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999년 5월 31일, 월요일. 오늘은 해리의 마지막 오러 근무일이자, 스네이프가 맥고나걸에게 약속했던 애니마구스 수업의 기한 마지막 날이었다.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를 잡은 공과 상해 피해를 입었던 점을 고려해, 오러국장이 지급한 보너스로 해리는 출근 마지막 날 오러들에게 간식을 나눴다. 론이 좋아하는 집 근처 머글 베이커리의 케이크와 쿠키들이었다. 다들 머글의 솜씨에 놀라워하며 위치를 묻기도 했다. 그 뒤에 동료들과 상사들은 해리가 오러 일을 관두고 뭘 할 건지에 대해 물어 왔다. 마법부가 아니라는 해리의 대답에 다들 놀라워 했다. 이미 해리 포터 이름 자체가 권력이긴 했지만, 실제의 권력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해리였다. 해리 대신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제 연인, 제 반려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동정도 가당치않았다.

“다쳐서 그만두는 건 아니지?”
“다치기 전 날 사표 냈다고 몇 번을 말해요! 그만 좀 장난쳐요, 네? 휴 씨.”
“하하, 녀석. 틱틱대지 말고. 또 언제 보겠냐, 이 꼬맹이.”
“저랑 키도 비슷하시면서. 하아, 나중에 식 날짜 잡히면 연락드릴게요. 서운해마시고 잘 지내세요. 주문 항상 주의하시고.”

오러들이 으레 하는 인삿말이었다. 주문 항상 주의하시고. 해리는 이제 안전하지 않은 직장을 떠나, 제 반려의 곁으로 가게될 것이었다. 휴는 그것에 상당히 부러워하는 눈을 하고 봤다. 자신은 여즉 솔로인 것도 쓸쓸해 죽겠는데, 친한 후배까지 직장을 떠나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니……. 해리 포터에게 부족한 게 뭔가. 외모, 인성, 명성, 재력, 평생의 반려자까지. 휴는 이토록 완벽한 남자의 애인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이 머글의 케이크 맛있는데. 사러갈 때, 근처 네 집에 들리고 해도 되나?”
“글쎄요? 세베루스가 휴 씨 싫어해서.”

해리가 웃으면서 휴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게 왜 세브에게 엄마 얘길 해서. 그 순간엔 팔을 두드리는 게 손바닥이 아니라 강한 힘이 실린 주먹이었다. 해리는 여전히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하하, 휴는 약간의 오싹함을 느끼며 해리와 마주 보고 웃었다.

해리는 휴와 대화하며 스네이프를 떠올렸다. 스네이프는 저번주 금요일에 오늘, 학교에 같이 가자고 해리에게 말했다. 늘 점심 때에 수업을 받으러 가던 스네이프였다. 그래서 그 시간엔 근무 중이라 했더니, 저녁시간으로 미리 시간을 변경했다고 말하던 그였다. 해리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스네이프는 떨떠름한 얼굴로 맥고나걸 교수가 그러라고 했다고만 대답했다. 궁금했던 해리는 스네이프 몰래 맥고나걸에게 편지를 보냈다. 해리는 답장을 받고서야 상황을 알았다. 스네이프는 애니마구스를 성공할 수 있으면서도 계속 변신을 미루고 있었다. 암사슴이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그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아서, 해리는 가슴이 찡하고 미안했다.

“그럼 한동안 못 만나니 끝나고 리키 콜드런 가서 한 잔 할까? 다른 오러들도 불러서. 론이랑 제인이랑 또….”
“아, 죄송해요 휴 씨. 오늘은 선약이 있어요.”
“하긴, 유명인 포터 씨가 출근 마지막 날에 선약이 없을 리가 없지……. 네 애인이지, 임마?”
“네, 당연하죠.”

뻔뻔한 얼굴로 해리는 끄덕였다. 그 때 긴급쪽지 여러 다발이 부서 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오러들은 주전부리를 먹으며 쉬다가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해리도 한 번 숨을 뱉은 뒤, 마지막 업무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맥고나걸 교수님.”

교장실 벽난로로 퇴근 한 해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맥고나걸의 옆에는 먼저 와 있던 스네이프가 팔짱을 낀 채 서있었다. 해리는 교장실의 스네이프 초상화가 저를 뚫어져라 보는 걸 느끼며 싱긋 웃었다. 해리에게는 출근 마지막 날이라 하더라도, 오러들의 월요일 업무 강도는 셌다. 퇴근 시간보다 좀 더 늦어져서 해리는 두 교수를 기다리게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은사는 이해해주었고, 애인은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심기를 표출했다. 스네이프의 옆으로 얼른 붙어 서며 해리는 움직이는 계단을 내려 왔다.

대연회장으로 맥고나걸이 앞섰고, 그 뒤의 연인은 늦었다며 타박하고 일이 많았다고 사과 하는 귀여운 대화를 나눴다. 맥고나걸은 미소를 띄운 채 복도를 걸었다. 스네이프가 학생이었을 적도, 해리가 학생이었을 적도 아직 눈에 훤한데 어느새 둘 다 저렇게 컸는지 몰랐다.

시험의 시작이 6월 1일 내일부터였다. 대연회장은 침체 된 분위기로 이미 식사중이었다. 그러나 오러 정복을 입고 교수석에 나타난 해리 포터를 발견하자, 학생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저기서 감탄의 욕설이 들려 와서 해리는 민망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호그와트의 학생들은 10대들이라 놀라움의 표현 방식이 다소 과격한 면이 있었다. 스네이프는 미간 사이를 구겨 좁혔다. 이 트롤의 발톱 때 같은 놈들.

해리를 보자마자 들떠서 소란스러워진 장 내에 맥고나걸이 조용! 외쳤다. 마법으로 키운 목소리라 홀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에 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멋있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등의 해리가 듣기에 매우 부끄러운 말들이 들려왔다. 해리는 모르는 척, 해그리드를 비롯 교수진들과 악수를 하며 바쁘게 굴었다. 스네이프는 가운데 교장석에 앉은 맥고나걸의 옆에 앉았다. 해리도 뒤따라 스네이프의 옆에 앉았다. 이제 학생들은 잊혀져 가던 스캔들의 두 주인공이 나란히 앉은 모습에, 저들끼리 미친듯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좋겠군, 포터.”
“네? 세브, 당신까지 저 놀리는 거예요?”
“아니, 기분 나빠.”

하, 해리는 그 대답에 웃음이 튀어 나오려 했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불특정 다수에게 인기 많은 애인에 질투하고,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하는 불퉁한 모습이라니. 진짜 정말 현기증이 나게 귀여워서, 해리는 입을 틀어 막고 잠시 제 안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 키스하고 싶어 어떡하지.

해리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그릇에 맛있어 보이는 건 무조건 다 덜어주었다. 스네이프가 인상을 구겼다.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 포터. 그러면서 제 그릇에 해리가 덜어준 음식을 해리의 그릇으로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들은 서로 투닥대며 음식을 나누는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충격적인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진짜로……? 저 둘, 사귀는 거 맞아?! 그럴 리가 있냐는 소리와 멀린, 세상에! 를 외치며 이제 둘의 관계를 믿기 시작하는 여론이 스네이프와 해리의 귀로 들려 왔다. 스네이프는 이 소리들을 다른 교수들도 듣고 있겠지, 생각하니 몹시 무안해졌다. 해리는 그러나 여전히 싱글거리면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잘 먹어요, 세브. 그래야 변신 성공할 힘이 나죠.”
“……먹고 있어.”

스네이프는 해리의 옆에서 더 포크를 깨작이게 됐다. 쳐다보는 시선과 쑥덕이는 소리들이 너무 잘 느껴지고, 잘 들렸다. 그래서인지 제 마음보다 해리에게 더 틱틱대는 투가 나가서 신경쓰였다.

“학생들은 우리가 연인인 게 신기한가 봐요.”

저들은 저학년을 제외하면 전부 스네이프가 가르친 학생들이고, 해리와 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 그들이 지금 얼마나 놀라고 충격받았을지 생각하면, 해리는 박장대소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스네이프는 교수의 위치라서인지, 나이가 해리보다 훨씬 많아서인지 부끄러운 게 더 큰 것 같았지만 해리의 눈엔 귀엽기만 했다.

“앞으로 저도 교수로서 학교 나오면 이런 시선은 항상 따라올 텐데. 왠지 전 즐겁네요.”
“대체…. 난 너 같이 시선을 즐기는 데에는 면역이 없어서 말이다, 포터.”

스네이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해리는 싱긋 웃으며 찹스테이크를 포크로 찔렀다.

“전 지금까지 받아본 관심 중에 오늘이 제일 신나는데요. 세베루스 당신이랑 같이 주목되고 있는 게. 안 믿는 사람이 없도록 여기서 키스하는 건 어떨까, 지금 생각하고 있거든요.”

뭐라고?! 스네이프는 얼어붙은 얼굴로 해리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리가 저를 놀리는 데 취미가 붙어버려선 곤란했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해리를 향한 관심의 목소리를 불편하게 청취하며 포크를 깨작였다. 이렇게 타인이 제 연인을 탐내는 걸 듣고 있기가 거북스러웠다. 게다가 저는 해리처럼 잘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이도 너무 많고…… 성격도 더럽지, 그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스네이프는 넘어가지 않는 식사를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이는 걸 간헐적으로 힐끗거렸다. 성격 더러운 양반이니 질투가 심하게 나서일 수도 있고, 자학 경향도 있으니까 비난을 스스로에게 굴절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당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데. 웅크리고 삐죽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작은 한숨과 더불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음, 어쩌지. 잠시 생각한 해리는 체리 하나를 포크로 찔렀다. 그리고 아- 하며 스네이프의 입술 앞에 갖다 대었다.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로 스네이프가 당황했다.

“너, 무슨….”
“세브, 내 체리 받아줘야죠.”

아, 이런 빌어먹을. 스네이프도 체리의 다른 뜻을 알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눈으로 해리를 흘겼다. 그러나 받아 먹기 전까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한참 망설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렸다. 씨익 웃은 해리가 스네이프의 입 속으로 체리를 넣었다.

“아-”

해리가 이번엔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리켰다. 스네이프는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해서 쿡, 포크로 체리를 쑤셔 박듯이 찔렀다. 자신의 체리를 해리의 입에 밀어 넣어준 뒤, 스네이프는 벌떡 일어나 식탁에서 나가버렸다. 해리는 큭큭 웃다가, 눈 앞의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 윙크 했다. 이 광경을 본 호그와트의 어린 10대들은 얼굴을 붉히며 저들끼리 모여 난리를 부렸다. 이 날 이후로 호그와트의 커플 사이에 체리를 나눠 먹는 유행이 생겼다는 사실은 교수들의 ─특히나 슬리데린의 오랜 사감의─ 뒷목을 잡게 했다.


“삐졌어요?”

맥고나걸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선 해리가 스네이프를 뒤쫓아 왔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절 쫓아옴에도 성큼성큼 복도를 앞섰다. 해리는 그런 스네이프가 귀여웠지만, 수 틀리면 바로 주문을 쏠 것 같아서 입을 사렸다.

“미안해요, 세베루스. 그래도 키스를 한 건 아니었잖아요.”

서로의 입 속에 체리를 넣게 해놓고, 키스가 아니었다는 방패를 내세우다니. 스네이프는 머리 끝까지 붉어져서 해리를 홱 돌아보았다. 갑작스레 멈춘 스네이프에 해리도 간신히 발을 멈췄다.

“아주 잠자리를 가진다고 광고를 하지?!”

새빨개져서 쏘아붙이는 스네이프를 보고 있자니, 해리는 당장 옆의 빈 교실에 그를 몰아 넣고 바지를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상으로만 그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이제 아무도 우리 사이 의심 안 할 걸요?”
“미친 놈! 또라이─ 이 머저리 포터가─”
“세베루스, 흥분 가라앉히고 교장실로 올라가요. 애니마구스 연습하는 거 보고싶어요.”

스네이프의 어깨를 감싸면서 해리가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씩씩대던 숨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여전히 부끄럽고 창피하고 화가 났지만, 해리의 품 안에서 나는 체향에 안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스네이프는 그럼에도 해리를 툭 밀쳐내고 걸음을 다시 옮겼다. 교장실까지 가는 동안 해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교장실에 들어선 둘은 덤블도어 초상화를 마주하고 묘한 분위기를 애써 숨겼다. 가늘어지는 반달안경 뒤 눈에, 잘못 걸리면 큰 일이었으니까. 스네이프는 숨을 가다듬고 지팡이를 내려 놓았다. 해리는 처음으로 보는 연습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완벽주의자인 스네이프는 성공하기 전까지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 거다.

지팡이를 내려 놓은 스네이프는 표정을 지웠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초상화 옆에 서서 실제의 그를 지켜 보았다. 초상화가 저를 빤히 보는 시선을 해리는 내심 좋아했다. 해리가 초상화의 뺨을 손등으로 살짝 쓸어 내렸다. 초상화 속의 스네이프는 얼굴을 약하게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실제의 스네이프든, 그림 속 스네이프든 나를 좋아하는 구나. 해리는 미소 지으면서 스네이프가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스네이프의 모습이 울렁이는 듯이 보였다. 이게 변신 전의 전조증상이군. 순식간에 금방 동물로 변하던 시리우스나 페티그루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울렁거리는 인간의 육체 너머로 동물의 형상이 잡힐 듯한 신기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금방이라도 변할 것 같은 순간에서 다시 돌아와 버렸다. 해리는 아쉽게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대단해요, 세베루스. 연습한지 한 달도 안됐는데.”
“…….”

해리를 잠깐동안 노려보며 스네이프가 호흡을 골랐다. 제 망설임을 들키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음,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님이 왜 절 부르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해리가 제 지팡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해리 쪽으로 다시 돌렸다. 해리는 사뭇 여유로운 태도로 저를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정복을 입고 제 초상화 옆에 기대 서있는 해리는, 연인인 스네이프로서도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근사하고 멋스러웠다. 제 초상화보다 더 그림 같아 보였다. 스네이프는 불시에 해리의 까만 흑발과 녹색 눈을 홀린듯이 바라 보았다. 해리의 오른손이 제 지팡이를 들더니 부드럽게 공중을 그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진중하고 청아한 해리의 목소리에 이어 발을 구르며 은백색의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지팡이 끝에서 튀어 나와 교장실의 공중을 빙글빙글 돌았다. 스네이프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 보다가, 수사슴이 웅장한 뿔을 흔들며 제 앞으로 다가와 서는 것에 움찔 놀랐다. 수사슴은 그러나 물러난 스네이프의 거리만큼 다가왔다.

스네이프가 침을 삼켰다. 달빛을 닮은 동물은 스네이프에게 애정어린 몸짓으로 머리를 기댔다. 해리는 지팡이를 쥔 손으로 팔짱을 끼고 선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반영인 수사슴은 제 반려를 알아보는 듯 했다. 스네이프는 제 목덜미의 번개무늬 흉터를 핥아주는 수사슴에 큭,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포터, 너랑 똑같군. 스네이프는 이제야 마음 가득 평온함을 느꼈다. 전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해리는 제 수사슴 패트로누스 옆에 선 암사슴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은백색이 아닌 실제 암사슴의 부드러운 갈색 털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암사슴의 유순한 까만 눈동자에서 해리는 익숙한 밤하늘을 느꼈다. 해리가 온 생을 걸고 헤매이고 싶은, 그 밤을 닮은 눈동자가 해리를, 해리만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무릎을 굽혀 앉아서 암사슴의 목을 끌어 안았다. 사랑해요, 세베루스. 암사슴은 해리의 정수리에 제 고개를 얹고 눈을 감았다.

“성공 축하한다, 세베루스.”

어느새 들어온 맥고나걸이 살짝 미소를 보이고 둘을 보았다. 해리가 몸을 일으켰다. 수사슴 패트로누스를 지팡이를 한 번 휘저어 없앤 해리의 옆으로,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스네이프가 다가가 섰다. 스네이프는 그간 절 가르쳐준 스승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감사하다는 말에 맥고나걸은 그간 저도 즐거웠다고 답했다. 그 긴 세월보다, 3주간의 애니마구스 수업 동안에 스네이프와 더 친해진 것 같아 은사도 기뻤다.

해리가 맥고나걸에게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해리를 올려다 보면서 그녀도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애니마구스를 배운 이유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은사의 물음에 스네이프도 해리도 흠칫 놀랐다. 스네이프는 또 한 번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세베루스가… 이유를 안 밝히고 배웠었나요?”
“그는 꽤 수줍음을 타잖니, 해리.”
“어…… 그런데도 가르쳐주시려고 이렇게 배려해주시고…… 정말 거듭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해리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스네이프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에, 차가운 제 손등을 대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 이유는 안 가르쳐줄거니?”
“……세베루스를 존중해서, 저희가 생각했던 일이 성공했을 시에 바로 알려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건…… 저희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해요, 교수님.”

스네이프는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을 것 같았으므로, 해리가 대신 말을 하고 마지막 인사까지 했다. 은사는 점점 더 궁금해졌지만 그들에게 간절한 일이라니 고개를 끄덕여 응원했다. 해리가 먼저 교장실의 벽난로로 넘어 갔고, 스네이프가 맥고나걸을 보고 망설이더니 결국에 살짝 그녀를 안았다가 떨어졌다. 스네이프가 먼저 한 포옹은 생전 처음이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맥고나걸은 몹시 놀랐다. 해리를 만나고 나서부터 스네이프의 변화가 놀라울 뿐이었다.

“잘 가거라, 세베루스. 또 보자.”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수님. …그럼.”

정중하고 칼 같은 제자는 금세 벽난로 너머로 사라졌다. 맥고나걸은 다음날부터 있을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책상으로 걸어 갔다. 어쩐지 앞으로도 재밌는 소식을 들려줄 것 같아. 그녀의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스네이프가 벽난로를 통해 집으로 넘어오자마자였다. 해리가 스네이프에게 와락 달려들더니, 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성공! 성공했다구요, 세베루스!! 성공이라고요!! 신이 나서 저를 안고 방방 뛰는 제 강아지를 내려다 보던 스네이프가 피식 웃었다. 어지럽다, 내려 놔, 포터. 그 말에 해리가 여전히 몸을 꽉 끌어 안은 채로 스네이프를 내려 놓았다. 스네이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면서 해리는 신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1단계가 성공했을 뿐인데 요란 떨기는. 그렇지만 스네이프도 해리가 좋아하는 걸 보면서 기뻤다.

“나는 오늘 세브가 성공할 줄 알았어요. 으으응, 너무 좋다.”

제 품에서 해리는 만족스러운 숨을 쉬었다. 스네이프가 언제까지 질척일 거냐고 물었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니예요? 해리가 짐짓 삐진듯이 스네이프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스네이프는 통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해리와 눈을 마주할 뿐이었다. 해리는 결국 떨어지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스네이프에게서 물러섰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여유로운 표정이 되었다. 스네이프는 로브를 벗어 걸면서 해리를 흘낏 보았다. 저 놈 또 왜 저래?

“성공 보상이요, 세베루스.”
“아…….”

그거였나. 스네이프는 재는 듯한 시선으로 정복 차림의 해리를 훑어 보았다. 확실히, 지금 드는 이 기분을 천박하게 표현하자면 ‘꼴렸다.’

“하기 싫어하더니, 왜 네가 더 신난 것 같지, 포터?”
“연기잖아요. 저 이젠 오러 아니고 당신도 범죄자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인 해리가 허리에 양 손을 얹은 채 뻔뻔하게 스네이프를 보았다. 몇 시간 전까지도 오러 업무를 보고 왔으면서, 정말 뻔뻔하게 선 긋는군.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들어서 제 서재의 문을 열었다. 조지에게 납품 할 사랑의 묘약이 숙성중인 서재였다. 지금 스네이프에게는 온통 해리의 냄새가 서재에서 가득 풍겨왔다. 해리에게는 저의 냄새가 느껴질 공간이었다. 스네이프는 그 생각으로 살짝 아래가 서는 것을 느꼈다.

“저기서 하자고요? 흐음.”

정말 음탕하시네.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서로의 향이 느껴지는 공간은 최음제를 다량으로 풀어놓은 느낌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몽롱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벌써부터 풀린 해리의 얼굴에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그 자신도 그렇게 여유는 없었다.

“범죄도 종류가 있는데…. 어떤 설정으로 해요?”
“다른 데서 죄목을 찾을 필요가 있나? 난 데스 이터였다.”
“그럼 제가 너무 과하게 몰입 될 것 같아서 그렇죠! 그건 싫어요.”

그렇게도 볼드모트의 수하였던 자신이 싫은가 보다. 스네이프는 웃음을 흘리며 곰곰히 생각했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그대로가 좋았다.

“……나는 과하게 몰입한 너에게 당해보고 싶은데.”

멈칫, 해리의 풀렸던 눈에 형형한 기가 어렸다. 스네이프는 허리 뒤축에서 찌릿하게 올라오는 흥분을 느꼈다. 순식간에 오러 해리 포터에게 붙잡힌 데스 이터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해리는 이미 저를 집어 삼킬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가 하, 하고 스스로를 조소했다. 눈 앞의 해리는 제 연인인데, 순간 겁을 먹었다는 게 우스웠다.

스네이프는 제 서재를 눈에 담았다. 세 개의 벽에 천장까지 세운 책장에는 책이 가득 꽂혀있었고, 약물을 만드는 테이블에는 사랑의 묘약이 솥째 놓여 있었다. 문 옆에 위치한 자신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는─ 붉은색의 오러 정복을 입고 지팡이를 손에 든 잘생긴 오러가 서있었다. 그 오러의 음험한 암녹색 눈빛이 금방이라도 저를 해칠 것 같아, 데스 이터는 다리 사이가 뻐근해왔다.

“스네이프.”

학생일 때, 지긋지긋하게도 교수님을 붙이지 않고 저를 부르며 자신을 분노하게 하던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최근 1년간 들어본 적 없던 단조로운 스네이프에 뒷덜미부터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부르는 해리의 목소리에서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러 포터는 그저 날 잡아야 하는 데스 이터로밖에 보지 않는 구나. 그 사실에 흥분해버리는 자신이 스네이프는 역겹기도 하고, 파르르 몸이 떨리기도 했다.

“…포터, 네까짓 풋내 나는 오러 한 명이 나,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잡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 물론 당연히 다른 오러들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겠지만.”
“아니, 스네이프. 넌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너야말로…… 네 주인이 없는 곳에서는 별 볼 일 없다는 걸 나도 알거든.”

해리는 ‘주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살짝 망설였다. 아직 몰입이 덜 됐군.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비웃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벤투스!”

해리에게만 특정 된 돌풍이 불었다. 책장 쪽으로 날아간 해리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책들을 프로테고로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집중 해, 포터. 네 앞에 있는 건 데스 이터다.”

해리는 짜증어린 눈으로 스네이프를 보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인카서러스!” 스네이프의 입을 제외한 가슴과 무릎이 밧줄에 묶였다. 바닥에 무릎 꿇어 주저앉은 스네이프가 하, 기가 막힌 웃음을 토했다. 해리는 꽤 화가 나 보였다. 차가운 얼굴로 해리가 책더미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묶인 스네이프에게 다가온 해리의 손이 머리채를 쥐고 위로 처들었다. 스네이프는 발기하는 것을 느꼈다. 허벅지 사이가 더욱 바짝 모여들었다. 머리채를 쥔 손에 두피가 당겨 화끈거리고 아프기도 했다.

“건방지게 굴지마,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이제 완전히 발기했다. 당장에 저 난폭한 오러의 아래에 깔려 다리를 벌리고, 숨을 헐떡이고 싶어졌다.

“내 ‘주인님’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당할 애송이가…… 윽!”

머리채를 쥔 손에 힘이 더 가해졌다. 스네이프는 더욱 홧홧하게 당기는 두피에 인상을 찡그렸다. 제 도발이 기가 막히게 먹혀 든 모양인지, 해리는 진심으로 열이 받은 표정을 했다. 저렇게 화가 난 해리 포터도 오랜만이었다. 스네이프는 우습게도 웃음이 나와서 한 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절 비웃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이를 꽉 물었다. 욕설을 짓씹으며 그의 등 뒤로 돌아갔다. 스네이프는 제 시야에서 사라진 해리에 불안해졌다.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제 뒤에 앉은 해리가 지팡이를 칼처럼 들고 무릎을 묶은 밧줄을 한 순간에 끊어냈다. 이제 스네이프의 몸에는 팔과 가슴을 함께 조이는 밧줄만이 남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다리가 자유로워지자마자 뒷목을 손으로 잡고 꽉 눌러 머리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스네이프는 목 안으로 고통의 신음을 참았다. 정말로 지금 자신은 오러의 아래서 제압당하는 모습이었다.

주인님이라는 말에 이 정도로 진심이 되다니. 스네이프는 해리의 순정을 비웃었다. 어차피 오물처럼 더러웠던 자신의 진짜 과거인데, 해리가 부정한다고 사실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기꺼이 저의 과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하… 이 정도로 나를 제압했다 믿는 건 아니겠지? 해리 포터.”
“아직까지 나불거릴 힘이 남았나, 스네이프? 넌 지금 지팡이도 없고, 내 손에 붙잡혀 있-”
“날 지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둠의 마왕 뿐이다, 포터. 너 같은 애송이는 그 분의 위대한 힘 앞에선…… 아윽!”
“입 닥쳐, 스네이프!!”

해리는 정말로 화가 났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질투심과 소유욕, 정복욕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한해선 볼드모트에 비할 바가 못됐다. 당신은 내 거야, 세베루스. 어둠의 마왕 따위의 것이 아니라고. 해리는 스네이프의 바지를 붙잡고 아래로 당겼다. 벨트 탓에 벗겨지는 것이 어렵자 생각할 것도 없이 지팡이로 벨트를 끊어 버렸다.

스네이프의 하반신에 싸한 기가 돌았다. 무릎까지 벗겨진 바지 탓에 아래가 서늘했다. 해리는 하얀 엉덩이를 보는 순간, 왼쪽 눈을 찡그리고 인상을 구길 정도로 흥분했다. 눈 앞으로 스네이프의 몸이 저에게 먹히기 위해 하얗게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팔이 뒤로 묶여 엎드린 채, 뒤에서 벨트를 푸는 철컥이는 쇳소리를 들었다. 이미 발기했었던 제 것에서 물이 질질 흘렀다. 스네이프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제 성기를 비빗거리며 아래를 움찔였다. 해리는 그 모습에 비웃으며 성기만 꺼내서 제 오른손으로 쥐고 주물렀다.

“볼드모트만이 널 지배할 수 있다고?”

해리의 싸늘한 목소리에서는 기묘할 정도로 흥분이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응? 스네이프. 네 아래는 지금 내게 벌리고 싶어서 움찔대고 있는데.”
“흐, 읏….”
“지금 누구에게 지배 당하고 있는지 똑똑히 느껴, 스네이프.”
“헉….”

스네이프는 숨을 힘껏 들이쉬고 참았다. 해리가 제 입에 넣었다가 뺀 타액에 젖은 손가락 두개를 스네이프의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최근 관계를 가진지 조금 되었더니 삽입이 버거웠다. 진짜 해리에게 억지로 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네이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점점 숨을 쉬기도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해리에게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제 안을 아프게 파고 들고 익숙하게 드나드는 손가락에, 스네이프는 눈이 풀려서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렸다. 하아, 아아…. 스네이프의 몸은 지나칠 정도로 해리에 길들여져 있었다. 사랑의 묘약에서 풍기는 해리의 냄새까지 콧속으로 짙게 스며 들어 정신이 몽롱했다.

해리는 미간을 좁혔다. 얼른 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제 성기에 피가 잔뜩 몰렸다. 성기 끝이 욱신이며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팠다. 당장 스네이프가 자신의 것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육신이 난리를 쳤다. 그러나 아직 제 큰 것을 밀어 넣기엔 윤활이 부족했다. 이성이 나갈 것 같은 순간에도, 스네이프의 몸에 흠집이 나는 것까진 원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침을 뱉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헉…… 앗….”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채를 쥐고 제 쪽으로 상체를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는 옆으로 기울어져서 해리의 하체에 얼굴을 처박았다. 눈앞으로 핏줄이 불거져 벌겋게 발기한 해리의 성기가 보였다. 스네이프는 잴 것 없이 입에 그것을 물고 흡입하듯 빨아 들였다. 하, 으윽…. 해리는 찡그리며 스네이프의 축축하고 더운 입 속으로 저를 바짝 밀어 넣었다. 스네이프의 좁은 목구멍에 귀두가 닿이고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는 그제서야 만족을 느꼈다.

스네이프는 벌써 머릿속이 흐릿했다. 해리의 성기를 본능적으로 빨아대면서 혀를 내어 밑둥을 핥았다. 선 굵은 핏줄마다 혀끝을 움직이니 해리의 몸이 움찔거렸다. 스네이프도 손을 내려 제 것을 만져대고 싶었다. 그러나 밧줄에 팔이 뒤로 묶여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런 압박적이고 강제적인 상황에, 만지지도 못하는 제 성기에서는 부끄러운 액이 조금씩 질질 새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귀 옆을 양 손으로 잡았다. 상체가 부자연스러워 제대로 고갯짓도 어려운 스네이프를 도와 그의 머리를 움직였다. 으응, 흠, 우, 읏…. 스네이프의 것에서 얇고 길게 끈적한 물이 떨어졌다. 해리는 숨을 거칠게 쉬며 허리를 처올렸다. 뜨겁고 습한 숨이 선단에 훅 끼쳤다.

“아……!”

해리가 급히 스네이프의 입 속에서 제 성기를 빼냈다. 멍하게 벌어진 입술과 붉은 혀가 시선을 현혹했다. 그러나 해리는 스네이프의 몸을 돌리고 팔을 배 밑에 넣어, 그의 엉덩이를 위로 들렸다. 골 사이에 사정이 임박한 귀두를 비볐다. 한순간에 정액이 뒷구멍과 회음부 아래쪽으로 뿌려져 흘러내렸다. 해리는 여운을 즐기면서 정액이 발린 엉덩이 골 사이에 성기를 몇 번 더 비볐다.

“하아…아……. 스네이프….”
“흐으응……포터….”

스네이프가 재촉하듯 엉덩이를 움직였다. 박아달라는 움직임이었다. 해리의 흥분에 흐려졌던 녹색 눈에 다시 안광이 돌았다. 스네이프는 팔이 묶인 채 겨우 머리만 바닥에 붙이고 엉덩이를 들어올린 자세였다. 저의 구속에 온전히 몸이 묶인 그의 모습이, 해리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해리가 빠르게 허리를 잡고 스네이프의 엉덩이를 더 들어 올렸다. 힘없이 딸려오는 하반신에 방금 전 사정했던 성기가 바로 반응했다. 하얀 엉덩이와 가느다란 허벅지가 벌려졌고, 골 사이에서 뭉근하고 불투명한 액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해리는 지체하지 않았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약속 된 천국에 바로 성기를 쑤셔 넣었다. 이 안을 맛본 건 나 뿐이야. 그에 대한 만족감에 해리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 잘난, 스네이프의 어둠의 주인마저 몰랐을 이 쾌감의 장소를 해리는 알고 있었다. 해리는 깊게 삽입하며 스네이프의 등에 제 가슴을 붙이고 몸을 숙였다. 스네이프는 순식간에 몸 안을 채우는 부피감에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다시 몽롱하게 눈이 풀렸다. 드디어 들어 왔다, 하는 생각에 앞이 왈칵 젖었다.

“이런… 만져준 적도 없는데 앞을 이렇게 적셨네? 이런 음탕한 노예를 네 주인은 알고 있을까?”
“으응, 흣…. 그 분을, 함부로 더러운 네 입에 올리지…… 마, 포터, 하윽….”

해리의 오른손이 빠르게 스네이프의 앞을 지분거렸다. 스네이프는 침을 흘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헉헉거렸다. 너무 기분 좋아, 멍한 머릿속을 채우는 건 오직 성적쾌감밖에 없었다.

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골을 바닥에 붙인 채 허리를 흔들었다. 아, 아으, 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머리로 스네이프는 멍청하게 신음만 내보냈다. 해리는 제 아래에 흩어진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붉은 귀와 내리깐 속눈썹 아래 탁하게 검어진 스네이프의 눈동자를 보았다. 이 사람은 내 거야.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내 거야……. 오직 그 생각만 하면서 스네이프의 안을 거칠게 들락거렸다. 제 아래에서 엉덩이에 힘을 주는 이 야해빠진 조임에 성기가 끊어질 것 같았다. 의식도 못하면서 제 성기를 꽉 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미칠 것 같았다.

“씹, 너무 조여….”

해리의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스네이프의 허리를 잡은 손바닥에도 질척이는 땀이 베였다. 해리가 겨우 바닥을 짚어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등 뒤에 팔이 묶여있던 밧줄을 풀어내자, 스네이프의 몸이 스르륵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밧줄에 조여지던 팔이 풀렸지만 스네이프는 그 팔을 꼼짝도 못했다. 인형 같이 늘어진 스네이프를 안아들며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과 마주 보며 박았다.

“좋아? 스네이프?”
“시끄, 러워…. 개소리 하지, 으앗, 헉….”
“내 자지를 이렇게 물어 놓고 아직도 반항하나? 네 위에 있는 게 지금 누군지 봐. 눈 감지 마,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 떴다. 해리를 보는 순간에는, 음습한 늪처럼 가라앉은 녹색의 눈에 빠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스네이프가 힘없는 팔을 들어 해리의 목을 안았다. 해리가 허리 아래를 움직이며 스네이프의 목덜미에 번개 낙인을 미친듯이 핥았다. 발정기의 수캐처럼 제 아래의 암컷을 정복하듯 스네이프를 탐했다. 스네이프의 입에서 끊임없이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앙, 핫, 흐아, 포터, 흐응, 으, 읏- 싫… 싫어, 그마안, 으으응, 포터어…….

제 이름이 섞여 들리는 신음이 듣기 좋았다. 제 아래에서 맥을 못추며 허리를 흔드는 나른한 마른 몸이 좋았다. 대리석처럼 하얀 몸을 불긋하게 물들이는 게 저인 것이 좋았다. 해리는 이를 세우고 스네이프의 가슴 곳곳을 깨물었다. 유두를 물고 늘어지는 해리에 허리가 벌벌벌 떨렸다. 흐응…! 스네이프는 발끝을 오무리며 손끝까지 곱아들었다. 해리가 주는 자극이 온통 쾌감이었다. 사랑의 묘약을 몸 안에 솥째 들이부은 것만 같았다. 해리, 해리……. 풀린 까만 눈동자가 해리의 녹안을 쫓았다. 해리는 제 아래의 암사슴을 끌어 안고 키스했다.

“응…음….”
“으음…스네이프….”

역할극 중임에도 그가 사랑스러워, 어쩔 수 없이 해리의 눈이 부드럽게 풀렸다. 내 연인. 제가 이 세상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오직 단 한 사람이었다. 다른 누구에게 뺏기고 싶지도, 그가 다른 누구를 원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었다. 다른 주인을 입에 올리는 그에 해리는 견디기 힘들게 화가 북받쳤다. 사실 더 엉망으로 스네이프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다. 제 분노는 이 정도가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바닥 아래의 그가, 결국에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서, 해리 포터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스네이프를 안은 채 급하게 허릿짓을 했다. 스네이프가 바르작거리며 흥분에 몸을 뒤틀었다. 해리의 뒤통수를 쓸어내리고, 붙잡고 얽히는 손가락에 해리는 슬며시 웃었다.

“당신 주인이 누구야? 스네이프.”

스네이프의 달뜬 눈이 해리를 보았다. 가슴이 흥분에 들썩거렸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해리를 향하고 있었다.

“포터…….”

스네이프가 고개를 꺾어 입을 맞춰 왔다. 해리가 손을 뻗어 그의 뒤통수를 받치고 혀를 깊게 섞었다. 서로에게 빠져서 키스하며 해리는 스네이프의 안에 사정했다. 안을 적시는 느낌에 스네이프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엉덩이 사이로 흐르는 미묘하게 뜨거운 끈적임이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성기에서도 느슨한 분출이 이어졌다. 해리가 손으로 기둥을 쓸어, 진득하고 질척하게 사정을 도왔다.

스네이프의 혀가 해리의 혀를 옭아매었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두 눈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사랑해요, 세베루스.”
“나도, 해리.”

내 주인은 너야, 귀에 속삭이는 낮은 중얼거림에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 웃었다. 오늘밤은 유독 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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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이탈 신호가 삐삐삐 규칙적으로 들렸다. 공중에 띄워진 형광연두색의 제 생체신호를 바라보다가 해리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치유사 한 명이 서있었다. 해리는 시선을 내려 환복을 입은 제 몸을 바라봤다. 병실에는 특유의 약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용한 병실로 미루어, 그 진동하는 약물 냄새는 제 몸에 들이부어진 약물의 냄새인 듯 했다.

치유사가 눈을 뜬 해리를 발견했다. 해리 포터씨? 물음에 해리는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치유사는 곧장 밖으로 나가, 가드 중인 오러 론에게 해리가 눈을 뜬 사실을 알렸다. 다시 해리에게 돌아온 치유사는 지금 속이 어떤지 물었다. 울렁거려요? 메스껍나요? 구토 하고 싶으신가요? 불편한 거 있어요? 해리는 살짝 속이 메스껍다고 말했다. 치유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약물을 준비하러 나갔다. 병실은 다시 제 생체신호의 소리만 들렸다.

세베루스는, 아직 내 소식을 듣지 못했나? 해리는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절 걱정하는 스네이프의 얼굴만 봐도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을 것이다. 게다가 말도 안되는 함정에 빠져 제 발로 적의 소굴까지 들어갔던 걸 알면…… 얼마나 한심스러워하고 제게 화를 낼지.

“해리.”
“론.”
“진짜 사람 좀 놀래키지 마, 너.”

A팀 오러들과 합류한 뒤, 론은 해리가 있을 사창가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이미 격전은 벌어진 뒤였다. 녹턴 앨리의 목격자들은 비협조적이다. 오러들과 론은 골목을 발로 뛰며 해리를 찾았다. 막다른 골목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해리를 발견했을 때, 론은 온 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다른 오러들이 근처의 데스 이터를 발견하고 병력을 소집했다. 론은 들것에 해리를 옮기고 오러들과 성 뭉고로 순간이동했다.

길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해리에게 치유사가 다섯이 달라 붙어 진단을 하고 치유마법과 약물 투여를 실시했다. 숨가쁘게 돌아가던 현장이 조금 나아졌을 때, 론도 제 숨을 토할 수 있었을 때에야 스네이프를 부를 생각이 났다.

“스네이프는 잠깐 밥 먹으러 갔어.”
“세베루스도 불렀어?!”

해리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윽! 바로 느껴지는 배의 통증에 해리는 웅크려서 소리도 못내고 앓았다. 이렇게 아플 수 있다니…. 론은 치유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해리에게 건넸다. 다행히 왼팔은 멀쩡해서 해리는 왼손으로 받아 마셨다.

“치유사들이 보호자가 필요하대서. 근데 스네이프가 너 다친 거 보고 눈 돌아가서 어쨌는 줄 알아?”
“뭐……?”
“널 이렇게 만든 용의자 어디 있냐고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오러들 밀치고 찾으려고 난리였어. 방금 전까지 충격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니. 네 마누라 무섭더라, 야.”

휴에게 듣고 웃은 호칭을 그대로 써먹으며 론이 싱긋 웃었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론을 쳐다보았다. 네가 지어낸 얘기 아니고? 그에 론은 웃음을 터뜨리며 목격한 오러가 스무 명은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휴 씨가 수면 물약 먹여서 억지로 재웠고, 깨고나서는 엄마랑 조지가 스네이프 데리고 저녁 먹으러 나간 거야.”
“뭐? 몰리 아줌마랑 조지…?”

해리는 더 기가 막혀서 눈만 동그랗게 키웠다. 몰리 아줌마랑 조지가 세베루스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수백 개는 뜨는 느낌이었다.

“해리 네 보호자가 잠들어 있는데 별 수 있냐. 치유사들은 자꾸 해리 포터씨 보호자 찾고, 그래서 우리 엄마 불렀어.”
“세상에……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서 어떡하지. 세브가 잘 있을까?”

해리는 이런 식으로 스네이프가 위즐리, 특히 몰리와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어떨지 걱정도 되었다. 론은 너무 걱정 말라고, 조지도 같이 있다고 해리를 안심시켰다. 확실히 그 말에 마음이 좀 놓였다.

치유사가 메스꺼움을 없애는 약을 들고 들어왔다. 해리는 감사합니다, 인사 하고 약물을 받아 마셨다. 먹는 순간엔 메스꺼움이 증폭 되는 비린 맛에 토할 뻔 했지만, 금방 속이 편안해졌다. 치유사는 현재 포터 씨의 장기가 끊어져서 연결중이며 현재 시점까지 62%가 이어졌다고 가르쳐주었다. 또한 부러졌던 발목은 정상이 되었으나, 걷는 건 다음날부터 하기를 추천했다. 해리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유사가 나가자 해리는 론에게 물었다.

“그리드는?”
“벽에 부딪히면서 척추가 손상 됐어. 지금 치유사들이 뼈를 다시 재구축 중이야. 정신은 아직 안 돌아왔어. 정신 차리는대로 베리타세룸 먹이고 조사 시작될 거고. 그건 국장님이 할 거래.”
“그래? 그럼 뭐, 됐네.”

입원 핑계로 난 쉴 수 있겠다. 해리가 씨익 웃으며 론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게, 네 몫까지 앞으로 고생은 내 차지네, 해리. 론이 허리에 손을 차고 짐짓 한숨을 흘려 보였다. 해리는 배의 통증탓에 제대로 웃을 수가 없었다. 윽, 으흑, 웃기지 좀, 마, 론! 해리가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론이 통쾌하게 웃었다.

끼익, 뒤쪽의 문이 열리고 복도의 환한 빛이 길쭉하게 들어왔다. 해리는 바로 문을 돌아 보았다.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순식간에 죄인이 된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스네이프는 걱정으로 굳은 얼굴로 해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해리가 눈을 뜬 걸 보았다. 스네이프가 손을 뻗어 해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론은 연인간 특유의 손발이 곱아드는 분위기에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가드 일을 하러 병실을 나갔다. 약간 어둑한 병실에는 해리와 스네이프만이 남았다.

“세베루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 많이 놀랐다, 포터. 네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니까.”

스네이프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 해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과 코 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바로 맺혔다. 세베루스를 이렇게 걱정시키다니 자신이 죽일 놈이었다. 스네이프는 어린 신랑이 눈물을 흘리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스네이프가 손등으로 해리가 흘린 눈물을 훔쳐냈다. 침상의 난간을 내리고 해리 옆에 앉았다.

“해리. 눈 떴으니까 됐어.”
“미안해요…… 미안해, 세베루스. 다치지 않도록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맞아. 그랬어야지.”

스네이프가 작게 웃으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의 오른뺨에 손을 올린 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두 얼굴이 마주 보았다. 해리는 물기 어린 시야로 스네이프가 흐려 보이는 것에 짜증이 났다. 해리는 고개를 숙여 스네이프의 뺨에 제 뺨을 붙이고 살끼리 비볐다. 눈물 탓에 축축하고 부드러운 해리의 뺨을 느끼면서 스네이프는 눈을 감았다.

“난동 부렸다면서요. 용의자를 찾아내서 어쩔 생각이었어요?”
“우선 네 장기처럼 그 놈의 내장을 다 끊어놓고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선사해줬겠지.”
“세상에. 세베루스, 토 나와요.”

큭큭 웃다가 또 해리는 배의 통증에 악 소리도 못내고 앓았다. 스네이프는 인상을 찡그리고 해리를 바라봤다. 아픈 걸 제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속만 상했다. 이런 거지 같은 직업을 대체 왜 가졌냐고 해리에게 따지고 싶기도 했다. 제가 평화롭게 만든 세상에 목숨 걸고 또 무얼 지키고 싶어서. 해리는 바로 어제 오러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오늘 죽을 뻔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해리는 절대 죽을 뻔한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스네이프에겐 심각한 공포였다.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짓씹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괴로움이 가득차 보였다. 해리는 제가 느끼는 아픔까지 본인도 느끼려 하는 것 같은 스네이프에 미안하기도 하고, 애처로울 만큼 그가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 목의 번개 흉터를 찾아 입술을 맞췄다. 스네이프는 오늘 이른 아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해리에 저를 맡기고 있었다.

“해리, 용의자가 깨어났…! ……!!!!!”

스네이프는 밝은 복도의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문 앞에는 론이 서있었다. 론은 제 오랜 친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를 애무하는 듯한 모습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해리는 론이 문을 연 걸 알았음에도, 아직까지 스네이프의 목에서 얼굴을 거둬가지 않았다. 결국 스네이프가 해리를 떼어내었다. 론은 기가 막힌 듯 둘을 바라봤다. 해리는 아쉽다는 얼굴로 스네이프의 목을 보다가 짜증스런 시선을 론에게 던졌다.

“국장님이 알아서 조사 하신다며. 왜 방해하고 난리야, 론.”
“하…! 하…! 나 참내…! 야, 해리, 내가 너 발견해서 살려서 여기까지 데려왔거든…!!”
“그건 고마워.”

론은 기가 막혀서 하! 참나! 하! 하고 헛숨을 쉬며 문을 쾅 닫았다. 해리는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횡격막을 붙잡고 꾹 참았다.

“헤르미온느랑 키스해대던 론에게 복수하는 기분이라 즐겁네요.”
“지니 위즐리랑은 안 이랬나?”

컥! 해리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레에 들릴 뻔했다. 사레를 참았다지만, 허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아서 해리는 난간 한쪽을 붙잡고 목 안으로 고통스런 비명을 참았다. 스네이프는 쯧, 혀를 차고 쌓여있는 진통제를 건넸다. 해리는 이제는 생리적인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약을 또 받아 마셨다.

“지니는 아직 학생이라고요. 아으으….”
“그래? 네가 날 물고 빠는 걸 보면 거의 섹스중독 수준이지 않나.”
“세베루스, 그건 당신이니까….”

당신이 날 꼴리게 만들어 놓고 어떡하라고요, 해리는 입 안으로만 맴도는 말을 짓씹어 넘겼다. 갑작스레 스네이프가 지니를 언급해서 너무 놀라, 사리분별 없이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해리는 진통제를 마신 입술을 닦으며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표정.

“오늘 학교에 갔어. 미네르바에게 애니마구스를 배우기로 했다.”
“아, 정말요?! 잘 배우고 왔어요?”

해리는 반색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에 빛이 들어왔다.

“내 생각보다 더 어려워. 짜증스럽더군.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내가 암사슴이 안 되면 어쩌나 싶고.”
“당연히 되죠. 너무 걱정말아요. 당신은 내가 아는 마법사 중에 제일 대단하니까요, 세브.”
“흥, 우습군….”

아부 하지 않아도 노력할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해리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기분 좋게 웃으며 저를 보는 해리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수업을 받고 돌아왔는데, 다쳤다는 심장 떨리는 소식이나 전해주는 미운 연인이라니. 퇴원하자마자 집에 가둬놓을까, 스네이프는 바로 어제 자길 가둬놓고 싶다던 해리의 말에 기겁한 걸 스스로 뒤집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지니 위즐리를 만나서 대화도 했다.”
“네?”

해리가 눈을 키웠다. 스네이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해리를 봤다.

“이제 널 다 잊었다던데? 몰리보다 받아들이는 게 낫더군.”
“아…….”
“이제 부담 갖지 마라, 포터. 위즐리들은 이미 널 받아줬으니까.”
“세베루스도 함께요? 몰리 아줌마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어요?”
“뭐, 예전과 비슷하게.”

해리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네이프가 거짓말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큰 산 이었던 벽 하나가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위즐리 가족, 헤르미온느를 비롯한 해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차례로 스네이프와 자신의 관계를 받아들여줘 간다. 그들이 저를 아껴서일까? 세베루스가 사실은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이어서일까? 이것이 제 주관적인 기준이라 해도 좋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그 견고한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어깨에 멀쩡한 왼팔을 둘러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얼굴 옆으로 제 머리를 붙이며 얌전히 안겼다. 해리의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고, 물약 냄새가 섞인 체향이 코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평소와 다른 냄새에 스네이프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병원의 냄새가 묻은 해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른 회복해라, 포터.”
“네, 빨리 나아서 집으로 돌아갈게요.”
“그래…. 나도, 애니마구스 열심히 배워 놓겠다.”
“응.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 세베루스.”

부드럽게 입술이 닿였다. 살짝, 살짝 서로의 입술을 축이듯 조심스럽고 간지러운 키스였다.


해리가 입원한 후로 나흘이 지났다.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였던 그리드 파인즈는 베리타세룸을 마시고 오러국장의 앞에서 진실을 술술 불었다. 연계 돼있던 다른 데스 이터 두 명이 더 잡혔고, 스큅 창부는 여럿이 매수 된 상황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해리를 노린 이유는 역시나 해리 포터가 이 마법세계의 구원자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리는 오러이기까지 했다. 오러국장실에 보관중인 타임터너를 탈취하기엔 해리를 이용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해보였을 터였다. 그리드는 해리의 머리카락을 채취해, 폴리주스로 변신을 한 뒤 마법부에 침입할 예정이었던 것까지 아낌없이 발설했다. 마법세계 영웅의 모습에다, 오러가 오러국장실을 찾는 것은 전혀 의심 받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해리는 자신이 그들에게 납치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수사 결과를 듣고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 신물 나는 마법사회는 해리 포터를 어떻게든 이용하려 들려고 야단이었다. 운명의 장난으로 그 빌어먹을 번개무늬 흉터가 이마에 새겨진 이후로, 해리의 인생은 해리의 것만이 아니었다. 물론 스네이프의 인생도 스네이프의 것이 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스네이프 또한 해리에게 삶이 종속되었다. 그리고 이제 스네이프는, 기꺼이 해리 포터만을 지키며 살겠다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파인즈, 그 놈은 꼭 내 손으로 죽여 놓겠어.”

말포이 저택의 식탁에도 앉지 못했던, 그 젊은 데스 이터 놈 따위가, 감히. 스네이프가 그 말을 할 때, 너무나 차갑고 매서워 보여서 해리는 이미 그리드가 아즈카반에 수감된 상황을 몹시도 다행히 여겼다. 아무리 대상이 데스 이터라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는 제 연인이 살인자가 돼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그걸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인 걸 알았기에, 해리는 차갑게 분노를 표출하는 그의 앞에서 등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해리의 끊어졌던 장기는 다시 잘 연결되었다. 과연 성 뭉고 최고의 치유사들다웠다. 산재 처리 되어 해리의 치료비, 입원비도 마법부에서 모두 내주었다. 해리는 다른 오러들이 바쁘게 일하는 동안, 그저 병실의 침대에 편안히 누워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맞아주기만 하면 되는 날들을 보냈다. 유일한 고난은, 장이 연결된 후 첫 식사로 나온 오트밀 죽이 정말 엄청나게 맛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스네이프가 챙겨주는 고단백, 고영양에 맛까지 끝내주는 식사가 그리워 해리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포터 씨, 오늘 퇴원하셔도 됩니다. 주말까지 머무르고 싶으신가요?”

해리는 토, 일요일 출근을 할까, 병원에 주말 이틀 더 박혀 있을까를 두고 잠깐 고민했다. 어쨌든 직장에 나가더라도 스네이프가 덜 고생하게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간 스네이프가 보호자 침대에서 그 긴 몸을 쭈그리고 자는 게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마법으로 더 늘린 침대였는데도, 해리 눈엔 정말 불쌍해 보였다. 집에 가라고 해도 네가 없는 그 큰 집이 싫다, 하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그가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스네이프가 계속 해리의 병실만 지킨 건 아니었다. 점심 때부터 2시 반까지는 호그와트로 애니마구스 수업을 받으러 다녀왔다.

애니마구스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스네이프는 굉장히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해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텐데, 스네이프는 이상하게 초조해보였다.

“…세베루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팡이를 내던지며 보호자침대에 주저앉은 그는 짜증스럽게 팔짱을 꼈다. 해리는 머쓱하게 스네이프를 보았다.

“오늘 퇴원하기로 했어요. 짐은 챙겼고, 3시까지 퇴원 수속하면 된대요.”
“뭐? 퇴원? 정말로 가도 된다고? 아직 아픈데 네가 고집부린 건 아니겠지!”

짜증이 묻어난 신경질적인 말에 해리는 한숨을 쉬었다. 저 모습은 애니마구스 수업 탓이다.

“저 진짜 괜찮아졌어요. 치유사가 퇴원해도 된다 그랬다니까요.”
“확인하고 오지.”

스네이프가 로브를 펄럭이며 일어섰다. 해리의 미간도 순간 좁혀졌다.

“세베루스! 내 말 못 믿는 거예요?!”
“그냥 확인한다고! 소리 지르지 마.”
“제가 언제 소리를 질렀다고 그래요! 세브 당신이나 나한테 짜증부리지 말라고요.”
“내가 누구때문에 그 수업을 받는데……!”

왈칵 분노를 쏟아내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정말이지 익숙한 교수의 모습 그자체였다. 해리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고 찡그렸다.

“세베루스, 맥고나걸 교수님조차도 애니마구스 익히는 데는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하셨다면서요. 힘든 마법인 건 이해해요,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면 오히려 좋아질 수도…….”

이미 해리가 여러 차례 얘기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스네이프는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초조함을 숨겼으나, 갈수록 자신의 응원에도 쉽게 반박하고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콧방귀를 뀌고 차갑게 병실을 나가 버렸다. 아마도 치유사에게 퇴원 확인을 물으러 갔을 것이다. 해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환복의 단추를 풀었다. 피와 흙이 묻은 정복에 대충 얼룩을 제거 하는 마법을 걸고 입었다.

스네이프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말없이 해리의 짐가방을 들고 병실을 먼저 나갔다. 병원의 벽난로에는 퇴원 줄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플루 이동도 퇴원하는 환자 몸에 부담일 수 있지만, 순간이동보다는 나은 방법이긴 했다. 스네이프는 긴 줄을 보더니 해리의 손목을 잡고 문 쪽으로 이끌었다.

“뭐예요?”
“지하철이나, 택시… 그걸 타도록 하지.”
“머글 돈이 지금 없는데요?”
“컨푼더스를 걸면….”
“세베루스, 그걸 범죄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난 아직 오러 신분이거든요.”

돈을 안 내려고 머글에게 혼동마법을 쓰자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머글의 운송수단이 느리긴 하지만 제 몸에 부담이 덜 가는 방법이긴 했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갔다가 기사를 기다리게 하고, 머글 돈을 쥐여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성질을 부렸다. 해리는 더 이상 스네이프의 화를 돋우기 싫어서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택시를 타고나서도 스네이프는 냉전을 지속했다. 해리는 원하지 않은 전쟁이긴 했지만, 그걸 받아들여주는 것도 제 몫인 듯 했다. 스네이프는 지금 제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여전한 남성의 몸으로 그런 생각을 해주고 있는데다, 실제 마법 배우기에 애쓰고 있는데 제대로 되고 있지도 않았다. 애니마구스를 성공한 이후에도 그가 진짜 암사슴이 될지, 정말 암사슴이 된다 하더라도 스네이프가 생각한 여성생식기관만 몸에서 변화시키는 방법이 가능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가 초조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 같았다.


해리가 현관문을 닫았다. 스네이프는 집으로 가서 머글 돈을 찾아와 기사에게 돈을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의 뒤통수를 내려다 보던 해리가 스네이프 옆의 바닥에 앉았다. 슥, 슥 뒤통수를 쓸어내리니 스네이프는 움찔하더니 그냥 그대로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먼저 아이를 원했는데, 당신 혼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어서요.”
“시끄러워. 나도 내 아일 갖고 싶어져서 하는 거니까.”

그 말엔 해리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사락,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스네이프의 얇고 까만 머리카락의 느낌도 좋았다.

“빌어먹을, 그 제임스 포터 놈도 했는데 내가 이렇게 갈피를 못 잡다니.”

그게 제일 분했다. 스네이프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삭혔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스네이프의 등을 토닥였다. 어쨌든 해리에게는 제임스가 아버지였으므로 이럴 때마다 눈치를 보게 됐다. 게다가 외모적으로도 너무 닮아서, 이젠 스네이프가 절 아빠와 겹쳐 보지 않는다지만 역시 신경이 쓰였다.

“우리 아기 이름이나 생각해볼까요?”

이럴 땐 화제를 돌려야 한다. 스네이프가 소파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돌려 해리 쪽을 보았다. 귀여워…. 해리는 또 눈에서 하트가 튀어 나오며 스네이프를 보았다.

“딸일지 아들일지도 모르는데.”
“왠지 우리 사이 첫 애는 아들일 것 같아요.”
“ ‘첫 애’? 너 지금 첫 애라고 했나, 포터?”

대체 몇 명을 원하는 거야 이 자식. 스네이프는 황당한 눈으로 해리를 쳐다 봤다. 해리는 제 말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헤실거리며 넘겼다.

“딸이면 에일린…? 세브, 어때요?”
“내 어머니의 이름? 어떻게 알았지?”
“아, 혼혈왕자 교과서 때 헤르미온느가 호그와트 신문에서 프린스라는 성을 찾아 왔거든요. 교과서 주인이 이 사람일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 분이 당신 어머니잖아요.”
“그런 기구한 인생을 산 내 어머니의 이름을, 우리 딸 이름에 붙이겠다고?”

스네이프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해리는 바닥에 여전히 앉아서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팔을 올리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릴리는 더 이상하지 않나요……?”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딸 이름이 릴리라니, 그건 진짜 터무니 없는 작명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여자는 릴리 뿐인데, 왜?”

아…… 그 말에 질투를 느껴도 되는 걸까……. 해리는 아들인 제가 자기 어머니를 질투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좋아요, 딸 이름은 릴리. 해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절대 딸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딸이 태어난다면 이 생각이 무색하게 엄청나게 사랑해버릴 것 같긴 하지만.

“아들 이름은 알버스 어때요?”
“알버스 덤블도어? 그 이름 달고 태어났다가 그 괴짜 닮아가면 어쩌려고.”
“우리 아이인데 우릴 닮지, 누굴 닮아요.”
“흠, 그리핀도르에 들어갈 것 같은 이름인데….”
“하핫, 그게 제일 걱정되는 거예요? 그럼 미들네임에 슬리데린인 당신 이름을 넣는 거 어때요.”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라. 정말 괴이한 조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알버스에, 세베루스에, 성은 ‘포터’라니. 무척이나 이상한 이름인데, 왜인지 마음에 꼭 들었다. 스네이프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리도 저를 올려다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저도 모르게 무엇도 들지 않은 배를 쓰다듬었다가, 스네이프는 웃음을 흘렸다. 얼른 아이를 가지고 싶어져서 괴로운 애니마구스 수업도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라 애니마구스 수업이 없어. 집에서 혼자 연습해볼 생각이다.”
“아, 저도 진짜 출근 안 하고 옆에서 봐주고 싶은데 일을 안 나갈 수는 없고…….”
“이제 2주 정도 남았나.”
“네, 이번 달 말까지만 일 하기로 했으니까요. 국장님도 사직서도 냈는데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따로 보너스도 챙겨준대요.”
“흥, 오러국장이라는 놈이 국장실의 타임터너도 제대로 간수 못하고 말이야.”

스네이프는 불만스런 얼굴로 팔짱을 꼈다. 해리는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음, 정말 내 걱정밖에 안 하시긴.

“타임터너는 계속 보관한다고 하던가?”
“이번 일도 그렇고, 시간을 돌려서 볼드모트가 돌아올 가능성이 아무래도 보이다 보니까, 타임터너를 없앤데요.”
“진작 그랬어야지. 괜히 포터 너만 다치고….”
“그래도 이번 계기로 데스 이터 세 명도 잡고, 녹턴 앨리 어디에 영향이 퍼져 있는지도 윤곽이 좀 잡혔어요.”
“무슨 상관이야, 네가 다쳤는데.”

정말 스네이프는 마법세계의 안전 같은 것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해리 포터만 제 시야에 두고, 신경 쓰는 모습에 해리는 진작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너무 오랜 시간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뭐, 앞으로는 해달라는 거 다 들어주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런 가벼운 생각도 들었다.

“…세베루스.”
“왜, 포터.”
“애니마구스 성공하면, 그… 오러랑 범죄자, 그거 해줄테니까…… 힘내봐요.”
“풉.”

그런 걸 응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다니. 내가 포터 너 같은 줄 아나? 스네이프는 빈정대려다 그냥 말았다. 어쨌든 꽤 마음에 드는 성공 보상이기는 했다. 해리는 거절 없는 스네이프에 하, 하고 그냥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1999년 5월 28일, 금요일.
벌써 다음주 월요일이면 5월도 끝이 났다. 스네이프가 애니마구스를 연습한지도 오늘로 19일째였다. 스네이프는 이제 감각을 꽤나 익혔다. 실제로 동물로 변신한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동물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이미 제 몸은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약간의 두려움이 모종의 불안을 야기해 동물로의 변신까지는 막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오늘 역시 맥고나걸의 옆에서 대연회장으로 걸어갔다. 3주째 학교를 드나들었더니 이제는 학생들도 스네이프에게 익숙하게 인사 했다. 스네이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 번의 눈길을 주면서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여전히 해리와 스네이프의 신문에 난 스캔들이 루머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강직하게 냉정한 태도가 그 믿음을 견고히 했다.

네빌은 이제 꽤 자연스레 스네이프와 대화를 했다. 맥고나걸과의 용무가 끝나고 약초재배실에 같이 가서 박하의 어린 가지를 수확해가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하기까지 했다. 스네이프는 오늘도 해리가 출근해서 집이 비었으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만 보내고 나면 연인은 오러 일을 관두게 된다.

“세베루스, 내가 보기엔 이미 자넨 성공하고도 남았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변신 직전에 멈추는 건가?”

매쉬드 포테이토를 떠서 그릇에 담으며 맥고나걸이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샐러드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대답을 미뤘다.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어떤?”
“꼭 돼야하는 동물의 모습이 될 수 있을지가 저를 두렵게 하는군요.”
“자네는 패트로누스와 똑같은 동물이 아닌, 다른 모습을 원하는 건가?”
“아뇨, 그 반대입니다. 반드시 패트로누스와 같은 동물이 돼야 합니다.”

맥고나걸은 감자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걱정으로 변신을 실패하고 있구만. 그러나 구태여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어차피 결국에는 치밀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똑똑한 제자가 변신에 성공할 것이니 말이었다.

다음주부터 학교는 O.W.L과 N.E.W.T가 실시 되었다. 교내에 도는 기운도 시험이 임박해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스네이프는 음식을 먹으며 학생들의 식탁 풍경을 감상했다. 책을 읽느라 바쁜 졸업반 학생들 중에서도,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직접 정리한 길고 긴 양피지 두루마리에 푹 빠져 있었다. 지니는 퀴디치 선수로 선발 되어 졸업시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주에 해리를 데리고 오게, 세베루스.”
“포터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혹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건으로….”
“아니, 뭔가 변화를 주지 않으면 자네의 변신이 성공하기 어려워 보여서 말이야.”
“미네르바, 포터가 있다는 차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다고는─”
“세베루스, 이건 스승으로서 하는 조언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데리고 오도록 하죠. 대신 포터가 직장에 다녀오니 저녁 시간으로 시간을 변경했으면 합니다.”

맥고나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네이프는 괜스레 동의했다고 생각하며 마저 식사를 했다.


“교수님, 이 가지를 따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이렇게 유연하게 늘어나는 게 안에 수분이 더 많고, 말렸을 때에는…….”

오늘도 동물로의 변신은 직전에서 멈춘 애니마구스 수업이 끝나고, 네빌의 제안대로 스네이프는 약초 재배실에 들렀다. 마법약에서는 자신이 학생이 아니라 트롤을 가르치고 있는지 헷갈리던 네빌 롱바텀이었다. 그러나 네빌은 제 전공 분야에서는 스네이프에게 조언까지 해주며 수확을 도왔다. 마법약과 약초학은 연관성이 굉장히 높은 학문이었기에, 스네이프는 네빌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었다. 덕분에 1시간 쯤 뒤에는 매우 훌륭한 박하의 어린 가지를 한 바구니 가득 담을 수 있었다.

“고맙다, 롱바텀.”

그리고 스네이프는 네빌에게 감사의 표시를 쉽게 내뱉었다. 네빌은 귀까지 빨개져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내 흙 묻은 장갑을 벗고 이마의 땀을 훔친 네빌이 생수를 가져 왔다. 스네이프는 물을 받아 마시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시험이 코앞이라 이 좋은 날씨에도 그들은 생기를 잃어 보였다. 스네이프는 그런 모습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 붉은 머리 여학생이 주문을 몇 가지 선보이고, 주변 학생들 몇이 까르르 웃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그녀가 지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빌은 물병을 손에 꼭 쥔 채 그들을 계속 지켜 보았다. 스네이프는 무심한 눈으로 네빌을 보다 입을 열었다.

“고백 하지 그러나?”
“푸웁─!”

아, 더럽군. 스네이프는 부드럽게 그 옆을 비켜 서서 네빌의 입에서 물이 튀는 것에 맞지는 않았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네빌이 미친듯이 콜록거리면서도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해리도 그러더니 이 놈들은 입에 뭔가를 물고 있다가 뱉는 게 취미인가. 고상하지 못한 그리핀도르의 습성이려니, 슬리데린의 오랜 기숙사 사감은 생각했다.

“티…… 티가 많이 나나요…?”

네빌은 쑥스러움에 얼굴을 가리려 애쓰며 간신히 물었다. 스네이프는 관심 없다는 얼굴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네빌은 민망해서 열 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꾹꾹 눌렀다. 늦봄의 따가운 햇살이 네빌을 더 무덥게 했다.

“그러고 보니, 지니 위즐리의 수업 일정까지 외우고 있었지.”
“아… 그…… 저기, 교수님…. 노, 놀리시는 건가요?”
“포터랑도 헤어졌는데 왜 여태 내버려 뒀지?”
“해리랑 헤어졌다고 지니가 저랑 이어질 수는…….”
“왜 없지?”

스네이프는 마법약 수업에서의 네빌을 보듯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네빌은 땀이 나는듯 옷깃을 빠르게 펄럭였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연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감정이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네빌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네빌의 조언 덕에 해리가 교수 직을 생각하기도 했고, 학교에 방문할 때 종종 자잘한 도움을 받았으며, 오늘도 좋은 약재를 덕분에 얻었기에 이 정도 참견은 해줄 수 있는 것 같았다. 고작 열아홉, 열여덟 주제에 무슨 심각한 사랑이라고 혼자 쭈그러들어서 말도 못하는지 스네이프는 어이가 없었다. 그럴거면 완벽하게 티도 내지 말던가. 쯧, 스네이프는 혀를 찼다.

“나랑 포터가 만나는 것보다는 말이 되잖나, 롱바텀.”

무뚝뚝한 교수의 말에 네빌은 눈을 번쩍 뜨고 그를 올려다 봤다. 이런 말을 하실 줄은. 근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긴 한데, 정말로 힘이 되는 말이긴 했다. 네빌은 스네이프와 지니 쪽을 번갈아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다 역시 안되겠는지 입을 열었다.

“해리랑 교수님, 정말 잘 어울려요!”

아, 그래?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네빌을 보았다.

“그런 평가 없이도 어차피 포터랑은 이미 만나고 있고, 변하는 건 없다, 롱바텀.”
“펴, 평가가 아니….”
“남이 뭐라든 네 스스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내가 너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여전히 네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군, 롱바텀.”
 “…….”

네빌은 생수 병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해리, 헤르미온느, 론이 없는 학교에서 네빌은 주도적으로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며 지니와 의견을 나누고 행동했었다. 그 때부터 그녀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깊어져 갔지만, 지니는 해리와 사귀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해리에게 지니와 헤어졌다, 스네이프 교수님과 만나는 중이다 말을 들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네빌은 계속 갈팡질팡 했다. 지니는 매력적이라 멋진 남자가 금방 고백할 것 같기도 했고, 곧 졸업하면 퀴디치 선수가 돼서 볼 일도 없어지니 이대로 묻으려고 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들킨데다, 그 타인이 절 한심해하며 고백도 못하는 놈 취급을 하니 발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타인이 해리와 지니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인 게 네빌을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해리는…… 저보다 더 두려웠을 텐데 어떻게 교수님께 고백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지니가 졸업하는 날짜를 세면서 한심하게 망설이기만 하고…….”
“포터라고 특별히 뭐 용기 있게 굴진 않았다. 영웅이라고 다를 것 없지.”

스네이프는 제 눈치를 보며 눈도 못 마주치던 스피너즈 엔드의 해리를 떠올렸다. 그걸 보고 절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곤 저도 생각도 못했다. 몽정을 하게 했던 그 꿈이 아니었으면 해리가 어떻게 고백을 할 수 있었을지, 스네이프는 궁금해졌다.

“이만 가보겠다. 박하 가지는 잘 쓰지, 롱바텀.”
“아,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스네이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네빌은 힐끗, 지니가 있는 쪽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을 들었는데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건 바보 같겠지……. 스네이프 교수가 저를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평했던 게 떠올랐다. 네빌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지니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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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해리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스네이프가 아이를 갖는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었고, 직접 임신 가능성이 있는 마법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스네이프의 목에는 누가 봐도 제 것이라는 표식이 생겼다. 게다가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제 살을 내주고는, 흉이 깊게 질 수 있도록 약조차 바르지 않았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완전한 제 사람이라는 생각에 해리는 가슴 안을 가득 메우는 만족감을 느꼈다.

론은 어제 저녁 스네이프가 만들어준 요리들이 정말 맛있었다고 평했다. 호그와트의 집요정들과 비견되는 요리 실력이라며, 해리가 매일 그런 것들을 먹고 사는지 묻고는 부러워했다. 해리는 친구가 제 연인을 추켜세워주자 어깨가 으쓱했다.

그래서 지금, 입에서 피를 쏟으며 녹턴 앨리의 어느 골목에 쓰러져 있는 현실이 더 꿈처럼 느껴졌다. 해리의 얼굴 앞으로 방금 제가 토한 핏물이 고였다. 자갈에 끼인 흙에 피가 섞여, 보기에 추잡스러웠다. 기분 나쁘게도 해리는 그것을 보고 내기니에 물려 피를 쏟던 스네이프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베루스…….”

의식이 다시 흐려졌다.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해리가 의식을 붙잡았다. 이상하게 꺾인 다리를, 한 쪽 무릎을 세워 일으키려 해리는 무진 애를 썼다.


“타임터너를 노리는 움직임이 포착 됐다. 그러게 그렇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타임터너 존재 유무를 밝혀선 안됐는데…… 쯧!”

말버러 부장이 분노에 싸여서 신경질을 부렸다. 해리가 찾아내고, 오러국장이 국장실에 보관 중인 타임터너에 침입의 흔적이 드러났다. 속박주문을 풀고 달아난 용의자는 데스 이터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아즈카반으로 보내졌던 타임터너 구매자는 소환 되어 고문에 가까운 심문을 받았다. 어둠의 상권 측에 데스 이터들이 어디까지 파고 들어있을지, 루시우스 말포이의 이름까지 오르내리며 오러국은 과열되었다. 타임터너 폐기 쪽에 투표했었던 측은 예상된 시나리오였다며 타임터너 보존 측을 힐난했다. 또 하나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에 해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론은 옆에서 입술을 짓씹으며 ‘최소’ 일주일치 야근을 예감했다.

루시우스 말포이는 재산의 반절을 마법부에 기부하고 보석 석방 되었다. 그래봐야 여기 저기 심어놓은 자신의 사업으로 가세가 휘청일 리 만무했다. 말포이는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지금 현실에 더 만족해할 거라고 해리는 확신 했다. 그도 볼드모트가 부활해 돌아온 시기에 지긋지긋하게 부려졌던 것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법정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본 드레이코 말포이의 표정은 제가 처한 현실에 넋이 빠져 있었다. 그의 옆에 서있는 디멘터들 때문에 영혼이 빨리는 느낌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오러 상관들은 어둠의 상권에 뿌리가 깊은 루시우스부터 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헛수고야. 해리는 짜증스럽게 운동화 끈을 다시 매었다. 해리와 론은 녹턴 앨리로 현장 파견이 결정 되었다. 말단인 해리와 론이기에 애시당초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와 론이 소속 된 A팀이 오전과 오후, B팀이 밤과 새벽을 맡아 녹턴 감시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었다. 어차피 유동적으로 변경 되는 시간과 업무량에 의미 없는 나눔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밤중에는 집으로 귀가할 수 있겠지 싶어 다행이었다.

“보진과 버크 쪽부터 탐문 수사를 할까?”
“보진이 술술 불겠어? 직접 묻는 방식으론 어려울 것 같은데.”

녹턴 앨리에 도착한 A팀은 즉시 흩어졌다. 론은 목소리를 낮추며 해리에게 답했다. 징그러운 민달팽이가 한가득 꿈틀대는 바구니를 든 마녀가 그들 곁을 지나갔다. 론은 헛구역질을 할듯이 입을 틀어 막았다. 으, 난 정말 저것들이 끔찍하게 싫어. 해리는 피식 웃으며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그럼 크로타루스 지하 쪽을 들어가 보자. 깊숙한 곳부터 파고 들어야할 것 같아. 밖에 간판 내놓고 있는 상점들보다.”
“단순한 접근인데, 해리. 아주 좋아.”

론이 윙크하며 해리의 의견에 동조했다. 녹턴 앨리에서도 구석 쪽에는 사창가와 바로 붙은 오래된 상점가 크로타루스(Crotalus;방울뱀)가 있었다. 낡고 음습한 거리라 밝은 낮에야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른 저녁만 돼도 환락의 온상이 되는 곳을 일반 마법사들이라면 절대 찾지 않았다.

해리는 까만 후드를 깊숙이 눌러 썼다. 운동화 정도만 보이게 온 몸을 까맣게 감싸고 있었어도 오러인 것이 들킬까 염려스러웠다. 크로타루스와 가까워지자 헐벗은 여자 스큅들이 점점 많이 보였다. 밝은 낮에도 장사를 하는 집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저 쪽까지는 수사할 필요가 없기를 바라며 시선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축축한 습기가 기분나쁘게 목덜미를 핥았다. 뱀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못하게 된 파셀텅마저도 이 곳에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사 닫은 집들이 많네.”

론은 물건들을 덮은 천 위로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으, 최소 30년은 방치된 것 같아, 해리. 검은 망토에 손가락을 닦으며 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후로도 열려 있는 가게들을 전부 빠짐없이 들렀지만 딱히 뭔가를 알아낼 순 없었다.

“잘못짚었나 봐. 다른 오러들과 합류 할까?”

마지막 가게를 나오며 론이 말했고, 해리가 끄덕였다. 계단을 다시 오르는 순간에도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해리는 크로타루스 입구에서 느닷없이 잡아채인 팔에 인상을 찌푸렸다. 스큅 창부……. 까만 머리카락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여자는 겨우 젖꼭지와 사타구니만 가릴 수준의, 옷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하얀 천을 두르고 있었다. 해리는 표정 없이 그녀의 손을 제게서 떼어내었다.

“들렀다 가요. 잘해드릴게요, 젊은 오빠들.”

후드 아래의 론의 표정도 해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리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오러입니다. 공무 중이니 물러나 주시길.”
“어머! 단속하는 건가요?”

놀란 여자가 얼른 해리에게서 물러났다. 그에 따라 출렁이는 가슴을 보지 않으려하며 해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다른 오러들과 합류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여자의 목소리가 해리를 순간 붙잡았다.

“해리 포터?”

이런, 고개를 저을 때 흔들리는 후드 아래로 얼굴이 보였던 걸까. 해리는 모른척 걸음을 다시 떼었다. 아니, 분명히 그러려고 했다.

“스네이프는 어떻게 지내고 있죠?”

스큅 창녀가 어떻게…… 그의 이름을. 해리는 공무 중에 그래선 안됐지만 이미 스네이프의 이름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즉시 뒤를 돌아보며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여자는 미묘하게 웃으며 해리에게 손짓 했다. 론이 다가오려 하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해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론에게 먼저 오러들에게 가있으라는 의미로 턱짓을 했다. 론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해리는 이 여자에게서 스네이프의 이름이 나온 연유를 알아내야 했다.


여자가 데리고 간 가게는 기묘한 오브제들이 많았다. 크로타누스 등에서 사모은 것 같은 온갖 기괴하고 끔찍하게 생긴 물건들이 많았다. 해리는 조금도 건들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리며 여자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붉은 조명이 비추는 작은 방이었다.

“세베루스랑 아는 사이인가요?”

문을 닫지 않고 살짝 열어둔 채 해리가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왼팔에는 데스 이터의 표식처럼 화려한 꽃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제 팔의 꽃 그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큅이고 성노동자인 당신이 어떻게 그를 알죠?”
“몇 년 전 데스 이터의 신분의 그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가 당시에 이중 첩자였다는 건 이제 알지만요. 여긴 어둠의 마법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거든요.”
“……그는 여자와 관계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곳을 올 이유는….”

어둠의 마법사들─ 그 중에서도 데스 이터 신분이었던 세베루스가 이 가게를 찾았다라. 지금 타임터너를 노리는 데스 이터와 이 곳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해리는 공무를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 가게를 찾았다는 몇 년 전의 스네이프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이런 곳을 왜……. 게다가 이런 스큅 창녀가 친근하게 안부를 물어올 만큼 자주 방문한 건가? 해리는 생각할수록 더 괴리감을 느끼며 괴로워졌다.

“그가 여기에서 뭘 했죠? 누군가와 함께 왔었나요?”

해리의 녹색 눈에 불안이 어렸다. 떨리는 동공이 여자를 맹목적으로 바라보았다. 여자의 미묘한 미소가 해리의 머릿속에서 울렁거렸다.

“스투페파이!”

해리의 옆으로 붉은 섬광이 날아왔다. 반사적인 행동으로 피했지만 하마터면 맞을 뻔 했기에 해리의 등골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주문이 날아온 문 쪽으로 몸을 틀며 지팡이를 빼들면서 바로 프로테고를 외쳤다. 예상대로 빠르게 날아온 두번째 붉은 섬광이 방어마법에 의해 간신히 막아졌다. 젠장! 해리는 이제야 여자가 제 왼팔의 그림을 쓰다듬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소환 방식은 볼드모트와 데스 이터간의 교신과 똑같았다. 저 여자는 데스 이터의 한 패였음이 확실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저 여자는 스네이프를 들먹였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관계가 신문을 통해 마법세계에 퍼진 게 바로 저번주였다. 절 알아보자마자 유혹의 수단으로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신의 큰 약점이 무엇인지 적들은 너무나도 잘 파악한 것이다.

어쨌든 후회하긴 이미 늦었어. 해리는 당황했던 얼굴에 냉정을 찾았다. 저 자가 타임터너를 탈취하려한 범인이 맞다면, 오히려 지금 자신이 잡아버리면 되는 거니까.

“잡아요! 그를 잡아!”
“엑스펠리아르무스!”

문 쪽으로 달려가며 날린 해리의 주문이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후드를 쓴 데스 이터는 해리가 쫓아 나오자 가게 밖으로 뛰쳐 나갔다. 거리의 스큅 창부들이 춤추는 주문 섬광들에 비명을 지르며 각자의 가게로 숨어 들어갔다. 해리는 후드를 얼굴 위로 벗고 인카서러스를 외쳤다. 밧줄이 아쉽게도 공중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리는 그러나 지치지 않고 계속 주문을 날렸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해리를 잡기 위해 미친듯이 주문을 날려댔다.

달리다 보니 꺾어지는 골목이었다. 해리는 주변에 다른 오러가 있기를 기대하며 몸을 틀었으나 막다른 곳이었다.

“임페디멘타!”

해리의 주문이 상대의 후드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문의 위력에 후드가 벗겨지고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구불거리는 금발머리에 회갈색 눈동자의 젊은 청년이었다. 데스 이터! 분명히 이름은─ 그리드 파인즈. 볼드모트가 부활한 모습을 드러낸 후, 뒤늦게 포섭 된 젊은 데스 이터였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제대로 짧은 영광조차 누리지 못하고 몰락한 젊은 데스 이터. 해리는 비웃음을 흘리며 그가 타임터너를 탈취하려 한 동기를 알아챘다.

그리드는 제 얼굴이 드러나자 뱀처럼 사나운 얼굴을 했다. 해리는 그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스투페파이!”

해리의 무장해제 주문이 그리드에 명중했다. 그리드의 지팡이가 날아오고 그의 몸이 막다른 벽으로 날아가 등부터 강하게 부딪혔다. 그리드는 척추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그대로 기절했다. 하지만 그리드가 날린 기절 주문이 먼저 해리에게로 꽂혔다. 복부를 강타한 스투페파이에 해리는 의식이 한순간에 흐려졌다.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는 게 나을 것 같은, 해리는 짧은 순간의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해리의 바람대로, 해리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스네이프! 해리가 다쳤어요! 성 뭉고 병원으로 지금 당장 오세요!”

론 위즐리의 목소리로 잭 러셀 테리어 패트로누스가 소리 쳤다. 베란다로 갑작스럽게 등장한 패트로누스에 당황하기도 잠시, 스네이프는 현기증이 일어나는 내용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침에 즐겁게 웃으면서 벽난로로 사라지던 얼굴이 훤한데, 해리가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해리가 다쳤다고? 해리 포터가? 해리가 다쳤다는 말인가? 내 연인을…… 누가? 스네이프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꼬였다.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의 부상일까? 스네이프는 떠오르는 의문들을 애써 누르려고 하며 지팡이를 쥐었다. 순간이동을 위해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자꾸만 머릿속으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연인의 얼굴이 상상돼서 순간이동이 어려웠다.

“제발, 제발, 빌어먹을…… 성 뭉고 병원!”

스네이프는 눈을 질끈 감고 병원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스네이프는 퍼지 앤 다우스 Ltd. 라고 적힌 간판이 달린, 빨간 벽돌로 지어진 구식 백화점 앞에 서있었다. 스네이프는 얼른 창에 붙어, 아주 못생긴 마네킹에게 해리 포터를 찾아 왔다고 빠르게 속삭였다. 마네킹은 작은 소리에도 알아들었는지 끄덕이며 손가락을 구부려 손짓 했다. 스네이프는 황급히 창 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흠칫, 스네이프는 병원 로비에 가득한 정복을 입은 오러들에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전 데스 이터라는 것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그들 앞에서 몸이 굳게 되어 있나 보았다. 스네이프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오러들을 쳐다 보았다. 그들도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긴장한 얼굴을 했다. 그 때, 그들 뒤에서 론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론은 스네이프의 앞으로 달려 왔다. 스네이프는 익숙한 해리의 친구의 등장에 안도를 느꼈다.

“포터는? 포터는 지금 어디 있지? 많이 다쳤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필시 얼굴도 걱정으로 무너졌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론의 입만 들여다 보며 해리가 무사하다는 대답을 기다렸다.

“해리는 괜찮을 거예요, 지금 치유사들 다섯이 달려들어서 치료중이예요. 아직 의식은 없지만….”
“어디를 다친 건데? 대체 어쩌다가─”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와 싸우던 중에 부상을 당했어요. 장기가 끊어져서 연결시켜야 한다고 들었고, 걱정마세요! 지금 성 뭉고 최고의 치유사들이 해리에게 붙어 있고, 회복할 수 있는 부상이니까…… 잠깐, 스네이프!”

장기가 끊어졌다는 말을 듣고나서도 서있을 수가 없었다. 론은 주저 앉은 스네이프를 급하게 부축하며 일으켰다. 아니, 그냥 쓰러지게 둬, 론 위즐리. 스네이프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생각으로만 외쳤다. 정말 쓰러지고 싶은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스네이프 선배님, 해리에게로 데려가겠습니다. 걸으실 수 있겠어요?”

휴가 다가와 스네이프의 어깨를 짚었다. 스네이프는 순간 멍해졌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휴와 론이 스네이프의 옆에서 걸을 수 있게 부축해주었다. 오러들은 그들을 주시하면서도 길을 터주었다.

“해리는 5층 주문상해과에 있어요.”

론이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앞으로 펼쳐질 장면들을 상상하며 공포에 떨었다. 스네이프에게 해리의 부상은 실존하는 최고의 공포였다.

5층에 들어서자마자 치유사들이 분주하게 복도를 돌아다니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오러들은 병원의 로비보다 5층 복도에 더 많이 깔려 있었다. 론이 입술을 짓씹으며 같은 층의 다른 병실에서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용의자는 해리의 주문을 맞고 벽에 부딪혀 낙상할 때, 척추가 완전히 으스러질 정도로 부러졌으며, 해리는 주문에 맞아 위와 장이 끊기고 오른쪽 발목이 반대로 꺾이는 등 자잘한 타박상이 있었다.

론의 말이 끝나는 순간, 스네이프는 론을 뿌리치고 걸어나왔다. 방금까지 걸을 힘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면서,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쥐고 오러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당황한 론과 오러들이 스네이프를 붙잡으려 달라 붙었다. 오러들에 붙들려 오도가도 못한 채, 스네이프가 용의자의 병실이 어디냐고 악을 질러댔다. 휴가 치유사들에게 급히 수면 물약을 받아왔다. 휴는 빠르게 스네이프의 등을 덮쳐 억지로 약물을 입 안에 부어 넣었다.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던 스네이프는 이내 휴의 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하아….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이런 사람인 걸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군….”

휴가 한시름을 놓고 스네이프를 안아들었다. 론이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어떡하죠? 스네이프가 해리의 보호자가 되어 줘야 하는데….”
“론, 너희 부모님을 불러라.”
“엄마를요? 알겠어요!”

론이 다시 제 패트로누스를 소환했다. 론의 목소리를 실은 채, 잭 러셀 테리어가 버로우를 향해 빠르게 공중을 도약해 달려나갔다. 휴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 해리의 병실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치유사들이 해리의 바이탈을 실시간으로 체크 하고 있었다. 부러졌던 발목은 이제 정상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휴는 빈 침대에 스네이프를 내려놓았다. 하얗게 질려 잠에 든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건…….’ 

스르륵 돌아간 스네이프의 머리 아래로 목이 드러나며 휴에게도 익숙한 무늬의 상처가 보였다. 번개무늬의 상처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휴는 짤막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해리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어서 일어나 정신차려, 임마. 네 마누라 실성하기 전에 좀 달래줘야겠다, 해리야.”

치유사들이 휴에게 다가와 해리 포터의 보호자를 찾았다. 휴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단 기다려 보세요,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몰리가 조지와 함께 해리의 병실을 찾았다. 론은 해리의 병실 앞 가드를 서다가 그들을 반겼다. 당황한 얼굴의 그들에게 론이 상황을 설명 했다. 지금 해리는 약물을 몸 안에 들이 부어 끊어진 장기의 연결을 기다리는 중이며 당분간 입원 치료가 불가피 했다. 그리고 몰리와 조지는 병실로 들어섰을 때 보인 또 한 명에 놀라서 눈을 끔벅거렸다. 까만 머리카락을 하얀 얼굴 위로 늘어뜨린 채 창백하게 잠들어 있는 저 남자는…….

“스네이프는 해리의 보호자로 불렀는데, 해리를 이렇게 만든 용의자를 죽이려고 했는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강제로 잠들게 해놨어요.”

론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몰리는 현재 해리와 만나고 있다는 스네이프를 이렇게 느닷없이 맞닥뜨리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부상 당해 눈을 감은 채 잠들어있는 해리와 그런 해리 때문에 난동까지 피웠다는 스네이프를 번갈아 바라보고 조용히 그들 사이의 의자에 앉았다. 치유사가 몰리에게 다가와 해리 포터의 보호자냐고 물었다. 몰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포터 씨는 현재 많이 좋아졌어요. 끊어진 장기의 연결이 36% 정도 이뤄진 상태입니다. 완전히 연결 되더라도 식이 하는 걸 지켜보면서 이틀 정도는 더 쉬어야 하고요. 의식은 곧 회복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치유사님.”

몰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는 해리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제 딸과 헤어졌어도 해리는 위즐리들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렸었던 은인이었다. 그간 해리도 제 나름 눈치를 보고 미안해했을 것을 몰리도 알았다. 하지만 제 딸과 결혼할 뻔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 해리를 집에 부르지도 못했다. 그런 해리가 임무 중에 다쳤다는 소식에 몰리는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 해리는 결국 몰리의 또 한 명의 막내아들이었다.


세 시간이 더 지났다. 조지는 스네이프가 누워 있는 침대의 난간에 팔짱을 올리고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기억 속의 모습보다 살이 조금 올랐나. 부드러워 보이는 뺨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음, 요즘은 머리를 감고 다니나 보지. 어쩐지 희게 질린 안색이 처연해보이기도 했다. 스네이프가 해리가 아프다는 소식에 정신이 나가, 앞뒤 안 재고 병원 복도에서 난동을 부렸다니. 예전 같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재밌는 모습을 본 론이 매우 부러워졌다.

“으…음….”

스네이프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지는 오, 하며 스네이프가 눈을 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깜박, 깜박 초점을 맞추는 눈이 여전히 멍해보였다. 그러다 불현듯 정신이 돌아왔는지 벌떡 일어나 앉다가, 현기증에 눈앞이 새카매져 고개를 숙였다.

“포…터…….”

골을 붙잡은 스네이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는 걸 인식했고, 절 보고 있는 얼굴이 학교의 유명했던 악동 조지 위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포터는…….”
“바로 옆에 누워 있어요, 교수님. 치유사가 그러는데 많이 좋아졌대요.”

스네이프는 대답하지 않고 옆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해리를 이렇게 죽은듯이 누워있게 만든 놈에게 저주든 죽음이든 내려주기 위해 찾아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였다. 누군가가 입으로 약물을 들이부은 것 또한 기억에 떠올랐다. 스네이프는 난간을 내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몰리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해리. 스네이프는 평화롭게 자고 있는 해리의 얼굴을 보면서 울컥 울음이 받혔다. 손을 뻗어 말랑한 볼살을 쓸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따듯한 체온에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스네이프, 해리는 곧 눈을 뜰 거예요.”
“…몰리.”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시선을 천천히 돌려 몰리를 바라 보았다. 제가 미울텐데도, 몰리의 상냥한 말투에 스네이프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저녁시간인데, 같이 식사할까요? 그 뒤에 우린 갈테니까, 해리 옆에 있어줘요.”
“제가 불편하지 않습니까? 굳이 절 배려해줄 필요는….”
“어허어! 스네이프 교수님, 그냥 같이 식사 한 번 해요. 뭐 어려운 거라고 그거.”

조지가 씨익 웃으며 스네이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스네이프는 혐오스런 표정을 짓다가, 조지의 구멍난 귀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제가 저지른 실수인 조지의 귀를 눈앞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지는 욕설이 날아올 줄 알았으나, 굳어버린 스네이프에 그가 자신의 귀를 신경쓰고 있음을 알았다. 하하, 그럴 필요 전혀 없는데.

“식사 한 번 같이 하면 제 귀에 바람구멍 내주신 거 용서할게요.”

결국에는 스네이프가 미간을 찡그렸다. 순식간에 약간의 죄책감마저 사라졌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을 뜨지 않은 해리 옆에 있기도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병원 밖의 식당에는 성 뭉고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로 온 마법사들이 제법 보였다. 리키 콜드런처럼 머글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조치 된 식당이라 안전했다. 론은 해리 병실의 가드 일 때문에 같이 오지 못했다. 혹여 용의자에게 다른 데스 이터 동료가 있어 병원 습격을 올까 오러들은 초비상 근무중이었다.

몰리와 조지를 맞은편에 두고, 스네이프는 해리를 생각하며 울적하게 메뉴판을 응시했다. 입맛도 없었다. 스네이프가 저는 됐다고 말을 하자, 몰리가 이따 간병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일축 했다. 그렇게 말랐는데 힘이 어디서 나오겠냐며 잔소리까지 했다. 스네이프는 평소같으면 얼굴을 굳히고 자리를 피했겠지만, 해리가 아픈 지금 제가 갈 곳은 그의 옆 뿐이었다. 그래서 몰리와 조지가 저를 잠시라도 해리 옆에서 떨어뜨려 주어 그냥 자리를 지켰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그럼 부담 안되는 감자스프를 시켜주죠, 엄마. 부드러운 빵도 곁들여 준대요. 나는 이걸로 시키고…. 엄마는 그거요? 네.”

종업원을 불러 조지가 주문을 했다. 학교를 무단으로 뛰쳐나간 뒤, 바로 일을 해서 그런지 조지는 나이보다 태도가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 악동 조지 위즐리에게 어른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스네이프는 조용히 물 잔을 내려다 보며 식사를 기다렸다.

몰리는 찬찬히 스네이프를 들여다 보았다. 예전에는 사나워 보일 정도로 예민했던 표정이 눈매가 풀려서 훨씬 유순해보였다. 해리의 곁에서 지내면서 그가 많이 안정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좋은 영향을 받는 관계구나. 몰리는 제 딸과 해리의 다정했던 모습을 떠올렸다가 살며시 웃었다. 이제 그건 기억 저편에 묻어둬야 할 모습임을 느꼈다.

“어떻게 지내요?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물 잔에서 시선을 들어, 몰리를 바라보았다. 상냥한 눈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평소엔 해리의 집에 있고, 오늘은… 개인적인 일로 학교에 갔다 왔습니다.”
“그렇구나. 교수로 다시 일 할 건가요?”
“……네. 그리고…….”

스네이프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몰리와 조지까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스네이프의 뒷말을 기다렸다.

“……오늘 지니 위즐리를 만났고.”

둘 모두 예상 외의 답변에 입이 벌어졌다. 그 순간에 음식을 나눠주는 종업원이 등장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스네이프는 숟가락을 쥐고 뜨거운 스프를 천천히 저었다. 몰리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물어 보았다.

“지니가 뭐라고 했나요? 그리고 스네이프 당신도 지니에게 무슨 말을….”
“엄마!”
“괜찮다, 조지 위즐리. 그냥 그녀가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여서 따로 만났습니다. 전 그다지 할 말 없는 입장이니 질문에 답만 했고.”
“지니가 뭐라던가요…?”
“제게 화내도 상관없습니다, 몰리. 어쨌든, 지니 위즐리는 포터를 잊었다고 제게 말했고 저랑 포터의 관계에 대해 궁금했던 걸 물었습니다. 전 질문에 답했고, 그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어서 식힌 스프가 혀 위에서 미묘하게 뜨거운 태를 자랑했다. 몰리는 스네이프의 말을 듣고 약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조지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군옥수수를 우물거렸다. 지니가 해리를 잊었다고 스네이프에게 말했다니, 지니의 가족인 저들이 딱히 할 말을 찾을 수도 없긴 했다. 그리고 조지는 스네이프와 해리의 관계에 대해 저도 묻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옆의 엄마만 아니었다면 쏟아낼 질문들이 많았다.

“엄마, 식사해요.”

그녀의 앞으로 그릇을 밀어주며 조지가 다독였다. 스네이프는 빵을 찢어 스프에 조금 담가 먹었다. 따듯한 것이 들어가니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해리가 지금쯤은 눈을 떴을지 궁금했다.

“아, 예전에 폴리주스 마시고 해리랑 같이 제 가게 오신 적 있죠, 교수님?”
“포터가 얘기 했나?”
“아뇨, 제가 그냥 추측한 건데 맞았더라고요. 저번에 해리가 가게 들렀을 때 물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고. 그 때 사랑의 묘약 없어서 못팔았어요. 근데 또 주문을 넣으려 하니 다시 안 만든다고 해서 얼마나 아쉬웠다고요.”
“그냥 교과서의 약물을 차례대로 만들며 시간 떼운거니까.”
“한 번 더 주문 넣어도 되나요?”

조지가 싱글거리며 물었다. 사랑의 묘약 같은 한심한 물약에 돈을 쓰는 호그와트 학생들을 생각하면, 교수 스네이프는 한숨도 안 나올 만큼 표정이 썩었다. 그러나 거절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받은 돈 만큼 해리 생일선물이나 사줘야겠단 생각이었다.

“앗싸, 신난다! 최연소 포션 마스터의 특제 사랑의 물약 에디션 붙여서 팔아야지.”
“내 이름값을 쓴다고? 그럼 로열티도 더 지불해, 조지 위즐리.”

조지가 푸하하하 웃으며 식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스프를 떠먹었다.

“아─ 진짜 못참겠다. 해리랑 어떻게 사귀기 시작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해리에게 차인 여동생을 두고 친오빠가 매정하기도 하군. 게다가 엄마를 옆에 두고서도 제 궁금증 해결이 먼저라는 게 조지 위즐리다웠다. 스네이프는 호박주스를 조금 마시고 몰리를 힐끗 보았다. 몰리의 표정은 듣고 싶은 것 같기도, 귀를 막고 싶은 것 같기도 해서 아리송했다.

“잘 모르겠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돼서.”

애매하게 뭉뚱그리는 스네이프의 대답에 조지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인데 어쩌라고.

“그렇게 서로 싫어서 못 죽고 으르렁대고 싸워놓고. 어쩌다보니 사귀게 돼요? 그게 말이 되나?”

말이 되던데. 스네이프는 턱을 괴고서 숟가락을 스프에 담가 빙빙 휘저었다.

“뭐 특별한 계기를 찾고 싶은 거라면, 있긴 했는데, 굳이 내가 왜 밝혀야 하지?”
“역시 있었네! 들려줘요, 교수님! 엄마 신경쓰여서 그런거라면 엄마, 잠깐만 화장실 갔다와봐요.”
“조지!”

등짝 맞을 줄 알았다. 스네이프는 픽 비웃음을 날리고 남은 스프를 마저 먹었다. 몰리 위즐리가 아니더라도 물론, 절대 답할 리 없는 질문이었다. 해리 포터랑 섹스하는 꿈을 서로 똑같이 꾸고, 그 날 키스했다고 어떻게 말 할 수 있겠는가. 몰리가 조지에게 버럭버럭 화내는 걸 지켜보며, 스네이프는 해리의 걱정이 하나 풀린 것에 안도를 느꼈다. 위즐리 가족은 역시나 해리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 깊은 인연은, 그 사이에 자신이 끼더라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해리나 교수님이나, 진짜 서로 어떻게 좋아지게 된건지 너무너무 궁금하다고요! 이건 기사를 본 사람들 전부 다 공감할 걸요? 아, 엄마도 솔직히 궁금하잖아요!”
“얘가!”

몰리의 매서운 손바닥이 조지의 팔을 찰싹 내리쳤다. 스네이프는 큭, 하고 입술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조지는 스네이프의 웃음에 실실 웃으며 그를 바라 보았다. 능글맞은 그 얼굴에 스네이프는 금세 웃음을 지웠지만, 조지는 여전했다.

“해리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네? 제발~ 스네이프 교수님, 물약 값을 저번의 두 배로 드릴테니까!”
“내가 돈이 궁핍해 물약을 판 게 아니라 그 거래 제안은 실패로군, 조지 위즐리.”
“아, 정말. 돈이 안 먹히는 상대는 너무 어려운데. 그냥 싸게 싸게 들려줍시다. 우린 해리의 또 다른 가족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해리랑 만나고 계신 스네이프 교수님도 우리 가족이나 다름 없죠. 그쵸, 엄마?”
“뭐, 물론, 그렇겠지…. 그래요, 스네이프. 우리 어려워 말고 말해요.”
“역시, 엄마도 궁금했잖아요.”

끝까지 엄마인 몰리의 속을 긁는 다섯째 아들 조지 위즐리였다. 스네이프는 해리면 몰라도, 그들과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지의 말 속에 내포한 따듯한 의미는 알았다. 그들에게 해리와 저의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란 것도 알았다.

“포터가 왜 좋냐고?”
“네!!!”

조지는 기대감에 차서 눈을 반짝였다. 저런 눈을 수업시간에는 본 적이 없는데. 스네이프는 속으로 혀를 차며 턱을 괴었다. 그들 앞에서 느슨하게 자세가 풀렸으나, 스네이프 자신은 의식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포터가 날… 좋아해주니까…….”

말로 뱉고 나니, 새삼 부끄러운 문장이었다. 스네이프는 끙, 앓는 소릴 짧게 뱉고 턱을 괬던 손으로 눈을 가렸다. 조지가 꺅 소리를 질렀고, 몰리마저도 입을 가리며 탄성을 작게 내었다. 이런 말을 다른 사람 앞에서 하다니, 자신이 미친 게 분명했다. 스네이프는 붉어진 목덜미로 화끈거리며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스네이프는 비운 스프 그릇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해리의 병실로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저의 유일한 가족인 해리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솔직하게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럽지 않은 상대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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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왜 써도 써도 갈 길이 멀지

22.



새벽 어스름이 창에 어른거렸다. 푸르고 어두운 빛을 따라 스네이프의 살결도 물들었다. 해리는 조심스레 제가 새겨놓은 낙인 위로 입술을 맞붙였다. 스네이프의 왼쪽 목덜미에 자리한 번개무늬의 상처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살짝 발갗게 부어 있었다. 해리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려 했으나, 스네이프가 이를 거부했다. 깊게 흉이 지게 하기 위해선 그냥 두라고 했다. 해리는 참을 수 없이 감정이 북받혔다. 그대로 제 연인을 품에 안았다. 열락 속에서 스네이프가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했다. 제 욕심에 스네이프의 목에 상처를 내놓고, 해리는 이기적이었다.

상처 위에 붙였던 입술이 벌려지고, 혀가 나와 부은 살을 핥았다. 키스하듯이 목을 빨아들였다. 으응…. 뒤척이며 스네이프의 목 안쪽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해리가 정신없이 스네이프의 목을 빨아들였고, 혀로 핥았다. 어느 샌가 잠에서 깬 스네이프가 미간을 찌푸리며 해리의 어깨를 잡았다. 연인이 일어난 것을 알아 차렸음에도, 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눈을 뜨고 해리의 까만 정수리를 내려 보았다.

“출근 준비 해야지, 언제까지 이럴 건데.”
“아니, 오늘 일찍 눈 떠진 거예요. 아직 6시도 안됐어요.”
“그래서? 또 하고 싶다고? 일주일 상간에 우리가 몇 번을 한 줄 알아?”
“몰라요. 당신 임신 시키지, 뭐….”

뻔뻔한 자식. 스네이프는 해리의 정수리를 제게서 치워 버렸다. 아까까지 진득한 집착을 한 것치고는 꽤 순순히 떨어진 해리였다.

목의 번개무늬 낙인 외에도, 스네이프는 지금 온 몸이 불긋해져 있었다. 해리는 어젯밤엔 제 살을 빨고 핥는데 미쳐버린 것 같았다. 온 몸이 쓰라리고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다음부턴 침실에 근육 진정 물약을 구비해 둬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옆에서는, 해리가 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절 보고 있었다. 정말 넌덜머리가 날 정도의 집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이 정도까지 나에게……. 스네이프는 얼굴을 붉혔다. 결국 그것에 가슴이 뛰는 것도 자신이었다.

“진짜로…… 세베루스가 내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포터, 여전히 그 얘긴가.”
“세베루스는 보고싶지 않아요? 나랑, 당신을 닮은 아기를.”
“날 닮은 건 별로.”
“저는… 얼굴은 당신을 닮고 성격은 절 닮아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 반대여도…. 그렇지 않아요? 저처럼 생겼는데, 차분하고 똑똑하고, 퀴디치도 못하고. 하핫.”
“그 놈의 퀴디치는.”

스네이프도 보는 것은 꽤 좋아했다. 슬리데린 퀴디치팀에도 항상 신경을 써줬고, 경기 관람도 꼭 갔었다. 교수 중에서는 막내의 위치라 어쩔 수없이 참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해리가 슬리데린팀을 위협하기 전까진 슬리데린이 무난히 퀴디치 우승컵을 따낸 영향도 있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제 기숙사를 애정했으니까.

“만약 아기를 정말 가진다면, 우리 애는 슬리데린으로 가야 해.”
“와, 세브도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동참해주는 거예요?”
“그리핀도르 따위에 들어갔다간, 고작 마법세계를 구하는데 목숨을 바치려드는 허무맹랑한 짓이나 벌일 게 뻔한데, 널 닮은 그 꼴은 못 보지.”
“세브, 당신도 목숨이 위험했어요.”
“난 세계를 구하는데는 전혀 관심 없어. 해리 포터, 네 목숨만 지키면 그만이야.”

해리가 빙그레 웃었다. 그거 되게 로맨틱한 말인데, 자각은 있어요? 그렇게 물으면, 스네이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언성을 높일 것 같았다. 귀여워, 사랑스럽다. 네 목숨을 지켜주겠다, 그 말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제 아래에서는 반항 없이 다리를 열어주는 것이 해리의 가슴을 들썩이게 했다. 그래서 이렇게 스네이프의 몸을 원하는 걸까. 그를 안으면 행복감과 욕망이 모두 충족 되며 살아있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스네이프를 살린 것은 저였지만, 해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스네이프였다.

“정말 진지하게…… 제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요? 세베루스?”
“……뭐, 그래.”
“방법을 찾아 봐요. 마법으론 안 될 게 없잖아요. 어떤 멍청한 마법사는 자기 영혼도 7개로 쪼개는데. 남자가 임신하는 것 정도야.”

그렇게 비유하니, 정말로 남자가 임신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웃음을 흘리고 몸을 돌렸다. 해리의 왼쪽가슴 위로 얼굴을 기대니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점차로 커지는 그 소리에, 스네이프는 마음이 안정 되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눈을 감은 채, 일전의 해리의 의견을 떠올렸다. 애니마구스……. 암사슴……. 머릿 속으로 가지런히 단어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제 마법의 수준을 스스로 생각했다.

“애니마구스를, 연습해보겠다.”
“헉, 정말요?! 하지만…… 그 방법으론 사슴을 낳는다고 하셨잖아요? 사람 몸이어야 되는 거 아니었어요?”
“동물로 완전히 변하지 않고, 동물의 여성 생식기관만 가져와 몸 안에서 변화시키는 법을 생각해봤다. 물론……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마법 기술력을 요하겠지. 그런 걸 생각해내고 시도한 마법사는 역사적으로 아무도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짓거리기도 하고. 물론, 애초에 내 애니마구스가 암사슴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려요? 진짜 엄청난 창의력인데…. 그래서 마법 주문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건가? 머플리아토, 레비코푸스, 섹튬셈프라……. 당신의 천재적인 발명품들이 생각나네요, 세브.”
“흥, 이젠 아기까지 직접 만들어내야 하고 말이지.”

해리에게는 애니마구스가 암사슴이 아닐 수 있다 말했지만, 스네이프 역시 암사슴이 맞기를 바랐다. 기꺼이 해리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든 후로는, 가능성을 따져보게 되었다. 해리는 이미 스네이프가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손을 뻗어 배를 쓸었다. 납작한 배에 무슨 큰 기대를 하는 것인지.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지만, 구태여 해리의 손을 치워내지는 않았다.


“애니마구스를 배우고 싶다고?”

맥고나걸은 벽난로를 통해 나타난 스네이프의 얼굴에도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갑작스런 요구에 그 의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마흔에 가까운 제자가 새로운 마법을 익히고 싶다는데 꺼릴 생각은 없었지만, 이유는 듣고 싶었다. 그러나 해리와의 관계를 말하지 못하고 망설인 것처럼 스네이프는 이번에도 이유를 회피했다. 그래서 현명한 스승은 이 역시 해리와 관련 있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배운다면 세베루스 너 혼자만? 해리는?”
“당신께 배운 뒤에 제가 가르치면 됩니다. 포터는 오러 일을 다녀서.”
“하긴, 오러들이 워낙 바쁘지. 세베루스 자네도 요즘 해리와 자주 못 만나나?”
“…지금까지는 퇴근 시간마다 들어옵니다.”
“운이 좋았군, 세베루스. 해리는 업무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간 적도 상당히 많았을 거야.”

스네이프는 입을 다물고 잠시 침묵했다. 안 그래도 연속으로 2주째 일요일에 출근한다는 해리를 보고 스네이프도 적잖이 놀랐다. 어제 론 위즐리 역시 퇴근 후에 같이 왔다 했고. 오러는 되는 것도 굉장히 어렵지만, 그 직에서 버티는 것 또한 굉장한 어려움을 요했다. 해리 포터 같은 제정신이 아닌 영웅 콤플렉스나 그 직업을 해야할 것이다.

“제가 애니마구스를 배우는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나는 한 달 걸렸네, 세베루스. 내가 가르치니까 자네는 한 달도 안 걸릴 거야.”
“오늘이 5월 10일이죠. 6월 1일이 오기 전에 마스터 하겠습니다.”

눈썹을 까딱 올리며 스네이프가 무심한 투로 대답했다. 맥고나걸은 픽 웃었다. 이토록 뛰어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교수를 오랜 업으로 삼은 제게도 기쁨이었다.

“기한을 맞추려면 오늘부터 시작해야겠군. 점심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오거라, 세베루스. 그 집에서 혼자 식사하지 말고, 같이 먹은 뒤에 수업을 시작 하지.”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벽난로에서 얼굴을 물러섰다. 살짝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해리가 출근하고 나면 이 큰 집에는 늘 저 혼자였다. 열렬하게 제 곁을 지키던 체온이 사라져서인지, 이 집은 더 넓고 썰렁하게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눈앞의 벽난로를 잠시 응시했다. 임신이니 아이니 하는 것에 들떠 웃으며 이 벽난로로 출근하던 해리의 모습이 생각났다.

스네이프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배에 손을 올렸다. 조금 살이 올랐다지만, 아직도 납작하게 내장에 붙은 거죽이 무언가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도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바라고, 해리가 기대하며 웃었으니까.

그리고 스네이프 자신도, 해리를 닮은 제 아이를 보고 싶었다. 연인을 닮은 또 하나의 녹색 눈이, 저를 부모로 바라보는 그 사랑의 시선이 궁금했다.


학교를 갈 것이니, 스네이프는 단추가 많은 제 옷을 찾아 입었다.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면 단추가 잠기며 부드럽게 제 몸에 감겨오는 검은 옷이었다. 해리와 살면서 머글의 셔츠가 익숙해졌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늘 입던 옷이었는데도 약간 불편하게 느껴졌다. 목부터 어깨와 허리, 그리고 허벅지까지 가리는 옷은 답답한 인상을 주었다. 아, 목…. 스네이프는 목깃을 살짝 들추었다. 새 흉터가 자리 잡은 목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이건 해리가 저를 제 것이라고 낙인 찍은 증명이었다. 이걸 가리고 다닌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스네이프는 흉터를 들여다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베루스.”

교장실 벽난로를 들어선 스네이프는 목례한 뒤, 로브의 재를 털었다. 하얀 셔츠와 검은 진에 구두를 신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맥고나걸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문으로 걸어갔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뒤따르며 교장실의 계단을 내려왔다. 헤르미온느와 해리를 데리고 들어갔었던 교실을 지나쳤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대연회장으로 가기 위해 복도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곧 교장 선생님께 인사했다가, 그 뒤에 선 스네이프를 발견했다. 눈이 커지는 그들을 스네이프는 여전한 무심함으로 지켜 보았다.

그들은 겁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으므로, 스네이프의 면전에서 스네이프가 나타났다고 수근거리지는 않았다. 볼드모트의 명으로 호그와트의 교장으로 있었던 때처럼, 학생들에겐 자신이 여전히 공포의 대상인 듯 보였다. 스네이프 역시 바라던 바였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다. 그리고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학생들 옆을 지나치는 순간, 스네이프는 지니 위즐리를 발견했다.

붉은 머리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스네이프는 저를 똑바로 쳐다 보는 지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당당한 태도 탓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었다. 스네이프는 표정 없이 그녀를 보다가 앞서가는 맥고나걸을 따랐다. 지니의 시선이 여전히 제 뒤통수로 따라 붙는 것이 느껴졌다.

“스네이프 교수님!”

교수석에서 스프라우트의 옆에 앉아 있던 네빌이 스네이프를 보고 반색했다. 스네이프는 네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런 스네이프의 등장에 교수석의 교수들은 물론,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들까지 웅성웅성거렸다. 죽은 줄 알았던 전 데스 이터 교장은,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 딱딱한 얼굴이었다. 저번 주에 그 해리 포터와 스캔들이 났던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루머였다며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게 들렸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의 옆에 앉아 그 떠들썩함을 무시했다.

“기사 이후로 호그와트가 시끄러웠단다.”
“동물원 원숭이 기분을 느껴 보라고 절 점심시간에 부른 건 아니겠죠, 미네르바.”
“물론 아니지. 뭐, 학생들도 매일 점심시간마다 널 보면 오늘 같은 반응은 보고 싶어도 안 나올 거다. 자네가 교수로 돌아오기 전에 적응하는 게 낫겠지.”

슬러그혼이 제 어깨를 두드리며 윙크하는 게 보였다. 스네이프는 표정 없이 인사를 받아내며 맥고나걸의 말에 끄덕거렸다. 미리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수업은 어디서 진행합니까?”
“교장실에서. 평일에, 매일 점심을 같이 먹은 뒤, 한시간 반. 그 정도면 내 업무에도 지장 가지 않고 수업 진행하기에도 빡빡하지 않을 듯한데, 세베루스?”
“그 정도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네르바.”

대단한 편의였다. 스네이프는 이유도 모르면서 개인 특별 수업을 해주겠다는 은사에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아까부터 저를 쳐다 보는 해그리드나 슬러그혼, 플리트윅 등이 제게 많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철저히 등 돌렸다. 원래부터 자신은 그들과 그다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애니마구스 수업이었다.

식탁에 음식이 한가득 쌓였다. 직접 차리지 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건 오랜만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제 때에 점심을 먹고 있을지 궁금했다. 굶지는 않고 일해야 할 텐데. 그리고 학생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스네이프는 지니의 시선을 쉽게 구별해내었다. 이 중 가장 저에게 할 말이 많을 소녀였다.

“롱바텀.”
“네, 네? 무슨 일이세요, 교수님?”
“지니 위즐리의 수업 일정을 아나?”

부름에 깜짝 놀라던 네빌이 지니의 이름을 듣고 더욱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니는 졸업반이라서 수업이 많지 않아요. 월요일 오후에는 저녁 먹기 전에 일반마법 수업 뿐일 걸요?”
“그럼, 두시 반쯤에 교장실 앞으로 오라고 전해. 만나기 싫다면 안 와도 된다 하고. 그것까진 나도 상관 않을 거니까.”
“네, 교수님. 지니에게 전할게요.”

스네이프는 그걸로 저를 향한 관심들에 모두 신경을 꺼버렸다. 집요정이 준비한 음식들은 맛있었고, 애니마구스 수업에 대한 것도 긴장은 없었다. 단지, 급하게 추가 된 한 개의 일정에 마음이 조금 더 갔다.


교장실의 초상화들은 모두 잠에 든 척을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알버스 덤블도어의 초상화 만큼은─ 반달안경 너머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그 옆의 제 초상화를 천으로 덮어 버리고 싶은 열망을 느끼며 지팡이를 쥐었다. 해리가 추진했다는 교장실의 자신의 초상화는 볼 때마다 흉물스러웠다.

“우선, 애니마구스의 이론적 접근에 대해 설명하마,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초상화들에서 시선을 떼었다. 맥고나걸은 교장실의 창가에 서서 조용하게 입술을 열었다. 스네이프처럼 그녀 또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도 사람의 주목을 이끄는 기질이 있었다.

“패트로누스를 사용할 줄 안다면 애니마구스 변신은 훨씬 더 쉬워지지. 이 두 주문의 상관 관계를 자네는 유추할 수 있을까?”
“……패트로누스는 주문을 쓴 사람의 본질의 실체화. 애니마구스 역시, 그 사람의 본질이 투영 된 동물의 모습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상 둘은 같은 것으로도 느껴집니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흑단목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유려하게 쓸어 내렸다. 이 지팡이 끝에서 구현 되는 암사슴과 해리의 지팡이 끝에서 나온 숫사슴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작년, 해리가 원했던 생일선물은, 해리 본인만큼이나 스네이프에게도 깊은 감명을 불러 일으켰다.

맥고나걸은 스네이프의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패트로누스를 불러냈다. 얼룩 고양이가 공중을 겅중겅중 뛰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그 모습과 똑같이 생긴 실제 얼룩 고양이가 교장실의 책상에 올라 앉아 있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스네이프의 지팡이에서 암사슴이 뛰어 나와 고양이와 함께 춤을 추었다. 상당히 동화적인 모습이었으나, 스네이프는 숫사슴 때처럼 눈을 빛내며 보진 않았다. 맥고나걸은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암사슴이라……. 의외의 패트로누스군, 세베루스.”
“릴리의 것이었죠.”

짧게 대답했지만, 맥고나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젠 자네의 본질이야.”

스네이프는 조용히 제 패트로누스를 바라 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암사슴이 자신의 본질일 수 있을까.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제대로 자신이 암사슴 애니마구스가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애니마구스 마법은, 마법이라기보다 정신 수련에 가깝다. 그저 지팡이를 휘두르면 그만인 마법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래서 실패하는 마법사들이 그렇게 많은 거다. 마법사들은 지팡이는 쉽게 믿고, 제 정신적인 부분들을 들여다 보는 것엔 인색하지. 그래서… 애니마구스들은 지팡이 없이도 동물로 변하는 게 가능하다. 자신의 본질, 또 하나의 내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로군. 스네이프는 무뚝뚝한 얼굴로 제 지팡이를 책상 위에 내려 놓았다. 제임스 포터, 시리우스 블랙, 심지어 피터 페티그루까지 학생일 때 성공한 마법이었다. 그들보다 위대한 마법능력을 가진 자신이 해내지 못할 법은 없다 생각했는데, 이건 마법이면서도 마법이 아닌 분야였다.

“어떤 생각을 하며 시도해야 합니까?”
“나 자신에 집중 하고, 또 하나의 내 모습을 바라면 된다.”

잡스러운 생각을 비워야 했다. 스네이프는 오클러먼시를 할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머리를 비우고, 단단하게 주변과 벽을 세웠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집중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요구였다. 암사슴이 제 본질인 것에도 일말의 의심이 있는 가운데,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해내야 해.
스네이프는 계속 생각했다. 해리가 기뻐할 얼굴을, 오직 그 하나만을 생각했다.


“헉, 허억….”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동안 억겁을 지나온 것 같았다. 지칠대로 지친 스네이프는 탈력해서 의자에 주저 앉았다. 첫 날부터 어떤 성과가 나올 것이라곤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답이 없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막막했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맥고나걸은 오늘 수업은 이만 마치겠다고 말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꾹 다물고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집에 가서는 푹 쉬도록, 세베루스. 정신적인 소모는 쉽게 볼 것이 아니니까. 이런, 땀도 제법 흘렸군.”

맥고나걸이 지팡이를 휘둘러 부드러운 냉풍을 일으켰다. 스네이프의 땀이 금세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한 번 더 감사를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

“잠깐, 세베루스!”
“……?”

작게 바람을 일으켜주던 맥고나걸이 당황한 목소리로 스네이프를 잡았다. 스네이프는 의아해하며 그녀를 보다가, 맥고나걸이 제 옷깃을 벌리는 것에 아, 깨달았다. 그녀는 바람에 살랑이던 셔츠깃 너머로, 스네이프 목에 있던 번개무늬 흉터를 발견한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옷깃을 다시 여몄다. 맥고나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술을 가렸다. 어머나.

“해리가…… 그런 것 맞니?”
“……가보겠습니다.”

맥고나걸은 붉어진 스네이프의 귀를 보며 더 말 붙이지 않았다. 내일 점심시간 전에 오게, 세베루스. 마지막 인사 정도가 문 너머로 들렸다. 스네이프는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움직이는 계단을 내려 왔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위즐리.”
“안녕하세요,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어쩐지 저 당당한 눈에서 해리를 떠올렸다. 제가 교장으로 있을 적에도 저런 모습이긴 했었지. 그녀는 해리의 걱정 만큼 호그와트 가십의 주인공으로서 괴롭진 않아 보였지만, 당연히 겉보기에만 그럴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딱히 지니에게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먼저 부른 것도 저였기에, 빈 교실로 이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교실 문 쪽으로 걷는 스네이프에 지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걸으면서 얘기 해요, 교수님. 퀴디치 경기장 쪽으로 가는 길은 한산하니까요.”
“알겠다.”

10대 여학생과의 대화는 사실 스네이프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제가 알던 릴리의 순간이 10대의 순간밖에는 없었다. 그 때처럼, 붉은 머리의 여학생이 옆에서 당차게 걸음을 옮겼다. 릴리와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길고 붉은 머리카락은 스네이프에겐 감상의 소재가 되었다. 그것이 현 애인의 전 여자친구라는 사실에도. 스네이프는 지니에게 '미안함' 같은 사치스런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봄의 호그와트는 벌써부터 무더웠다. 걸친 로브의 두께를 좀 더 얇은 걸로 입었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낙인을 발견한 맥고나걸 덕에 얼굴을 붉힌 영향도 있을 것이었다. 성을 나와 잔디밭으로 나오자 산들바람이 불어 훨씬 산뜻해졌다. 지니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멀리 해그리드의 오두막에 시선을 두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개인 용무. 앞으로 평일은 매일 올 거다.”
“절 부른 이유는요?”
“난 너에게 할 말 없어. 위즐리, 네가 나한테 할 말이 있어 보여서 부른 거다.”
“와, 진짜 스네이프 교수님 맞군요. 해리랑 사귄대서 뭔가 달라지셨을까 했는데.”

재수 없는 그 교수의 모습 그대로라서 오히려 놀랐다. 지니는 살짝 멍해졌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변한 게 없는데도 해리가 교수에게 반해버렸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웃겼다. 그리고 더 재밌는 사실은, 저 스네이프 교수가 해리의 마음을 받아주고, 쌍방이 통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니 위즐리는 사연을 듣고 싶어 좀이 쑤셨다. 짧은 며칠간 실컷 울고, 주변에서 저를 씹고 뜯고 즐기는 것에 박쥐 저주 주문으로 통쾌히 복수했더니 해리에게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앞에 나타난 전 남친의 현 애인을 보고도 주시하지 않을 전 여친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리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평소처럼 오러 일. 아는 사람들 만나러 가거나.”
“뭐, 그냥 똑같네요. 교수님은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해리랑 같이 사는 것 같던데…….”

스네이프는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지니를 곁눈질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니 위즐리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런 고약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게 알고 싶나?”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스네이프가 물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지니는 기가 막힌 웃음을 흘리며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진짜 심보 봐. 해리가 저런 사람에게 코가 꿰이다니. 지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팔짱을 꼈다. 5월의 바람은 부드럽고 상쾌했다. 퀴디치 경기장 근처의 들꽃 내음이 풍겨오는 것 같았다.

지니는 들판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끝내주는 날씨였다. 조만간 있을 N.E.W.T만 아니었어도 학생들은 노느라 정신 없을 봄날씨였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들꽃 냄새. 이걸 함께 즐기고 있는 게 해리가 아닌 지니 위즐리인 것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벌써 해리 잊었어요. 차이고 보니까, 우리 사랑이 얼마나 얄팍했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러니까 해리도 과거로 가서, 저 며칠 좀 못 봤다고 식었겠죠.”
“흐응.”
“스네이프 교수님, 근데…… 그거 혹시, 번개무늬 맞나요?”

이 놈의 바람.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리며 제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지니가 본 게 보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지니가 목덜미를 가리키며 눈을 깜박거렸다. 스네이프는 쳇, 혀를 찬 뒤 지니의 옆에 앉았다. 지니가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옷깃을 벌렸다. 목의 상처를 확인하고 동그래진 눈이 커지더니, 미간을 확 좁히며 찌푸려졌다.

“으윽……. 세상에, 안 아파요? 미친, 부은 거 봐. 이거 해리가 한거죠?”
“내버려 둬라. 일부러 치료하지 않아서 더 그런거니까.”
“네? 일부러 치료를 안해요? 대체 왜요?”

10대 여학생이 이런 또라이, 머저리, 사이코 짓을 받아 들이긴 버거울 터였다. 전 데스 이터에 이중 첩자 정도는 돼야 받아줄 수 있는 해리 포터의 미친 사랑이니까. 스네이프는 어깨를 으쓱이며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니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찜찜해, 다시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사실 되게 많았는데…… 직접 뵈니까, 그냥 별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생각도 안 나고 그렇네요. 아! 해리를 어떻게 받아주신 건지 그거는 진짜 물어보고 싶었어요. 해리, 엄청 싫어하셨잖아요.”

지니의 고개가 스네이프 쪽을 향했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그냥 평범하게 함께 살고 있다고 자각한 뒤로는, 싫은 감정도 잊어버렸다고 느꼈다.”

해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그릇을 치우고, 해리가 일을 나갈 때마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흘러가는 말도 기억해서 무언가를 사오고, 필요한 것을 챙겨 주고, 같은 샤워용품을 쓰고, 같이 계단을 올라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잤다. 그 일련의 행위들이 스피너즈 엔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다. 해리가 싫다는 감정은 어느샌가 증발해버려, 스네이프의 내면에 존재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무릎을 모아 끌어 안았다. 멀거니 퀴디치 경기장이 보였다. 저 곳에서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누비던 어린 수색꾼을 떠올렸다.

“그럼… 언제 해리를 좋아한다고 느끼셨는데요?”

지니는 열여덟 살의 소녀다운 질문을 했다. 주근깨가 옅은 얼굴에 명랑하고 높은 목소리였다. 스네이프는 웃는 듯한 숨을 쉬었다. 그 감정을 깨달은 건 해리와의 첫 관계에서였다. 스네이프는 자리에서 이만 일어섰다. 그리고 스치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분명한 발음이라, 지니가 놓칠 리 없는 말이었다.

“불건전한 순간에.”

지니의 얼굴이 타오를듯 붉어졌다. 와우, 멀린. 열여덟 살 그녀로선 정말 당해낼 수 없는, 전남친의 현애인은 너무나 어른이었다.


적막한 집에 다시 돌아왔다. 스네이프는 땀에 절은 옷을 다 벗고 세탁 마법을 걸었다. 한여름에도 늘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가. 더위에 한층 약해진 몸이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그 밑으로 들어섰다. 상처 부위에 물이 닿으니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방수 조치를 취하는 걸 깜박했다. 스네이프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느끼며 그냥 그대로 물줄기를 맞았다. 상처가 따갑고 쓰릴수록 해리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미역처럼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질척하게 감겨오는 느낌이 꼭 누구를 닮았군. 피식 웃은 스네이프는 대체 해리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이 오긴 하는 건지 궁금했다. 요 며칠간 정말 한계도 모르고 붙어 먹어서 그런지, 몸도 해리를 원하는 것 같았다. 제가 먼저 달아오르는 경우는 적었는데, 오늘도 또 이렇게 혼자 흥분을 하다니. 스네이프는 물을 맞으며 발기한 제 앞을 내려다 보았다.

오른손이 성기를 감쌌다. 음…. 잇새로 비음이 새며 얕게 숨을 뱉었다. 해리가 뒤에서 안은 채, 제 것을 잡고 흔들어줄 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그 품에 편안히 저를 맡기고 해리가 이끄는 열락에 빠져드는 순간은 늘 기분이 좋았다. 스네이프는 연이어 포터 교수도 떠올렸다. 평소보다 해리가 훨씬 거칠고 난폭했었다. 제게 잔뜩 흥분해서 그걸 숨기지도 못하는 해리가 스네이프는 제법 귀여웠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다는 건 끝까지 안해준 해리가 우습기도 했다.

붉은색과 황금색이 섞인 오러 정복을 입은 해리가 멋스러웠고, 그 옷을 벗지 않고 했던 소파 위에서의 섹스가 자신은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난 범죄자가 맞으니까, 포터. 그래서 더 쾌감을 느꼈는지 모르지. 오러에게 깔려서 성적흥분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었달까. 스네이프는 웃음기를 흘리며 성기를 더 빠르게 쓸었다.

“아…… 포터….”

순간적으로 제 안을 처올릴 때의 해리의 표정이 생각나, 스네이프는 불현듯 허리를 떨었다. 윽, 막힌 신음이 목구멍을 긁었다.

성기를 쥔 손에 더 힘을 실었다. 빠르게 기둥을 쓸어 내리고, 귀두를 긁고, 벽에 이마를 붙인 채 가쁜 숨을 뱉었다. 차가운 욕실의 벽과 뜨겁게 피가 몰린 성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포터, 포터어…. 끊임없이 그 이름을 찾았다. 지금, 런던 지하 땅 밑에서 일하고 있는 제 연인은 알지 못할 사실이었다.

“하아… 하….”

스네이프는 달뜬 숨을 흘리며 여전히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배수구로 정액과 물이 섞여 흘러 들어갔다. 제 부정의 산물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 간다. 스네이프는 탁하게 풀린 검은 눈동자로 그 흐름을 좇았다. 찬 물에 쓰라림이 덜해진 목의 낙인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젠장, 보고 싶어. 포터, 보고 싶다고.











*애니마구스 관련 서술은 원작과 관련 없는 저의 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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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깥을 돌아다니던 헤르메스가 쥐를 물고 집으로 들어왔다. 언제든지 들어오라는 의미로 열어둔 창이었다. 퍽스도 뒤따라 들어와 해리가 건넨 물을 받아 마셨다. 쉬었다가, 호그와트의 맥고나걸 교수님께 이걸 전해주고 와. 헤르메스의 머리를 쓰다듬자 올빼미가 제 다리를 내밀었다. 가는 다리에 돌돌 만 편지를 묶은 해리는 다시 방을 나왔다. 방이 많아서 이 방 하나는 헤르메스와 퍽스에게 온전히 내주었다. 나머지 세 개의 방은 침실, 자신의 서재, 스네이프의 서재로 나눠 쓰기로 했다.

새들이 돌아온 걸 알고 나갔던 해리가 다시 침실의 문을 열자, 스네이프는 침대에서 다리를 벌린 자세 그대로 해리를 맞았다. 바로 다리 사이로 들어와 앉은 해리가 성기를 밀어 넣었다. 으응, 해리이, 늘어지는 목소리에 해리는 또 금방 스네이프에게 빠져 들었다. 둘은 간밤에 잠이 올 때까지 교수와 학생 역할극을 즐겼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또 다시 눈이 맞았다. 이제 윤활 없이도 무리없이 들어가는 스네이프의 구멍은, 해리에게 맞춰진 것처럼 잘 벌려졌다.

“아아…하아… 응, 으응…좋아….”

해리의 어깨를 잡고 헐떡이던 스네이프가 몸을 일으켜 올라 앉았다. 해리는 침대에 등을 붙이고 누워서 제 위에서 움직이는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땀에 절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이 이마에 엉겨 있었다. 서로가 일어나고서 계속 섹스만 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허리를 양 손으로 쓸어내렸다. 흐읏, 아. 허리를 만지는 것도 자극이 되는지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조여 들었다.

“세베루스, 다른 연기도 할 수 있어요?”
“뭐, 어떤 거. 학생 연기는, 하아, 이제 질렸나?”
“그것도 끝내주게 꼴렸어요. 흠, 뭐 보고 싶다 하지.”

허리를 돌리면서 피식 웃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지나치게 섹시했다. 해리는 보고싶은 스네이프의 설정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그냥 바라보고 있는 자체로 머릿속이 그냥 희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너한테 보고 싶은 모습이 있어.”

의외의 말에 접합부를 보고 있던 해리가 시선을 올렸다. 세베루스가 나한테?

“근데, 그건 네가 싫어할지도 모르겠군.”
“제가요? 저한테 뭘 시키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그럴리가 있나요?”

스네이프가 상체를 내려 해리의 목을 안았다. 유두끼리 스치는 느낌이 아찔해서 해리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잘금잘금 허리를 움직이며 스네이프가 살짝씩 쿵쿵 찧었다. 스네이프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라 해리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오러 포터에게 당하는 범죄자 세베루스 스네이프.”

스네이프가 귀에 속살거렸다. 해리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범죄자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변호해서 당신의 결백을 입증했는데! 뜻밖의 취향이라기 보다, 오히려 듣고 나니 스네이프에게 어울려서 더 기분이 별로였다. 볼드모트 같은 자식에게 주인님, 주인님 하고 싶어서 데스 이터가 된 남자니 뭐 어련하겠냐만.

“그건 좀. 연기 같지가 않아서 별론데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픽 웃은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다물고 간간히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해리는 여전히 유쾌하진 않은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안을 처올렸다.


베란다로 헤르메스가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해리는 일어서서 베란다로 나갔다. 졸린 것인지 헤르메스는 다리에 묶인 답장이 풀리자 마자 방으로 비틀비틀 날아갔다. 맥고나걸의 답장이었다.

「해리, 반가운 소식이구나!
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를 희망한다는 말에 무척이나 놀랐고 기뻤단다.
우리들이 해답을 찾던 문제에 가장 깔끔한 답이 아닐까 싶었단다.
세베루스는 마법약 과목과 슬리데린 사감직을 맡는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덧붙여, 나는 다음 새학기부터 완전히 교장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 그리핀도르 사감직에서 물러나 네빌에게 위임하고자 했단다.
그러나 해리 네가 그리핀도르 사감 일을 맡고 싶다면, 네빌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렴.
9월 1일 새학기에 보자. 그 전에 만나도 좋고.」

해리는 편지를 다시 접었다. 내일 출근해서 부서에 사직서만 제출하면 끝이었다. 오러 일은 제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지만, 막상 그만두기는 쉬웠다. 다시금 해리는 오러 포터와 범죄자 스네이프 설정의 섹스를 하자던 스네이프 생각이 났다. 진짜 내 애인이지만, 참…….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식탁으로 돌아온 해리에게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답장을 건네고 해리는 토스트를 물고 질겅거렸다.

해리는 볼드모트가 낙인 찍어 놨던 스네이프 왼팔의 표식을 다시 떠올렸다. 옛날 일이지만 진짜 범죄자였던 사람이 그런 설정을 하고 싶다하니, 자연히 그 때 당시 애인의 주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질투 난다고. 해리는 토스트의 귀퉁이를 찢으며 스네이프의 몸 어디에 제 것이라는 낙인을 찍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문득, 스네이프의 목으로 시선이 갔다. 해리는 내기니가 물었던 부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러라는 직업이 거지 같은 이유가 있다. 일단 주5일제가 전혀 보장 되지 않았고, 주말에 반드시 쉬는 것도 없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오러 부서는 버글버글거렸다. 오프는 일주일 중 하루거나 바쁘면 그마저도 없을 때가 있었다. 물론, 야근에 새벽까지 근무가 연장 되는 경우도 있었다. 새내기 오러인 해리와 론은 그 때마다 굴려지는 막내들이었다.

사직서를 내미는 해리를 보며 오러국 부장 말버러는 입을 떡 벌렸다. 일요일 아침부터 이게 뭔가. 마법세계 영웅으로 특채 고용한 해리 포터의 오러 사직서라니……? 국장 아니고서야 주말에도 출근하는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기도 바쁜데, 해리를 놓친다니, 이건 말도 안됐다.

“이번 달 말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부장님.”

싱긋이 웃는 해리의 미소는 자주 신문 1면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그만두는 것에 상쾌해 보이기까지하는 해리를 붙잡을 방도가 없어 보였다. 말버러가 벌떡 일어나 해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 두고 어딜 가려고!”

다른 마법부 부서에서 해리를 채가는 거 아니야?!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인 해리 포터를 놓치고 싶지 않은 오러국 부장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해리는 슬그머니 그의 손에서 제 손목을 빼내었다.

“마법부에서는 일 안 하니까 걱정마세요, 부장님. 아무튼 사표 수리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하러 갈게요.”

경쾌하게 돌아선 해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말버러는 손에 쥔 사직서를 찢어 버릴까, 한참을 갈등했다.

“뭐야?”

부장과 해리를 보고 있던 론이 해리의 등 쪽의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해리는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하며 사직서를 냈다고 답했다. 론의 눈이 번쩍하며 커졌다. 왜?! 론은 소리를 빽 지를 뻔한 걸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새 직업 찾아서.”
“새 직업이라고???”

론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가득 띄워지는 게 보였다. 헤르미온느한테 들은 거 없어? 해리의 말에 론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왜 나는 모르고 헤르미온느가 알아?

“금요일에 네빌이랑 헤르미온느 만나서 식사 했거든. 네빌이 데려 왔더라고.”
“네빌이? 뭐, 헤르미온느가 딱히 편지 보낸 게 없어서 몰라. 시험 준비한다고 나한테는 편지도 잘 안 하면서 거긴 나왔다고?”

해리는 친구 커플의 대전쟁의 서막을 올리는 단초를 자신이 제공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얼른 말을 덧붙였다.

“세베루스랑 같이 네빌을 만나러 나갔거든. 그래서 네빌이 좀 걱정 됐는지 헤르미온느한테 같이 가달라고 졸랐대. 걔도 억지로 받아들인 것 같더라. 헤르미온느가 이제 시험 끝날 때까진 자기 못 만날 거라고도 했어.”
“스네이프랑? 네빌을 만나? 이게 뭔 소리야, 대체.”

어리둥절한 론의 반응에 해리는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론이 헤르미온느랑 싸울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 호그와트 교수로 임용 됐어.”
“뭣….”

론이 입을 떡 벌렸다. 교수? 해리 네가? 설마 어둠의 마법 방어술??? 론은 일터인 것도 잊고 언성을 높였다. 어흠흠, 주변의 오러들이 시끄럽다고 론에게 눈치를 주었다. 머리색과 비슷하게 얼굴을 붉힌 론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갑자기 왜? 아, 설마. 또 스네이프 때문이야?”

질렸다는 듯이 론이 얼굴을 찡그렸다. 진짜 염병할 사랑이다, 너네. 론은 대체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어떻게 제 친구를 이 지경이 되도록 꼬신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 딱딱하고 성질 더러운 교수가 대체 해리에게 뭘 어쨌길래?

“나만 빼고 다 스네이프를 만나보는 것 같네. 휴 씨가 나 보고 우리 가족 괜찮냐고 물었는데, 스네이프 심문할 때 해리 네가 연애중이라고 휴 씨한테 다 밝혔다며? 헤르미온느는 두 번이나 만나보고 심지어 네빌까지. 내가 '위즐리'라고 나만 따돌리냐?”

괜스레 툴툴거리며 론이 메모지에 깃펜을 휘갈겼다. 해리는 살짝 놀라 론을 보았다.

“너 세베루스랑 만나 보고 싶어?”
“그 작자가 널 어떻게 꼬신 건지 상상이 안 가서, 직접 보면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중이다, 친구.”
“아, 뭐야.”

큭큭 웃으며 해리가 론의 팔을 주먹으로 쳤다. 론도 피식 웃으며 해리의 어깨에 주먹을 박았다.


일요일에도 출근이라니. 스네이프는 어린 신랑을 마법부에 뺏긴 채로, 소파에 모로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 내내 해리와 섹스만 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해리의 사직 이후엔 3개월의 휴가가 생겼다. 그 땐 정말 그 짓만 하고 살면 어쩌지. 그 정도로 해대면 남성인 저도 진짜 임신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스네이프는 이내, 주말 오후를 이렇게 무료한 망상으로 보내는 게 한심스러워졌다.

스네이프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실로 가 옷장의 문을 열었다. 해리가 제 목숨을 구했던 날, 옷을 사러가서 해리가 부추겨 샀던 베이지색의 브이넥 얇은 니트가 눈에 들어왔다. 스네이프는 잠깐 머뭇거리다, 그 옷을 집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거울에 베이지색 니트를 입은 자신이 비쳤다. 조금… 파인 것 같기도 하고.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넥라인을 만지작거렸다. 스네이프는 항상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 입다보니, 흰 살이 보이는 자체로 조금 민망스러웠다. 다행히 마주치는 입주민 없이 스네이프는 집을 나섰다. 스네이프의 뒤로 10층 높이의 아파트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폐점 한 낡은 상점이 있었다.

장을 보려고 코 앞의 슈퍼마켓에 갔을 때 이후 첫 외출이었다. 스네이프는 아무 목적도 없이 머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꽃 화분으로 장식 된 카페의 바깥에는,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와 수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네이프가 베란다로 종종 구경하던 곳이었다.

“…얼그레이로 한 잔.”

주문을 받은 적갈발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점원은 해리의 또래처럼 보였다. 딱딱한 스네이프의 말투에도 점원은 밝게 웃었다. 스네이프는 이제는 익숙하게 머글 돈을 내 계산했다. 그리고 카페 안의 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챙겨 온 책이 마법 독초와 약초 대백과인 것만 빼면, 스네이프는 카페 안의 다른 머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얼그레이 한 잔,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새 메뉴로 낼 아몬드 쿠키인데 드셔보세요. 서비스예요.”

서비스치곤 고급진 그릇 위로 수북한 쿠키의 양이 많았다. 스네이프는 말없이 내려다 보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도 점원은 가지 않고 스네이프의 옆에 서있었다. 맛의 평가를 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스네이프는 쿠키를 집었다.

“…설탕을 15그램 정도 더 첨가해야 할 것 같군.”

마법약 교수처럼 평가하고 말았다. 스네이프가 제가 내뱉은 말에 찡그리자, 점원이 하하핫 웃었다. 미간을 꿈틀인 스네이프가 점원을 올려다 봤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손님의 표정에도 점원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신기하네요. 원래 엄청 단 커피에 곁들이려고 만든 쿠키라, 원 레시피에서 설탕을 15그램 빼서 만든 건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아셨지? 우리 가게 단골이세요? 아닌데, 그럼 내가 당신을 기억을 못할 리가 없는데…….”
“오늘 처음 왔소만.”

오늘부로 다시는 안 올 것 같긴 하군. 스네이프는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다.

“이 근처 사세요? 이사 오셨나? 우리 카페는 거의 이 동네 사람들만 오는데 처음 보는 분이어서.”
“일 하러 안 갑니까?”
“네, 손님. 제가 여기 사장이라 농땡이 쳐도 돼요.”

그 농땡이를 왜 저에게 부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건데. 스네이프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넘겼다. 빌어먹게도 차 맛은 맛있군. 스네이프는 제 앞의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젊은 사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시리우스라고 해요.”
“…….”

차 맛까지 뚝 떨어졌다. 생긴 건 전혀 안 닮아서 다행이랄까. 스네이프가 일어서려고 하자 젊은 사장이 어어어? 하며 따라 일어섰다. 머글 시리우스 씨와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단 1초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손님? 왜 그러세요?”
“내가 얼그레이를 마시는 건지 얼블랙을 마시는 건지 모르겠어서.”
“손님, 그래도─ 아직 한 모금밖에 안 드셨는데….”

제 차 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진 몰라도, 못내 애석한듯 저를 붙잡는 사장에 심기가 거슬렸다. 그냥 일개 손님 하나일 텐데,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리 붙잡지? 스네이프는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며 가게 문을 열었다.

초록색 문에 달린 종에서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덜컹이며 닫히는 문과 기어코 거리까지 쫓아나온 사장에 스네이프는 짜증이 폭발했다. 뒤이어 그가 제 손목을 잡아오는 것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님, 죄송해요. 사실, 이렇게까지 제 취향인 분은 처음 봐서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그런 건데─ 제발 제가 무례했던 건 용서해주시고 우리 통성명을…….”
“뭣….”

취향…? 뭐가 취향? 내가 취향이라고……?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은 대체─

“아악! 뭐야?!”

사장의 팔이 뒤로 꺾여 스네이프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놀란 눈으로 눈 앞의 붉은 머리 청년을 바라 봤다. 그는 방금까지의 스네이프 만큼이나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시네. 그 말은 분명, 저를 향한 빈정거림이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꾹 여물며 그를 노려 봤다.

“…론 위즐리.”

론이 고개를 건성으로 까닥였다. 그리고 그대로 론은 사장을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팔이 뒤로 꺾인 사장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프다고 고함을 계속 질러댔다. 그리고 잠시 후, 가게 안은 어떤 소란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카페 바깥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어리둥절해질 만큼이었다.

초록 문의 종이 딸랑이며 맑게 울렸다. 론이 문을 열고 나타나 스네이프에게로 다가왔다.

“돈 낸 거 있어요? 그것도 받아 와줄까요?”
“아니, 필요 없…. 위즐리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세베루스! 론!”

해리였다. 헐떡이며 달려오는 해리의 손에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저렇게 뛰어 오면 다 뭉개질 것 같은데. 그러나 지금 해리에게는 케이크 따위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론은 몹시도 애석한 표정으로 케이크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해리는 스네이프만 보며 달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앞에 와서는, 걱정과 분노가 어린 표정으로 스네이프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카페 문을 노려보는 해리의 표정이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스네이프는 해리가 이대로 폭파 주문을 쓰는 건 아닐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괜찮…아요? 빵집이 여기랑 거리가 좀 돼서 늦었어요, 젠장!”
“난 괜찮아, 포터. 그런데 무슨 수를 쓴 거지, 위즐리?”
“카페 내의 머글 모두에게 오블리비아테를 썼습니다만.”

어깨를 으쓱인 론이 스네이프를 돌아 보았다. 파인 브이넥의 니트를 입고 있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 게다가 머글 남자한테 추행까지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히, 환장할 재회라고 평할 만 했다.


스네이프가 뭉개진 케이크에 복원 마법을 걸었다. 멀쩡해진 케이크에 론이 눈을 빛내며 포크를 들었다. 해리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포크는 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스네이프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난 해리의 얼굴에 눈치가 보였다. 물론, 론은 그런 눈치는 개나 던져준 듯 했다. 아니면 신경이 안 쓰이거나. 이 머글 베이커리의 맛이 기가 막힌다며 론은 케이크를 큰 덩이로 퍽퍽 퍼먹었다.

해리는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쉬고 스네이프의 앞에 그릇을 소환해 케이크 조각을 덜어주었다. 이대로 두다간 스네이프가 한 입도 못 먹고 론에게 빼앗길 것 같았다.

“세베루스, 먹어봐요. 맛있어요, 여기, 이 집 케이크. 론이 좋아해서 오늘 집에 오기 전에 들렀는데 그런 광경을 보게될 줄은 몰랐지만…….”

으득, 이를 갈며 해리가 미간을 좁혔다. 스네이프는 포크로 조각을 작게 떠서 해리의 입 앞에 갖다 대었다. 론이 그걸 보더니 옘병, 작게 중얼거리며 케이크를 입에 쑤셔 넣었다. 해리는 살짝 표정을 풀고 케이크를 받아 먹었다.

“그 카페… 종종 갔었어요?”
“아니, 오늘 처음.”
“그 새끼가, 뭐라고 했어요? 당신 몸을 함부로 잡은 건 봤는데─”
“……그냥, 헛소리.”
“해리, 내가 들었는데 그 자식이 스네이프가 너무 자기 취향이라서 붙잡았댄다.”
“론 위즐리!”

론이 혀를 메롱 내밀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이잖아요? 그 말에 스네이프는 주먹을 꾹 쥐고 론을 노려봤다. 돌아본 해리의 녹색 눈은 이글이글 불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가 언제 쥐었는지 모를 지팡이를 쥔 주먹에 힘줄이 다 섰다. 스네이프는 현직 오러인 제 연인이 머글에 폭력 상해를 입힐까 염려스러웠다. 그 머글 놈은 어떻게 돼도 전혀 상관 없었다. 해리에게 해가 생길까봐 걱정스러웠다.

“포터, 그냥 손목만 잡혔어. 그리고 그 머글도 뭔가 착각했겠지. 내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어딨겠….”
“세베루스, 난 당신 남자친구라고요.”
“아, 뭐, 너 같은 특이취향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
“세베루스! 어째서 이 일이 당신 자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건데요?!”

쌓이고 쌓이는 분노에 결국 해리는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즉시 괴로워하며 지팡이를 놓고, 마른 세수를 했다. 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케이크 위의 딸기를 입에 넣었다. 이 상황에서 론만은 제3자 역할에 충실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 뭐, 이젠 저도 학생이 아니니까 스네이프라고 불러도 되겠죠?”
“…네 맘대로 해라, 론 위즐리.”
“스네이프. 해리가 좋아하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요? 당신 때문에 해리가 내 여동생을 찼다고요. 뭐, 그건 일단 제쳐놓고. 그리고 오늘은 내가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그 옷 해리가 골라준 거 맞죠? 잘못은 그 머글 자식이 했지. 마법사였으면 더 굴려줄 수 있는데, 머글이라 기억만 지워서 아쉬울 정도야.”

론은 오러가 천직인 것 같았다. 뚜둑 소리가 나게 손에 깍지를 끼고 비트는 것까지 기세등등해보였다. 스네이프는 어이없게도, 그 순간에 마법부 장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오러 국장 론 위즐리를 떠올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이 마법세계가 어찌 되려고…….

어쨌든, 스네이프는 론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제 얼굴에 미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었지만, 해리가 늘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말해줘서 그런걸까, 누군가에겐 나 같은 놈도 취향일 수 있겠지 하는 마음도 약간은 들었다. 스네이프는 죽은 눈을 한 채, 론이 헤집어 놓은 케이크 잔해를 깔작이는 해리를 바라 보았다.

“포터.”
“네….”
“나도 마법사야, 위즐리가 없었어도 그런 머글 정돈 쉽게 떼어 낼 수 있었고.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알아요, 전 단지…. 젠장. 론 앞에서 이런 말을 하려니. 야, 론. 귀 잠깐 막고 있어 봐.”
“진짜 너네…… 환장하겠다. 알았어, 알았어. 빨리 해, 해리.”

론이 투덜대며 양 쪽 귓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제야 해리가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다. 스네이프는 다시 저를 바라보는 녹색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세베루스, 저도 당신이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어요. 진짜 제 기분이 지금 어떤 줄 알아요? 이대로 세베루스를 집에 가둬놓고 저만 보고싶은 이기적인 생각까지 든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자기 외모 비하나 하고 있지….”
“해리 포터. 너야말로 이 세계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폭발인데, 지금 내가 맘에 든다는 사람 딱 하나 나타났다고 그런 마음이 드나?”

해리의 이기적 소유욕에 스네이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둬놓고 싶을 정도라고?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영웅은 확실히 이상성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해, 둘의 앞에 앉아있는 론은 아무리 귀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도 들리는 둘의 대화 내용에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요, 이 염병할 커플들아. 나 방금 쩔게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거든요? 비위 좀 맞춰주시죠.”
“귀 막고 있으랬잖아, 론.”
“다 들리는 걸 어떡하냐고. 어휴, 진짜. 지금 보니 지니랑 네가 결혼 안 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 고맙.”

스네이프는 또래 동성친구 옆에서 여즉 10대 티가 나는 해리에게 웃음이 났다. 제 앞에선 그래도 어른스럽게 굴려고 노력하더니. (그래서 더 애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엄마는 이제 좀 받아들이신 것 같더라. 해리 너랑 내가 직장에서 얘기는 나누냐고 물으셨어.”
“정말? 다행이다. 나도 빨리 네 가족들이랑 다시 만나고 싶거든.”
“그래도 아직은 좀…. 그리고 올 거면 너 혼자 와야할 것 같아. 스네이프는….”

흘낏, 스네이프를 본 론이 말꼬리를 흐렸다. 해리는 턱을 괸 채로 표정을 굳혔다. 스네이프는 평생 해리가 혼자 위즐리들을 만나러 가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해리 고집과 생각에 절대 그러고 살 수는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베루스는요? 위즐리 가족을 만나러 가긴 부담스럽겠죠…?”
“당연하지. 내가 그들을 본다는 건 지극히 뻔뻔한데다가, 원래 내 성격에도 안 맞고.”
“하아, 알았어요. 일단은, 봐서 제가 혼자 다녀올게요. 그렇지만…… 론, 내 결혼식은 위즐리 가족 없이는 못 열어. 그러니까 제대로 용서 구할거고 화해 할 거야.”
“……결혼식?”

론이 입을 떡 벌린 채, 넋을 놓고 스네이프와 해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론 너한텐 얘기 안 했었나? 해리는 뻔뻔한 얼굴로 냉수를 따라서 단숨에 마셨다. 음, 시원해.


론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벽난로에 플루 가루를 뿌렸다. 해리가 사준 케이크에 이어 스네이프가 차려준 감자 스프, 각종 가니쉬를 더한 훈제 오리 요리까지 대접 받은 론은 매우 만족한 얼굴로 버로우로 돌아갔다. 역시 론은 먹을 걸로 포섭하는 게 최고예요. 으쓱이던 해리는 스네이프와 함께 부엌으로 되돌아갔다. 지팡이를 휘두른 해리가 그릇에 세척 마법을 걸었고, 스네이프는 냉장고를 들여다 보며 살 것을 확인 했다. 말단인 해리의 오러 업무가 생각보다도 더 과중해서, 잘 먹이려 했더니 식재료가 금방 줄어들었다. 게다가 한차례 론 위즐리라는 폭풍까지 지나갔더니 냉장고 사정이 영 궁핍해졌다.

해리는 홍차와 함께 식탁에 다시 앉았다. 스네이프는 주문을 건 깃펜에 사야할 목록을 읊어주고 양피지에 쓰게한 뒤, 냉장고를 닫고 해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해리가 준비한 것은 얼그레이가 아닌 루이보스였다. 흐음. 눈썹을 까딱한 스네이프가 차를 받아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괜히 돈 내고 밖에서 사마실 필요는 없지. 이 세계의 구원자가 공짜로 끓여주는 홍차가 있는데 말이었다.

“세베루스.”
“뭐지? 포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당신 목에 내 거라고 낙인을 찍고 싶어요.”
“……키스마크 이야긴 아닌 것 같군, 보아하니.”

스네이프는 질렸다는 얼굴로 홍차를 들이켰다. 그래도 차 맛이 아주 뚝 떨어질 정도의 주제는 아니었다.

“오늘 그런 일도 있었고……. 당신이 내 거라는 표식이 필요해요. 장신구는 거추장스럽고, 눈에 바로 보이는 걸로요.”
“내가 네 건가?”
“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 거죠.”

눈썹을 으쓱하며 해리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유로워 보이는데, 포터. 스네이프는 픽 웃고는, 해리와 나란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식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내 목에 어떤 걸 새기고 싶은 건데?”
“남들이 보자마자 의미를 깨닫는 거요.”
“뭐지? 설마 네 이름이라도 새기고 싶은 건가.”

스네이프는 정말 변태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해리는 큭큭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처음엔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소유이다'를 새기고 싶었는데…….”
“미친. 제대로 돌았군.”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스네이프의 눈초리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리핀도르 10점 감점 소리가 들릴 것 같아, 해리는 웃음을 참았다.

달그락, 잔소음을 내며 해리가 찻잔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해리는 잔을 내려놓은 오른손으로 제 앞머리를 들어 이마를 드러냈다. 스네이프에게도 익숙한, 마법세계의 모두가 알아보는 그 번개무늬 흉터가 훤히 보였다. 하, 스네이프는 탄복하며 실소했다.

브이넥을 입어서 오늘따라 목덜미도 잘 보였다. 스네이프는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숨소리를 냈다. 해리가 아까부터 뚫어져라 제 왼쪽의 목 부근을 보고 있었다. 내기니가 물었던 곳─ 의도가 뻔히 보였다. 볼드모트의 흔적에 질투해 낙인을 떠올리는 질투의 화신이니, 어쩌면 해리가 이 자리를 원하는 것도 당연한 듯 보였다. 스네이프는 왼손으로 브이넥의 목라인을 잡고 팽팽히 당겼다. 드러나는 빗장뼈와 하얀 목선이 해리를 현혹했다.

“새겨 줘.”

해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야하게, 도발적으로 제 욕망을 받아들여주는 그 모습에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해리가 고작 세 발자국만에 스네이프의 앞에 섰다. 여전히 옷깃을 바짝 잡아 당긴 스네이프가 해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게 더 해리를 미칠 것 같이 만들었다. 해리의 지팡이 끝이 스네이프의 목을 꾹 눌렀다. 살짝, 스네이프가 미간을 좁혔다가 풀었다. 해리의 지팡이가 흰 살갗 위에서 세 개의 사선을 그렸다. 칼에 베인 듯한 목의 상처 위로, 방울방울 맺힌 핏방울이 스르륵 흘러 내렸다.

“…심지어 섹튬셈프라의 변형 마법인가?”

스네이프가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해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의 얼굴을 감싸 잡고, 급하게 입 속을 파고 들었다. 스네이프의 베이지색 밝은 니트에 핏물이 조금씩 스며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눈을 마주쳤다. 깊은 소유욕과 저를 향한 욕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 녹색 눈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헛웃음을 흘리며 제 목덜미를 해리에게 내어 주었다. 따가운 상처 위를 해리의 부드러운 혀가 지나가며 피를 핥았다.

정말 난 너의 것이구나.
스네이프는 눈을 감고,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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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금요일 저녁, 네빌은 헤르미온느와 함께 호그스미드의 작은 식당의 문을 열었다. 후플푸프 출신의 마법사가 개업한 이 식당은 작았지만 분위기가 따듯하고 음식의 맛이 좋았다. 협소한 공간 탓에 예약제로 이뤄져, 네빌이 만남에 수락하자마자 해리가 미리 예약해두었다. 다만 혼자서 스네이프 교수님을 만나러가는 건 아직 무서워서 네빌은 헤르미온느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시험이 코앞이라 거절할 줄 알았던 그녀는 해리-스네이프 커플을 만나러 간다는 네빌에 흔쾌히 승낙했다. 한번씩 이렇게 기분전환을 해줘야 머리도 돌아간다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네빌은 스네이프 교수를 만나는데 기분이 전환될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래도 동행은 다행스러웠다.

“아직 안 오셨네.”

헤르미온느가 예약석에 착석하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녀의 부스스한 머리칼에 머리를 맞으며 네빌도 옆에 앉았다. 조금 긴장이 되네. 네빌의 중얼거림에 헤르미온느가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스네이프 교수님도 전보단 나아지셨던데. 일전의 방문에 스네이프가 불러서 만났다는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어도, 네빌은 여전히 불안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선 해리가 보였고 뒤이어 스네이프가 보였다. 네빌과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스네이프는 오늘 까만 셔츠에 까만 진을 입고 머리를 묶은 모습이었다. 물론, 둘 다 저런 모습의 스네이프는 난생 처음 보았다. 헤르미온느는 입을 가리며 어머머, 하고 신나했다. 진짜 섹시한데?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네빌은 내심 동의하면서 놀란 눈을 깜박거렸다.

“헤르미온느, 네빌.”
“안녕,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늘 멋지신데요.”
“스네이프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 입니다. 돌아오신 걸 축하드려요.”

네빌이 조심스레 인사했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네빌을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네빌은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옷에 손을 닦은 뒤 악수를 받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해리가 가장 안 쪽으로 예약해둔 자리는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네빌은 스네이프를 몰래 힐끗거렸고, 헤르미온느는 대놓고 오늘 옷이 멋지시다, 머리스타일이 잘 어울리신다며 스네이프의 심기를 거슬렀다. 해리는 싱글거리면서 종업원을 불렀다. 유명한 전쟁 영웅들과 이번주 내내 마법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스네이프 교수가 손님이라니. 어린 종업원은 심장이 설레서 그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느라 혼이 났다.

“네빌, 나와줘서 고마워. 헤르미온느도.”
“뭘,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온 건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지?”
“응. 아직 나도 세베루스한테 얘기하진 않았어. 이틀 전에 슬러그혼 교수님이 사직하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그렇구나.”

네빌은 스네이프 교수를 가리켜 세베루스라고 칭하는 해리를 신기한 듯이 바라 보았다. 이미 호그와트에서 해리를 만났을 때 둘이 연인사이 라는 걸 듣긴 했지만, 둘이 그런 관계라는 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있어도 낯설었다.

스네이프는 네빌과 해리 둘만 통하는 주제에 눈썹을 꿈틀이며 해리를 쳐다 보았다. 나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해리가 저에게 비밀을 만들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스네이프는 인상을 구겼다. 네빌은 익숙한 그 표정에 살짝 겁을 먹고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해리, 네빌. 무슨 일인데?”

헤르미온느가 뺨을 괸 채 명랑하게 물었다. 그녀는 책 더미가 쌓인 도서관이 아닌, 분위기 좋은 식당에 있는 자체로 기분이 몹시 좋아보였다.

“내가 화요일 저녁에 호그와트에 왔을 때, 네빌을 만나서 대화한 게 있거든. 세베루스가 교수 복직을 하는 게 불만이라고, 사실 우리 둘이 사귀고 있다고 네빌에게 말했었어.”
“진짜 깜짝 놀랐다고, 해리. 무슨 그런 농담을 하는지 싶어서…… 죄, 죄송해요 스네이프 교수님…….”

네빌은 웃으면서 해리에게 대답하다, 스네이프를 쳐다 보고 움찔 굳어서 사과를 했다. 스네이프는 제 표정에 전부 반응하려 하는 네빌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설렁거렸다. 사과할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마침 구운 양고기나 감자튀김, 호박스프 등이 그들의 앞에 놓였다. 먹음직스런 음식들과 맛있는 냄새에 분위기는 한결 더 좋아졌다. 식당에서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다. 스네이프는 제자들과 이런 식당에 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그리핀도르의 마음에 안 드는 제자들만 쏙쏙 골라다 놓은 것 같아서 무척 우스웠다.

“아무튼, 그 때 네빌이 내 고민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줬거든. 세베루스가 복직해서 슬리데린 사감직을 다시 맡으면 계속 학교에 있어야 하잖아. 나는 세베루스랑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싫었어. 그래서 호그와트 교수직을 관둔다는 슬러그혼의 확답을 들었겠다, 네빌에게서 들었던 그 방안을 실천해보려 해.”
“그게 뭔데?”

헤르미온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해리를 바라 봤다. 스네이프도 옆에 앉은 해리를 곁눈질하며 양고기를 썰었다. 네빌 롱바텀이 제시한 해결 방안이라고? 썩 믿음이 가진 않는데.


“해리, 정말이야?”

네빌이 대연회장을 빠져 나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쉽게 디저트는 쓴 맛 나던 케이크로 끝낸 해리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끄덕거렸다. 네빌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스네이프 교수와 해리의 예전 모습들을 떠올렸다. 같이 산다는 게 뭐길래 그 둘에 연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을까.

네빌은 해리의 옆에서 종종 마법약을 만들기도 했으므로, 그 둘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스네이프가 눈을 부라리며 저들의 마법약에 트집 잡을 것을 호시탐탐 노리던 것을 어떻게 잊겠는가. 해리가 분노하며 스네이프에게 말대꾸를 할 때마다 네빌은 해리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어쩌자고 스네이프 교수의 심기를 더 거스르는 거야, 해리! 교수의 입에서 그리핀도르 50점 감점이 튀어 나오는 상상만 해도 네빌은 앞섶을 적실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들들 볶고 미워하던 앙숙들인데. 해리는 이제 스네이프 교수가 학교에 복직하는 걸로도 조바심과 안달을 느껴하고 있었다. 그와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다며 슬퍼했다. 네빌에게는 지니와 사귀는 해리의 모습이 아직 더 익숙한데, 눈앞의 해리의 모습은 정말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럼… 넌 지금 교장실로 가니? 스네이프 교수님이 있다는….”
“응. 같이 집에 돌아가야지. 내 집에서 같이 살고 있어.”
“그래…. 스네이프 교수님이 복직하시게 되면, 나도 새학기부터는 약초학 교수가 되니까, 동료 교수가 되겠다. 신기하다, 그치? 해리.”
“그러게…. 부럽다…. 아, 아 맞다. 너는 교수님이 여전히 불편할 텐데. 나한테는 이제 전처럼 못되게 안 굴지만, 네빌 너는 여전히 어렵겠지. 나도 처음에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살게 됐을 때는, 내가 같이 살자 해놓고 진짜 같이 살기 싫다고 생각도 했었는데.”

푸흣, 웃음을 흘리며 해리가 네빌을 돌아 보았다. 네빌은 스네이프와의 처음을 회상하며 순수하고 부드럽게 웃는 해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어쩐지 그 얼굴에서 해리의 진심이 보였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해리, 내가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교수가 된다고 부러워만 할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뭐? 내가 뭘 아는데?”

해리는 어리둥절해서 네빌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교수 말이야. 어둠의 마법 방어술. 오러 일을 관두고 네가 호그와트 교수가 되는 방법도 있어. 네가 그렇게…… 스네이프 교수님과 떨어져 있기 싫어한다면.”

계단에 한 걸음 올라서며 네빌이 말했다. 네빌의 말투처럼 담백한 해답이었다. 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빌을 올려다 보았다. 기차에서 두꺼비를 잃어버려 징징 짜던 그 어린 네빌은 어디로 갔을까. 벌써부터 네빌은 한 사람에게 이렇듯 길을 찾아주는 스승의 면모가 보였다. 해리는 놀라고 기뻐서 네빌을 덥석 안았다 놓았다. 얼떨떨해 하면서도 네빌이 씨익 웃었다.

“세상에,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네빌 네가 교수가 될 거라서 그런 생각이 난 건가…?! 와, 진짜 그런 방법이 있었네! 맞아, 그 수가 있었어. 고마워 네빌! 좋은 밤 보내!”

기숙사로 올라가는 네빌에 밝게 손 흔들며 해리가 교장실로 돌아섰다. 네빌은 계단에 서서 멀어져가는 해리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호그와트에 스네이프와 해리 모두가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달라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네빌은 궁금해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해리 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완전 덤블도어의 군대잖아!”

헤르미온느가 박수를 짝 치며 눈을 반짝였다. 해리가 5학년 때 엄브릿지 ─마법부─ 에 대항해 친구들에게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쳤던 건 전적으로 헤르미온느의 아이디어였다. 헤르미온느는 몇 수 앞을 내다 본 제 심미안에, 스스로의 빛나는 지성에 감탄했다.

스네이프는 스프를 수저로 천천히 저으며 해리와 네빌이 나눈 대화들을 생각했다. 해리가…… 저와 함께 교수가 된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네이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스프를 입에 넣으며 꿈틀거리는 제 입술을 가렸다. 어떡하지, 너무 좋은데. 스네이프는 제가 이렇게까지 해리와 같이 있고 싶었는지 몰랐다. 먼저 해리 옆을 떠나 학교에 있겠다고 말한 것도 자신이었는데. 해리가 저를 따라와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어떡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해리가 싱긋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돌아 보았다. 스네이프는 어쩐지 시선을 맞추기가 부끄러워 모른척했다. 세베루스, 속삭이며 해리가 살짝 스네이프의 손등을 감쌌다. 네빌과 헤르미온느의 시선이 해리의 손에 따라붙었지만, 그들은 못 본 척 딴청을 피웠다.

“그 날, 맥고나걸 교수님 앞에서 이 생각을 바로 말하려고 했는데요. 당신이 집에서 출퇴근을 먼저 요구했다는 걸 알고, 전 그 사실로도 충분히 기뻤어요. 그렇지만 이제 슬러그혼 교수가 학교를 떠난다니, 세베루스가 사감 직을 맡을 게 거의 확실해보여서 이렇게 말 하는 거예요. 저 나름대로 서점에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관련 책도 사서 틈틈히 보고 있었어요. 요즘 너무 바빠서 사실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오러 일을 그만둔 뒤에 교수 일을 제대로 준비해보려 해요. 전직 오러에 저는 해리 포터니까, 맥고나걸 교수님도 제게 바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직을 주실 것 같은데, 세베루스 생각은 어때요?”

언제나처럼 단단하고 힘 있게 말을 하는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옛 제자들 앞에서, 해리에게 가슴이 떨리고 있다는 걸 티낼 수 없어서 입술만 잘근거렸다. 목소리가 떨릴까봐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헤르미온느는 그 둘을 지그시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린다.”

옆에서 네빌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상도 못해 본 그림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어울리지? 그러나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네빌은 끄덕이던 고개를 털거덕거리며 기름칠 덜 된 갑옷병정처럼 딱딱하게 굳혔다.

스네이프는 덤블도어와 맥고나걸에 이어 또 다시 해리와 자신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은 것에, 약간 얼떨떨해졌고,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우리 둘의 어떤 부분이, 남들에게 어디가 그렇게 보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물을 수도 없었다. 이미 해리에게 두근거리고 있단 걸 티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네이프는 벅찼다.

“졸업하기 아쉽다. 스네이프 교수님이랑 해리, 네빌 교수의 수업 궁금한데.”

헤르미온느는 진심으로 아쉬워 보였다. 그러자 해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 같은 인재가 계속 호그와트에 있어서야 되겠어? 헤르미온느. 마법부가 너 기다리느라 눈알이 빠지고 있는데.”

해리의 말에 헤르미온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빌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그와트 동기들 중에 제일 잘 나갈 사람은 헤르미온느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세베루스 스네이프마저도. 스네이프조차 마법부 장관이 된 그녀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해리, 결혼식은 준비중이야?”

스네이프와 네빌이 동시에 입에 음식을 넣은 채 쿨럭거렸다. 해리가 냅킨을 들어 스네이프의 입을 가려주었다. 네빌은 씁쓸하게 자신이 냅킨을 찾아 입을 닦았다. 어쨌든 헤르미온느의 발언은 너무 놀라운 것이었다.

“두 사람, 결혼해…?”
“그렇대. 해리가 교수님께 청혼했다고 들었어.”
“와…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너무 놀라운 소식들이 가득하네….”

네빌은 슬쩍 스네이프를 쳐다 보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적응은 안 되는데, 스네이프가 해리를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세베루스는 식에는 관심이 없대. 그래서 나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 헤르미온느.”
“음… 그래? 하지만 교수님, 해리는 이 마법세계를 구한 영웅이예요. 그만큼 보는 눈이 많고, 해리에 대해 저들끼리 말을 지어내는 것도 많아요. 교수님도 과거 이력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이잖아요. 아무런 증명 없이 해리와 계속 함께 있으려면 방해 받을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주변에서 둘을 물어뜯으려고 들 거란 거죠.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해요. 그게 허례허식이어도요.”

헤르미온느의 통찰은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았다. 세련되고 뾰족한 날이 빛에 반짝이는 듯 했다. 스네이프는 잠시 헤르미온느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대로 해리는 마법세계의 모든 관심이 주목된 자였다. 그런 해리를 이성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노리는 자들이 태반인 이 세계에서, 전 데스 이터인 자신이 어떤 퍼포먼스도 없이 가지려드는 건 그들의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해리의 개인사가 신문 1면을 가볍게 차지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되는 사실이었다. 해리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단순한 표정이 아마도 헤르미온느가 엄청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 그런데…… 내 결혼식에 꼭 와줘야하는 사람들과 지금, 상당히 불편해졌어…….”

해리는 위즐리 가족을 떠올렸다. 헤르미온느의 안색도 해리처럼 어두워졌다. 하필이면, 해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영원히 끊어질 인연은 아니다. 그러니 그건 심려치 않아도 돼, 포터.”

스네이프의 말에 세 명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스네이프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할 말은 다 해야했기에 입은 다물지 않았다.

“론 위즐리의 태도를 봤잖아. 날…… 택하면 위즐리를 포기해야 할 수 있다 말했었지만, 그들은 결국 널 져버리진 않을 것 같으니.”

해리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끄덕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위즐리들과의 인연이 제가 스네이프를 사랑하는 걸로 끊긴다면, 해리야말로 그 얄팍한 연결에 넌더리가 났을 것이었다.

“결혼식은… 하객 수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대중에게 행사를 했다는 사실만 드러내면 되는 거지. 그러니 위즐리의 용서를 받은 날에 당장 열어도 상관 없어.”
“아니예요, 스네이프 교수님! 결혼식이 연인간에 얼마나 뜻 깊은 날인데 그걸 그렇게 속전속결로 해치워요?”

헤르미온느가 미간을 찌푸리며 성질을 부렸다. 식의 당사자보다 더 화를 내는 헤르미온느에, 네빌은 여자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도 네빌과 같은 생각을 했지만, 듣고 있던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말에 동의 했다. 저와 스네이프의 결혼을 만천하에 알리는 행사인데, 제대로 하고 싶었다.

“우선 내가 위즐리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 뒤, 식의 날짜를 잡을게, 헤르미온느. 식의 장소는…… 음, 우리집은 아파트고 세베루스의 집은 버려진 머글 동네인데 결혼식을 열 장소로는 마땅치 않아.”
“호그와트에서 열어도 되지 않을까? 아마 그 시기가 여름방학 중에는 가능하지 싶은데. 학생들이 없을 때 해야 하겠지. 스네이프 교수님 생각은요?”
“……그렇게 하던가.”

제 결혼식인데 헤르미온느가 더 열과 성을 다해 논의중이었다. 스네이프는 디저트를 물어오는 종업원에게 각자 아이스크림을 내달라고 말했다. 네빌은 딸기맛을 요청 했고, 스네이프가 자신과 똑같은 딸기맛을 선택한 것에 놀랐다. 달콤한 건 입에도 안 대게 생기셨는데. 해리는 스네이프에게 제 몫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반 스쿱 더 떠주며 많이 먹으라고 다정히 속삭였다. 그에 스네이프는 창피해 할 줄 알았더니, 또 그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떤 의미론 염병을 떠는 커플인지도. 헤르미온느가 왜 기분전환이랍시며 그들을 보러 신나게 나왔는지 네빌도 알 듯한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호그스미드의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오늘 잘 먹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시험을 다 마칠 때까지는 이제 못 만날 것이라 말했다. 네빌 역시 덕분에 좋은 저녁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다음에 또 보자고 웃으며 제 친구들을 바라봤다. 스네이프는 한참 조용히 해리의 뒤편에 서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를 지켜 보다, 네빌의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네빌은 의아한 눈으로 스네이프를 올려다 보았다. 스네이프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롱바텀.”
“네, 네! 스네이프 교수님….”
“네가 내기니를 죽였다는 걸 포터에게 들었다. 고드릭의 칼을 썼다고.”
“아…! 아아, 네……. 우연한 일이었지만… 네, 제가 내기니를 죽였어요.”

네빌은 내기니의 독으로 죽었다고 알려졌었던, 그의 악몽 같은 옛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었지만, 수업시간에 봤던 그 차가운 눈초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네빌은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스네이프가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그가 지금 제게 느끼는 감정이 전해져서 민망스럽고 쑥스러웠다.

“나 대신 복수해줘서 고맙군.”

스네이프는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빌은 미소를 짓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멍하니 넋을 놓았다. 그래서 스네이프가 또 다시 내민 손도 금방 인식하지 못했다. 해리가 웃으며 네빌, 하고 재촉하는 소리에 뒤늦게 네빌은 스네이프의 손을 보고 허겁지겁 악수를 했다. 네빌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저를 떠나가는 게 느껴졌다.

“저야말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꿈틀였다. 저는 여전히 네빌에 대한 인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고, 그를 쥐잡듯이 잡았던 과거만 기억나기 때문이었다. 네빌은 악수한 손을 놓으며 한결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보였다.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어요. 교수님이 살았으니 이런 순간도 온 거니까…….”
“……그래. 학생일 적 너의 형편없는 실력에 대해 지나치게 괴롭힌 것에 대해선 사과 하마.”
“세베루스, 그거 사과 맞아요?”

해리가 어이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네빌은 이미 웃음을 터뜨렸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정말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사과였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스네이프 교수님. 식 날짜 정해지면 헤르메스 보내주세요. 꼭 갈게요. 해리, 잘 들어가!”

네빌의 인사를 끝으로, 헤르미온느와 네빌이 호그와트 정문 앞으로 순간이동 했다. 해리는 순간이동을 위해 스네이프에게 팔짱을 끼면서, 오늘 잘했다고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피식 웃고는 해리를 따라 해리와 자신의 집으로 이동했다.


“이거야?”
“네, 이제 눈치 안 보고 세베루스 옆에서 공부 해도 되겠다.”

플러리쉬 앤 블러트에서 사온 어둠의 마법 방어술 관련 서적들을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며 해리가 웃었다. 볼 시간도 없었을 텐데, 책의 몇 페이지가 접혀서 고정 되어 있었다. 스네이프는 손을 뻗어 거칠한 종이 질을 더듬었다.

천성으로 따지자면, 저보다는 해리가 훨씬 누굴 가르치는 것에 적성이 맞았다. 스네이프는 성인이 되고 가진 직업이 교수 뿐이었으니, 이 길 외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저와 맞는지 안 맞는지는 고려조차 할 사항이 아니었다. 덤블도어는 스네이프가 교수로 있으면서 호그와트에 입학 할 해리를 지켜 보길 원했다. 생각해보면 해리만을 기다린 세월이 10년, 해리를 알고 지낸 세월은 8년이었다. 그 중에 단 1년만을 해리를 사랑했다니. 스네이프는 그 시간이 흐를 동안 제 반려를 알아보지 못한 게 우스웠다. 물론, 해리 역시 그렇긴 하지만.

“오러 일은 언제까지 하게?”

스네이프는 책을 덮고, 몸을 돌려 팔짱을 꼈다. 해리는 책상에 한 손을 얹고 부드럽게 시선을 맞췄다.

“이번 달까지만요.”
“그럼 개학까지 3개월을 쉬겠군.”
“여행이라도 갈까요?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딱히.”
“전 지금 하고 싶은 거 있는데.”

해리가 배시시 웃었다. 스네이프는 눈썹 끝을 올렸다가, 고개를 숙여 해리와 입을 맞췄다. 해리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고개를 꺾었다. 다정한 큰 손이 스네이프의 뺨을 감쌌다. 해리는 살짝 두어 번 쪽, 쪽 입술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공부한다며.”
“꼭 선생님처럼 말 하시네.”
“난 네 선생이 맞다만, 포터.”
“저도 될 건데, 선생님. 포터 교수, 해 봐요.”

큭큭 웃음을 참으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허리에 팔을 얹었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해리를 보았다. 공부를 시킬지, 이대로 장단에 맞춰줄지 잠시 고민을 했다. 어차피 몇 달 후면 질리도록 들을 소리를 벌써부터 듣고 질리고 싶다는 데 도와줄까.

“포터 교수님, 무례하게 어디에 손을 얹고 계신 거죠?”

해리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가, 이내 실수였던 척 허리에서 손을 떼냈다.

“넘어질 뻔 해서요. 실례했어요, 스네이프 교수님.”
“그러십니까. 그럼 하시던 공부 계속 하시길, 포터 교수님.”
“엇, 잠깐 잠깐. 스네이프 교수님, 잠시만요.”

문고리를 잡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다급히 손목을 잡아왔다. 스네이프가 또 왜, 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해리는 왠지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 같은 눈이었다.

“저…… 그게, 있잖아요…. 세베루스, 저 꼴렸는데 계속 하면 안돼요?”
“하……?”
“이왕이면 제가 교수고, 세브가 학생인 걸로….”

아, 잊을 리 있을까. 해리 포터는 섹스만 하면 변태고 짐승이었다는 걸. 스네이프는 한숨을 쉬며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해리의 손이 제 손목에서 아쉬운듯 떨어졌다. 어린애 같은 게 지금 누군데 절 보고 학생인 척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제대로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나?”
“네?”
“포터, 네 교복 아직도 갖고 있나?”

해리가 입을 떡 벌렸다. 와, 헐, 대박. 진짜요?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휘둘러 아씨오로 교복을 소환했다. 그리핀도르의 붉고 노란 넥타이가 셔츠 깃 밑에서 팔랑이며 가라앉았다. 그리핀도르답게 험하게 입어서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다. 학생일 때의 해리도 저보다는 체격이 좋았으니 얼추 몸에 맞을 듯 했다. 스네이프는 변환마법을 걸어 넥타이를 초록색과 은색으로 바꾸었다. 해리는 그 때까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오히려, 저는 늘 해리가 해달라는 걸 다 해줬는데도, 새삼 해리가 이런 반응인 게 웃겼다.

“갈아 입을 건데, 나가지. 네가 변태 교수인 건 알지만.”
“아, 그, 네에….”

왠지 얼굴이 더웠다. 입고 나갔던 까만셔츠의 단추를 푸는 스네이프를 보다가 해리가 붉어진 얼굴로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제가 시켜놓고, 본격적인 스네이프를 보며 심장이 떨리다니. 과연 몇 년을 이중 첩자로 볼드모트 앞에서 연기해온 사람이라 그런가, 저 같은 초심자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상대였다. 해리는 제가 입고 있는 셔츠와 청바지를 내려다 보았다. 스네이프가 이렇게 본격적인데, 저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해리는 공식 행사에 갈 때 입는 까만 정장을 입었다. 괜스레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넘겼다가, 다시 내렸다. 좀 민망했다. 매무새를 정리하고, 해리는 방 문을 두드렸다. 스네이프는 지금 제가 학교 다닐 때 입던 교복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똑, 똑.

“세브, 들어갈게?”
“…네, 교수님.”

해리는 입을 틀어 막고 잠시 소리없이 발을 굴렀다. 어떡하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꼴을 보였다간 스네이프가 김이 새서 하기 싫다고 할 것 같았다. 해리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 너머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스네이프가 보였다.

해리는 한 번도 다 채운 적 없던 셔츠의 단추가 목 끝까지 단정히 여며져 있었다. 초록색과 은색의 슬리데린 넥타이는 스네이프의 흑발에 무척이나 어울렸다. 풀어내린 머리카락 한 쪽을 귀 뒤로 넘기며, 어둠의 마법 방어술 서적을 뒤적이는 하얗고 긴 손가락에 해리의 시선이 머물렀다. 펜시브에서나 본 슬리데린 교복을 입은 스네이프가 눈 앞에 있었다.

해리는 성큼성큼 걸어서 스네이프의 앞으로 갔다. 해리의 정장 차림에 스네이프 역시 놀랐다. 저렇게 음욕을 자극하게 입는 교수가 어딨지. 딱 달라붙는 양복의 핏에 벗지도 않았는데 해리의 몸 선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시작도 전인데 흥분이 되는 게 느껴졌다. 해리의 녹색 눈을 올려다 보니, 해리 역시 그런 듯 했다.

“세베루스, 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감실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 네가 아무리 모범생이어도 학교 교칙이 있잖아.”

교칙을 밥 먹듯이 무시했던 포터 교수가 할 말은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피식 웃으며 해리를 올려다 보았다. 턱을 괸 채 해리를 바라 보는 까만 눈이 맑은 밤처럼 깊었다. 해리는 멍하니 스네이프의 눈에 시선을 빼앗겼다.

“포터 교수님은 제가 이렇게 찾아오지 않으면… 저를 봐주시지 않잖아요.”

스네이프가 해리의 손등으로 손가락을 뻗어 쓸어 내렸다. 해리는 입으로 심장이 터져나오려 했다. 포터 교수를 유혹하는 슬리데린 학생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니.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해리의 셔츠 소매 안 쪽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손목을 쓸어 올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흰 거미처럼 움직였다. 해리는 미간으로 힘줄이 서는 걸 느꼈다. 해리는 저를 희롱하는 스네이프의 손목을 꽉 잡고, 눈을 맞췄다.

“그만, 세베루스. 교수를 이런 식으로 놀리면 징계 감이야.”
“놀리는 거 아니예요. 포터 교수님이 주시는 벌이라면 뭐든 달게 받을게요.”

스네이프의 입술이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거의 키스할 듯 얼굴을 기울인 채, 해리는 스네이프를 애태우듯 멈췄다.

“교수님…….”

스네이프의 눈꼬리가 축 쳐졌다. 실망하는 얼굴에 해리는 책상 위의 주먹을 꽉 쥐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럽게 구는 걸까? 저한테만 스네이프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들뜨고 기쁘고, 만족스러웠다. 해리는 슬리데린의 넥타이 끝을 슬며시 쥐고 제 얼굴 가까이로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가 입을 벌리고, 해리가 혀를 파고 들었다. 음, 으응, 겉보기에만 얌전한 모범생의 신음이 잇새로 샜다.

해리는 키스하면서 책상을 비켜 걸어, 의자에 앉은 스네이프의 앞 쪽으로 다가왔다. 스네이프는 제 앞에 선 해리의 바지 앞섶에 손바닥을 얹었다. 손바닥으로 두툼한 해리의 음낭이 느껴졌다. 슥, 슥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해리가 발기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불순한 학생에게는 그에 맞는 벌을 줘야겠지, 세베루스?”

말 끝에 약간의 더운 숨이 흘렀다. 흥분한 성기가 옷 안에서 커져가며 천을 팽팽히 당겼다.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턱을 쥐고 고개를 위로 들렸다. 금욕적인 교복 차림에 색정적인 얼굴이 도전적으로 해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여전히 스네이프의 손은 해리의 다리 사이를 쓰다듬었다. 해리는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너무 야하잖아, 당신.

“…빨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무릎 꿇은 그가 해리의 바지 벨트를 풀었다. 그와중에도 스네이프는 해리와 계속 시선을 맞추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해리는 당장에라도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를 꿰뚫고 거칠게 박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스네이프는 스네이프대로, 지금 상황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정장을 입은 포터 교수라는 설정에다, 실제로 보이는 해리의 모습도 너무 멋있어서 손이 떨렸다. 도저히 해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계속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손이 해리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드로즈를 내렸다. 속옷에서 퉁긴, 발기 된 성기가 입술을 때렸다. 벌이라더니 진짜로 폭력적이네. 스네이프는 입술을 침으로 척척히 적시고, 성기의 끝부터 빨아들였다. 뒤통수에 해리의 오른손이 따라붙었다.

“쯔읍… 츱, 츠읏….”
“하아…! …윽.”

해리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가늘어진 눈이 흐릿하게 스네이프를 좇았다. 해리는 양 손으로 스네이프의 옆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걷어내며 고정해 잡았다. 스네이프는 점점 빠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하아, 아, 세베루스……. 해리의 신음에 스네이프는 제 허벅지를 붙이며 꿈지럭거렸다. 해리의 것을 빨면서 발기한 게 부끄러웠다.

“읍, 컥….”

스네이프의 벌어진 입 밖으로 불투명한 액이 뭉근하게 흘러 나왔다. 스네이프가 입을 벌린 채 해리를 올려다 보았다. 달뜬 숨을 흘리면서도, 해리는 스네이프가 제 허벅지를 붙여 앉은 채 허리를 꿈틀대는 걸 놓치지 않았다. 해리가 발을 뻗었다.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발이 앞섶을 꽉 눌렀다. 헉, 놀란 스네이프는 숨을 들이키다 해리의 정액을 꿀꺽 삼키기까지 했다.

“벌을 받는 건데 흥분하면 어떡해? 응?세베루스. 제대로 가르쳐줘야 하는 건가?”
“윽… 네에……. 포터 교수님…. 무지한 저를, 하아, 가르쳐 주세요……. 응, 흐윽.”

앞섶을 누르던 발이, 천 위로 발기한 기둥을 쓸어올리자 스네이프가 파드득 떨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멱살을 쥐고 바닥에서 일으켰다. 거친 기세에 스네이프는 살짝 목이 졸렸으나, 오히려 그래서 흥분이 되었다.

해리는 그대로 벽에 스네이프를 돌려 세우고 오른손으로 벽을 짚었다. 바지 벗어, 스네이프의 뒤에 바짝 붙어 선 해리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귓 속으로 침투한 낮은 음성에 움찔 떨며 교복바지를 벗었다. 발목으로 바지와 속옷이 떨어져 나갔다. 다리 벌려, 세베루스. 목덜미에서 해리의 숨결이 스쳤다. 스네이프는 배꼽에 닿을 듯 팽팽히 발기했다.

해리의 손가락이 스네이프의 회음부를 은밀하게 쓰다듬었다. 흐으읏…. 벽을 짚은 하얀 두 주먹이 옹송그려졌다. 달뜬 숨이 벽 위에 흩어졌다.

“세베루스, 기숙사에서는 이런 음란한 몸을 감추고 어떻게 지내고 있지? 사감실에서, 내 방에서 같이 지낼까?”
“아, 흣…. 좋, 아요, 포터 교수님…. 계속 같이 지내면서, 제 몸에, 헉, 벌을 내려주세요, 흐으응……!”

성기에 침을 뱉어 윤활한 해리가 급하게 스네이프의 뒤에 삽입했다. 스네이프의 배를 가로지른 왼손이 그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버거운 삽입에 스네이프는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허리를 쭉 빼 엉덩이를 내밀었다. 밑단이 말려 올라간 교복 셔츠 밑으로 잘록한 허리가 야살스러웠다.

“그래, 세브. 밤새 훈육해줄게. 착한 학생이 될 때까지.”

금요일 밤은 길었다. 해리는 제가 만족할 만큼 스네이프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스네이프 역시 바라는 바였기에, '밤'과 '교육'은 끝나지 않았다.










20편이라니~!
연중 했던 구원자를 20편까지 쓰다니...ㅠ(감격쓰)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드는 내용으로만 가득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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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버로우에서 제일 먼저 예언자일보를 집은 건 퍼시였다. 막 일어나 내려오던 조지는 신문을 쥔 채 굳어 서있는 퍼시의 등을 퍽 내리쳤다. 잘 잤어 퍼시? 웃으면서 형을 보던 조지가 신문에 슬쩍 시선을 뒀다. 순간 숨 참는 소릴 낸 조지가 퍼시의 손에서 신문을 가져갔다. 기사를 빠르게 훑은 조지가 홱 고개를 돌려 퍼시를 살폈다. 퍼시의 얼 빠진 얼굴엔 황당함과 당황이 혼재했다. 조지는 어제 해리에게 직접적으로 언질을 듣긴 했어서 충격은 덜했지만, 가족들이 이 기사를 보고 보일 연쇄적인 반응들에 걱정이 됐다. 특히나 지금 학교에 있는 지니나 엄마 몰리가.

론 위즐리, 해리 포터─ 이 생각 없는 것들이 진짜! 남들 다 듣는 거리에서 뭘 한 거야? 조지 위즐리가 남을 보고 생각 없다 할 정도면 말 다 한거지. 이마를 벅벅 긁으며 조지는 뒤쪽 계단에서 끼익대는 소릴 들었다.

“야!! 론!”

론의 머리에 신문을 맞추며 조지가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어제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론이 욕설을 하며 짜증을 냈다. 시끄럽고 신문이나 쳐 봐, 임마! 조지의 호통에 론이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에서 떨어진 신문을 주웠다. 1면을 보는 론의 눈이 뜨악해 커졌다. 반사적으로 또 욕지거리가 나갔다.

“설명 좀 해 봐. 이 기사가 진짜냐 지금……?”

그 동안 말을 잃고 석상처럼 서 있던 퍼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넋이 나간 채 의자에 앉은 퍼시는 마른 세수를 두어 번 했다. 론은 신문을 식탁에 패대기 치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으아아, 소릴 질렀다. 망할. 빌어먹을. 엿 같은 해리 포터! 염병 할 스네이프!

“론 위즐리! 아침부터 소리는 지르고 뭐 하는 거니!”

닭장에서 알들을 가져온 몰리였다. 세 형제들은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적이 찾아온 부엌에 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나이들을 먹고 사고를 쳤나 싶어 여섯 아들을 키워낸 몰리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어, 엄마. 오늘 아침은 뭐예요?”

조지가 정적을 깨고 미소를 흉내 냈다. 등 뒤로 손짓 해서 신문을 치우라는 신호를 보내자 론과 퍼시가 눈을 굴리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가까이 있던 론이 제 잠옷 셔츠 안으로 신문을 넣으려는 찰나, 그런 얕은 수는 금방 파악해내는 몰리에게 들켜버렸다.

“뭔데 숨기고 그러냐? 이리 내놔.”
“엄마, 제발, 안 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
“퍼시! 너까지 왜 이러니? 당장 가져 와, 론!”

세 형제들의 눈이 도르륵 소릴 낼 듯 굴러갔다. 아무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자, 답답해진 몰리가 신문을 들고 있는 론에게 다가갔다. 우물쭈물거리며 신문을 상납한 론이 한숨을 쉬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신문을 펼쳐 든 몰리가 1면을 확인하고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조지는 탄식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몰리는 현기증을 느끼며 간신히 의자에 주저 앉았다. 손에서 놓친 달걀이 든 바구니는 퍼시가 주문을 날려 다행히 바닥에 안착했다.

“지니랑 해리가…….”

몰리는 마치 디멘터에 영혼이 빨린 모습이었다. 조지가 그녀 옆에 앉아 어깨를 쓸어 내렸다. 론은 머쓱하게 눈치를 보며 기사를 다시 제대로 읽었다.

“다들 모여 있구나!”

아서가 웃으며 들어 오다가 이상한 분위기에 멈칫했다. 론은 말없이 오늘자 예언자일보를 아서에게 건넸다. 헛기침을 하는 아서를 끝으로, 버로우의 아침이 엉망진창으로 시작 됐다.


해리는 모든 마법사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젠장, 전 여자친구랑 헤어진 것도 새 연인도 다 기사로 나와야 하는 유명인의 삶이라니. 머글계에서 평화롭게 살던 게 그리웠다. 어차피 이런 연애 스캔들은 이번이 끝이긴 할 거다. 스네이프가 마지막 종착점인 건 확실했다.

아침부터 해리의 집 현관 밖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시끄러워 죽겠군. 스네이프는 모두에게 기억 조작을 하고 돌려 보냈다. 해리는 죽을상을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쏟아질 질문과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볼 눈초리들이 벌써부터 버거웠다. 특히나 론을 마주할 일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시간을 돌려서 어젯밤 스네이프와의 오붓했던 순간으로 가고 싶었다.

“포터. 잘 다녀 와.”

벽난로 앞에서 벌써 지쳐보이는 해리에 스네이프가 살짝 안아주었다. 해리에게 모든 사회적 시선을 감당케하는 게 조금 미안하고 안쓰럽기는 했다. 저는 집에만 있으면 되지만, 해리는 밖에서 어떤 말과 시선을 당하고 들어올지 몰랐다. 이마에 번개무늬 흉터가 생겨난 때부터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로 살아낸 해리였다. 언제나 해리는 시선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해리가 보금자리로 찾은 사람이 스네이프였다. 그러니 스네이프가 해리를 보듬고 다독여주는 것이 맞았다.

“다녀올게요.”
“그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고 손을 흔들었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스네이프의 허리를 끌어 안고 입을 맞췄다 떨어졌다. 스네이프는 벽난로 너머로 사라지는 해리의 등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마법부로 들어서자 마자 시선은 시작됐다. 해리는 낯선이들의 시선은 익숙했지만 그게 편해졌다는 건 아니었다. 론을 비롯한 위즐리 가족의 반응도 걱정이었다. 기사로 이별 소식이 터지다니, 지니에게 큰 민폐고 실례였다. 호그와트의 학생들 틈에서 얼마나 힘겨울까. 지니가 비밀의 방을 열었을 때가 생각나서 해리는 마음이 쓰였다. 호그와트의 현재 재학생들은 심지어 스네이프에게 직접적으로 교육 받았던 학생들이었다. 그 시선과 쑥덕임들을 감당해야 할 그녀에게, 그녀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해리는 심장에 돌이 들어찬 듯 무거웠다.

“해리.”

복도에 서있던 제인과 동료 오러들 몇이 해리를 향해 손짓 했다. 해리가 다가가자 쉿, 하며 제인이 부서 안을 가리켰다. 힐끗 들여다 본 부서 안에는 론이 딱딱한 얼굴로 서류를 쾅쾅 소리를 내며 정리하는 게 보였다.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는 론의 모습은 정리라기보다 책상을 학대하는 걸로 보였다.

“건들지 않는 게 좋겠어.”
“저도 론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죽은듯이 있으려고요….”
“좋은 생각이다, 해리. 부서 내에서 주문 날리며 싸웠다간 끽, 알지?”

제인이 목에 지팡이 긋는 시늉을 했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었다. 동료들이 해리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해리, 스네이프랑 진짜야? 둘이 사귄다는 거? 물어오는 질문들에 새삼 그들도 스네이프의 제자였다는 게 느껴졌다.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 해리를 향했다. 그들도 스네이프가 해리의 엄마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조금 민망했다. 다들 뒤에서 어떻게 스네이프에 대해 쑥덕거릴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썼다간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네, 사겨요. 사실이에요.”
“세상에, 해리 네가 왜 스네이프랑?”
“왜요? 제가 세베루스랑 사겨선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짙은 눈썹 사이 미간을 대번에 찡그린 해리가 그를 노려 보았다. 안 그래도 부서 내의 오러 하나가 있는대로 분노하고 있는 중에 또 한 명의 심기까지 거슬릴 필요는 없었던 오러들은 말실수를 한 오러를 바로 타박 했다. 그렇지만 해리는 다들 그 오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스네이프가 성질이 좀 ─많이, 엄청, 매우, 악랄할 정도로─ 더럽긴 하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인데.

“저한테는 엄청 잘해주니까 신경쓰지 마시죠.”
“스네이프가 잘해준다고……?”

오러들은 대부분 그리핀도르였기에 쉽사리 스네이프가 잘해주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 중에 슬리데린이 있었다면 납득했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해리는 친절한 설명을 생각지도 않았다. 직장 동료가 해리와 스네이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톰 리들이 그리핀도르 꼴찌를 할 확률과 같았다.

해리가 부서로 들어섰다. 론은 문 쪽을 돌아보다가 해리를 발견하고 인상을 더 사납게 굳혔다. 론의 손에 들린 증거물품 팩이 거칠게 서랍으로 들어갔다. 쾅, 쾅 요란한 론의 자리를 지나쳐 해리가 제 자리에 앉았다. 상사들이 들어올 때까지 론의 버라이어티 사운드 쇼를 듣고 있어야 할까. 해리는 어쨌든 말을 아끼는 게 답인 것 같았다.

쾅, 쿠당탕탕, 퍽, 퍼덕, 쿠당. 론은 책상을 아주 뒤집어 엎는 듯이 보였다. 주변에 앉아있던 오러들은 이미 마법으로 방음벽을 세우고 업무중이었다. 해리는 한숨을 한 번 쉬고, 탕비실에서 시원한 호박주스를 따라서 론의 책상에 두었다. 론은 해리를 사납게 째려 보았지만 가져다 놓은 호박주스를 깨진 않았다. 하지만 보란듯이 마시지도 않았다. 해리는 어쨌든 현장 콜이 올 때까지 지난 업무일지를 쓰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른 부서에서 날라온 긴급 쪽지를 확인하는 등 평소와 같이 일을 했다.


“안녕하세요, 애버포스 씨.”
“그래, 너냐.”

실로 오랜만에 호그스 헤드였다. 일전의 타임터너 일을 끝내고 한 잔 하러 온다한 게 겨우 오늘이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휴와 함께였다. 타임터너 때 같이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는 휴였지만, 해리는 스네이프나 론의 일을 묻고 싶어하는 그의 꿍꿍이가 느껴졌다. 마침 해리는 휴가 저번에 스네이프에게 릴리를 언급한 것에 대해 주먹맛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애석하기도 했다.

버터맥주 두 잔이 둘의 앞에 놓였다. 해리와 휴는 이 곳, 호그스 헤드에서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감춘 채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이 곳은 오히려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는 마법사들이 잘 없었다. 차가운 버터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해리는 휴의 회갈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호기심이 드글드글한 아저씨의 눈이었다. (스네이프보다 그가 3살 어리다는 사실은 잊기로 했다.)

“넌 남들이 너한테 지대한 관심이 있단 걸 잊는 것 같다, 헤럴드. 그 거리 한복판에서 롭슨과 이별 얘기를 떠들다니.”
“그 땐 롭슨을 붙잡고 대화를 나눠야한단 생각밖에 안들어서요.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매 순간 절 쳐다보는 사람이 있어봐요. 반대로 의식을 안 하게 된다니까요.”
“나는 상상도 안돼. 가는 곳마다 날 알아 보고 쳐다 보고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니.”

버터맥주를 한 입 넘기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휴가 말했다. 해리는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즘 들어 너무 바쁘고 저와 주변에 대한 관심도 더 늘어서 머글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곤해 죽겠어요.”
“스네─ 스칼렛이랑 숨어 지내는 게 오히려 딱 좋았나?”
“물론이죠. 그냥… 행복하기만 했어요.”

해리는 백일몽 같았던 나날들을 회상했다. 귀여운 머글 어린이들과 좋은 직장동료들, 길거리를 걸어도 아무도 쳐다 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때의 세상엔 오직 해리와 스네이프 단 둘만 떨어져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둘만 있어도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지금은 스네이프와의 관계를 지인들에게 알리러 다녀야 했고, 지니와의 이별 기사와 스네이프와의 만남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어느 쪽이 좋았냐 하면 당연히…….

휴는 흐음,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해리와 스네이프 선배님은 정말 자기들끼리 오지게 즐겁게 지냈나 보군. 휴는 1년 전 과거로 돌아가기 전의 해리를 기억했다. 해리는 자신이 마법세계의 구원자인 것에 강박이 있었다.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고, 이미 자신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놓고도 무슨 일에든 나서려고 굴었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론은 그런 해리를 가리켜 영웅 콤플렉스라고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그런데 스네이프를 만난 이후 해리는 마법세계 따윈 뒷전으로 두고 둘만의 세상이 그립다느니 하는 소릴 하고 있었다. 그 해리를 이렇게나 바꿔놓다니.

“스칼렛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 무뚝뚝하고 예민하고 까칠한 양반의 어디가. 얼굴은 뭐, 전보다 보기 좋아지긴 했지만, 해리 포터에게 추파를 던지는 미녀 마법사들이 마법세계에 줄을 이었다. 게다가 이제 해리가 남자 애인이 있는 걸 알았으니, 미남 마법사들도 대기표를 뽑고 제 차례를 염원할 것이다.

해리는 질문에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스칼렛이 친절하다면 믿어지세요?”

휴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표정으로 버터맥주를 쓰게 삼켰다.

“아니. 농담이지, 헤럴드?”
“스칼렛은 되게 엄청 많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착하고, 친절하고, 저밖에 모르는 푼수랍니다.”

해리가 설명하는 제 연인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와 대척점에 있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휴는 이 살아있는 콩깍지 수인에게 혀를 내둘렀다. 희귀 마법생물로 신비한 마법생물 단속반에 제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콩깍지가 버터맥주도 마시고 마법도 부리고 말도 하네.

“어마어마한 연애질을 하고 있구나, 너네.”
“물론이죠. 매일 밤 뜨겁고요.”
“와우, 스칼렛이 이 말을 들었다면 무슨 주문이 날아왔을까.”

휴는 제 앞으로 지팡이를 겨누던 무시무시한 얼굴을 기억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마법적 능력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굉장히 뛰어났다.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가 가장 아낀 부하이자 덤블도어의 가장 유용한 체스 말인데 어련할까. 그런 걸 생각하면, 자신이 릴리를 언급하며 그를 도발해놓고 아직까지 숨 쉬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롭슨하고는 제대로 풀어야 할 텐데 말이다, 헤럴드.”

휴가 론을 화제에 올리자, 웃고 있던 해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리가 입술을 잠시 깨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롭슨은 절 잘 알아서 그래요. 제가 또 저 같은 짓을 벌여서 진저리가 난 거죠….”
“어쩔 수 없지. 나도 왕년엔 삼각관계를 넘어 오각의 주인공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거란다, 누군가를 찬다는 것도!”
“버터맥주에 알콜 첨가 돼 있었어요?”

해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휴는 윙크를 했다.

“롭슨의 가족들 모두 너를 아끼는 걸 안다, 헤럴드. 롭슨도 물론 그렇고. 잘 될 거야.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했다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주변인들이 거기에 대고 오래 뭐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배신감을 느끼는 것까진 이해해야지.”
“네, 저도 알아요. 제가 멋대로 과거로 돌아갔다가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거니까. 그래도─ 전 제 선택을 후회 안 해요. 그가 저를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기꺼이 죄인이 돼버리죠, 뭐. 스칼렛의 옆에 계속 있으려면.”

해리가 일어섰다. 소매 안에서 빠르게 지팡이가 꺼내지고, 동작그만 주문이 날아갔다. 호그스 헤드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휴는 먼지를 일으키며 돌이 되어 쓰러진 마법사의 후드를 훅 벗겼다. 애버포스는 걸레로 선반을 닦다가 벽에 붙어 있는 범죄자 전단을 보았다. 그 전단에 있던 마법사 얼굴 하나와 쓰러진 저 마법사의 얼굴이 똑같았다. 해리가 또 한 건 했군.


“해리, 잘했다. 요즘 활약이 대단해. 신문에도 계속 얼굴 도장 찍고.”
“역시 해리 포터야.”

론은 뚱하게 턱을 괸 채, 해리 주변으로 모인 오러 무리를 바라봤다. 언제나 익숙한 그림이었다. 오러가 돼서도 해리가 론보다 범죄자를 더 잘 잡고, 언제나 주변 관심 속에 있고, 이런 것들. 뛰어난 재능 앞에 그냥 남들보다 나은 재능 정도는 비교 대상도 될 수 없다. 론은 사춘기에 이미 충분히 해리와 저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꼈다. 성인이 된 지금은 크게 상처 받지 않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낄 질투심이 생겼다. 해리가 론 쪽을 돌아봤다. 시선이 마주친 론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해리가 론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야, 죽은듯이 눈치 보고 저를 피해다닐 생각인 줄 알았더니. 론은 입꼬리를 비틀며 해리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론.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침에 그런 기사가 나온 놈 주제에 뻔뻔도 했다. 나는 지니의 오빠라고, 망할.

론이 고개를 돌려 해리의 녹색눈을 노려 봤다. 해리는 입술을 다문 채 조심스러운 눈빛이었다. 론은 이대로 해리를 무시해버리자는 충동과 싸웠다. 해리가 제 눈치를 살피는 것에 묘한 쾌감도 있던 게 사실이었다. 그 대단한 해리 포터가, 별 볼 일 없는 친구 론 위즐리의 눈치는 대단히 살핀다는 같잖은 우월감일 터다.

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결국 론은 끈질긴 해리의 눈초리에 졌다. 턱짓으로 론이 바깥을 가리키자 비어있는 휴게실까지 해리가 따라왔다. 천장에는 분홍색과 연보라색, 하얀색의 종이 비행기들이 할 일 없이 떠돌아다녔다.

“미안해.”
“…….”
“지니랑, 너랑, 몰리 아줌마랑 아서 아저씨, 형들에게 미안해. 많이 충격 받으셨을 거야. 내게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그 은혜를 이렇게 갚아서.”

론은 뭐라고 입을 열어야할 지 고민하다, 그냥 입을 닫았다. 진짜 미안하면 무릎 꿇고 빌라고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 대상이 지니인지 저인지 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론은 붉은머리를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종이비행기들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 저녁에…… 버로우에 들려도 될까?”
“맙소사, 멀린. 해리 너 대단하다.”

해리는 실로 오랜만에 론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어제 이후로 입 한 번 열지 않던 론이었다.

“기사 보고 엄마가 엄청 충격 받으셨어. 지니랑 네가 결혼할 거라고 우리 가족은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응. 맞아, 그러시겠지. 정말 죄송해….”
“당분간 충격이 크실 거니 찾아오더라도 나중에 와. 당장은 네 얼굴을 어떤 표정으로 봐야할 지 엄마도 모르실 걸.”
“…그렇겠다. 미안. 성급 했어.”

오래된 친구 둘은 다시 휴게실을 묵음상태로 만들었다. 론은 한참 제 호흡을 가다듬었다. 해리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복도 저 끝에서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파스락 부딪히는 종이비행기들의 스침, 주문에 펑 하고 터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언제부터… 스네이프랑 그렇게 된 거냐?”

론은 심상한 질문인 양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애썼다. 해리는 어, 음, 하며 헛기침을 했다.

“만난 지 한 두 달쯤? 돼서였던 것 같은데. 같이 고드릭 골짜기에 부모님 묘 보러 갔다가… 그 날 내가 세베루스를 좋아하는 걸 깨달아서….”
“세상에, 해리. 덤블도어의 턱수염 같은, 너 지금 세베루스라고 했냐?”
“응, 맞아. 그렇게 불러.”
“미친, 진짜 소름 돋는다. 스네이프랑 네가 정말 그런 사이라니.”

론은 정복 위로 팔을 벅벅 긁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상상이 안 간다, 론의 말에 해리는 쑥스럽게 웃었다. 론은 펜시브로 둘이 지내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연애적 요소는 전부 생략한 기억이었다.

“설마 앞으로 눈 앞에서 너랑 스네이프의 눈꼴시린 모습을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1학년 때부터 친구인 애들이 눈 앞에서 키스하는 걸 수 백 번 본 내 입장은 생각해봤어, 론?”
“야, 헤르미온느랑 스네이프가 같냐?”
“뭐가 다른데? 그리고 헤르미온느 앞에서 우린 이미 키스했어.”
“뭐라고─?!!!!!”

론의 목소리가 천장을 뚫을 듯 했다. 천장 저 위의 런던 지하철에 탄 머글들도 들었을 법한 데시벨이었다. 놀란 종이비행기들이 파다닥 소스라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서에서 제인이 론과 해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너희들 농땡이 그만 치고 얼른 안 들어 와?! 해리가 냉큼 대답하며 먼저 소파에서 일어섰다. 론은 눈이 튀어나갈 듯이 해리를 보다가 멍하니 따라 움직였다.

“스네이프랑 키스를 한다고…….”

론은 퇴근을 앞둘 때까지도, 넋이 나가 있었다.


스네이프는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서, 이따금씩 시계를 확인했다. 곧 해리가 벽난로로 들어올 시간이었다. 스네이프의 손이 읽던 책을 덮었다. 오늘도 시무룩하게 들어올 해리를 생각하며 뭘 해줘야 좋을지 고민했다. 그런 가십이 터졌으니 오늘에야말로 죽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위로의 방법으로 3일 연달아 섹스는 좀 그렇지 않나, 뭐, 해리가 좋아하는 거긴 하지만. 물론 스네이프 역시 해리와의 관계를 좋아했다. 그래도 제 나이가 벌써 서른 아홉인데, 열여덟 살짜리 청년이 밀어붙이는 힘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다. 그러나 어차피 이렇게 따져봤자였다. 해리가 저를 벗기고, 저를 원한다면, 순종적으로 안겨줄 자신을 스네이프는 알았다.

생각에 골몰해있는 사이, 벽난로에서 기척이 들렸다. 재를 털며 고개를 든 해리가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었다. 흐음? 저 모습은 스네이프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오늘 해리는 론과 얘기를 잘 푼 것 같았다. 스네이프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해리가 성큼 걸어와, 양 팔로 스네이프를 꽉 끌어 안았다. 언제나처럼 열정적인 사랑이군, 포터.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안긴 채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론과 다시 얘기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금방 잘 풀린 것 같지 않아요? 뭐, 오늘 버로우에 가서 위즐리 가족들에게 사과하려던 계획은 아무래도 제가 성급했던 걸로 결론 내렸지만─”
“포터, 숨 좀 쉬고 말 하지.”
“세베루스에게 얼른 말해주고 싶었어요!”

스네이프는 해리의 머리를 개처럼 쓰다듬어 주었다. 또 다시 해리의 뒤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개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개새끼 시리우스 블랙의 대자라서 그런가. 해리가 제임스 포터보단 시리우스 블랙을 닮는 게 아주 조금, 트롤의 코딱지만큼은 더 나은 듯했다. 당연히 아예 닮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말이다.

스네이프는 소파에 다시 앉았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허리를 안아왔다. 길쭉한 하얀 손가락이 부드럽게 해리의 머리칼 사이로 들어와 결을 갈랐다. 해리는 그 손길을 느끼며 스네이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해리는 지금 이 순간, 완전한 행복을 느꼈다. 스네이프의 손길, 몸의 냄새, 체온, 촉감. 해리 포터의 가장 안락한 보금자리.

“오늘 뭐 하면서 보냈어요?”

스네이프의 몸에 여전히 코를 박은 채, 해리가 물었다. 스네이프도 여즉 해리의 머리카락을 쓸면서 입을 열었다.

“그 후로도 인터뷰를 하자면서 기자들이 계속 몰려 왔었다.”
“으, 진짜 무당벌레 같아요.”
“무당벌레? 보통 바퀴벌레에 비유하지 않나.”

해리는 지긋지긋하다는 어투로 애니마구스 리타 스키터에 대해 설명했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이며 설명을 들었다. 마법부에 등재 하지 않은 애니마구스 놈들은 어쩌면 하나 같이 다 제임스 포터스러운지. 제 연인이 그의 빌어먹을 애비 놈팽이를 닮지 않아 다행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기특하게 내려다 봤다.

“그런데 왜 호그와트에선 애니마구스가 되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통제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겠지. 동물로 변한 마법사들을.”
“아하….”

해리는 똑똑한 연인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컷 그의 체향을 맡은 코가 만족스럽게 콧김을 뿜었다. 몸을 일으키자, 아쉽게도 머리칼을 쓸던 스네이프의 손도 떨어져 나갔다.

“세베루스는 왜 애니마구스는 안 배웠어요? 포션마스터에 패트로누스, 레질리먼시, 오클러먼시, 비행마법…… 당신은 완전 대단한 마법사잖아요. 애니마구스가 못 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딱히, 내가 동물이 돼서 얻을 이점이 없지 않나? 누가 동물로 변한 내 머릴 쓰다듬는다면 뒷 발로 걷어차버릴테고.”
“혹시 암사슴 될 것 같아서 안 배운 거 아니에요?”

스네이프가 대번에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해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이라고 말했다. 동물로 변하는데 성별까지 바뀐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잠깐. 아빠는 수사슴 애니마구스였고, 패트로누스도 수사슴이었다. 패트로누스는 자신의 행복한 기억이자 본질의 반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해리도 애니마구스를 익힌다면 수사슴이 될 터이고, 패트로누스가 암사슴인 스네이프는 암사슴 애니마구스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는 건, 동물 모습인 채로 본딩을 하면 스네이프가 임신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해리는 다소 미친 또라이 같지만,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자신의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브, 있잖아요. 우리도 애니마구스가 되는 법을 익히면 어때요?”
“갑자기 왜?”
“제가 수사슴이 되고 세브가 암사슴이 돼서 임신시키면 우리도 아이를 가질 수 있─”
“랭록.”
“읍?! 으브븝?!?”

해리는 입천장에 딱 달라붙은 혀에 입을 틀어막았다. 혀묶기 주문이라니! 해리가 항의하는 눈으로 스네이프를 쏘아 보자, 황당한 쪽은 이 쪽이었기에 스네이프가 눈꼬리를 올렸다. 이 또라이 머저리 포터가 혼자서 어디까지 망상을 폭주한 건가?

“지금 나더러 사슴 몸으로 몇 개월 임신한 채 살라는 건가? 포터?”

제임스 포터를 닮지 않았다고 기특히 여긴 게 고작 몇 분 전인데, 이 자식을 정말 어쩌면 좋을까. 스네이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덮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계속 제 입을 가리키는 해리에게 걸린 랭록을 풀어 주었다. 푸하, 해리가 숨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가 만약 진짜 애를 낳았다 쳐, 그게 사람 모습이겠냐 사슴 모습이겠냐. 사슴들끼리 해서 낳았는데.”
“저는 우리 아이가 사슴이어도 상관 없……”
“랭록.”

스네이프는 이 골치 아픈 제 연인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나 고민했다. 학교가 6년을 가르쳤는데 이 모양이니 답은 없다고 봐도 될 듯했다. 해리는 제 기발한 생각이 단번에 거절되자, 스네이프가 이해는 되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제 생각이 제정신의 범주가 아니라는 것을 해리는 생각지도 않았다.

스네이프는 관자놀이를 손톱으로 슬슬 긁으며 잠시 생각했다. 해리는 '이상적인 가족'을 원해서 이러는 거지. 그가 가져본 적 없고 소망하는 유일한 것이 '가족'임을 스네이프도 잘 알았다. 저도 될 수만 있다면 해리의 아이를 기꺼이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마구스는 아니잖나, 포터. 한숨을 쉬며 스네이프는 다시 랭록을 풀어주었다. 이번에는 해리도 주문이 풀렸음에도 별 말이 없었다.

“포터, 우리가 아이를 갖는 것에 내가 아직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는데? 난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 그리고 넌 남자인 내가 임신이 불가하니 입양 쪽을 생각하자고도 하더니. 상식적으로 좀 생각하라고, 그게 그렇게 어렵나? 포터?”
“저는… 근데 제가 생각한 방법도 임신은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정말로 내 사람 에 임신이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해도 난 이미 마흔에 가깝다, 포터. 몸이 늙었다는 거지.”
“마법사들은 평균 수명 150살이라던데요. 생각해보니 마흔이면 아직 창창해요, 세브. 노산이 아닐 거예요. 주변 마법사들이 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서 노산이라 여겨지는 것일 뿐!”

싱긋 웃은 해리의 잘생긴 미소가, 스네이프의 눈엔 정말 멋진 머저리 같았다.


창을 두드리는 검은 올빼미가 보였다. 어두운 밤에 스며든 새는 노란 눈을 홉뜨지 않고 있었다면 거기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하얀 올빼미를 기억하며 창을 열었다. 호그와트 문양이 찍힌 편지였다. 스네이프는 빠르게 뜯었다. 그 사이 해리의 검은 올빼미 헤르메스는 밖에서 퍼덕이는 퍽스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퍽이나 자유로운 영혼들이군. 뜯은 편지에는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유려한 필체가 쓰여져 있었다.

「세베루스, 슬리데린 사감 일에 관한 안내를 보낸다.
슬러그혼은 자네가 돌아온다는 소식과 해리와의 관계에 대한 소식 모두 내게 들었단다. (그런데 오늘 유감스런 기사도 터졌더구나. 다음 학기 개학쯤에는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흘러 호그와트도 잠잠해질 거다.)
더해, 또 유감스럽지만 고민 끝에 슬러그혼 교수는 사직을 결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감 직을 맡을 새로운 슬리데린 출신 교수를 찾아보는 것을 생각하기로 했다.
슬러그혼 교수가 자신의 슬리데린 애제자들 중에 여럿 편지를 보내 두었단다.
아직 4개월이란 유예가 있으니 좋은 소식을 꼭 들려주도록 노력하마.

해리와 잘 지내고 있기를, 미네르바 맥고나걸.」

예상한 소식이었다. 슬러그혼을 잘 아는 스네이프는 아쉬움조차 느끼지 않았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해리가 창가에 서있는 스네이프를 보고 다가왔다. 뭐예요? 해리의 눈이 금방 그의 손에 들린 편지에 머물렀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편지를 건네주었고, 찌푸려지는 해리의 얼굴을 지켜 보았다. 망할 민달팽이. 해리는 깔끔하게 일축 했다.

“지금 마법세계는 슬리데린에 대한 평판이 아주 나빠요. 전투에서 슬리데린 기숙사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그들 부모나 친척이 데스 이터였던 경우도 많아서……. 이런 시기에 선뜻 슬리데린 출신 마법사가 호그와트 교수 직을 맡을 것 같지 않아요. 당신은 다행히 재판 끝에 무죄가 됐고 전쟁 영웅으로 인정 받았지만.”

곤란한 얼굴로 맥고나걸의 편지를 보던 해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슬러그혼이라 해리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여상한 답변에 기운이 쭉 빠졌다. 꼼짝없이 호그와트에 제 연인을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가만 뺏기고 있을 해리는 아니었지만.

“이번 주 금요일에 네빌을 만나러 가지 않을래요?”
“……네빌 롱바텀을?”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제가 왜 그를 만나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네빌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잖아요.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동료 교수로 지내시게요?”
“동료…… 교수? 누가…? 설마 그 네빌 롱바텀이 호그와트 교수라는 건 아니겠지, 포터. 학교 수준이 그렇게까지나 떨어졌…….”
“세베루스!”

정말 변한 게 없으시군요, 스네이프 교수로서는. 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진심으로 네빌이 교수가 된 건 지 의심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해리가 저를 놀린다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네빌은 지금 스프라우트 교수 밑에서 약초학 조교 일을 하고 있어요. 다음 학기에선 정식 교수로 임명되고요. 그리고 네빌은 전투에서 내기니를 죽인 영웅이예요.”

내기니.
내기니를……?

스네이프는 무의식적으로 제 목덜미를 더듬었다. 자신을 죽일 뻔했던 그 포악한 짐승을 죽인 게 네빌 롱바텀이라니. 스네이프는 멍한 눈으로 목에서 손을 내렸다. 해리가 불사조의 눈물로 치료해서 물린 흔적조차 없지만, 내기니에 물리는 그 느낌만은 스네이프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 네빌을 만나러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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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타임터너는 봉인이 결정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계가 데스 이터 잔당들에게 넘어가면 큰일이었기에, 폭파와 봉인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걸로 추정 되는 타임터너의 가치에 결국 보존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해리는 어쨌든 자신과 스네이프를 이어주었던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 것에 다행스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타임터너의 기존 주인이었던 판매자는 개인의 삶에만 그것을 사용했기에 법적 처벌은 없었다. 구매자는 심문 끝에 어둠의 마법 물품 상권과 연관이 있는 자로 밝혀져 구속 되었다. 해리는 이 일로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론이 해리의 어깨를 짚었다. 해리는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론을 돌아보았다. 아직 론은 지니와 저의 일을 몰랐다.

“축하해, 친구. 1년 고생했으니 상장 한 장 정돈 받아야지.”
“고맙다, 론.”

론은 해리를 잠시 내려다 보았다. 해리에게서 저를 꺼리는 기색을 분명히 읽었다. 어제부터 수상하단 말이지. 론은 이게 스네이프와 관련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리와 스네이프 펜시브 열람 요청을 출근 하자마자 해두었다. 인기가 많은 기억이어서 벌써 오러 팀의 선배들은 단체로 봤다고 했다. 승인이 떨어지면 론도 오전 시간내로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진짜 바쁘다. 해리, 참. 오후에 우리 녹턴 앨리 순찰 같이 돌더라.”
“타임터너 구매자 측 상권 쑤셔본다고 그러던데.”
“별 거 없었음 좋겠다. 계속 바쁘니까 토 나오지 않냐.”
“맞아. 이제 출근 3일찬데 쉬고 싶어 죽겠다.”
“숨어 살 때는 일 안 하고 계속 쉬었어? 그럼 개부러운데.”
“아니. 머글 체육 센터에서 어린이들 가르쳤어. 머글들 운동.”
“와! 진짜 귀여웠겠다.”

론은 퀴디치보다 재밌는 운동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리가 운동을 가르쳤다는 사실 보다는 어린이들에 더 집중했다. 최근 헤르미온느와 둘이서 자식은 몇 명 낳을까 얘기도 나눴었다. 론은 무조건 형제는 적을수록, 가급적이면 외동이 좋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동인 헤르미온느는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 애들 진짜 귀여웠어. 그 중에서도 찰스라고, 동료교사 아들이 있는데 나를 진짜 잘 따랐거든. 막 번개 모양 나뭇가지 주워서 선생님 선물이라고 나 주고. 눈도 똘망하고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 지 몰라. 진짜 나도 그런 아들 하나 있음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 찰스 보고싶다.”
“낳으면 되지, 해리. 지니랑 결혼해서.”
“……!”

신나게 찰스에 대해 떠들던 해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론은 급작스럽게 바뀐 해리의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지니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된다는 부분에서, 왜?

해리는 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머쓱히 목을 긁었다. 론은 또 다시 찾아온 석연찮은 느낌에 입술을 잘근거렸다. 해리는 분명, 저에게 해야할 말을 아직 하지 않았다.

“론 위즐리! 열람 승인 떨어졌다.”

팀장과 함께 부서로 들어오던 휴가 론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론은 흘낏, 해리를 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리는 여전히 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러 로날드 위즐리, 오전 8시 5분자 예약, 오전 10시 승인완료. 네, 확인 되었습니다. 펜시브 h-19번, s-731번 기억은 1번 열람실로 들어가세요. 전원버튼을 누르시면 영상 재생이 시작됩니다. 빠른 재생을 원하시면 붉은 버튼, 느린 재생을 원하시면 노란 버튼, 정상 속도는 녹색 버튼, 뒤로 10초 돌리는 건 하얀 버튼입니다.”

열람실에 있던 담당 직원이 펜시브 재생 스크린의 컨트롤러를 건네 주었다. 이전에도 오러 임무로 열람실에 종종 와봤던 론이었다. 이제는 형식적인 설명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펜시브에 뛰어 들지 않고도 복사 된 영상을 간편히 스크린으로 옮겨 볼 수 있는 건, 마법부 내의 독자적인 마법기술 발전이었다. 현재 이 마법은 오러들이 임무 중에 단체로 또는 간편히 보기 편하도록 쓰이고 있었다. 1번 열람실에 론이 홀로 들어섰다. 문을 닫자마자 주위가 조용했고, 어둑한 실내에 벽 한 면을 채운 스크린이 있었다. 론은 컨트롤러의 전원을 눌렀다.

해리는…… 사라진 스네이프를 찾지 못한 마음의 그늘을 늘 가지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죽기 직전 ─살아있는 걸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해리에게 넘긴 기억을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같이 교장실의 펜시브로 들어가 보았었던 론이었다. 그 스네이프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인성 파탄난 성격 나쁜 선생이었던 건 변함없지만, 해리를 지키고자 뒤에서 노력했던 사람이란 건 알게 되었다. 직접적인 대상이었던 해리에게는 스네이프에 대한 관점이 송두리째 바뀔 기억이었을 것이다. 론은 제 3자의 입장이어서 스네이프를 여전히 재수 없게 여겼어도, 해리는 그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듯이 보였다.

론에게 있어 해리가 그를 살리는 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해리에게 방도가 있었고, 스네이프를 살릴 기회가 온다면 해리는 당연히 그렇게 했을테니까. 론은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가 스네이프와 해리의 동거 부분에서 녹색 버튼을 눌렀다. 별 것마다 딴지를 걸고 해리를 괴롭히는 스네이프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실제 기억 속의 스네이프는 그렇지 않았다.

스네이프가 만든 음식을 먹고 해리는 출근 준비를 했고, 스네이프는 해리가 없는 시간엔 마법약을 만들거나 대부분 책을 읽었다. 해리가 퇴근하고 해리가 사온 음식을 먹으면서 둘은 하루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스네이프의 빈정거리는 말투는 변함 없었지만, 둘 사이 분위기는 꽤나 다정했다. 자연스러운 온도가 그 둘에게 존재했다. 론은 그 평범한 일상에 한숨을 내쉬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지나칠 정도로 둘은 서로에게 안정되어 있다. 스네이프와 해리가. 둘의 동거 소식을 보자마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목도한 둘의 일상은 너무도 평범하게 잘 지냈다. 누가 끼어들 틈도 없어 보일 정도로, 그 분위기가 '가족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치 버로우의 위즐리 가족 같은.

론은 입맛이 쓴 채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에 떠 있던 해리와 스네이프는 사라졌다. 하지만 머릿 속을 채운 해리의 웃는 얼굴까지 없어지진 않았다.


오후의 녹턴 앨리는 평소와 똑같이 칙칙했다. 까만 후드를 덮어 쓰고, 오러 정복과 얼굴을 가린 채 해리와 론은 어둠의 마법 상점 거리를 단속했다. 빛의 세력이 승리한 뒤로 녹턴도 전보다는 기세를 잃었지만 여전히 어둠의 마법을 애호하는 마법사들은 많았다. 역사에 늘 있던 그들이었다. 오러인 해리와 론은 그저 감시의 역할로 온 것이어서, 비장한 긴장은 없었다.

보진과 버크를 마지막으로 나온 둘은 다이애건 앨리 쪽으로 향했다. 퇴근 전에 잠깐 쇼핑을 하려는 목적이었다. 다이애건 앨리로 들어온 해리와 론이 후드를 벗자, 주변의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며 바라보았다. 유명한 전쟁 영웅 둘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어린 아이가 눈을 빛냈다. 론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해리는 눈웃음을 지은 뒤 자리를 벗어났다. 붉은색의 눈에 띄는 정복을 입고 있는 둘이 근무중인 것을 알고, 마법사들은 쉴 새 없이 그들을 곁눈질 하면서도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책 산다고 했지?”
“응. 서점만 들렀다가 조지 네로 가자.”

해리는 플러리쉬 앤 블러트 서점에 들어서자 마자 어둠의 마법 서적 쪽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순찰해놓고 공부까지 하게? 론이 질렸다는 눈으로 해리를 바라 봤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필요해서.”

서적 세 권을 고른 해리가 계산을 했다. 어둠의 마법 생물, 주문과 방어에 관련 된 책이었다. 론은 해리에게 새삼 N.E.W.T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 준비라도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론은 간지러운 입을 다물고 서점 문을 열었다. 책을 넣은 봉투를 안고 있던 해리가 고마워했다. 천만의 말씀, 론은 어깨를 으쓱이고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답게 오늘도 문전성시였다. 해리는 다시 후드를 썼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과 젊은 부모 마법사들의 관심에 시달리면 끝이 없는 걸 알고 있었다. 론은 그런 관심을 즐겼으므로 그냥 들어섰다.

“해리!”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어도 조지의 눈썰미까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론과 함께 들어왔기 때문일 터다. 해리는 가게 뒤편으로 가서 조지와 마주 앉았다. 론은 헤르미온느가 부탁한 수정 깃펜 등을 본다고 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찾은 거 축하해.”
“고마워 조지. 나중에 교수님이랑 그 홀리한 귀 얘기도 한 번 해봐야지.”
“아, 물론. 내게 이런 멋진 귀를 선물해주신 분이잖아.”

조지가 윙크 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왜?”
“일전에, 사랑의 묘약을 배달한 프랭크라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지? 해리.”
“아…! 조지, 기억하고 있었구나…. 맞아, 프랭크는 폴리주스를 마신 나였어. 근데 어떻게……?”
“같이 온 꼬마는 그럼 진짜 스네이프 교수님이 맞지? 와우 멀린, 그래서 그 꼬마- 스네이프가 그렇게 깜찍하게 굴었구만. 그 때 그 사랑의 묘약, 호그와트에서 대히트였어. 효과가 장난 아니었나 보더라구. 그래서 마법약 실력이 스네이프 수준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네가 과거로 돌아가서 스네이프랑 같이 살았다고 하잖아. 그 꼬마도 스네이프랑 묘하게 닮았었고. 내 추리력 상당하지? 해리.”
“어, 진짜. 오러국에서 탐낼 인재인데, 조지?”

해리가 웃으며 조지를 보았다. 거만하게 팔짱을 낀 조지가 다소 과장스럽게 으쓱댔다. 기억력도 좋고 추리력도 좋았다. 정말 과거의 저에게 조지가 스네이프를 닮은 꼬마에 대해 언급을 했었다면, 자신이 스네이프를 찾아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싹해질 정도였다.

“스네이프랑 지내는 건 어땠어? 그 때 보니 둘 분위기는 괜찮더라. 진짜 아빠랑 아들로 보였다고, 해리.”
“그 때랑 비슷한 분위기로 지냈지, 뭐. 그런데, 있잖아 조지. 아직 론에게도 말 못했는데… 나, 지니랑 헤어졌어.”

해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니의 오빠인 조지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긴장 속에 바라본 조지의 눈은 살짝 놀랐다가, 이내 유하게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해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치를 봤다.

“…오래 못 만났다고 식은 거니? 며칠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됐을 텐데. 너무 돌아오자마자 찬 거 아니야? 우리 귀여운 지니를.”

조지의 부드러운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해리는 심장이 따끔거리는 압박을 느꼈다. 그녀와의 이별은 정말로 위즐리 가 전체에 대한 이별일 수도 있는 거였다. 스네이프의 말이 맞았다.

해리는 서적이 든 봉투를 안은 팔을 고쳐 안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 지니를 좋아했을까, 하는 한심한 마음까지 들었다. 해리 포터가 위즐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이 붉은 머리의 가족은 고아 해리를 품어준 첫번째 가족이었다. 다음은 헤르미온느, 다음은 시리우스, 그리고 다음은…….

“나, 스네이프 교수님을 사랑해.”

커튼이 열리고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수정 깃펜을 쥐고 있는 손이 문틀을 짚고 있었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론을 바라보았다. 타이밍이 너무 좋지 못했다. 론의 표정이 썩어있는 것 같았다. 론이 해리의 눈을 먼저 피했다. 조지 역시 해리의 고백에 놀라고 당황하긴 했지만, 론에게 이런 식으로 들키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론은 저보다도 더 배신감을 크게 느낄 성격이니까. 걱정스러웠다.

“……론.”
“나한테 숨기는 게 그거였어? 해리.”

론의 딱딱한 목소리가 해리의 가슴 위로 묵직한 돌이 되어 굴렀다.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니었다. 단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상대가 론이기에 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론의 반응은 이처럼 너무도 예상이 갔다. 차가운 파란 눈이 꼭 빙하처럼 서늘했다. 론은 나 이거 결제했다, 형, 말을 하고는 수정 깃펜을 쥔 채 등을 돌렸다. 해리는 조지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급히 론을 쫓아갔다. 조지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듣고 싶은 얘기였는데. 스네이프 교수를 사랑하게 됐다니, 해리가.


“론!”

성큼성큼 걸어가는 길쭉한 다리가 얄미웠다. 해리는 달렸기 때문에 금방 거리가 좁혀졌다. 다만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다이애건 앨리인 게 낭패였다. 론, 애타게 부르며 해리가 팔뚝을 잡았다. 론은 눈썹을 찡그리며 해리를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도 다 들었어, 해리. 스네이프가 좋다고? 그래, 그럼 되잖아. 불쌍한 우리 지니는 비록 너에게 차였지만, 며칠 울고나면 너 같은 건 싹 잊고 좋은 남자 찾겠지. 그래, 그거면 되는 거 아니야? 해리.”
“지니에겐 미안해, 나도! 근데 감정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어. 변명인 거 알아. 이거 변명이야, 맞아, 론─ 그렇지만 지니는 받아들여줬어! 이별을 받아들인 건 지니야.”

론이 해리를 지그시 노려 보았다. 자기 친구지만 정말 이기적인 놈이라고 론은 생각했다.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한다. 해리 포터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럼 지니가 네 말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 같은데? 구질구질하게 널 붙잡으려고 할 애냐? 걔가?”
“…….”
“나도 네가 스네이프랑 지냈던 기억 다 봤어, 해리. 네가 나한테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것도 다 눈치챘다고. 놀랍게도 론 위즐리에게도 눈치란 게 있어서 말야.”

론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해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론이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니가 제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해리도 떠올리고 있었다. 론은 제 여동생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변의 마법사들이 신경쓰였다. 해리는 더이상 어떤 얘기를 론에게 해야할 지도 알 수 없었다. 부서로 복귀 하자,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녹턴 앨리 순찰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해리는 시계를 확인 했다. 퇴근시간까지 3분여가 남았다. 론 쪽을 쳐다 봤다가도 다시 고개가 돌아왔다. 론이 자신의 태도에 화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론이 사실을 알게 된 타이밍도 최악이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예전에도 해리 스스로 풀기 보단, 자연히 해결되는 상황이 찾아 왔었다. 그 때를 기다리면 되는 걸까….

론은 냉정하게 해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해리는 우리 관계가 바람을 피우는 거라 말했던 스네이프의 말을 떠올렸다. 맞아, 맞는 말이었다. 여자친구랑 사귀고 있던 주제에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람과 섹스하고 결혼까지 약속한 거니까. 지니보다 그녀의 가족들이 해리에게 더 화가 나는 것도, 가족이라면 당연했다.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이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별이 존재할 수 있냔 말이었다. 해리는 답답함에 셔츠의 윗 단추를 풀었다.

세베루스가 보고싶다. 그와 그냥 스피너즈 엔드에서 영원히 숨어 사는 쪽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마법세계를 구원한 유명하고 인기 많은 젊은 영웅은, 그저 소박하고 음습하며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만 사랑하고 살고 싶을 뿐이었다. 마법부 벽난로에 들어서며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포터, 왔…!”

벽난로에서 나오자 마자 스네이프의 입술을 찾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던 스네이프가 당황해서 밀어낼듯 해리의 허리를 붙잡았다. 해리가 정신없이 혀를 섞으며 스네이프를 소파로 이끌었다. 푹신한 소파로 무너진 그의 위에 올라타서, 해리는 입술을 떼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스네이프는 놀란 눈으로 해리와 시선을 맞췄다. 해리의 눈이 지쳐 있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른 남자는 그냥 해리의 허리를 안았다. 동그란 뒤통수를 쓸어 내리자, 해리가 괴로운 신음을 냈다.

“세베루스, 난 진짜로…… 당신만 있으면 돼요…….”
“바보냐, 포터. 넌 나 하나만 있으면 큰일 나. 네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 줄 아나.”
“필요 없어! 난 당신만….”
“어린 소리 그만해, 포터.”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걱정 되는 해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론 위즐리에게 한 소릴 들은 게 분명했다. 울 것 같은 해리를 보고 있으니, 이 녀석의 단단함도 '위즐리' 앞에서는 흔들리는 게 보였다. 위즐리 가족이 해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스네이프도 잘 아니까. 하지만 그런 해리가 자신에게 어리광 또는 집착을 하며 매달리는 것도 스네이프는 싫지 않았다. 스네이프 역시 해리에 만만치 않게 이기적인 남자였다.

“착하지.”

어린애 다루는 선생처럼 말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네, 저 착해요. 울적한 목소리가 옷에 묻혀 웅웅거렸다. 스네이프는 앞치마 뒤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상반신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나자 해리도 몸을 일으켰다.

“세베루스?”
“왜? 지금 별론가? 저녁 먼저 먹고 할까, 포터?”

정말이지, 착하다는 소릴 들어야 할 건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제안한 위로의 방식에 금세 도취되었다. 셔츠만 벗겨내자 맨살에 앞치마만 두른 모습이 야릇했다. 해리는 앞치마를 가슴 옆으로 밀어 유두에 입을 대었다. 쪽, 소리 나게 빨아들이자 스네이프가 입가에 손가락을 놓고 흐응거렸다. 스네이프의 살이 아주 조금은 올랐어서, 전보다 가슴이 납작한 느낌은 적었다. 해리가 왼손으로 유두를 꼬집고, 오른손은 허리께를 쓸어내리니 스네이프가 다리를 벌렸다. 해리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어제도 먼저 몸에 거품을 묻히고 안겨와서 제 몸을 씻겨주더니. 왜 이렇게 음란하게 구냐고 스네이프를 희롱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위로해주려고 하는 스네이프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짓궂은 말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오러 정복을 입고 절 내려다 보는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정복의 황금단추와 장식이 멋스러웠다. 어리게만 보이는 해리가 그 옷을 입고 있으면 훨씬 어른스럽게 보였다. 자신은 금욕적인 정복을 여전히 단정하게 입은 채, 손으로는 저를 벗기고 있는 해리에게 스네이프는 음심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해리가 바지와 속옷까지 벗기면서 앞치마는 그대로 두는 게 우스웠다. 이런 보편적인 판타지를 제게 덧씌워보는 해리에 절로 비소가 났다.

“엄청 야해요, 세베루스….”

이렇게 삐쩍 마르기만한 몸이 대체 어디가. 스네이프는 해리의 이상성욕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몸에도 욕정할 수 있는 해리에게 고마운 쪽은 오히려 저였다. 그럼 계속 빠져 있어, 나한테. 스네이프는 속으로 생각하며 해리의 위로 올라 탔다. 소파에서의 기승위는 기시감을 일으켰다. 첫 섹스에서의 기억이 났다. 다이애건 앨리에 폴리주스를 마시고 다녀온 뒤, 스피너즈 엔드의 집 소파에서 나체로 변한 자신과 해리는 결국 몸을 섞었다. 그 때의 흥분은, 떠올리는 순간 지금도 스네이프의 허리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좋아? 해리.”
“응, 세베루스. 이런 위로라면 매일 밖에 나가 잔뜩 깨지고 돌아오고 싶을 정도예요.”
“흥, 그건 내가 싫은데. 해리 포터라는 트로피를 쥔 보람이 없잖아.”
“트로피? 하하핫. 트로피 부인 말고 트로피 남편인건가요?”
“그래, 구원자 해리 포터. 너 정도면 제법 쓸 만한 트로피지.”

노골적인 손길이 해리의 바지 앞섶을 쓸어 내렸다. 해리는 움찔하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웠다.

“저는 당신이 트로피 말고 다른 걸 손에 쥐어 줬으면 좋겠는데요? 부인.”
“흠, 한 번 봐보긴 하지.”

스네이프가 비뚜름히 웃으며 해리의 바지 벨트를 풀었다. 이어 버클이 풀리고 지퍼가 내려가, 앞섶이 벌어졌다. 이미 두툼하게 부어 오른 속옷이 보였다. 속옷을 내리자 바로 성기가 퉁겨 나왔다. 스네이프가 앞치마를 들추고 제 것을 해리의 성기와 겹쳐 손에 쥐었다.

“으음…….”

스네이프의 긴 손가락이 두 성기를 맞잡고 흔들었다. 해리는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기실, 그 피로의 원인이 스네이프와 제가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해리 포터를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스네이프 외의 사람들과 싸우는 건 해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결국 저를 용서해줄 거란 오만일 수도 있었다.

스네이프의 어깨 아래로 끈 하나가 흘러내렸다. 원래도 헐렁하게 묶여있는 앞치마라 벌어진 틈이 넓었다. 왼쪽 유두가 천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게 야릇했다. 해리가 손을 뻗어 붉은 유륜을 더듬고 엄지손톱으로 유두를 긁듯이 튕겼다. 으응! 제 위에 올라 앉아있는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조여 드는 게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숨이 달떴다. 해리는 흥분이 짙어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스네이프가 성기를 잡아 쓸어 올리는 손길이 빨라졌다. 해리 역시 엉덩이 뒤쪽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감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윽, 한 쪽 눈을 찡그리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등을 덮고 손을 움직였다. 살짝 지쳐있던 스네이프가 강하게 리드하는 해리의 손에 절정을 맡기는 게 느껴졌다. 가쁜 숨을 쉬는 스네이프의 얼굴 앞으로 긴 흑발이 쏟아졌다. 진짜 예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들으면 질색할 생각을 하면서 스퍼트를 올렸다. 불시에 두 성기에서 각자의 정액이 튀어 나왔다.

“하아… 흣, 하아….”

스네이프의 앞치마와 허벅지, 해리의 정복 위로 정액이 산발적으로 튀어 있었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바로 쓰러뜨리고 다시 위를 점령했다. 방금 사정한 흥분으로 스네이프의 눈동자가 탁했다. 야해, 세베루스. 속삭이면서 스네이프의 다리를 벌렸다. 넝마처럼 구겨진 앞치마가 스네이프의 매끈한 배 위로 올라가 있었다.

어젯밤, 욕조에서 섹스를 해서인지 오늘의 삽입은 비교적 쉬웠다. 해리는 정액이 발린 성기를 구멍에 금방 뿌리까지 박았다. 스네이프가 앞치마를 양 손으로 꽉 쥐었다. 구겨진 앞치마 뒤편의 하얀 나체와 까만 머리카락, 벌어진 입술에서 가쁜 숨이 새어 나오는 스네이프의 모습에 머릿속이 달떴다. 소파 위로 흐트러진 검은 물결이, 해리의 허릿짓에 찰랑거렸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보며 박는 게 좋았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한편 대담하기도 한 그가 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을 끌어 와 깍지를 꼈다. 살짝, 손가락에 입을 맞추니 스네이프의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해리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꾸만 스네이프에게 취하게 되었다. 뛰어난 포션 마스터의 달콤한 독이 해리의 머릿속을 몽롱하게 했다.

“사랑해, 해리.”

오늘 스네이프는 정말로 사려 깊었다. 해리는 차갑게 저를 보던 론의 파란 눈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것이 스네이프의 목적이었으므로, 기꺼이 해리는 그렇게 했다.


해리는 여전히 앞치마만 걸치고 있는 나신의 스네이프를 뒤에서 끌어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가 준비해놨던 저녁이 이미 다 식었다. 그렇지만 뱃 속을 가득 채운 충만감에 해리는 미적거렸다. 둘의 앞에 놓인 텔레비전에 그들의 모습이 비쳤다. 스네이프는 정복을 모두 갖춰 입은 해리에게 헐벗은 채 안겨 있는 제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부인이라기 보다는 창부 같았다. 그 편이 저에겐 더 어울리는 타이틀 같기도 했다. 그리고 새삼 제가 해리 포터의 부인이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웃겼다.

“배 안 고픈가?”
“세베루스, 밥 먹을까요? 배고프죠. 내가 퇴근하자 마자 붙잡고 안 놔줘서….”

스네이프는 속으로 네 껄 물고 안 놓은 건 내 쪽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얼굴만은 변함 없이 무표정했다.

“낮에 장 봐와서 냉장고 채워놨다. 이제 머글들이 만든 인스턴트는 먹고 싶어도 못 먹을 줄 알아.”
“세베루스, 제가 늘 그런 것만 먹고 산 건 아니었어요. 뭐, 어쨌든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나도 먹어야 하니까 당연한 거지.”
“네, 네. 우리 세브 많이 먹어요.”

은근슬쩍 애칭으로 부르는 꼴이 해리가 정말 벌써 남편 노릇을 하려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세브는 릴리가 저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창의력도 없는 놈.

“여보, 그만 제 몸 주무르시고 식탁으로 가죠?”

그리고 능수능란한 어른은 여전히 스네이프 쪽이었다. 해리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저를 비웃는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여보? 여보라고요? 바보 같이 앵무새처럼 여보 타령을 해대는 해리의 옆에서, 스네이프는 앞치마를 벗고 옷을 꿰어 입었다. 세브, 한 번만 더요. 한 번만 여보라고 더─ 스네이프는 그 간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식탁 앞에 앉았다.

식은 음식들에 보온마법이 걸리고 각자의 앞에 놓였다. 해리는 여전히 눈을 빛내면서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하여튼 욕심도 많은 놈이다. 해리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가장 사적이고 가벼운 틈을 채운 유일한 사람으로 만족할 줄을 몰랐다.

“얼른 식도 올리고 결혼했다고 남들한테 다 밝히고 싶어요. 진짜 세베루스가 내 사람이라고!”
“그 날 아무 생각도 없다가 청혼한 것치곤 꽤나 본격적인데, 포터? 미네르바가 식이니 어쩌니 한 말에 또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가 솔깃해서 그러는 거겠지만.”
“와, 정곡. 아파요, 세브.”
“포터 네가 아무 생각 없는 건 내가 잘 아니까.”

샐러드에 올린 귤을 씹자 입에서 상큼한 맛이 터졌다. 샐러드를 뒤적이는 스네이프는 감흥없는 눈이었다. 스네이프는 결혼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 앞에서 굳이 예복을 갖춰 입고 구경거리가 되는 일은 사양이었다. 해리가 하고 싶다하면 동참해줄 마음 정도야 있지만, 식 자체에 흥미는 전혀 없었다. 뭐, 남들 앞에 해리 포터를 온전히 제 것으로 인정 받는 일은 꽤 마음에 들었다. 잊고 있었던 슬리데린의 기질일 터였다. 제가 이 마법세계 영웅을 차지하는 일은 트로피를 얻은 양 기쁜 것이었다.

“결혼식 같은 건 관심 없어. 하지만 포터 네가 하고 싶다면.”
“왜요? 부를 사람 없어서 그래요?”
“그것 뿐 아니라… 뭐, 지금 내가 친구 없다고 비웃는 건가?”
“아뇨. 저도 제 결혼식에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딱 세베루스 스네이프 한 사람 뿐이라서요.”

입 안에 채소 잎파리가 굴러갔다. 스네이프는 씹는 것도 멈춘 채로 눈 앞의 해리를 봤다. 다정하게 웃는 얼굴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아는 해리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부르고 싶을 것인데. 저를 배려해준답시고 저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 것이 바보 같았다.

“그것보다, 헤르미온느가 청혼 얘기에 반지부터 확인하는 게 신경 쓰였어요. 새삼 제가 한 프러포즈가 진짜 허접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충분히 감동 받았었다. 오히려 스네이프는 해리를 괜스레 신경쓰이게 만드는 주변의 지인들이 짜증스러웠다.

“반지 같은 걸 사왔다간 리덕토를 쓸 테니 그런 줄 알아, 포터.”
“아…… 어, 네….”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난.”
“저 말고는요?”
“……그래.”

스네이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다시 포크를 깨작거렸다. 해리는 흐흣,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보았다. 귀여워.

“그래도 우리가 부부란 걸 티내는 증표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세베루스 생각은?”
“네가 원한다면 나도 상관 없다.”
“흐음.”

해리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창의력이 떨어지는 머리라 반지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애초에 그런 머리이니 지니에게 루비 반지나 준비했던 것이니까. 해리 생각에도 다툼의 원인이었던 반지를 준비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일 듯 했다. 스네이프가 리덕토를 쓸 거란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리덕토로 부서졌던 루비 반지의 붉은 잔상이 해리의 머릿속에 번졌다.

반지가 아니면… 목걸이? 귀걸이? 팔찌? 어떤 걸 떠올려도 반지보다 착용에 거추장스런 장식물이 떠올랐다. 그냥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소유이다, 이런 글자를 확 몸에 새겨 버릴까.

아. 해리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스네이프의 왼팔을 끌어당겼다. 식사 중에 느닷없이 팔이 잡힌 스네이프가 미간을 구겼다. 다행히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팔이라 식사는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끼가 왜 이래 하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해리는 그에 아랑곳 않고, 스네이프의 당겨진 왼팔의 셔츠 소매를 걷었다. 그 왼팔에는 볼드모트가 죽은 후 아주 희미하게 남은 데스 이터의 표식이 있었다. 티가 안 날 정도로 연해서 줄곧 크게 신경쓰이지 않던 것이었다. 스네이프가 눈썹을 치켜 떴다.

“뭐하는 거냐, 포터?”
“볼드모트…… 이 개자식.”
“정말 뜬금 없군, 포터. 갑자기 뭐지?”
“나보다 먼저 당신 몸에 흔적을 남기다니. 짜증나서요.”
“하, 이제서야?”
“우리 사랑의 증표. 몸에 새기는 건 어때요?”
“어둠의 마왕의 호크룩스였던 놈이라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거냐? 취향이 둘이서 아주 똑같군.”

신경질적으로 해리에게서 팔을 거둬간 스네이프가 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하지만 몸에 해리와의 관계에 대한 증명을 새긴다는 건. 솔직히 나쁘진 않았다. 입에서 뱀이 튀어나가는 해골 문신 따위를 팔에 새길 정도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였으니. 볼드모트랑 취향이 비슷한 건 오히려 스네이프 쪽일지도 몰랐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말에도 꽤 진지하게 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으며 식사를 마무리 했다. 입은 먹어라, 스네이프의 말에 해리의 포크가 다시 움직였다.


아침이었다. 스네이프는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최근 현실세계에서 시달리고 있는 해리는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소리나지 않게 움직이는 건 스네이프의 특기였다. 조용히 창을 여니 부엉이가 예언자일보를 떨어뜨렸다. 부엉이가 내민 주머니에 시클을 넣어주고 스네이프는 바닥에서 신문을 주웠다.

1면부터 아주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했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 한심한 유명인은 대체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스네이프는 발로 그 유명인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유혹은 상당했지만 보류했다. 스네이프는 의자에 앉아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해리 포터-지니 위즐리 결별! 영웅의 새로운 사랑 세베루스 스네이프> 라. 이번 부수는 기가 막히게 잘 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1면을 차지한 사진에는 마주 보고 대치하는 론과 해리가 있었다. 그 옆에 동그랗게 얼굴만 잘라 넣은 지니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도 있었다. 다이애건 앨리 한복판에서 마법사들 다 들리게 이런 대화를 나눴다니, 한심한 포터. 물론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 포터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음… 세브? 잘 잤어요?”

잠에서 깬 해리가 눈을 비비며 안경을 찾아 썼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앞으로 신문을 던졌다.

“축하한다, 포터. 큰 힘 안 들이고 네 소원대로 우리 사이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어리둥절하게 신문을 펴던 해리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리는 스네이프 교수의 관점에서도, 객관적으로도 변함 없는 그리핀도르의 사고뭉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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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맥고나걸은 오랜만에 흥미진진 해졌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비교적 평화로운 한 해를 보냈더니, 그녀 자신도 몰랐던 무료함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머글들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 소비에 대한 취미를 즐긴다는 건, 기초적인 머글 지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맥고나걸도 정보로써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취미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는 지금이었다. 해리와 스네이프를 보고 있자니 그랬다. 머글들이 이래서 드라마를 보는 구나, 맥고나걸은 비로소 납득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와서 옆에 앉은 뒤로 전에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한껏 유해진 눈매가 놀라울 정도로 안정돼 보였다. 해리 역시 입꼬리를 연신 씰룩이며 옆에 앉은 스네이프를 흘낏거렸다. 맥고나걸은 해리에게 스네이프 쪽으로 틀어 앉으라고 친절히 말해줄까, 잠시 고민했다. 그랬다가 두 제자들의 못 볼 꼴까지 보게 될까 저어돼 생각으로만 그치기는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정말 그러셨나요? 사감 일은 관두고 집에서 출퇴근을 하겠다 하셨어요?”

들뜬 목소리로 해리가 질문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깨물더니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놀랍게도 지금 스네이프는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부끄러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려 했단다. 그 때 해리 네가 들어왔고.”
“저한텐 그런 말 없었잖아요!”

해리가 신난 얼굴로 스네이프의 팔뚝을 주먹으로 아주 살짝 때렸다. 그에 맥고나걸은 다소 놀란 눈으로 둘을 쳐다 보았다. 교수와 제자 모습이 익숙한 둘의 관계에 저런 친근한 터치는 아주 낯설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해리가 주먹으로 저를 친 것엔 개의치 않아 보였다. 대신 얼굴이 더 빨갛게 익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우선, 전통적으로 각 기숙사의 사감은 그 기숙사 출신의 교수가 맡게 되어 있단다, 세베루스. 하지만 현재 교수 중에 슬리데린 출신은 너와 슬러그혼 교수 뿐인데, 마법약 교수로 자네가 들어온다면 슬러그혼 교수는 직함을 내려 놓으실 거야.”
“그럼 슬러그혼 교수님이 마법약과 사감 일을 계속 담당하시게 하고, 제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계속 이어 하겠습니다. 재작년에 가르쳤으니까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지금 해너 링튼 교수가 맡고 있는데, 만약 세베루스 자네가 가르치겠다면 그 과목의 오랜 악습답게 1년째에 또 교수가 바뀌게 되겠구나. 하지만 우선 슬러그혼 교수님과도 얘기해 봐야 겠다. 아마도 슬러그혼은 자네가 돌아온다면 교수직을 아예 관두려 할 것 같아서….”

맥고나걸은 슬리데린 사감직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걸 느꼈다. 개인 사정이란 것이 있으니 학교의 오랜 전통을 깨고 타기숙사 출신의 슬리데린 사감을 고려해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스네이프가 계속 사감직을 맡도록 좀 더 설득해볼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유를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맥고나걸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집에서 출퇴근 해야 하는 이유가 어떤거지? 세베루스.”
“아……. 크흠, 미네르바…….”

어쩐지 맥고나걸은 뜸을 들이는 스네이프가 아닌, 해리 쪽으로 시선이 갔다. 입을 달싹거리고 있는 해리를 건드리는 게 더 빠른 답을 들을 수 있는 방법 같았다. 해리? 할 말 있니? 그래서 맥고나걸은 해리에게 말 할 기회를 주었고, 스네이프는 해리를 쳐다보더니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스네이프의 이런 감정적인 모습들은 정말로 신선했다.

해리가 의자를 좀 더 당겨 앉았다. 스네이프와 해리의 어깨가 전보다 더 가까이 붙었다. 맥고나걸은 새삼 이 둘이 이렇게 잘 어울렸던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차라리 깨달음에 가까웠다. 까만 흑발을 가진 한 쌍의 마법사들은 둘 다 키가 컸고, 해리 쪽이 훨씬 다부졌지만 양쪽 다 골격이 좋았다. 나란히 까만 눈동자와 녹색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는 것이 맥고나걸의 마음에 흐뭇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분명하고 맑은 목소리는 또렷했다.

“저희가 1년 간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스네이프 교수님은 저를 더 이상 증오의 감정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주셨어요. 이젠 더 이상 제 얼굴을 보고 제 아빠가 떠오르지도 않고, 제 눈을 보고 제 엄마가 떠오르지도 않게 되었다고요. 저 또한 지난 과거에 스네이프 교수님을 미워하던 감정은 기억을 봤을 때부터 풀려 갔었지만, 실제로 함께 지내면서 그가 제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맥고나걸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다문 채, 해리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 가엾은 오해투성이 제자의 가슴이 지금, 뜨겁게 울컥이고 있음을 알았다.

“저는… 사실 스네이프 교수님을 이제 세베루스라고 불러요. 세베루스는 아직까지 저를 포터라고 부르는 게 불만이긴 한데, 하핫, 가끔씩 해리라고도 불러 줘요. 아주 약은 것 같지만 쑥스러워하는 거니까 제가 이해해야죠.”
“잠깐, 포터─”
“쉿, 세베루스. 내 말 끊지 마요.”

해리가 무릎 위에 놓인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둘 다 무의식적인 스킨쉽으로 맥고나걸이 보고 있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했다. 두 제자의 진일보에 은사는 즐거운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세베루스, 해리. 행복해 보이는 구나. 1년간 둘이서 잘 지내왔던 게 눈에 보인다.”
“맥고나걸 교수님….”
“그래, 알겠다. 둘이 계속 같이 살기로 한 거구나. 그래서 세베루스가 집에서 출퇴근을 하겠다고…. 이제 이해가 되는 군. 그렇다면 물론 학교에 계속 머무르는 사감직은 어렵겠지.”
“…그, 미네르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네이프가 어렵게 입을 떼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해리의 입술은 아직까지 달싹거렸다. 분명 더 전해야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고, 스네이프는 지금 말려봤자 언젠가 터질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당장의 쑥스러움을 묻어두고, 현재 이 세상에 남은 가장 어른다운 어른에게 말을 전해야 함은 맞았다. 차마 스네이프에게 그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해리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그리핀도르였다. 그리고 듣고 있는 대상자인 미네르바 맥고나걸 역시, 마찬가지의 그리핀도르였다.

“저희는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그래, 보고 있으면 절로 알게 되는 구나.”

뒤에 있던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즐겁게 웃었다. 해리와 스네이프 모두 부끄러워져 잠시 고개를 숙였다. 스네이프는 앞으로 이 고비를 몇 번을 더 넘겨야 될는지를 생각하자 암담했다. 특히나 제가 가르친 어린 놈의 제자들 앞에서 이 사실을 밝혀야 하는 순간에는 차라리 내기니가 그리워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리가 살려준 자신의 두번째 생이 너무나 행복한 순간들로 채워져 갔기에 쉽게 내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나. 그 소식은 정말 놀라운 걸. 세베루스, 정말이니?”
“…….”

짓궂은 질문이었다. 지금 스네이프가 얼마나 창피한 지 뻔히 알면서도 나이 든 은사는 능글맞게 물었다. 결혼, 신혼, 집. 모든 이유가 납득되었다. 이유는 거두절미 다 잘라먹고 냅다 사감직을 그만 두겠다 말한 스네이프도 물론, 이해되었다. 아마 해리가 아니었다면 대답을 듣는 것은 평생 무리였을 성 싶었다. 물론, 그 전에 식을 치른다면 자연히 알게 될 답이었다.

“식의 날짜는 정했니? 참, 이 소식을 들으면 놀랄 사람이 아주 많겠구나…. 기대 되네, 즐겁겠어. 너희 둘이 너무 놀라운 한 쌍이잖니, 해리, 세베루스.”
“저, 교수님. 그게… 식의 날짜는 아직 너무 이른 질문인데요. 저는 고작 일주일 전에 세베루스에게 청혼 했고, 숨어 살다 이제 막 현실로 돌아와서 저희 관계를 밝혀야 할 사람들도 아직 너무 많아요.”
“지금까지 날 포함해서 누가 알고 있지? 설마 내가 처음 밝힌 상대는 아니길 바란다. 그건 너무 부담스럽거든.”
“다행스럽게도 몇 명은 이미 알고 있어요. 오러 선배인 휴스턴 로우왈드, 네빌, 지니─ 이렇게요.”

지니, 의 이름에서 맥고나걸도 스네이프도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남의 남자를 앗아간 약탈자처럼 느껴지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시간이라는 수단으로 해리 포터를 그녀에게서 훔쳐 낸 도둑. 물론 해리가 먼저 스네이프의 주머니 속으로 뛰어 들어온 에메랄드 보석이지만, 자신은 해리보다 스무 살이 많은 어른이었고 그를 가르친 선생이었고, 심지어 해리의 엄마와 친구였고 그녀가 첫사랑이었던 자신임을 알기에 한없이 지금의 관계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해리를 돌려준다는 선택지는 이제 버리기로 결심했다. 우습게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이제 해리 포터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한 때 해리의 엄마인 릴리 에반스가 생의 이유이고 전부였던 것처럼. 스네이프는 그 때와 똑같이 자기 자신을 해리 포터에게 모두 내던지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제게서 해리를 지운다면 스네이프에게 남는 것은 공허한 껍데기 뿐일 것이다. 물론 해리에게 솔직히 이 사실을 밝히기엔, 스네이프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남자였다.

“아직 론, 헤르미온느 너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구나, 해리.”

곰곰히 생각하던 현명한 은사는 그들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해리의 또 다른 가족, 해리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

“네, 교수님. 그렇지만 헤르미온느는 분명 이해해 줄 거예요. 헤르미온느는 지니랑도 친하지만… 뭐, 어쨌든. 론은 걱정이에요. 솔직히 6개월 이상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거든요. 트라이위저드 때보다 절 무시하는 게 더 길어질 지 궁금할 정도로─ 그래도 고작 이 정도로 저희 우정이 박살나진 않을 거예요.”

해리는 확신하는 말투였다. 확실히, 해리와 론의 우정이 평생 깨질 거라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주 아주 적은 확률로 그 사실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스네이프에게 자신이 해리의 짐인 것 같은 느낌을 안겨 주었다. 스네이프에겐 잃을 것이 해리밖에 없었지만, 해리는 가진 게 많아서 잃을 것도 많았다.

자신이 해리 하나만을 욕심내도 될까? 나는─ 해리 포터가 없으면 안돼. 스네이프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거의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지금 그레인저는 학교에 있습니까?”
“물론. 그 아이가 학교에 남아 정규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려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지.”
“이 자리에 그레인저를 불러 주십시오, 미네르바.”
“세베루스!”

해리는 놀라서 자신의 내성적인 연인을 돌아 보았다. 기뻐하는 해리의 얼굴에 스네이프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해리를 기쁘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제 마음이 편하려면 어떤 소리든 듣고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이것은 이기적인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방식이었다. 해리가 저 때문에 누구를 잃든, 자신은 해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해리가 저 때문에 뭔가를 잃는 것도 싫었다. 계속 그런 불편한 걱정 속에 있는 게 싫었기에,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해리, 네가 헤르미온느를 데려오겠니? 그녀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거다.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

해리는 N.E.W.T 시험 준비중인 예민한 헤르미온느에게 사실을 전하기엔 지금 시기가 상당히 좋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합격 통보는 졸업 후에야 받게 될 것이므로, 그 때까지 기다릴 사안도 아니었다. 해리는 일어서서 정복의 매무새를 정리하고 교장실의 문을 나섰다. 스네이프 혼자 맥고나걸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최대한 빠르게 다녀올 생각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예상했듯이 교장실엔 침묵이 내려 앉았다. 맥고나걸과 덤블도어 초상화를 비롯, 다른 교장의 초상화들도 이 새롭고 신선한 스캔들에 몹시 구미가 당겨 보였으나 당사자인 스네이프는 꿋꿋하게 입을 다물 셈이었다. 그러나 덤블도어가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던 게 더 놀랄 일이었다.

“세베루스, 우리 곁에 돌아온 걸 환영하기도 전에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네. 결국엔 자네도 마음이 쌍방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하는구만.”
“닥치십시오 덤블도어.”

맥고나걸과 덤블도어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의 제자를 상냥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마 자네가 먼저 좋아한 건 아니겠지?”
“그 정도의 양심은 놀랍게도 이중 첩자에게도 남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블랙 개새끼한테 던져줬다 보면 되겠죠.”

스네이프는 빈정거리며 덤블도어를 노려 보았다. 초상화 속에 저 노인이 어찌나 살아 생전 그 모습과 똑같았는지 모른다. 맥고나걸은 한 쪽 눈썹을 으쓱하고는 원래 보고있던 서류를 넘겼다.

“잘 어울리더군.”

스네이프는 이 말에는 어떤 대꾸도 못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자신과 해리 포터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저와 해리의 외모의 차이는…….

해리는 누가 봐도 준수했다. 정신 산만해지는 더벅머리의 흑발도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해리의 모습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반듯한 이마에 드러나는 멋스러운 번개무늬 흉터, 짙은 눈썹 아래 보석 같은 녹색 눈과 동그란 검은테 안경. 자유분방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는 모순 된 해리의 외견은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렸다. 퀴디치로 단련 된 체격은 늘씬한 몸에 탄탄한 근육이 잡혔고, 저보다는 작았지만 충분히 키가 컸다. 하지만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어머니 에일린을 쏙 빼닮아 삐쩍 마르고, 창백하고 예민한 인상에다 매부리코였다. 외견상 자랑할 만한 건 부족한 영양상태에서도 쑥쑥 자란 큰 키 말곤 없을 터였다. 그런 저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면, 솔직히 해리에게 실례였다.

“그렇지 않소, 미네르바?”
“그럼요, 알버스. 잘 어울리는 예비부부던데요.”

스네이프는 지체 없이 일어나 교장실 문을 성큼성큼 나섰다. 저 둘 앞에서 그레인저까지 마주하려 했다니 내가 미쳤지. 맥고나걸과 덤블도어 초상화의 웃음소리가 등 뒤로 들려 와 스네이프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가고일 석상 앞으로 나오자 복도는 조용했다. 익숙한 풍경에 스네이프는 조금씩 차분해졌다. 몇 분여를 서성였을까, 복도 끝에서 저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해리가 보였다. 옆에는 해리의 오랜 친구인 헤르미온느가 눈을 반짝이며 따라 오고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기억에 오류라도 있는 것인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으니 새롭게 태어난 인간을 기대하는 것인지 헤르미온느가 저를 저런 눈으로 보는 것은 소름이 돋았다. 문득,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에서 내기니에 물렸다 눈을 뜬 자신을 보던 해리의 눈빛이 떠올랐다. 전에 없이 다정한 그 눈빛은 낯설고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레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인 스네이프가 해리를 보았다. 왜 나와 계세요? 교수님들이 괴롭혔나요? 웃으며 물어 보는 해리의 맑은 얼굴에 그저 스네이프는 끄덕였다.

“살아 계셨을 줄 알았어요! 얼굴도 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세요, 교수님.”
“형식적 겉치레는 그만 두지.”
“아뇨, 정말인데! 예전보다 인상이 좋아지셨어요. 맞지, 해리?”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동의를 구하듯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스네이프는 주변의 빈 교실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깜깜했던 교실은 적당히 어둑할 정도로 등이 켜졌다.

“기사는 읽었어요 교수님. 해리가 언제 말을 해주러 올 지 궁금했는데 퇴근하자 마자 바로 온 차림새로 도서관엘 들어 와서 깜짝 놀랐어요. 해리 포터의 등장에 도서관은 비명 소리에, 책도 날라가고, 완전 폭탄맞은 것처럼 돼서 거기 남아 있었어도 공부는 안됐을거예요.”

스네이프는 이게 헤르미온느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큰 착각이었다. 스네이프는 전교에서 가장 뛰어난 머리를 가진 마녀가 저와의 잠깐의 만남으로 공부가 방해된 것 정도야 상관치 않았다.

“포터, 무슨 얘길 해서 데려왔지?”
“음, 스네이프 교수님이 나랑 같이 호그와트에 와 있고, 할 얘기가 있다는 정도요?”
“네, 정말 궁금해요. 스네이프 교수님이 돌아오자 마자 저를 굳이 불러내서 하실 말씀이 뭔지. N.E.W.T를 위한 마법약 보충수업이라면 기꺼이 받고 싶고요.”

전쟁을 겪었던 소녀는 한층 더 뻔뻔해진 게 틀림없었다. 스네이프는 플라스크를 내밀며 해리가 제 기억을 담게 도와주었던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네가 포터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불렀다.”
“제가 해리의 친구라서요? 해리와 관련 된 얘기인가요? 전 교수님이 저에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해리에게 들어서 교수님과 관련 된 것인 줄─ 잠깐, 둘 다 관련 있는 건가? 맞아요?”

해리는 머쓱하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스네이프는 점점 인상이 나빠지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에게 사실을 직접 밝히려니 갈수록 심각하게 창피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장소가 장소였다. 여긴 교실이었다. 그들의 스승이었던 제가 그렇게 괴롭히며 못살게 굴었던 제자를 현재 사랑하고 있고, 또 여전히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또 다른 제자이자 연인의 친구인 그녀에게 사실을 밝혀야 하는 순간이라니. 어쩌자고 이렇게 남들에게 밝히기도 낯부끄러운 관계를 해리와 시작해 버렸나 ─물론 그게 해리가 들이대서였긴 하지만─ 싶기도 했다.

헤르미온느는 도서관에 해리가 오러복장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뭔가 큰 일이 일어날 느낌이었다. 게다가 1년 만에 나타난 스네이프 교수님이 자신을 찾는다는 해리의 말까지. 그래서 당장 달려 왔더니 둘 다 이렇게 급하게 부른 것치곤 미적거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도 스네이프 교수를 안 세월이 6년이었다. 그런데 스네이프가 이렇게 제 앞에서 입도 못 떼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팔짱을 끼고서 스네이프와 해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분위기는…… 하지만 해리는 지금 지니와…….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건 알고 있었지만, 헤르미온느는 지금 해리와 지니의 관계를 걱정스레 떠올리고 있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설마 저 하나 만나 보겠다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다, 그레인저. 넌 여기 온 진짜 용무에 덤일 뿐이지.”
“네, 역시 그러시군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무슨 용무인데요?”
“교수 복직.”
“아하. 잘 풀리시길 바랄게요, 교수님. 해리? 너는? 스네이프 교수님이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보호자로 따라온 건 아니겠지?”

미취학 아동─?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였고 입 근육이 경직됐다. 그러나 이 건방진 제자의 언동을 가만 지켜보기로 했다. 해리는 어느새 안절부절 못하며 제 친구와 제 연인의 분위기를 살폈다.

“음… 헤르미온느, 말투를 좀…. 그러니까, 나는, 지니와 볼 일이 있었어. 저녁식사 전에 만나고 왔고.”
“지니와 무슨 볼 일? 어제도 교수님의 추도식에서 둘이 만났잖아. 아, 맞아 넌 과거로 갔다가 어제 돌아온 거지. 어제 봤더니 헷갈리네.”
“어… 내가 1년동안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살다보니… 감정에 변화가 좀 생겨서……. 지, 지니와 오늘 헤어졌어.”
“뭐라고?!”

헤르미온느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위로 들썩였다. 해리가 죄를 지은 건 지니 뿐인데도 헤르미온느에게 더 혼날 것 같은 느낌에 식은땀이 다 났다. 지니도 이렇게 나오진 않았는데……. 도와달라는 해리의 간절한 눈빛이 스네이프를 향했다. 스네이프는 뚱하게 쳐다 보더니 그레인저, 하고 입을 열었다. 헤르미온느의 눈이 빠르게 다음 목표를 향했다.

“교수님! 설마 제가 생각하는 게 맞나요?! 제발 그건 사실이 아니니 그리핀도르 마이너스 50점이라고 외쳐 주셨음 좋겠는데요!”
“네가 생각하는 게 사실이라면 너한테 그게 무슨 문젠데, 그레인저?”
“맙소사… 정말이에요?! 해리, 너 스네이프 교수님과 진짜야…?!!”

자신의 오랜 친구가 난데없이 학창시절에 제일 싫어했던 교수와 설마 싶은 그런 관계가 돼서 돌아왔는데 놀라지 않을 친구가 세상 어디 있을까! 게다가 스네이프는…… 스네이프는 해리 엄마의 친구셨는데! 해리도 물론 그걸 잘 알고, 마법세계에는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였다. 아름답고 헌신적인 사랑이야기라고 동화로 후세에 각색 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첫사랑의 아들과……!

“세상에. 믿기지 않아!”

헤르미온느는 입을 틀어 막았다. 이거 진짜 환상적으로 영화 같은 설정 아니야?

“너 정말 미쳤다, 해리! 둘이 사귄 지 얼마나 됐어요? 먼저 좋아한 것도 고백도 당연히 해리 너였겠지? 스네이프 교수님은 언제 해리에 대한 감정을 자각했나요? 맙소사 멀린, 정말! 교수님이 해리를 받아주시다니, 옛날 모습이 전 아직 생생해서 상상도 안돼요.”

해리는 이제 헤르미온느가 아닌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가 말이 많다는 사실과 스네이프의 분노 발화점이 낮다는 사실은 별로 좋은 사실 관계가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두 손을 모으고 열렬한 시선을 보내는 헤르미온느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녀는 이제 발표차 손을 들었으나 제게 무시 당해 눈물을 글썽이던 저학년의 그리핀도르가 아니었다. 못된 심보를 부려봐야 통할 상대도 더이상 아니고, 스네이프 스스로도 별로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진짜로 죽었다 다시 태어나 새 사람이 된 것도 아니었는데. 해리나 헤르미온느가 자신을 전에 없는 눈빛으로 보던 것처럼, 자신도 시선이 달라졌을 수는 있겠지.

“둘 다 이런 장난은 절대로 안 칠 거라는 걸 알지만, 여전히 현실 감각이 없네요! 그래서 더 진짜겠지만, 물론, 해리나 교수님이 서로 사랑한다는 장난을 제게 굳이 왜 치겠어요?”
“맞아, 헤르미온느. 예전같으면 우리가 더 발끈할 농담이잖아. 그렇죠, 세베루스?”
“헙, 해리 너 이제 교수님의 이름을 막 부르는 구나! 정말이었어!”
“그럼 정말이지! 그리고 난 세베루스랑 결혼 할 거─”

스네이프가 구둣발로 해리의 발등을 콱 내리찍었다. 그러나 이미 헤르미온느는 결혼이란 단어를 들은 뒤였다. 이 놀라운 소식에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넋이 나가고 말았다. 해리는 발등을 붙잡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스네이프는 혼자 태연을 가장하며 팔짱을 바투 꼈다.

“결혼?! 언제?!”
“세베루스! 진짜 아프잖아요! 허윽, 아, 아직 안 정해졌어, 헤르미온느. 일주일 전에 내가 청혼을 했거든.”
“청혼? 와! 해리 너 정말…! ……근데 둘 다 반지도 없는데?”

청혼이라는 해리의 폭탄선언에 눈을 빛내던 열아홉 살 소녀 헤르미온느는, 문득 두 사람의 손가락이 모두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아, 민망함에 입을 달싹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일상적으로 대화하다가 튀어나온 프러포즈는 허접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반지가 없어서 못 믿겠다는 건가?”

스네이프가 피식 비웃었다. 그런 것에 돈을 쓰느니 귀한 마법약 재료를 박스째 구입하는 게 이득일 터였다. 소장하고 싶은 서책을 더 주문해도 좋을 테고. 하지만 머글태생의 소녀는 머글이 혼인할 때 필요한 반지부터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해리 역시 머글들과 자라서인지 지니를 생각하며 루비 반지를 준비했었던 걸 스네이프는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걸 자신이 어떻게 잊겠는가? 그것 때문에 해리와 싸운 걸 생각하면, 오히려 반지 따위는 스네이프가 절대로 갖기 싫은 물건이었다.

“증명하면 되는 거겠지?”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잠깐 생각했다가, 금방 끝나는 걸 하기로 결정했다. 스네이프에게 중요한 건 헤르미온느가 저희들의 관계를 인정해주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해리와의 관계를 해리의 친구에게 확실히 낙인 찍어버리고 빨리 해치우는 것이 중요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정복 옷깃을 잡아 제게 끌어 당겼다. 헤르미온느는 어머, 짧은 감탄사와 함께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마치 전과목 O(특출함)가 적힌 성적표를 보는 듯했다. 해리는 설마 하는 눈으로 자신의 내성적인 연인을 ─곧 수정이 필요한 타이틀일 것 같은─ 바라보았다.

마른 책 냄새가 났다. 해리는 입술이 닿자마자 스네이프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꺾었다. 옷깃을 잡은 스네이프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부드럽고 강하게 서로의 혀를 빨자 질척한 소리가 났다. 물기 섞인 소리가 조용한 교실을 울렸다. 헤르미온느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나 호기심을 못 이긴 그리핀도르의 눈은 여전히 곁눈질로 그들을 훔쳐 보고 있었다. 해리와 스네이프 교수의 연애 행각은 생각도 못했던 것인데, 그들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다정했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해리의 눈이 스네이프의 눈과 시선을 맞추며 휘어져 웃었다. 스네이프를 바라보는 해리의 눈빛엔 사랑과 따듯함이 가득했다. 역시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자신이 아는 가장 용기 있는 슬리데린임에 틀림 없다.


벽난로에서 막 나온 스네이프가 로브를 털었다. 떨어진 재는 지팡이를 휘둘러 치우니 바닥이 여전히 반짝거렸다. 먼저 도착한 해리는 벌써 옷걸이에 로브를 걸고 정복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풀어진 정복 재킷 안으로 보이는 흰 셔츠로 해리의 근육질 몸태가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로브를 옷걸이에 걸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크리처는 안 만나 봤네요?”
“사감 일이 어떻게 될 지 결정 되고 만나는 게 낫겠지.”
“근데 기숙사 사감이 꼭 있어야 돼요? 똑똑한 슬리데린들이 알아서 잘 하겠죠.”

스네이프는 이렇게 뻔뻔한 그리핀도르는 처음 본다는 눈으로 해리를 봤다. 해리 포터가 슬리데린을 포장하는 너스레를 떨다니. 그렇게도 저랑 떨어지기가 싫은 건지. 스네이프는 솔직하게, 기분이 좋았다. 해리가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을 티 내주는 게 좋았다. 그리고 지금 이 곳은 해리와 둘 뿐인 해리의 집이었다. 스네이프 또한 솔직해져도 되는 공간이었다.

사실, 스네이프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앞에서 키스했을 때부터 살짝 흥분 된 상태였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해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스킨쉽은 생전 해본 적 없던 경험이었다. 해리는 친구의 앞에서도 생각보다 더 몰입해서 진득한 키스를 했다. 헤르미온느가 뭐라하기 전에 스네이프가 밀어내서 그만 둔거였지, 아니었음 교실에서 끝까지 가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부끄러움도 없는 놈 같으니.

해리가 욕실의 전등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옆에 다가 선 스네이프에 고개를 들었다.

“아, 세베루스. 먼저 씻고 싶어요?”

셔츠 단추를 배꼽 밑까지 푼 해리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스네이프의 표정이 미묘해 보였다. 해리가 갸웃거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왜 저러지?

“포터, 넌… 친구 앞에서 그래놓고 아무렇지도 않나?”
“네? 아. 론이랑 헤르미온느도 제 앞에서 많이 하는데. 걔네 거의 키스중독이에요.”

스네이프는 불시에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정보를 얻게 되자,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해리가 하하핫 웃었다. 그게 신경쓰였던 거예요? 시작은 세베루스가 먼저 해놓고? 해리가 싱글거리면서 셔츠를 마저 벗었다. 스네이프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를 힐끗 보다, 탄탄한 해리의 벗은 상체에 시선이 고정됐다. 아까보다 훨씬 흥분되었다. 스네이프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섹스가 해리의 들이댐으로 시작됐는데, 오늘은 스네이프가 먼저 달아올라 버렸다.

해리의 등 뒤에 선 스네이프가 목덜미에 이마를 묻었다. 답지 않게 먼저 부벼오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웃으며 세베루스? 작게 속삭였다. 뒤쪽으로 손을 뻗은 해리는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짐작한 대로 스네이프의 것이 살짝 서 있었다. 아, 정말 귀여워, 해리는 생각하며 고개를 틀어서 입술을 찾았다. 금방 입술과 혀를 맞춰 오는 스네이프가 너무 귀여웠다.

“같이 씻을까요?”
“…응.”

스네이프의 얼굴이 살짝 붉었다. 해리는 그의 입술 주변에 묻은 침을 다시 핥으며 짧은 키스를 한 번 더 했다. 스네이프가 옷을 벗는 동안, 해리는 얼른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욕실로 들어섰다.

스피너즈 엔드에는 없지만 해리의 집에는 큰 욕조가 있었다. 해리는 물을 틀고 욕실 전체에 보온마법을 약하게 걸었다. 마법이 걸린 욕조엔 금방 물이 가득 찼다. 옷을 다 벗은 스네이프가 들어와 물에 손을 살짝 담갔다. 온도가 괜찮냐는 해리의 물음에 스네이프는 끄덕이고 물 속에 앉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하며 등 뒤에 앉았다. 따스한 물에 피로가 용해되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하루종일 바빴다. 현실로 돌아오자 마자 할 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서는 위즌가모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타임터너와 펜시브 기억 조사가 있었다. 남들 앞에서 스네이프와 저만의 시간을 공유하려니 부끄러운 장면은 없었어도 괜히 신경쓰였다. 퇴근하자 마자 지니를 만나는 일도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었다. 그나마 지니가 이별을 흔쾌히 받아줘서 다행이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배를 끌어안았다. 마른 몸이 부드럽게 안겨왔다. 해리가 제 목덜미를 쪽쪽거리자 스네이프가 피식 웃었다. 세베루스, 사랑해요. 귓가에 해리의 맑은 목소리가 닿였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가슴팍에 더 붙어 앉아서 제 것을 손으로 감쌌다. 해리가 계속해서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스네이프가 손을 움직이자 해리도 손을 겹쳐 잡고 움직임을 도왔다.

“으응… 하아… 해리….”
“세베루스… 흥분했구나? 해리라고 불러주고.”

해리의 다정한 목소리가 스네이프를 취하게 했다. 어떻게 이 정도로 따듯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지 스네이프는 궁금할 정도였다. 피곤할 텐데도 해리는 정성을 다해 스네이프의 사정을 도왔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술을 찾았고 정신없이 혀가 섞였다. 으응, 흐응…! 입술을 맞붙인 채로 스네이프가 신음을 흘려댔다. 해리는 팔에 더 속도를 올리고 귀두 부근을 엄지로 쓸어주었다. 일찍부터 달아올라 있던 몸이라 금방 사정감이 들었다. 힉, 순간 스네이프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물에 정액이 섞여 들었고, 스네이프는 힘이 빠져 해리의 품으로 늘어졌다. 기분 좋다, 스네이프는 멍하니 생각하면서 해리가 지팡이로 정액을 없애는 걸 바라 보았다.

“세베루스는 혹시 남한테 보여지는 것에 흥분하는 타입?”
“…매를 버는 군, 포터.”

흐흣, 웃은 해리가 스네이프를 다시 뒤에서 꽉 안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때릴 기운이 안 나 스네이프는 가만히 안겨 있었다.

“절대 안 보여줄 거예요. 예쁜 모습은 나만 다 볼 건데?”
“그 놈의, 예쁘다는 말 좀.”
“어쩔건데요? 당신 애인이 당신 좀 예뻐한다는데. 세베루스 근데 진짜 너무 예뻐요…… 너무너무…….”

해리의 목소리에 어느새 잠이 어려 있었다. 스네이프는 대충 거품을 일으켜 제 몸에 묻혔다. 그리고 뒤를 돌아, 해리와 마주 보고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서비스가 훌륭한데요, 세베루스? 해리는 퍽 여유롭게 웃었지만, 어느새 잠이 달아난 것 같은 눈빛이었다. 스네이프는 거품 묻은 몸을 해리에게 안겨 비비면서 녹색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네가 피곤해 보여서 대신 씻겨주는 것 뿐이다, 포터.”
“아, 맞아요, 맞아요. 저 진~ 짜 피곤해요, 세베루스. 근데 당신이 엄청 야해서 잠이 확 깨네.”
“그럼 혼자 씻게 놔둘까?”

흥, 비웃으며 스네이프가 엉덩이를 떼려 했다. 해리는 황급히 스네이프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그가 벗어나는 걸 막았다. 어딜. 해리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미끈한 거품이 밑으로 들어가 스네이프의 엉덩이가 미끌거렸다.

“이렇게 야한 와이프를 그냥 두고 자는 건 남편 된 도리가 아니겠죠? 세베루스.”
“말만 많은 건 별론데.”
“하하. 좋아요, 말이 안 나오게 해줄게요.”

오늘 밤처럼 당신이 먼저 도발하는 것도 드문 일이니까. 해리의 손가락이 좁은 구멍을 찾아 들었고, 스네이프는 해리의 입술을 다시 찾아 들었다. 이내, 욕조 밖으로 물이 한 차례 크게 넘쳐 타일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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