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스네이프는 거울 앞에 서서 오랜만에 마법사들이 입을 법한 로브를 걸쳤다. 10년이 넘은 검은색의 로브는 해리가 처음으로 사주었던 것이라, 아껴 쓴 탓으로 새 것처럼 멀끔했다. 조지에게 처음 사랑의 물약을 납품했던 날, 해리가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준 그 로브는 특별한 날에는 꼭 걸치게 되었다. 이를테면 1년동안 숨어 살다 마법부에 요란하게 행차하는 날이라던가, 11년만에 호그와트로 다시 복직하게 되는 오늘 같은 날이라던가에.
작은 방. 거울 딸린 옷장과 책상 두 개, 침대 하나로 이미 꽉 찬 방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해리와 자신이 쓰던 비교적 큰 방은, 아이들이 큰 후로 반을 나눠 그들이 쓰게 내주었다. 물론, 작은 이 집에서 네 식구가 살기엔 터무니 없어 보이기도 했다. 드레이코는 놀러올 적마다 릴리에게 대궐 같은 저택이 필요하다 했지만, 해리는 이 집이 뭐가 어떻냐고 대저택의 도련님에게 반박했다. 스네이프조차 코웃음이 나오는 반박에도, 드레이코는 은사의 눈치를 보며 그저 릴리에게 제 집에 놀러 오기만 권했다. 릴리와 알버스는 제 아버지가 가진 부가 말포이 저택 같은 집도 충분히 살 수 있음을 모를 것이었다. 그럼에도 해리가 이사 계획을 논한 적은 없어, 스네이프는 그러려니 했다. 이 집에서는 행복한 기억밖에 없다는 자신의 반려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웃은 탓이다.
거울에서 시선을 돌린 스네이프는 옷장에 붙은 사진들에 잠시 눈을 두었다. 해리가 찍은 사진들이 영구보존 마법에 걸려서 선명한 색상으로 빛이 났다. 쌍둥이들의 기저귀를 가는 스네이프, 릴리를 안은 채로 재우다가 같이 잠든 스네이프, 스네이프에게 볼키스인 척 입에 키스하는 해리, 눈사람을 굴리는 해리와 쌍둥이들, 어린 쌍둥이들의 목욕 모습, 프랑스로 놀러갔을 때 에펠탑 앞에서 아이들을 각자 안은 포터 부부, 대부 2명과 대모가 쌍둥이들과 웃고 있는 사진 같은…….
“세베루스, 뭐해요? 아직 준비 덜 됐어요?”
열려있는 문에 똑똑 노크하며 해리가 물었다. 사진들에서 시선을 돌린 스네이프는 바닥의 짐가방을 들었다.
“아이들은?”
“알은 어젯밤에 짐을 다 싸놨다는데. 방금 릴리 꺼 다 싸주고 론의 차에 실었어요. 론이 출근 전에 태워준다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릴리는 널 닮았으니 그렇지.”
해리는 출발 아침에 급하게 짐을 싸던 저를 떠올리며 뜨끔했다. 실제 본 적도 없으면서, 뻔한 해리 포터의 행동에 정통한 스네이프였다.
“어제 자기 전에 애들 방에 가서 무슨 얘기했어요?”
계단을 내려오며 해리가 물었다. 이제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스네이프가 해줄 법한 이야기도 뻔하지만, 해리는 모른척 물었다.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라 그랬지.”
“하하핫. 역시.”
현관을 닫고 나오니, 랜드로버의 짐칸 앞에 서있는 론이 보였다. 릴리와 알버스는 이미 뒷좌석에 앉아서 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제일 늑장을 부리네. 론의 투덜거림에 스네이프가 째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 가슴을 더 넓게 펴며 뻗대는, 경력 12년차의 오러 팀장 론 위즐리였다. 몇 년 안 가 부장, 국장까지 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는 그의 모습은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론을 스네이프는 앞에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었다. 어쨌든 출근 전에 저희를 킹스크로스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알버스의 대부는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스네이프, 비행하는 걸 한 번만 눈 감아준다면 아주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이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를 꺼내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또 2학년 때 해리와 너처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싶나 보군. 유명세에 허덕이는 버릇 아직도 못 버렸나? 론 위즐리.”
“그 차는 고물이었고 이 차는 새차라고요, 스네이프! 투명해지는 마법도 헤르미온느가 도와줬…… 아, 이건 비밀이예요.”
론이 윙크 하며 씨익 웃었다. 헤르미온느가 도와줬다는 말에 스네이프마저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얼마나 더 빨리 도착할지는 몰라도, 해보던가. 툴툴대며 팔짱을 끼는 스네이프에 릴리와 알버스는 창 밖을 보며 들뜬 마음을 표출했다.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는데다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타고 기차역으로 간다니!
앞의 보조석에 앉은 해리는 새삼스런 기분을 느꼈다. 도비가 역 입구를 막는 바람에, 하늘을 나는 아서 씨의 자동차로 론과 호그와트까지 날아갔다, 성질 더러운 나무에 패대기 쳐졌던 고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때 저와 론을 기다렸다가 퇴학시키겠다며 신이 났던 자신의 반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리는 손등으로 웃음을 막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 함께 차를 타고 날아서 킹스크로스역으로 가고 있었다. 릴리가 들떠 소리쳤다.
“비행기 같아!”
“비행기보다도 더 높게 날아오를 수 있지.”
론이 으쓱하며 말했다. 열두 살적과 달리 운전 실력도 많이 늘어, 유려하게 차의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머글의 음악을 틀어 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킹스크로스까지 편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진홍빛 급행열차가 연기를 뿜었다. 해리를 알아본 학생들이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스네이프를 알아보는 학생은 없었다. 대외 행사는 전부 해리 혼자 참석하고, 교직에 섰던 것도 11년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를 대신한 그 긴 대타 마법약 교수직을 그만둘 때, 시원하다는 반응이었다. 전혀 섭섭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부잣집 도련님다운 흥청망청 생활을 이제야 좀 보내 보겠다며 해리의 어깨를 짚고 웃었다. 그러면서 또 신종 마법약 연구중이라는 걸 해리도 모르지 않았다.
“아빠에게 인사 했어…!”
릴리가 흥분해 방방거렸다. 알버스는 으쓱해서 해리에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고학년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모두 호그와트 교수라는 것에 괜히 자부심이 샘솟는 열한 살짜리 쌍둥이들이었다.
“테디, 빅투아르!”
빌과 플뢰르가 에드워드를 데리고 빅투아르와 함께 다가왔다. 동갑 친구인 릴리와 빅투아르는 손을 맞잡고 꺄르륵 웃었다.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한다는 기쁨에 두 소녀는 나눌 말이 많았다. 알버스는 두 살 터울의 형인 에드워드와 ─오늘 머리카락 색은 매우 정상적인 금발이었다─ 인사를 나눴다.
스네이프는 빌과 해리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다가 바닥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에 해리가 제가 들겠다며 뺏어 드는 것까지도, 사실 스네이프의 전략이었다. 얼른 기차에 오르자는 눈치에 해리도 결국 웃으며 그를 따랐다. 제 아이들은 에드워드와 빅투아르와 함께 오르면 될 일이었다. 릴리와 알버스도 또 부모끼리만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탄 건 해리나 스네이프나 모두 오랜만의 일이었다. 기차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스네이프에겐 더욱 까마득한 옛 일이었다. 앞서가는 해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스네이프는 붉은 머리카락을 찰랑이던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그 때 함께 기차에 올랐었는데……. 이제는 그녀의 아들과 함께 기차에 오르는군. 해리가 릴리의 아들인 것보다, 해리의 딸이 릴리인 게 더 익숙해졌지만 새삼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호그와트 급행열차의 복도를 걷고 있는, 이 순간에.
“오, 여기 비었다.”
해리가 찾아낸 빈 객실에 둘이 착석했다. 마주 보고 앉은 채, 둘 다 추억에 잠겨서인지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졌다.
“……넌 이름이 뭐야?”
창가에 팔꿈치를 얹은 채, 고개를 기댄 해리가 웃으며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깐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역할극에 동참해주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내 이름은 안 물어봐?”
“해리 포터. 살아남은 아이. 번개 무늬 흉터를 보니 딱 알겠는데.”
“세베루스, 그건 네 목에도 있는 것 같은데?”
큭큭거리며 해리가 웃었다. 정말 장난기가 많은 신랑이다. 어린 신랑이라고 부르기엔 더이상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해리는 지금, 자신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스네이프의 나이였다.
“…어떤 놈이 내 목에다 지팡이를 대고 이렇게 만들어놨지.”
“저런, 누가 그런 악독한 짓을. 네 상처를 한 번 봐도 될까?”
“뭐, 그러든지.”
스네이프가 으쓱하며 거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스네이프의 옆에 냉큼 앉은 해리가 손으로 셔츠의 깃을 벌렸다. 오래 전에 새긴 흉의 위로 살이 조금 덮였지만 거의 그대로였다.
“아프진 않아?”
“전혀.”
“한 번 빨아봐도 될까?”
“아니. 죽고싶다면 그렇게 해, 포터.”
오랜만에 ‘포터’라 불린 해리가 빵 터져 웃었다. 거의 10년만인데도 불구하고 늘 그렇게 불린 듯이 익숙했다. 해리는 배를 잡고 웃다가, 스네이프의 어깨에 자연스레 머리를 기댔다. 해리가 기대는 순간 풍기는 체향에, 스네이프는 입꼬리를 미묘히 올렸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티도 나지 않을 움직임이었다. 스네이프는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괴었다.
“초면인데 너무 붙는 거 아닌가?”
“아, 왠지 모르게 네가 편안해서, 세베루스. 결혼까지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착각이 대단한데.”
“진짜로 편해. 잠 올 것 같아. 아침에 나갈 준비하느라 바빴거든.”
“그래? 난 같이 사는 사람이 다 알아서 해서 그닥.”
해리는 스네이프가 아침에 편했다는 사실에 그저 웃었다. 정말로 잠이 오기도 해서, 스네이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서 나는 마른 책의 냄새, 같은 샤워 용품의 냄새 따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네이프는 물끄러미 시선을 내렸다. 제 어깨에 기댄 반려가 색, 색 규칙적인 숨을 쉬었다. 잠이 온다더니 정말로 금세 잠들어버렸군. 조심스레, 해리가 깨지 않도록 스네이프도 제 머리를 그의 정수리에 기대었다. 해리의 텁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의 부숭한 느낌에 스네이프는 잠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로 이대로, 해리와 함께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열한 살 소년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또, 언제나 해리와 함께……. 그와 평생을 같이 살며 어느 순간이든 이런 생각이 또 들 것이었다.
기차가 움직였다. 알버스와 릴리는 기차에 잘 탔겠지, 스네이프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낳은 해리와 저의 자녀들은 똑부러지고 총명한 아이들이니까. 고대했던 호그와트 입학식 아침부터 그 아이들이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제 부모들이 저들보다 부부간 서로에게 더 관심이 많고, 애정이 넘쳐 그들도 제 나름 생존방식을 익힌 탓일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비뚜름히 입가를 올리고 어린 아이들을 키울 때를 회상했다.
“세상에, 멀린, 덤블도어시여, 미쳤나봐, 이 요정들…….”
갓 스무 살 대부 론과 대모인 헤르미온느는 비명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겨우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들 옆에 서있는 드레이코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해리는 첫째인 릴리의 대부가 된 드레이코에게 릴리를 안아보라고 시키고 싶었으나, 드레이코의 저 상태로는 절대로 제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알버스가 진짜 해리와 똑닮았다며 감탄했다. 아이들 둘 다 머리숱이 많고 부석부석했으나, 알버스는 눈을 살짝 뜨자마자 보인 초록 눈이 너무나 예뻤다. 릴리는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금발의 자신의 대부를 올려다보았다. 드레이코는 거의 울려고 했다.
“만져봐.”
해리의 재촉에도 드레이코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웃음 섞인 한숨을 쉰 해리가 드레이코의 손을 잡아 끌어, 릴리의 뺨에 두었다. 푹 들어가는 말랑한 아기의 볼살에 드레이코가 어깨를 움찔 튀었다. 제 딸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친구를 보며 해리는 키득거리고 웃었다.
에드워드를 몇 번 안아 보았던 헤르미온느가 알버스를 침대에서 안아올렸다. 해리, 꼭 널 안고 있는 기분이야! 진짜 이상해……. 헤르미온느의 웃음기 섞인 외침에 론도 동조했다. 포터 가의 유전자도 위즐리의 붉은머리에 주근깨 유전자만큼이나 미친 수준이었다. 입양했다고 둘러댈 수 있겠어? 론의 질문에 해리도 스네이프도 어깨를 으쓱였다. 남자의 임신보다는 믿겨지겠지. 아니면 마법세계의 신이 된 해리 포터는 사실 자웅동체라던가. 스네이프의 말에 세 명의 친구들은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애애우앵….”
웃음소리에 놀랐는지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놀란 친구들이 헙, 입을 다물고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를 낳고 이틀 상간에 아기 다루기에 능숙해진 스네이프는 알버스부터 받아갔다. 얘가 남자애라 그런지 더 질기고 목청도 크게 울어. 제 아이에게도 단호한 평가를 내린 스네이프가 가슴팍의 섶을 벌리려 했다. 그에 깜짝 놀란 해리 포함 세 명의 제자들이 각자의 명칭대로 스네이프를 부르짖었다. 세베루스! 혹은 스네이프! 혹은 교수님! 이라고 소리를 지른 그들을 보며 스네이프가 시끄럽다는 눈을 했다.
“얘들 앞에서 젖을 물리려 하면 어떡해요!!”
“해리, 난 남자고. 마법으로 젖꼭지에서 애들의 먹이가 분비될 뿐인데 무슨 상관…….”
“당신 미쳤어!?”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씩씩거리는 해리를 보며 세 명의 친구들만 눈치가 보였다. 어쨌든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고 난리가 났다. 해서, 해리는 한숨을 쉬고 릴리를 안아들었다. 흔들어주고 도닥였더니 젖 먹이는 것보단 느리지만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스네이프도 뚱한 얼굴로 알버스의 등을 토닥였다.
“남자 가슴인데 뭐 어떻다고….”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해리가 찌릿 째려보았다. 친구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둘의 냉전 아닌 냉전을 바라보았다. 해리와 스네이프가 서로를 향해 투덜거리고 째려보는 모습은 익숙한 그림이기는 했다. 그 내용이 민망해서 그렇지.
친구들이 가고난 다음, 해리는 당신 몸은 내 것이라고 2차 다툼을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열을 올리며 싸우다가, 결국에 해리가 ‘해리다운’ 방식으로 저의 몸이 어떻게 그의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간식 수레입니다. 뭐 좀 드실래요, 교수님들?”
설풋 잠에 들었던 스네이프가 눈앞의 마녀를 올려다보았다. 뒤척인 스네이프의 몸짓에 덩달아 깬 해리가 안경 밑으로 눈을 비볐다. 어, 간식 수레! 해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해리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고 단호박샐러드 샌드위치와 개구리 초콜릿과 버티 보트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를 구입했다.
“저 이거 처음 봤을 땐 수레에 있는 거 전부 다 조금씩 샀었는데.”
“그걸 다 먹겠다고? 욕심도 많았군.”
“론이랑 나눠 먹었어요. 그 때까지 한 번도 누군가와 뭔가를 나눠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법사들의 간식도 궁금하고. 어, 당신 카드가 나왔다! 개학 첫 날부터 운수가 좋네.”
개구리 초콜릿을 뜯은 해리가 스네이프 카드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차역까지 오며 들은 머글 가수의 노래였다. 카드 속의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며 눈을 깜박이더니 빙그레 미소지었다. 해리는 그에게 마주 웃어주며,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기존 문구에 화를 낸 이후 수정된 카드의 문구를 차근차근 읽었다.
[세베루스 포터, 최연소 포션 마스터이자 전 호그와트 교장, 전쟁 영웅. 1998년 호그와트 전투에서 해리 포터에게 전투의 승리를 이끌 기억을 건네주었다. 해리 포터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 두 명을 두었다. 드레이코 말포이와 저주 주문 치료약 개발을 하였다. 몇 가지 마법주문을 발명 했고 취미는 독서다.]
해리는 초콜릿을 반으로 나눴다. 제가 먹여주는 것에 익숙해서 스네이프가 입을 벌리는 것이 귀여웠다. 해리는 초콜릿의 더 큰 쪽을 스네이프의 혀 위에 올려주었다. 스네이프는 초콜릿을 넘긴 뒤,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해리는 금방 샌드위치를 삼키고 강낭콩 젤리에 손을 뻗었다. 스네이프는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았으므로, 해리가 해괴한 맛을 집어먹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나 기대했다.
“세브, 지금 나 이상한 맛 먹길 기대하고 있죠?”
“그럴리가. 내가 그렇게 성격이 못돼보이나?”
스네이프의 뻔뻔한 태도에 해리가 풉 웃음을 흘렸다. 그가 머글이었으면 배우가 되기를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혀를 놀리는지, 열한 살의 순진한 해리 포터였다면 깜박 속았을지도 몰랐다.
“음, 색깔이 정상적인 이걸 먹어봐야지. ……흐흣, 딸기맛.”
“아쉽군.”
“하하, 너무해.”
해리는 스네이프도 젤리를 집어 먹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흠, 스네이프는 잠깐의 고민 끝에 젤리에 손을 뻗었다. 게다가 회색의 이상한 색깔이었다. 놀란 해리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저 사람이 저럴 리가 없는데. 그러나 곧 스네이프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강제로 해리의 입에 넣어진 회색의 젤리에서는 후추맛이 났다. 아, 진짜!! 세베루스 스네이프 포터!!! 해리가 성질을 내자 스네이프는 즐겁게 웃었다. 미간을 찡그린 해리가 그런 반려를 보더니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스네이프의 얼굴을 당겨 키스한 해리는 의기양양하게 후추맛 젤리의 반 쪽을 그의 입에 넘겼다.
스네이프는 바로 바닥에 젤리를 퉤 뱉어냈다. 기차 안에서 키스에다가, 해리에게 이런 식으로 보복당할 줄은 몰랐다. 먼저 장난쳐놓고 불쾌해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스네이프는 스스로도 제 성격이 더럽다고 인정했다. 대놓고 기분 상한 티를 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듯 으쓱거렸다. 그리고 달콤한 체리맛을 씹고서 다시 스네이프의 얼굴을 끌어와 입을 맞추었다.
“응….”
여전히 키스할 때마다 귀엽게 앓는 소리를 내는 반려였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달래듯 등을 쓸어주고, 쪽 입을 맞추었다 떨어졌다.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자꾸.”
“부부인데 뭐 어때요.”
“네 학생들은 네가 이렇게 문란한지 아나?”
“스네이프 교수가 학교에 없는데 애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문란한 해리 포터의 부인, 세베루스 포터씨.”
“그래서 다시 학생들에게 알려주려고 첫 날부터 이러는 건가?”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스네이프가 툴툴댔다. 해리는 그렇게 되면 좋죠, 하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러고보니 세베루스가 복직하면 하고 싶던 수업이 있었는데.”
“나를 네 수업에 끌고 가려고? 그리고 너만 수업 있는 줄 아나? 나도 수업 있어, 포터 교수.”
“안 겹치는 날도 있을 거 아니예요.”
“무슨 수업을 하고 싶어서?”
귀찮다는 얼굴로 머리를 괸 채, 스네이프가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상상만 해도 행복해서 들뜬 얼굴로 스네이프를 보았다. 꼭 쥔 주먹이 신나서 붕붕거렸다. 해리의 나이도 어느새 삼십줄에 들어섰는데, 여전히 스네이프의 눈에는 애처럼 보이는 것도 저런 면 때문일까. 스네이프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귀여운 반려를 보았다.
“패트로누스! 당신 것이랑 내 것을 학생들 앞에서 보여주면 너무 멋질 것 같지 않아요?!”
스네이프는 살짝 움찔했다. 해리의 말을 듣자, 해리의 열여덟 생일에 선물로 주었던 암사슴 패트로누스의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건……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감동 받을만한 환상적으로 신비한 광경, 은백색의 사슴 한 쌍 패트로누스들. 해리의 머리로 이런 걸 떠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겹치지 않는 수업마다 너랑 같이 3층까지 올라가서 내 패트로누스를 보여줘야하나?”
“보여줄 생각은 있단 거네요?”
정곡을 찔렸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고 팔짱을 꼈다. 해리에게는 자꾸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속마음을 들켜서 불쾌하기도 하고,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다는 그 사실이, 속내를 감추는 저의 반려로는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쁘면 패트로누스만 교실로 올려줘도 되고요.”
흥,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다. 해리 역시, 스네이프를 옆에 두고서 함께 보여주는 것을 원할 터였다. 제 비위 맞춰주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여전하군. 스네이프가 손을 뻗어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스네이프의 손길을 받았다.
창 밖의 풍경이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풍경이 어두워지고 별빛이 하늘을 수놓을 때, 기차가 호그스미드 역에 섰다. 해리가 짐가방을 모두 들겠다는 것을 스네이프가 거절했다. 그에 해리가 뭐라 하려다가, 빈 손을 잡아오는 스네이프의 손에 금세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세스트랄 마차의 앞에서는 해리가 먼저 올랐다. 그리고 손을 뻗어 부인, 하고 스네이프를 부르며 씨익 웃어보였다. 하, 기가 막힌 웃음을 한 번 흘리고 그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른 스네이프였다. 꼭 소꿉장난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도 이런 장난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기분은 꽤 괜찮았다.
“네빌.”
방학 두 달을 보내고 오랜만에 만난 네빌에 해리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며 해리를 반긴 네빌이 해리의 뒤에 스네이프 교수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교수였다. 직장동료여서 그런지 사적인 만남은 잘 갖지 않던 네빌과 해리인데다, 버로우에서 모일 때만 1년에 한 두 번 본 게 다였다. 스네이프도 네빌과 악수를 하고 교수석에 착석했다.
네 개의 기숙사 테이블은 1학년을 제외하고 모두 앉아있었다. 낯선 스네이프의 얼굴에 궁금해하는 학생들과 개구리 초콜릿 스네이프 카드를 통해 그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혼재했다. 한 때는 호그와트의 교장 직도 했었는데,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여전히 교장실에 걸려있을 자신의 초상화를 생각했다.
문이 열렸다. 플리트윅의 뒤로 열한 살 1학년 신입생들이 쪼르르 따라들어왔다. 금발, 갈발, 적발의 아이들 틈에 까만 정수리의 두 아이를 발견한 해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를 보고 있던 릴리도 팔을 높게 들어 손을 흔들고 알버스도 가슴 앞에 살짝 손을 들어 짧게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처음으로 신입생들이 교수석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떡해, 우리 애들이 호그와트에 왔다니…. 믿기지가 않네. 언제 릴리랑 알이 저렇게 컸을까요, 세베루스….”
“어느 기숙사에 배정받는지 지켜보고 기뻐해도 안 늦는다, 해리.”
“릴리…… 아무래도, 집에서 쫓겨나겠네요.”
어딜 봐도 릴리가 슬리데린에 들어갈 가망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도 물론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를 슬리데린에 넣을 뻔 했던 것으로, 마법의 모자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떨어졌기에 그래도 스네이프는 약간의 기대를 했다. 제 아빠처럼 무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
모자의 기숙사 배정식이 시작되었다. 여러 학생들이 불렸다, 각자의 테이블로 찾아갔다.
“릴리 포터!”
그리고 마침내 저희들의 딸아이의 순서였다. 포터라는 성에, 릴리가 마법세계 영웅이자 그들 학교의 교수인 해리 포터의 딸임을 알고, 기숙사 테이블이 술렁였다. 해리는 주먹을 꼭 쥐고 릴리가 의자로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왔어야 하는 건데. 해리가 중얼거렸고, 기억을 보관해서 펜시브로 보라는 스네이프의 다소 팔불출적인 핀잔이 있었다.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의 사감인 네빌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다 옆에서 느껴지는 눈초리에 움찔거리며 손을 멈추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 뒤에서 쿡쿡 웃었다. 어쨌든 릴리가 집에서 쫓겨나면, 방이 많은 대부의 대저택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릴리는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들썩거리며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신나게 달려나갔다. 제 엄마가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낸다 했던 협박따위는 기억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협박이 이렇게 전연 먹히지 않는 것은, 소녀 또한 ‘포터’의 피가 흘러서일 것임을 확신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에드워드가 릴리를 반겨주며 포옹하는 모습이 보였다.
“알버스 포터!”
또 한 명의 포터에 학교가 술렁거렸다. 게다가 누가 봐도 해리의 아들인 똑닮은 모습에 학생들이 들썩거렸다. 교수석의 해리는 흐뭇하게 웃으며 알버스를 보았다. 알버스는 충분히 제 엄마의 기대에 부흥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슬리데린!”
알버스가 그럼 그렇지, 으쓱해하며 모자를 내려놓았다. 드레이코처럼 건들거리지는 않았지만 자신만만하게 슬리데린으로 걸어가는 제 아들을 보는 해리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얼굴만 저를 닮았지, 성정은 제 엄마를 빼다 박은 모습이 해리는 마냥 귀여웠다. 스네이프는 알버스가 슬리데린을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떡해요, 릴리는 그리핀도르에 가서.”
“알버스가 그리핀도르인 것보단 낫지. 네 얼굴이랑 똑같은 얼굴로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는 꼴을 내가 봤으면…….”
“아, 심장마비 왔죠, 세브. 큰일이지.”
흥, 고개를 돌린 스네이프에 해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랬으면 내가 인공호흡 해줄게요. 다정하고 장난스런 말에도 스네이프는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네빌과 플리트윅만 민망해하며 교장이 일어서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듯 맥고나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생 여러분, 재학생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우선, 새로운 마법약 교수이며 슬리데린 사감을 맡으실 스네이프 교수님을 소개하죠. 사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원래 긴 시간 학교에서 일하셨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교수 직을 몇 년 쉬시다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를.”
스네이프는 일어서지도 않았다. 박수칠 놈들은 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해리와 네빌, 릴리와 알버스, 에드워드와 빅투아르는 열렬한 박수를 보냈지만 학생들은 벌써부터 싸늘한 기운을 감지하고 멈칫거리며 박수를 쳤다. 릴리는 스네이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버스는 슬리데린들 틈에서 피식 짧게 웃고,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바로 옆의 스네이프를 바라봤다가, 슬리데린 기숙사 앞쪽에 앉은 알버스에,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릴리, 에드워드에 시선을 두면서 찬찬한 미소를 띄웠다. 그들은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자신의 가족이었다. 한 살에 상실했다고 생각한 가족을, 지금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해리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슬며시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식사를 앞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투덜대려던 스네이프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해리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해리에게 손을 잡혀 주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해리에게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들어온 포터 부부용 슬리데린 사감의 방이었다. 이보다 작은 기존의 사감 방은 드레이코가 쓰고, 그간 여기는 해리 혼자 쓰던 방이었다. 도련님이 그 작은 방에서 10년을 넘게 지냈다니, 스네이프조차 자신들에게 코가 꿰인 불쌍한 제자가 안타깝게 여겨졌다. 드레이코는 저주 주문 치료제를 개발한 호그와트 마법약 교수로서의 생활이 제 명예를 찾아주고, 무엇보다 릴리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불편도 감수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다행스럽게도, 릴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침대에 털썩 걸터 앉았다.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왔더니 피로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해서 기차를 탔지만, 다음 해부터는 애들만 기차에 태운 뒤, 저희들은 호그와트의 정문 앞까지 순간이동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친 스네이프의 얼굴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피곤한 해리였으나, 그래도 저보다는 반려가 걱정이 되었다. 스네이프에게 다가간 해리가 품에 그의 상체를 안았다. 속절없이 안겨오는 스네이프가 여전히, 당연하게도 사랑스러웠다.
“세베루스, 얼른 자요.”
“……씻어야…….”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씻고 다녔다고요.”
그 말에 스네이프는 없던 기력도 생겨서 해리의 등을 퍽 때렸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기름져진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얽어서 슥, 슥 쓸어내렸다.
“오늘 기차 탔을 때, 진짜 입학할 때 기분이 났어요.”
“……나도.”
“우리가 정말 열한 살이고, 동갑이고, 기차에서 처음 만나는 그런 상상도 했고…….”
“……나도, 해리.”
돌이켜보면, 언제나 서로는 같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사랑하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해리가 스네이프를 안은 팔을 풀고, 그의 옆에 앉았다. 기차에서처럼 스네이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해리가 잘록한 허리도 꼭 안아왔다.
“미래에서 온 나랑, 동거를 시작한 첫 날의 저녁 기억해요?”
“내가 기억력 하나는 좋아서.”
“나도 그 날은 생생하게 기억나요. 내가 그 때 ‘말실수’ 했었잖아요, 당신한테.”
스네이프는 해리가 가리키는 말실수가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 분위기가 완전히 싸해졌던 그 순간인가. 스네이프는 서로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던 당돌한 해리 포터의 발언이 떠올랐고, 자신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던 것도 떠올렸다. 그 때는 해리의 그 말이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는 면이 있었다. 저희가 친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희박하던 때에,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우리 이제,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지 않아요?”
스네이프를 꼭 안고서, 어깨에 턱을 걸친 채 해리가 물어왔다. 스네이프는 앉아있는 것에 지쳐서 몸을 뒤로 눕혔다. 그에 따라 함께 침대에 쓰러진 해리가 저를 안은 채 하하 웃었다. 스네이프는 슬슬 졸음이 내려앉는 눈으로 해리의 녹색 눈을 찾았다. 늘 그랬지만 해리는 제 시선을 참 잘 알아차리고, 또렷하게 눈을 맞춰왔다.
“해리, 너는…….”
“응, 세베루스.”
“나한테는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지.”
“……맞아, 세베루스.”
해리는 눈이 감기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제 가슴에 끌어왔다. 늘 다정하고 안온한 해리의 품에 스네이프는 편안해졌다. 이 안에서 언제까지고 지친 숨을 쉬고나서, 안정을 되찾을 생각을 하면, 믿을 수 없게 행복해지고 말았다. 해리의 큰 손이 자장가를 부르듯 스네이프의 등을 다독였다. 스네이프는 잠에 들기 전 잠깐의 순간, 오늘도 왠지 해리와 같은 꿈을 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살, 동갑의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기차 안에서 만나, 서로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꿈을.
(完)
─
완결... 입니다.
최대한 원작 바탕으로 스네이프 행복하게 해주고, 해스네 사랑하는 거 보고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어찌 됐든 제 목적엔 부합했습니다.
스네이프 사랑해... 근데 그게 해리랑 사랑해야 내가 좋은...... 그런 마음입니다.
짧지는 않은 글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연재 중간에 텀이 길게 끊겼는데도(1년+3년...) 잊지 않고 제 글을 찾아와주신 분들도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겐 특별하게 읽혔기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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