로 올라타 목을 끌어안았다. 비밀의 방을 탈출했을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암수 한 쌍의 사슴 패트로누스들이 겅중겅중 하늘로 뛰어올랐다. ‘세베루스를 찾아낼 수 있다.’ 해리의 가슴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여름의 하늘은 태양에 부쩍 가까웠다. 게다가 불사조의 더운 몸을 끌어안고 있으니, 저절로 땀이 흘렀다. 하지만 눈물만 흘리고 있던 것보다는 땀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이대로 언제까지 날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걱정과 기대로 범벅되어, 해리의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두근댔다. 해리는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앞장서서 달려 나가는 암사슴은, 정말로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해리는 힘들어도 견딜 수가 있었다. 스네이프를, 다시 찾을 수 있어.



해리와 지니는 언덕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또 한동안 못 보겠다. 지니의 말에 해리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지니의 개학이 성큼 다가왔다. 벌써 한 달 후구나…. 해리가 대답했다. 전쟁으로 무너졌던 성벽과 내부시설도 완벽히 복구되었다고 들었다. 크리스마스연휴 때까지는 지니와 편지로만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


“지니, 얼른 늘 함께 있고 싶어.”

“나도, 해리.”


해리는 지니의 손을 잡은 채로, 그녀의 손가락의 굵기를 어림잡았다. 이 손에 반지를 껴주는 상상을 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붉은색 루비가 좋을 것 같았다. 해리치고는 제법 섬세한 생각이었다. 해리는 지니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해리. 오늘 뭔가… 집 안에 있을 때, 이상한 기분 들지 않았어?”

“어?”

“그냥. 우리 말고 또 누가 집에 있는 것 같았달까.”

“설마…. 사실 나도 그랬는데, 지니 너도?”

“응. 누가 막 계─속 우리 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어.”


해리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지니를 쳐다보았다. 지니는 가벼운 태도로 해리를 마주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예민한가싶었는데…. 근데 진짜로 누가 있었다면 큰일이잖아! 당장 돌아가서 확인을 해봐야…!”

“해리, 해리도 느꼈다며?”

“지니?”

“그럼 알 거 아냐. 절대 악의적인 시선이 아니었어.”

“…….”


그 말에 버로우로 달려 나가려던 해리의 몸이 뚝, 멈추었다. 지니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해리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라면 넌더리가 날 정도로 익숙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지만, 시선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쳐다보았다. 분명히 무언가와 시선이 마주친 듯한 느낌. 하지만 해리는 바로 지팡이를 잡고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해리가 받은 느낌에도, 지니 말대로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굉장히 따듯한 느낌이었다.



스네이프는 아래층에 사람이 없어지길 기다려서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하게 집을 나왔다. 당장 해리에게로 돌아가겠단 마음이 바로 서진 않았다. 다시 해리를 마주하면 해리가 어떻게 나올까. 사실 그것에 대한 걱정보다도,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다. 해리에게는 정말로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런 후회와, 죄책감이.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암사슴 모형을 보고서 스네이프는 그동안 과거의 해리에게, 사라진 자신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확실히 알았다. 얼마나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 자신을 만나게 된 걸까. 과거로 돌아와서까지…. 그런데 또다시 그의 앞에서 자신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생각할수록 해리에게는 버거운 아픔만 몰아준 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킨 기분이란, 익숙하게 비참했다. 스네이프는 입 안이 쓰고 머리가 아팠다. 해리를 다시 마주하기가 겁이 나는 건 당연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스네이프는 그저 언덕을 걸었다. 버로우와, 그곳의 해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어쨌든 결국엔, 자신을 기다릴 해리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스네이프는 슬프고, 한편으로 두려웠다. 스네이프의 생각이 무겁게 침잠했다. 고개를 숙인 채, 스네이프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가슴팍에서 잡고 당긴 투명망토가 그의 몸에서 흘러 떨어졌다.


“……?”


스네이프는 두 눈을 의심했다. 멋대로 몸이 의식을 잃고,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웠다.


“릴리……?”


이 상황은 현저히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맞은편에는 암사슴 패트로누스가 서있었다. 릴리와 자신 외에 그 패트로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암사슴 패트로누스가 자신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보며, 스네이프는 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저건, 다른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스네이프가 빠른 걸음으로 암사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암사슴은 스네이프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암사슴이 달려 나가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제야 스네이프는 저 멀리에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서있는 것을 알았다. 암사슴은 수사슴에게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스네이프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수사슴 패트로누스 옆에는, 불사조를 어깨에 얹은 채 나란히 해리가 서있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사조가 해리의 어깨 위에서 날아올랐다. 암사슴과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그 뒤를 따르는 것 같더니, 은빛을 반짝거리며 공기 중에 연기로 흩어졌다. 해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며 언덕을 뛰었다.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늘은 파랗고, 오후의 태양은 무시무시하게 작열했다. 스네이프에게로 다다르자마자 해리는 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반동에 의해 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두 사람의 코로 풀냄새가 아릿하게 스쳤다.


“찾았다─!!”


해리가 밝고 경쾌하게 소리쳤다. 스네이프는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만났을 때, 해리가 이렇게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웃어줄 줄은 몰랐다. 자신을 향한 해리의 용서는 이렇게나 쉽고, 간단했다.


“어떻게……여길….”

“세베루스의 패트로누스를 따라왔어요. 진짜로 여기 있었네, 다행이다….”

“포터….”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의 목구멍 안으로 많은 말들이 꾸역꾸역 삼켜졌다. 그러다 스네이프는 겨우, 말 대신에 해리를 끌어안는 방법을 찾았다. 해리의 몸에서는 땀 냄새가 강하게 났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해리의 등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서로의 몸이 바싹 닿아, 붙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해리를 힘껏 호흡했다. 해리는 손을 뻗어서 눈물이 얼룩진 스네이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도망쳐놓고, 그렇게 울면 대놓고 미워할 수도 없잖아요. 해리가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다정한 목소리에선 다분히 스네이프를 웃게 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 버로우 근처 아니에요? 세베루스가 왜 여길…….”


아. 해리의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해리는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버로우에서 보낸 생일 다음날,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느껴지던 그 따듯한 시선에 대해.


“대체 왜 여길 온 거예요, 세베루스….”


지니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니. 해리는 갑작스럽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스네이프가 어떤 생각으로 여길 온 것이고, 과거 저와 지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해리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해를 등지고 있어, 해리의 얼굴은 더욱 어둡게 보였다. 스네이프는 눈물을 그친 채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해리가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럴 필요 없어.”

“세베루스…?”

“미안해하지 마라. 그래야할 건 나니까….”

“세베루스!”

“상처 준 거, 미안하다. 그리고……”


해리의 뺨에 스네이프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간지러운 감촉에 해리는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사랑해줘서 고마워.”


해리의 눈에 빠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찾아 나선 보람이 있네요.

그래, 나도 여길 온 보람이 있는 것 같군.


해리의 입술과 스네이프의 입술은, 더 이상 말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휴 이번 편은 너무 안 써져서 본의아니게 늦게 올라왔지만...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사랑을 ㅎㅏ는 애들이 제일 이ㅃ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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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숲은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붉은 노을이 서서히 저물 때까지, 둘은 텐트 주변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해리는 나뭇가지로 대를 만들어 낚시를 했고, 스네이프는 집을 복사한 텐트에서 책을 가져와 읽었다. 가끔 다람쥐가 나타나서 주변을 뱅뱅 돌았고, 여우가 나타나 못에 목을 축이고 가기도 했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해리와 스네이프는 서로 간에 말이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듣게 되면 좀 더 특별한 하루를 보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해리는 낚싯줄을 내린 연못을 조용히 내려다보면서, 우리다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굵직한 송어 두 마리가 담긴 양동이를 뿌듯하게 내려다본 해리가, 이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조금씩 별이 박혀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스네이프가 불 위에 오늘 산 고기와 냉장고에 있던 야채도 올려 굽는 게 보였다. 해리도 얼른 생선을 손질해야겠다 싶어져, 그 옆으로 주저앉았다. 해리가 열심히 비늘을 벗기고 있는 사이, 다 구워진 고기를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 가까이에 가져다주었다. 해리가 냉큼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사실 스네이프가 누구에게 무엇을 먹여주려고 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둘 다 이것에 대해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못했다. 해리가 고기를 삼키고 다시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렸을 때, 스네이프는 군말 없이 또 해리의 입에 고기를 넣어주었다. 해리가 눈가에 주름이 질 정도로 웃었다.


“진짜 맛있네요.”

“네가 잡은 고기도 빨리 올리지, 포터.”

“앗, 잠시 만요.”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깨끗이 손질을 끝낸 해리가 판에 송어를 올렸다. 그 위로 소금을 뿌리며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이런 것도 캠핑 다니며 익힌 기술인가?”

“사실, 생선손질은 페투니아 이모가 시키신 적도 있어요.”

“아하. 그 여자는 어릴 때부터 고약했지.”

“교수님은 아니신 것처럼 얘기하시네요.”

“빈정대는 건가? 포터.”

“그럴 리가요.”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 해리가 이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스네이프의 면전에서 고약한 성격 운운하는 날이 올 줄이야. 스네이프는 해리의 말을 듣고서도, 딱히 기분 나빠지진 않았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자신이 살면서 제일 고약하게 대한 상대가 바로 눈앞의 해리였기 때문이었다. 엄청 싫어했었지, 하는, 이제는 과거형이 돼버린 감정이 떠올랐다.


하늘이 어느새 밤에 가까웠다. 준비해온 음식을 다 먹고, 해리가 잡은 송어도 먹고 나자 배가 터질듯이 불렀다. 해리는 느긋하게 불 앞에 스네이프와 마주앉았다. 케이크는 없었지만 충분히 생일만찬 같은 저녁이었다. 물론, 지금쯤 과거의 해리는 버로우에서 위즐리 가족들과 헤르미온느와 진짜 생일만찬을 즐기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어떤 게 더 좋다고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둘 다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다만 과거의 해리에게는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달랐지만 말이었다.


“이 숲 말이에요. 저는 헤르미온느랑 왔었다가, 헤어진 론도 다시 만나게 된 숲이거든요. 물론 전 몰랐지만, 교수님이 도와주신 거였죠.”

“덤블도어가 시켰으니까. 임무였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해요. 보호마법 때문에 안 보여서 교수님은 제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르셨을 텐데, 그래도 패트로누스가 절 빨리 찾아낸 것 같거든요.”

“패트로누스에게는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까. 나는 나무 뒤에서, 내 패트로누스가 한 곳으로 곧장 향하고는 뒤를 돌아가는 걸 지켜보았지. 뒤이어 네가 나타났고.”

“그걸 처음 봤을 때, 전 왠지 모르지만 그게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고, 오직 저만을 위해서 찾아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함정이 아닐까, 순간 망설이기도 했는데, 결국 따라나서게 된 이유는, 뭐랄까… 본능적인 거였어요. 전혀 어둠의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당연히 어둠의 마법일 리가 없지. ……릴리의 암사슴인데.”


주변에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깔려 확신할 순 없었지만, 스네이프의 눈가가 조금 젖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리는 모른 척 나뭇가지로 불 속을 뒤적였다. 따닥따닥, 불꽃이 튀어 오르는 소리는 조용한 숲속에서 듣기에 좋았다. 해리는 멀거니, 눈앞에서 암사슴이 사라졌던 지점을 바라보았다. 암사슴이 멈춰 섰을 때, 해리는 그것이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주고, 자신이 알아야할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은백색의 영롱한 빛을 뿜던 암사슴은, 곧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지막까지도 아름다웠던 암사슴을 보고, 해리는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 암사슴은 해리에게는 ‘엄마’의 의미는 아니었다. 스네이프의 기억을 보고난 후부터 쭉,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씩 해리는 오러 임무 중에 자신의 패트로누스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아빠의 패트로누스가 수사슴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것 역시 수사슴이 된 것일지 몰라도, 어쨌든 지금은 그것이 해리의 패트로누스였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스네이프의 패트로누스도 엄마가 이유였더라도 스네이프의 반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자신의 수사슴 패트로누스를 볼 때, 해리는 기억 속의 암사슴 패트로누스를 떠올리곤 했다.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해리가 지팡이를 들었다. 가장 행복한 기억,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스네이프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가슴 안에 행복감이 충만해졌다. 해리는 이 기억 하나만으로, 죽을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지팡이 끝에서 흘러나온 은백색의 연기는 순식간에 형태를 갖추고 해리와 스네이프의 앞에 섰다. 푸르르, 소리를 낼 것처럼 고개를 흔든 덩치 큰 수사슴이 부드럽게 발을 굴렀다. 어두운 주변을 푸르고 신비로운 빛이 환하게 밝혔다. 패트로누스는 달빛을 모아 만들어진 형상처럼 기묘했고, 몹시도 아름다웠다. 해리가 수사슴에게 다가가 머리에 이마를 기대고 인사를 나누듯 했다. 스네이프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신성한 의식 같기도, 친구 간에 나누는 친근한 인사 같기도 했다. 수사슴의 반짝거리는 눈이 스네이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돌아보았다. 스네이프는 수사슴을 보던 눈을 돌려 해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해리가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들었다. 해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까만 스네이프의 지팡이 끝에서 눈부시도록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해리의 수사슴처럼 금방 형태를 갖추고, 수사슴의 옆으로 스르륵 다가섰다.


“…포터, 네가 바란 선물이 이건가?”

“네, 맞아요.”


수사슴의 곁을 떠난 해리가 스네이프의 옆으로 돌아왔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옆에서 자신과 해리의 패트로누스가 나란히 서있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왠지 목구멍 안에서 뜨거운 게 울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볼 때, 사람이 생리적으로 느끼는 현상이었을까. 여운과, 감동을 느끼는 것…. 사실, 스네이프는 태어나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달빛으로 빚어진 것 같은, 은백색의 수사슴과 암사슴 한 쌍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어째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반 년 전 겨울, 해리 포터를 찾아 홀로 숲 속을 거닐던 암사슴의 곁에 이젠 수사슴이 함께 있었다. 스네이프도 알 수 있었다. 이 모습이 꼭, 자신과 해리처럼 느껴지기도 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거라고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이제 암사슴이 내딛는 땅은 얼음으로 꽁꽁 언 땅이 아니었다. 혼자도 아니었다. 부드럽게 녹은 흙 위에 여덟 개의 발굽이 놓여있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굉장하네요….”

“포터, 네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냈지?”

“어, 제 패트로누스를 볼 때마다, 세베루스… 당신의 것을 떠올렸거든요.”

“…내 것을?”

“네. 이렇게 아름다운 패트로누스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해리가 암사슴 패트로누스에게 다가갔다. 예전과 달리, 암사슴은 해리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기다려주었고, 쓰다듬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해리의 속삭임에 암사슴이 귀를 쫑긋거리는 것 같았다.


“같은 동물의 암수 한 쌍 패트로누스는 처음 봐요. 생전처음 마법을 봤을 때처럼 놀랍고 환상적이네요…. 아, 생전처음 봤던 마법이 이렇게 환상적이진 않았는데…… 뭐, 어쨌든.”

“뭐였지?”

“해그리드가 두들리의 엉덩이에 돼지꼬리를 달아줬죠. 솔직히, 끝내주긴 했어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해리가 기분 좋게 싱긋 웃어보였다. 스네이프는 웃진 않았지만, 어떤 느낌이었을지는 이해했다. 스네이프도 한 쌍의 패트로누스들 앞으로 다가갔다. 해리의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계속 스네이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다가가자, 수사슴이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수사슴을 내려다보던 스네이프는, 조심스럽게 수사슴의 머리에 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수사슴이 눈을 감고는 스네이프와 이마를 마주했다. 스네이프의 가슴 안쪽에서 울렁이며 무언가가 퍼져나갔다. 해리의 행복한 기억으로 만들어진 그것이, 스네이프의 심장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포터.”

“네, 세베루스.”

“이걸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지?”

“어… 세베루스가 절 사랑한다고 했던 목소리요?”


해리는 조금 쑥스러워, 딴청을 부리면서 대답했다. 그러다가 아, 하며 스네이프를 본 해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베루스는요? 패트로누스를 부를 때 무슨 생각 하셨어요?”

“…딱히 별 생각은 없었다만.”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제 생각했다고 대답해주기 싫으신 거죠?!”

“아니, 정말로 별 생각 없었다. 그냥 나왔어, 네 패트로누스를 보고나니.”


말 그대로였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수사슴 패트로누스를 보고서 암사슴 패트로누스를 바로 불러낼 수 있었다. 어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려는 노력이 전혀 필요 없었다.


“분한가? 포터.”


해리는 어리고 솔직했다. 제 대답이 불만족스러운 듯, 불퉁함이 드러난 해리의 얼굴을 보며 스네이프는 조금, 비웃고 싶어졌다.


“네가 나한테 말해주고 싶은 게 이거 아니었나?”

“……네? 제가 뭘요?”


금세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해리가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내 패트로누스가 내 모습을 투영한 거라고 말이다. 나는 여태, 이 암사슴을 릴리의 파편으로만 봤는데, 너의 패트로누스를 보니… 패트로누스가 확실히 자신의 반영처럼 보이더군. 그러니까 네 패트로누스를 보고, 내가 다른 기억 없이 패트로누스를 만들 수 있었다면… 결국 난 너를 보고 패트로누스를 만들었다는 소리잖나, 포터?”

“……!!!”


해리의 얼굴이 새빨갛게 불타올랐다. 정말이지 로맨틱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버리는 것도 재주였다. 전혀 달콤하지 않은, 단조롭고,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무미건조한 톤이긴 했어도, 어쨌든 해리는 스네이프의 말뜻을 철석같이 알아들었다. 이런 때만 이긴 하지만 해리도 스네이프 교수의 수제자 자리를 차지할 때도 있었다.


“저 심장 엄청 빨리 뛰어요…….”


피식, 입 꼬리를 비뚜름히 올리며 스네이프가 웃었다. 어리고, 솔직하고, 가끔 귀여운 연인에게 키스 정도야. 붉어진 얼굴에 양 눈을 꽉 감은 해리의 입술을 찾아, 스네이프가 천천히 고개의 각도를 기울였다.


수사슴과 암사슴 패트로누스들은 못 위를 동그랗게 빙빙 돌다가, 높게 솟은 나무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스네이프는 평소와는 다른 냄새를 맡으며 눈을 떴다. 옆을 돌아보자 해리가 아직 잠에 들어있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해리는 훨씬 더 어려 보였다. 스네이프는 이 다른 냄새가, 해리의 이불과 베개에 베인 해리의 체향인 걸 알았다. 어젯밤, 결국은 엉큼한 짓을 해버렸는데, 제 방으로 돌아가 자려는 스네이프를 해리의 손이 붙잡았다. 생일이잖아요, 라는 앙탈을 또 부리면서 저를 올려다보는, 안경을 쓰지 않은 순한 얼굴에 스네이프는 그냥 그대로 다시 해리의 옆에 누워버렸다. 사실 생일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서도, 사귀는 사이에 한 침대를 쓰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제 방에서 혼자 자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그동안은 해리와 함께 잔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자마자 해리의 자는 얼굴이 보이는 기분은 아주 색달랐다. 온통 해리의 냄새가 베인 공간에, 해리의 얼굴을 보면서 눈을 뜨는 아침. 머리를 괸 채로 해리를 내려다보며 스네이프는 이래서 사람이 결혼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해리는 이런 계속되는 스네이프의 시선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피곤한가? 피곤한 건 내가 더 할 텐데, 생각하면서도 스네이프는 다시 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기 좋은 숲에서 잤기 때문인지 금방 머리가 맑아졌다. 해리는 더 자게 내버려두기로 하고, 스네이프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너저분하게 바닥에 흩어져있던 옷가지들이 스네이프의 품으로 날아왔다. 셔츠와 바지를 꿰어 입고서 스네이프가 일어섰다.


이 방은 자신이 어렸을 때 지내던 방이었다. 이제는 키가 커서 눈높이가 완전히 달라져, 둘러보는 방의 곳곳마다 낯선 느낌이었다. 옷장, 침대, 서랍이 전부인 방.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지만 주인이 바뀐 방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 달라 보일까. 어릴 때는 아주 어둡고 음침해서, 스네이프는 이 방의 침대에 누워 끔찍한 괴물이 나오는 악몽을 자주 꿨었다. 꿈속에선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다리가 트롤에게 붙잡힌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간밤에 스네이프는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잤다.


해리가 요즘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낡은 서랍에 먼지가 내려앉은 게 보였다. 스네이프는 지팡이 끝을 대고 서랍 위의 먼지를 빨아들였다. 이걸 보면 서랍 안도 정리되어 있지 않을 게 뻔했다. 스네이프가 휙,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든 건 별로 없었지만 굴러다니는 것들을 스네이프는 손으로 정리해주었다. 대부분은 해리가 평소 쓰는 안경닦이와 손톱깎이 같은 평범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건……. 스네이프는 물건들을 옮기던 손을 멈추고 봉긋한 붉은 케이스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런 건 항상 느닷없는 순간에 마주치곤 했다. 아무런 경계심도 갖추지 못했을 때, 뇌 속으로 파고드는 불안감. 스네이프는 이런 건 진저리가 쳐졌다.


스네이프가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뒤척였는지, 해리가 자신이 덮었던 부분의 이불을 끌어안고 잠들어있었다. 아무런 걱정이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얼굴이었다. 스네이프는 뒷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예상했듯이 반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반지에는, 이 반지의 주인이 될 대상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붉은 루비가 조그맣게 박혀있었다.


“젠장….”


왜 하필 이걸 오늘 발견해야했을까? 좀 더 늦게 알 수도, 아니면 아예 모르고 끝날 수도 있었을 텐데.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절벽꼭대기에서 강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쳐진 기분이었다. 스네이프는 건조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런 기분은 아주 익숙하지, 물론…. 스네이프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밑바닥이 어울렸다.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신도 부정하지 않았다. 제 공간에 빛이 스며든다고 해서, 어둠이 완벽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두운 공간일수록 빛은 더 환하게 보였고,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릴리를 보았을 때 확실히 알았다.


해리와의 미래에 대해, 자신이 기대하지 않고 있던 건 사실이었다. 지니 위즐리를 다시 만나게 되면, 해리가 제 곁을 떠날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 그녀가 원래 해리 포터의 진짜 사랑하는 연인이었고, 그 둘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조지 위즐리가 말했으니까. 하지만 머리로 어물어물 연상하는 것과 물질로 드러난 것은 달랐다. 스네이프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제 몸속을 불이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분노?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화마에 집어삼켜지는 것 같은 홧홧한 열기는, 분명히 흉측하게 문드러진 감정이었다.


“세베루스…?”


뜨겁고 괴로웠다.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부르는 해리의 목소리에 어떤 해악도 느껴지지 않아서 스네이프는 더욱 화가 났다. 해리는 대답 없는 스네이프가 의아스러웠다. 스네이프가 뭘 들고 있는 것은 보이는데, 시력이 나빠 잘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눈을 비비며 보다가 안경을 썼다. 해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의 그 모습을 보자, 몸은 뜨겁게 열이 오르는데 머릿속은 이상할정도로 점점 차분해졌다.


“그건…! 아, 제기랄! 세베루스, 제가 설명할게요….”


그냥 일어서려다가, 알몸인 것을 깨닫고 허겁지겁 바지를 꿰어 입는 해리의 모습이 그렇게 냉정하고 한심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손에 든 반지케이스에서 반지를 빼내 눈앞으로 들어보였다. 루비에 햇살이 비쳐, 투명한 와인 같이 색이 예뻤다.


“예쁘군.”


스네이프가 담백하게 감상을 뱉었다. 그 목소리에 해리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정말로 스네이프가 많이 화가 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스네이프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자신은 도무지 몰랐다. 과거에 해리는 이런 순간마다 곤란함을 느끼며 도망치기만 했었다. 피할 수 없는 순간에는, 스네이프와 결국 부딪쳐야만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해리의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피가 말라붙었다. 항상 스네이프를 화나게 하는 순간마다, 자신이 명백하게 잘못한 걸 알았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잠들기 전까진 정말로 행복의 극치라고 생각했는데. 해리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렇게 된 건 분명 자신의 책임이었다.


“세베루스, 그러니까… 제 잘못이에요. 제가 처분을 하지 않고 둬서… 하아, 진작 했어야하는데….”

“…처분? 잘못?”

“세베루스…?”

“글쎄…. 포터, 넌 지니 위즐리와 결혼할 거잖나. 그러려면 이 반지가 필요할 텐데?”

“세베루스?!”


해리가 당황해서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바로 어제까지 절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스네이프가 맞나?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지금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란 걸 스네이프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 스네이프가 이런 말을 하는 게 해리는 믿기지가 않았다.


“제가 세베루스를 사랑한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 반지를 그대로 둔 건 순전히 실수예요! 제 잘못이라고요! 전 지니와 결혼하지 않아요!”


해리의 언성이 커졌다. 자신의 잘못임을 알면서도, 급속도로 분노를 느끼고 마는 건 원래 해리의 성미였다. 스네이프는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학생시절, 저를 벌레만도 못한 놈 취급을 할 때의 그 눈과 닮아보였다. 해리가 더욱 화가 나서 스네이프에게로 다가가 반지를 뺏으려 손을 뻗었다. 스네이프가 주먹을 쥐어 반지를 감췄다.


“아니, 난 알고 있었다. 지니 위즐리와 다시 만나면 넌 그녀에게로 돌아가겠지. 뻔한 거 아닌가? 넌 지금 나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거지.”

“세베루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이 좁은 공간에선 네 숨소리 하나까지 똑똑히 들린다, 포터. 난 지금 냉정하게 말하고 있는 거야.”

“아니요, 하나도 냉정하지 못하세요!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생각하신다면……”

“알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감정이 다 무슨 소용이지? 포터, 넌 네가 지니 위즐리와 다시 만나도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없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나? 그녀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면서도? 그녀가 네 이름을 부를 때, 아무렇지도 않게 날 선택할 수 있나?”

“…….”

“이 반지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게 네 본심이다. 포터.”


해리의 녹색 눈이 떨리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한바탕 말을 쏟아내고, 제 감정에 북받쳐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밖으로 쏟아내도 개운해지기는커녕, 더욱 답답해지기만 했다. 말들이 진짜 현실로 바뀌는 것 같아 괴로웠다. 바로 지금 해리 포터가 나를 떠나가면 어쩌지? 어리석게도 그런 걱정이 불쑥 들어서, 스네이프는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왜 또 이런 사랑을 시작해버린 걸까. 스네이프는 해리가 원망스럽고 모든 게 후회되었다. 언제나 자신이 뒤로 밀리는 사랑 같은 걸, 두 번씩이나 해버리고. 항상, 자신은 항상 이렇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

“제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진심을 보면서도… 결국엔 제가 당신을 떠나갈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해리가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건 슬퍼서라기보다, 화가 나서 나오는 눈물이라고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당신의 말은 이해돼요. 왜 그런 줄 알아요? 만약 내 어머니가 살아 돌아온다면, 당신이라면 날 버리고 엄마를 택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뭐라고?”


스네이프의 머릿속에 이성으로 둘러놓은 막이, 와장창 깨져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천 개의 유리 파편이 몸속을 고통스럽게 찔러왔다. 불쑥 튀어나간 자신의 목소리는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해리의 말을 듣고 나자, 사고회로가 뚝하고 정지하는 것 같았다. 단연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왜 화를 내며 그런 말을 제게 쏟아냈는지 그 이유를 모를 수가 없어서, 스네이프는 말문이 막혔다. 항변해야하는데, 스스로도 입이 말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릴리가 살아 돌아오면’ 이라고……? 릴리는 죽었다. 절대로 돌아올 일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네이프로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정말로 돌아올 일이 없어서였을 뿐, 만약 진짜 돌아온다는 가정 하에, 자신이 반드시 해리 포터를 택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스네이프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얼른 대답해야 오해를 풀 수 있는데, 이게 과연 오해라고 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해리가 한 생각이 옳았던 것이었다.


스네이프의 손 안에 쥐인, 루비가 박힌 반지가 살을 파고들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닮은 보석이 스네이프의 속살에 박혀들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해두겠는데, 난, 포터. 네가 말한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난… 네가 지니 위즐리에게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네 말을 듣고 나니 바로 확답을 내놓을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시겠죠. 그 분을 사랑한 건 수 십년이고, 전 고작 몇 개월 함께 살았고 사랑한단 말도 어제에야 겨우 들은걸요.”


해리는 대놓고 빈정거렸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이런 말투가 익숙했지만, 사실 최근 몇 개월은 들어본 적이 없는 말투였다. 그래서 우습게도, 그것에 마음이 아팠다. 해리의 분노는 슬픔과 섞여있었다. 어떻게 해도 제 어머니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가 요즈음 자신에게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해리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게 당연하다는 소리였다.


해리는 침대에 도로 걸터앉아, 잠시간 화를 식혔다. 더 이상 흥분했다간 스네이프에게 무슨 소리를 하고, 어떤 행동을 저지를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였다. 한동안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해리는 다시 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쨌든 지니에게 프러포즈하려고 준비했던 반지를 그대로 뒀던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 자신의 잘못이다, 해리는 다시 한 번 더 그 사실을 머리에 되새겼다. 해리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왜 싸워야하죠? 세베루스. 말했다시피, 전 지니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확신해요. 그리고… 어머니 얘기를 한 건 죄송해요. 발끈하니까 튀어나오더라고요. 정확히는 이게, 제 ‘본심’이겠죠. 전 어머니 다음이니까요, 당신에게는. 그 사실이 전 항상 마음 한편에서는 걸렸던 거예요.”

“…포터.”

“아, 제기랄! 이렇게 확 끓어오르는 거, 저도 자제가 잘 안돼서…… 항상 후회하는데.”


학생 때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불이 붙을 만한 발화점이 없어서였을 뿐이었다. 해리는 스스로도 괴로운 듯, 양손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제 손으로 칼을 거꾸로 쥔 꼴이었다. 스스로를 아프게 할 말을 속에서 끄집어 올린 것이다.


스네이프는 꽉 쥐었던 주먹을 폈다. 벌겋게 자국이 남은 제 손바닥 위에, 자그마한 반지가 보였다. 고작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때문에 서로의 가장 여린 속살이 찢겨나갔다. 아니, 정말은 해리를 믿어주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가 현재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확신이라는 가정을 세워버린 탓이 제일 컸다. 스네이프는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었다. 한 번도 이렇게 커다란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해리의 사랑이 곧 터져버리고 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자신이, 자신을 감싸주고 있는 그 풍선 속에서 가시를 세우고 웅크려있던 고슴도치였던 줄은 모르고 말이었다.


“리덕토.”


반지가 산산조각이 났다. 방 여기저기로 파편이 튀었다. 해리는 폭발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자국이 엉겨 붙은 붉어진 얼굴이, 상처받은 소년처럼 가여워보였다.


“미안하군, 포터. 난 제대로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주는 법도 잘 몰랐다. 널 믿어주지 못한 건, 네가 날 너무 사랑해주는 게…… 이 나에겐 아주 이상한 일이어서, 그랬다. 네 마음을 깊게 느낄수록 오히려 금방 끝날 거란 불안함이 더 커졌지…. 쉽게 뜨거워진 불꽃이 가장 빠르게 식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제가, 제가 세베루스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불안해하셨다고요…?”


해리의 두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더 많이 사랑해주면 그저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자신을 더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해리는 이 사람이 얼마나 가여운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주는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스네이프의 그릇으로는 너무 벅찼던 것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이어서. 자신에겐 이 모든 게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너무나 과분하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끝날 줄 알았다니.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통하고, 이대로 영원히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해리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인걸까? 해리는 온통 혼란이었다. 스네이프가 얼마나 속이 비어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어버렸다. 그 안을 채워주고 싶은 욕심과, 그게 과연 채워질까에 대한 의심이 서로 충돌했다.


“어제는 그렇게 행복했는데…….”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다르다니. 해리는 머릿속이 어지러워 구역감마저 들었다.


“우리, 서로 사랑하죠…?”


해리의 눈 한쪽에서 다시 눈물이 한줄기 흘러 떨어졌다. 스네이프는 묵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로 아프고, 힘들어요…?”


어째서? 사랑은 서로에 대한 감정만으론 끝이 아닌가? 스네이프를 구원해주기 위해선 자신이 더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 해리는 스네이프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위해 기꺼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새길 수 있었다. 그 마음에 대한 확신이 서자, 해리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쳤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를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한 데에 대해서, 깊은 죄의식이 들었다. 그는 그저 자신을 사랑해주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그가 겪지 않았어야할 고통까지 떠안겨주어 미안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제 눈앞에서, 자신의 실수 때문에 아파하는 건 스네이프에겐 익숙한 슬픔이었다. 그것이 또 반복되고 말았다. 스네이프는 이런 순간마다 도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건 단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품에 안았다. 침대에 앉아있는 해리의 얼굴은 제 배 언저리쯤에 닿았다. 해리의 열 오른 체온이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잠시간 그 따듯함을 느꼈다.


“세베루스……?”


해리는 방금까지 양 팔로 안고 있던 스네이프의 몸이 사라진 공백에, 눈을 번쩍 떴다.


스네이프가 사라졌다.









둘이 싸우는 거 쓰는데, 쾌감을 느낌.

그래 해스네는 배틀호모! (잊고 있었다)

글 속 해리는 어제 생일이었고,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흐흐^.^

어쩌다보니 타이밍이 맞았네.. 난 생일 다음날에도 행복해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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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리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 번째로 맞는 열여덟 살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탁상달력을 손에 쥐고 들여다보는 해리의 옆으로 스네이프가 데운 와인을 들고 왔다. 해리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스네이프는 피식 비웃으며, 다리를 꼰 채 제 몫의 잔만 홀짝였다. 해리는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라는 표정으로 무안한 손을 거뒀다. 해리가 며칠 전부터 말을 했기에, 스네이프도 오늘이 해리의 생일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달력을 쳐다보며 티를 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지.

 

 

스네이프는 생일선물을 준비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선물을 준 대상은 릴리, 혹은 릴리, 아니면 릴리였다. 릴리에게 줄 수 없게 된 뒤에는 선물 자체를 사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교수가 된 뒤에야 덤블도어에게 책을 선물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여자아이나 지긋한 노인에게 어울릴법한 선물만 알았다. 해리 포터에게는 리본 달린 머리띠도, 어려운 글이 적힌 책도 어울리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새삼 제가 해리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한단 걸 알았다. 해리가 좋아하는 것……. 그걸 생각하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 스네이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데운 와인의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스네이프의 혀에 감돌았다. 해리가 달력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해리는 허리를 숙여 스네이프에게 입을 맞췄다. 와인의 맛을 훔치는 것처럼 입 안을 혀로 샅샅이 훑었다. 치사하게, 혼자만 마셔요? 스네이프는 해리의 뻔뻔함에 가끔 몸이 굳었다. 이제는 교제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사이긴 했지만, 해리의 행동은 그 전과는 아주 달라져서, 스네이프는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달라지는 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 것이 확인 되면? 스네이프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떨떠름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해리가 싫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가 연인다운 부드럽고 달콤한 합을 맞춰주기엔, 너무도 딱딱한 목석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생각보다 적극적이라고 놀랍다 말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여전히 자신이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해리 포터가 생각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진짜 자신보다 좀 더 딱딱하고 메마른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어쨌든 이렇게, 해리에게 줄 선물조차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오늘이 생일이라는 걸 들어 알았지만, 결국 당일까지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릴리를 사랑할 때엔 그녀에게 세상 모든 걸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해리를 사랑하는 순간엔 왜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지. 같은 감정인데, 왜 사람마다 다를까….

 

 

사실 스네이프도 알고 있었다. 해리는 자신이 뭘 줘도 기뻐할 녀석이었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정말 진심으로 해리가 기뻐하고 원할 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알지는 못했다.

 

 

“오늘 제 생일이네요.”

“벌써 여러 번 말했다, 포터.”

“이상해요… 열여덟 생일이 두 번이라니.”

“흠.”

 

 

소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붙인 채, 손에 머리를 가볍게 기댄 스네이프가 비스듬히 앉아 해리를 바라보았다. 달력을 보는 얼굴이 오묘해 보이더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나.

 

 

“작년엔 버로우에서 생일을 보냈어요. 선물도 많이 받았고….”

“아하…. 전 세계 팬들이 마법세계 영웅의 탄생일을 축하해주었겠군….”

“전 세계까지는 아니고요…. 그 영웅 소리 좀 그만 해요, 세베루스. 그래도 그 날, 두들리가 여태 받아본 생일선물만큼은 받아본 것 같아요.”

“네 머글 사촌 말인가. 그래, 오클러먼시를 가르칠 때 본 적이 있지. 질투하던 포터 네 얼굴도.”

“정말…. 우리는 서로의 과거에 대해 너무 알아서 큰일이죠.”

 

 

레질리먼시, 펜시브……. 불우한 어린 시절, 사랑한 사람, 고통, 좌절, 기쁨, 두려움……. 기억을 통해 본 서로에 대해, 스네이프도 해리도 모르는 게 없었다. 더 깊게 파고들면, 해리에 대한 예언을 훔쳐 들은 것도 바로 스네이프였다. 볼드모트와 해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그였을까. 스네이프가 만약 그 예언을 듣지 못했다면, 해리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지도 몰랐다. 해리는 이 얽히고설킨 인연의 끝에, 결국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스네이프는 아직도 본인의 입으로 솔직하게 얘기해주지는 않았다.

 

 

“같은 날 생일인데, 과거의 저는 버로우로 가고, 지금의 저는 세베루스랑 단둘이 생일을 보내겠죠. 정말 기묘해요, 생각할수록….”

“그래서, 실망스럽다고?”

“그럴 리가 있어요? 최고죠.”

 

 

뻔뻔스러워.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해리를 보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스네이프는 부엌으로 들어가 오븐을 예열하고, 밀가루, 설탕, 우유, 계란 등을 지팡이로 불러내었다. 재료들이 절로 계량컵에 맞춰 정확히 부어졌다. 어느새 해리가 스네이프의 뒤로 다가와 그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았다. 스네이프는 자연스럽게 해리의 품에 등을 맡긴 자세가 되었다. 케이크 만드는 거예요? 해리의 질문에 스네이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루를 체에 쳤다. 마법으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정성에 해리는 감동했다.

 

 

“알았으면 방해되니까, 비키지? 포터.”

 

 

지팡이를 휘둘러 설탕을 섞은 계란을 휘핑시키며 스네이프가 툭 말을 뱉었다. 하지만 해리는 저 오늘 생일이에요, 라는 말로 반항의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다. 스네이프는 기가 차긴 했지만, 밀착해 붙어오는 해리의 단단한 몸이 싫지 않았다. 스네이프의 마른 허벅지로 해리의 두터운 허벅지가 살짝살짝 부딪쳤다. 오랫동안 했던 퀴디치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이었다. 스네이프는 이렇게 해리가 다 자란 수컷임을 상기할 때마다, 허리께가 움츠러들었다. 욱신거리며 돋는 이 느낌이 성욕인 걸 알아차렸을 땐, 스네이프도 헛웃음이 나왔다. 나도 아직 젊은가보지. 아니면 뒤늦게 맛을 알고 불탔다던가….

 

 

스네이프는 휘핑이 다 된 계란에 체 친 가루를 넣고 주걱으로 섞었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신경은 온통 제 허리를 끌어안은 해리의 근육이 잡힌 팔과 어깨에 놓인 해리의 턱, 제 얼굴에 스치는 그의 숨결에 쏠려 있었다. 직접적으로 닿는 해리의 뜨거운 체온에 꼭 섹스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박혀본 적은 없는데, 왜 상상이 되는 건지. 스네이프가 짧고 세게 눈을 감았다 떴다. 반죽을 세게 저으면 안 되는데, 자꾸만 주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게 케이크 시트예요?”

“…그래, 포터.”

 

 

대답을 하는데 어지러운 현기증이 돌았다. 스네이프가 다시 눈을 꾹 감았다. 손이 조금이지만 떨렸다. 해리의 입술이 자신의 귀와 너무 가까이 있었다. 계속 해리가 자신과 섹스할 때 내던 헐떡이는 숨소리가 생각났다. 미친 게 아닐까……. 물론 자신은 해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스네이프는 이렇게 갑작스러운 성욕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비정상이 된 것 같았다. 해리가 시시때때로 저를 보던 눈에서 욕망을 느낀 적은 많았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그건 젊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야 처음 연애를 해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는 호흡을 가다듬고, 섞어진 반죽의 절반 정도를 덜어 버터 한 덩이와 섞었다. 요정이 만든 바닐라향 가루도 조금 섞었다. 반죽에서 좀 더 케이크 같은 냄새가 풍겼다. 해리가 코를 킁킁거리다가 웃었다.

 

 

“맛있는 냄새나요.”

 

 

그걸 꼭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말해야겠나, 포터? 스네이프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래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어, 밑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버터와 섞인 반죽 절반을 다시 나머지 반죽과 섞고서 스네이프가 마법으로 틀을 불러냈다. 유산지가 깔린 틀에 반죽을 붓자, 해리가 딱 1개 분량이네요! 하고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 정도야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이었다. 기포를 빼기 위해 지팡이를 휘둘러 반죽이 부어진 틀을 바닥 가까이에 떨어뜨린 뒤, 예열 된 오븐에 넣으며 스네이프는 하나 끝냈군, 싶어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해리는 여전히 스네이프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시트 굽는데 얼마나 걸려요?”

“25분 정도.”

“딱 적당한 시간이네요.”

“……? 무슨 소리지?”

“한 번 하는 데 25분이면 괜찮잖아요, 세베루스?”

 

 

간신히 발기를 억누르고 있던 스네이프의 성기로 해리의 손이 감겨들었다. 바지 위로 해리의 손의 모양이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몸이 확 굳었다. “너…!” 스네이프가 휙 해리를 흘겨보며 소리치다가 헉, 목구멍 안으로 소리를 삼켰다. 귀두가 있는 부분을 해리의 엄지손가락이 쓸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다급히 밀가루가 흩어져있는 조리대에 양 손을 올렸다. 흰 가루가 묻은 손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 것이 빠르게 딱딱해지고, 해리의 손 안에서 울컥울컥 커져가는 게 느껴졌다.

 

 

“윽, 흣…. 하지 마, 포터….”

“거짓말…. 계속 몸이 닿아있었는데, 흥분한 거 모를 줄 알았어요…?”

 

 

해리가 스네이프의 바지 벨트에 손을 옮겼다. 스네이프는 벌게진 얼굴로 숨만 겨우 골랐다. 해리에게 자꾸 속마음을 들키는 게 창피하면서도, 어쩐지 아주 깊은 곳에서는 쾌감으로 다가왔다.

 

 

“맛있는 냄새는 여기서도 나네요….”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스르르 거둬내자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불룩하게 도드라진 뼈에 입술을 묻고서, 해리가 얇은 살을 이로 잘근거렸다. 스네이프의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바지 속으로 들어간 해리의 손이 속옷 안까지 들어왔다. 액이 분비되기 시작하자 해리가 스네이프의 살덩이를 쥐고 흔드는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앞으로 알알이 흩어진 밀가루가 하얗게 점멸했다. 벌어진 입에서 갈무리되지 못한 침이 조리대로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마른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해리는 지금, 스네이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거울을 소환해버리는 건 어떨까, 그런 짓궂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래가 뜨거워졌다. 해리는 한 손으로 그의 것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스네이프의 바지를 엉덩이가 보일만큼만 내렸다. 까만 옷 사이에 하얗고 작은 둔부만 내놓은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해리는 그의 이런 귀여운 모습을 자신만 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들떴다.

 

 

스네이프의 어깨선을 혀로 핥으면서 해리가 속삭였다. 뒤로 손 뻗어서, 제 바지도 내려주세요, 세베루스…. 해리가 입고 있는 바지는 고무줄로 허리가 조여져서, 스네이프가 보지 못하는 자세에서도 쉽게 벗길 수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스네이프가 조심스레 두 손을 뒤로 뻗었다. 밀가루가 묻어있는 그의 손 탓에, 해리의 체크무늬 바지에 하얀 얼룩이 묻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쿡쿡 웃었다. 제 짓궂은 요구를 들어주는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한 사람을 이렇게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해리가 느끼는 이 감정은 자신이 믿겨지지가 않을 만큼이었다. 그 대상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것까지도. 그리고 제일 믿기 어려운 것은, 이 감정을 받아들여주고 있는 그였다. 어떻게 그 어렵고 복잡한 사람이 자신을 위한 자리를 마음 한편에 내어주었을까. 그래서 해리는 그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놀랍고, 감사하고, 기뻐서. 그는 자신에게 너무도 완벽한 생일 선물이었다. 평생의 생일동안 그를 받을 수 있을까. 그를 원해도 괜찮을까. 해리는 그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귀여운 모습도, 그의 멋있는 모습도, 그냥 세베루스 스네이프 그 자체를 혼자만이 알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이대로 평생, 둘이서만 숨어서……. 해리의 속에선 그런 음험한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했다.

 

 

“아, 으응…….”

 

 

허리 위로 그의 상의를 걷어내고, 늘씬한 허리가 자극에 무너지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구멍 안에 해리의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 있었다. 해리는 손가락을 좌우로 벌리기도 하고, 안쪽을 빠르게 쑤시기도 했다. 무엇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던 좁은 곳이 저로 인해 넓어지는 광경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흥분됐다. 스네이프가 양 손으로 조리대를 꽉 잡고서 숨을 헐떡였다.

 

 

“아파요?”

“이…정도는.”

 

 

목소리는 버거워 보이는데. 해리는 스네이프가 오기를 부리는 건지, 정말로 참을 수 있는 수준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해리는 구멍을 쑤시지 않는 나머지 손으로 스네이프의 턱을 쥐었다. 그리고서 스네이프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스네이프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붉어져있었다. 탁하게 풀린 까만 눈과 해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쾌감. 짜릿한 정복욕과 소유욕이 치솟았다. 해리의 귀두 끝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스네이프가 먼저 해리의 입술을 찾아왔다. 해리는 그의 입술을 빨아들이면서, 그의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어냈다. 얼른 넣고 싶은 마음에 허리까지 뻐근해졌다. 스네이프가 목구멍으로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웃음이 터질 뻔한 걸 참았다. 그도 자신을 원한다는 걸 느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사랑해요. 그 말을 뱉으면서, 해리는 조금은 성급하게 스네이프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아……!”

 

 

정말이지, 이 안은 너무 좁고 어두운 천국이다. 스네이프가 탁하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해리가 양 손으로 스네이프의 허리를 붙잡았다. 해리는 곧바로 빠른 피스톤질을 했다. 길을 터놨던 덕인지, 삽입이 훨씬 수월했다. 전과는 다른, 처음부터 급하고 거친 섹스였다. 스네이프는 아팠지만, 눈을 꽉 감고 신음을 참아냈다. 그리고 곧, 그 아픔에도 적응이 된 쾌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하지만 이 자세에선 해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섹스도 거칠었다. 스네이프는 뒤에서 자신에게 박고 있는 사람이 해리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그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세… 자세 바꾸, 지, 헉, 흡…. 포터….”

“하아, 하… 왜요…? 난 이 자세도 좋은데….”

“네, 가 안 보이니까, 읏, 이상……해….”

“이상하다고요? 읏, 뭐가…?”

“……다른 사람 같, 윽….”

 

 

스네이프는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지, 귀가 빨개졌다. 뒤에서 붉어진 귓등을 바라보며 해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하, 정말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해리는 이건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자신은 그를 더 놀리고 싶어졌다.

 

 

“……내가 아닌 거 같아서 불안했어? 세베루스.”

“포… 포터, 건방지게 무슨…… 으흑!”

 

 

콰악, 해리는 아까보다 더 세게 스네이프의 안에 박아 넣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오늘만은 내 마음대로 해도 용서해주었으면.

 

 

“근데 내가 아닌 것 같았으면서도, 잔뜩 흥분했잖아. 음란하긴, 세베루스…….”

“으흑… 너… 포터, 가만 안 둘, 윽…으흑! 아…!! 너무 빨…라! 읏, 허억…!”

“이런 거 좋아해? 세베루스. 아픈 거.”

“아…하악, 크읍, 너…! 끝, 나고…! 두고… 봐…!”

“이런, 겁나는데, 세베루스. 좋아…. 아무 소리 못하게, 하아, 만들어줄게…….”

 

 

해리는 꼭 제가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악역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동안 싫다는데도 영웅이라고 놀려대던 스네이프에게 자그마한 복수를 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그런 건 핑계였다. 그냥, 해리는 즐거웠다. 섹스를 할 때만큼은 스네이프도 자신에게 흐무러지니까. 이런 유치하고 못된 장난을 쳐도, 스네이프가 자신을 받아들여주니까. 해리는 그게 좋았다. 두고 보자고 소리치면서도, 자신의 성기를 물고 있는 스네이프의 내벽의 감도가 더 좋아진 것을 해리는 느낄 수 있었다. 빨개진 귓등으로, 스네이프의 앞모습이 얼마나 붉어져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해리는 점점 더 짓궂게 굴고 싶어졌다.

 

 

 

 

“…아, 하하, 하….”

 

 

까맣게 타버린 케이크 시트를 오븐에서 꺼내며 해리가 머쓱하게 웃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흘겨보면서 뒤쪽을 닦아내었다. 음, 못된 장난에 몰입하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저… 세베루, 아니… 교수님. 과거로 돌아가는 회중시계 쓸까요…?”

“됐어. 포터, 뚫린 입이라고 케이크는 먹고 싶나보지?”

“교수님이 만들어주신 건데….”

“그걸 누구 때문에 못 먹게 됐는데.”

 

 

타지 않은 부분이 있나 살펴보다가, 해리가 입을 비죽였다.

 

 

“교수님도 저랑 같이 정신 못 차리셔서 태운 거잖아요….”

“뭐라고?”

 

 

스네이프의 한 쪽 눈썹의 끝이 치켜 올라가고, 언성이 높아졌다.

 

 

“엄청 좋아하셔놓고…. 다 알아요. 세 번이나 사정하셨잖… 악!”

“레비코푸스.”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해리가 발버둥을 쳤다. 덕분에 발목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바지가 덜렁거리는 성기는 감춰주었다.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서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아주 고소하단 얼굴로 해리와 눈을 마주쳤다. 해리는 학창시절 스네이프 교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끝에 피가 모자랄 때까지 거기 매달려있어라, 포터.”

 

 

해리의 얼굴이 벌써부터 백지장이 되었다.

 

 

 

 

정말로 피가 발끝에서 다 빠져나간 것은 아닐 테지만, 공중에서 땅으로 돌아온 해리는 한참을 골을 붙잡고 신음해야 했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싸늘한 얼굴이었으나, 일말의 배려를 베풀어주었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자, 해리의 손앞으로 날아간 컵에 찬 물이 따라졌다. 으으… 고마워요 세베루스…. 해리가 컵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사실, 병 주고 약주냐 느니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여기서 더 까불었다간 무슨 벌을 받을지 몰라 겁이 났다. 레비코푸스에 한 번 더 당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혹시 몰라, 접근금지령이라도 떨어질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케이크는 그냥 포기하는 걸로 하죠….”

“흐응. 그럼? 생일을 이대로 보내겠다? 며칠을 그렇게 생일이라고 떠들어대더니.”

“아, 그래요. 제가 그렇게 말했는데 선물도 준비 안 하셨죠!”

“…….”

 

 

여기선 스네이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간 열심히 고민해 봤었는데, 결국 뭘 줘야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도 어쩐지 부끄러워서, 대답 없이 팔짱을 낀 채 앉아있었다.

 

 

“…케이크가 선물이 될 수도 있었겠지.”

 

 

그래도 한 마디도 않는 건 스네이프 성격상 맞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스네이프를 올려다보던 해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저한텐 세베루스가 선물이에요. 진심으로요. 하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준비해주시지 않을까 기대는 했었는데…….”

“그거 참 미안하군.”

 

 

말은 퉁명스럽게 하지만, 스네이프도 왜 선물을 준비 못했을까가 계속 후회되었다. 그냥 옷이라든지 먹을거리라도 사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처음으로 서로 마음이 통해 사귀는 사람에게 ‘아무거나’ 선물해줄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을 축복하는 선물로, 아주 가치 있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게 스네이프의 본심이었다. 해리에게 직접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창피해서, 입을 열 수 없었지만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해리에게 ‘자신이 선물’이란 말을 직접 들으니, 예상했던 말이었지만 역시나 기뻤다. 스네이프에게도 용기가 있어서, 해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직접 전해줄 수 있었다면 해리를 좀 더 기쁘게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이런 자신이 굉장히 못나게 느껴졌다. 해리는 어쩐지 낯빛이 좋지 못한 그를 바라보며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 물 컵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은 스네이프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세베루스? 왜 그래요? 자신이 또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나? 선물 같은 거 없어도 되는데,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후회가 되었다. 해리가 한 팔을 뻗어 스네이프의 어깨를 끌어안고, 조심스레 눈을 맞췄다. 그가 까만 눈 너머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세베루스, 저, 선물 없어도 돼요. 난 당신만 있으면 되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포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실수가 맞아.”

“세베루스!”

“원하는 걸 말해봐라. ‘나’라느니 그런 말 말고.”

 

 

해리가 더럭 또 제 이름을 말하려는 입을 지팡이로 막으며, 스네이프가 빠르게 말했다. 해리는 입술을 꽉 누르는 지팡이를 쳐다보며(눈이 가운데로 몰려 우스꽝스러운 얼굴이었으나, 놀랍게도 스네이프는 단 1초도 웃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베루스 말고 내가 원하는 선물? 뭐, 사실 생각해보면 갖고 싶은 게 많기는 했다. 퀴디치에 관련된 용품이라면 다 좋았고, 옷을 받아도 좋았고, 그가 직접 만든 음식도 좋고 그냥 그가 밖에서 사온 음식이라도 좋았다. 어차피 스네이프와 함께 보내는 생일인데, 이미 선물 받은 기분인 걸. 해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제 입술에서 지팡이를 치워냈다.

 

 

“음, 하나 떠올랐는데요.”

“뭐지? 당장 나가서 사올 수 있는 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스네이프를 보며 해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이내 사르르 미소가 걸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 딱히 돈은 안 들걸요? 우린 마법사니까.”

“뭐라고, 포터? 네 말은… 꼭 마법을 써서 훔치라는 걸로 들리는군.”

“아뇨, 아뇨! 그냥, 진짜 돈이 안 들어서 그래요. 그보다 그걸 선물로 받기 전에, 우리 잠시 같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준비?”

“네. 밖에 나갈 준비요.”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의 문을 가리키며 해리가 가볍게 말을 던졌다. 스네이프는 약간 의아했지만, 어쨌든 집안에서 선물을 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야되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해리는 선물에 돈은 들지 않는다더니, 자신의 지갑은 챙겼다. 스네이프는 제 지갑도 아니고 본인 것을 챙겨드는 해리를 보고 미간을 팍 찌푸렸다.

 

 

“포터, 내 지갑을 챙기지 않고 뭐하는 거지?”

“아, 버릇대로 이걸 집었네. 좋아요, 세베루스. 여기, 지갑 챙겨요.”

 

 

해리가 던진 지갑을 한손으로 받아낸 스네이프가, 물끄러미 지갑을 내려다보다 다시 해리를 바라보았다.

 

 

“돈은 필요 없다더니?”

“가서 먹을 음식을 사려고요.”

“가서 먹을? 어디로 갈 생각인가?”

“그건 따라와 보면 알지요. 세베루스도 아는 곳이에요.”

 

 

둘 모두 공통분모로 아는 장소? 스네이프는 더욱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무리 떠올려도 그건 이 집과 호그와트, 고드릭 골짜기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호그와트는 해리가 지금으로선 갈 수 없는 장소였고, 고드릭 골짜기 역시, 딱히 생일에 가야할만한 이유가 있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도 개중엔 제일 갈만한 장소인 것 같았다.

 

 

“고드릭 골짜기인가, 설마?”

“아뇨. 헛짚으셨네요.”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는 간지러운 행위는 아주 풋풋하게 느껴졌지만, 그것에 서로가 감상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둘은 마트 뒤편의 공원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겁도 없군, 포터. 대낮부터 머글이 있을 법한 곳으로….”

“하하. 여긴 사람이 별로 안 와요. 있었어도 한두 명쯤일 텐데, 오블리비아테(기억 수정 마법)를 쓰면 되니까.”

“막무가내로군. 설마 오러 임무를 할 때 그러고 다녔나?”

“뭐, 가끔은요. 빨리 장이나 봅시다, 세베루스.”

 

 

대책 없는 녀석이군. 뭐, 물론 해리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스네이프는 충분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보다는, 지금 해리가 아직도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이제 동반순간이동을 할 이유도 없으니 놓아도 될 텐데. 해리도 스네이프가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알아챘는지, 입구로 들어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바로 묻지 않고 스네이프와 잠시간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놓을까요,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아니… 네가 땀만 안 흘린다면 상관없지, 포터. 그 대답에 해리가 싱긋이 웃었다.

 

 

마트 내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빵을 고르고, 고기와 음료수, 맥주도 구입한 해리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텐트와 의자도 구입했다. 텐트 안을 살펴본 스네이프는 텐트 안이 넓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좁은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지팡이가 꽂힌 뒷주머니를 슬쩍 더듬는 걸 보고 해리가 얼른 직원의 시선을 돌렸다.(“저기, 저 텐트는 왜 빨간색인가요? 멀리서 보면 산불이 난 것 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직원과 해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 스네이프가 마침 텐트의 해체를 마치고 가방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직원이 당황해서 새 제품을 드릴게요! 소리쳤지만, 스네이프가 몹시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로 됐소, 라고 말하는 데에 압도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직원은 자신이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은 쓰지 않았다.─)

 

 

“머글 눈앞에서 마법이라뇨! 세베루스가 훨씬 만만찮잖아요.”

“네 말마따나 오블리비아테를 쓰면 되는 것 아닌가, 포터?”

 

 

오만하게 입 꼬리를 끌어올리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해리의 눈에 꽤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에 해리는 걸음을 걸으면서, 푸하핫! 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해리와 스네이프 쪽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뭔가 가슴이 크게 박동하는 것 같았다. 들뜨는 기분이었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무모함을 느낄 때는, 해리의 인생의 순간마다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을 다시 잡고서, 당당하게 사람들의 시선 사이를 걸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짓을 하러 가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정작 화장실에 들어와서 돌아본 스네이프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해리를 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하자는 건 아니겠지.”

“제가 그렇게 짐승 같아 보이세요?”

“충분히 그렇다만? 포터.”

 

 

스네이프가 비꼬며 대답했다. 해리는 사실 오늘 한 행동으로 할 말이 없는 입장이긴 했다. 해리가 어깨를 으쓱거리곤, 입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둘밖에 없던 화장실로 한 지긋한 노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 노인을 본 해리는 빠르게 스네이프의 손목을 낚아채고 눈앞의 칸으로 들어갔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힘에 의해 칸으로 딸려가는 와중에, 막 화장실로 들어온 남자의 동그래진 눈을 분명히 보았다. 해리가 칸에 잠금 쇠를 거는 소리가 보기 좋게 울렸다. 이십대 남자와 서른 후반의 남자가, 남자화장실 칸에 손잡고 같이 들어가는 꼴을 보이다니…….

 

 

“어이, 포터. 이게 뭐하잔…”

“쉿.”

 

 

해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었다. 스네이프는 화낼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다시 순간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이 온통 나무들로 빽빽했다. 스네이프는 순간 금지된 숲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곧 그 장소가 아닌 걸 깨달았다. 그 곳보다는 정돈된 느낌이 들었고, 어딘가 익숙하다는 걸 스네이프도 알아차렸다. 이곳은 딘의 숲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처럼 낙엽이 덮인 얼어붙은 땅이 아니어서 금방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해리는 음식봉투와 텐트가방을 든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 근처 어딜 텐데….”

“여기엔 왜 온 거지? 포터.”

“아, 저 쪽인가.”

 

 

스네이프의 말은 못 들은 것 마냥, 해리가 앞장을 섰다. 스네이프는 물어보는 걸 그만두고 잠자코 해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푸르게 올라온 잔디와 흙을 밟으며 숲을 거니는 기분은 꽤 좋았다. 공기가 상쾌했고, 숲 속은 시원했다. 가끔씩 나뭇잎 사이로 새나 다람쥐 같은 것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앞서 걸으며 몇 번 두리번거리고, 약간 헤매더니 이내 찾던 것을 발견해냈다. 둘의 앞에는 연못이 고여 있었다. 스네이프도 눈에 익은 연못이었다. 해리는 연못 옆에서 텐트를 펼쳤다.

 

 

완전히 펴진 텐트는 겉에서 봤을 땐, 샀을 때 모습 그대로 작았다. 하지만 해리가 텐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이는 모습은 마트에서 본 그대로가 아니었다. 천장이 높아졌고, 방 두 개와 화장실, 부엌이 생긴 텐트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거, 우리 집이네요.”

 

 

‘우리’ 집이라. 뭐, 함께 산 지 몇 달이니 충분히 그렇게 부를 만 했다.

 

 

“새로 사서 채울 수는 없으니 집을 그대로 복사했다. 부엌에서 물을 틀면, 집에 물을 쓰는 것과 똑같지.”

“대단해, 완전히 집을 통째로 가져온 것 같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음식들은 안 샀어도 됐겠는데.”

“산거야 먹으면 되잖나. 그보다 포터, 여긴 대체 왜 온 거지? 갑작스럽게 캠핑이라도 하고 싶었나? 그건 이전에 질리도록 한 줄 알았는데.”

 

 

마법을 걸어 저절로 펴진 접이식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러면서 스네이프는 눈앞의 연못에 조용히 시선을 두었다. 나무 사이로 동그랗게 파여 있는 연못에, 햇빛이 부딪쳐 빛을 산란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었다. 머리 위로 높게 바람소리가 들렸다. 스네이프는 겨울, 얼어붙어 잠잠한 연못 아래로 고드릭의 칼을 흘려 넣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네이프에겐 고작 반 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질리도록 한 게 캠핑이었죠. 하지만 세베루스랑은 처음이잖아요?”

 

 

주변의 마른 낙엽과 가지들을 주워 모으며 해리가 대답했다. 가늘고 마른 가지들로 이뤄진 장작에 능숙하게 불을 피우는 해리의 모습은, 확실히 캠핑에 도가 튼 느낌이 나긴 했다.

 

 

“겨울에 왔을 때는 너무 추웠었던 기억만 있는데, 지금 오니까 딱 좋네요. 오늘은 비도 안 올 것 같고요.”

 

 

하늘을 흘낏 올려다보며 해리가 말했다. 아씨오, 주전자. 텐트 안에서 주전자가 날아와, 불이 붙은 장작 위에 올라앉았다. 해리는 밑바닥이 그슬리지 않도록 그걸 다시 공중에 조금 띄웠다. 물을 붓고 티백을 넣은 주전자가, 장작불 위에 동동 떴다. 해리는 불 앞에 쪼그려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급하게 나온 캠핑이라 이런 건 준비 못했었는데, 스네이프가 텐트에 부린 마법 덕에 한결 편해졌다.

 

 

해리는 다 끓은 찻물을 컵 두 개에 따랐다. 스네이프에게 하나를 건네며 해리도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해리에게 이런 감상적인 취미는 별로 없었지만, 스네이프와 나란히 숲 속에 앉아 아름다운 연못을 감상하는 기분은, 썩, 아니, 꽤 괜찮았다. 물론 이게 자신의 생일선물은 아니었다. 그저 생일선물을 받기까지의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훗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고 기억될 만큼, 모든 게 좋았다. 어디선가 노랫소리 같은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차를 홀짝이던 스네이프가 해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왜 여길 왔는지, 해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직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해리는 벌써 다 마신 컵을 내려놓고, 연못에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훌쩍 큰 키와 넓어진 등을 바라보며 스네이프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호그와트 입학식이 끝나고, 기숙사로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선 11살의 해리 포터의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릴리와 제임스의 아들. 너무나 혐오스런 존재이지만 앞으로 자신이 보호해야만 할 존재가 드디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던 날이었다. 그 날의 기억은, 박제된 필름 컷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다 자란 해리의 뒷모습에 그 작은 뒷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 달라진 등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도, 또 감정도, 이렇게나 달라질 줄은 몰랐다. 해리에 대해 느끼는 모든 것이 온통 놀라운 일 뿐이었다.

 

 

“해리.”

“네. …어! 이름 불러주셨네요.”

 

 

부름에 뒤를 돌아보던 해리가, 곧 이름이 불린 걸 깨닫고는 헤실 웃어보였다. 멍청한 건 전혀 변하지 않았지. 스네이프는 턱에 손을 괸 채,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해리가 스네이프에게로 다가오려 걸음을 뗐다. 스네이프는 손을 들어 저지하며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해리가 눈을 깜박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금세 스네이프는 해리의 옆으로 다가왔다. 연못 앞에 해리와 나란히 선 스네이프가 오른손을 뻗어 해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해리는 가늘고 긴 스네이프의 하얀 손가락이, 약간 그을린 자신의 뺨을 만지는 대로 가만히 보고 서있었다.

 

 

“…사랑한다.”

 

아주, 조용하고 심상한 말투였다. 뺨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던 해리는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시선을 올려 스네이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리는 이런 걸 생일선물로 기대하진 않았다. 너무나 큰 걸 받아버린 느낌이었다. 해리가 두 팔을 뻗어 스네이프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자기 뭐예요…. 정말 세베루스의 페이스는 따라갈 수가 없어….”

“글쎄. 포터, 너보다야 그럴까.”

“아뇨, 저보다 세베루스가 훨씬 그래요. 지금 사랑한다고 해주실 줄은 몰랐다구요.”

“……언제 해야 적당한 말일지 몰라서,”

 

 

해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에 묻었던 고개를 들어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흰 뺨이 약간 붉어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이라고 하기엔, 맞붙어있는 가슴으로 서로의 박동이 크게 느껴졌다.

 

 

“하고 싶을 때…… 해버렸군.”

 

 

스네이프가 시선을 돌렸다. 태연한 척 하는 게 조금 힘들어진 것 같았다. 해리는 제 가슴이 아주 세고 빠른 박자로 쿵쾅쿵쾅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해리가 고개를 숙여 스네이프의 입술을 찾았다. 스네이프가 양 손을 해리의 등허리에 조용히 올렸다. 바깥에서는 처음 나눠보는 키스였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머물다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생일 축하한다, 해리 포터.”

“고마워요, 세베루스. 정말 최고의 생일선물이에요….”

“이걸… 바라고 있었나?”

“아뇨, 아닌데…. 제가 바란 것보다 더, 더, 더! 좋아요.”

“흐음…. 그래, 이제 말해줄 때도 됐지 않았나? 네가 생각한 내게 받고 싶은 생일선물이 뭔지.”

“음, 제 생각엔… 그건 조금 더 날이 어두워졌을 때,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엉큼한 거면 연못에 빠뜨리고 그대로 두고 가겠다, 포터.”

“아니에요!”

 

 

픽, 웃음을 흘리며 스네이프가 해리의 몸에서 떨어졌다. 아니라니까 다행이군. 여유로운 얼굴을 되찾은 스네이프가 음식봉투로 다가갔다. 해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는 어렵고 겁이 났지만, 막상 뱉고 보니 그렇게 힘든 말도 아니었다. 차라리 어려운 마법주문을 외우는 게 혀가 꼬여 더 어렵겠지. 그 간단한 말은, 해리를 기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안정을 가져와주었다.

 

 

마법 같군. 과연, ‘사랑’은 ‘마법’이다.

 

 

 

 

 

 

 

 

11편이랑 연달아 써서 올리고 싶었는데, 애매해서 10편만 써서 올려요.

해포세계관에서 사랑이 진짜 마법이잖아요...(해리를 볼드모트로부터 보호해준)

그게 전 참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해리가 기대하는 생일선물이 뭘지 눈치채신 분 있어도, 속으로만 짐작해주세요ㅠ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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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해리는 양 손을 스네이프의 등 아래로 조심스레 쓸어 넣었다. 스네이프의 젖은 까만 눈이 해리를 계속 쫓아왔다. 해리가 작은 변화만 보여도 스네이프는 민감히 반응하며 몸을 뒤틀었다. 비좁은 소파는 너무 낡았다. 성인 남성 둘이 올라탄 소파에선 쉴 새 없이 끼익하고 바닥을 긁는 소음이 났다. 그 소리에마저도 해리와 스네이프 서로의 감각이 크게 날뛰었다. 스네이프의 등을 어루만지는 해리의 손은 이제 툭 불거진 견갑골을 따라 더듬었다. 스네이프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등에서 터지는 손끝의 전율에 온통 감각을 곤두세웠다. 해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열이 나고 전기가 올랐다. 한 번 사정했던 성기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배꼽까지 솟아서, 스네이프의 민둥한 배 밑을 문질러댔다.

 

 

해리의 오른쪽 손의 중지가 움푹 팬 척추 선을 따라 밑까지 긁어내려왔다. 아아... 스네이프는 그 자극엔 버틸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외로 돌렸다. 감은 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해리가 눈을 떠달라고 재촉했다. 스네이프는 아랫입술만 깨물다가, 해리의 양 손이 엉덩이를 잡고 주무를 때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 작고 살집이 없는 둔부가 해리의 큰 손에 한 쪽씩 잡혀있었다.

 

 

스네이프는 며칠 전 아침식탁에서 나온 대화를 떠올렸다. 해본 적 없어도, 저는 잘.... 그래, 포터 너니까 잘 넣을 수 있겠지.... 스네이프 혼자만이 느낄 수 있었던 묘한 뉘앙스의 대화였다. 스네이프는 농구공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 자신이 해리의 손 안에 잡힌 공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엉덩이를 지분대던 손가락은 슬금슬금 가운데 갈라진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느낌이 너무 묘해서 스네이프는 그만 창피해졌다. 해리에게 가장 더러운 틈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해리가 목 뒤로 침을 삼켰다. 이 안이 얼마나 좋을지 몇 번을, 몇 백번을 상상했는지 몰랐다. 책을 읽는 스네이프를 자빠뜨려 무방비하게 벌려진 다리 사이를 원했던 나날들. 해리는 줄곧 스네이프를 원했다. 그의 육체만을 원하는 것처럼 욕정 했다. 하지만 막상 그의 나신을 마주했을 땐, 생각했던 것만큼 바로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것이 상상이 아니라 실제의 스네이프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원하고, 거칠게 안고 싶은 욕망은 항상 해리 안에 혼재했다. 하지만 그를 제 마음대로 해서, 큰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해리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살면서 자신 때문에 다치고 죽은 사람도 너무 많았다. 스네이프는 바로 그럴 뻔한 사람이었다. 1년간, 스네이프의 시신을 찾아 헤매면서, 해리는 그가 만약 살아있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주 많이 잘해주고 싶었다.

 

 

해리의 손가락이 스네이프의 골 사이를 벌써 몇 번이나 매만지고 쓸어내렸다. 잔뜩 민감해진 스네이프는 허리를 잘게 떨면서 눈을 몇 번씩 깜박거렸다. 다리가 해리의 몸 옆으로 벌려져있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손가락으로 그만 애 태우길 바랐다. 이제 그만 해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몰아붙여주길 원했다. 해리는 너무 오래 참았다.

 

 

“...세베루스, 나를 봐요.”

 

 

어쩐지 스네이프는 자신이 곧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해리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를 봐.’ 스네이프는 이제 그 때와 반대로 해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스네이프의 무릎 위에 뺨을 기대 묻은, 해리의 비스듬한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때 보여요...?”

“...그저, 해리 포터지.”

 

 

해리가 웃었다. 해리는 그 대답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스네이프의 아주 오랜 짝사랑의 상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초록 눈을 보고서도, 스네이프는 자신을 해리 포터라고 말해주었다. 담백한 스네이프의 말투는 솔직하고 분명했다. 해리는 정말로 스네이프의 눈에 자신만이 비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수님과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스네이프의 세워진 무릎에 여전히 뺨을 기댄 채, 그의 허벅지를 살살 미끄러뜨리듯 어루만지며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간지러움에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포터....”

“아깐 해리라고 불러주셨잖아요....”

“투정은.”

“세베루스.”

 

 

해리가 강하게 말해주는 제 이름은 다정함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서, 스네이프는 거부하기 힘든 모종의 힘을 느꼈다.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구멍의 주름을 따라 둥그렇게 만지는 해리의 손끝이 피부로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조금씩 다시 헐떡이기 시작했다.

 

 

“세베루스...?”

“......그래, 해리....”

“역시 세베루스가 불러주는 내 이름, 듣기 좋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무릎에 뺨을 문질렀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속으로 생각하던 것처럼 생각하는 해리에게 웃음이 났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스네이프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해리여서 특별하게 와 닿는 것처럼, 해리 역시 스네이프가 불러주는 제 이름이 특별하게 들렸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걸 느끼며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수가 있을까.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그걸 배웠다.

 

 

영원했으면 좋겠다.... 욕심이 커져갔다.

 

 

스네이프가 다리를 들어 해리의 엉덩이 위쪽의 허리를 교차해 붙들었다. 해리는 자신의 생각보다 적극적인 스네이프를 볼 때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었다. 어쩐지 수업을 가르치던 스네이프가 생각나기도 했다. 주도하는 것을 능숙하게 해내던 스네이프였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수업을 진행해도, 학생들은 바짝 긴장해서 귀담아듣곤 했다. 해리는 지금, 그 때와는 다른 긴장을 느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짓을 해서 스네이프가 무슨 반응을 보이든, 너무나 사랑스러울 것이었다.

 

 

스네이프의 다리에 의해 바짝 앞으로 숙여진 해리는, 가까워진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둔부 사이로 해리의 것이 꺼떡이며 부딪쳤다. 액이 흘러 미끌미끌 거리는 성기가 스네이프의 회음부를 적셨다. 어차피 사람의 체온일 텐데도 이토록 뜨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뭔지,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움찔 경련했다. 둘의 숨소리가 점점 커졌다. 해리가 입술을 크게 벌려 스네이프의 입술을 삼켰다. 섞이는 혀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격렬하게 혀를 섞으면서 둘 모두 눈을 뜨고 있었다. 까만 눈과 녹색 눈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공기에서 홧홧한 열기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너무 뜨겁다....’ 스네이프는 머리가 어지러워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해리가 키스하며 제 성기를 끊임없이 스네이프의 회음부에 비벼댔다. 삽입하고 추삽질하듯 움직이는 성기에 마찰열이 올랐다. 그만, 차라리 넣어서 움직여, 스네이프는 발작적으로 토로하듯 말할 뻔했다. 양 손으로 얼굴을 움켜쥔 스네이프가 흑, 흐윽 하는 신음을 냈다. 해리는 양 손으로 스네이프의 엉덩이를 잡고서 옆으로 밀어내듯 당겼다. 구멍이 벌어져 벌건 속살이 드러났지만 해리의 눈은 정신없이 스네이프만을 살피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은 얼굴, 그 밑으로 헐떡이는 신음성을 뱉고 있는, 벌어진 입과 붉은 혀와 흘린 침에 시선이 온통 홀렸다.

 

 

“제, 제발....”

 

 

스네이프가 견딜 수 없는 듯 도리질을 쳤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숨은 귀를 찾아 입술을 지분거렸다. 민감해져 있는 스네이프는 자극에 허리를 조금씩 위로 움직였다. 그걸 비웃듯 해리의 양 손이 힘 있게 아래로 잡아끌었다.

 

 

“아...!”

 

 

그와 동시에 구멍에 해리의 귀두가 슬쩍 밀어 넣어졌다. 반사적으로 스네이프의 턱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드디어, 라는 생각이 스네이프의 머릿속을 스쳤다. 기대감보다는 사실 두려움이 더 컸다. 스네이프의 가슴이 무질서하게 쿵쾅거렸다. 걱정이 빠르게 머리를 채웠다. 내일 움직일 순 있을까, 해리가 제게 줄 느낌은 과연 어떤 걸까, 섹스는 정말 쾌감뿐일까, 해리의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모든 게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을 안겨줄 상대가 해리임으로 허락할 수 있는 공포였다.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처럼 스네이프는 여전히 다리를 벌린 채였다.

 

스네이프의 까만 눈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어린 걱정과 두려움을 읽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받아들여주기로 한 그에게 해리는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게요.”

 

 

머리카락 사이에 묻힌 스네이프의 귀에 대고 해리가 진득하게 속삭였다.

 

 

“포터....”

 

 

스네이프는 귀에 바짝 닿은 해리의 입술의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귀를 타고 머리를 울리는 해리의 목소리가 뇌 안을 깊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해리의 손등이 스네이프의 뺨과 턱을 어루만지며 계속해서 속삭였다.

 

 

“몇 번이나 상상했어요. 어떻게 해야 교수님이 좋아할지... 읏, 제 상상 속에서 교수님은....”

“아... 하아.......”

“아파하다가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교수님을... 당신을...!”

“윽...! 아아, 흐윽, 끅, 포터, 그만....”

“흥분하게─ 만들어서요....”

 

 

말을 하면서 해리는 조금씩 천천히, 꾸역꾸역 묵직하게 제 것을 스네이프의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겉으로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더 심한 이물감을 느꼈다. 생경하고 불쾌한 고통이었다. 스네이프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까맣고 긴 머리카락이 땀에 젖은 이마에 달라붙었다. 해리가 땀을 닦아주며 치덕하게 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주었다. 해리의 손길은 너무 다정했다. 스네이프는 고통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욱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해리의 얼굴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지금 내 꼴이... 하아...! 한심하지는 않나, 포터...?”

“무슨... 소리세요? 말도 안 돼, 뭐가요...? 윽! 아, 조여...!”

“헉...! 읏, 으윽...!”

 

 

뿌리까지 박아 넣은 해리가 소파의 팔걸이를 짚고서 숨을 골랐다. 스네이프는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무지근한 통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 이렇게, 땀범...벅에, 지저분하게 머리는... 흐, 흐트러지고.... 하아, 네 아래에 깔린 내가... 한심하지 않냐 물었다... 포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제 눈엔 예쁘기만 한데요....”

“하...! 그걸 칭찬이라고, 하는 건가, 네 놈은....”

“어...... 그렇지만 지금 모습을 멋지다곤 못하겠는걸요?”

 

 

해리가 말을 뱉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고통을 누르고 있던 스네이프도 웃음이 슬며시 터졌다. 그 바람에 아래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순간 더 커져서, 아픈 신음이 뒤이어 스네이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해리는 아파하는 신음에 당황해서 스네이프의 등허리를 황급히 쓰다듬었다. 그것이 또 우스워서, 둘은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흘려버렸다.

 

 

“교수님은 왜 그런 걸 물으세요? 교수님을 보는 제 표정이 이상했어요?”

“...너한테, 이런 정돈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내가 달가울 리 있겠나, 포터.... 난 네 선생이었고... 여러 과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하긴, 뭐.... 신경 쓰이시겠죠, 교수님의 입장에선? 하지만, 세베루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잖아요.”

 

 

또, 이렇게 느닷없이 사랑을 내뱉는 해리가 스네이프는 당황스럽고 무안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스네이프도 할 말이 없었다.

 

 

“포터, 넌 정말....”

 

 

당혹스러워. 그리고 사랑스럽다.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해리는 웃으며 스네이프의 젖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사랑스러워요. 너무나.”

 

 

그 말은 예쁘다란 말보단 듣기 싫지 않겠죠? 해리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스네이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며 환하게 웃는 해리를 보며, 스네이프는 사랑스럽다는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낯간지러운 생각이라니. 하지만 지금 해리의 것을 엉덩이에 넣어놓고, 무슨 생각을 부끄럽다 여기겠는가.

 

 

 

 

“아...! 학, 포, 포터, 응, 읏...! 앗...!”

“헉...허억, 세베루스...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양쪽 오금을 붙잡은 해리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허공에서 스네이프의 마른 두 다리가 달랑거렸다. 둘 모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한 번도 무엇을 안으로 들여 본 적 없는 곳이 출납당하고 있었다.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쏠려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속살이 찢기는 것처럼 아팠고 아래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간질간질하고 오묘한 감각이 전신을 둘러서, 완전히 이 행위를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고통은 해리가 자신의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걸 더욱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아파... 아파, 윽...!”

“아파요? 아파...? 어떡, 하지, 세베루스, 헉, 헉....”

“여... 여길.”

 

 

스네이프는 온 몸에 힘이 쭉 빠져서 손을 들 힘도 없었다. 턱짓으로 아래를 겨우 가리킨 스네이프의 고개가 다시 뒤로 무너졌다. 해리는 붙잡고 있던 오금을 제 어깨에 올리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더 깊게 들어오는 아픔에 스네이프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해리는 다급히 스네이프의 것을 붙잡았다. 혼자 꺼떡이며 침 흘리듯 질질 선액을 뱉던 것은 해리의 손이 닿자마자 아찔한 전율을 일으켰다. 해리는 확인받듯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의 눈이 살짝 풀려서 해리를 마주 보았다. 해리의 입 꼬리가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질척한 기둥을 해리의 오른손이 힘 있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스네이프의 입에서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허벅지가 쉴 새 없이 벌벌 떨렸다.

 

 

“읏... 으으... 응, 흣....”

“좋아요? 세베루스, 조금 나아요?”

“아, 흡...! 그, 그래... 읏...!”

 

 

해리가 계속 허리를 움직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리의 손에 맞춤이라도 된 것처럼 성기가 잡혀 계속 흔들어지니, 스네이프의 엉덩이 안쪽의 둔통도 덜해졌다. 조금 여유가 생긴 스네이프는 해리의 어깨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다리를 내려 허리를 옭아맸다. 해리가 몇 번을 더 그대로 박아 넣다가, 스네이프의 허리 아래로 팔을 넣어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단번에 힘을 주어 스네이프를 제 위로 앉혔다. 스네이프는 갑작스럽게 해리의 위에 앉은 자세가 되어 당혹스러워했다. 동시에, 자세 탓으로 더욱 깊게 안을 파고드는 해리의 성기가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지만 해리는 슬며시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움직이니까 어떻게 아픈지 배려를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세베루스가 움직여 봐요.”

“뭐, 뭐라고, 포터...?”

“허리, 움직여 봐요....”

 

 

스네이프의 귀에 바짝 입술을 붙인 해리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이런 식으로 저를 대하는 해리는 처음 봐서, 스네이프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평소처럼 그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해리 포터가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듯 하는 건, 섹스 자세에서 말고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좋다, 포터. 넌 절대로 움직이지 말도록. 내가 아플까봐 네가 배려해주는 것이니까.”

 

 

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전, 스네이프가 해리의 가슴팍을 밀어뜨렸다. 순식간에 해리는 뒤로 넘어지며, 스네이프와 마주 앉아 보던 자세에서 완전히 스네이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정말 처음 보는 광경인 걸.... 해리는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집 자체의 채도가 낮긴 했지만, 여전히 시각은 밝은 오후였다. 환한 천장 아래, 벌거벗은 하얀 그가 제 위에서 아주 또렷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잠시 숨을 고르며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왼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의 납작한 가슴팍이 박동하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엉덩이 안쪽의 해리의 성기가 더 커지고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포터, 또 흥분했나?”

“그야, 세베루스가 너무 에로틱한걸요....”

 

 

해리는 제 잘못이 아니라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 스네이프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결국 스네이프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시선은 다시 돌아왔다. 해리의 시야로, 스네이프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섹시한 얼굴이 보였다. 해리는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그가 이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히 사정할 수 있을 만큼 야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모습이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네 얼굴을 보면 과연 그런가 싶어지는군.... 멍청하게 헤 벌어진 얼굴로 날 보니까, 포터.”

 

 

윽, 해리는 자신이 좀 멋있어 보이길 바랐는데, 그건 스네이프에게 바랄 수 없는 꿈이었나. 해리는 약간 실망스러워졌다. 달뜬 해리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져서, 스네이프는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왜 표정이 그렇지? 난 그 우스꽝스런 얼굴을 보는 게 재밌는데 말이다. 해리, 움직이지 마.”

 

 

스네이프는 경고하는 것처럼 말을 했지만, 해리를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정말, 달콤한 경고네요... 세베루스. 그는 당근과 채찍을 아주 적절히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해리는 알겠다는 듯이 항복하는 것처럼 양손을 들어보였다. 스네이프가 픽 비웃더니 양 쪽 무릎을 세우며 고쳐 앉았다. 해리는 눈알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줄 알았다. 얼굴로 훅 피가 몰렸다. 이건 너무.......

 

 

경고했지? 라고 말하는 듯한 스네이프의 눈이 해리를 내리깔아보았다. 해리는 당장이라도 스네이프의 허리를 잡고, 그의 가슴을 주무르며 움직이고 싶었지만, 동작그만마법에 걸린 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침만 삼키면서 스네이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확 벌어진 하얀 다리를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화끈 거렸다. ‘세베루스는 자신이 얼마나 야해 보이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저런 자세를 막 하는 거야....’ 라고, 해리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해리는 숨이 딱 멈추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스네이프가 해리를 내려다보며 허리를 둥그렇게 움직였다.

 

 

“윽...! 아... 하아, 하.... 세베루스, 아....”

 

 

스네이프는 움직이며 자신이 덜 아프도록 신경 쓰면서도, 해리가 제대로 흥분하는지도 계속 지켜보았다. 해리의 입에서 계속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지금 자신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무엇이든지 잘 해내면 기분이 좋은 법이었다. 스네이프는 뒤로 약간 더 몸을 기울이며 왼손으로 해리의 허벅지를 짚었다. 몸이 뒤로 당기면서 긴장이 들어가자, 구멍 안쪽의 근육도 조여들었다. 해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성기를 꽉 무는 스네이프의 내벽을 느꼈다. 너무, 끔찍할 정도로 황홀하다. 스네이프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오른손으로 제 성기를 잡고 흔들면서, 스네이프가 허리를 계속해서 돌렸다. 해리는 눈앞의 장면에 미칠 것만 같았다. 현실이 아닌 것처럼 어지러웠다. 엄청난 흥분이 온 몸을 덮었다. 완벽한 엑스터시는 이것을 말하는 것일 거다.

 

 

“아... 응, 흣... 해리, 읏... 아, 아─.”

 

 

스네이프 역시 해리와 같았다. 성적인 흥분으로 점점 이성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아까부터 해리의 것이 눌러대는 안쪽의 어딘가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황홀한 쾌감이 일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아찔아찔하게 찾아드는 그것을 놓치기 싫었다. 스네이프는 그것에만 집중하느라 그것 외엔 뭘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해리는 자극을 느끼면서 하릴없이 꽉꽉 주먹만 틀어쥐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가 주는 자극만을 받기엔 해리는 너무 강하게 그를 원했다. 해리는 언제나 그의 안에 박아 넣기를 원해왔던 것이었다.

 

 

스네이프의 풀린 눈이 저를 보고 있는 듯, 아닌 듯처럼 보였다. 해리는 몸을 일으켜서 그를 소파로 강제로 밀어 눕혔다. 순간 당황해서 흥분상태에서 빠져나온 스네이프의 놀란 눈이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거칠게 숨을 내쉬며, 날 것의 시선으로 저를 욕망하며 보고 있는 해리의 눈을 마주치자, 스네이프는 다시 입 꼬리를 올리며 웃을 수 있었다. 자신을 원해서 미칠 것 같아하는 해리의 저 모습을 보는 게, 스네이프는 그 어떤 물리적인 쾌락보다 더 큰 쾌감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그가 그를 원했다. 그리고 그도 그를 원했다. 이보다 완벽한 결합이 어디 있을까?

 

 

“......응! 흐읏, 윽...! 포터, 해리, 해...리, 크윽! 아아...! 더 더어...!”

“세베루스, 세베, 루스...! 윽, 크읏...!”

“앗, 아아, 응, 응... 흐읏, 제발, 제발....”

“원해요, 사랑해요....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아아,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팔을 확 뻗어 해리의 뒤통수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둘은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이성이 없는 세계에선 본능만이 날뛸 뿐이었다. 더 닿고 싶고, 더 원해도 괜찮으며, 어떤 부끄러움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어깨를 더 꽉 끌어안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해리가 혀로 스네이프가 흘린 침과 눈물로 번들대는 얼굴을 마구 핥아주었다. 그럴 리 없지만 단 맛이 나는 것 같아서, 해리는 계속 이대로 그를 핥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어 치우고 싶어. 해리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스네이프의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그 말을 듣더니 해리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지금, 먹고 있지 않나...?

 

 

해리는 스네이프의 구멍이 강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만족감이 밀려왔다. 어깨를 틀어쥔 스네이프의 손과 그의 온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게, 해리의 피부로 느껴졌다. 해리의 음모와 배로 질척하고 묽은 것이 후드득 떨어졌다. 해리는 조심스레 포옹을 풀었다. 스네이프는 탈력한 붉은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해리의 성기가 스네이프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해리의 성기모양에 맞춰 크게 벌어진 구멍에서 주르륵, 제가 쏟아낸 정액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해리는 고개를 숙여 스네이프의 젖은 눈가에 가볍게 키스해주었다.

 

 

 

 

창가로 붉은 빛이 스며드는 모습은 따듯하고 아름다웠다.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스네이프는 비좁은 소파에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었다. 물론, 이 소파도 한 사람만 누워있다면 별로 비좁진 않았겠지만, 지금 이 소파엔 자신 말고도 자신을 끌어안은 채 누워있는 해리 포터가 더 있었다.

 

 

해리는 가끔씩 스네이프의 이마나 눈가, 귀, 콧등, 입술 등에 쪽쪽 입술을 쪼듯이 내려놓았다. 새도 아니고.... 스네이프는 아무 표정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이 녀석이 언제까지 이럴까 싶은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해리는 지금 스네이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해도 젖은 나오지 않는다만.”

“풉.”

“더럽게... 가슴에 침을 뱉다니....”

 

 

스네이프가 질렸다는 얼굴로 해리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찌뿌듯한 근육 하나하나가 다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를 따라 몸을 일으킨 해리는 또 스네이프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스네이프답지 않게 온 몸이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았다.

 

 

“가끔씩 세베루스는 제가 상상도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한다니까요....”

“뭐, 젖이라던가 그 말말인가.”

“네. 잘 아시네요.”

“안 나온다고,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네 놈의 징그러운 입술이 자꾸 내 가슴을 지분댔잖나.”

“제 입술이 뭐가 징그러워요! 저 잘생기지 않았어요?!”

“....... 이 세계에 네 팬들이 너무 넘치게 많아서, 아무래도 네 놈이 정신 못 차리고 돌아버린 모양이군.”

 

 

아, 해리는 스네이프의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해리가 지니와 교제하는 걸 알면서도 추파를 던지는 여자들이 너무 많았던 건 사실이었다. 잘생겼다는 말도 볼드모트를 없앤 후 많이 듣긴 했는데, 음.... 다 입 발린 소리였나...?

 

 

“근데 세베루스, 마법으로도 젖이 안 나올까요?”

“네 머리를 터뜨려서 뇌수가 흘러나오겐 할 수 있는데, 포터.”

 

 

해리는 이 대화가 격정 넘치던 첫 정사를 마치고 나눌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히 들었다. 그래서 입씨름은 그만 두고 스네이프의 약물을 모아둔 창고에 다녀왔다. 근육을 진정시키는 치료약들을 챙겨서 나온 해리를 보고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단숨에 약을 들이켠 스네이프는 금방 몸이 풀리는 걸 느꼈다. 누가 만들었는지 효과는 아주 좋군. 해리는 약을 마시는 스네이프 옆에서 허물처럼 벗어둔 제 옷을 다시 몸에 꿰어 넣었다. 스네이프도 해리가 가져왔던 옷을 입었다. 이 옷 하나 입는데 정말 엄청나게 시간을 들였단 생각이 들어, 우스워졌다.

 

 

“아, 진짜 배고프다. 저녁은 제가 할까요? 세베루스, 나가서 먹을까요?”

“나가긴 귀찮다. 포터, 네가 해라.”

“좋아요, 저녁은 제가. 근데 왜 아까부터 포터라고 계속 그러세요─. 전 세베루스라고 부르잖아요─.”

“섹스 중에도 포터라고 불렀다.”

“해리라고 해줘요!”

“해리.”

“헉.”

 

 

불러 달라 해서 해줬더니, 해리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는 게 스네이프 눈엔 아주 멍청해보였다.

 

 

“해달라면 해줘요?!”

“그 발언은 대체 뭐지, 포터...? 내가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라도 하나? 그래, 내가 네가 좋다하니 키스하고, 원하면 섹스해주긴 했군.”

“진짜 어마어마하게 비뚤어지셨네요.... 그래도 사랑스럽지만요.”

“너야말로 눈이 비뚤어졌어.”

 

 

해리가 푸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스네이프는 뚱한 얼굴로 턱을 괸 채 해리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네가 날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저도 왜 세베루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스네이프는 한 쪽 눈썹을 치켜떴다. 본인까지 저렇게 생각한다 말하니, 스네이프는 조금 기분이 상했다. 제 몸에 그렇게 흥분해놓고선.... 억울한 마음과 불안함이 함께 들었다.

 

 

“근데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해요?”

 

 

스네이프는 자상한 해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선 언제나 따듯하고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세베루스는 무슨 이유로 저를 좋아하게 됐는데요?”

“뭐? 내가 무슨, 널...좋아한다고? 무척이나 건방지군, 포터....”

 

 

스네이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스네이프의 가슴이 정사를 나눌 때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해리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턱 끝이 파르르 떨렸다.

 

 

“다 알아요.”

“.......”

“저 좋아하시잖아요.”

“......윽.”

“싫은데 저를 받아들여줄 사람이 아닌걸요. 몇 년을 교수님 아래에서 배운 사실인데. 덤블도어 교수님이 시킨 오클러먼시 수업도 때려치우신 분이시잖아요. 뭐... 그럴만하긴 했지만. 어쨌든, 교수님은 정말 싫으면 버티실 분이 아니세요. 그렇죠?”

“...제길. 언제부터 그렇게 논리정연 했지? 포터, 네가?”

“사실 논리적인 건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베루스니까 알 수 있었어요. 그냥 알겠던 걸요....”

 

 

스네이프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저 애송이에게 들켜버릴 줄이야. 스네이프의 자존심에 금이 가고, 치욕스러움에 화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들켜버린 걸 어쩌겠나 싶었다.

 

 

“근데, 세베루스 입으로 듣고 싶어요.”

 

 

해리가 흘낏흘낏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마를 짚은 손 너머로 해리를 쳐다보며 스네이프가 눈을 부라렸다. 짜증스러운 놈.

 

 

“아, 알고 있으니까 말해도 괜찮, 잖...아요?”

“...싫다.”

“왜요! 아깐 해리로 불러달라니까 바로 해줬으면서!”

“저녁이나 해, 망할 포터!”

 

 

해리는 잔뜩 실망해 부루퉁한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스네이프는 팔짱을 낀 채, 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식기만을 기다렸다. 저 녀석은 어떤 면에선 부쩍 성장한 것 같으면서도, 발전이 없는 부분은 죽을 때까지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좋아한다는 말이 듣고 싶다니, 공격주문이 날아가지 않은 걸 감사해라, 포터. 스네이프는 결국 불에 타는 것 같은 얼굴을 손으로 묻은 채 끙, 앓는 소리를 약하게 냈다.

 

 

 

 

 

 

 

 

흐흑 댓글 감사해요 힘이 난다 글 쓸 힘이 쑥쑥!

사실 감상과는 상관없이 저는 글을 쓰는 게 즐거워서 글을 써왔지만, 

해주신 말씀들이 너무 고맙고 기뻐서 기운을 엄청 받았습니다.

지금 글을 쓰는 계절은 연말인데 글 속 계절은 뜨겁고 Hot한 여름입니다 ㅋㅋ

항상 저는 계절과 반대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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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걸 교제한다고 표현하는지,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스네이프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날 이후 해리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직시했다. 물론 그게 선을 넘을 명분은 되지 않았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사랑을 담아’ 바라보는 시선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은 확실한 변화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해리는 자신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사실 해리는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스네이프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욕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집착당하는 것은 기분 나빴던 경험뿐이었지만,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받는 시선은 즐길 수 있었다.

 

해리의 초록색 눈이 릴리를 닮아서 좋아한 것은 이제 예전의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해리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해리의 초록색 눈이 좋았다. 그 눈에 담긴 진심이 신선했고, 몹시 뜨거워서, 스네이프는 재밌었다. 해리가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예전의 스승은 제자를 기특하게 여기는지도 몰랐다. 한번은 안겨줘도 되지 않을까, 입술을 허락해줘도, 수고했다는 칭찬정도로 자신의 일부분을 내주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건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고 스네이프 나름의 방식이었다.

 

사실 스네이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를 참게하지 않으면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에너지가 쏟아질 것을. 스네이프는 늙지는 않았어도 해리만큼 젊지도 않았다. 사랑 받는 것은 처음이었으며 이미 평생을 사랑에 진저리치며 살아왔다. 해리는 제일 높은 곳의 태양이었다. 기울어진 달이 버텨낼만한 불의 세기는 아니었다. 간혹 왜 그런 애정이 자신을 향해 쏟아질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자존감이 낮아서일까? 하지만 스네이프는 객관적으로도 자신이 그렇게 매력 있는 남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리에게선 그런 스네이프의 예상을 넘어서는 사랑이 느껴졌다. 해리의 넘치는 뜨거움이 스네이프는 가끔 곤혹스럽고, 사실 조금 기뻤다.

 

 

스네이프는 양피지를 꺼냈다. 주문이 걸린 깃펜이 조지에게 보낼 답문을 작성했다. 일전의 사랑의 묘약이 완벽히 숙성 되었으니 오늘 사람을 통해 물품을 보내겠다는 편지였다. 해리가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마시고 옆 마을의 한 머글 모습을 빌려 다녀올 계획이었다. 언제나 다이애건 앨리에 다녀오는 건 해리였다.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낼 생각이었다.

 

“교수님, 오늘 할 일 있으세요?”

 

언제나처럼 스네이프가 하는 양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해리가 양피지의 내용을 읽고 물었다. 스네이프는 대수롭지 않게 없다고 대답했다.

“같이 가지 않을래요?”

 

그 다음 말은 굉장히 의외였다. 마법사들에게 스네이프의 노출을 꺼리는 해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예상 밖이라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해리가 슬며시 웃었다.

 

“교수님이 너무 밖에 안 나가시니까... 외, 외출 신청이에요.”

 

데이트 신청이라. 항상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외출 신청을 하기에 스네이프에겐 낯선 단어였다. 물론 호그와트에 있을 땐 스네이프도 릴리와 외출을 했었다. 그녀가 제임스와 외출을 가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나도 변장을 해야 하나?”

“...음, 교수님은 안 하셔도 되지만... 제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네.”

“머리카락은 가져 왔나?”

“제가 가르치는 애들 중에 한 명인데, 여기... 머리카락을 가져왔어요. 어린아이면 데리고 다니기 편할 것 같아서요. 옷도 거기에 있는 체육복 하나를 가져왔어요.”

“데이트라더니 애를 데리고 다니면 기분이 나겠나, 포터?”

 

흥, 비웃으며 스네이프가 해리가 건넨 머리카락을 건네받았다. 제 것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이었다.

 

“그, 그 애가 교수님이랑 제일 닮아서...”

 

해리가 볼을 긁적이며 쑥스럽게 답했다. 흠, 타인으로 변신시켜놓고서도 제 그림자를 보고 싶다는 건가. 스네이프는 해리의 그런 낯부끄러운 애정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어하지. 스네이프는 해리의 생각보다 훨씬 흔쾌히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해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짜 제 모습과 데이트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기뻐해서야. 스네이프는 이런 애정이 정말 때때로 곤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의 예전 여자 친구들에게도 저랬을까? 스네이프는 레질리먼시를 통해 초와 키스하는 해리를 본 적도 있었고, 지니와 교제한 것도 알고 있었다. 분명 과거로 돌아오기 전까진 지니 위즐리와 평범히 교제하고 있었지 않을까...

 

시간을 채우고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면, 해리는 어떻게 나올까? 스네이프는 그럼 이 연애 아닌 연애도 그 때까지만 유효기간이 남은 거겠지,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집주변을 돌고 있던 부엉이(예언자일보를 가져다주는 부엉이에게 부탁한 친구 부엉이였다.)의 다리에 답신을 묶었다. 스네이프는 다이애건 앨리의 위즐리 형제 가게로 먼저 떠난 부엉이를 부엌의 작은 창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식사로 때울 프렌치토스트를 구웠다. 해리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스네이프는 토스트를 썰어 입으로 넣으면서, 남은 애정의 유효기간에 대해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스네이프는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가져와서 한 컵씩 액체를 채웠다. 해리가 가져온 머글 머리카락을 약에 집어넣자 갈색으로 변했고, 머글 아이의 까만 머리카락을 넣은 약은 밝은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닮았다더니, 약의 색은 해리의 눈 색을 닮았다. 스네이프는 거리낌 없이 약을 들이켰다. 맛도 끔찍했지만 몸이 변형되는 기분 나쁜 느낌도 오랜만이어서인지, 변화하는 아이와 자신의 신체 차이가 커서인지 더욱 끔찍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스네이프의 눈높이는 한참 아래에 있었다. 스네이프는 어린 시절이 까마득했기에, 원랜 이렇게 세상을 올려다봤었던가 싶었다.

 

“교수님, 여기 옷...”

 

작아진 스네이프는 몸에서 흘러내리는 거추장스런 옷을 털어내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이 몸에 맞는 속옷은 사오지 않았는지 속옷이 없어 스네이프가 째려봤지만, 해리는 약을 삼키고 있어 눈치 채지 못했다. 해리는 까만색이 아닌 갈색이지만 자신과 같은 더벅머리의 남자로 변신했다.

 

“이 남자도 안경을 끼더라고요. 그래서 투명망토를 입고서 몰래 슬쩍, 했죠. 아무래도 안경을 끼는 게 편해서요.”

“포터, 내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을 뱉자마자 스네이프는 아이의 높은 목소리로 변한 제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해리의 눈엔 깜짝 놀라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해리는 그를 양 팔로 들어 올려 창문에 비춰주었다. 스네이프는 가볍게 해리의 품에 안긴 느낌이 신기했다. 그리고 창에 비친 아이의 얼굴이 조금 자신과 닮았나? 생각했다. 자신보다는 분명히 이 아이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울 테지만... 해리가 그 속에 자신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을 스네이프도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이 기뻤지만 아주 커다랗게 부풀어있기 때문에, 스네이프는 언젠가 그것이 펑 터져버리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여겼다. 해리의 사랑은 너무 크고 부풀고 뜨거워서, 그것의 영원함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외출 기분을 제대로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비축분의 폴리주스약과 머글 돈도 챙겨서, 순간이동이나 플루 가루도 쓰지 않고 둘은 머글식으로 런던으로 향했다. 열차를 타고 바라본 창밖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타인으로 변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해리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서, 스네이프는 어렵지 않게 그를 해리로 볼 수 있었다. 그가 안경을 껴서 더욱 해리와 닮아보였다. 해리는 가는 길에 보인 자판기에서 콜라 캔도 뽑아주었다. 훨씬 작아진 키로, 어른의 손에 작은 손이 잡혀서 걸으니 스네이프는 정말 자신이 보호받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 기분은 아주 마음 편했다.

 

스네이프는 최초의 기억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보호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보호’란, 스네이프에게도 아주 없는 경험은 아니었다. 릴리가 사람들 앞에서 저를 방어해준 것도 일종의 보호였다. 스네이프는 정말로 어둠의 마법에 빠진 어린 소년이었고 어둠의 마왕을 추종하는 슬리데린이었지만, 그녀는 친구로서 자신을 비방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하지만 또래의 보호와 어른의 보호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스네이프는 사실 교수들에게도 별 예쁨을 받지 못했고, 당시 기숙사사감인 슬러그혼은 차별의 대표 주자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머글 출신인 릴리를 좋아해준 것은 내심 기뻤다. 함께 민달팽이클럽에 갈 수 없었던 게 애석했을 따름이었다.

 

스네이프가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이만큼의 어른이 되어서, 한참 어린 그에게 보호받는단 느낌을 처음 느껴볼 줄은 몰랐다. 그건 제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해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가 해리였고, 자신이 스네이프이기 때문이란 걸 스네이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게 덤블도어가 늘 입에 담던 사랑인가. 계속 스네이프가 남은 기간을 생각하는 것도, 이것이 너무 행복하고 벅찬 일이라서 인걸 알았다. 너무 좋기 때문에, 끝나지 않았으면 하기에 스네이프는 끝을 셈해보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것은 여전하군, 세베루스 스네이프. 릴리를 그렇게 사랑해놓고서. 이렇게 자신이 사랑받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해리의 사랑이 표면으로 느껴져서,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하고 있다니 말이다. 한심했지만 스네이프는 해리에겐 티내고 싶지 않았다.

 

둘은 런던에 도착했다. 앞만 보며 걷는 런던의 머글들은 모두 바빠 보였다. 다이애건 앨리로 들어가기 위해 리키콜드런까지 걸어가면서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아 올렸다. 교수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한적해지면 내려놓을게요. 변신한 낯선 사람의 목소리로 해리가 스네이프의 귀에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이렇게 안아들을 만큼 번잡한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해리의 목에 말없이 양 팔을 둘러 안겼다. 해리는 기쁨에 작은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여기, 사랑의 묘약입니다, 위즐리 씨. 효과는 보장합니다.”

“오, 누구에게 써본 적 있으신가요?”

“아, 전 쓸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걸 팔러 온 거죠.”

“아하, 이런! 괜한 참견이었군요! 아, 이 꼬마가 그럼 아드님? 장난감 하나 줄까, 꼬마야?”

“...필요 없어.”

 

스네이프는 조지의 앞에서 팔짱을 낀 채 퉁명스레 답했다. 조지는 오, 그래? 그런데 난 네가 맘에 드는데, 꼬마야! 이거 가져라, 이거 가져. 하며 스네이프에게 끊임없이 하품을 하는, 작은 검은고양이 장난감을 쥐어주었다. 해리는 속으로 웃겨죽겠는 듯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스네이프는 질색하는 얼굴로 뒤편의 장식장에 그걸 도로 올려놓았다. 해리는 끅끅 소리를 내며 조지 모르게 웃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짜증스럽게 해리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현재 겉으로 보기에 스네이프의 또래로 보이는, 그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들도 가게 내의 온갖 신기한 장난감들에 신나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데 전혀 관심 없이 시큰둥하고 삐딱하게 서있는(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스네이프는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조지는 가게 주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이런 손님에겐 더 팔아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 법이라며 해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해리는 물약의 대금을 받고서 스네이프를 불렀다. 사고 싶은 것 없니? 하고 해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스네이프는 어이가 없어 얼굴을 팍 찡그렸다. 조지와 해리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정말 왠지 모르게 이 꼬맹이, 스네이프 교수가 생각난다니까! 아, 당신도 알죠? 그에게서 수업을 받았었죠?”

 

갑작스런 조지의 말에 해리는 뜨끔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천연덕스런 얼굴이었다. 그걸 보고 해리도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했다.

 

“어, 저도... 네! 물론, 그랬죠... 하지만 전... 음, 마법의 약은 잘 못해서... 그 교수님에겐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군요... 하하! 지금은 이렇게 물약 관련 배달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스네이프에게 안 혼나는 학생도 있었을까요! 저도 엄청 혼났었는데! 뭐, 저도 마법 약은 전문분야가 아니었죠. 제가 약을 잘 만들었다면 이렇게 약을 사서 되팔 필요도 없었을 테고~ 아아, 이 물약이 스네이프 교수의 사랑의 묘약이었으면 정말 최고였을 텐데! 아쉽지만 그 분은 이제 없는 분이죠... 아, 제가 해리 포터의 오랜 친구인 건 알고 있죠? 그러니까-”

“프, 프랭크예요.”

“그래요, 프랭크 씨! 해리가 열심히 그를 변호한 건 신문을 통해 보셨을 거예요. 근데 여전히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해리가 함께 식사할 때도 몇 번 침울하게 말을 했거든요.”

“아... 그, 그랬었군요.”

 

해리는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뒤편에 서있는 스네이프를 조심스레 힐끗 곁눈질 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잠깐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타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 그 진실성이 더 크게 와닿았다. 하긴, 그렇게 궁금해 하지 않았으면 해리가 과거로 돌아올 일도 없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새삼스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저희 가족끼리 생각하는 건데,”

“...?”

“제 여동생 지니와 해리가 결혼할 것 같아요. 지금 사귀고 있거든요. 마법 세계의 영웅이 우리 집안과 가족이 된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니까요.”

“...!”

 

해리는 정말로 당황했다. 해리의 뒷걸음질로 주변의 선반에 어깨가 부딪쳐 물건이 우르르 떨어졌다. 조지는 가볍게 지팡이를 휘둘러, 선반에서 떨어지는 장난감들을 다시 위로 안착시켰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스네이프는 해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반면에 해리는 스네이프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 그거 참...”

“축하할 일이죠! 고마워요, 프랭크 씨! 나중에 꼭 청첩장도 보내드리죠.”

 

조지가 사람 좋게 윙크를 해보였다. 해리는 머쓱하게 스네이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해리가 황급히 이제 가봐야겠다고 조지에게 말했다.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조지에게 시선을 줬다가, 휙 고개를 돌려 냉랭히 가게를 나섰다. 문을 나가는 해리와 스네이프의 뒤로 조지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 교수님.”

 

해리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과거의 너는 열심히 날 찾고 있는 모양이군.”

 

불쑥, 스네이프가 말을 뱉었다. 해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화제에 해리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렇지만 곧 의미를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네. 하, 하지만 그래도... 설마 모습을 드러내실 건...?!”

“글쎄. 저 위즐리가 과거의 네 녀석에게 나를 닮은 꼬마에 대해 말하면, 과거의 넌 약간의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 그 꼬마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

“서, 설마요!”

 

해리는 당황해서 소리쳤지만, 그 즉시 스네이프를 조지의 앞에 데려온 걸 후회했다. 과거의 자신은 버로우에 일주일에도 몇 번을 들를 만큼 자주 왕래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 스네이프와 단둘만의 동거 생활에 익숙해져 해리는 과거의 패턴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조지가 과거의 자신과 만난다면... 혹시라도 스네이프를 생각나게 했던 꼬마에 대해 자신에게 말한다면, 그러면 어쩌지? 조금의 희망의 꼬투리라도 잡는다면 바로 행동에 나설 과거의 자신이었다. 해리는 행동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과거의 해리는 절실하게 스네이프를 찾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절망에 가까운 해리의 얼굴을(정확히는 변신한 타인의 얼굴 너머로 느껴지는─) 바라보았다. 이제 해리는 지니와의 결혼에 대해 조지가 했던 말은 잊은 눈치였다. 다행이었다. 스네이프는 그다지 그에 대한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스네이프도 해리와 지니의 교제는 예상했지만, 결혼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듣는 순간 굉장한 충격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릴리와 제임스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해리는 자신에게 푹 빠져 있어서 그녀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해리가 지니 위즐리와 아직 만나기 전이라서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지금까지 뭐에 홀렸던 거라고 생각하며, 해리는 그녀에게로 돌아갈 게 뻔했다. 스네이프는 그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너에게 위즐리가 날 닮은 꼬마를 봤다고 말했었나?”

“네? ...어, 그, 그랬던가....... 으음, 음... 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말 않은 거겠지, 포터.”

“하지만 완전히 확신할 순 없잖아요...!”

 

스네이프는 관심 없는 듯 콧방귀를 꼈다. 해리는 과거의 자신이 스네이프의 존재를 알아차릴까 걱정이 돼 죽겠는데 말이었다. 이제 해리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마주치는 사태’가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자신에게 스네이프를 빼앗길까봐’ 불안해했다.

 

해리가 영 표정을 풀지 못하자, 스네이프가 쯧 혀를 찼다. 자신은 과거의 해리가 절 찾아낸다고 해도 따라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스네이프는 이런 이야기를 해리에게 직접 해줄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일단은 심란해 보이는 해리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부족한 약재와 서적을 구입하고 싶다며 스네이프는 해리를 재촉했다. 해리가 마지못해 약재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해리는 아이스크림을 함께 사먹고, 스네이프의 진짜 몸에 맞을 법한 망토도 한 벌 사주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사랑 받는 느낌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그걸 해리는 몰라도 되었다. 어차피 1년 후면 떠나갈 녀석이니까.

 

 

“...후우, 피곤하군.”

 

짐이 늘어나서 돌아올 때는 순간이동을 썼지만, 오랜만에 오래 걸어서인지 스네이프는 피로해했다. 다만 아직 약효가 풀리지 않아서 스네이프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네이프보다 약효가 먼저 풀린 해리는 원래 모습이 되어있었다. 소파에 늘어져있는 자그마한 스네이프의 다리를 해리의 손이 주물러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교수님이 원래 몸으로 돌아오면 이 옷, 찢어지겠는데요...?”

 

이 작은 아이 몸과 키가 큰 스네이프의 체격 차는 상당하니, 그 말 그대로 여린 옷이 찢어질 게 당연했다. 스네이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렇겠군, 귀찮은데...”

“그냥 가만히 계세요. 제가 대신 벗겨드릴 테니까요.”

“......”

 

평소엔 스네이프의 손등만 몸에 스쳐도 움찔 굳어버리는 녀석이. 스네이프는 지금 자신이 아이 몸이라고 해리가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기는 것이 기가 찼다. 뭐, 완전히 자신의 몸이 아니니 당연히 상관없겠지.

 

스네이프는 나른하게 다시 소파에 기대 드러누웠다. 얼굴 위로 하얀 티셔츠가 올라갔고, 반바지가 다리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해리가 아이용 속옷을 챙기지 않았었기 때문에, 바지를 벗기니 스네이프는 완전히 맨몸이 되었다. 해리가 교수님 옷을 가져올 테니 기다리라며 일어섰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가로누웠다. 종일 해리의 보호 속에 편하고 안락했던 스네이프는 긴장이 늘어졌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2층의 스네이프 방으로 들어온 해리는 서랍을 뒤져 속옷과 옷을 챙겼다. 여름이었지만 스네이프는 얇고 긴 옷을 입었으므로 최대한 얇은 것을 챙겼다. 스네이프 말고도 나이가 제법 있는 마법사들은 대체로 늘 긴 옷을 즐겨 입는 것 같았다. 해리는 하지만 스네이프는 젊었을 때도 몸이 노출되는 짧은 옷은 입지 않았겠지, 생각했다. 다행인건가... 다른 사람들이 교수님의 몸을 못 본 게... 하지만 해리의 개인적인 욕심으론, 집에선 짧게 입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해리는 고개를 붕붕 흔들고 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들리는 끽, 끼익 하는 소음도 해리는 이제 익숙해졌다. 여름이라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조량도 많이 늘어났다. 벽에 높게 달린 창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나뭇잎이 사사삭 바람에 마찰하는 소리도 시원하게 들려왔다. 해리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다 기울어져가는 폐가 같은 인상이었다. 사람이 오래 살아서인지 이 집도 점점 생기를 입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집도 마치 스네이프 같아. 해리는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쌀쌀맞던 스네이프가 요즘엔 해리의 앞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교수ㄴ...."

 

입가에 웃음을 걸고, 책장을 민 해리는 순간 자리에서 굳으며 얼굴에서 미소도 사라졌다. 눈앞의 응접실, 낡은 소파에 가로누운 나신의 스네이프가 보였다. 늘씬하게 길어진 다리 한 쪽은 소파 바깥으로 비죽이 나와 있었다. 흐트러진 길고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양팔을 포개고 기댄 뺨과 감긴 눈이 보였다. 낡고 때를 탄 소파에 대비되어 스네이프의 온몸은 눈부시도록 새하얗게 보였다. 그 광경은 어찌 보면 신성했을지 몰라도, 해리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못했다. 해리가 들고 있던 스네이프의 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리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해리는 떨리는 손을 억지로 얼굴로 가져왔다. 눈, 가려야 해... 보면, 보면 안 돼.......

 

스네이프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얼핏 잠에 들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스네이프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시야가 분명해질수록 멀리 남자의 두 발이 선명해졌다. 해리...? 스네이프는 상체를 고쳐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 순간 달라진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려 몸 아래를 보았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의 몸이 보였다. 온전히 다 벗은... 스네이프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해리를 다시 제대로 쳐다보았다.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있는 해리는 한 팔로 눈을 가리고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좀 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해리의 바지 위가 터질듯이 봉긋했다. 순간 스네이프는 해리의 자제력이 너무 놀라워서 경탄할 뻔 했다.

 

“...포터, 왜 거기 계속 서있지?”

“교...교수님...”

“이리 와.”

“하, 하지만...”

 

해리의 목소리가 숫제 울먹였다. 어린아이 같았다. 스네이프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소파에 기대앉았다. 다리가 살짝 벌어져 밑이 확실히 보이겠지만, 뭐 어떤가. 스네이프는 조용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같은 남자의 몸이었고, 해리는 자신을 억지로 덮치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것이 사랑이구나. 스네이프는 아주 오래 사랑을 알았지만, 다시 또 사랑을 알게 되었다.

 

“포터, 괜찮으니까. 아니면 계속 날 벗겨둘 셈인가.”

 

해리의 어깨가 놀라 움찔 튀었다. 여전히 스네이프 쪽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해리가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웠다. 스네이프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해리를 지켜보았다. 해리의 떨리는 손이 옷가지를 건넸다. 스네이프는 가만히 그걸 내려다보다가, 툭 쳐내 바닥으로 다시 옷을 떨어뜨렸다. 해리가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몸을 숙였다. 스네이프의 손바닥이 해리의 뒤통수를 감쌌다.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든 해리가 스네이프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제야 나를 보는군.”

 

해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스네이프의 움푹 들어간 빗장뼈와 그 아래 하얀 가슴, 적은 음모 아래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해리는 서둘러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스네이프의 손이 단단히 잡고 있어 벗어나지 못했다. 마르고 피로해보였지만 스네이프 역시 성인의 남성이었다. 해리는 제 목덜미를 감싸 쥔 스네이프의 차가운 손바닥을 느낄 수 있었다.

 

스네이프의 손바닥에 좀 더 힘이 들어가 당겼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스네이프는 그 눈을 보더니, 피식 입 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그의 다리가 양 옆으로 벌어졌다. 해리의 머리가 그 다리 사이로 조금씩 더 들어왔다. 해리는 스네이프에게서 시선을 떼고 천천히,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입을 벌렸다.

 

“...윽.”

 

스네이프의 무릎이 움찔거리고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항상 손으로 수음하던 것이 사람의 입 안과 혀의 축축함에 닿자 허리가 절로 튕겼다. 해리의 두 손이 단단히 스네이프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머뭇거리던 고개와 떨리던 손은 어디로 갔는지, 힘이 들어간 다부진 손길이었다. 스네이프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꽉 감았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리의 입술이 너무도 강하게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기둥을 쓸며 내려오는 혀끝은 뾰족하게 간지러웠다. 턱을 위로 치켜들고 소파의 등받이에 목을 기댄 스네이프가 흑, 흐윽 애끓는 소리를 냈다. 해리가 두 손으로 허벅지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볼썽사납게 다리를 휘적거릴 것 같았다.

 

스네이프의 붉어진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 흥분해서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거의 사십 해 가까이 살아왔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흥분을 스네이프는 처음 겪었다. 늘 핏기 없던 하얀 얼굴에 완전히 열이 몰려 얼굴이 뜨거웠다. 얼굴이 뜨겁다는 게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불덩이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스네이프는 사정이 임박했음을 알았지만 해리가 성기를 물고 놔주질 않았다. 기둥을 쭈우욱 쥐어짜듯 올리는 단단한 손길에 스네이프는 탁, 힘을 풀었다. 해리의 입 안으로 울컥울컥 묽은 것이 튀었다.

 

스네이프는 기운이 쭉 빠져서 늘어지고만 싶었다. 하지만 여운이 남은 성기에 해리의 혀가 다시 닿고, 미끄러지며 빨아들이자 정신없이 허벅지가 튀어 올랐다. 안 돼, 너무, 이건 안 돼, 포터, 포터...! 스네이프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의식할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땐 얼굴에 온통 눈물이 범벅되어 있었고, 열이 오른 얼굴과 들뜬 가슴이 느껴졌다.

 

“흐윽...흑... 흐윽...”

“교수님...”

 

스네이프가 소파에 누워 원망스런 눈으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미안한 얼굴과 흥분한 얼굴이 뒤섞여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리에게서 거친 남성을 느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지금만큼 강하게 의식된 적은 없었다. 해리의 가슴 역시 스네이프처럼 막 경주를 마친 선수처럼 가쁘게 들썩이고 있었다.

 

해리가 가타부타 말없이 곧장 스네이프의 입술을 삼켰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혀를 받아들이며 손을 내려 바지를 벗겼다. 해리도 스네이프에 의해 반쯤 벗겨진 바지를 황급히 무릎 아래로 걷어냈다. 스네이프는 두려웠지만 동시에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꿈과 비슷했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비교도 되지 않을 생동감이었다. 스네이프의 눈앞으로 초록색의 욕망이 스쳐지나갔다. 그 욕망, 해리의 눈이 보일 때마다 스네이프는 허리 아래가 아찔했다. 두려웠지만 원하게 되었다. 해리의 사랑을 받는 것이 기뻤고, 해리가 자제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스네이프도 사실 해리가 이래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언젠가 해리의 이 뜨거운 사랑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무엇을 원했다. 그건 섹스 자체의 행위라기보다, 해리가 욕구를 참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떨리는 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사랑해서, 차마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것. 그것에서 스네이프는 강하고 깊은 사랑을 느꼈다.

 

“내게 해 줘...”

“교수님...”

“해도 된다, 해리 포터. ...해리.”

 

해리는 스네이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걸 듣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네....... 세베루스.”

 

너무 아름다운 이름이에요. 해리가 울면서 스네이프의 귓가에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눈을 꾹 감으며 그래, 그런 것도 같군... 하고 생각했다. 해리의 목소리로 듣는 자신의 이름은 정말로 그렇게 느껴지게 했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더럽고 어둠에 도태되었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받아서, 소중한 존재로 속삭여질 수 있다는 게 두렵고 신기했다. 더, 더 오래... 이것을 느끼고 싶어지는 욕심이 안에서 커져가는 것을 스네이프는 느꼈다.

 

그렇구나, 난 해리 포터를 사랑하는군....... 스네이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해리만이 스네이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스네이프 자신 역시.......

 

“사랑해요.”

“......”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세베루스, 고마워요...”

“......”

 

너는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사랑을 말할 수가 있지? 스네이프는 목구멍이 꽉 막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리의 입술에 키스하며 비겁하게 그의 말을 막았다.

 

 

 

 

 

 

 

 

거보세요 제가 로맨스만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참나..)

수위에 대한 비번은 조만간 걸 생각이에요. 공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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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생님, 또~!”


이번으로 8번째였다. 해리의 이마가 농구골대가 돼버린 경우 말이었다. 해리는 낮은 높이의 골대 근처에서 멍청하게 앉아있었는데, 골대에서 튕겨나간 공이 안착하기 아주 좋은 위치에 그의 이마가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딱히 아픈 줄도 몰랐다. 말랑한 아이들 용 농구공이라서 그런 것치곤 이마는 발갛게 작은 혹이 올라와있었다. 그래서인지 해리의 이마에 있는 번개모양 흉터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아이들은 멋지다며(Awesome!) 그 흉터를 상당히 좋아했다. 이제 아이들은 공 던지기보다는 멍하게 앉아있는 해리 선생님의 부은 이마에 난 흉터를 만지작대는 것에 더 신나했다.


“해리, 잠시 만요.”


여아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레이첼이었다. 언제나 활기차게 아이들을 가르치던 해리의 오늘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레이첼이 부르는 소리도 세 번 만에야 알아들은 해리였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서는 해리 주변의 아이들이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해리는 머쓱히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레이첼이 걱정스럽게 어디가 아픈 거냐, 무슨 일이 있으시다면 조퇴를 하시는 게 어떤가하며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다. 대답을 하려하면 다음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어느 타이밍에 대답을 해야 할지 해리는 망설였다. 결국 해리가 손을 들어 레이첼의 입을 막았다. 한숨을 한 번 쉰 해리는, 그래도 이 대답만은 해야지 하고 결심을 굳혔다.


“조퇴는 무슨요, 아픈 것 아니에요. 정신 차릴게요. 걱정 끼쳐 죄송해요, 레이첼.”


조퇴라니, 큰일 날 소리다. 해리는 지금 스네이프와 조금이라도 오래 떨어져있고 싶었다. 그런데 평소보다도 더 일찍 집으로 돌아가라니? 이미 해리는 어린애도 아닌데 그런 꿈(과 몽정)을 꾼 것만으로도 충분히 창피했다. 그런데다 낯부끄러워 스네이프 앞에서 전전긍긍 뭐 마려운 개처럼 굴기도 싫었다. 하지만 사실 출근해서도 자꾸 꿈을 떠올리며 헤벌쭉하느라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도 부끄럽긴 마찬가지였다. 직장동료가 아프냐고 걱정해주는데, 해리는 머릿속으로 스네이프가 절정을 느낄 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해리가 실제로 했고, 직접 두 눈으로 본 것 같았다.


해리는 예전에 꿈으로 볼드모트가 실제로 한 일들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 행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르다. 그냥 단순한 꿈이었다. 꿈인데, 왜 진짜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순간순간의 느낌이 자꾸 떠오르는지... 도저히 해리는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지금 스네이프를 본다면 진짜 섹스를 했던 사이마냥 자연스럽게 옷을 벗기고, 안으려 들까봐 겁도 났다. 그 맛을 알아버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해리와 스네이프는 실제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에게 꿈에서처럼 진짜로 해버린다면...’


해리는 아까부터 몇 번씩 생각하던 것을 또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속의 스네이프는 해리의 강압에 너무 순순히 따랐고, 또 적극적이었다. 확실히 꿈에서 깨고 나니 스네이프의 그런 모습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해리는 자신이 현실과 꿈을 구별 못 하고 그에게 덤벼들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해리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리고 또 생각하는 것이었다. 진짜로 그에게 키스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명백히 성추행이었다. 스네이프가 받아들여줄 리 없었다. 해리는 이제 그의 지팡이에서 아브라 카다브라가 날아올지 크루시오가 날아올지 궁금해졌다. 죽기 직전에 스네이프에게 키스한 거면 괜찮은 삶이었나?


해리는 오늘은 정말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확실히 축복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그가 잘 시간까지 기다렸다 늦게 집에 돌아가면, 스네이프는 늦도록 오지 않는 자신을 걱정할까? 별 생각들로 해리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레이첼, 이따 마치고 술 한 잔 안 할래요?”

“오, 해리, 웬일이에요? 매일 칼 같이 퇴근하더니. 그래서 우린 해리가 신혼인 줄 알았는데.”

“.......네?”


해리는 지금 입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이라도 머금었다면 레이첼의 얼굴에 모조리 뿜어버렸을 것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 있는 건 다들 알고, 둘 뿐이라고 들어서 결혼한 줄 알았죠. 아,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거였나요?”

“아니... 전 부모님이 돌아가셨, 그... 다들 어떻게 알고 계신 거예요?!”

“어머! 역시 결혼했었구나. 일찍 했네요~”


해리가 알고 있냐 물은 건 결혼유무가 아니라 둘이서 산다는 부분이었지만, 레이첼은 이미 단단히 오해한 듯싶었다. 그리고 해리도 가만 생각해보니, 다들 자신을 결혼했다고, 젊은 부부 둘이서 살고 있어서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간다고 생각했던 게 기분이 은근 좋기도... 하고......? 어차피 스네이프는 해리의 직장 일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이대로 부부라고 생각하게 둔다고 해도 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해리, 오늘은 웬 술? 부인이랑 싸우기라도 했어요? 아, 그래서 오늘 해리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거구나!”


박수를 짝 치며 알겠다는 듯 레이첼이 끄덕였다. 30대이며 아이를 둘 키우는 레이첼은 약간 몰리를 생각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해리는 그녀에게 술을 마시자고 한 것이 조금 후회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네이프를 제 부인이라고 칭하는 걸 듣고 있자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음, 뭐... 비슷한 거예요. 오늘은 마주치기가 좀 그렇거든요.”

“그런 날이 있죠. 그리고 나도 해리를 제대로 환영식도 못해준 것 같아서 아쉬웠거든요. 술 말고 우리 집에서 저녁이나 먹고 가요. 취해서 가면 아내가 슬퍼할 거야.”

“오...정말 그래도 될까요, 레이첼? 너무 감사해요!”


아아, 다행이다. 레이첼과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저녁을 먹고 들어가니 그만큼의 시간동안 스네이프도 피할 수 있었다. 말하지 않고 저녁을 거르면 스네이프가 걱정은 몰라도 신경은 쓰일 텐데, 부엉이가 없다는 핑계로 해리는 얼버무렸다. 일하다가 늦을 수도 있지, 한 번은... 나쁜 짓도 아니고 직장동료 집에서 저녁 먹고 들어간 건데... 그렇게 해리는 스스로를 열심히 합리화 했다. 그러면서도 스네이프에게 계속 몹쓸 짓을(꿈에서부터) 하는 것 같아 영 찜찜했다.



스네이프는 식탁에 앉아 시계를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이번으로 8번째였다. 그리고 다시 봐도 시계는 8시 반을 넘어갔다. 퇴근이 5시 반이고, 집까지 걸어오면 6시가 안 돼서 돌아오던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시간이 6시 반쯤 됐을 때까지는 해리의 일이 늦게 끝났다거나, 뭘 사고 오나 싶었다. 그리고 시계가 7시를 넘어가자 혹시 해리를 알아본 마법사가 나타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저녁으로 만든 로스트 비프는 식고 굳어버렸다. 그리고 8시 반이 넘은 지금에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저녁은 때를 놓쳐 굶어버렸다. 빈속과 예민해진 정신이 합쳐져 스네이프는 한껏 날카로워졌다. 호그와트 시절만큼이나 싸늘했다. 스네이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 로스트 비프를 다시 불 위에 놓고 스네이프는 찬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물에 조금 열이 식는 것 같았다. 자신을 걱정시키는 해리에게도 ‘빌어먹을 놈’이란 욕이 나왔고, 해리를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에도 ‘빌어먹을’이란 욕이 나왔다. 속이 쓰렸다. 뭘 안 먹어서 더 그런 거지. 스네이프는 미련하게 굶고 있는 것도 짜증이 났고, 그래서 늦었지만 식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집 안에 음식냄새가 풍기자 조금 기분이 누그러지는 것도 같았다. 점심은 혼자 먹더라도 항상 아침과 저녁은 해리와 함께인 게 익숙해서, 몇 달 만에 혼자 가지는 저녁은 낯설고 쓸쓸했다.


이미 인정한 사실이었지만 역시 자신의 삶에서 해리 포터가 너무 익숙해졌다. 그게 지금은 좀 화가 났다. 겨우 하루였다. 이런 일이 전에 자주 있던 것도 아니었고, 해리가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오든, 누구와 밤새 놀든 성인이니 나쁜 일도 아니었다. 부엉이가 없었으니 연락방법도 마땅찮았을 거다. 하지만 이런 일이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해리가 ‘자신에게 말도 없이 늦을 수도 있다’란 사실을 마침내 스네이프가 알게 된 것이기도 했다. 아침에는 자신과 운동을 함께 하고 싶다는 소리를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또 저녁엔 말없이 늦어지는 게 잘 매치도 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서운함’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해리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실망했고, 속상했다. 씹고 있는 고기의 질감이 고무처럼 질겨서 스네이프는 뱉어버렸다.


그리고 이건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오늘 꾼 꿈에 스네이프는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 꿈에서 해리는 스네이프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굴면서 다정하고 난폭하게 자신을 원했다. 그게 현실이 아닌 건 알았다. 그러나 감각이 너무 생생한 게 문제였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꿈을 현실처럼 착각해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 꿈속의 해리의 모습 때문에 더 크게 실망하고 있으니, 우습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건 그저 꿈의 일일 뿐인데, 너 날 그렇게 좋아해놓고, 원해놓고서 왜 지금 나를 걱정하게 하고 화가 나게 만들고 실망하게 만들어. 딱 이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환장하겠군...”


배는 덜 찼는데 입맛이 딱 떨어졌다. 억지로 먹어봐야 탈이 난다. 스네이프는 해리 몫으로 만들어뒀던 것까지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 두통에 이마를 짚었다. 피곤해서 안 되겠군. 더는 못 기다리겠다, 포터. 스네이프는 2층의 제 방으로 올라갔다. 씻을 힘도 없어 대충 마법으로 입만 헹구고 침대에 누웠다. 이 와중에도 아래층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까 신경을 곤두세운 자신이 한심했다. 스네이프는 신경질적으로 귀마개를 찾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래서, 돌아가서 부인이랑은 화해할거죠? 해리.”

“싸운 건 아니라니까요, 레이첼. 음, 그래도 제대로 다시 대화하고 전처럼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불쑥불쑥 들고 마는 성충동에서 자유롭게 해주세요, 멀린... 왜 자신은 이렇게 혈기왕성한 나이인 것일까. 해리는 젊음마저 후회됐다.


“해리 형, 다음에도 또 올 거지?”

“응. 찰스, 물론이야. 체육교실에도 엄마 따라 놀러오렴. 그럼 폐 많이 끼쳤습니다, 레이첼. 그리고 아담 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포터 군.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우리야 고마웠지. 다음에도 꼭 와요.”


아직 4살인 찰스와 2살인 웨이드에게 손으로 인사해주며 해리는 레이첼과 그의 남편 아담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떠들썩하고 따듯한 가정에 섞여 함께 밥을 먹은 건 버로우 이후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해리의 기분도 많이 안정되었다. 그녀의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은 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직 저녁 9시가 안 됐지만 평소보다 3시간을 말없이 기다리게 했으니 스네이프도 꽤 화가 났겠지? 문 밖을 나서자 슬그머니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잘 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으니, 해리는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날이 어둡고 인적이 드물어지자 해리는 순간이동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동안 날이 밝을 때 퇴근해서 그냥 걸었었는데, 이런 차이를 느끼자 또 살짝 마음이 무거워졌다. 많이 화 안 나셨을 거야. 스네이프가 나를 그렇게 크게 걱정할 리가 없잖아. (이 생각을 할 때 해리는 조금 서글펐다.) 그리고 걱정을 길게 하기도 전에, 순간이동으로 순식간에 해리는 집 안으로 돌아왔다. 조용한 집에 탕! 하는 소리만 멀거니 메아리쳤다. 해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불 꺼진 집에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실망감이 몰려왔다.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에 속이 상했다.


지팡이를 휘둘러 벽에 걸린 양초에 불을 켜자 조용한 집 안이 더 잘 보였다. 사람이 없으니 적막하고 우중충한 집이었다. 아니, 스네이프가 안 보여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다. 사실 해리도 알았다.


해리는 욕실에서 씻은 뒤, 책장 뒤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스네이프가 자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자신도 자러갈 생각이었다. 똑똑, 스네이프의 방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도 들리지 않았다. 해리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쥐고 돌려보았다. 잠겨있지 않은 문은 끼이익 낡은 소릴 내며 열렸다. 어두운 방 안에 창문에서 들어온 달빛만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그 달빛이 닿는 곳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있었다. 자고 계셨네. 해리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애초 생각과 달리 해리는 문을 닫고 나가지는 않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잠든 침대 아래에 털썩 앉았다. 스네이프의 하얀 얼굴에 어리는 희미한 달빛의 고요함이 너무 어울렸다. 해리는 그것 때문에 홀린 거라고 핑계를 주워섬겼다. 달빛에는 마력이 깃들어있다고 하니까, 아주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응? 귀마개도 끼셨네. 잘 때 끼고 주무시는구나. 몰랐는데...”


해리는 손가락을 뻗어 귓불과 그 위로 살짝 돋은 작은 귀마개를 쓸어내렸다. 스네이프가 잠에 옅게 들었다면 깰 것을 각오한 행동이었는데, 그는 반응 없이 잠들어있었다. 의외로 깊게 잠에 드는 타입인가? 해리는 예민한 스네이프는 잠도 얕게 들 거라고 생각했다. 한 지붕 아래서 동거한 지 몇 달이지만, 각자 따로 방을 쓰니 알 수 없는 것은 많았다. 일어나서 행동 패턴도 둘은 달랐다. 해리는 밖으로 나가고, 스네이프는 줄곧 집 안에만 있었다. 해리는 시트 위로 팔짱을 놓고는, 고개를 얹고 잠든 스네이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말도 없이 늦어서 죄송해요... 그냥, 오늘은 교수님을 보기 좀 부끄러워서... 밖으로 겉돌았네요... 직장에 레이첼이라고, 여자애들한테 발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데, 그녀의 가족들이랑 저녁 같이 먹었어요... 감자 요리랑, 디저트로 애플파이도 먹고, 교수님이 좋아하는 콜라도 마셨어요. 교수님은 오늘 뭐 드셨을까... 아, 그러고 보니 저녁 혼자 드시게 해버렸네요... 이것도 너무 죄송하다...”


해리는 그 후 한참 말이 없었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가 깨어있다면 좀처럼 불가능한, 그를 맘 놓고 볼 수 있는 기회를 훅 털고 일어나는 게 아쉬워서 발목이 잡혔다.


“...왜 안 돌아가고 아직 있는 거지? 포터.”

“으왁...?!! 교, 교수님...?!”


해리는 기관차의 경적소리 같은 소리를 발작적으로 지르며 기겁해 뒷걸음질 쳤다. 너무 놀라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3초 후에 다시 올라와 쿵쿵대는 느낌이었다. 스네이프는 시끄러운 듯 못마땅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켜, 벽에 붙은 해리를 보았다.


“늦게 온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잠까지 방해하다니, 벌을 달라고 제 발로 찾아오고 또 죄를 늘리는군, 포터.”

“어, 언제부터...”

“깨어있었나 묻는 건가?”


해리가 침을 꿀떡 삼키며 힘겹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아래층에서 순간이동 소리가 요란하게 날 때부터다.”

“그럼 처음부터잖아요...!”


해리는 절망적으로 대답했다. 스네이프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했다.


“이 낡은 귀마개에 마법효력이 떨어졌단 건 확실히 알았지. 원래라면 전혀 안 들려야 정상이다.”


스네이프는 귀마개를 귀에서 빼서 지팡이로 톡톡 두드리고 주문을 중얼거렸다. 스네이프는 아주 여유로워보였다. 그에 반해 해리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숨이 턱턱 막혔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건 좋아한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해리는 뭔가 쓸데없는 말을 내뱉지 않았는지 되짚느라 머릿속의 모터가 팽팽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모터에선 타는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해리의 당황에 찬 얼굴을 내려다보며 스네이프는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사실 해리에 대한 화는 진작 풀렸다. 변명은 딱히 화낼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바로 자러가지 않고 자신을 보러온 행동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무례하게 집 안으로 순간이동한 자는 또 누군가 싶어 짜증이 치받히고 화가 났다. 마법세계에서 아주 무례하게 여기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타인이 자택으로 곧장 순간이동 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스네이프는 곧 알아차렸다. 이런 방식으로 이 집 안을 들어올 만한 사람도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스네이프는 맥이 탁 풀렸다. ‘타인’이 아니라 ‘해리’여서 안심되는 마음에 어이없이 웃으며 누워있었다.


이 집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았다. 해리가 아래층에서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처럼 듣다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엔 자러가는군, 싶었다. 하지만 망설이는 노크 소리는 생각지도 못했다. 스네이프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모른 척 했다. 그런데 굳이 들어와 옆에 앉는 것도 예상 밖이었다. 귓가에 해리의 손가락이 닿았을 땐 절로 몸이 흠칫 굳었다. 왜? 라는 생각과 동시에 꿈속의 해리가 생각나서 잠자코 있어보기로 했다. 뜻밖의 손길이었다. 스네이프는 정말 해리의 본심이 무언지 궁금했다. 혹시 좋아한단 소리라도 해버리는 게 아닐까 내심 생각했다. 그리고 해리의 말을 듣고 나선, 잘못한 일도 없는데 절 보기 부끄러웠단 소리가 뭔지 궁금해졌다. 설마 아침에 입에 있던 음식을 뿜은 게 부끄러워 밖을 나돌았던 거라면, 스네이프는 약간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내게 부끄러웠단 건 뭐지, 포터?”


그래서 스네이프는 단도직입적으로 해리에게 물었다. 해리는 그 질문을 예상치 못했는지, 아니면 그 말만은 제발, 이라는 심정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스네이프는 침대헤드에 등을 기대며 흥미롭게 해리를 지켜보았다. 일단 스네이프는 오늘 하루 너무 긴 시간동안 혼자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눈앞에 해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즐거움을 느꼈다.


“아, 그... 저... 그건... 으, 그게... 교, 교수님...”

“몰랐는걸, 자네가 내게 말도 못하고 감출 큰 잘못을 저질렀을 줄은. 용의주도하군, 포터. 난 그게 뭔지 감이 안 잡히는데 말이야.”


말투는 빈정거렸지만 스네이프는 지금 꽤 유쾌했다. 해리가 이렇게 더듬대면서 감추려하는 잘못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더욱 흥미로워졌다. 대답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포터에게 꼭 진실도 듣고 싶었다.


“...베리타세룸을 만들어둔 게 있지.”

“앗...! 안, 안돼요! 저, 절대 안 마실 겁니다!”

“하지만 지금 더 빠른 방법이 떠올랐다, 포터.”


스네이프는 오늘 그 꿈을 꾼 건 어느 정도 예지몽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덕분에 레질리먼시를 써보고 싶어졌다. 스네이프는 슬그머니 웃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여전히 오클러먼시는 할 줄 모르겠지, 포터?”

“......!!”


스네이프는 해리가 당황하는 틈을 타 바로 포터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황급히 주문을 풀었다. 스네이프는 당혹스러움에 하얗던 얼굴이 벌겋게 변해있었다.


“이건...”


스네이프는 기억을 읽자마자, 해리가 방어마법을 써서 자신의 머릿속으로 역으로 들어온 줄 알았다. 해리에게서 읽어낸 기억이 자신의 기억과 완벽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붉어진 얼굴을 보았다. 꿈속의 모습을 보여서 화가 났거나 기막혀하는 것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너무 무안하고 부끄러웠다. 해리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바닥의 무늬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반응으로, 해리가 역으로 자신의 기억을 읽은 게 아닌 걸 알았다. 해리는 그저 자신의 기억을 들켰기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는 건, 해리와 스네이프는 오늘 똑같은 꿈을 꾸었다는 말이었다. 뭐, 아주 없는 일은 아닌데─ (종종 마법의 힘이 없는 머글들 사이에서도 가능하다고 하고─) 왜 하필 그런 꿈을 똑같이 꿔버린 건가?


스네이프는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침에 쭈뼛거린 해리의 반응이라든지, 부끄러워서 자신을 피하고 싶었던 것 등을 말이었다. 하지만... 알고 나니 이걸 또 어떻게 대해야하나 싶어서 자신도 당혹스러웠다. 같은 꿈을 꿨다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무슨 이런 꿈을 꿨냐고 빈정거려야 맞을까? 아예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나을까?


한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침묵을 못 이긴 쪽은 해리였다.


“그, 그저 꿈인데... 교, 교수님. 용서해주실...거죠?”

“...현실의 내게 저지른 잘못도 아니잖나, 용서를 빌 거면 꿈속의 교수에게 해야겠지. 포터.”

“아......”


해리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그 반응을 들으니 스네이프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 근데 또 그런 꿈을 꿀 리도 없으니까...! 그냥 현실의 교수님께 사과드릴게요...!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해리의 그 대답에는 진짜로 크게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언젠 다 큰 성인 같더니, 여전히 해리 포터는 호그와트의 애송이 그대로였다. 스네이프는 큰 웃음 대신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현실의 내겐 잘못하지 않았다고 했잖나. 그 용서는 쓸데없다, 포터.”

“그, 그럼...”


해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스네이프는 자신도 모르게 목 뒤가 긴장했다. 둘을 둘러싼 기류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스네이프는 이 상황을 자신이 의도한 걸까, 속으로 생각해보았다. 따지자면 그런 것도 같았다. 애송이를 다루는 게 어른의 일이었으니 말이었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유혹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스네이프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었다. 해리가 어떻게 반응할지가 가장 중요했다. 스네이프는 가만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목덜미의 긴장으로 스네이프의 얼굴이 약간 딱딱해졌다.


“용서를 구했으니까... 잘못이 있어야... 하겠네요, 교수님.”


마른 침이 섞인 해리의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거칠했다. 스네이프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지켜볼 뿐이었다.


해리가 다시 아까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해리가 스네이프와 시선을 마주쳤다. 꿈에서 본 욕망이 섞인 초록색 눈동자와 닮아있는 눈빛이었다. 스네이프는 점술 수업은 열심히 듣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동의하는 말은 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꿈은 없었다. 그럼 해리가 정말로 자신을 좋아해서 지금 이러는 걸까? 누구나 그런 꿈에는 충분히 휘둘릴 수 있었다. 훨씬 어른인 자신도 영향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꿈이라면, 저 애송이는 충분히 휘둘릴만했다. 스네이프는 그것에 약간 자극을 줘봤을 뿐이었다. 진짜로는 서로가 어떻게 행동할지, 해리만큼 스네이프 역시 궁금했다.


입술이 서로 가까워졌다. 스네이프는 가만히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양 손으로 스네이프를 가두듯이 시트를 짚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상체가 꼿꼿이 서는 걸 지켜보았다. 여전히 스네이프는 목덜미가 긴장한 채라서 몸 곳곳이 딱딱해져 불편했다. 둘의 혀가 마주쳤다. 입술이 닿기까지 찰나의 시간은 억겁처럼 굉장히 길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혀가 닿으면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잡아둬 느려졌던 시간을 탁 풀어놓은 것처럼 모든 게 급했다. 해리는 더 몸을 일으켰고, 스네이프의 양 어깨를 붙잡아 침대로 눕히며 그의 위에 올라탔다. 스네이프는 급하게 키스를 받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스네이프는 키스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거칠고 빠른 속도는 더 감당이 되지 않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눈을 감았을 때, 반대로 눈을 떴다. 아래에서 이 성급한 키스를 받아내는 얼굴은 평소와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찡그린 얼굴이 금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뻐끔거렸다. 전혀 에로틱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진짜 현실의 스네이프란 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았다. 해리는 그가 숨을 못 쉴까봐 입술을 떼 주었다. 스네이프는 콜록거리면서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눈가에 생리적인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해리는 엄지로 쓱 닦아주었다.


“...하...하아...”


스네이프는 숨을 헐떡이는 중에 가끔씩 기침을 했다. 해리는 미안했지만 그게 사랑스럽다고도 생각했다.


저질러버렸다. 현실의 스네이프에게 키스했다. 해리는 잠잠해져 가는 스네이프의 입술을 다시 부드럽게 빨았다. 흠칫했던 스네이프가 그대로 눈만 굴려 해리의 얼굴을 보았다. 돌진하는 야생마 같더니, 이번 키스는 꿈에서처럼 다정하고 사근사근했다. 마치 제 연인인 양 구는군. 스네이프는 해리의 혀를 마주 빨아주었다. 이제 소스라치는 쪽은 해리였다. 입 꼬리를 끌어올려 비웃은 스네이프가 해리의 몸을 밀어냈다.


“이건 꿈이 아니다, 포터.”

“......”

“용서를 구했기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고. 그러니 이제 끝이다.”

“...교수님!”

“...왜 소리를 지르지?”

“조...좋아합니다! 그런 꿈, 을 꿔서 키스한 게 아니고... 교수님을 좋아해서 한 겁니다...!”

“......”


물론 스네이프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정도의 키스를 받아놓고 모를 사람은 없었다. 그 꿈은 해리 포터의 염원 같은 거였나, 그 바람이 굉장히 컸나 보군, 그게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 함께 꿈을 꿨을 정도면. 스네이프는 전부터 종종, 자신을 대놓고 보지 못하고 힐끗힐끗 보다가 정작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해리를 눈치 채고 있었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네... 네?”

“좋아해서, 키스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뭐지? 또 꿈에서처럼 덮칠 셈인가?”

“......”


해리의 얼굴이 새빨간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어이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유치한 반응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고작 이런 몸 따위에 흥분할 리 없다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오히려 그의 흥분을 자제시키기 위해 고생을 하겠단 생각이 들어 기분이 딱히 좋진 않았다.


“교...교수님이랑...”


해리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스네이프가 그런 해리를 한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방 뭔가 결심이라도 섰는지 해리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저는 앞으로도 교수님과 계속 같이 살고 싶어요.”


그 말을 하고서, 해리의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이 스네이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스네이프는 어깨에 닿는 해리의 조금 불규칙적인 숨을 느꼈다. 스네이프도 언제까지 이 어린아이를 받아줄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해리는 몰랐지만, 그가 어릴 때부터 스네이프는 아주 많은 순간을 해리를 돌봐주고 있었다. 해리가 말하는 ‘계속’이 언제까지일지도 매우 불투명했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이것이 완벽히 좋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지금 이 순간 해리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해리의 입술이 먼저 스네이프의 입술로 찾아왔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혀가 들어올 수 있게 입술을 벌려 열어주었다. 그러나 의외로 잘 맞을지도 모르지, 스네이프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혼자 읽는 글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부끄러움에 글 내용까지 부끄러워지네요..

전 편 전개하다가 빼먹은 내용 있어서, 나 되게 얘네 야한 거부터 얼른 보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봤답니다.

그리고 개정판 1권,2권(반양장) 받았는데, 글마다 있던 제목 위의 삽화가 사라져서 아쉽더라고요.

책 사이즈가 작아진 건 맘에 듭니다. 8권도 얼른 읽고 싶어요... 8권의 어른 해리가 궁금궁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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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래 돼서 낙장 된 1권과 2권도 (드디어) 함께 주문..!

일러스트 바뀐 개정판인데 표지 여전히 맘에 안 듦이다... 좀 더 예쁜 걸로 못 뽑겠어???ㅠㅠ

이제 팬들 나이도 있는데 출판사는 아동도서(그리고 판타지~)라는 느낌에서 못 벗어나는 듯... 

아쉽다ㅠ 세련되고 깔끔한 표지는 기대 않더라도 좀만 덜 유치찬란했으면 함...

그리고 역자 이름 확인하니까 옛날 그대로던데... 번역 이상한 거 많은데 수정 할 생각은 없구나 응...

8권 저주받은아이는 교보에서 문자 보내줘서 예약 받는 거 오늘 알았는데 주문은 알라딘에서 함..ㅋ..ㅋㅋ 할인 받아 약간 싸게 샀다~

예전에 8권 내용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스포는 안 읽어야지 하다가 핵심스포 밟고 헐..?! 싶어서 아구아구 스포 다 먹어버림...ㅎ 

근데 사람들마다 후기에 나오는 애들 설정이 다 달라서ㅋㅋㅋㅋ 

일단 정발 읽어야 확신할 수 있는 부분도 있더라고ㅋㅋㅋㅋㅋ 그래서 정발 넘 기다렸다...ㅎㅎ 난 영어 못 하니까ㅎ

아직도 안 믿겨 애들 후속편이 나오다니.. 물론 진짜 소설 형태는 아니지만 나온다는 것도ㅠ 

자까님이 절대 안 낸다구 했는데 냈다고~!!ㅠㅠㅠ그게 어디냐고ㅠㅠㅠ~~!!!!!!

후속편의 주인공인 알버스랑 스콜피우스 내가 사랑한단다...(잘생겨서...) 

이건 스포여서 닫아둠↓

휴 너무 감사하고 잘 먹고 소처럼 또 곱씹어 소화하고 또 소화하리... 

자까님이 해리포터를 쓰셔서 진짜 넘 감사하고 그래서 부자 되신 것도 너무 좋고... 

흑흑 존잘님은 나의 신이야 사랑해요 진짜 감사합니다 해리포터 이야기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플래카드 마구 흔들어댐))


응 이제 해리포터 책 산 얘기 다 했으니까 팬픽이나 써야지..

아 댓글 읽었는데 재밌으시다 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변방에서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기분 매니 들었는데 어디선가 와주셔서 읽어주셨네요.. 좀 부끄러워짐..ㅠ//ㅠㅋ 

책 샀더니 뽕이 또 좀 찼고... 판타스틱한 짐승들도 곧 개봉인데 어휴ㅠㅠ휴ㅠ 해포덕들이여 일어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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