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스네이프는 거울 앞에 서서 오랜만에 마법사들이 입을 법한 로브를 걸쳤다. 10년이 넘은 검은색의 로브는 해리가 처음으로 사주었던 것이라, 아껴 쓴 탓으로 새 것처럼 멀끔했다. 조지에게 처음 사랑의 물약을 납품했던 날, 해리가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준 그 로브는 특별한 날에는 꼭 걸치게 되었다. 이를테면 1년동안 숨어 살다 마법부에 요란하게 행차하는 날이라던가, 11년만에 호그와트로 다시 복직하게 되는 오늘 같은 날이라던가에.

작은 방. 거울 딸린 옷장과 책상 두 개, 침대 하나로 이미 꽉 찬 방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해리와 자신이 쓰던 비교적 큰 방은, 아이들이 큰 후로 반을 나눠 그들이 쓰게 내주었다. 물론, 작은 이 집에서 네 식구가 살기엔 터무니 없어 보이기도 했다. 드레이코는 놀러올 적마다 릴리에게 대궐 같은 저택이 필요하다 했지만, 해리는 이 집이 뭐가 어떻냐고 대저택의 도련님에게 반박했다. 스네이프조차 코웃음이 나오는 반박에도, 드레이코는 은사의 눈치를 보며 그저 릴리에게 제 집에 놀러 오기만 권했다. 릴리와 알버스는 제 아버지가 가진 부가 말포이 저택 같은 집도 충분히 살 수 있음을 모를 것이었다. 그럼에도 해리가 이사 계획을 논한 적은 없어, 스네이프는 그러려니 했다. 이 집에서는 행복한 기억밖에 없다는 자신의 반려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웃은 탓이다.

거울에서 시선을 돌린 스네이프는 옷장에 붙은 사진들에 잠시 눈을 두었다. 해리가 찍은 사진들이 영구보존 마법에 걸려서 선명한 색상으로 빛이 났다. 쌍둥이들의 기저귀를 가는 스네이프, 릴리를 안은 채로 재우다가 같이 잠든 스네이프, 스네이프에게 볼키스인 척 입에 키스하는 해리, 눈사람을 굴리는 해리와 쌍둥이들, 어린 쌍둥이들의 목욕 모습, 프랑스로 놀러갔을 때 에펠탑 앞에서 아이들을 각자 안은 포터 부부, 대부 2명과 대모가 쌍둥이들과 웃고 있는 사진 같은…….

“세베루스, 뭐해요? 아직 준비 덜 됐어요?”

열려있는 문에 똑똑 노크하며 해리가 물었다. 사진들에서 시선을 돌린 스네이프는 바닥의 짐가방을 들었다.

“아이들은?”
“알은 어젯밤에 짐을 다 싸놨다는데. 방금 릴리 꺼 다 싸주고 론의 차에 실었어요. 론이 출근 전에 태워준다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릴리는 널 닮았으니 그렇지.”

해리는 출발 아침에 급하게 짐을 싸던 저를 떠올리며 뜨끔했다. 실제 본 적도 없으면서, 뻔한 해리 포터의 행동에 정통한 스네이프였다.

“어제 자기 전에 애들 방에 가서 무슨 얘기했어요?”

계단을 내려오며 해리가 물었다. 이제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스네이프가 해줄 법한 이야기도 뻔하지만, 해리는 모른척 물었다.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라 그랬지.”
“하하핫. 역시.”

현관을 닫고 나오니, 랜드로버의 짐칸 앞에 서있는 론이 보였다. 릴리와 알버스는 이미 뒷좌석에 앉아서 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제일 늑장을 부리네. 론의 투덜거림에 스네이프가 째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 가슴을 더 넓게 펴며 뻗대는, 경력 12년차의 오러 팀장 론 위즐리였다. 몇 년 안 가 부장, 국장까지 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는 그의 모습은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론을 스네이프는 앞에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었다. 어쨌든 출근 전에 저희를 킹스크로스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알버스의 대부는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스네이프, 비행하는 걸 한 번만 눈 감아준다면 아주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이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를 꺼내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또 2학년 때 해리와 너처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싶나 보군. 유명세에 허덕이는 버릇 아직도 못 버렸나? 론 위즐리.”
“그 차는 고물이었고 이 차는 새차라고요, 스네이프! 투명해지는 마법도 헤르미온느가 도와줬…… 아, 이건 비밀이예요.”

론이 윙크 하며 씨익 웃었다. 헤르미온느가 도와줬다는 말에 스네이프마저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얼마나 더 빨리 도착할지는 몰라도, 해보던가. 툴툴대며 팔짱을 끼는 스네이프에 릴리와 알버스는 창 밖을 보며 들뜬 마음을 표출했다.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는데다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타고 기차역으로 간다니!

앞의 보조석에 앉은 해리는 새삼스런 기분을 느꼈다. 도비가 역 입구를 막는 바람에, 하늘을 나는 아서 씨의 자동차로 론과 호그와트까지 날아갔다, 성질 더러운 나무에 패대기 쳐졌던 고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때 저와 론을 기다렸다가 퇴학시키겠다며 신이 났던 자신의 반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리는 손등으로 웃음을 막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 함께 차를 타고 날아서 킹스크로스역으로 가고 있었다. 릴리가 들떠 소리쳤다.

“비행기 같아!”
“비행기보다도 더 높게 날아오를 수 있지.”

론이 으쓱하며 말했다. 열두 살적과 달리 운전 실력도 많이 늘어, 유려하게 차의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머글의 음악을 틀어 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킹스크로스까지 편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진홍빛 급행열차가 연기를 뿜었다. 해리를 알아본 학생들이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스네이프를 알아보는 학생은 없었다. 대외 행사는 전부 해리 혼자 참석하고, 교직에 섰던 것도 11년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를 대신한 그 긴 대타 마법약 교수직을 그만둘 때, 시원하다는 반응이었다. 전혀 섭섭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부잣집 도련님다운 흥청망청 생활을 이제야 좀 보내 보겠다며 해리의 어깨를 짚고 웃었다. 그러면서 또 신종 마법약 연구중이라는 걸 해리도 모르지 않았다.

“아빠에게 인사 했어…!”

릴리가 흥분해 방방거렸다. 알버스는 으쓱해서 해리에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고학년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모두 호그와트 교수라는 것에 괜히 자부심이 샘솟는 열한 살짜리 쌍둥이들이었다.

“테디, 빅투아르!”

빌과 플뢰르가 에드워드를 데리고 빅투아르와 함께 다가왔다. 동갑 친구인 릴리와 빅투아르는 손을 맞잡고 꺄르륵 웃었다.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한다는 기쁨에 두 소녀는 나눌 말이 많았다. 알버스는 두 살 터울의 형인 에드워드와 ─오늘 머리카락 색은 매우 정상적인 금발이었다─ 인사를 나눴다.

스네이프는 빌과 해리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다가 바닥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에 해리가 제가 들겠다며 뺏어 드는 것까지도, 사실 스네이프의 전략이었다. 얼른 기차에 오르자는 눈치에 해리도 결국 웃으며 그를 따랐다. 제 아이들은 에드워드와 빅투아르와 함께 오르면 될 일이었다. 릴리와 알버스도 또 부모끼리만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탄 건 해리나 스네이프나 모두 오랜만의 일이었다. 기차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스네이프에겐 더욱 까마득한 옛 일이었다. 앞서가는 해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스네이프는 붉은 머리카락을 찰랑이던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그 때 함께 기차에 올랐었는데……. 이제는 그녀의 아들과 함께 기차에 오르는군. 해리가 릴리의 아들인 것보다, 해리의 딸이 릴리인 게 더 익숙해졌지만 새삼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호그와트 급행열차의 복도를 걷고 있는, 이 순간에.

“오, 여기 비었다.”

해리가 찾아낸 빈 객실에 둘이 착석했다. 마주 보고 앉은 채, 둘 다 추억에 잠겨서인지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졌다.

“……넌 이름이 뭐야?”

창가에 팔꿈치를 얹은 채, 고개를 기댄 해리가 웃으며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깐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역할극에 동참해주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내 이름은 안 물어봐?”
“해리 포터. 살아남은 아이. 번개 무늬 흉터를 보니 딱 알겠는데.”
“세베루스, 그건 네 목에도 있는 것 같은데?”

큭큭거리며 해리가 웃었다. 정말 장난기가 많은 신랑이다. 어린 신랑이라고 부르기엔 더이상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해리는 지금, 자신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스네이프의 나이였다.

“…어떤 놈이 내 목에다 지팡이를 대고 이렇게 만들어놨지.”
“저런, 누가 그런 악독한 짓을. 네 상처를 한 번 봐도 될까?”
“뭐, 그러든지.”

스네이프가 으쓱하며 거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스네이프의 옆에 냉큼 앉은 해리가 손으로 셔츠의 깃을 벌렸다. 오래 전에 새긴 흉의 위로 살이 조금 덮였지만 거의 그대로였다.

“아프진 않아?”
“전혀.”
“한 번 빨아봐도 될까?”
“아니. 죽고싶다면 그렇게 해, 포터.”

오랜만에 ‘포터’라 불린 해리가 빵 터져 웃었다. 거의 10년만인데도 불구하고 늘 그렇게 불린 듯이 익숙했다. 해리는 배를 잡고 웃다가, 스네이프의 어깨에 자연스레 머리를 기댔다. 해리가 기대는 순간 풍기는 체향에, 스네이프는 입꼬리를 미묘히 올렸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티도 나지 않을 움직임이었다. 스네이프는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괴었다.

“초면인데 너무 붙는 거 아닌가?”
“아, 왠지 모르게 네가 편안해서, 세베루스. 결혼까지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착각이 대단한데.”
“진짜로 편해. 잠 올 것 같아. 아침에 나갈 준비하느라 바빴거든.”
“그래? 난 같이 사는 사람이 다 알아서 해서 그닥.”

해리는 스네이프가 아침에 편했다는 사실에 그저 웃었다. 정말로 잠이 오기도 해서, 스네이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서 나는 마른 책의 냄새, 같은 샤워 용품의 냄새 따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네이프는 물끄러미 시선을 내렸다. 제 어깨에 기댄 반려가 색, 색 규칙적인 숨을 쉬었다. 잠이 온다더니 정말로 금세 잠들어버렸군. 조심스레, 해리가 깨지 않도록 스네이프도 제 머리를 그의 정수리에 기대었다. 해리의 텁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의 부숭한 느낌에 스네이프는 잠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로 이대로, 해리와 함께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열한 살 소년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또, 언제나 해리와 함께……. 그와 평생을 같이 살며 어느 순간이든 이런 생각이 또 들 것이었다.

기차가 움직였다. 알버스와 릴리는 기차에 잘 탔겠지, 스네이프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낳은 해리와 저의 자녀들은 똑부러지고 총명한 아이들이니까. 고대했던 호그와트 입학식 아침부터 그 아이들이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제 부모들이 저들보다 부부간 서로에게 더 관심이 많고, 애정이 넘쳐 그들도 제 나름 생존방식을 익힌 탓일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비뚜름히 입가를 올리고 어린 아이들을 키울 때를 회상했다.


“세상에, 멀린, 덤블도어시여, 미쳤나봐, 이 요정들…….”

갓 스무 살 대부 론과 대모인 헤르미온느는 비명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겨우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들 옆에 서있는 드레이코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해리는 첫째인 릴리의 대부가 된 드레이코에게 릴리를 안아보라고 시키고 싶었으나, 드레이코의 저 상태로는 절대로 제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알버스가 진짜 해리와 똑닮았다며 감탄했다. 아이들 둘 다 머리숱이 많고 부석부석했으나, 알버스는 눈을 살짝 뜨자마자 보인 초록 눈이 너무나 예뻤다. 릴리는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금발의 자신의 대부를 올려다보았다. 드레이코는 거의 울려고 했다.

“만져봐.”

해리의 재촉에도 드레이코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웃음 섞인 한숨을 쉰 해리가 드레이코의 손을 잡아 끌어, 릴리의 뺨에 두었다. 푹 들어가는 말랑한 아기의 볼살에 드레이코가 어깨를 움찔 튀었다. 제 딸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친구를 보며 해리는 키득거리고 웃었다.

에드워드를 몇 번 안아 보았던 헤르미온느가 알버스를 침대에서 안아올렸다. 해리, 꼭 널 안고 있는 기분이야! 진짜 이상해……. 헤르미온느의 웃음기 섞인 외침에 론도 동조했다. 포터 가의 유전자도 위즐리의 붉은머리에 주근깨 유전자만큼이나 미친 수준이었다. 입양했다고 둘러댈 수 있겠어? 론의 질문에 해리도 스네이프도 어깨를 으쓱였다. 남자의 임신보다는 믿겨지겠지. 아니면 마법세계의 신이 된 해리 포터는 사실 자웅동체라던가. 스네이프의 말에 세 명의 친구들은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애애우앵….”

웃음소리에 놀랐는지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놀란 친구들이 헙, 입을 다물고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를 낳고 이틀 상간에 아기 다루기에 능숙해진 스네이프는 알버스부터 받아갔다. 얘가 남자애라 그런지 더 질기고 목청도 크게 울어. 제 아이에게도 단호한 평가를 내린 스네이프가 가슴팍의 섶을 벌리려 했다. 그에 깜짝 놀란 해리 포함 세 명의 제자들이 각자의 명칭대로 스네이프를 부르짖었다. 세베루스! 혹은 스네이프! 혹은 교수님! 이라고 소리를 지른 그들을 보며 스네이프가 시끄럽다는 눈을 했다.

“얘들 앞에서 젖을 물리려 하면 어떡해요!!”
“해리, 난 남자고. 마법으로 젖꼭지에서 애들의 먹이가 분비될 뿐인데 무슨 상관…….”
“당신 미쳤어!?”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씩씩거리는 해리를 보며 세 명의 친구들만 눈치가 보였다. 어쨌든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고 난리가 났다. 해서, 해리는 한숨을 쉬고 릴리를 안아들었다. 흔들어주고 도닥였더니 젖 먹이는 것보단 느리지만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스네이프도 뚱한 얼굴로 알버스의 등을 토닥였다.

“남자 가슴인데 뭐 어떻다고….”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해리가 찌릿 째려보았다. 친구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둘의 냉전 아닌 냉전을 바라보았다. 해리와 스네이프가 서로를 향해 투덜거리고 째려보는 모습은 익숙한 그림이기는 했다. 그 내용이 민망해서 그렇지.

친구들이 가고난 다음, 해리는 당신 몸은 내 것이라고 2차 다툼을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열을 올리며 싸우다가, 결국에 해리가 ‘해리다운’ 방식으로 저의 몸이 어떻게 그의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간식 수레입니다. 뭐 좀 드실래요, 교수님들?”

설풋 잠에 들었던 스네이프가 눈앞의 마녀를 올려다보았다. 뒤척인 스네이프의 몸짓에 덩달아 깬 해리가 안경 밑으로 눈을 비볐다. 어, 간식 수레! 해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해리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고 단호박샐러드 샌드위치와 개구리 초콜릿과 버티 보트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를 구입했다.

“저 이거 처음 봤을 땐 수레에 있는 거 전부 다 조금씩 샀었는데.”
“그걸 다 먹겠다고? 욕심도 많았군.”
“론이랑 나눠 먹었어요. 그 때까지 한 번도 누군가와 뭔가를 나눠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법사들의 간식도 궁금하고. 어, 당신 카드가 나왔다! 개학 첫 날부터 운수가 좋네.”

개구리 초콜릿을 뜯은 해리가 스네이프 카드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차역까지 오며 들은 머글 가수의 노래였다. 카드 속의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며 눈을 깜박이더니 빙그레 미소지었다. 해리는 그에게 마주 웃어주며,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기존 문구에 화를 낸 이후 수정된 카드의 문구를 차근차근 읽었다.

[세베루스 포터, 최연소 포션 마스터이자 전 호그와트 교장, 전쟁 영웅. 1998년 호그와트 전투에서 해리 포터에게 전투의 승리를 이끌 기억을 건네주었다. 해리 포터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 두 명을 두었다. 드레이코 말포이와 저주 주문 치료약 개발을 하였다. 몇 가지 마법주문을 발명 했고 취미는 독서다.]

해리는 초콜릿을 반으로 나눴다. 제가 먹여주는 것에 익숙해서 스네이프가 입을 벌리는 것이 귀여웠다. 해리는 초콜릿의 더 큰 쪽을 스네이프의 혀 위에 올려주었다. 스네이프는 초콜릿을 넘긴 뒤,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해리는 금방 샌드위치를 삼키고 강낭콩 젤리에 손을 뻗었다. 스네이프는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았으므로, 해리가 해괴한 맛을 집어먹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나 기대했다.

“세브, 지금 나 이상한 맛 먹길 기대하고 있죠?”
“그럴리가. 내가 그렇게 성격이 못돼보이나?”

스네이프의 뻔뻔한 태도에 해리가 풉 웃음을 흘렸다. 그가 머글이었으면 배우가 되기를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혀를 놀리는지, 열한 살의 순진한 해리 포터였다면 깜박 속았을지도 몰랐다.

“음, 색깔이 정상적인 이걸 먹어봐야지. ……흐흣, 딸기맛.”
“아쉽군.”
“하하, 너무해.”

해리는 스네이프도 젤리를 집어 먹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흠, 스네이프는 잠깐의 고민 끝에 젤리에 손을 뻗었다. 게다가 회색의 이상한 색깔이었다. 놀란 해리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저 사람이 저럴 리가 없는데. 그러나 곧 스네이프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강제로 해리의 입에 넣어진 회색의 젤리에서는 후추맛이 났다. 아, 진짜!! 세베루스 스네이프 포터!!! 해리가 성질을 내자 스네이프는 즐겁게 웃었다. 미간을 찡그린 해리가 그런 반려를 보더니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스네이프의 얼굴을 당겨 키스한 해리는 의기양양하게 후추맛 젤리의 반 쪽을 그의 입에 넘겼다.

스네이프는 바로 바닥에 젤리를 퉤 뱉어냈다. 기차 안에서 키스에다가, 해리에게 이런 식으로 보복당할 줄은 몰랐다. 먼저 장난쳐놓고 불쾌해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스네이프는 스스로도 제 성격이 더럽다고 인정했다. 대놓고 기분 상한 티를 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듯 으쓱거렸다. 그리고 달콤한 체리맛을 씹고서 다시 스네이프의 얼굴을 끌어와 입을 맞추었다.

“응….”

여전히 키스할 때마다 귀엽게 앓는 소리를 내는 반려였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달래듯 등을 쓸어주고, 쪽 입을 맞추었다 떨어졌다.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자꾸.”
“부부인데 뭐 어때요.”
“네 학생들은 네가 이렇게 문란한지 아나?”
“스네이프 교수가 학교에 없는데 애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문란한 해리 포터의 부인, 세베루스 포터씨.”
“그래서 다시 학생들에게 알려주려고 첫 날부터 이러는 건가?”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스네이프가 툴툴댔다. 해리는 그렇게 되면 좋죠, 하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러고보니 세베루스가 복직하면 하고 싶던 수업이 있었는데.”
“나를 네 수업에 끌고 가려고? 그리고 너만 수업 있는 줄 아나? 나도 수업 있어, 포터 교수.”
“안 겹치는 날도 있을 거 아니예요.”
“무슨 수업을 하고 싶어서?”

귀찮다는 얼굴로 머리를 괸 채, 스네이프가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상상만 해도 행복해서 들뜬 얼굴로 스네이프를 보았다. 꼭 쥔 주먹이 신나서 붕붕거렸다. 해리의 나이도 어느새 삼십줄에 들어섰는데, 여전히 스네이프의 눈에는 애처럼 보이는 것도 저런 면 때문일까. 스네이프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귀여운 반려를 보았다.

“패트로누스! 당신 것이랑 내 것을 학생들 앞에서 보여주면 너무 멋질 것 같지 않아요?!”

스네이프는 살짝 움찔했다. 해리의 말을 듣자, 해리의 열여덟 생일에 선물로 주었던 암사슴 패트로누스의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건……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감동 받을만한 환상적으로 신비한 광경, 은백색의 사슴 한 쌍 패트로누스들. 해리의 머리로 이런 걸 떠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겹치지 않는 수업마다 너랑 같이 3층까지 올라가서 내 패트로누스를 보여줘야하나?”
“보여줄 생각은 있단 거네요?”

정곡을 찔렸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고 팔짱을 꼈다. 해리에게는 자꾸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속마음을 들켜서 불쾌하기도 하고,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다는 그 사실이, 속내를 감추는 저의 반려로는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쁘면 패트로누스만 교실로 올려줘도 되고요.”

흥,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다. 해리 역시, 스네이프를 옆에 두고서 함께 보여주는 것을 원할 터였다. 제 비위 맞춰주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여전하군. 스네이프가 손을 뻗어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스네이프의 손길을 받았다.

창 밖의 풍경이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풍경이 어두워지고 별빛이 하늘을 수놓을 때, 기차가 호그스미드 역에 섰다. 해리가 짐가방을 모두 들겠다는 것을 스네이프가 거절했다. 그에 해리가 뭐라 하려다가, 빈 손을 잡아오는 스네이프의 손에 금세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세스트랄 마차의 앞에서는 해리가 먼저 올랐다. 그리고 손을 뻗어 부인, 하고 스네이프를 부르며 씨익 웃어보였다. 하, 기가 막힌 웃음을 한 번 흘리고 그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른 스네이프였다. 꼭 소꿉장난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도 이런 장난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기분은 꽤 괜찮았다.


“네빌.”

방학 두 달을 보내고 오랜만에 만난 네빌에 해리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며 해리를 반긴 네빌이 해리의 뒤에 스네이프 교수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교수였다. 직장동료여서 그런지 사적인 만남은 잘 갖지 않던 네빌과 해리인데다, 버로우에서 모일 때만 1년에 한 두 번 본 게 다였다. 스네이프도 네빌과 악수를 하고 교수석에 착석했다.

네 개의 기숙사 테이블은 1학년을 제외하고 모두 앉아있었다. 낯선 스네이프의 얼굴에 궁금해하는 학생들과 개구리 초콜릿 스네이프 카드를 통해 그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혼재했다. 한 때는 호그와트의 교장 직도 했었는데,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여전히 교장실에 걸려있을 자신의 초상화를 생각했다.

문이 열렸다. 플리트윅의 뒤로 열한 살 1학년 신입생들이 쪼르르 따라들어왔다. 금발, 갈발, 적발의 아이들 틈에 까만 정수리의 두 아이를 발견한 해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를 보고 있던 릴리도 팔을 높게 들어 손을 흔들고 알버스도 가슴 앞에 살짝 손을 들어 짧게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처음으로 신입생들이 교수석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떡해, 우리 애들이 호그와트에 왔다니…. 믿기지가 않네. 언제 릴리랑 알이 저렇게 컸을까요, 세베루스….”
“어느 기숙사에 배정받는지 지켜보고 기뻐해도 안 늦는다, 해리.”
“릴리…… 아무래도, 집에서 쫓겨나겠네요.”

어딜 봐도 릴리가 슬리데린에 들어갈 가망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도 물론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를 슬리데린에 넣을 뻔 했던 것으로, 마법의 모자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떨어졌기에 그래도 스네이프는 약간의 기대를 했다. 제 아빠처럼 무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

모자의 기숙사 배정식이 시작되었다. 여러 학생들이 불렸다, 각자의 테이블로 찾아갔다.

“릴리 포터!”

그리고 마침내 저희들의 딸아이의 순서였다. 포터라는 성에, 릴리가 마법세계 영웅이자 그들 학교의 교수인 해리 포터의 딸임을 알고, 기숙사 테이블이 술렁였다. 해리는 주먹을 꼭 쥐고 릴리가 의자로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왔어야 하는 건데. 해리가 중얼거렸고, 기억을 보관해서 펜시브로 보라는 스네이프의 다소 팔불출적인 핀잔이 있었다.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의 사감인 네빌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다 옆에서 느껴지는 눈초리에 움찔거리며 손을 멈추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 뒤에서 쿡쿡 웃었다. 어쨌든 릴리가 집에서 쫓겨나면, 방이 많은 대부의 대저택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릴리는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들썩거리며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신나게 달려나갔다. 제 엄마가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낸다 했던 협박따위는 기억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협박이 이렇게 전연 먹히지 않는 것은, 소녀 또한 ‘포터’의 피가 흘러서일 것임을 확신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에드워드가 릴리를 반겨주며 포옹하는 모습이 보였다.

“알버스 포터!”

또 한 명의 포터에 학교가 술렁거렸다. 게다가 누가 봐도 해리의 아들인 똑닮은 모습에 학생들이 들썩거렸다. 교수석의 해리는 흐뭇하게 웃으며 알버스를 보았다. 알버스는 충분히 제 엄마의 기대에 부흥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슬리데린!”

알버스가 그럼 그렇지, 으쓱해하며 모자를 내려놓았다. 드레이코처럼 건들거리지는 않았지만 자신만만하게 슬리데린으로 걸어가는 제 아들을 보는 해리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얼굴만 저를 닮았지, 성정은 제 엄마를 빼다 박은 모습이 해리는 마냥 귀여웠다. 스네이프는 알버스가 슬리데린을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떡해요, 릴리는 그리핀도르에 가서.”
“알버스가 그리핀도르인 것보단 낫지. 네 얼굴이랑 똑같은 얼굴로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는 꼴을 내가 봤으면…….”
“아, 심장마비 왔죠, 세브. 큰일이지.”

흥, 고개를 돌린 스네이프에 해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랬으면 내가 인공호흡 해줄게요. 다정하고 장난스런 말에도 스네이프는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네빌과 플리트윅만 민망해하며 교장이 일어서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듯 맥고나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생 여러분, 재학생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우선, 새로운 마법약 교수이며 슬리데린 사감을 맡으실 스네이프 교수님을 소개하죠. 사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원래 긴 시간 학교에서 일하셨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교수 직을 몇 년 쉬시다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를.”

스네이프는 일어서지도 않았다. 박수칠 놈들은 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해리와 네빌, 릴리와 알버스, 에드워드와 빅투아르는 열렬한 박수를 보냈지만 학생들은 벌써부터 싸늘한 기운을 감지하고 멈칫거리며 박수를 쳤다. 릴리는 스네이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버스는 슬리데린들 틈에서 피식 짧게 웃고,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바로 옆의 스네이프를 바라봤다가, 슬리데린 기숙사 앞쪽에 앉은 알버스에,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릴리, 에드워드에 시선을 두면서 찬찬한 미소를 띄웠다. 그들은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자신의 가족이었다. 한 살에 상실했다고 생각한 가족을, 지금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해리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슬며시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식사를 앞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투덜대려던 스네이프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해리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해리에게 손을 잡혀 주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해리에게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들어온 포터 부부용 슬리데린 사감의 방이었다. 이보다 작은 기존의 사감 방은 드레이코가 쓰고, 그간 여기는 해리 혼자 쓰던 방이었다. 도련님이 그 작은 방에서 10년을 넘게 지냈다니, 스네이프조차 자신들에게 코가 꿰인 불쌍한 제자가 안타깝게 여겨졌다. 드레이코는 저주 주문 치료제를 개발한 호그와트 마법약 교수로서의 생활이 제 명예를 찾아주고, 무엇보다 릴리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불편도 감수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다행스럽게도, 릴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침대에 털썩 걸터 앉았다.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왔더니 피로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해서 기차를 탔지만, 다음 해부터는 애들만 기차에 태운 뒤, 저희들은 호그와트의 정문 앞까지 순간이동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친 스네이프의 얼굴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피곤한 해리였으나, 그래도 저보다는 반려가 걱정이 되었다. 스네이프에게 다가간 해리가 품에 그의 상체를 안았다. 속절없이 안겨오는 스네이프가 여전히, 당연하게도 사랑스러웠다.

“세베루스, 얼른 자요.”
“……씻어야…….”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씻고 다녔다고요.”

그 말에 스네이프는 없던 기력도 생겨서 해리의 등을 퍽 때렸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기름져진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얽어서 슥, 슥 쓸어내렸다.

“오늘 기차 탔을 때, 진짜 입학할 때 기분이 났어요.”
“……나도.”
“우리가 정말 열한 살이고, 동갑이고, 기차에서 처음 만나는 그런 상상도 했고…….”
“……나도, 해리.”

돌이켜보면, 언제나 서로는 같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사랑하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해리가 스네이프를 안은 팔을 풀고, 그의 옆에 앉았다. 기차에서처럼 스네이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해리가 잘록한 허리도 꼭 안아왔다.

“미래에서 온 나랑, 동거를 시작한 첫 날의 저녁 기억해요?”
“내가 기억력 하나는 좋아서.”
“나도 그 날은 생생하게 기억나요. 내가 그 때 ‘말실수’ 했었잖아요, 당신한테.”

스네이프는 해리가 가리키는 말실수가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 분위기가 완전히 싸해졌던 그 순간인가. 스네이프는 서로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던 당돌한 해리 포터의 발언이 떠올랐고, 자신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던 것도 떠올렸다. 그 때는 해리의 그 말이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는 면이 있었다. 저희가 친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희박하던 때에,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우리 이제,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지 않아요?”

스네이프를 꼭 안고서, 어깨에 턱을 걸친 채 해리가 물어왔다. 스네이프는 앉아있는 것에 지쳐서 몸을 뒤로 눕혔다. 그에 따라 함께 침대에 쓰러진 해리가 저를 안은 채 하하 웃었다. 스네이프는 슬슬 졸음이 내려앉는 눈으로 해리의 녹색 눈을 찾았다. 늘 그랬지만 해리는 제 시선을 참 잘 알아차리고, 또렷하게 눈을 맞춰왔다.

“해리, 너는…….”
“응, 세베루스.”
“나한테는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지.”
“……맞아, 세베루스.”

해리는 눈이 감기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제 가슴에 끌어왔다. 늘 다정하고 안온한 해리의 품에 스네이프는 편안해졌다. 이 안에서 언제까지고 지친 숨을 쉬고나서, 안정을 되찾을 생각을 하면, 믿을 수 없게 행복해지고 말았다. 해리의 큰 손이 자장가를 부르듯 스네이프의 등을 다독였다. 스네이프는 잠에 들기 전 잠깐의 순간, 오늘도 왠지 해리와 같은 꿈을 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살, 동갑의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기차 안에서 만나, 서로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꿈을.




(完)












완결... 입니다.
최대한 원작 바탕으로 스네이프 행복하게 해주고, 해스네 사랑하는 거 보고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어찌 됐든 제 목적엔 부합했습니다.
스네이프 사랑해... 근데 그게 해리랑 사랑해야 내가 좋은...... 그런 마음입니다.
짧지는 않은 글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연재 중간에 텀이 길게 끊겼는데도(1년+3년...) 잊지 않고 제 글을 찾아와주신 분들도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겐 특별하게 읽혔기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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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00년 2월 24일, 목요일. 스네이프는 창가에 앉아 눈이 내린 벽돌집 가득한 동네를 바라보았다. 불이 붙은 벽난로에서는 집 안 전체를 데우는 따듯한 열기가 퍼졌다. 저번 달 생일에 몰리로부터 받아 입은 초록색 스웨터에는 은색의 실로 S가 자수 되어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떠봤다는 슬리데린 느낌의 스웨터는, 넉넉해서 만삭의 몸에 입기에 적절했다. 몰리는 자신의 임신을 몰랐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그녀가 항시 몸에 맞지 않는 사이즈로 크게 만들었음을 알았다.

두 생명이 자라고 있는 배는, 마법으로 감추지 않으면 삐쩍 마른 몸의 배에 커다란 아이스크림 스쿱을 떠놓은 것처럼 볼록했다. 스네이프는 습관대로 배를 만지다가, 창 밖을 보다가, 책을 들었다가, 홍차를 한 모금 마시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이잉. 손목에서 울리는 진동에 스네이프는 어쩔 수 없이 반가운 눈을 했다. 해리의 생일에 자신이 선물했던 연락망에 H.P라고 글자가 떠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신가요?]
“재미없어, 해리.”
[하하하…. 거기도 눈 왔어요? 저는 오늘 크리스랑 다이애나랑 해그리드랑 눈사람 세 개나 만들었는데.]
“감기 걸릴라. 네가 애냐? 뭐, 여기도 눈 와서 지금 창 밖 보고있었다.”
[세브도 집 안 춥게 하고 있죠? 감기 걸리면 큰일나요. 출산이 코 앞인데. 눈사람 만든 건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요. 다이애나가 크리스마스에 카메라 선물 받은 걸로 찍었거든요.]
“네 사진만 보면 돼.”
[정말 냉정한 사랑꾼이라니까, 세베루스.]

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네이프는 시계판 위에 입술을 붙이는 해리를 상상하며 웃었다.

[보고싶어요.]
“저녁에 보잖아.”
[이거 영상으로는 통화 못해요? 위대한 마법사 세베루스는 가능하지 않아요?]
“좀.”

부른 배로 숨 쉬는 것부터가 힘든데, 마력까지 낭비하라는 철부지 어린 신랑에 스네이프는 한숨을 쉬었다. 해리도 제가 한 소리가 철 없던 걸 아는지, 판 너머로 머쓱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저녁마다 보면서도 유난인 해리였다. 그렇지만 사실, 스네이프 역시 하루 종일 해리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벽난로로 해리가 들어오기만을 줄곧 기다렸다.

[드레이코가 언제 애 나오냐고 닦달하면서, 벌써 드레스랑 정장 사주겠다고 난리예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한테.]
“흥, 벌은 돈 탕진하고 싶은 거지.”

그 말포이 가문의 돈과 드레이코가 저주치료제로 긁어 모으는 돈을 탕진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해리가 판 너머로 하핫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려의 농담이 진심으로 웃긴 것 같았다.

[근데 진짜 우리 애들 나오기까지 얼마 안 남았네요. 오늘 나올 수도 있을까?]
“그런 무서운 소린 하지도 마.”
[왜요, 세브는 우리 애들 안 보고싶어요? 하긴, 애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도 그러던데. 근데 전 아니거든요! 얼른 아이들 보고싶어요. 아이들 안고 있는 세브 모습도.]
“참 나…. 애가 세 명이 되는데 그럼 무섭지, 안 무섭나?”

자신의 세쌍둥이 발언은 여전히 유효했다. 해리 포터가 셋인 걸 상상하며 스네이프는 온 인상을 찡그렸다. 해리가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을 일이 아니라고.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 창 밖을 노려보았다. 저 밖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해리를 상상했다. 스네이프의 상상 속에서는 그리핀도르의 1학년들이 아닌, 저와 해리의 아이들이 아빠인 해리와 눈사람을 굴리고 있었다.

[제가 왜 애예요. 아, 시간이 벌써…. 저 수업 들어가요. 나중에 저녁에 봐요, 사랑해요 세브! ─포터 교수님, 안녕하세요!─]

일방적으로 해리의 전화가 끊겼다. 학생들이 옆에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종일 해리의 연락을 기다린 만삭의 임부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까맣게 물든 판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괜히 씁쓸해졌다. 여성호르몬이 과하게 분비되는 탓일 테지. 남성인 스네이프로서는 낯선 일이라, 그 빌어먹을 호르몬에 기분이 더 좌우되었다.

해리의 퇴근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지, 스네이프는 고개를 들어 벽의 시계를 보았다. 순간, 고개를 들며 당겨진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스네이프는 눈가를 팍 찡그렸다. 아래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는 느낌까지……. 데번 부인이 가르쳐준 출산 전 전조인 듯 했다. 이를 악물었다가, 사라진 통증에 표정을 풀며 스네이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고도 진짜 진통이 오기까지는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터였다. 정말 거지 같은 일이군. 두 번 다시는 안 해. 스네이프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해리의 복부를 한 번 콱 걷어차줄 생각을 했다.


“제가 방해했나요?”
“아니, 다이애나. 끊으려던 참이었어.”

해리는 웃으며 그리핀도르의 1학년 우등생을 내려다보았다. 수업 전에 과제나 교과서, 책에서 본 것들에 대해 물어오는 것은 소녀의 습관이었다. 머글세계에서 온 소녀는 마법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남들보다 더 강했다. 소녀는 오늘 패트로누스에 대해 물어왔다. 볼드모트가 돌아왔을 당시, 영국 전역을 덮은 디멘터들에 대한 옛날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헤르미온느처럼 옛 신문까지 읽고 있는 소녀에 해리는 정말 어깨가 으쓱였다. 마법부에서 일 하느라 바쁜 친구에게 이 소녀를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

“이건 너무 고등마법이라서 1학년 수업에서는 다뤄지지 않겠죠? 패트로누스들의 실물은 정말 예쁘다고 들었어요….”
“맞아. 난 어떤 패트로누스를 보고서는 첫 눈에 사랑에 빠졌는걸.”

해리가 씨익 웃으며 복도를 걸었다. 소녀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걸음에 따라 흔들렸다. 3층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까지 가까워졌다.

“오늘 보여줄까?”
“네? 정말요…?!”
“응, 고등마법이라고 꼭 고학년 때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는걸. 난 패트로누스를 개인적으로 3학년 때 배웠고.”
“3학년이요……?!”

과연 영웅은 다르구나. 해리의 앞에서 영웅 소리를 했다간 1점 감점을 받기에, 다이애나는 얼른 제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소녀의 행동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보여, 해리는 작게 웃었다. 교실은 빈 의자 없이 차있었다. 다이애나는 언제나처럼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교과서는 가방 안에 넣고, 지팡이를 들으렴.”

시작은 늘 그렇듯, 여태 배운 마법들을 복습하는 것이었다. 해리가 가르치는 방어술 교실은 결투장처럼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학생들은 익숙하게 대련 상대를 찾고, 주문을 외쳤다. 기본적인 방어마법을 모두 완벽하게 익혀, 해리의 수업은 실습 위주였어도 부상자가 적었다. 학생들의 대련을 지켜보던 해리가 박수를 치며 연습을 종료시켰다. 해를 넘어가며 다들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이래서는 7학년 때 가르칠 것이 없겠는걸, 하는 생각까지도 들어 해리는 뿌듯했다.

“오늘 보여줄 마법은, 굉장히 어려워서 성공하는 마법사가 드문 마법입니다. 하지만 내 수업을 받는 여러분들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디멘터로부터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할 때도 유용하며,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주는 능력이 있는 마법이니까.”

교실 내의 아이들이 흥분해 술렁거렸다. 디멘터라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아는 것일 수도, 어렵지만 유용한 마법에 대한 열망일 수도 있었다. 다이애나가 푸른 눈을 빛내며 해리의 지팡이 쥔 손을 바라보았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해리가 수 십 번을 외친 그 주문은, 오늘도 가장 아름다운 은백색의 빛을 뿌리며 발을 구르고, 웅장한 뿔을 좌우로 흔들었다.


처음 피가 살짝 비친 이후로, 스네이프는 몇 번 더 속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아이들이 나오려는 건 확실해보였다. 통증이 없을 때 준비를 마쳐두기 위해, 스네이프는 허리를 짚고 볼썽사납게 뒤뚱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스스로의 꼴이 무척이나 한심스럽게 느껴진 게 솔직한 본심이었다. 이런 기분도 아이들을 눈앞에서 본다면 누그러질 수 있을지 스네이프는 궁금했다.

철저한 성미 탓에 산실의 준비가 다 되었다. 산실로 쓸 안방에는 새로 세탁한 시트가 깔린 침대와 그 옆의 아기침대 두 개까지 나란히 붙었다. 해리의 세 명의 친구들이 준비해준 육아용품도 한가득이었고 아이들의 옷까지 수십 벌이었다. 성장 전에 다 입혀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윽, 스네이프는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침대의 헤드를 꽉 쥐고 허리를 움츠렸다. 진통 간격이 최소 5분은 돼야 데번 부인을 부를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재었다. 아직 간격은 7분 정도…….

뒤뚱대며 준비를 했더니 땀이 흘렀다. 출산 전에 뭐라도 먹고, 씻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데번이 산모가 너무 마르고 골반도 좁다 하여 스네이프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날 때부터 이런 일과 거리가 먼 몸이니 당연하지만, 힘이라도 딸리지 않아야 할 텐데. 데번은 출산하기에도 괜찮은 나이라 했지만 그건 여자마법사일 때고 저는 남자였으며, 골반도 좁고 급하게 추가로 생성된 산도는 더 좁을 것이었다. 역시 아이를 낳자는 해리의 미친 소리에 반응해주는 게 아니었다……. 머리를 쓸어올리던 스네이프는 한숨 끝에 욕실로 내려갔다.

“……네들 눈치 보라고 하는 생각은 아니다.”

벗은 몸에는 더 적나라하게 부른 배가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태동이 눈으로 보이는 제 배를 내려다보며 몸을 씻었다. 두 명의 발버둥도 이젠 이 정도로는 아프지도 않았다. 고문 받는 것에 익숙했던 자신인데, 어차피 진통이 궤도를 탄 이후에는 무진통 약을 먹고 할 출산에 큰 걱정이 없었다. 다만 애초 출산을 위해 만들어진 적 없는 제 몸뚱이에서 힘겹게 나올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해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목요일이고, 해리가 점심 이후 2시간 연강 수업이 연달아 2개가 있는 날이었다. 참, 날짜도 이렇게 안 맞아주는군.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욕실에서 나왔다. 지팡이로 한 번에 물을 증발시키고 몸이 보송해지니 한결 나았다. 스네이프는 부엌으로 가, 냉동해두었던 고기를 꺼냈다. 단백질 위주로 재료를 꺼내고 스네이프는 가볍게 요리를 시작했다.


“진짜 멋지다…!!”

학생들 모두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다. 패트로누스도 어쩜 저렇게 교수와 어울리는지 그 위엄 있는 수사슴의 자태가 눈이 부셨다. 특히나 포터 교수가 교감을 나누듯 수사슴과 눈을 맞출 때의 그림 같은 풍경은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까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반려가 그들도 익히 아는, 남자인 스네이프 교수이기 때문에 괜스레 그 교수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어때요? 멋있죠?”

우렁찬 대답들이 들려왔다. 저도 만들 수 있을까 들뜬 목소리들이 교실에 생기를 입혔다. 해리는 미소를 지으며 패트로누스에게 그들 주위 한 바퀴를 돌게 했다. 학생들은 그것이 가까이 왔을 때, 깊은 안정감과 가슴이 충만해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몽롱하게 풀린 눈이 되어서, 수사슴이 아름다운 달빛처럼 흩뿌려져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패트로누스는 시전하는 마법사의 행복한 기억으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들이 행복한 기억을 잘 떠올릴수록 성공이 쉬워질 거예요. 패트로누스의 모습은 각자 다르니, 내 것이 어떤 동물일지 기대하면서 노력해봐요.”

다이애나가 손을 들었다. 해리는 끄덕이며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은 패트로누스를 만들 때 어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셨나요?”
“아, 좋은 질문이네요. 다이애나, 그리핀도르에 5점 줄게. 나는 행복한 기억이 굉장히 많지만…… 늘 떠올리게 되는 건 역시,”
“스네이프 교수님이죠!”

여러 곳에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아하하, 몇 개월 사이 그에 대한 사랑을 모조리 학생들에게 드러내고만 해리는 멋쩍게 웃었다.

“아, 또 수업 중에 자기 얘길 한 걸 알면 스네이프 교수님에게 혼나겠는데…. 뭐, 이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치? 나는 스네이프 교수님을 떠올리며 패트로누스를 만드니까. 그랑 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서.”

학생들 곳곳에서 속닥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부러워….” 그 소리에는 해리도 약간 얼굴이 붉어졌다. 스네이프도 사실은 저 못지 않은 사랑꾼인데, 오직 자신의 앞에서만 드러낸다는 점 때문에 해리 혼자 열렬해 보이기도 해서 쑥스러웠다. 뭐, 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드러낸다는 게 뿌듯할 때도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의 패트로누스는 뭐예요?”

슬리데린의 다니엘의 물음에 해리는 음, 하고 슬며시 웃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 같이 보여주자고 설득해볼게요.”

그 모습을 저만 보는 건 솔직히 아쉬웠다. 언젠가는 수사슴과 암사슴 패트로누스를 모두의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다. 그 환상적인 한 쌍의 패트로누스에 감명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리는 학생들에게 주문을 외쳐보자고 독려하며 수업을 지속했다.


“데번 부인, 아이가 곧 나올 것 같습니다.”

오후 1시쯤에 시작된 전조와 진통이 4시간을 이어졌다. 진통 간격이 5분이 되어도 참던 스네이프는 간격이 3분으로 줄어들었을 때에야 벽난로의 불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그녀를 불렀다.

“왜 미련하게 3분이 되도록 버틴거죠? 세베루스.”
“고통 참는 거야 익숙하고, 그래야 당신이 오고 빨리 진행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미련하다는 거예요. 자, 무진통 약과 산도를 미끄럽게 늘리는 약, 장 내를 비우는 약. 지금 드세요.”

회진가방에서 약물을 꺼내며 데번이 단호하게 말했다. 스네이프는 별 감흥 없는 얼굴로 약을 받아 마셨다. 토 나오게 쓰군. 무표정으로 약물들을 끝까지 삼킨 스네이프는 3분이 지나도 느껴지지 않는 통증에 끄덕거렸다. 데번은 그동안 침대 위에 천을 깔고 스네이프는 아래가 뚫린 원피스형 환복을 입었다. 굴욕적이긴 하나 출산에 실용성을 위한 옷이었다. 스네이프는 침대에 누웠다. 형광연두색으로 띄워지는 제 바이탈과 진통 주기를 보며 데번이 가르쳐주는 대로 호흡을 했다.

“하나도 안 아픈데. 이러다 애 나오는 느낌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고통에 익숙한 티를 자꾸 내는군요, 세베루스. 마법사들의 출산이 머글과 같을 수 없죠.”
“내 어머니는 힘들게 날 낳았다던데. 그렇다고 푸념을 많이 하셨지.”
“머글 병원에 가셨나요?”
“아마도…….”

스네이프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에게 흠씬 두드려 맞은 저의 빼싹 마른 몸을 끌어안고 울며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낳았는데, 이럴 수는 없어,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기억도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해리에게는 연락하셨나요?”
“아니, 수업 중이라….”
“미련하다 했더니 이런 것까지 제가 알려야 합니까? 당신은 똑똑하면서 이런 쪽에서는 영 아니군요. 지금 당장 연락해요. 아이가 태어나는데 아빠가 있어야지.”

지금 연락한다고 해봤자 금방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굳이 연락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두번째로 미련하다는 핀잔을 들었더니 스네이프의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짜증스레 데번을 노려본 스네이프가 손목을 들었다. 찰칵, 버튼을 눌렀다. 수업 중인데, 받을 리가 없…….

[세베루스!!! 웬일이예요?]

이 놈 자식이 수업 중에 사적인 전화를 이렇게 덥석덥석 받다니…….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데번의 눈치에 입을 열었다.

“학생들이 듣지 못하게 밖으로 나와.”
[밖으로 나와서 받은거예요! 무슨 일 있…… 잠깐.]

해리는 먼저 전화 오는 일이 잘 없던 스네이프와 예정일에 가까워진 오늘의 날짜를 떠올리고, 번개에 맞은 것처럼 소스라쳤다. 판 너머로 덜커덩 소리가 들렸다. “수업 끝!!!” 해리의 갑작스런 외침과 복도를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 스네이프는 피식 웃었다. 흘낏 본 진통 주기가 2분으로 줄어 있었다. 데번은 스네이프와 함께 우당탕거리는 해리의 질주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호그와트에선 순간이동이 불가능 하죠? 해리가 참 지금 애가 닳겠네. 진작 연락 하셨어야지, 세베루스.”
“아무리 해리라도 이렇게 대책 없을 줄은 몰랐어서 말이죠, 데번 부인.”
“아내가 애를 낳는 중인데 그럼 뭐를 최우선으로 두겠어요?”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고 제 진통 주기를 바라보았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지만 아이들은 지금도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무던한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고통 끝에 결국 뭔가를 이루지도 못하던 삶을 살았던 스네이프는, 이렇게 전혀 아프지도 않게 애를 낳아도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감에 빠졌다. 역시 너무 안 아픈데, 이런데 제대로 나올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데번은 말없이 스네이프의 무릎 세운 다리만 조정할 뿐이었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그냥 판 너머로 들리는 해리의 헉헉거리는 숨소리에 집중했다. 3층의 교실에서 지하 슬리데린 사감의 방까지 미친듯이 달리고 있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의 모습을 상상했더니 우스웠다.

“세베, 헉, 세베루스…! 애, 헉, 나오고, 허억, 있어요…!?”

해리는 지팡이를 휘둘러 급하게 사감 방 문을 열어 젖혔다. 숨이 턱끝까지 차서 헉헉거리면서도, 반려가 저 없이 아이를 낳았을까 걱정돼 너무나 조급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계판 너머 반려의 목소리는 몹시도 심상했다.

[곧 나올 것 같아. 벽난로에 다 왔나?]
“네…! 지, 금, 곧…!! 스피너즈 엔드!”

플루를 확 뿌리고 가쁜 숨을 참으며 외쳤다. 숨이 차서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몸이 좁은 벽난로에 여기저기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해리는 이러다 스네이프가 아니라 자신이 기절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데번 부인이 약을 써서 아프지 않은 출산이라고 설명했을 때도 믿지 않았는데, 곧 애를 낳는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평소와 똑같이 나긋했기 때문에 해리는 그제야 믿겨졌다. 어쨌든 그가 아프지 않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이었다.

“세베루스…!”

책장 뒤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갈비뼈가 비틀리는 기분이었다. 침실 문을 벌컥 열자, 데번 부인과 자신의 반려가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티타임이라도 즐기는 듯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는 모습에 해리는 맥이 탁 풀렸다.

“아이는 아직……?”
“해리, 이리와.”

스네이프의 부름에 가파르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슴을 억누르며 해리가 다가갔다. 당장 바로 스네이프의 손을 잡고 해리가 제 얼굴에 비비자, 스네이프는 피식 웃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려니 좋았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이렇게 보고 싶어 못 죽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다. 해리, 손 잡고 같이 힘 주세요. 곧 아이들이 나올 겁니다. 데번 부인의 말에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실었다. 약물로 진통은 없었지만, 스네이프도 하반신에 최대한의 힘을 주었다. 산도를 부드럽게 넓히는 약의 도움인지 안 쪽에서 꿀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데번 부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생각이 들자마자, 해리는 눈물을 쏟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생경한 기분으로 제 다리 사이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데번이 아기침대 위에 먼저 나온 첫째를 올렸다. 당연한듯이 정수리를 덮은 흑발의 머리카락이 벌써부터 텁수룩했다. 머리만 봐도 누가 보든 해리 포터의 2세군. 스네이프는 속으로 웃으면서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걱정과는 달리, 마법 약물의 도움으로 출산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해리에게는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이었다. 또 낳자고 했다간 정말로 복부를 걷어차버릴 테니까.

“해리, 가까이 와서 보세요.”

둘째까지 아기 침대에 올린 후, 데번이 지팡이를 휘둘러 뱃 속에서 묻혀온 피와 불순물들을 아기들에게서 제거 했다. 안경을 들어 눈물을 벅벅 닦은 해리가 아기들이 눕힌 침대로 다가갔다. 보송보송해진 아기들이 갓 나왔을 때보다는 좀 더 사람 같아 보였다. 해리는 해사하게 웃으며 제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천사들을 낳았어요, 세베루스. 해리가 감격해서 중얼거리는 말에 스네이프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데번이 둘째를 안고, 해리가 첫째를 안아 들게 시켰다. 해리는 테디를 안던 감각대로 익숙하게 아이를 안아 들고 스네이프에게로 다가갔다. 스네이프의 왼쪽 가슴에는 둘째, 오른쪽 가슴에는 첫째 아이를 놓았다. 스네이프는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둘이나 낳았더니, 한 놈에게 집중을 못 하겠군. 그 말에 해리도 데번도 웃음을 터뜨렸다. 스네이프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행복에 양 손을 들어 아기들을 안았다. 제 아이들은 작고, 아주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 * *

똑똑.
붉은 원피스에 까만 스타킹을 신은 작은 꼬마 숙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귀 밑으로 넘기는 손짓이 한껏 도도해보였다. 그 옆의 키가 같은 남자아이는 남색 더플코트를 입고 조용하게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찰칵이며 문이 열렸다. 아이들은 반가운 눈을 했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그들보다 키가 껑충한 열한 살의 소년이었다. 아이들과 같은 흑발의 머리카락에, 앞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길게 자란 소년은 꽤나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찰스!”

단발 소녀는 찰스의 다리를 꼬옥 안아 붙들었다.

“추워. 들어와, 릴리. 알도.”
“아주머니는? 웨이드도 있어?”
“마트에 갔어. 근데 둘만 온 거야? 스네이프 씨는?”
“엄마는 파티 준비하고 지금은 케이크 굽는대.”

릴리의 답변에 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TV에서 나 홀로 집에 하던데, 볼래? 릴리가 신난다고 들어오느라 밖에서 밟은 눈이 바닥에 묻었다. 알버스는 뒤에서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바닥을 닦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찰스의 말에도 민폐 끼친 건 릴리잖아, 하는 단호한 말을 내뱉었다. 알버스는 녹색의 눈까지 완벽히 해리를 닮은 얼굴에, 정말이지 스네이프 씨와 똑닮은 성격이다. 반면에 릴리는 얼굴은 스네이프와 해리를 섞은 느낌에, 성격은 대체 누굴 닮은 건지 천방지축 말괄량이가 딱이었다. 스네이프 씨 말로는 그녀의 할머니이자 이름을 물려주신 ‘원조 릴리’와 닮았다고는 하던데.

오늘은 2005년 2월 24일, 그들의 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알버스와 함께 거실로 들어가니, 릴리는 제 집처럼 소파에 앉아서 과자까지 뜯어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알버스는 그런 제 쌍둥이 남매에 고개를 젓고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았다. 찰스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직 갓난아기인 아이들과 함께 집 현관문에 나타난 해리 선생님을 기억했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여섯 살 찰스에게는 기적처럼 놀라운 재회였다. 체육 센터를 그만 두고 이사를 간다던 해리 선생님은 1년도 안돼서 다시 이 곳에 돌아왔다.

“해리, 어떻게 된 거예요?”

찰스의 옆에서 역시나 놀라 눈을 키운 엄마 레이첼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아이 한 명을 받아 안는 모습에는 따듯한 눈빛이 어렸다.

“레이첼, 오랜만이예요. 다시 돌아왔어요. 스피너즈 엔드에서 계속 살 거예요. 얘는 릴리, 얘는 알버스고요.”
“누구 아이예요? 해리의 아이? 하지만 스네이프 씨는 남잔데…… 입양한 건가요?”
“레이첼, 할 얘기가 있어요. 찰스와 웨이드가 우리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줬으면 해서.”
“물론, 당연히…….”

그리고 해리는 주머니에서 나무 막대기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해리? 레이첼이 되묻는 찰나, 해리가 막대기를 휘두르자 문이 닫혔다. 폴터가이스트의 장난인 것 마냥 무섭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찰스는 엄마와 동생을 마중하러 나갔다. 젖은 자국이 있는 바닥을 보고 릴리와 알이 왔는지 레이첼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찰스는 빵 봉투를 든 웨이드를 데리고 거실로 갔다. 릴리는 웨이드를 보고 덥석 안더니 바로 봉투를 열어 빵을 뒤적거렸다. 알버스는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무신경한 얼굴로 영화를 보았다. 간식으로 빵은 조금만 먹고, 다같이 포터 부부의 집에 가자고 레이첼이 말했다. 알버스는 애초에 엄마가 만든 음식들로만 배를 채우려고 다른 주전부리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찰스와 릴리, 웨이드가 손을 잡고 앞서 걸어 갔다. 레이첼의 옆에서 걷던 알버스는 집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후다닥 뛰어 나갔다. 아빠! 알버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인 해리였다. 알버스를 안아 올린 해리가 하얀 아이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다섯 살 릴리는 아빠보다 찰스와 웨이드가 좋다고 한창 뻗대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빠와 알의 유난한 인사에도 태연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보다 오빠가 좋다 이거지. 하지만 과연 ‘대부’의 앞에서도 저럴까? 해리는 릴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게 자신이 아니었지만, 스네이프조차 아니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레이첼, 찰스, 웨이드. 와줘서 고마워요. 릴리, 안에 누가 왔는지 알면 너도 난리가 날걸?”
“헐! 벌써 왔어?!”
“릴리!”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백금발의 청년이 뛰쳐나왔다. 방금까지 자석처럼 착 붙어있던 오빠들의 손을 떨쳐낸 릴리가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산가족 상봉 마냥, 서로에게 꼭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친구와 딸의 꼴을 보니, 해리는 눈꼴이 시려웠다.

“드레이코- 아빠랑 같이 왔어?”
“응.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왔지. 우리 릴리 생일이잖아-”
“디키 삼촌, 저도 생일인데요.”
“아, 그래, 알. 너도 물론 축하해.”

알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해리의 품에서 내려왔다. 제가 어릴 적 아빠를 쏙 닮아서 드레이코 삼촌이 장난스레 틱틱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빠와 삼촌이 학교 다닐 땐 최고의 앙숙이었다고, 알버스는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다.

“안 들어오고 뭐하나.”

까만 스웨터를 입고 머리를 묶은 스네이프가 현관으로 나왔다. 눈 내린 추운 바깥에 선 사람들을 보는 눈초리는 한심스러웠다. 레이첼에게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스네이프는 아이들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릴리와 알버스는 그런 냉정한 엄마의 뒤를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 가득 풍기는 따듯하고 맛있는 음식의 냄새는, 방금까지 그토록 냉랭했던 스네이프가 만들어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식탁 위 가운데에는 분홍색 크림을 바른 생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릴리가 분홍색을 우겨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드레이코와 릴리, 웨이드는 카펫 위에 앉아서 드레이코가 가져온 온갖 과자와 장난감들을 보며 감탄했다. 허니듀크에 새롭게 나오는 게 있을 때마다 드레이코는 가장 먼저 릴리와 알에게 사주었다. 조지의 장난감 가게 물건은 조지가 보내주기 때문에, 드레이코가 들고오는 장난감들은 전부 외국의 것이었다. 혀를 쭉 내밀고 제 혀로 줄넘기를 시작하는 광대 장난감에 웨이드는 인상을 찌푸렸고, 릴리는 우스워했다.

“대부, 대모!”

벽난로로 들어오는 론과 헤르미온느에 알버스가 달려가 다리를 안았다. 잠깐, 재 좀 털자 대자여. 론은 짐짓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로 재들을 전부 지워주었다. 알, 생일 축하해. 바로 무릎을 굽혀 쭈그린 헤르미온느가 알버스를 안았다. 알버스는 그들의 집에 갔을 때 맡아지는 꽃냄새를 느끼며 그녀를 꼭 안았다. 론은 드레이코의 옆에 앉아 이 장난감은 어느 나라 것인지를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부엌으로 가서 스네이프가 차린 음식들에 감탄했다. 저는 몰리에게 배워도 잘 안돼요. 모범생도 못하는 게 다 있군, 비웃는 소리까지 알버스에겐 익숙한 대화였다.

“테디!”

품 가득 포장 된 선물 2개를 안은 에드워드가 벽난로에서 나왔다. 해리가 제일 먼저 대자를 반겼다. 오늘은 까만 머리구나? 저도 해리의 가족이니까 새까맣게 했어요. 해리는 그 대답에 웃었다. 해리, 스네이프, 릴리, 알버스 모두 당연한듯이 흑발이었기에 거기에 섞이고 싶었다는 대자의 말에 해리는 뭉클했다. 그리고 곧 대자가 스네이프에게 달려가 와락 안겨 세브! 를 외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루핀도 통스도 닮지 않았지만, 그래도 루핀의 아들인 그의 정수리를 쓸어주는 희고 마른 손이 좋았다. 해리는 기다란 식탁을 더 기다랗게 늘리고, 그릇을 옮겼다. 레이첼과 헤르미온느가 수저 놓기를 도왔다.

“다들 앉아! 론, 드레이코! 릴리랑 다른 애들도 다 식탁에 와.”

헤르미온느가 소리를 지르자 다들 식탁으로 모여 들었다. 찰스는 에드워드의 옆에 앉아 오늘의 머리색이 서로 같은 것에 대해 떠들었다. 난 네가 하늘색 머리였던 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찰스의 말에 몇 가닥 정도를 하늘색으로 물들인 에드워드가 씨익 웃었다. 알버스는 그들 옆에 앉아 음식들을 그릇에 덜었다. 엄마 음식을 먹으려고 계속 굶었더니, 배가 고팠다. 반면 릴리는 군것질을 많이 해서 생일 케이크만 먹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런 대녀도 귀여운지 드레이코는 싱글벙글해서, 릴리 옆에 앉아 음식을 이것저것 챙겨주며 먹이려 했다.

“세베루스, 고생했어요.”
“만든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고 그런 거지.”

스네이프의 빈정거림에 해리가 키득키득 웃었다. 주말엔 집에 있을테니까 내가 당신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하게 할게요, 세브. 생일인 알버스가 엄마의 음식을 요구해서 차린 거지만, 스네이프는 괜스레 해리에게 툴툴거렸다. 제 투정을 귀엽게 보며 달래주는 해리의 모습이 좋아서였다. 사실, 학교에 나가지 않고 아이 둘만 집에서 기르는 게 스네이프의 적성에 몹시 잘 맞았지만 그것조차 해리에게 괜한 투정을 부린 스네이프였다. 그걸 눈치챈 해리도 오냐오냐 엉덩이를 두드려주었다. 그에 흥, 하며 스네이프는 새침히 고개를 돌렸었다.

그 사이, 부모는 쏙 빼두고 릴리와 알버스에게 선물 증정식이 시작된 듯 했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해리와 스네이프가 서로만의 세상에 빠져 있을 때, 주변인들이 ─그들의 아이들도 포함한─ 알아서 뭔가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말이었다.

“벌써 애들을 키운지 5년이나 됐다니…. 신기하지 않아요? 세브.”
“갓난이 시절 지나가서 너무 좋다, 난. 정말 끔찍했지. 뒤돌아서면 젖달라, 기저귀 갈아달라, 안아달라……. 해리 포터가 셋이었어, 아주.”
“기저귀는 인정 못하겠는데요. 젖이랑 안아달라까지는 인정.”
“해리, 다 들려.”

옆에 앉아있던 론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아직은 애들이 어려서 못 알아듣는다지만, 애들이 커서도 제 친구 부부가 저럴까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못해도 아이들의 머글 친구인 11살 찰스는 알아들었을 터였다. 정말 사회에서는 똑똑하고 카리스마 있는 두 사람이 둘만 있으면 저 지경인 것에 론마저도 고개를 흔들었다.

해리가 머쓱하게 웃자 친구들은 피식 웃었다. 그간 많이도 본 모습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받은 선물을 자랑하러 온 릴리를 허벅지 위에 앉혔다. 드레이코가 선물한 공주 세트의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머리에 쓴 릴리가 헤헤 웃었다. 알버스가 다가와서 론이 선물한 장난감 지팡이를 들고 릴리의 드레스를 찌르며 대부가 가르쳐준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햇빛, 데이지, 버터멜로여, 멍청한 이 드레스를 노랗게 바꿔주세요…….

“하하하. 론, 그 끝내주는 주문을 외우기에 우리 애는 아직 어린가 봐.”

아빠의 말에 알버스가 저는 어리지 않다고 버럭거렸다. 어른들은 그런 알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릴리도 까르르 웃으며 스네이프의 목을 안고, 다리를 방방거렸다. 해리는 턱을 괴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스네이프와 가족을 이룬 이후로 늘 보게 되는 이 행복한 광경에, 해리는 오늘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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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저 분이셔…?”
“세상에, 정말 너무 멋있게 생겼다….”
“나도 꼭 해리 포터처럼 그리핀도르에 들어 갈래!”
“나도!”
“나도! 난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도 전부 다 그리핀도르였어! 내가 슬리데린에 배정 받는다면 난 진짜로 집에서 쫓겨날 거야!”
“나는 엄마랑 아빠 모두 마법사가 아니였는데, 나만 기숙사에 배정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교감인 플리트윅이 해그리드에 인수 받아 데려온 열한 살 신입생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들은, 바로 앞의 교수석에 아주 잘 들려왔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신입생들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전쟁 후 슬리데린의 입지가 좁아졌다지만, 그리핀도르만 배출해냈다는 가문의 아이는 저와도 상극이어서 질색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옆에서 작은 뒤통수들을 내려다보며 싱글거렸다. 저 때의 기분이 생생한데, 지금 자신은 호그와트의 교수로서 교수석에 앉아있었다.

신입생들의 배정은 재미있었다. 해리와 네빌은 그리핀도르로 배정 받는 아이들마다 웃으며 박수쳐주었다. 그리고 다른 기숙사도 마찬가지지만, 슬리데린에 배정 받는 아이들에게는 해리는 특별히 더 열렬히 박수쳐 주었다. 기숙사 배정식이 끝나고, 신입 교수진들을 소개하는 순서가 되었다. 맥고나걸은 스네이프 교수의 재임을 우선 소개했다. 느슨한 부분도 있었던 슬러그혼의 마법약 수업을 들었었던 학생들은, 다시 돌아온 악마의 재림에 영혼 없는 박수를 쳤다. ‘교수 스네이프’를 잘 모르는 저학년들은 묘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올해부터 새롭게 약초학을 가르치며, 그리핀도르의 사감으로 부임하신 네빌 롱바텀 교수입니다.”

네빌을 아는 상급생들부터 어린 저학년들까지 와아아 환호를 보냈다. 저 분이 그 내기니, 마왕의 뱀을 그리핀도르의 칼로 죽였다는 그 분이시지! 되게 착하게 생기셨다, 신입생들은 흥분에 들떠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함성은 프레드와 조지가 돌아온 듯 시끄러웠다. 네빌은 머쓱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자리에 앉았다. 네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다음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실 해리 포터 교수님입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목의 오랜 악습을 끊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주시길, 포터 교수님.”

맥고나걸의 유려한 소개와 함께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대연회장은 마법세계의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흥분에 찬 환호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거인이 건물을 잡고 흔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해리 포터! 해리 포터! 연호하는 10대 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해리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맥고나걸이 소노루스에 맥시마를 걸고 하울러 뺨치는 소리를 질렀다. “조용!!!” 그제서야 흥분했던 장내가 찬 물을 엎은 듯 조용해졌다. 스네이프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해리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음, 해리 포터입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후다닥 자리에 앉은 해리가 맥고나걸의 눈치를 살폈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기분이었다. 그리고 스네이프를 돌아보았을 때, 저 무시무시한 얼굴에 해리는 소름이 쫙 끼쳤다. 펜시브를 훔쳐봤을 때 봤던 분노어린 얼굴과 아주 흡사한 얼굴이었다. 이렇게까지 화날 일이신가……. 교수가 호그와트의 10대들을 왜 혐오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해리의 첫 수업은 점심 이후에 있어, 오전 시간 중에 있는 스네이프의 첫 수업 시간보다 늦었다. 그래서 해리는 느긋하게 슬리데린 사감 방에서 나와서 수업을 하는 스네이프를 훔쳐 볼 요량으로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복도였고, 마법약 교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해리는 숨을 죽이며 복도를 걸어 마법약 교실의 창에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개학의 첫 날, 첫 수업으로 스네이프 교수의 마법약 수업을 들은 불쌍한 아이들이 누굴까 궁금했다. 앳된 얼굴과 작은 덩치들로 보아, 그들은 심지어 어제 처음 호그와트에 입성한 신입생들인듯 했다. 해리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폈다. 그 어린 얼굴들은 살얼음 위를 걷는 표정이었다. 매캐하고 거뭇한 연기를 뿜는 솥 앞에서 잔뜩 쫄아있었다. 안 봐도 반려의 얼굴은 뻔했다. 또 끔찍한 트롤의 후예들을 맞이했다고 표정이 썩어있겠지.

“아.”

찡그린 미간을 손끝으로 주무르던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쳤다. 해리를 본 스네이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까지 냉랭하던 교수의 표정이 풀린 것을 몇몇의 학생들이 ─이미 실패한 제 약물에 자포자기로 수업에 넋을 놨던─ 발견했다. 약간의 웅성거림에 정신을 차린 스네이프가, 금세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떠든 학생들을 걸러내었다. 이크, 이런. 불쌍하게 됐네. 해리는 얼른 창에서 얼굴을 빼냈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는 감점이 차례로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아, 어서와요 세베루스.”
“해리, 내 수업 시간에 왔었지.”

해리의 옆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기분 나쁜 것 같진 않았지만,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해리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그릇에 닭 구이 조각을 두어 개 얹어주었다.

“1학년들이었죠? 저도 오늘 첫 수업이 1학년들인데. 어느 기숙사예요?”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이번 해도 머리에 썩은 고름만 찬 쓰레기들 뿐이야.”
“가차없으시네, 스네이프 교수님. 그리고 그 아이들은 제 첫 수업에도 들어오겠네요. 오늘 저도 1학년 그리핀도르-슬리데린 합동 수업이라.”
“흥. 너도 경악하게 될 거다, 포터 교수.”
“잘하는 애가 한 명도 없던가요?”

혼혈왕자의 열렬한 팬인 해리가 그의 마법약 수업에 흥미를 가지며 물었다. 제가 학생일 때 스네이프를 좋아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평범한 수준인 학생은 그리핀도르의 머글태생 걔야. 이름은 다이애나 헌트.”
“당신 입에서 평범하다고 나왔으면 아주 뛰어난 학생이겠군요?”
“…해리 포터.”

짐짓 화내는 톤의 목소리였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고 베이크드 빈을 수저로 떠서 먹었다. 어제 기숙사 배정식에서, 머글 부모 탓에 기숙사 배정도 못 받을까 걱정하던 구불진 갈색 머리카락의 작은 여학생이 떠올랐다. 그 아이도 헤르미온느처럼 입학 전에 걱정하면서, 그리고 흥미롭게 교과서들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해리는 저도 입학하기 전에 재밌게 교과서를 읽었던 것을 떠올렸다.

“제일 끔찍한 건 역시 대대로 그리핀도르였다는 그 놈이야. 크리스 커비. 롱바텀을 다시 가르쳐야하는 기분이다.”
“하하하. 그렇지만 세베루스는 첫 날부터 학생들 이름을 다 외우네요. 역시 교수 일에 애정이 있는 거죠?”
“……?”
“왜요? 세베루스.”
“학생들 이름 외우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런 건 한 번 봐도 금방 외워지는 거잖아.”

아…… 그랬지, 참.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재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을 뿐이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은 3층의 교실에서 있었다. 해리는 움직이는 계단이 움직이지 않는 타이밍을 맞춰 가볍게 계단을 올랐다. 익숙한 길, 익숙한 걸음이었다. 교실에는 첫수업부터 스네이프 교수를 맞았던 불운의 신입생들이 앉아있었다. 슬리데린들은 해리를 보며 저들끼리 불안한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핀도르 출신인 영웅이 자신들에게 편견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인 신입생들은 해리를 보며 터질 듯한 심장을 꽉 부여잡았다.

“안녕,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게 된 해리 포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제 처음 호그와트에 왔고, 저는 지금이 첫 수업입니다. 서로 서로 처음이니까, 잘해봐요 우리.”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해리의 눈에는 정말 귀여운데, 스네이프의 눈에는 그저 무지함과 난폭성은 똑같은 작은 트롤들로만 보인다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첫 수업부터 뭔가를 배우긴 벅차겠죠? 오늘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보내고, 다음 수업부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갈게요. 음, 나에게 궁금한 것 있다면 물어봐도 좋아요.”

머글 어린이 체육 센터에서 일했던 그대로, 어린 신입생들을 대하기는 쉬웠다. 해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번쩍 든 학생은 스네이프가 롱바텀이 돌아왔다고 평가한 크리스였다.

“볼드모트를 죽이고나서 기분이 어떠셨나요?!”

첫 질문부터 강렬해서 해리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흐음, 해리는 손가락으로 턱을 쓸고 조용하게 있었다. 두려움이 얇게 깔린 호기심을 내보이며 열한 살짜리들이 해리를 보고있었다. 사실 그 질문은, 전쟁 후에 영웅 해리 포터 인터뷰만 몇 십 번을 했었는데 그 때마다 들었던 고루한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환호했을 것 같은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드디어 어둠의 마왕을 내 손으로 죽였다고 기뻐했을 것 같나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질문을 한 크리스도 해리의 눈치를 보며 마르는 입술을 핥았다. 해리는 살짝 미소를 지어,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 한 사람, 볼드모트는 아주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긴 했지만, 결국 사람 한 명에 불과했어요. 순수혈통 어머니와 머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면서 머글과 머글태생을 혐오하고 마법세계를 악으로 물들이려 한, 원래 이름은 톰 리들이라는 사람이었죠. 그 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서 희생된 사람의 숫자를 정확하게 셀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내 부모님도 싸웠었고, 내 친구들도, 내가 모르는 많은 마법사들도 전부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내가 혼자 그를 죽인 것도 아니고, 그 희생들을 알기에 나는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때, 그냥 너무 지쳤고,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좀 자고 싶을 뿐이었어요. 어둠의 마법에 대항한다는 건 그런거예요.”

교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해리는 그들이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길 바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둠의 마법이 세계를 또 다시 장악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어요. 마법의 역사 속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했으니까. 그러니, 이 방어술 수업이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학생들이 크게 박수를 쳤다. 해리는 머글태생 아이인 그리핀도르의 다이애나를 눈여겨 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론을 생각나게 했고, 그녀의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헤르미온느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말에 제일 감명받은 것이 그녀란 것도, 그녀가 뛰어난 모범생일 것도 해리는 알 수 있었다. 다이애나가 손을 들었다. 다른 몇몇들도 번쩍 손을 들어왔지만, 해리는 우선 다이애나의 질문이 듣고 싶었다.

“다이애나?”

해리가 제 이름을 알고 있자, 그녀는 눈에 띄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진짜 귀엽다. 해리는 자신은 스네이프와 달리, 교사가 천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는 머글태생이예요. 제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적은 없었지만……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공부하면서, 제 주변에서 있었던 이상한 습격이나 사건들이 다 그 볼드모트… 라는 마법사와 관련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마법사들은 머글들에게 우리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니까,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피해를 봤었겠죠. 대신 사과할게요, 다이애나.”
“포, 포터 교수님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든 영웅이신데 사과를 하시다뇨….”
“앞으로 내 수업에서 나를 영웅이라고 지칭하면, 기숙사 점수 1점씩 감점하겠어요.”

다이애나를 비롯 학생들 대부분이 움찔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에게 감점의 맛을 제대로 당하고 온 그들의 반응에 웃음을 꾹 참았다.

“질문은 없나요, 다이애나?”
“아…. 저, 어제 학교에 와서 교수님의 친구분 중에 그리핀도르고 머글태생이었는데,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거든요. 기숙사에서 저 혼자…… 머글태생이라서. 마법사라는 것도 몰랐는데 제가 수업에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슬리데린 기숙사 쪽에서는 미묘한 분위기가 흘러 나왔다. 그들은 전쟁 이후 직접적으로 혐오를 티낼 순 없었지만, 집에서부터 배워온 머글태생에 대한 무시가 기저에 깔려 있음을 해리도 모를 수 없었다. 흠, 얼른 드레이코가 마법약 교수로 와서 저들을 계몽시켜주어야 할 텐데. 해리는 팔짱을 끼고 교실을 둘러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전 수업, 스네이프 교수님의 마법약 수업이었죠?”

교실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긴장과 두려움에 싸이는 것 같았다. 이런, 정말 학교의 첫 수업부터 스네이프 교수를 만나게 됐던 건 그들에게 정말 불행한 일이었다.

“그 수업에서 감점 당하지 않은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리핀도르에선 다이애나를 포함한 소수의 몇이 손을 들었고, 슬리데린에서도 손을 드는 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주 첫 날부터 신입생들에게 제대로 횡포를 부리셨군. 해리는 사랑스런 부인 세베루스에게 유감을 표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분의 수업에서 감점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그리고 점수를 깎였더라도, 저 또한 스네이프 교수님에게 점수를 많이 깎였던 학생이었는데, 보시다시피, 이렇게 학교의 교수로 일할 수 있을 만큼은 되도록 학교에서 공부를 배웠으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여러분.”

그 말은 신입생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 세계를 구한 위대한 영웅조차도 수업시간에 점수를 깎이는 학생이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무섭고 냉랭한 스네이프 교수와 자상하고 다정한 포터 교수가 부부가 됐다는 것은, 바로 2주 전에 마법세계를 발칵 뒤집은 엄청난 이슈였다. 열한 살의 어린 그들은 도저히 이 둘을 부부로 매치시킬 수가 없었다. 물론, 고학년이라고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느냐는 것 또한 생각해볼 문제이긴 했다.

“저….”
“응, 이름이?”
“알렉스 로더입니다, 교수님. 그, 저희 슬리데린의 사감이신 스네이프 교수님과…… 정말 결혼하신 거 맞으시죠?”

슬리데린 학생의 질문에 아이들이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슬리데린 아이들은 그의 형제자매들이나 부모가 스네이프와 직접적으로 얽힌 적이 있을 터이니, 이 결혼 소식에 집에서의 반응이 더 재밌었을 것 같았다. 해리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쿵 저러쿵> 안 봤니? 거기에 키스하는 것도 크게 실렸던데.”

꺅! 여학생들의 비명이 손 틈새로 새어나왔다. 남학생들도 웅성거리며 키득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핀도르의 키 작은 남학생이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포터 교수님은 스네이프 교수님이 안 무서우신가요…?”
“풉…! 아, 미안, 큭, 아…. 질문이 너무 귀여워서.”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허리를 숙여가며 폭소를 참은 해리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허리를 다시 세우며 눈가를 훔치는 젊은 교수의 모습이 너무나 그림같이 멋있어서, 여학생들은 여전히 입을 가린 채로 감탄사를 삼켰다. 저렇게 젊고 잘생겼는데 유부남이라니, 그것도 그 무서운 스네이프 교수랑 결혼을 했다니……. 여자아이들의 선망은 금세 실망으로 변모했다.

“학생일 때도 무섭다기보다는 서로 싫어했던 거라서, 반항을 좀 했었죠. 지금은…… 귀엽고.”

스네이프가 귀엽다고……? 학생들은 안경을 낀 포터 교수의 시력에 대해 저들끼리 속닥이기 시작했다. 해리는 이 수업이 끝나고, 스네이프가 이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게 되면 어떨지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자, 스네이프 교수님에 대한 질문은 넣어두고, 수업에 관한 거 궁금한 거 있으면 해요.”

그 질문에는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수업 외의 사적인 부분이 궁금하구나. 해리는 저였어도 확실히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웃음을 흘리고, 해리는 눈앞의 학생들과 동갑이었던 자신이 1학년일 때, 마법사의 돌을 지키려고 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제 반려 스네이프를 의심했었던 사실은 쏙 빼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 1층에 당도한 해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네이프와 혹시라도 복도에서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학생들은 복도 가운데를 막고 선 해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수업을 연달아 2번 해놓고도, 해리는 자신이 교수라는 것이 아직 생경했다. 7학년들과의 나이 차이는 고작 2살밖에 나지 않아서 그들의 인사에는 더욱 쑥스러웠다. 결국 해리는 스네이프를 찾아 지하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식당으로 가는 학생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해리를 지나치며 흘깃거리고 인사를 했다. 전쟁 중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그들이, 영웅인 해리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해리는 스네이프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미묘한 시선으로 해리를 보았지만, 스네이프가 지하 교실에서 나왔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해리는 고맙다고 답한 뒤, 걸음을 다시 옮겼다. 성의 지하는 서늘했다. 해리는 임신중인 스네이프를 위해 숄이라도 사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세베루스!”

교실 밖, 슬리데린 고학년 남학생과 대화중인 스네이프가 보였다. 스네이프도 키가 큰 편인데, 얼추 그와 비슷한 체격의 학생에 해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해리는 얼른 제 반려를 제 뒤에 가두듯 옆에 섰다. 그에, 대화중이었던 스네이프는 다소 어이가 없는 눈치로 해리의 옆통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해리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나누던 대화를 지속했다.

“…N.E.W.T 과정은 난 분명히 O만 받는다고 했다, 로버트.”
“저는 슬러그혼 교수님의 기준에 맞춰서, 당연히 수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스네이프 교수님, 제발…. 갑자기 교수님이 바뀌셔서 저도 당황스러웠는데….”
“그럼 다시 O.W.L을 쳐서 O를 받아오던가, 슬러그혼 교수를 다시 모셔오던가 해, 로버트 호프먼.”

해리는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스네이프 교수에 경악스런 시선을 보냈다. 로버트가 쩔쩔매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방금까지 경계하던 학생에서, 앞 날이 걱정되는 학생으로 시선이 바뀐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을 잡고 마주 보았다. 해리의 크고 따듯한 손이 저를 잡아오자, 냉정하던 까만 눈이 약간 흔들렸다. 해리는 그 시선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지 없이 교수가 바꼈으니 학생도 혼란스러울 거예요. 저는 반대로 O만 받는 당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E를 받았었지만, 슬러그혼 교수님 덕에 N.E.W.T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세베루스도 올해만 기준을 바꿔서 E 받은 학생 중에도 N.E.W.T 과정을 듣고 싶다는 학생들은 받아주면 안 될까요? 올해만요.”

해리의 뒤에서 로버트도 적극적으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스네이프는 이미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포터 교수, 알았으니까 손 좀…. 그 조그만 중얼거림에 해리는 됐다, 싶어서 싱긋 웃고 스네이프의 눈에 제 녹색 눈을 맞추는 쐐기를 박았다. 스네이프는 결국 고개를 틀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로버트가 몹시 기뻐하며 해리에게 꾸벅 인사를 해왔다. 로버트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차가웠던 교수는 얼음이 녹아 없어진 것처럼 사라지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순종적인 눈에 해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도 잘 듣고. 예뻐라.”
“해리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니까……. 뭐… 수업 인원이 그리 크게 늘 것 같지도 않고…….”
“응, 맞아요. 잘했어요.”

키스하고 싶다, 해리는 그 생각이 들자 스네이프의 뺨을 감싼 손을 그대로 끌어당겼다. 그런 해리에 못 이기는 척, 스네이프 역시 다가와 고개를 틀었다. 지하 교실 앞 복도에서, 둘의 입술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닿을락 말락, 애타는 느낌에 스네이프의 손이 해리의 로브 소매깃을 잡았다.

순간, 복도 끝에서 들려온 인기척이 있었다. 스네이프는 그 소리를 감지하자마자 해리의 배를 퍽 밀쳐내었다. 악 소리를 참은 해리도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슬리데린 기숙사의 학생인 듯 싶었다. 내가 미쳤지, 한순간 저 눈에 홀려서. 욕설을 내뱉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등을 토닥였다. 학생과 교수의 밀회도 아니고, 우린 부부인데요. 해리의 속삭임에 스네이프는 어쩐지 더 부끄러워져 괜스레 해리의 정강이를 걷어 찼다.

그들은 식당이 있는 1층으로 올라갔다. 스네이프의 옆에 붙어서 학교 지하의 복도를 걷는 기분은 새삼 새로웠다. 6학년 때 이후로, 그와는 같이 학교에 있어보지도 못했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를 죽이고, 불에 타는 해그리드의 오두막 앞에서 서로를 경멸하며 악에 받쳐 소리지르던 것이, 학교에서 서로를 마주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때의 스네이프를 다시 떠올리면, 그가 너무나 처절해 보였고, 가슴에 아팠다. 하지만 오해 속에 헤어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어째서 자신은 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었을까. 사실 해리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 때까지 계속 그를 덤블도어를 죽인 살인자이자, 볼드모트의 총애를 받는 데스 이터로 보고 있었으면서도, 고작 뱀에 물려 주인에게 버림 받았다는 것 따위에 자신의 차가웠던 마음이 휘둘릴 수 있었던 건지. 왜 해리 포터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죽음에서 눈 돌릴 수 없었는지를.

물론, 그의 생명을 구한 다음 순간부터는, 해리는 그 이유를 알 수밖에 없었다.

“입덧은 괜찮아요?”
“물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입덧 자체가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말 아침에는 복용을 끊고, 입덧이 괜찮아졌는지 확인해봐야겠군.”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들 재깍재깍 효도 하자, 엄마한테.”
“쉿, 조용히 해. 해리.”

대연회장에 가까워지자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을 단속했다. 넵, 해리는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스네이프는 그 행동에 피식 웃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네빌의 옆으로 붙어있는 두 자리가 비어있었다. 해리는 얼른 네빌의 옆에 앉았다. 스네이프도 해리의 옆에 앉아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너는 첫 수업 어땠어, 네빌?”
“간단하게 ‘도망치는 버섯’ 돌보기를 했어! 해리 너는?”
“나는 첫수업부터 진도 나가기 싫어서 질문 받고, 잡담 했어. 다음 수업부터는 간단하게 프로테고를 가르칠 거야.”
“……아, 그렇구나.”

그거 오러들이 유용하게 쓰는 주문 아니야?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뻔 했지만, 네빌은 잘 참았다. 해리는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네빌에게 물었다.

“학생들이 전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지 않아?”
“아, 물론…. 잠깐 대답은 했지만, 역시 그런 주제는 당황스럽고 수업과도 관계 없으니 불편했어. 아! 해리 너는 더 심하겠지만.”
“난 내 수업 시간에 날 보고 영웅 소리 하면 1점씩 감점 시키겠다고 했어.”
“하핫, 그거 되게 좋은 방법이다. 역시 스네이프 교수님이랑 천생연분이야, 해리.”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스네이프의 얼굴 근육이 씰룩거렸다.

“세베루스, 1학년들 감점 엄청나게 시켰었죠?”

해리가 스네이프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스네이프가 미간을 찌푸리며 스프를 저었다.

“그 놈들이 너에게 고자질을 하나?”
“아, 아뇨. 제가 물어봤거든요. 음… 당신한테 감점당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요.”
“네 수업 시간에 내 얘길 하지마. 그리고 교실 안 공기를 썩혀놓는 오물들을 만들어놓고 감점을 피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스네이프가 딱딱하게 말했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괜히 쑥스러운 얘기까지 나올까봐 미리 엄포를 놓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애들 귀엽던데. 세베루스는 안 귀여워요? 열한 살 꼬맹이들인데.”
“그 나이의 놈들이 귀엽다고? 차라리 날 보고 맨드레이크의 기저귀를 갈라고 해라.”
“풉, 진짜로 얼마 안 가 기저귀를 갈 거면서….”
“응? 맨드레이크를 기르고 싶은 거야, 해리?”

네빌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물어 왔다. 아, 이런, 남들 듣는 곳에서는 스네이프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맨드레이크 사육법을 설명하는 네빌에게 붙잡힌 해리의 곤란한 얼굴을 비웃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정신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호그와트에 학생으로 있을 때보다 교수로서 있는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금세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것도 그런 걸까. 9월은 교수 직에 적응하는 데만도 금방 시간이 지났다. 10월, 11월에는 스네이프의 배가 조금씩 티가 나게 불러오기 시작했다. 달에 한 번씩, 슬리데린 사감의 방으로 데번 부인의 방문이 있었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아이들은 둘이라 더 좁은 뱃 속에서, 서로에 부대끼며 잘 자라나고 있었다.

12월의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올 해 마지막 호그스미드 외출날 아침이었다. 해리가 사준 짙은 녹색 캐시미어 숄을 두른 스네이프는 사감 방 식탁 앞에 앉아 턱을 괴었다. 이따금씩 뱃속에서 생명이 꿈틀대는 느낌에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면서.

“세베루스! 일어났어요?”

문이 벌컥 열렸다. 새벽부터 해그리드, 네빌과 집요정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치고 온 호그와트의 막내 교수 해리 포터였다. 검은 장갑에 묻은 눈을 털며 들어온 해리가 식탁 위의 작은 난로에 양 손을 갖다 대었다. 해리의 불긋한 얼굴과 확 끼치는 겨울의 새벽 냄새에 스네이프는 저도 바깥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손을 녹힌 해리는 바로 장갑을 벗고, 스네이프의 아래에 무릎을 꿇고 배를 안았다. 동그란 배 안에 저희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시간을 거듭해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스네이프는 손을 뻗어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군.”
“진짜 추워요. 나갈 때 단단히 껴입고 나가야겠어요.”
“무릎 아파, 일어나, 해리.”
“괜찮아요, 이 자세가 제일 안기 좋아서. 아, 방금 발로 찬 것 같은데? 힘이 좋은 게 알버스인가, 릴리인가.”
“둘이 번갈아 가며 차대는 것 같다. 성격들이 다 해리 널 닮았는지.”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는 눈이었다. 해리가 배를 안은 채 그를 올려다보며 큭큭 웃었다.

“당신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뱃속에서 얌전했냐고요.”
“인기척도 안 냈을 걸.”

그 말에 해리는 웃음이 터졌다. 귀여워, 정말.


스네이프는 제 목도리를 매주는 해리의 신중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까만 목도리를 얼굴의 반을 가리게 칭칭 감은 꼴이, 바람 한 점 틈으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해리의 목적이 보였다. 그리고 해리가 내민 손을 잡았다. 까만 해리의 장갑과 제 보라색 장갑 낀 손이 단단히 연결되었다. 아구스 필치가 탐탁치 않은 눈으로 부부의 모습을 훑었다. 학생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인사를 해왔다. 해리의 스킨쉽에 이제 적응할대로 적응한 건 스네이프도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응, 안녕. 감기 조심하고 잘 놀다 들어가. 해리가 학생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스네이프를 이끌었다. 둘은 스리브룸스틱스 앞으로 갔다.

“론, 헤르미온느, 드레이코!”

해리와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눈 길을 걸어 다가오는 그들이 보였다. 허니듀크를 먼저 들렀는지 론이 든 가방에 초콜릿과 과자들이 한가득이었다. 드레이코는 회색 코트, 회색 목도리를 두르고 그들 옆에 한 발자국의 거리를 둔 채 다가왔다. 나눌 대화가 대화였던지라, 그들 다섯은 스리브룸스틱스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따듯한 버터맥주 다섯 잔이 그들 앞에 놓였다. 스네이프의 맞은편에 앉은 드레이코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식탁에 놓인 건 작은 크리스탈 약병이었다.

“완성한거야?”

해리의 물음에 드레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코트를 벗고, 왼팔을 식탁 위에 놓고서 까만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냈다. 섹튬셈프라에 베인 흔적도, 볼드모트의 어둠의 표식도 깨끗이 사라진 팔이 보였다. 스네이프도 코트를 벗고 왼팔의 팔꿈치까지 옷을 걷었다. 아주 희미하게 남은 해골 표식. 드레이코가 직접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약물을 흘렸다. 헤르미온느와 론도 그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팔 위로 약물을 펴발랐다. 약물이 스며들자, 표식의 흔적이 사라졌다.

“대단하다….”

제일 먼저 감탄사를 뱉은 건 헤르미온느였다. 이건 정말 위대한 발명이었다. 전쟁 후에 이 저주치료제를 필요로 할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셀 수 없었다. 론마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리와 스네이프는 깨끗한 그 왼팔을 조금 더 오래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맙다, 드레이코. 거슬리던 게 하나 지워졌군.”

옷을 내리고 코트를 다시 입으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특유의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으쓱였다.

“말포이 가문의 돈과 명예를 제가 되찾는 건 당연하죠, 교수님.”
“젠장, 진짜 돈방석에 앉겠잖아. 이미 말포이 네 방에 넘치는 거 아니었냐?”
“아, 물론이지. 네가 하나 가져가도 모를 정도야, 론 위즐리.”

론의 툴툴거림에, 드레이코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약병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해리도 주머니에서 사진 세 장을 꺼냈다. 데번 부인이 마법으로 양피지에 염색해준 아이들의 뱃속 모습이었다. 해리의 친구들 세 명은 그 사진에 눈을 떼지 못했다. 들뜬 그 얼굴들이 정말로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해리는 따듯한 온기가 뱃속에서부터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드레이코, 수고해줘. 론, 헤르미온느도 부탁해. 너희들이 없었으면 정말 막막했을 거야.”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드레이코가 스네이프를 대신해 대타 마법약 교수로 들어올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사감의 방과 스피너즈 엔드를 벽난로로 오가며 출산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론과 헤르미온느도 만삭이 될 스네이프를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걱정도 없이 교수님을 임신시킨 거야, 해리?”

드레이코가 장난스레 빈정거렸고, 헤르미온느는 높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론도 낄낄거리며 버터맥주를 들이켰다.

“아니, 너희들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쵸, 세베루스?”
“뭐, 해리 너보다는 저 녀석들이 믿을 만하지.”
“아, 세베루스!”

세 명의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론이 사온 과자들을 식탁 위에 몇 개 올렸다. 론이 뜯은 개구리 초콜릿에서 스네이프 카드가 나왔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스네이프는, 카드 뒷면에 적힌 글을 보고 눈을 부라리며 벌떡 일어섰다. 반려와 제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홀몸도 아닌 몸으로 개구리 초콜릿 제조 공장에 테러범죄를 일으킬 뻔한 스네이프가 자리에 도로 앉아 씨근거렸다. 해리는 곧 문구를 바꿔주겠다며 스네이프를 달랬다. 스네이프는 제 카드를 박박 찢고서, 해리가 뜯은 두번째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해리가 뜯은 초콜릿에서 나온 해리 포터 카드에, 카드 속 해리가 저에게 윙크하는 모습을 보며 스네이프의 기분은 점차로 풀렸다.

밖으로 눈발이 날렸다. 해리와 세 명의 친구들은 누가 어떤 아이의 대부와 대모가 될 것인지를 정했다. 나한테 먼저 제안했으니까 내가 먼저 나온 쪽의 대부를 하지, 드레이코가 얘기했고 헤르미온느는 고개를 끄덕거렸으며, 론은 괜히 툴툴거렸다. 스네이프는 또 다시 뱃속을 차오는 감각을 느끼며 배를 쓸었다. 눈이 내렸지만, 스리브룸스틱스의 구석 자리는 다섯 명의 훈기로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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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Q. 우선 결혼 정말 축하드려요 두 분. 실감을 하시나요? 처음으로 질문하자면, 프러포즈의 순간이 궁금한데요.

H: 정말 너무 허접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워요. 평범하게 대화를 하다가 결혼하자는 얘기가 나온 거라서요. 아무래도 다시 해야할 것 같아요.
S: 필요 없습니다, 포터 씨. 결혼은, 해도 뭐, 그 전과 똑같겠죠.

Q. 두 분 사이가 안 좋았던 걸로 대부분들 알고 계실텐데요. 언제, 어떤 걸 계기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됐나요?

H: 세베루스가 귀여워서요!
S: 해리 포터의 시력이 나쁜 것은 안경을 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H: 안경 끼고는 정상이거든요? 세베루스가 머리를 하나로 묶은 모습은 정말 귀여워요.
S: 앞으로 그렇게 안 묶겠습니다.

Q. 연애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H: 어… 보통 집에서만 있어서, 늘 비슷했던 것 같은데….
S: 오러 일을 하던 포터가 갑자기 다쳤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마법부의 마법사 보호 체제가 허술하다는 것을 느꼈죠. 게다가 포터는 이 마법세계의 영웅 아닙니까? 그런 그조차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정부 시스템의 변혁이 필요해 보입니다.
H: 세브, 연애 얘기를 하라고요. 음, 제 작년 생일에 세베루스가 케이크를 굽다가 태워먹은 일이 생각나네요. 오븐에 올려놓고 우리 둘이서 좀 바빴거든요.(웃음)
S: 포터 씨, 당신도 타버린 케이크 시트 꼴로 만들어 줄까요?

Q. 서로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어딘가요? 외모, 성격 뭐든 상관없이요.

S: 눈.
H: 모든 것이요. 아, 성격도 포함해서.

Q. 서로에게 이건 제발! 하고 바라는 게 있다면?

H: 좀 솔직해져도 될 것 같아요. 전 이제 남편이잖아요. 부부끼린 다 털어놓는 거 아닌가요? 아직도 속마음을 꽁꽁 감추려 들어요. 아, 그리고 포터라고 그만 부르고 해리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S: 해리, 쓸데없는 걸 요구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결혼식 다음날 오후, <이러쿵 저러쿵>의 독점 취재 기사의 인터뷰 부분을 읽던 스네이프가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전면 가득 저와 해리의 결혼식 키스 장면이 보였다. 하객들은 뒤통수만 찍혀서 표정이 안 보이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이 이 모습을 어떻게 보고있던지 스네이프는 전부 다 싫었다. 잡지의 반절 이상이 해리-스네이프 부부의 결혼식 사진과 글로 채워져 있었다. 스네이프는 잡지를 덮었다. 잡지 표지에는 ‘포터 부부 결혼식, 독점 취재! 사진, 인터뷰 수록’이 크게 적혀 있었다. 포터 부부……. 자신은 이제 세베루스 포터인가. 스네이프는 턱을 괴고 그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사진 잘 찍혔던데요. 의외로 사진이 잘 나오네요, 세브.”
“시끄러.”
“어젯밤엔 말 잘 듣더니 또 틱틱대시네.”

스네이프는 주름이 사라진 해리의 어린 얼굴을 흘겨 보았다. 어쩐지 저보다 나이가 든 해리에게는 평소 잠자리에서보다 더 순종적으로 굴었던 스네이프였다. 보기에 어른스럽고 멋스러워서 그런가. 엄청 설레고 두근거렸지만, 다음 날 아침에서는 그 사실을 모른척했다. 익숙한 얼굴로 돌아온 해리는 여전히 애처럼 느껴졌다. 물론, 해리는 아직 어린애인 것도 맞았다.

“헤르미온느랑 루나가 밤 새서 잡지 완성했대요. 뒤풀이 얘기도 동봉한 편지에 적었는데 진짜 웃기더라고요.”
“흥, 어린 놈들이 신나서 놀았겠지.”
“헤르미온느랑 루나가 나오기 전까지 론이랑 드레이코 둘이서 파이어 위스키 대결을 하는 걸 보고 왔다던데, 드레이코 술 약하잖아요. 론 완전 신나서 밀어붙였을 걸요. 둘이 엄청 친해졌대요.”
“포터, 안 봐도 뻔하군. 둘이서 네 욕 하면서 친해졌겠지.”
“아하하. 내가 그렇게 욕 먹을 짓을 많이 했나?”

피식, 스네이프는 웃고 고개를 돌렸다. 저도 몰라서 저렇게 묻는 건 아닐 터였다. 해리는 습관이 든대로 스네이프의 배를 동그랗게 쓸어내리며 반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이렇게 해리가 배를 만져주는 걸 좋아했다. 릴리, 알버스, 엄마 힘들게 하지마. 그 속삭임에는 종종 웃음을 터뜨리거나 어린 신랑에게 핀잔을 주었다. 네가 제일 날 힘들게 해, 포터. 그 말에는 해리도 쑥스럽게 웃고 말았다.

“아이들이 빨리 보고 싶어요. 근데…… 걱정도 많이 되고.”
“교수 일로 바쁠 너보다야 직접적으로 돌볼 내가 더 걱정이지.”
“힘든 세브를 옆에서 보는 것도 저는 힘들다고요.”
“흥, 아이를 가지자던 게 누군데.”

소파에 느긋하게 누우며 스네이프가 툴툴거렸다. 해리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그의 머리가 제 허벅지를 베는 걸 내려다보았다. 해리는 가만히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결혼 첫 날의 하루가 참 평화롭고 조용히 흘러갔다. <이러쿵 저러쿵>의 결혼 기사를 본 팬들의 편지가 저녁부터는 폭발하겠지만, 뭐, 어쨌든. 역시 해리와 스네이프가 생각했던대로, 결혼이라고 저희들의 일상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에는 변화를 느낄 수 있겠지만, 당장은 그대로였다.

“2주 후에는 개학이네요.”
“드디어 포터 교수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군.”
“떨리니? 세베루스.”

학생 세베루스를 다루듯 하는 해리의 목소리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스네이프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포터, 너나 힘들다고 징징대지마.”
“뭐야. 내가 오러 일로도 힘들다고 그런 적 있어요? 없잖아요.”
“범죄자와 10대 트롤들 중에는 범죄자가 더 낫다고 느낄 거다.”

데스 이터와 교수 직을 모두 경험해본 자의 말이었다.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흐음, 해리는 교수 일을 생각해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머글 어린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던 건 재밌었다. 좀 더 머리가 큰 애들을 가르치는 건 확실히 힘들려나? 그렇지만 호그와트의 교수 직은 스네이프의 옆에서 계속 있을 수 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해리가 손을 뻗어 잡지를 뒤적였다. 헤르미온느가 잡지용으로 수정해놓은 인터뷰 답변들을 읽으며 해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아, 맞아. 왜 해리라고 안 해줘요. 이제 세베루스 당신도 포터인데.”
“이상해. 머글 아비놈의 성이지만 나는 스네이프인 것이 익숙한데.”
“그럼 세베루스 스네이프 포터라고 해요. 당신 아버지 이름은 지우고.”
“그것 참 멋지군.”

해리는 이상한 데서 가차없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스네이프의 마음에도 들었다. 스네이프는 토비아스가 땅 밑에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상상하고, 비뚜름히 입매를 비틀어 그를 비웃었다.

“릴리는 미들네임을 지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음, 당신이 에일린으로 이름 짓기 싫어했으니까….”
“혼낼 때는 미들네임을 같이 부르는 게 효과가 좋지.”
“오. 그런가요. 전 그렇게 누군가에게 혼나본 적이 없어서.”

보통은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며 혼낼 때 미들네임까지 같이 불렀다. 해리에게는 그런 부모가 없었고, 키워준 이모와 이모부는 결코 미들네임 제임스가 들어간 이름 전체를 불러준 일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빤히 해리를 쳐다 봤다.

“해리 포터는 충분히 그자체로 욕이 될 수 있다, 해리.”
“풉─!!!”

정말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방식이었다. 위로인지 위로가 맞는지도 헷갈리는 그의 방식을, 해리는 정말로 좋아했다. 큭큭거리며 웃은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다시 쓸어 넘겼다. 그 손길에 스네이프는 편안히 잠이 왔다.

“릴리 에일린 포터. 우리 딸 이름으로 해요.”
“그래….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
“하늘에서 우리 엄마랑 같이 우리를 잘 지켜보고 있겠죠.”
“……릴리가 봐서는 안 될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
“아…….”

해리가 머쓱히 턱을 긁었다. 스네이프는 잠 속으로 빠져들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개학까지 일주일을 남긴 주말, 일요일의 이른 오전. 론의 오프에 맞춰, 조지도 직원에게 가게를 맡겨 놓고 말포이 저택으로 온다고 했다. 해리, 스네이프, 론, 헤르미온느는 현관에서 집요정의 안내를 받아 드레이코의 개인응접실로 갔다. 헤르미온느는 그 길에 제가 벨라트릭스에게 고문 받았던 지점을 잠시 흘깃거렸다. 론이 그걸 눈치 채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보지 않도록 몸으로 가렸다. 해리도 그녀의 안색을 살폈으나, 헤르미온느는 오히려 제 팔을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결혼식 뒤풀이 자리가 정확히 어땠는지 알 수 없어서, 해리는 헤르미온느까지 이 자리에 따라왔다는 게 내심 놀라웠다.

해리가 60갈레온을 준, 뜯어졌었던 실크 셔츠를 입은 드레이코가 응접실의 입구에 서있었다. 론 역시 저 모습을 처음 봤을 때의 자신처럼, 이 대저택에 어울리는 도련님의 자태에 경악을 하는 얼굴이었다. 해리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드레이코에게 손을 들었다. 해리의 인사에 끄덕인 드레이코가 론을 쳐다보고 고개를 휙 돌렸다. 친해졌다더니, 술게임으로 다시 도로묵이 된 건지, 뭔지. 어쨌든 그 둘도 곧 친해질 수 있을 거라 해리는 생각했다. 드레이코는 외로움을 잘 타고, 론은 그런 걸 내버려두는 성격이 못되었다. 헤르미온느는 드레이코에게 안녕,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를 잠시 바라본 드레이코는 그레인저, 하고 인사를 받았다. 해리는 드레이코가 정신을 차린 기특한 양아치 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괜스레 뿌듯해졌다.

“스네이프 교수님, 약물부터 확인 받고 싶은데요. 너희들은 잠시 기다리고 있어.”

드레이코가 집요정에게 손짓을 하고, 스네이프를 연구실로 데려갔다. 헤르미온느는 오, 아니요, 괜찮아요, 아, 정말 친절하셔라, 하면서 집요정이 따라주는 홍차에 크게 고마워했다. 론은 처음 보는 쿠키를 집어 아무 생각없이 입에 넣었다가, 한꺼번에 세 개를 집어 입에 밀어넣고 헤르미온느의 타박을 들었다. 해리는 응접실 입구에서 조지를 기다렸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집요정의 안내를 받고 저택 내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조지가 걸어왔다.

“이런 부잣집은 처음 와봐. 말포이 가가 이 정도구나~”
“조지! 어서와. 저번에 선물은 고마웠어.”
“아, 해리. 스네이프가 좋아했어?”
“음…… 엄청.”

해리의 윙크에 조지가 하핫 웃었다. 가게에 내놓을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노화 마법약은 인기가 없다고 조지가 설명했다. 여학생들은 사랑의 묘약이나 더 팔라고 난리란 말이야. 뭐, 이 노화 마법약도 트라이위저드가 다시 열린다면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말에는 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로워졌으니 트라이위저드 개최도 몇 년 내로 될 것 같았다. 해리는 자신의 아이들이 호그와트 챔피언으로 참가하는 상상을 하면서 히죽거렸다.

드레이코와 스네이프가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드레이코의 흥분 된 기색으로 보아, 저주 주문 치료제에 진전이 또 있었던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조지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저번의 결혼 선물이 사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터라, 스네이프로선 매우 드물게 먼저 조지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조용히 홍차를 기울이는 스네이프를 제외하고, 넷은 일전의 뒤풀이 자리에 대해 떠들며 웃었고 해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 이야기들을 경청했다. 헤르미온느랑 루나가 잡지 편집을 위해 자리를 떠난 이후, 론은 뻗어버린 드레이코를 실컷 비웃다가 저도 쓰러져 코를 골았다. 조지는 그런 둘을 데리고 순간이동해서, 둘 모두 론의 방에 처넣고 본인의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고 했다. 드레이코가 버로우에서 잤다고?! 해리는 그 사실에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엉성하게 무너진 집을 여러 번 쌓아올린 듯한 버로우에서 눈을 뜬 드레이코를 상상했더니, 해리는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걸 여태 말도 안 하고 있었던 론과 드레이코도 우스웠다.

“…집이 불타고 있는 줄 알고 놀랐지. 사방 벽에 도배 된 주황색 포스터라니. 괴랄한 취향하고는.”
“야, 말포이 너 지금 처들리 캐논 팀을 욕하는 거냐?”
“네 방을 욕하는 거지, 론 위즐리.”
“말포이가 숙취가 심하더라고. 들어봤더니 이 정도로 술을 마신 게 자긴 생전 처음이라면서. 우리 집엔 숙취 물약이 론 때문에 항상 있거든, 다행이었지.”

조지가 키득거리며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헤르미온느는 술을 많이 마시는 론에 눈썹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했다. 오러 일이 힘들어서 안 마실 수가 없어, 변명을 늘어놓은 론이 그녀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드레이코는 턱을 괸 채, 그 날 아침을 회상하는 듯 미간이 살짝 좁혀져 있었다.

“맛있었지? 우리 엄마 호박 스프.”
“……응.”

조지의 따듯한 미소에 드레이코도 못내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론은 그런 드레이코를 흘기더니 꼰 다리 위에 팔짱을 놓았다.

“이런 좋은 집에 살면서 비싸고 맛있는 것만 처먹을 놈한테 엄마의 호박 스프 자랑이라니, 조지.”
“왜 그래. 우리 엄마 호박 스프는 진짜 맛있잖아. 심통났니, 울 막내 동생아?”
“아! 형, 날 애 취급 좀 하지마!”

해리가 보기에도 지금 론의 모습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코흘리개 어린애 같았다. 드레이코도 론을 노려보더니 흥, 고개를 틀었다. 저 둘이 친해지려면 좀 고생을 해야할 것 같긴 하군. 해리는 해가 가운데에 떠서 더 더워지기 전에 이만 퀴디치를 하러 나가자고 몸을 일으켰다.

손 뒤집기로 정해진 팀은 론과 드레이코를 절망하게 했다. 해리는 조지와 손을 짝 마주치고 웃었다. 상대편의 엉망진창, 존재하지도 않는 협동심을 보면 누가 이길지 불 보듯 뻔한 승부였다. 헤르미온느와 스네이프는 나무 그늘의 아래에 돗자리를 깔았다. 손수건에 마법을 걸어 넓직한 돗자리로 변환시킨 헤르미온느였다. 헤르미온느는 스네이프에게 요즘 입덧은 어떠시냐 물었고, 무취의 입덧 물약을 개발했다는 드레이코에게 놀랐다. 걔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 또한 마법약에서 (O.W.L이든 N.E.W.T든) 특출함을 받았기 때문에 드레이코의 마법약 제조 능력에 대해 잘 와닿지 않는 듯 했다.

“말포이가 교수님을 정말 잘 따르는 것 같아요. 학생일 때도 그랬지만.”
“전쟁 이후로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으니 그렇겠지.”
“하긴…. 친했던 친구도 죽고, 아즈카반에도 잠깐이지만 들어갔다 나왔잖아요. 해리가 말포이를 대부로 삼았다고 폭탄 발언 했을 때는 정말 놀랐는데, 걔가 해리랑 교수님을 위해서 해준 일들을 들을수록, 오히려 해리의 절친이라는 저희가 더 부족했던 것 같고….”
“흥, 그럴리가. 해리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할 거다, 그레인저.”
“하하, 감사해요 교수님. 근데 이젠 해리를 포터 아니고 해리라고 부르시나 봐요?”
“나도 포터니까.”

그 말을 할 때 스네이프는 조금 쑥스러워졌다. 교수의 하얀 뺨이 살짝, 아주 미묘히 붉어진 걸 보며 헤르미온느는 눈을 접어 웃었다. 옛날의 교수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네이프는 해리를 정말로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헤르미온느는 다리를 모아 끌어안고,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공중을 날아다니는 네 개의 빗자루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퀘이플을 들고 있는 건 해리인 것 같았다.

“해리랑 어떻게 잘 되신 건지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퀴디치를 하는 네 명의 남자들을 올려보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스네이프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다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배 위에 깍지 낀 손을 얹었다.

“……어느 날 아침, 해리가 아침부터 나와는 눈도 못 마주치고 말을 더듬고 허둥대는 티를 내었지. 그 날은 동거 후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말도 없이 퇴근 시간을 몇 시간을 넘기고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리가요?”

흐흠, 살며시 웃으며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기울였다. 스네이프의 입으로 듣는 그들의 풋풋했던 일상이 열아홉 소녀의 가슴을 여름의 바람결처럼 간지럽혔다.

“화가 났지. 날 기다리게 할 줄도 알다니, 건방지게도 그 놈이 말야. 자려고 누웠는데, 아랫층에서 순간이동으로 돌아온 해리의 소리가 들렸다. 난 해리가 바로 자러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내 방으로 들어오더군.”
“헐! 대박…!”

헤르미온느는 입을 틀어 막고 흥미진진하게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교수의 수업 때보다 더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해리는 침대 밑에 앉아서 그 날 늦은 이유에 대한 변명을 주절대며 늘어놓고도, 한참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눈 감고 있는 날 바라봤다.”

스네이프는 눈을 감은 채, 꿈 속의 해리와 현실의 해리를 겹쳐보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기겁을 하더군. 내가 자는 줄로만 알았는데, 제가 떠든 그 모든 소리들을 다 듣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내게 부끄러운 것이 있어 늦었다는데, 그 이유를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려 했지. 나는 레질리먼시를 썼다.”
“하하, 해리가 5학년 때 배웠어야 할 오클러먼시를 아직도 익히지 못한 것에 대한 벌이네요.”

헤르미온느는 키득거리며 제 두 손으로 양 턱을 괴었다. 오랜 친구가 짝사랑 하는 교수의 앞에서 황망하게 허둥대는 모습이 상상되어, 그녀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해리는 그 날 일어나기 전에, 나를 대상으로 우스운 꿈을 꾸었지. 그 때문에 날 보기 부끄러웠다던 거였다. 정말로 바보 같은 놈이지.”
“어머…. 해리 걔 그 때는 열일곱 살 아니었어요? 못해도 케이크를 태웠다는 열여덟 생일 전이었을 거 아니예요. 완전 어린애였네.”

레질리먼시로 부끄러운 꿈을 들킨 친구가 못내 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 헤르미온느였다. 그러게, 진작 오클러먼시를 더 연습했어야지, 해리. 하지만 그걸 계기로 둘이 잘됐다고 하니, 운명은 어떻게든 흘러가나보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교수님도 그런 기억을 보셨으면 당황하셨을 텐데…… 어떻게 잘 풀렸네요?”

스네이프는 잠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건 해리에게조차 밝히지 않은 사실이었다. 자신도, 해리와 똑같은 꿈을 꿨었다고. 스네이프는 그 사실을 해리가 알게 되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고, 굳이 밝힐 필요도 없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입이 가볍지도, 저를 놀릴 생각을 갖을 성격도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이 소녀를 몇 년을 걸쳐 무시해왔던 자신의 전적을 기억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뻔뻔스럽게도 그녀가 의외로 저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 스스로를 조소했다. 이성의 대화 상대에서 스네이프는 필연적으로 릴리를 떠올렸다. 나무 그늘, 불어오는 여름 바람, 아직 어린 소녀와 소년은 우습게도 대화가 잘 통했다. 그 때의 생각이 나서 스네이프의 입꼬리는 찬찬한 미소를 그렸다.

“나도 똑같은 꿈을 꾸었으니까.”

놀란 헤르미온느의 눈이 스네이프를 향했다. 해리와 같은 꿈, 이라…. 그도 해리에게 이미 마음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하루종일 그 고작 짧은 꿈 따위에 휘둘리다가, 결국 속수무책으로 휘말린 셈이다. 나도 똑같이 멍청했지.”
“우연히 같은 날, 두 사람 모두 같은 꿈을 꾸다니…. 뭔가…… 마법과는 다른 느낌으로 신기해요.”

헤르미온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끄덕거렸다. 이런 내막이 있었다면,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니기엔 확실히 부끄러웠을 터였다. 해리나 스네이프나, 서로의 관계가 진전된 계기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넘기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빗자루들이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퀘이플을 잡고 있는 건 론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하늘을 보고 있지 않던 두 명의 관객들은 알 수가 없었다. 1골에 10점씩, 100점을 걸고 한 승부였다. 100 대 50으로 해리와 조지의 팀이 이겼다. 스네이프는 땀냄새를 풍기며 안기는 해리의 이마를 검지로 밀어내었다. 저 협동심 박살난 상대편을 상대로, 압도적인 점수 차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론은 툴툴거리며 혼자 50점을 냈다고 드레이코를 흘겼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몇 점을 냈는지 물었고, 여태 보지도 않았냐는 해리의 투정을 들어야 했다.

“내가 70점을 냈다고요!”

그래, 장하다. 스네이프는 못내 해리를 쳐다봐주었다. 해리는 그래도 제가 좋은지, 단순히 퀴디치에서 이겨서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퀴디치가 그리 좋을까. 그가 맥고나걸처럼 기숙사 사감이라도 됐다간, 개인 빗자루 소지조차 불가한 1학년 중에서 퀴디치 선수를 다시 또 발굴해내려고 혈안이 될 것 같았다. 처음 정해진대로 네빌이 그리핀도르 사감을 맡기로 한 게 다행이었다.

한 골도 못 넣은 드레이코와 혼자서 5골을 넣고 게임에 진 론을 빼면, 나머지 네 명은 높다란 나무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은 순간을 보냈다. 나른하게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누운 해리가, 손을 뻗어 그의 배를 쓰다듬었다. 이러는 게 버릇이 돼서, 해리는 스네이프가 아이를 낳고도 습관으로 계속 하게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지를 제외하면 셋은 모두 스네이프의 임신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던 론과 드레이코도 해리의 행동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제일 웃겼던 것은, 얌전히 그 손길을 받고 있는 교수였다.


“세베루스, 내 양말 못봤어요? 진초록 색깔 그거 한 짝이 안 보여요.”
“아씨오 해리 포터의 진초록 양말 한 짝.”

양말의 나머지 한 짝이 초라하게 팔랑거리며 침대 밑에서 나와, 해리의 트렁크 위에 내려 앉았다. 아, 저 마법사죠? 그 말에 해리의 뇌가 단단한 돌덩이로 굳어졌는지, 트롤의 콧물로 가득 차있는지를 고심해보던 스네이프는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제 트렁크를 닫았다. 해리에게 네 뇌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묻는다면, 오직 세베루스 스네이프로 가득차있다는 엉뚱한 대답만 들을 것 같았다. 해리는 트렁크를 닫기 전, 마지막으로 진초록 양말 한 짝을 틈에 쑤셔 넣었다. 닫힌 트렁크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내일로 벌써 9월이었다. 8월의 마지막 날, 학교로 떠날 짐을 꾸린 둘은 휑한 집 안을 둘러보았다. 스네이프는 4개월여를 살았던 집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넓어서일까, 이 집에 그리 정이 붙지는 않았다. 차라리 호그와트가 더 돌아갈 집 같이 느껴짐에 스네이프는 우스웠다. 그래도 꽤 여러 추억을 주었던 집을 비우니 스산한 것은 신경이 쓰였다. 먼저 학교로 떠난 올빼미 헤르메스와 불사조 퍽스의 빈 방에는 지저분한 잔해들이 있어, 해리가 지팡이를 휘둘러 전부 소멸시켰다.

“더 휑해보이는군.”
“역시… 집이 너무 넓죠?”

해리는 혼자 살 때보다, 오히려 스네이프와 둘이 같이 살면서 집의 크기를 실감했다. 어째서일까. 그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스피너즈 엔드라는 답이 도출되었다. 그 작고 허름한 집이 자신들의 온기로 안락해져가는 것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소중했던 감각이었다.

“이 집은 내놓을까요, 세베루스?”
“어떤 집을 또 구하게.”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다시 스피너즈 엔드에서 살까봐요.”
“주변의 집들이 모두 텅 빈 곳인데, 애들이 아직 어리다고 해도 환경이….”
“내 친구들이 찾아올텐데 무슨 걱정이예요. 강 건너엔 찰스랑 웨이드도 있고.”

스네이프는 제 배를 살짝 쓸어보았다. 머글 친구들과 자라는 자신의 아이들을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 건너 마을에는 피자와 파스타, 콜라가 맛있는 민트색 지붕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었다.

“좋아, 해리. 내가 그 집을 먼저 자진해서 다시 살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러게 말예요. 그렇게 날 데려가기 싫은 티를 엄청 내던 곳을. 그런데…… 사실, 되게 궁금했어요. 저는 전쟁이 끝나고 당신이 오두막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스피너즈 엔드는 당신을 찾을 장소로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을 정도로…… 그 곳에 있는 당신을 생각해본 적도 없거든요. 저한테는 프리벳가 4번지의 벽장이 세베루스에게는 스피너즈 엔드였던 게 아니었나요? 왜 거기에서 계속 살고 있었던 거예요? 교수 직도 대단한 벌이는 아니어도, 몇 십 년 일했으니 재산도 불었을텐데.”

스네이프는 그 이유를 떠올리면 씁쓸해서 입을 다물고 싶었다. 해리의 질문은 본질을 뚜렷하게 꿰고 있었다. 해리 포터의 프리벳가 4번지 벽장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스피너즈 엔드. 해리의 말이 맞기 때문에, 스네이프는 바로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호그와트 슬리데린 기숙사에 배정 받은 어린 마법사 소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그 지긋지긋한 자신의 타고난 환경을 벗어나, 위대해지는 자신을 열망했다. 1학년 스네이프의 상상 속에서는 릴리와 이어진 자신이 있었고, 저를 누구도 무시하지 않게 되는 미래가 있었다. 우습게도, 스네이프는 그 열망들이 제 진짜 미래가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의 확신이 조금씩, 차례차례, 아주 확실한 방법으로 꺾여갈 때마다 스네이프는 부러진 자신을 치유해내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을 버려두기로 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타고난 환경 그대로 어딘가가 잔뜩 부러진 채 살아야만 했다. 벗어나려고 해서 이렇게 돼버린 거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이래야만 하는 게 당연한데. 제 주제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 때는 벗어나려고 했던 곳이니까.”
“……?”
“해리. 네가 그 벽장에 널 스스로 가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겠지.”
“세베루스…….”

해리는 처연한 눈의 반려를 품에 안았다. 그의 안쓰러운 모든 과거들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왜, 그 모든 짓궂고 불쾌한 과거들이 모두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몫이어야만 했을까. 그에게 행복을 줘선 안 될 이유라도 있었을까? 스네이프와 함께 살아본 해리는 그 질문에 단연히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도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상처 속에 파묻고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었다.

“나랑 함께 그 집에서 살았던 1년은 행복했죠?”
“길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해리.”
“당신이 날 사랑해줘서, 나도 고마워요. 저를 받아주지 않고, 계속 당신이 예전 그대로였다면 나는 마음이 찢어져서 죽고만 싶었을 테니까. 당신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한 내 목숨인데도요.”

그런 끔찍한 소리를. 스네이프의 앞에서 죽고 싶었을 거라고 가정하는 해리는, 가정일 뿐이더라도 스네이프에겐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하하,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해요. 나 안 죽어요, 절대. 당신 옆에서 200살까지 산다니까요?”
“……200살은 너무 많아.”
“흐흐흐. 사실은, 영원히 세베루스 곁에 있고 싶은데, 너무 집착 같아서 살아있을 때만으로 상정한 거거든요. 난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거기서도, 당신 옆에 있을래요, 세베루스.”
“지독하군….”

스네이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카락이 길어 자신의 얼굴을 가려주어 다행이었다. 저 지독한 집착을 듣고도, 입꼬리를 올려가며 웃고 있는 자신을 해리에게 들키기는 싫었다.

“사랑해요. 어떻게 한 사람을 이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지, 나도 신기해요.”
“짐 챙기다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괜스레 툴툴거린 스네이프가 슬쩍 해리의 옆얼굴을 보더니 뺨에 쪽,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 귀여운 입맞춤에 해리는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람 한 명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고, 살아가는 삶에 열망과 열정을 실어줄 수 있는지. 정말 그의 목숨을 구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해리 포터에게도 구원이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해리 포터를 사랑하게 된 것은, 해리 포터를 위해서도 분명한 구원이었다.


“포터 교수.”
“아, 맥고나걸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네르바, 안녕하십니까.”

새로운 슬리데린 사감의 방은 슬리데린 기숙사와 가까운 지하였다. 그 곳까지 걸음한 맥고나걸은 준비된 방이 괜찮은지 부부에게 물었다. 크리처가 몇날며칠을 쓸고 닦아 윤을 낸 지하의 방은 지하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환했다. 호그와트에서 가장 밝은 조명을 달아놓았는지 의심할 만했다. 블랙 가문에서 일했던지라 크리처의 방을 꾸미는 취향은 검거나 암녹색, 보라색 일색이었지만, 방이 환해 그것들이 칙칙해보이는 것이 아니라 고급스러워 보였다. 분명 해리의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 반려는 이 방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둘 다 포터가 되었으니, 교수로서 세베루스를 부르기가 애매해졌군.”
“아, 계속 스네이프 교수로 불러주시면 돼요. 제가 세베루스 스네이프 포터로 하자고 했거든요. 학생들이 세베루스의 이름을 막 부르는 것도 싫고─”
“해리!!”

남 앞에서 술술 밝히는 팔불출의 면모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스네이프의 호통에 맥고나걸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아, 해리. 첫 수업에선 뭘 가르칠거니?”
“첫 수업이요? 첫 날은 쉬엄쉬엄해야죠. 전 맥고나걸 교수님과 스네이프 교수님처럼 첫 날부터 빡세게 진도 나갈 생각은 없거든요. 뭐, 실제 시작하는 두번째 수업에서는 간단한 방어 마법부터 시작할 거예요.”
“방어 마법이 간단하다는 것부터 빡세지 않다는 자네의 말에 동의할 수 없구나, 해리. 기준이 높은 건 세베루스랑 똑같군.”

이 말에는 스네이프도 동감할 수 없었다. 방어마법 정도야 어둠의 마법 방어술의 기본이지 않은가? 똑같이 뚱한 부부의 표정에 맥고나걸은 어깨를 으쓱였다. 학생들이 어느 쪽의 포터든지 시달릴 생각을 하니 이제 교장이 된 은사는 웃을 뿐이었다. 그럼, 짐 풀고 개학 전에 푹 쉬기를, 해리, 세베루스. 그녀가 나간 방의 문을 보다가 해리가 식탁 앞에 앉았다. 책상 두 개와 책꽂이, 검은 커튼이 무겁게 달린 침대, 옷장과 서랍, 2명이 쓰기에 적당한 동그란 식탁, 한 편에 딸린 작은 부엌과 찬장. 있을 것은 다 있는 충분히 큰 방이었다. 그리고 이 방의 주인이 자신과 반려 스네이프라는 것에 해리는 마음이 뿌듯했다. 오러를 그만 두고 교수 직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차를 끓이던 스네이프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휙 문을 열었다. 손에 꽃 화분을 들고 있는 네빌이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해리! 복도에서 맥고나걸 교수님께 둘이 학교에 왔다는 소식을 들어서 놀러 왔어요.”
“잘왔어, 막 홍차를 마시려고 했었어. 앉아, 네빌. 그리고 들어야 될 얘기도 있잖아, 우리.”

해리가 네빌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하핫…. 어색하게 뒷목을 긁으며 네빌이 해리의 앞에 앉았다.

“세베루스, 당신도 얼른 와서 앉아요. 대체 지니랑 네빌이 잘 된 게 당신 덕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저도 좀 들어보자고요.”

장난스러운 해리의 말투에 네빌은 쑥스럽게, 스네이프는 무감하게 반응했다. 차가 끓는 주전자를 가져온 스네이프가 자리에 착석했다. 세 장정이 앉은 작은 테이블이 꽉 차고, 각자의 앞에 크리처가 구비해놓은 블랙 가문의 찻잔 세트가 놓였다. 해리는 턱 밑에 손등을 대고, 네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스네이프는 차를 홀짝이며 네빌이 가져온 노란 꽃을 바라보았다. 그에 뒤늦게 네빌이 꽃에 대한 설명을 잠시 했다. 아, 이건 햇빛이 없는 지하에서도 잘 자라는 꽃이예요. 이름은 리스샤이너고, 향기엔 진정 효과도 있어서 침실에 두기 좋아요. 스네이프는 네빌의 설명을 들으며 노오란 꽃잎을 흐드러지게 피운 소담한 꽃을 눈에 담았다. 햇빛이 없는 지하에서도 잘 자라는 꽃, 그 설명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 같아서, 스네이프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 모르게 찻잔에 입매를 가리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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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음…. 머리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응. 예쁘다. 저는요? 앞머리 남길까요? 다 넘긴 게 낫나?”
“다 넘긴 게 나아.”
“아, 흉터 너무 잘 보이니까 민망한데….”
“……잘생겼군.”

드문 외모 칭찬에 머리를 매만지던 해리가 멈춰섰다. 거울로 가만히 해리를 들여다보던 스네이프가 저도 모르게 뱉은 감상이었다. 해리가 눈을 빛내며 저 잘생겼어요? 물었다. 스네이프는 끙,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해리의 눈에는 까만 예복을 입고 (이것도 조끼에 꽤 단추가 많았다.) 한 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스네이프가 살짝 뺨을 붉히고 서있는 모습이 비쳤다. 키가 크고 마른 스네이프가 몸에 맞게 예복을 갖춘 모습은, 기품이 있었고 우아했다. 해리는 푸른 빛이 비치는 검은 예복을 입고, 젤을 발라 이마가 보이게 앞머리를 넘겼다. 헤르미온느가 선물했던 암사슴과 수사슴 브로치까지 서로의 가슴에 달아주니 복장은 완성이었다.

“누구 부인인지 오늘 되게 멋있네요, 세브.”
“시끄럽다, 포터.”

짧은 옷깃에 스네이프 목덜미의 번개 낙인이 잘 보였다. 해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빈 교실에 간이로 설치한 커튼을 걷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루나가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몽롱하게 한 손을 흔들었다. 멋지다, 너 꼭 트윙글위글 같아, 해리. 해리는 그게 뭔지 몰라도 고맙다고 끄덕였다. 헤르미온느가 다가와 해리의 가슴팍의 브로치를 한 번 더 매만져주었다.

“우선 사진부터 찍자. 교수님, 오늘 진짜 멋져요. 평소에도 좀 꾸미고 다니세요. 이리 붙어 서, 해리.”

순식간에 스네이프에게 잔소리도 덧붙인 헤르미온느가 흰 커튼을 뒤로 해서 둘을 붙여 세웠다. 스네이프는 사진을 찍는 게 어색했다. 렌즈 앞에서 갈 곳을 잃은 시선에 헤르미온느가 교수님! 한 번 호통을 쳤다. 그레인저에게 역으로 혼나다니. 스네이프도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해리가 오른팔로 스네이프의 허리를 감쌌다. 우습게도 해리에게 단단히 안기자마자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사진을 찍고서는 헤르미온느가 준비한 문답에 해리와 스네이프가 대답을 했다. 루나가 엉뚱하게 적으려는 것을, 헤르미온느의 감시 아래 몇 번의 수정을 거쳤다.

“그럼 식 시작하기 전에 손님들 맞이해요. 괜찮겠죠? 세베루스.”

사람 대하는 거에 서툴다 못해 결함이 있는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제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못내 미안했다. 자신이 유명인인 해리 포터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요란히 행사를 열 필요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굳이 내가 입 열 필요 있나? 하는 말로 해리를 웃게 했다. 맞아요, 반기는 건 내가 다 할테니까 당신은 그저 내 옆에만 있어요.

복도를 지나 대연회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도착한 몇몇이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루나를 데리고 왔던 론이 팔짱을 낀 드레이코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맥고나걸과 해그리드는 대연회장을 꾸민 알록달록한 꽃 웨딩 장식을 둘러보고 있었다. 크리처의 주도 아래 엄청나게 화려하게 꾸며진 대연회장은 눈이 멀듯 아름다웠다. 스네이프는 전혀 감동 받지 않았지만, 크리처가 사모님, 어떠신가요, 저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면서 자랑스럽게 제 작품을 뽐낼 때 자리를 빨리 뜨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테디!”

통스 부인이 해리의 대자, 루핀의 아들 에드워드를 안고 막 식장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자를 덥석 안아들고 해리가 뺨을 비볐다. 아직도 젖내가 나는 아기의 뺨이 보드라웠다. 스네이프는 처음 보는 루핀의 아들이었다. 오늘 에드워드는 결혼식인 걸 아는지 옅은 분홍색 머리카락이었다.

“결혼 축하해, 해리. 세베루스 씨도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통스 부인.”

그녀의 사위인 루핀과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으나, 어쨌든 스네이프는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제 연인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기와 해리라니, 스네이프에게는 절로 미소가 나오는 모습이었다.

“안아볼래요? 세브. 테디, 세베루스한테 가보자.”
“세부우?”

엉겁결에 루핀의 아들을 품에 안은 스네이프는 생각보다 묵직한 아기의 무게에 깜짝 놀랐다. 떨어뜨릴까 무서워, 얼른 재차 품에 안으니 에드워드의 맑은 눈이 스네이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늑대인간 혼혈이라기보다 분홍색 풍선껌에 변환마법을 걸어 사람으로 바꾼 느낌이었다.

“제 대자 귀엽죠?”
“팔불출 대부였군, 포터. 이 녀석은… 루핀을 별로 안 닮았군.”
“통스랑도 별로 안 닮았고요. 머리색은 완전 통스지만.”

통스 부인이 스네이프에게서 다시 에드워드를 받아갔다. 묵직한 아기의 무게감이 품을 빠져나가자, 어쩐지 스네이프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네빌이 진초록 넥타이에 감색 체크무늬 양복을 입고 다가왔다. 해리가 반갑게 네빌을 안았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네빌은 어쩐지 우물쭈물하더니 해리의 귀에 귓속말을 했다. 눈썹을 올렸다 내리며 그를 지켜보던 교수는 문득, 문 쪽에 서있는 익숙한 소녀를 발견했다. 연노랑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지니였다. 제 전 남자친구 결혼식에 당당히 나타난 전 여자친구라니. 스네이프가 콧방귀를 뀌고 지니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니는 씨익 웃더니 네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윙크를 했다. 아, 그 날 이후로 그렇게 된건가. 스네이프는 짧게 웃음을 흘렸다. 해리는 네빌의 귓속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니를 발견한 해리가 네빌과 번갈아 보더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해리, 결혼 축하해. 교수님, 축하드립니다.”
“어…… 어, 지니…… 고마워?…….”
“스네이프 교수님 덕분에 네빌이랑 잘됐어요. 감사드려요.”
“우습군. 내 덕이라니.”

해리는 이게 무슨 말이냐는 눈으로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딱히 대답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네빌과 지니가 팔짱을 끼고 식장을 구경하러 가는 뒷모습을, 해리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더이상 죄책감 안 가져도 되겠군, 포터.”
“하지만…… 네빌이랑…… 지니가……. ……네빌이랑 지니라니.”

해리는 멍하게 서있다가, 다가온 해그리드에 등짝을 세게 맞고 정신을 차렸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과 근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호그와트의 개학도 2주가 남은 시점이었다. 부부인 해리와 방을 같이 쓸 수 있도록 전보다 넓은 방을 슬리데린 사감실로 바꾸었다는 교장에 스네이프는 감사를 표했다. 정말이지 그녀는 스네이프와 해리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해리! 스네이프!”

몰리였다. 아서와 조지가 뒤이어 들어왔고 퍼시도 보였다. 빌과 플뢰르 부부가 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들어섰다. 가족의 등장에 드레이코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던 론이 다가왔다. 지니도 네빌을 이끌고 다가왔다. 위즐리 가족과 한 번씩 포옹을 한 해리는 그 옆에서 표정 없이 서있는 스네이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서와 조지가 스네이프에게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조지가 스네이프를 따로 불러냈다. 해리는 의아했지만 몰리에게 잡혀 있어서 조지를 따라가는 스네이프를 흘낏 돌아보기만 했다.

조지는 푸른 수국이 치렁하게 늘어진 장식 아래로 스네이프를 이끌었다. 약간 그늘진 느낌이 드는 구석이었다. 조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축소마법을 건 무언가를 꺼냈다.

“교수님, 결혼 축하 선물이예요.”
“자네가 주는 거면 받고 싶지 않은데, 조지 위즐리.”
“해리와의 결혼 생활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줄 장난감 가게 사장의 선물이니까 받아두세요.”
“이게… 대체.”

축소 되어 있었지만 어떤 용도의 장난감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구기며 단번에 거절했다. 이딴 거 없어도 해리 포터와의 섹스는 녹초가 된다고. 하지만 스네이프의 거절에 이건 그러실 줄 알았다며, 다른 것을 꺼내드는 조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해리는 얼굴을 굳히고 돌아오는 스네이프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대충 짓궂은 무슨 짓을 조지가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 사이 위즐리 가족들은 화려한 식장의 모습을 구경하러 갔다. 그 틈에 드레이코가 해리와 스네이프의 곁으로 다가와 주머니에서 약병을 몰래 꺼냈다. 무취로 수정한 입덧 물약이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마움을 표했다. 스네이프는 바로 물약을 마시고 시치미를 뗐다. 미묘하게 거슬리던 식장의 냄새들이 깔끔해졌다. 해리는 이걸 시장에 내놔도 떼돈을 벌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드레이코는 내 이름을 단 첫 개발 물약이 입덧용인 건 싫다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성공한 물약에는 뿌듯함을 보이며, 솥째 있는 약물을 부엉이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야, 너 해리랑 무슨 얘기해.”
“또 너냐? 론 위즐리.”

론이 어느새 다가와 드레이코에게 시비를 걸었다. 질 수 없이 으르렁대는 드레이코의 모습까지 옛날과 다를 게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헤르미온느는 그들이 그러던지 말던지, 다 모였으니 식을 시작하자고 해리와 스네이프에게 말했다. 해리는 아직까지 실감을 하지 못하다, 갑작스럽게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제 진짜, 스네이프와 자신의 결혼이었다.

헤르미온느가 사회를 보는 건 예정 된 수순이었다. 이 결혼식 자체가 그녀가 없었으면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주례를 해줄 맥고나걸은 교수석에 섰다. 루나는 식장의 꽃들을 찍으며 필름을 낭비하다가 이제서야 결혼식에 관심을 가졌다. 적은 수의 하객들은 신부석, 신랑석 나눔 없이 공평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차피 거의 전부 해리의 지인들이었기 때문에 나누는 게 의미가 없었다. 해리는 입구부터 교수석 앞까지 깔린 하얀 버진로드를 내려다보았다. 저 길을 걸으면, 스네이프가 공식적으로 제 사람임을 인정 받는 걸까. 해리는 제 왼쪽에 선 스네이프를 힐끗 보았다. 사람 앞에 서는 것도, 주목 받는 것도 싫어하면서 무덤덤한 얼굴은 저보다도 긴장을 않는 것 같았다.

“떨려요? 세베루스.”
“왜, 떨리나? 포터.”

스네이프가 비뚜름히 입매를 올렸다. 루나가 찍기 전에 표정 좀 피시죠. 걘 잡지에 그 얼굴을 넣을 애라고요. 해리의 그 말에 스네이프도 피식 웃었다.

“어떻게 안 떨려요? 당신과 내 결혼식인데…. 솔직히 아직도 좀 안 믿겨서…….”
“나도 그래. 그래서 별 생각 안 들어.”

꼭 남의 결혼식에 온듯, 와닿지가 않았다. 스네이프는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참여해본 적도 없었으면서 그랬다. 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해리가 손을 잡아왔다. 다정하고 따듯한 큰 손. 스네이프는 부케 대신에 해리의 손을 제 손에 쥐는 게 좋았다. 음, 내 트로피는 해리 포터니까.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입장해주세요.”

소노루스 주문으로 키운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홀을 맑게 울렸다. 박수 소리가 들리는데, 퀴디치 수색꾼이었던 해리에게는 이게 입장하라는 신호탄 같았다. 루나가 앞 쪽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에 웃음이 터져 해리는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이 선 쪽만 바라보고 걷다가 문득 드레이코와 통스 부인이 ─드레이코의 엄마 나르시사와 자매인 안드로메다 블랙이었던─ 에드워드를 가운데 두고 앉아있는 걸 보았다. 아마도 통스 부인이 먼저, 혼자 앉아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을 터였다. 드레이코는 에드워드가 자신의 손가락을 잡아오는 걸 놔둔 채로, 저와 해리를 보고 있었다. 머글태생과 결혼해 집안과 의절한 이모와 늑대인간 혼혈 옆에서도 가만히 잘 앉아있는 그가, 전쟁 이후 성장한 면도 있음을 느꼈다. 혼자 있던 제자를 발견했던 스승은, 잠깐의 보람을 느끼고, 자신의 스승 맥고나걸의 앞에 섰다.

“부부가 된 걸 축하한다, 해리, 세베루스.”

부부라……. 여태 해리와 스네이프 둘이서 장난스럽게 부인이니, 남편이니 하던 것과는 다르게, 남의 입으로 듣는 그 말은 너무 뒷목이 간지러웠다. 해리는 머쓱해서 목을 긁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스네이프는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오클러먼시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을 만큼, 창백해 보이기도 했다.

맥고나걸의 주례사는 그녀답게 간결하고 핵심적이었다. 덤블도어였다면 늘어졌을 주례가 그리 길지 않게 끝난 것도 해리는 다행스러웠다. 스네이프를 너무 오래 사람들 앞에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주례가 끝나갈수록, 뒤에서 식탁보만한 손수건으로 훌쩍이는 해그리드의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듣기에 민망했다. 그걸 같이 듣고 있는 맥고나걸의 목소리도 점점 빨라져, 마침내 축사가 끝이 났다.

크리처가 밤새 준비한 7단짜리 웨딩 케이크 위에 수사슴과 암사슴 쿠키가 꽂혀 있었다. 둘은 칼을 같이 맞잡고 케이크를 반으로 잘랐다. 결실을 맺는 자리인데 굳이 반으로 가르는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해리는 열심히 절차를 따랐다. 스네이프는 그저 해리가 하는 대로 따라줄 뿐이었다.

“그럼, 두 분 마지막으로 맹세의 키스를 하세요!”

맹세의 키스는 또 뭐야. 참 거창하게도 이름을 붙인다고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거창한 걸 좋아하는 인간들이 만든 게 이런 결혼식 같은 행사일테지만. 루나는 이 순간에 보통사람들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번쩍 앞으로 들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와 조심스레 시선을 맞추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수고했다는 눈빛에 스네이프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으로는 맥고나걸만 보면 되고, 듣고 서있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팔을 감싸잡았다. 꽤 많은 눈들이 주목하는 가운데서 키스라니, 인간들은 이런 걸 왜 좋아하는 걸까,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었으나 스네이프는 그래도 고개를 기울였다. 해리의 입술이 제게 닿아올 때, 스네이프는 첫키스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 때보다도 더 서투르고 조심스런 입맞춤에, 스네이프는 해리를 사랑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저를 더욱 소중히 여겨주는 그가 느껴져서 좋았다.


“……해리가 요만할 때, 진짜 제 주먹보다도 작았다니까요. 그 자그만한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그 머글 친척들 집 앞에 내려 놓고 오는데, 그냥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제가 해리한테 처음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를 주었었죠. 그런데 어느새 이 놈이 다 커서 이렇게 호그와트에서 결혼식을 열고…….”

통스 부인과 몰리, 아서가 해그리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해리는 예복이 불편한지 윗단추를 기어이 풀고, 타이 끈을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구석에 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이목을 끌 것이 분명해, 그냥 해리의 옆에서 상석을 지켰다. 스네이프의 맞은편에서는 빌과 플뢰르가 에드워드를 돌보고 있었다. 플뢰르도 현재 임신 중이었다. 스네이프는 플뢰르의 배가 아주 조금 나온 것을 바라보았다. 제가 임신한 것은 맥고나걸과 아이들의 대부, 대모가 될 세 명의 제자 외에는 이 중에서 아무도 몰랐다. 그 편이 시끄럽지 않고 좋았다.

“세베루스 씨는 아이를 좋아하세요? 계속 우리 테디를 보고 있네요.”

플뢰르가 스네이프에게 물었다. 빌은 스네이프에게 아이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참 우습고 황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스네이프 교수의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기실 에드워드보다는 플뢰르의 임신한 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을 밝히면 그녀가 불쾌해할 수도 있을 듯해 그냥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를 돌보는 모습도 관찰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한 살이 지난 아기인데도 주변의 손길이 없으면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저보다 어린 아기를 자신이 한꺼번에 두 명이나 키워야 하다니……. 스네이프는 현기증이 일었지만 자신의 선택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헤르미온느는 루나와 <이러쿵 저러쿵>에 싣을 결혼 사진과 기사에 대해 의논을 ─또는 일방적인 쏟아냄─ 하고 있었다. 그 옆의 네빌과 지니는 서로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고, 지니의 퀴디치팀 합숙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는 양고기를 우물거리며 론과 드레이코를 구경했다. 론은 아직 조지를 데리고 말포이 저택에 퀴디치를 하러 오는 용기 혹은 객기가 없었다. 그래서 저 둘은 식장에서야 오랜만의 재회를 한 것이었다. 투닥대는 모습이 학생 때보다는 강도가 약해졌나 싶긴 해도 여전히 서로에 좋은 감정은 없어 보였다. 해리가 론, 드레이코- 를 부르자 응? 해리, 왜? 하고 돌아보는 두 친구의 얼굴은 순수함 그자체여서 해리는 웃음이 터졌다.

“다음주 론 오프 날에 말포이 저택에서 퀴디치 시합 어때? 조지, 형도 같이 껴서.”

퍼시의 옆에서 턱을 괴고 론과 드레이코를 구경하던 조지가 오? 좋지, 하고 신나게 입을 뗐다. 론은 어버버하다가 결국 거부의 의사가 없어 입을 다물고 드레이코를 흘깃거렸다. 드레이코는 위즐리 두 명을 말포이 저택에 끌고 들어오겠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2대 2 퀴디치 제안은 솔직히 솔깃했다. 게다가 조지는 뛰어난 몰이꾼이었고, 그가 학교를 다닐 때 벌인 장난들을 흥미롭게 생각했던 터였다. 론은 몰라도 조지는 괜찮았어서, 드레이코는 덤으로 껴오는 론 정도야 봐주기로 했다. 긍정의 뜻으로 드레이코가 끄덕이자 론은 괜스레 팔짱을 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모처럼 입덧 안 하니까 많이 먹어요. 크리처가 요리 되게 잘해요.”

귓속말로 해리가 속삭였다. 스네이프도 오랜만에 비린내를 맡지 않고 달콤한 케이크를 입에 넣으니 기분이 점차로 좋아졌다. 해리는 음식을 오물거리는 스네이프의 입술을 보면서, 그냥 크리처를 집으로 데려올걸 그랬나, 뒤늦은 생각을 했다.

“식사 다 하셨으면─ 사진 한 방 찍어요!”

식사의 끝자락에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저런 건 자신이 나서서 해야 했는데,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무척이나 고마워졌다. 나중에 있을 그녀와 론의 결혼식에서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졌다.

해리와 스네이프를 중심으로 론, 헤르미온느, 드레이코가 섰다. 론의 옆으로 위즐리 가족들과 그 뒤로 네빌과 루나가 섰고, 드레이코의 옆으로 통스 부인과 에드워드, 맥고나걸과 해그리드가 섰다. 모인 인원이 많지 않은 것 같아도, 렌즈 화면 가득 사람이 선 모습은 보기에 흐뭇했다. 해리는 열한 살 적, 해그리드에게 선물 받은 가족사진 앨범의 표지에 이 사진을 인화해서 넣을 생각으로 행복해졌다. 주변에서 너도 나도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스네이프는 제 얼굴만 도려내고 싶은 자신의 결혼식 사진이 여기저기 퍼지려는 것에 미간을 찡그렸지만, 해리의 행복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그럼, 뒤풀이 잘 즐기시고 다음에 봐요!”
“주인공들만 쏙 빠지네.”
“세베루스가 피곤해 해서, 미안, 론. 조지랑 다음주에 말포이 저택서 보자.”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청년들은 청년들끼리 따로 결혼식 뒤풀이 모임을 갖기로 한 모양이었다. 정작 주인공인 해리와 스네이프만 빠지는 기묘한 자리였다. 드레이코는 혼자 어쩌지, 튀어야 되나, 눈치를 보며 서있다가 조지에게 어깨동무로 붙잡혀 있었다. 해리를 보는 드레이코의 표정이 자못 측은했으나, 해리는 웃으며 친구들에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갈까요? 세베루스.”
“그러지.”

스네이프는 저의 손을 잡아오는 해리의 큰 손을 느꼈다.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조용한 자신들만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사람들 틈에서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제일 먼저, 예복에 단 암사슴 브로치를 떼어서 유리상자 안에 잘 넣어두었다. 해리도 제 수사슴 브로치를 가지런히 놓고, 있던 자리에 상자를 뒀다. 소파에 기대 앉은 스네이프가 눈을 감았다. 많이 피곤해요? 그 옆에 앉으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손에 감고 한 올 한 올 만지작거렸다.

“기 빨려.”
“학생들 수 백 명 앞에선 어떻게 있었대요.”
“사람이 아니라 수 백 개의 돌덩이라고 생각했다. 다를 게 없지.”
“와, 진짜 스네이프 교수 같다.”
“욕으로 쓰는 거냐, 포터?”
“당신도 해리 포터를 욕으로 쓰잖아요.”

스네이프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해리가 미소지었다. 흠, 그 말에 긍정하며 스네이프도 해리의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댔다. 해리의 체온과 체향으로 피로가 녹는 것 같았다.

“아, 맞다. 오늘 조지가 준 거 뭐였어요? 이상한 거 줬죠.”

한창 뒤풀이 중일 친구들을 생각하다가 조지가 떠올랐다. 스네이프도 잊고 있었다가, 예복의 재킷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조지의 선물’을 꺼냈다. 그것은 조그만 크리스탈 약병이었다. 의외의 물건에 해리가 의문 가득한 눈을 하고 받아들였다.

“처음엔 해괴하고 끔찍한 장난감을 주려고 하더군.”
“세베루스한테 그런 걸 주려하다니, 조지도 간이 크긴 커요. 그럼 그건 거절? 이건 뭔데요? 혹시 최음제?”
“그걸 내가 냉큼 받아올 것 같나, 포터?”

하긴, 그도 그랬다. 그럼 이건 진짜 뭐지? 해리는 투명한 물 같기도 한 액체를 약병을 기울여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머리를 괴고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뗐다.

“조지 위즐리가 개발한 마법약이다.”
“조지가요…?”

저 빼고 다 마법약에 재능이 있던 건지 뭔지, 해리는 놀라서 눈을 키웠다. 그런데 포션 마스터의 결혼 선물로 조지가 제가 만든 약물을 줬다는 것도 희한했다. 무슨 마법약인데요? 해리가 물었고, 스네이프는 약병과 해리를 함께 시선에 담았다.

“트라이위저드 때, 나이 제한선을 넘기 위해 먹었던 나이를 먹게 하는 마법약의 개정판, 이라고 소개하더군.”
“나이 제한선……! 기억나요! 프레드랑 조지는 그걸 마시고 멋진 턱수염만 자랐지만. 그럼 이건 진짜로 노화가 오는 약인거예요?”
“마셔 보면 알겠지, 포터.”
“그런데 이걸 왜 결혼 선물로……?”

약물의 정체를 알았어도, 해리는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해리의 어리고 사랑스러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말랑한 뺨과 주름 하나 없는 눈가, 붉은 기가 도는 생기 있는 입술까지. 열아홉 해리 포터는 청춘 그자체의 가운데에 있는 모습이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자신의 진짜 열아홉 때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푸르름을, 해리는 지금 가지고 있었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서로간에 나이 차가 많이 나니까, 해리가 지금 제 나이가 될 즈음엔 자신은 너무 많이 늙어 있을 것이다. 해리와 함께 늙어가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정말로, 아쉽다고 느꼈을지도.

“한 방울만 마시면 된다고 하더군.”

해리는 약병과 스네이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 방울……. 다시 모습이 돌아오겠죠? 헤헤 웃으며 해리가 천진하게 물었다. 스네이프는 피식 웃고 조지 위즐리를 믿어야지, 대꾸했다. 그에 해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딱 한 방울을 혀 위에 떨어뜨렸다.

스네이프는 어쩐지 고개를 돌렸다. 해리의 모습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있기가 무언가 걸렸다. 해리는 폴리주스를 마셨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제 얼굴과 몸 전체가 녹은 반죽이 되었다가 다시 뭉쳐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지속시간은 얼마나 걸린대요? 해리가 물었고,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지금보다 낮은 발성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자의 중후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스네이프도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앞의 나이를 먹은 해리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 어때요…? 세베루스, 저 지금 나이가 몇이나 돼보여요…?”

스네이프의 눈에는 지금,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젤로 머리카락을 넘기고, 푸른빛이 도는 검은 예복을 입은, 오십 즈음으로 보이는 중년의 해리 포터가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있었다. 하, 스네이프는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하고 해리의 뒤통수를 오른손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욕구가 당겨 참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당황해서 팔을 황망히 휘두르다가 다급히 스네이프의 허리와 어깨를 안았다. 스네이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혀를 섞어오니 당황스러웠다. 해리는 조금 얼떨떨해하며 입술을 떼고, 시선을 맞췄다.

“왜, 왜요? 저 멋있어요?”
“응.”

단호한 긍정에 해리가 입을 벌리고 스네이프를 보았다. 그 멍청한 표정에, 나이 먹은 얼굴 너머로 열아홉 해리가 보여서 스네이프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봐.”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쥐고 거실 테이블의 윗면을 거울로 바꾸었다. 해리는 고개를 숙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은 스네이프보다 좀 더 나이가 많아보였다.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낸 이 모습이 열아홉의 저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렸고, 녹색 눈의 옆으로 자리 잡히는 눈가의 주름도 어색하지 않았다. 멋있냐는 제 물음에 스네이프가 금방 긍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해리는 제 모습인데도 질투가 났다. 나이를 먹은 해리 포터는 어린 저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근사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자신의 미래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게 정말 제 미래 모습일까요? 세베루스.”
“그렇겠지, 지금 네 모습이랑도 닮았고. ……정말 이상하군. 네가 나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니. 포터, 네 지금 이 모습이 현재가 될 정도로 나이가 들면, 나는 대체 그 때에 몇 살일지가 우습군.”
“세베루스, 그런 걱정도 해요?”

해리의 다정한 큰 손이 스네이프의 두 뺨을 잡았다. 저에게 스네이프의 시선을 고정시킨 해리가 검은 눈에 녹색 눈을 비췄다. 스네이프는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이 맑은 에메랄드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해리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신의 눈을 빛내면서 저를 바라봐주는 걸까? 스네이프의 심장이 크게 박동하며 떨렸다. 해리의 모습이 어떻든 상관 없이, 그는 저의 심장을 늘 빠르게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와 제 안을 빠듯이 장악했다.

“나는 세베루스가 200살 먹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돼도 예쁘다고 할 건데요.”
“하! 웃기는군…. 포터, 네 논제는 전부 틀렸어. 난 200살까지 살고 싶지도, 예쁘지도 않으니까.”
“나랑 그 때까지 살고 싶지 않아요?”
“……너랑은,”
“네.”

죽어서도 함께이고 싶어. 어떻게 이런 깊은 마음을 솔직하게 해리 앞에 드러낼 수 있을까. 스네이프는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리고, 모두에게 반려로 인정받아놓고서도 차마 그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감싼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제 반려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이 작은 머리통에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이 굴러다니는지 모를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단점이었다.

“세베루스.”
“…응.”
“우리 둘이 지금은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가 달라도요. 언젠가부턴 똑같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도 하얗게 새고, 알버스 덤블도어처럼 긴 턱수염이 어울리는 나이가 될 걸요? 그 때부터는 우리가 알아온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둘이서 함께 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보다 먼저 나이 좀 더 먹는다고 걱정하지 마요. 금방 내가 따라 잡을 거니까.”

금방은 무슨, 앞으로도 몇 십 년은 더 걸릴 텐데. 해리 포터는 길더로이 록허트만큼이나 허세가 가득한 반려였다. 피식, 스네이프는 짧은 웃음을 흘렸다. 가슴이 울컥거렸지만 스네이프는 결코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저 해리의 여전히 넓고 다정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안았다. 열아홉 때보다 좀 더 근육이 붙어, 체격이 커진 두툼한 상체에, 해리는 모르게 스네이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포터 씨.”
“네?”
“조지 위즐리가 왜 이걸 첫날밤에 쓰라고 줬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줘.”

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교수는 이미 조지의 의도를 100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해리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반말로 해줄까? 세베루스.”
“……좋아, 포터.”
“너는 존댓말 써야지, 세베루스?”
“풋…. 네, 포터 씨.”

스네이프의 미소 띤 입술에 해리도 웃으며 입을 맞췄다. 해리의 조심스런 손가락이 까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다음주에 조지를 만나면, 한 턱 크게 쏴야겠다, 생각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목 뒤로 팔을 둘러 제게 가까이 끌어당겼다. 해리는 그에 기꺼이, 자신의 반려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해리의 목을 안은 채, 소파에 누운 스네이프는 제 위를 차지한 ‘어른’ 해리 포터의 모습에 넋을 놓을 듯 올려다보았다. 열아홉의 몸에 맞춘 예복이 근육이 더 붙은 두툼한 상체에 조여있는 것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세베루스, 결혼하고 첫날밤인데 소파에서 할 거야?”
“…어디든 좋은데요.”

솔직한 대답에 해리는 다시 역할극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이걸 연기라고 생각하면 스네이프도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그가 해리는 정말로 귀여웠다.

해리의 손이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잠자리를 가져놓고 새삼스럽게 조심스런 손길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도 부러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쩐지 정말 처음의 밤처럼 설레이고 있었으니까. 그게 해리가 낯선 모습으로 있어서인지, 결혼식을 한 날 밤이어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설레였다. 해리의 다정함에 늘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바지와 속옷을 벗고, 스네이프는 해리의 허벅지 위로 올라 앉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제 가슴팍부터 배꼽 밑까지를 그어 스르륵 조끼의 단추가 풀리게 했다. 해리는 두근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네이프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조끼 속의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해리는 귀 앞으로 흘러내리는 까만 머리카락과 그 아래 내리깔리는 눈, 굽이진 콧등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나이 든 저를 바라보던 스네이프의 시선처럼, 현재의 그를 눈에 담았다. 제 반려는 제가 이미 나이 들었다고, 저를 못나다고 여기는데, 해리의 눈에는 그저 여전히 젊었고, 아름다워보였다.

“……사랑해.”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마지막 단추를 풀던 스네이프가 고개를 들어 해리를 보았다. 갑자기? 그렇게 묻는듯한 시선이 해리를 웃게 했다. 늘 사랑하지만, 오늘은 정말 시시때때로 그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냥, 보고있으니까….”

조용한 해리의 대답에 스네이프는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중후하게 낮아진 목소리가 낯설기도 하고, 음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내가 벗고 있으니까 사랑한다고 하네요? 포터 씨.”

스네이프는 괜스레 툴툴대듯 말을 했다. 그 안의 쑥스러움이 느껴졌다. 해리는 상냥한 눈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나이를 먹어 조금 더 투박해진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귀 너머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고정해주었다. 제 눈을 보고있던 스네이프가 먼저 고개를 기울였다. 해리도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익숙하게 들어오는 따듯하고 축축한, 작은 붉은 덩어리. 사실 특별하지도 않은 것인데, 그것이 입 속에서 서로 뒹굴고 섞이는 행위가 이토록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입술에서 입술을 떼고, 해리가 웃으며 접히는 눈가의 주름에 다시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눈썹에도, 눈두덩에도, 콧등에도 차례로 입술을 옮겨 붙였다. 해리는 그 접촉 하나하나에 담긴, 스네이프의 자신을 향한 마음을 느꼈다. 지금 스네이프가 나이 든 제 모습을 입술로 덧그리듯, 해리는 저와 스네이프의 가장 어린 순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퀴렐의 터번을 본 순간 느껴지던 강렬한 이마의 통증, 그리고 그 통증보다 더 떨치기 어려웠던, 퀴렐의 옆에 앉아있던 스네이프가 저를 바라보던 시선. 자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느낌. 옆에 앉은 퍼시에게 그가 누군지를 물었고, 조금 더 그를 바라보았지만, 스네이프는 더이상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대답은?”
“알면서, 왜.”
“듣고 싶어서. 당신 입으로.”
“포터 씨, 사랑해요. 됐어요?”
“얼마나요?”

해리가 답지 않게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스네이프는 근사하게 나이 든 제 소년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 얼굴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더 속수무책으로 이끌어버리는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은 돼.”

똑똑한 대답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허리를 안고 가슴에 얼굴을 붙였다. 왼쪽 가슴에서 뛰는 일정한 심장소리가 들렸다. 나의 반려, 나의 세베루스.

“결혼 축하해요, 세베루스.”
“너도, 포터.”

그 차갑던 시선이 사라지고, 제 품에 안긴 이 온도에 해리는 그를 안은 채 슬며시 웃었다.










스네이프가 거실 테이블을 거울로 바꾼 것은 그 날 밤 굉장히 유용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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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7월 31일, 해리의 열아홉 번째 생일의 아침이었다. 스네이프는 최근 입덧으로 달콤한 것은 입에도 대지 못했다. 단내가 전부 비릿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좋아하는 단 음식들을 전부 먹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콜라를 못 먹는다는 걸 알았을 때는, 열이 받은 스네이프가 쳐다보는 것만으로 페트병이 찌그러질 정도였다. 지팡이 없이 마법이 써지는 분노도 어릴 적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올 해도 해리의 생일 케이크는 포기였다. 작년에는 섹스를 하다 오븐에 태워 먹고, 올 해는 입덧으로 케이크 포기라니, 우스워 죽겠군 세베루스 스네이프.

당이 떨어지니 체력도 확확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해리는 임신 사실을 안 이후로는 조심해야겠다고 섹스도 가벼운 전희 정도로 끝냈는데, 입덧이 가져오는 체력적 괴로움이 너무 컸다. 그래도 냄새만 맡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버틸만해서, 해리는 식사를 밖에서 해결해 돌아왔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돌아온 뒤에 해리가 먹여주는 간이 센 음식들을 먹었다. 해리의 냄새만 맡으면 속이 훨씬 괜찮아졌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스네이프의 어린 신랑은 매우 뿌듯해했다.

“으…. 또 울렁거려.”

입덧을 단어로만 들었을 땐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겪게 되자 장난이 아니었다. 거센 바다 위에서 출렁이는 작은 난파선에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릴 수가 없는 상황에, 계속해서 파도에 출렁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럴 때 닻을 내리듯, 해리가 다가와서 제 가슴에 스네이프의 얼굴을 놓고 꽉 끌어 안았다. 으음, 좋아. 스네이프는 속이 편해지는 걸 느끼며 해리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해리는 그런 스네이프가 아기 같아서 뒤통수를 슥슥 쓰다듬었다. 해리의 허리를 팔로 안고, 가슴에 여전히 얼굴을 묻은 채 스네이프가 중얼거렸다.

“생일인데, 파티도 못 열게 됐군, 포터. 내가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없으니….”
“시끄러워요. 몇 번 말해요, 제일 중요한 건 당신이라고.”

해리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친구들과 위즐리 가족을 집에 부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덧을 하는 반려가 있는 집에 음식을 대접할 수 없게 돼서 계획을 무산시켰다. 입덧 약물도 준비해봤지만, 단 향이 돌아서 스네이프가 냄새도 맡지 못했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었고,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건 스네이프였다. 그러니 깔끔히 포기가 맞았다. 그러나 파티가 무산일 뿐, 초대한 손님은 있었다. 론과 헤르미온느가 점심식사 전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오러인 론도 오프였다. 일단 둘에게는 어떤 음식도 사오지 말고, 냄새나는 건 절대 갖고 오지 말라 일뤄뒀다. 그들에게는 꼭 스네이프의 임신 사실을 밝혀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명, 미네르바 맥고나걸에게도.

“곧 네 친구들이 올 텐데,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나…?”
“음- 조금만 더 누워 있어요….”
“으, 응. 빨지마, 포터…. 흣, 아….”

해리가 목덜미의 번개 낙인을 간지럽게 빨고, 혀로 대각선을 따라 핥는 느낌에 스네이프가 고개를 움츠렸다. 그렇게 숨은 곳마저도 해리의 품이라는 게 우습긴 했지만 말이다.

“잘 먹지도 못하는데, 살은 더 빠지고 어떡해요. 이거 봐, 여기도….”

해리의 손이 스네이프의 잘록한 허리를 지분거렸다. 그대로 좁은 골반을 걱정스레 쓸어내리는 손길마저도 어쩐지 야릇했다. 스네이프는 더운 숨을 흘리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입덧이 계속 가진 않을 거야….”
“우리 애들이 아빠 닮아서 엄마 속 썩이네. 그쵸, 세브.”
“풋, 알긴 아나? 포터.”
“근데 세베루스를 닮았다고 해서 고분고분 순하진 않을…… 악!”

가슴을 짝 때리는 손바닥에 해리가 비명을 지르고는, 곧 와하하 웃음을 쏟아냈다. 아무튼 부모 중 누굴 닮았어도,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을 2세들인 것이었다.

“해리! 스네이프! 우리 왔어! 요!”

깜짝, 침대 위에서 웃고 떠들던 그대로 해리와 스네이프는 몸이 굳었다. 론의 목소리였다. 벌써?! 해리가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다 침대 아래로 처박혔다.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는 침실에 벽난로 앞의 론과 헤르미온느는 눈을 크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침부터 거하게 한 판 하나 보다는 론의 농담에 헤르미온느는 웃으면서 제 남자친구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벌컥 소리가 나며 침실의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잡은 해리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그의 친구들을 맞이했다. 회색 반팔에 남색의 체크 반바지가 누가 봐도 잠옷차림으로 보였다. 그래도 스네이프는 옷을 갈아입고 나오려는지 해리의 뒤로도 보이지 않았다. 생일인 친구 집에 온다고 한껏 꾸미고 온 헤르미온느와 론은 해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갈아입고 나올 시간을 줄게, 해리.”
“어…? 어…그, 그래. 고마워, 헤르미온느. 음… 앉, 앉아있어! 아, 집에 주스가 없어. 이해해줘.”

해리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컵 두 개에 주전자가 물을 붓고 둘의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쾅! 소리와 함께 침실의 문이 다시 닫혔다. 허둥지둥거리는 해리의 모습에 그의 오랜 친구인 둘은 깔깔깔 배를 잡고 웃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가져온 생일선물이 든 가방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찾은 해리의 집을 두리번거렸다. 바뀐 게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남자 둘만 사는 집이 이렇지, 뭐. 헤르미온느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다시 침실 문이 열렸다. 깔끔하게 흰 반팔에 청바지를 입은 해리와 까만 반팔에 까만 슬랙스를 입은 스네이프가 나왔다. 스네이프가 반팔이라니, 헤르미온느는 그의 마른 태가 드러나는 옷핏에 살짝 부러움을 느꼈다. 론은 아무 감흥 없이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 일찍 준비 된 김에 그냥 와버렸어. 해리는 살짝 이마에 힘줄이 설 뻔 했지만, 미소를 지으며 참았다. 론은 선물 가방부터 내밀었다. 화가 완전히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해리가 가방을 열어 보았다.

론의 선물은 짙은 암녹색의 로브였다. 해리가 몸에 걸쳐보니, 그의 맑은 녹색의 눈과도 잘 어울렸다. 교수로 일할 때 입어. 론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해리도 주먹을 들어 맞추면서, 고맙다고 씨익 웃었다. 꽤 비쌌을 것 같은데, 해리가 말하니 사건 하나 해결하고 보너스를 좀 받았다고 론이 으쓱했다. 그 돈을 저에게 쓰다니, 해리는 어쩔 수 없이 가슴이 짠해져서 로브를 벗어 소중히 접었다. 가난했어서, 성인이 되어 직접 벌어 돈을 쓰는 것에도 론이 어려워하는 걸 알았기에 더 값진 선물이었다. 헤르미온느도 이어서 선물을 내밀었다. 그녀는 작게 에메랄드 눈과 흑요석 눈이 박힌 수사슴과 암사슴 브로치를 주었다. 스네이프가 살짝 놀란 눈으로 암사슴 브로치를 들어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내 패트로누스를 알았지? 미네르바도 몰랐던걸.”
“어… 론과 헤르미온느는 직접 펜시브로 들어가서 당신 기억을 같이 봤거든요.”

스네이프가 그에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헤르미온느의 선물을 보고 표정을 풀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해리. 그건 결혼식에서 예복에 달라고 준비한 거야. 꼭 써줬으면 좋겠어.”
“헉! 진짜? 정말 고마워, 헤르미온느! 물론, 잘 쓸게. 너무 예쁘다. ”
“그런데 해리, 아직도 식 날짜가 안 정해졌어? 몰리 아주머니랑 교수님이 만나셨다고 해서, 이제 다 잘 풀리고 결혼식 계획 잡는 줄 알았는데. 감감무소식이길래.”
“아…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뭐? 내가 그랬었잖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헤르미온느가 발끈해서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내려 했다. 브로치들은 투명한 박스 뚜껑 덕에 먼지 쌓일 걱정없이 볼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브로치 박스를 다시 잘 여닫고 TV 아래의 낮은 장에 잘 보이도록 올려 놓았다. 그 행동에 헤르미온느는 살며시 미소 짓고, 애정 가득한 눈으로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저런 시선은 정말 적응이 안 되었지만, 저를 친구의 소중한 사람으로 인식해주는 그녀가 고맙기는 했다. 그리고 지금 이게 본의 아니게 선물 교환의 장이 되어서 제가 준비한 선물도 가져오기 위해 일어섰다. 제 서재로 들어가는 스네이프를 세 사람의 시선이 전부 따라왔다.

“해리, 교수님이 전에 봤을 때보다 더 마르신 것 같아! 좀 자제해, 너.”
“아니… 그게 아니라, 요즘 잘 못드셔서….”
“잘 못드신다고? 그럼 우리에게 음식 가져오지 말라한 이유는 뭐야! 세상에, 잘 먹여야지 해리! 전에 살 좀 오르신 것 같아서 보기도 훨씬 좋았고, 또 교수님은 예민하시니까 잘 드시고 기분 좋아야 해리 너도 편할-”
“아니, 헤르미온느, 그게, 사정이!”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생일인 건 아랑곳없어 보였다. 저를 혼내려고 집에 온 것 같아서 해리는 땀을 뻘뻘 흘렸다. 쩔쩔매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제 모습이 겹쳐 보여, 론은 웃고 있었지만 기실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서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해리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겉은 무표정이었지만 속으론 웃었다. 이성의 친구에게 따박따박 혼나는 건 스네이프에게도 익숙한 과거 속의 풍경이기도 했다.

“포터 보고 그만 뭐라 해라, 그레인저.”
“세베루스…!”

제 편을 들어주는 반려에 해리가 감동해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는 대놓고 해리 편인 스네이프를 보고 놀랐다가도, 곧 넵, 교수님! 하며 말 잘 듣는 모범생의 면모를 보였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는 타박을 듣고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스네이프가 준비한 선물은 작았다. 작년엔 몇날며칠을 떠들어대도 당일까지 준비하지 않던 선물을, 이번엔 챙겨 줬다는 것만으로도 해리는 설레었다. 대체 그가 절 생각한 선물로 뭘 줄까하는 기대도 물론, 들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해리가 포장을 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핏, 그것은 시계처럼 보였다. 해리가 당장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벗으려했다. 그에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었다.

스네이프가 제가 준비한 선물을 해리의 손목시계 위에 올리자, 마법처럼 ─물론 마법이겠지만─ 둘이 합쳐져 하나의 모습으로 섞였다. 헤르미온느는 곧바로 저게 무슨 용도의 마법인 줄 알아챘다. 그녀도 5학년 때 비슷한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상연락망이군요?”
“똑똑하군, 그레인저. 그래, 내가 기존의 물건을 구매해서 더 수준 높게 고쳤다. 원래는 판 위에 글씨만 뜨고 살짝 뜨거워지는 걸로 알림을 하는 정도지만….”

스네이프가 주머니에서 해리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이 생긴 제 것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옆 면의 버튼을 찰칵 누르자 해리가 손목에 찬 시계가 진동을 했다. 판 위에 뜬 S.S라는 대문자 스펠링에 해리는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으로 판을 건드리자, 머글의 전화처럼 스네이프의 것과 연결되었다.

“이제 연락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포터.”

해리는 바로 제 사랑스런 연인을 끌어안았다. 론은 또 저러네, 하는 가자미눈을 했고 헤르미온느는 설명할 수 없이 뛰어난 스네이프의 마법실력과 해리에 대한 사랑에 두 손을 꼭 모아잡고 눈을 빛냈다. 해리는 그가 말없이 말포이 저택으로 갔을 때, 자신이 얼마나 불안했었는지를 알고 이런 선물을 계획한 제 연인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은 계속 그를 벗겨놓고 괴롭혔는데, 어느 시간에 이런 걸 완성시켰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두 개나.)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시간은 평범한 저와 달리 30시간쯤 되는지도 몰랐다.

“고마워요, 세베루스…. 진짜 감동받았어요. 론이랑 헤르미온느, 너희들 선물도 진짜 감동이야.”
“뭘, 해리 네 팬들이 보내줄 다른 많은 선물보다 우리 것이 더 특별해야해서 신경썼지.”

론이 으쓱하며 말했다. 마법세계의 인기스타인 해리가 작년에 받은 어마어마한 선물들에, 제 선물이었던 처들리 캐논팀 퀴디치 용품 세트가 묻혔다고 느낀 론이었다. 해리는 스피너즈 엔드가 아닌 버로우에 있었던 작년 생일에서 유난히 시무룩해보이던 론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이렇게 비싼 로브를 준비했구나. 제 친구지만 론은 안쓰러울 정도로 귀여웠다. 그리고 올해도 당연히 해리의 앞으로 선물이 많이 왔지만, 서재에 쌓아두고 풀어보지도 않은 해리였다. 제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의 생일선물들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사람들에게 꼭 할 말도 있었다.

“헤르미온느, 론. 정말 고맙고…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하지만, 해야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
“뭔데? 식 날짜는 아직이라며?”
“헤르미온느, 그건 곧 정할게. 8월중으로 할게, 알았지? 그리고…… 음, 그러니까. 다음 해 2월 말쯤에, 세베루스랑 나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날 거야.”
“……?”
“……?”

해리의 두 친구들은 고개를 쑥 내민 채, 그저 어리둥절해보였다. 아이들? 저 둘 사이에서?

“어…… 세베루스가 지금 쌍둥이를 임신중이야.”
“……?????”

더더욱 수렁에 빠져드는 론과 헤르미온느의 모습에 해리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스네이프조차 저 둘의 얼굴에 입매를 씰룩이면서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하긴, 얼마나 믿기 힘들까. 남자가, 그것도 스네이프 교수가, 임신을, 그것도 쌍둥이를 임신했다는데.

“무슨…… 소리야?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은…… 남자잖아?”

마법세계의 우월한 지식을 가진 헤르미온느에게조차 이는 완전히 황당한 소리로 치부됐다. 그녀가 그동안 읽은 책에선 남성 임신에 관한 마법을 한 번도 읽은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짐짓, 그녀를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짜리를 보듯 장난스레 타일렀다.

“헤르미온느, 우린 마법사잖아.”
“하지만…… 내가 읽은 책들에선 본 적이 없는데……! 론, 너도 들어본 적 없지?! 그치!”
“해리, 스네이프…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요. 오늘은 만우절이 아니라 해리의 생일이라고, 요.”

스네이프가 눈썹을 까딱이며 올렸다. 그 위압적 태도에 론과 헤르미온느가 긴장했다. 그들에게도 익숙한 교수의 표정이었다.

“내 마법실력이 뛰어나니까 가능한 문제다, 그레인저, 위즐리.”
“무슨 마법인데요…?!”

이건 필시, 헤르미온느의 학구열이었다. 그녀는 정말 스네이프가 임신을 한 게 맞다는 느낌이 들자 그 마법이 궁금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들의 눈 앞에 나타난 사랑스러운 암사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예뻐라~!”

헤르미온느가 손을 뻗어 암사슴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론도 신기하게 쳐다보며 등 언저리에 손을 얹었다. 굉장히 부드럽고, 따끈따끈거렸다. 해리는 이래서 스네이프가 애니마구스가 될 생각을 한 번도 안 했구나를 깨달았다. 사람들은 동물을 보면 그저 쓰다듬을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암사슴이 스네이프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헤르미온느는 자신의 손이 그의 정수리에 있는 것에, 론은 자신이 스네이프의 등을 만진 것에 경악해서 비명을 질렀다. 스네이프는 최근 본 중에 제일 불쾌한 얼굴을 하며 몸을 털어내었다.

“나의 애니마구스는 암사슴이다. 5월에 마법을 배우고 성공시킨 뒤, 6월동안은 암사슴의 생식기관을 내게 착상시키는 마법을 익혔다. 그리고 지금은 임신도 성공했고, 당연히. 만우절 거짓말 같은 게 아니다, 포터와 나의 아이는.”

딱딱한 교수의 말은 마법약 제조법을 설명하듯 했다. 그 내용에 해리는 웃음이 터졌지만, 헤르미온느는 이 마법이 얼마나 엄청난 수준의 실력을 요하는지 깨닫고 감탄의 눈을 하기 시작했고, 론은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소리인지 제 귀를 의심하며 한 번 귓구멍을 파보고 있었다. 그리고 론도 곧 자신이 들은 말이 진짜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정말로 방금, 암사슴의 등을 쓰다듬었으니까 말이었다.

“참, 쌍둥이라고 했었나요…?! 세상에, 교수님이 쌍둥이를 임신하다니! 그런데 너무 마르시고, 어떡해요.”
“지금 입덧 시작한지 얼마 안돼 못 먹는 게 많아서 그렇다. 몇 주만 버티면 나아지겠지. 그 때부턴 내가 알아서 내 몸과 아이들을 챙길 거다.”
“입덧?! 아, 그래서 음식을…. 아하, 이제야 이해되네요……. 그래서 생일파티도 취소한거구나? 해리.”
“응. 세브가 음식 냄새에 심하게 울렁거려해서. 나도 요즘 매 끼니 밖에서 먹고 다시 들어와.”
“와, 해리 너도 고생하는구나.”

임신을 믿게 된 론이 이제 진지하게 반응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의 자신과 헤르미온느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성별은 여자, 남자 쌍둥이야. 이름도 정해뒀어.”
“와, 어떻게 그렇게 딱 좋게 성별이 나눴지? 이름은 뭐야?”
“딸은 릴리, 아들은 알버스.”

신나게 질문하던 헤르미온느가 릴리의 이름에 딱 굳었다. 론 역시 바로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해리는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저 둘은 이게 스네이프의 작명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하겠지…. 스네이프만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나무라듯 바라보았지만 해리는 그저 씁쓸히 미소를 보였다. 어쨌든 이미 정해진 딸의 이름을, 부모 중 누가 지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쨌든… 너희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론, 헤르미온느.”
“부탁? 어떤 거?”

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르미온느도 궁금한듯 해리를 보았다. 스네이프의 임신에 자신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너희가 우리 아이 중에 한 명의 대부랑 대모가 되어줄 수 있을까? 아, 이미 한 명은 대부가 결정 돼서.”
“우리가…… 해리 네 아이의 대부?”
“대모…? 내가…!?”

열아홉 살의 둘 모두 이 놀라운 제안에 입을 틀어막고 놀랐다. 어쩐지 스네이프의 불러오지도 않은 배를 무의식적으로 쳐다보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데 둘은 곧 자신들 말고도 해리가 대부를 부탁한 사람이 있다는 게 의아스러웠다. 그것도 해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저들보다도 먼저 해리가 제안하고, 승낙도 받아냈다고?

“물론! 너무 기쁜 제안이야, 해리. 물론이예요, 교수님! 우리가 해리와 교수님의 아이의 대모, 대부가 되는 건 당연하죠!”
“나도 너무 기뻐, 해리! 그런데…… 다른 대부는 누구야…?”

론이 조심스레, 기분 나쁜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해리와 스네이프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풉, 해리가 웃음이 터지려는 입을 막았고 스네이프도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돌렸다. 어리둥절해진 친구들이 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레이코 말포이.”
“뭐어어~?!!!!!!!”

론과 헤르미온느는 이 날, 스네이프의 임신 고백보다 대부 드레이코 말포이의 소식에 더 기겁했었다고, 훗날 있을 술자리에서 토로했다.


“결혼식 날짜를 잡죠!”

헤르미온느가 결의에 차서 말했다. 스네이프와 해리와 론은 결국 그녀가 하자는 대로 끌려가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헤르미온느가 실컷 떠들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었다.

“미리 잡아야 오러인 론 같은 경우에도 휴가를 빼놓을 수 있으니까. 최소 2주 전에 얘기해야 하잖아.”
“응. 나 8월 중순부터 휴가 잡을 수 있어.”
“그럼 8월 15일 일요일은 어때? 해리, 교수님, 어때요?”
“우리야 뭐, 언제든 상관 없지. 너희들 편한대로 해.”
“그럼 호그와트 대연회장을 빌리자! 맥고나걸 교수님께 얘기하고.”
“아, 안 그래도 이따 맥고나걸 교수님을 찾아뵈러 갈 예정이었어, 헤르미온느. 그 때 부탁하면 되겠다.”
“그리고 언론에 결혼식을 독점 공개도 하자. 그래야 더 잘 팔리고, 해리랑 교수님의 의도대로 보도 될 수 있도록. 인터뷰도 하고.”
“여태 다 거절해 왔었는데?”
“대중들은 스타의 가십을 소비하고 싶어해, 해리! 그것도 너 같은 유명하고 이미지 좋은 스타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대중의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어. 결국 뭐라도 찾아보려 할텐데, 진실과 다르게 알게 돼버리면 결국 해리 너만 손해야. 그러니 적당히 맞는 정보를 우리 쪽에서 제공해주고, 너랑 교수님 관계도 땅땅 못박아야지!”

씩씩거리며 말을 쏟아낸 헤르미온느가 머리카락을 뒤로 홱 넘겼다. 옆에 앉아 머리카락에 맞은 론은, 늘 있는 일인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이번에도 <이러쿵 저러쿵>에 보도 하자, 해리.”
“아, 루나. 좋아, 거기라면.”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으로 언론 공개 인터뷰를 내자는 의견에 동조했다. 스네이프는 어차피 해리가 하자는대로 다 할 것이므로, 딱히 첨언 없이 듣고 있었다. 식의 날짜, 장소, 인터뷰까지 모두 일사천리로 결정한 헤르미온느는 만족한듯이 웃었다. 해리는 그녀와 론의 결혼식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 돼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식에 초대할 사람은…… 위즐리 가족, 헤르미온느, 네빌, 루나, 맥고나걸 교수님, 해그리드랑 통스 부인이랑 테디랑 휴 씨랑….”
“잠깐, 포터. 휴라면- 네 그 오지랖 떠는 오러 선배 말인가?”
“네. 아, 그래도 휴 씨에게 머글의 주먹맛은 보여줬으니 좀 감형시켜 주세요.”

큭큭 웃는 해리에 흐음, 하고 생각을 재고해보는 스네이프까지, 론은 대체 휴가 스네이프에게 어떤 오지랖을 떨었는지 궁금해졌다. 뭔데? 무슨 말을 했는데, 휴가? 해리는 살짝 곤란한 얼굴을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스네이프가 냉담히 팔짱을 끼고 릴리, 라고 툭 내뱉자 론과 헤르미온느가 더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 사람, 강심장이구나…. 맞아, 괜히 오러 바닥에서 몇 년을 구른 게 아니라니까, 헤르미온느와 론이 서로 속닥거리며 끄덕거렸다.

“그럼 휴 씨는 부르지 말까요?”
“응.”

스네이프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깨를 으쓱하며 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드레이코도 불러야죠.”

그리고 그 말의 파장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돌아갔다. 일단 해리가 말포이를 드레이코라고 부른데다,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하겠다니! 놀라서 펄쩍 뛰고, 뒤로 넘어졌다가 앞으로 구를 일이었다.

“해리, 대체……. 말포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 놈을 네 아이 대부로 삼겠다질 않나, 네 결혼식에 부른다질 않나…….”

론이 걱정스러운듯 해리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저를 환자 취급하는 론이, 해리도 물론 이해가 갔다. 드레이코가 헤르미온느를 몇 번이나 잡종이라고 불렀는지 셀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참, 해리 포터는 지긋지긋한 악연들이 인연으로 180도 바껴버리는 것 같았다. 그 두들리와도 화해했고, 스네이프와는 부부가 될 것이고, 드레이코는 제 아이의 대부가 될 친구가 되었다. 볼드모트 같은 완전한 악이 아닌 이상, 해리는 그들을 결국 용서해버리는 선한 사람이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여러가지로 도움 받았어, 드레이코한테. 세베루스가 남자니까 임신한 걸 비밀로 해야하는데, 그걸 지켜줄 좋은 치유사도 구해줬고. 그간 매일같이 말포이 저택에 세베루스랑 같이 놀러 가기도 했고.”
“네가 언제부터 말포이랑 친하게 지냈다고, 해리! 난 진짜 믿기지가 않아, 걘 데스 이터였…! 아, 스네이프….”

론이 해리에게 윽박지르다 스네이프의 눈치를 황급히 살폈다. 스네이프는 감흥 없는 얼굴로 론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걔 과거는 나도 알아, 론. 뭣하면, 너도 드레이코랑 퀴디치 하러 놀러오던지.”
“뭐? 퀴, 퀴디치……?”
“이왕이면 조지도 같이 데려와. 2대 2 경기 해도 되게.”
“……나, 나는 말포이 걔랑은 같은 팀 안 할 거야.”

론은 퀴디치 게임 제안에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 듯했다. 위즐리는 우리의 왕 작곡가인 드레이코와 같은 팀을 하는 론을 떠올리니 웃음이 날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알았으니까 다음 쉬는 날에 말포이 저택 와. 해리의 말에 론은 더 뭐라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움찔대는 폼이 드레이코와 퀴디치를 몇 번 해봤냐고 해리에게 묻고 싶은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퀴디치면 사족을 못 쓰는 제 연인과 친구에, 쯧쯧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자들의 우정이란, 운동이 전부인지.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나가서 점심식사를 한 뒤, 해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부엌으로 가 스네이프를 위해 간이 센 오트밀죽을 끓였다. 잠깐 나간 그 사이, 자신의 냄새를 맡은지 오래 됐다며 속이 울렁하다는 반려를 위해 해리는 주걱에 마법을 걸어놓고, 식탁 앞에 앉은 스네이프를 안고 섰다. 제 배에 코를 묻고 겨우 숨을 돌리는 스네이프의 등을 살살 쓸어주며 해리가 웃었다. 어쩜 이렇게 제 마음에 쏙 드는 입덧을 할 수가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스네이프 그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결혼식에서는 와준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할텐데, 어떻게 하죠?”
“드레이코에게 무취의 입덧 물약을 부탁했으니, 성공하길 바라야지.”
“뭐, 걔가 당신한테는 잘하잖아요.”
“그래. 그렇지.”

해리는 제가 먼저 말을 꺼내놓고, 입술이 댓발 앞으로 나오는 걸 느꼈다. 유치하게 또 드레이코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저도 마법약을 잘하면 좋았을 텐데….”
“O.W.L에서 기대이상을 받았던 게 기대이상인 실력이긴 했지, 포터.”
“제가 마법약에 재능이 있었으면… 당신도 저를 덜 싫어했을까요?”
“글쎄……. 애초에 내가 널 잘 보려는 노력은 하질 않았어서. 그래도 릴리는 마법약을 정말 잘했었는데, 그 실력을 물려받지 않고, 대체 그 재능은 어디로 간 건지.”

탐탁치 않은 중얼거림과 함께 스네이프는 제 배를 쓰다듬었다. 재능의 유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애들은 당신 재능을 다 제대로 물려 받을 거예요, 세브. 걱정말아요.”
“걱정인데. 포터 널 보니.”
“아─ 진짜. 놀리니까 재밌어요?”
“응. 재밌군, 포터.”

뻔뻔하게 저를 올려다보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하, 기가 막힌 웃음을 흘렸다. 문득, 시선을 둔 오트밀죽이 끓어 넘치려 했다. 앗, 이런. 황급히 해리가 지팡이를 휘둘러 불을 끄고, 식탁 위로 냄비를 옮겼다. 그릇에 죽을 옮겨담고 해리가 숟가락으로 떠서 후후 입김을 불어 식혔다. 한 입, 한 입 일일이 제 숨길로 식혀서 스네이프의 입에 떠먹여주는 과정이, 해리는 스스로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얌전히도 입을 벌리고 아기새처럼 잘 받아 먹었다.

“이거 먹고, 맥고나걸 교수님 뵈러 가는 거예요. 알았죠, 세브?”
“완전히 아기 취급이군.”
“응, 우리 세브, 착해. 편식도 안 하고 잘 받아 먹고.”
“아이들이 들어.”

아직 아이들의 귀가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스네이프는 그렇게 빠져나가려 했다. 해리는 실실 웃으며 스네이프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이렇게 귀여운데, 내 손길 하나하나가 없으면 못 사시면서, 내 아기나 다름 없지.

스네이프는 해리의 이 사랑이 넘치는 시선에 그저 혀를 내둘렀다. 해리의 이 콩깍지가 벗겨질 일이 있을까? 자신은 사실 그걸 절대로 바라지 않는 사람이면서도, 스네이프는 해리가 그럴 가능성도 생각해봤다. 흠…. 지금으로 봐서는, 거의 제로일까. 스네이프는 해리 몰래 뿌듯하게 웃었다.


“세베루스, 해리. 오랜만이구나.”

두 달만의 만남이었다. 스네이프는 애니마구스 수업 이후, 은사를 처음 보는 자리라 준비해간 선물을 내밀었다. 너무 늦은 보답이 아닐까 했으나 오늘이 해리의 생일인 걸 알고 있던 스승은 오히려 저에게 선물을 주는 거냐고 놀라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그녀가 교수를 업으로 삼은 후로는 아무도 주지 않던 취향의 선물에 감탄사가 터졌다.

“정말 귀엽구나!”

선물은, 얼룩 고양이가 제 위에서 뱅글뱅글 도는 작은 스니치를 잡으려 빗자루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작은 모형이었다.

“세베루스 자네의 변환마법이 이렇게 깜찍한 곳에도 통용될 줄은 몰랐군.”

흐뭇하게 선물을 교장실 책상에 올려둔 맥고나걸이 미소지었다. 해리 서재에 있던 날아다니는 빗자루 모형을 보고, 영감을 받아 준비했던 스네이프는 그저 가벼이 고개를 끄덕였다. 퀴디치 선수이기도 했던 맥고나걸의 퀴디치 사랑을 누가 모르겠는가. 해리의 비행 실력을 보자마자 100년만에 1학년짜리를 퀴디치팀에 넣어버렸던 그 실행력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스네이프 주변에 퀴디치에 미친 인간들이 가득한 탓에, 맥고나걸을 위한 선물에 그 생각부터 들었기도 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급할 것 있나. 앉지, 세베루스. 해리도.”

어느새 생겨 있는 의자에 둘은 맥고나걸을 마주 보고 앉았다. 스네이프는 괜스레 자신의 배를 또 쓸어내리다, 움찔 손을 거뒀다. 해리는 그런 연인에 슬며시 웃고 입을 열었다.

“애니마구스 수업을 배웠던 이유와 그 결실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요.”
“그래, 간절하다던 일을 이루었니? 무엇일까?”
“음, 저…… 세베루스가 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어요. 임신을…… 할 방법으로, 애니마구스를 배웠던 거라.”
“호오…. 아이라고?”

스네이프는 입술을 꾹 깨물고 달아오른 얼굴을 살짝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맥고나걸의 시선이 자연스레 푹 꺼진 스네이프의 배에 머물렀다. 어떻게 애니마구스로 남성인 스네이프가 임신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지긋한 나이의 마법사인 자신도 궁금한 일이었다. 그의 애니마구스 모습이 암사슴이니, 어떻게 이용하다 보면 될 것도 같고.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축하한다. 해리, 세베루스. 아이라니, 축하해.”

은사는 그저 둘의 결실에 대해 축복의 말을 던지고 웃을 뿐이었다. 뒤에서 덤블도어의 초상화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스네이프 초상화는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해리와 눈을 딱 마주치고 입을 꾹 다물더니 홱 시선을 돌려버렸다. 해리는 그에 혼자 키득대며 웃었다.

“언제 알게 되었니? 아이의 출산 예정일은?”
“안 지는 얼마 안됐어요. 생긴 지는 한 달 되었대요. 다음 해 2월 말경에 나올 거고, 그리고…… 한 명이 아니고 쌍둥이예요. 딸, 아들이요.”
“어머… 세상에. 해리, 너 힘 좋구나.”
“미네르바!”

스네이프가 빨개져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맥고나걸은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었다. 딱딱한 제자의 당황하는 모습은 봐도 봐도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결혼식도 열려고요. 다음 달, 8월 15일에 방학 중의 호그와트 대연회장을 써도 괜찮을까요?”
“물론. 호그와트의 두 교수의 결혼식 장소로 호그와트보다 적절한 곳이 어딨겠니?”
“저, 저는 아직 정식으로 일한 적도 없는데….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럼, 방학 중의 집요정들은 식사 준비를 그만큼 못해서 아쉬워한단다. 그들도 결혼식을 꾸미고 준비하는 일이 몹시 기쁘겠지. 아, 그래. 크리처?”

크리처가 맥고나걸의 옆으로 뿅 나타났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주인인 해리에 눈이 확 커졌다. 크리처는 가슴팍의 레귤러스의 로켓을 통통 튀기며 해리 포터 주인님!!! 을 큰 소리로 외쳤다. 해리는 살짝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크리처에게 인사를 했다.

“크리처, 네 주인인 해리가 호그와트에서 결혼식을 열 거라는구나. 8월 15일, 대연회장에서. 그러니 집요정들과 함께 성대한 식을 준비하도록 해야겠지.”
“해, 해리 주인님…. 겨, 결혼식이요……? 크, 크리처도 알고 있습니다! 앞에 계신 스네이프 교수님이 주인님의 연인이라는 것을…! 아니지, 세베루스 사모님, 우리 해리 주인님과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푸하하하핫─!!!!!!”

해리는 세베루스 사모님이란 말에 폭소를 터뜨리며 뒤로 넘어갔다. 맥고나걸도 차마 입을 가리며 웃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아, 배를 잡고 웃었다. 덤블도어 초상화는 교장실이 떠나가라 껄껄 웃고 있었다. 이들 중, 스네이프와 스네이프 초상화만이 초상집에 온 듯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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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7월이 시작된 후로 백수 세 명의 만남은 거의 매일이라 해도 좋았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단둘이 있는 집에서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일들을 벗어날 도피처로 말포이 저택을 찾았다. 드레이코가 보는 앞에서는 해리도 자제를 했기 때문이었다. 해리가 드레이코를 저를 사이에 둔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스네이프에게 몹시 어이가 없는 문제였으나, 연인의 질투심이 얼마나 깊은지 뼈저리게 느낀 바 있어 그러려니 싶기도 했다.

어쨌든 스네이프의 몸은 요즈음 해리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임신을 위해서라지만 고삐가 풀린 어린 신랑을 감당하기에 자신은 (스스로가 느끼기에) 너무 늙고 지쳤다. 스네이프는 마법사들의 느린 노화를 무시하고, 서른아홉이라는 제 나이의 숫자에만 집착했다. 제가 마법사들 나이로는 어린 축이라지만 해리는 기실, 머글 나이로 따졌을 때도 너무 어렸다. 해리는 아직 열여덟밖에 ─곧 열아홉 살 생일을 맞고─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그와 자신의 체력이 같을 리도 없었지만, 불이 붙은 해리는 자신의 몸에 집착을 너무나 심하게 했다. 한 번 시작하면 안을 몇 번이나 싸고 채우는 것에, 스네이프는 온 몸이 녹초가 되어서 침대에 겨우 누워 숨만 헐떡이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스네이프가 신경질적으로 이러다 세 쌍둥이라도 갖겠다고 꽥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스네이프를 타이르기라도 하듯 말했다. 말이 씨가 돼요, 세베루스. 그러는 너나 그 놈의 씨 좀 적당히 뿌리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스네이프는 다시 제 안에서 움직이는 해리의 것에 신음만을 흘릴 수 있을 뿐이었다.

말포이 저택은 확실히 스네이프가 살기 위한 도피처였다. 해리가 스킨십의 자제를 하고, 드레이코는 스네이프 교수에게 깍듯했으며, 해리와는 빈정거리며 서로를 긁으면서도 사실 대화를 즐기는 티를 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동갑의 동성친구와 떠드는 모습을 보는 게 내심 즐거웠다. 최근, 루시우스와 나르시사도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굳이 해리가 껴있는 그들의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다. 보석금으로 풀려난 전 데스 이터 부부는 전직 오러인 마법세계 영웅을 꺼리는 것이 분명했다. 이중첩자였던 스네이프 자신도 물론, 그들에게 편한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 아들을 찾는 유이한 방문객들에 대접은 제대로 잘 해주라 명했었는지, 집요정이 챙겨주는 식사는 늘 맛있었고 간식과 음료도 항상 새로웠다.


“포터 네가 슬리데린에 들어올 뻔 했었다고?”

민들레 뿌리를 칼로 다지던 드레이코는 하마터면 제 손가락을 뿌리채 자를 뻔 했다. 식겁해서 제 손가락이 잘 붙어있는지 확인한 드레이코가 해리 쪽을 흘겨 보았다. 해리의 발언에 슬리데린의 오랜 사감도 너무 놀란 건 마찬가지라, 드레이코의 실수를 지적할 수가 없었다. 맙소사, 살라자르 슬리데린이시여, 해리 포터가 슬리데린에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하지만 해리의 태도로 보아 거짓이 아닌 듯 했다. 스네이프는 레질리먼시를 쓸까하다가 굳이, 싶어 그만뒀다. 저 어딜 봐도 무모한 만용의 덩어리 그리핀도르의 사고뭉치에게 마법의 모자가 슬리데린을 고려했었다니, 하긴 그 모자도 너무 오래 되어 퇴물이 다 됐다 싶긴 했다.

“모자는 내가 슬리데린에 가면 더 잘 될 수 있다고 적극 추천 했었지.”
“여기서 얼마나 더 잘 되려고? 마법세계의 영웅 나리가.”
“글쎄, 모르지. 아무튼 나도 슬리데린은 안 들어가서 다행인 것 같아. 내가 기숙사 배정 받기 전에 만난 슬리데린이 너라서 거긴 들어가기 싫었거든, 말포이. 기억 나? 기차에서 네가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손 내밀었던 거.”

드레이코의 표정이 썩었다. 그 또한 11살 때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중이었다. 고일과 크래브를 데리고 해리 포터가 있다는 칸을 찾아갔었다. 루시우스는 어둠의 마왕을 몰락시킨 선택 받은 유명한 아이와 제 아들의 친분을 원했었다.

“내가… 언제.”

민들레 뿌리를 다지는 드레이코의 칼질이 좀 더 바빠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해리는 빙그레 웃었다.

“네가 론의 가문을 욕하고, 마법사 가문의 수준 차이에 대해 떠들었었잖아. 그래서 내가 화를 냈었고.”

물론 드레이코도 똑똑히 기억했다. 고일의 손가락을 문 쥐새끼 웜테일에 식겁해서 론과 해리와 더 싸우지 못하고 도망쳤던 일이 생생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위즐리 가문의 위상은 높아진 것도, 말포이 가문의 명예는 땅에 처박힌 것도 드레이코는 잘 알았다.

드레이코는 심통난 얼굴로 다진 민들레 뿌리를 솥에 넣었다. 7월 말이 다 되어가며 드레이코가 개발하려는 치료약물의 조합에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구 중인 저주 주문용 치료약이 워낙 만들기 어려운 물약이라 더 긴 난항을 예상했었으나, 최연소 포션 마스터가 옆에 있는 덕인지, 그 자신의 포션 제조 재능 덕인지 확실히 진도는 나아갔다.

“세베루스, 내가 만약 진짜로 슬리데린에 들어갔다면 어땠을까요? 감점도 막 했을까요?”
“당연하지.”

스네이프는 눈썹을 까딱이며 단호히 대답했다. 기숙사가 슬리데린이라 하여 저 멍청한 해리 포터가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제임스 포터와 판박이인 얼굴이 바뀌는 것도, 릴리의 아들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제가 해리를 싫어하고 점수를 깎아댈 이유는 여전히 충분히 차고 넘쳤다.

“흥, 다행이군, 포터. 네가 우리 기숙사에 들어왔다면 기숙사 우승컵은 꿈에도 못 꿨겠어.”
“1학년 때 나 때문에 우승컵 뺏겨놓고 할 말이냐?”
“하! 그 일 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우리 아버지는 덤블도어가 노망이 났다고 말씀 하셨지─ 스네이프 교수님,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덤블도어의 그 말도 안 되는 그리핀도르 점수 몰아주기에, 우리 우승컵을 뺏어간 일이요!”
“덤블도어가 염치 없는 노인네인 건 진작 알았지. 하지만 말단 교수가 무슨 힘이 있었겠나, 드레이코.”

해리는 드레이코와 스네이프가 알버스 덤블도어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제 아들의 이름을 알버스로 지어도 정말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슬리데린 둘이 합심해서 떠드는 것에도 배알이 꼴렸다.

“우승컵은 그렇다 쳐. 내가 만약 슬리데린에 들어 갔으면 네가 퀴디치 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말포이?”
“우습군, 포터! 우리 아버지가 학교의 이사셨고, 그 때는 스네이프 교수님도 네 편이 아니었다고.”
“실력으로는 못 이길 것 같나 보네. 뒷배 타령이나 하는 것만 봐도 안 됐겠는데?”
“뭐라고?! 겨뤄 봐? 지금 해보자는 거지, 포터!!”
“그래, 당장 해! 붙어보면 알겠지, 말포이!!”

민들레 뿌리가 끓고 있는 솥을 두고서 드레이코가 벌떡 일어섰다. 해리는 이미 연구실의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문득, 1년 전 숨어 살 때부터 해리가 퀴디치 타령을 해대던 게 생각났다. 지금 이러려고 얘기를 꺼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드레이코 또한 퀴디치에 사족을 못 쓰는 건 마찬가지라, 드물게 눈을 빛내며 해리를 뒤따라 나갔다.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고 그들을 따라 나섰다. 지팡이를 휘둘러 솥의 불을 끄고, 연구실의 문도 닫으면서.


7월 느지막한 한낮의 햇살은 피부를 아프게 찔러왔다. 하지만 해리와 드레이코는 그에 아랑곳없이 말포이 저택의 뒤편, 말포이 가의 퀴디치 연습장으로 신나게 걸음을 옮겼다. 3면이 키가 크고 빽빽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머글의 시선을 피하기에도 유리하고 여름날의 그늘로 쓰기에도 좋았다. 스네이프는 얇은 로브의 후드를 머리 위로 쓰고,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금방 집에서 파이어볼트를 가져온 해리가 님부스 2001를 쥔 드레이코의 앞에 당당하게 섰다. 드레이코는 파이어볼트를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금세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체를 펴고 꼿꼿이 섰다. 빗자루 따위로 기세가 꺾이는 건 도련님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스니치를 먼저 잡는 쪽이 이기는 거다, 포터.”
“블러저도 풀어야 하지 않겠어, 말포이?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릴걸?”
“교수님 앞이라고 너무 허세부리는군, 포터. 과연 끝나고도 그럴 수 있을까?”

드레이코가 자신의 퀴디치 용품함을 열었다. 블러저들이 저들도 꺼내달라 덜컥덜컥 난리였지만 드레이코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황금색의 스니치의 잠금을 풀었다. 드레이코의 손바닥 위에 작고 동그란 스니치가 날개를 사르륵 펼쳤다.

“이기면 보상이 있어야하지 않나?”

스니치를 보던 해리가 말을 뱉었다. 드레이코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해리를 보았다.

“당연히. 이기고나서 이긴 쪽이 원하는 걸 들어주기, 어때? 포터.”
“좋아, 이기고 난 뒤 말하자고.”

해리 역시 자신만만한 눈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드레이코의 손바닥 위의 스니치가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스니치가 돌아다닐 틈을 주기 위해 3분여를 기다렸다. 보통 10번의 시비는 털었어야 할 시간동안 둘은 긴장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입에 침이 마르는 긴장감과 승부욕이 가슴 속에서 타올랐다. 이긴 보상 따위에는 사실 둘 다 관심이 없었다. 오랜만의 퀴디치, 그것도 상대는 학창시절의 수색꾼 라이벌이었다. 해리도 드레이코도 두근두근 가슴이 터질듯 뛰었다.

스네이프는 그늘에 앉아서, 두 청년이 빗자루를 쥔 채 서로에게 긴장의 시선을 보내는 걸 코웃음을 치며 바라보았다. 도대체 퀴디치가 뭐라고 저러고 환장을 하는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세베루스! 이기고 돌아올게요!”
“스네이프 교수님, 그리핀도르 수색꾼 놈을 짓밟고 오겠습니다!”

그러시던지. 스네이프는 둘 모두 응원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해리는 자신이 연인이기 때문에, 드레이코는 자신이 전 슬리데린 팀의 수색꾼이기 때문에 스네이프가 자신을 응원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말이었다.

스네이프가 신호를 주기로 했었다. 느긋하게 나무에 등을 기댄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들었다. 머글의 총소리와 비슷한 폭음이 지팡이 끝에서 터졌다. 신호에 맞춰 해리의 운동화의 앞축이 땅을 구르고, 파이어볼트에 탄 해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의 동시에 드레이코의 님부스 2001도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해리는 더웠던 공기가 주변에서 싹 사라지는 걸 느꼈다. 시원한 바람이 저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탁 트이는 가슴에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드레이코 또한, 오랜만의 비행에 심장이 터질듯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맞아, 이랬었다. 이래서 퀴디치를 좋아했었지,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스네이프와는 나눌 수 없었던 즐거움을, 해리는 또래의 드레이코와는 나눌 수 있었다.

빗자루는 작은 손짓에도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날았다. 둘은 하늘을 비행하며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해리와 드레이코는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가 되었다.


“말이 돼?”

해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드레이코의 손에 잡힌 황금색 스니치를 보고 있었다. 하얗고 고운 도련님의 손에서 파라락 발버둥치는 작은 공을, 해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야! 이거 네가 조작해둔 거 아니야? 네 퀴디치 용품이잖아!”
“승부에 승복하지 못하는 건가, 포터? 난 정정당당히 이겼어.”

해리의 열이 받은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드레이코가 먼저 스니치를 발견했고, 추격 끝에 드레이코가 먼저 스니치를 잡았다. 그 간단한 승부의 과정이 해리의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았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다 생각했으나, 슬리데린의 전 수색꾼이 그리핀도르의 전 수색꾼을 완벽하게 이긴 것에 입매가 씰룩이며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해리는 여전히 씩씩대며 한 번 더 하자고 드레이코에게 졸랐다. 그에 스네이프가 눈을 부라리고 해리를 보았다. 덥다, 들어가지, 포터. 연인의 그 기세에는 해리도 깨갱해서 고개를 숙였다.

말포이 저택은 마법으로 냉방이 조절 되어 시원하고 쾌적했다. 들어오자마자 흘린 땀들이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해리의 집 거실만큼이나 익숙한 드레이코의 개인 응접실이었다. 그들이 각자의 지정석을 차지하자마자 집요정이 냉큼 시원한 버터맥주 3잔을 대령했다.

“이제 슬슬 이긴 보상을 생각해볼까.”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드레이코가 말을 했다. 시원하고 달콤한 버터맥주의 맛에 기분이 한껏 좋아졌던 해리는 순식간에 표정을 썩히며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자신이 드레이코에게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드레이코를 번갈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제 몫의 버터맥주에 손을 뻗었다. 더운 여름에 바깥에 나가있었더니 목이 탔다.

“욱….”

스네이프는 버터맥주에서 맡아지는 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리며 바로 내려놓았다. 해리가 바로 스네이프를 쳐다보고 무슨 일이냐 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말포이 가에서 취급하는 버터맥주가 상할 일도, 저를 제외한 해리와 드레이코는 이걸 맛있게 먹고 있는 일도 이상했다.

“비린내가 나….”

드레이코의 눈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자신의 집요정이 손님께 실수를 저질렀나 싶어, 스네이프의 버터맥주를 바로 가져가 코 밑에 댔다. 그러나 드레이코의 눈은 곧 동그랗게 풀렸다. 그냥 평범한 버터맥주였다. 해리도 얼른 드레이코의 손에서 컵을 받아가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해리의 코에도 그저 달콤한 향기만 맡아질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둘의 반응으로 저만이 비린내를 맡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정이 굳은 채, 스네이프는 비린내를 참고 버터맥주를 입 안에 넣어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컵에 뱉어내고 웁, 욱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세베루스…!!”
“교수님…!!”

입 안을 가득 채운 역한 맛이 너무 괴로웠다. 스네이프는 겨우 입에 지팡이를 대고 헹굼마법을 시전했다. 너무 힘들어서 해리의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끌어 안고, 등을 쓸어 토닥이며 드레이코와 시선을 교환했다. 드레이코도 해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브, 혹시…….”

스네이프는 해리의 품에서 나는 해리의 냄새에 차츰 안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드레이코의 앞에서 해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제자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제길, 미간을 찌푸리며 스네이프가 겨우 몸을 일으켜 해리를 밀어내었다. 해리는 그러나 계속 스네이프를 안고 있으려고 했다. 뭐, 해리가 그러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졌다. 뭐라 형언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포터, 넌 또 무슨….”

문득 돌아본 해리의 표정은 더 가관이었다. 해리는 거의 울먹이는 것처럼 보였다. 저주라도 맞았나, 포터? 스네이프는 당혹스러움에 그렇게 물을 뻔했다.

“세베루스…. 좀 괜찮아요…?”
“더운 여름에, 그늘이었어도 꽤 나가있었던 탓에 더위를 먹은 것 같군…. 드레이코에게 민폐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다, 포터, 일어나지.”
“하지만 세베루스…. 버터맥주 냄새 맡기 전까진 안 그랬잖아요……?”
“갑자기 그럴 수도 있지, 집에 가서 누워서 좀 쉬면 나아질 일이다. 포터! 일어나 가자니까?”
“스네이프 교수님! 제가 보기에도…… 교수님은 단순히 더위를 먹은 게 아니라…….”

드레이코까지 나서서 스네이프를 붙잡아 세웠다. 스네이프는 어리둥절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느닷없이 해리가 저를 와락 껴안았다. 이 미친놈이, 이젠 천지분간도 못하고 집에서 하듯이 저를 안고 뒹굴고 싶은 모양이었다. 스네이프는 기겁을 하며 해리를 밀어냈다. 정말이지, 7월 한달 내내 해리에 의해 다리 사이가 허전할 일이 없었다.

……잠깐.
스네이프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동공을 크게 키웠다.

“나, 혹시…….”

해리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저를 꽉 품에 안은 채였다. 드레이코가 그들을 보더니 입을 떼었다.

“교수님, 치유사를 부를게요. 저희 집안과 잘 아는, 성 뭉고 출신의 개인 치유소를 운영중인 치유사입니다. 소수의 회원들을 대상으로만 일을 해서 입도 무겁고, 실력도 확실해요.”
“말포이……!”

드레이코는 해리가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감격해서 저를 보는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이렇게 덥석, 저를 끌어안아오는 것까지는 예상밖이었다. 뭐, 축하… 한다고 해야겠지, 포터…. 그 말에는 해리가 웃음을 흘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러가지로 고마워, 해리의 말에는 드레이코가 슬며시 웃음을 보였다.


드레이코가 부른 치유사는 뾰족한 은테 안경을 낀 나이가 지긋한 여자 마법사였다. 그녀는 깐깐한 인상 그대로, 유명인인 해리와 스네이프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드레이코에게 이미 임신 확인 여부를 묻는다는 언질을 전달받았음에도 그랬다. 해리는 그녀의 태도가 성격 탓인지, 고객의 일에는 침묵하기 위해서인지, 남성 임신 사례가 사실 마법계에선 은밀한 곳에선 빈번히 이뤄졌었는지 궁금해졌다. 마지막 의심은 자신이 오러였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드는 생각이었다.

드레이코의 개인응접실 옆에 딸린 손님방, 침대 위에 스네이프를 눕게한 뒤, 치유사- 데번 부인은 자신의 하얀 자작목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바로 이 방에서 스네이프가 여성기가 생긴 첫날밤을 보냈었는데, 이 방에서 임신에 대한 검사가 이뤄지는 것에 해리는 새삼 부끄럽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스네이프 또한 매우 복잡하고 기묘한 기분으로 누워 있었다. 해리의 덕으로 제가 별 경험을 다 해본다 싶었다. 남성으로 태어난 자신에게 이런 일을 겪게하는 해리가 대단히 난 놈이긴 했다.

데번 부인의 지팡이가 스네이프의 배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해리는 초조하게 살짝 물러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네이프의 납작한 배는 임신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보였다. 데번 부인은 지팡이를 거둬 들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음, 스네이프 씨, 당신의 뱃 속에는 동물의 여성생식기관이 연결되어 있군요. 이 형태는 암사슴…… 붉은 암사슴의 것인가?”
“……그렇습니다. 암사슴은 제 애니마구스입니다.”
“그렇군요, 애니마구스를 이용했다라…. 아주 똑똑한 방법을 썼군요, 스네이프 씨. 애니마구스는 본인 그자체이기도 해서 위험도가 확연히 적죠. 보자, 붉은 암사슴의 임신기간은 평균 230일, 약 8개월이죠. 당신은 현재 임신한지 한 달 정도 되었어요. 출산 예정일은 7개월 뒤인 2월 말경입니다. 축하드려요, 스네이프 씨, 포터 씨.”

임신한지 한 달 정도라고? 스네이프도 해리도 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첫날밤에 바로 임신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해리는 터질듯이 얼굴이 붉어져 입을 틀어막고 시선을 돌렸다. 스네이프 또한 눈을 질끈 감고 벽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조금 놀랍군요.”
“네? 어, 어떤 점이요…?”

남성이 임신했다는 것에도 눈썹 하나 까딱않던 그녀가 놀라운 것이 있다는 데에 해리는 흠칫 놀랐다. 스네이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걱정에 둘을 번갈아 보는 해리의 눈빛이 떨렸다. 데번은 한 번 더 지팡이로 스네이프의 배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암사슴들은 단태동물로, 한 배에 한 생명을 갖습니다. 보통의 경우엔…. 그런데 스네이프 씨는 현재 뱃속에 두 생명을 품고 있어요. 쌍둥이입니다. 드물게 쌍태를 품는 사슴도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거예요.”
“싸…쌍둥이요?!”

해리가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스네이프 또한 눈이 부릅 떠졌다. 세 쌍둥이니 하는 소리를 괜스레 뱉은 게 분명했다. 말이 씨가 된다던 해리의 말도 떠올랐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이 싸재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닌가, 포터!!! 스네이프는 그렇게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데번 부인이 앞에 있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땅에 떨어진 게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체면이었어도, 데번은 출산하는 날까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치유사였다. 해리도 임신은 기뻤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후 앞 날이 다소 걱정스러웠다. 생초보 육아인데, 한 번에 두 명이라니…….

“아, 아이들의 성별은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네이프도 궁금했던 것이라 해리를 흘겨보던 눈을 데번으로 돌렸다. 데번 부인은 싱긋 웃고 둘을 마주보았다.

“모체에서 수정 되는 순간 성별은 결정된답니다. 여자, 남자아이예요.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두 분.”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해리는 단번에 누워있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스네이프도 저를 감싼 해리의 팔에 말없이 손을 얹었다. 따듯하게 몽글거리는 물거품이 아래에서부터 찬찬히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스네이프와 해리는 그들을 닮은 아이들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이 순간, 주문 없이도 패트로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응접실의 드레이코는 뚫어져라 손님방을 바라보며 그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데번 부인이 나오는 뒤로 해리와 스네이프가 나왔다. 드레이코는 턱 밑에 깍지꼈던 손을 떼고 고개를 처들었다. 해리와 눈이 마주쳤다. 해리는 조금 쑥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 멀린, 정말이냐? 드레이코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으쓱했다. 대단하신 영웅 나리가 마법으로 못하는 일이 없으시군. 남자를 임신시키다니, 그것도 스네이프 교수를.

다음 검진 일정을 잡고, 셋은 데번 부인을 배웅하기 위해 벽난로 앞에 섰다. 데번은 스네이프에게 임신 초기의 주의사항을 몇 가지 가르쳐주고 벽난로로 발을 옮겼다. 해리가 꾸벅 허리까지 숙여서 스네이프는 다소 민망스러웠다. 이 어린 신랑이 제자인 드레이코의 앞에서 너무 티를 내는 것 같아서 쑥스러웠다. 어차피 드레이코도 알고 치유사를 불러준 거라지만, 창피한 건 매한가지였다.

“교수님이랑 포터도 갈 건가요?”

데번 부인이 벽난로로 사라지자 드레이코가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도움 받아놓고 바로 갈수야 없지.”
“아, 그럼, 앉으세요 교수님. 너도, 포터.”

집요정을 시켜 버터맥주를 모두 치우고 물로 바꿨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드레이코의 앞이라 스네이프가 싫어해 허리를 안지는 못했지만, 가까운 체온에, 그의 체향에, 그의 뱃속에 들어있다는 저희의 아이들에 해리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스네이프도 말은 안했지만 제 배를 괜스레 만져보고 싶을 만큼 자신의 배가 신경쓰였다.

“쌍둥이래.”
“미친.”

드레이코가 수습하지 못하고 튀어나간 자신의 말에 얼굴을 뻘겋게 물들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해리도 왠지 모르게 쌍둥이는 더 부끄럽게 느껴져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스네이프는 평정을 찾기 위해 오클러먼시를 썼다.

“포터, 너 정말….”
“대단하지?”

멋쩍어서 해리가 더 으스대며 말했다. 스네이프는 저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었으나 참았다. 드레이코는 결국 큭큭거리며 손바닥 새로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해리 포터가 대단하게 느껴져서 웃겼다.

“쌍둥이면… 성별은? 둘 다 똑같대?”
“아니, 여자랑 남자아이래. 최고지?”
“능력잔데, 한 번에. 축하드려요, 교수님. 고생은 두 배로 하시겠네요.”

드레이코는 진심이었다. 저 스네이프 교수는 학교에서도 수 백 명의 학생들에 시달리더니, 이젠 아이도 한 번에 두 명을 가지게 되고, 본의 아니게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일들을 떠맡게 되는 듯 했다. 그런 점이 스네이프의 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일이었다.

“예정일은?”
“내년 2월 말.”
“뭐? 너무 이른 거 아니야?”

드레이코가 놀라 눈을 끔벅거렸다. 고작 7개월여가 남았다기엔 교수의 배는 말라서 동그래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모르니, 그저 치유사가 그렇게 판단 내렸다니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드레이코가 어릴 때부터 봐온 데번 부인의 실력은, 의심할 바 없는 최고였다. 그랬으니 교수를 위해 자신이 부른 것이었다.

“잠깐, 2월 말이면 호그와트는 학기 중이잖아. 포터, 스네이프 교수님의 출산과 겹치면 안 될텐데?”
“나도 알아.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봐야지.”

해리가 진지해진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임신을 소수의 몇을 제외하곤 절대 알리지 않을 계획이었다. 술에 취한 스네이프로 인해 뜻밖에 알게된 드레이코가 변수긴 했지만, 그 변수로 인해 이 집에서 스네이프의 여성기도 발현했고 적절한 치유사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원래부터 부자들의 은밀한 치료를 업으로 삼는 데번 부인은, 자신과 스네이프의 아이를 맡기는 데에 최고의 조건이었다. 철저히 비밀을 지켜줄 수 있는 치유사였다.

“나는 대중에게는 우리 아이들을 입양했다고 밝힐 생각이야. 세베루스가 시끄러운 논란에 휘말리는 건 절대 싫어. 그러니 출산도 비밀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해야지.”

모든 건 다 스네이프를 위해서였다. 남성 마법사들의 임신이 실제로 있었어도, 그간 마법의 역사에서 남겨진 기록이 없는 바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마법사들에게도 낯선 일이었다. 그러니 괜히 스네이프가 곤란해지는 것은 싫었다. 해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반려였다. 스네이프도 그런 해리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잠자코 듣고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교수님이 출산할 시기쯤에, 대략 내년초부터 교수님을 대신해 수업 할 마법약 교수가 필요하겠군.”
“맞아, 그 전에 불러오는 배는 마법으로 충분히 감출 수 있을 테지만….”
“그런데 육아라는 게 그렇게 금방 끝나지 않을 걸, 포터? 다음 해도 계속 다른 마법약 교수가 필요해.”

해리는 잠시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드레이코는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게 생각해주고 있었다. 그가 홀로 대저택에서 자신을 도태시킬 때, 그를 발견해준 스승을 드레이코는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있었다. 해리는 마음 속에서 깊이 그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저와 학창시절 질긴 악연으로, 피를 튀기며 싸웠던 그가 제 반려와 아이들을 생각중이라는 것에 가슴이 짠해졌다. 해리는 거의 매일같이 이 대저택으로 드레이코를 만나러 오면서, 스네이프 때와 똑같이 미웠던 감정은 점점 스러져 제 안에서 없어져가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건 드레이코도 마찬가지였다는 걸, 해리도 알았다.

“드레이코.”
“왜, 포터? ……잠깐, 너…?”

드레이코는 해리가 자신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해리 포터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드레이코라니. 드레이코의 동그랗게 커진 눈을 보고, 해리는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 악수가 거절될 때의 열한 살 드레이코의 얼굴을 떠올렸다.

“퀴디치에서 이긴 보상, 네가 이겼지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하, 그러려고 이러는거야? 포터, 역시 뻔뻔하….”
“우리 아이들 중에 한 명, 네가 대부가 되어줘. 괜찮죠, 세베루스?”

둘의 대화를 가만 듣고 있던 스네이프가 피식, 웃었다. 해리가 먼저 드레이코를 제 아이의 대부로 생각할 정도인데 자신의 의사가 그리 중요할까? 스네이프도 해리가 또 다른 친구가 생기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드레이코에게도, 마찬가지로. 스네이프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이코는 입을 떡 벌렸다가, 천천히 멍하게 입을 오무렸다.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아이의 대부라니, 내가? 그것도 해리 포터의 제안으로?

“어이가 없군…….”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포터든, 스네이프 교수이든. 그러나 제일 제정신이 아닌 것은 필시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아이를, 보지도 못한 그 아이에게 벌써부터 애틋한 감정이 생기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드레이코의 가슴 안에서 뜨거운 구들이 뭉클하게 굴러다녔다. 이렇게 행복하고 기쁘기만한 제안을 받아본 적이 언제였었는지도 가물했다. 만나보지도 못한 아이가, 저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좋은 대부가 되어주고 싶어졌다. 드레이코는 진심으로, 자신이 그렇게 되어주고 싶었다.

“좋아, 까짓 거, 해주지. 해리, 네 아이의 대부를.”

해리는 드레이코의 대답에 빙그레 미소지었다. 자신을 해리라고 불러주는 드레이코도 마음에 들었다. 해리가 불쑥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드레이코는 그 손을 내려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열한 살, 그 때에 잡지 못한 손을, 이제서야 잡았다.

“고마워, 드레이코.”
“뭐, 그래.”
“뭐, 이제 계속 고민을 더 해볼까? 세베루스의 출산 시기가 애매하니까.”

드레이코는 손을 놓고, 끄덕였다. 아직 다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둘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드레이코, 스네이프 교수의 부름에 드레이코는 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대신할 마법약 교수로 적절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 세브,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진작 사감 일로 고민할 때 얘기했었어야죠.”

해리가 당혹스러워 하며 말했다.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매우 한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영문을 모르는 해리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만 수십 개 띄웠다.

“슬리데린 출신이고, 마법약 재능도 특출나지. 내 말도 잘 듣는 편이고.”
“심지어 슬리데린이예요?! 근데 왜 얘기 안 했…! 아……!!”

해리가 깨달은 얼굴로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쳤다. 드레이코는 진작 스네이프의 설명이 가리키는 사람을 눈치챘다. 하, 바람빠지는 웃음을 내면서 드레이코가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퀴디치 승부에서는 제가 이겼는데, 이 뻔뻔한 예비 부모들은 보상도 주지 않고 예비 대부에게 시킬 일이 많은 듯도 했다.

“와, 이 부부사기단……. 이러려고 나한테 접근한 거 아닌가? 그린고트에서?”

드레이코가 과장스럽게 양 손을 들고 으쓱거렸다.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

“생각은 해볼게요.”
“어차피 네가 하게 될거다, 드레이코.”
“이런, 해리를 닮아가시네요, 교수님.”
“끔찍한 농담은 됐고.”

스네이프의 말에 드레이코가 웃음이 터졌다. 해리는 뭐가 끔찍하냐고 제 반려의 팔을 두드렸고, 스네이프는 눈썹을 까딱 올렸다가 내렸다. 응접실에서는 그 후로도 몇 시간 더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느지막한 여름, 7월의 끝자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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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해리는 스네이프의 무릎 아래를,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그의 까만 머리카락이 제 목덜미를 간질이고, 그의 뜨거운 숨길에 아찔한 취기를 느끼며 눈가를 찡긋거렸다. 아이처럼 파고드는 그를 보호자처럼 안아 일으켰다. 무릎 아래의 손이 지팡이를 살짝 흔들어 문을 열었다. 처음 들어오는 낯설고 아름다운 방, 하얀 침구가 깔린, 그리운 호그와트가 생각나는 넓직한 사주식 침대. 스네이프를 그 위에 눕혔다. 제 처연한 연인은 떨어지기 싫다며 매달려왔다. 해리는 그를 달랬다. 취한 연인은 보다 더 솔직하고, 사랑스러웠다.

하얀 침구 위를 까맣게 물결치는 머리카락, 술에 먹혀 붉은 얼굴과 꿈을 꾸는듯한 몽롱한 시선이 해리를 사로잡았다. 해리는 그의 위로 올라가서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렸다. 그가 입고 있는 까맣고 얇은 셔츠가 구불구불 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해리가 볼 때마다 감탄하는 눈부시도록 하얀 거죽, 마른 뼈대. 창백한 살결은 차라리 푸르다고 해야할 것이다. 날카롭고 삐죽한 그의 육체마저도, 그 자신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것을 드러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는, 그의 정체성으로 빚어져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것에 늘 놀라워하고, 감탄했다.

해리의 큰 손바닥이 마른 배를 더듬었다. 미끄러져 내려가 잘록한 허리를 쓸고, 위로 다시 올라와 작은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걸었다. 스네이프는 그 모든 자극마다 반응하려고 했다. 한 달만이었다. 스네이프는 너무 오래 참았다. 제 위에 올라타 제 몸을 쓰다듬는 해리를 맹목적으로 바라봤다. 저도 모르게 입술이 말라 혀를 내어 아랫입술을 축였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아래가 젖는 걸 느꼈다.

“해리…….”
“응, 세베루스.”
“해리, 나…….”

해리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이 안온하고 다정했다.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숨결 앞의 작은 꽃잎처럼 떨렸다. 해리는 이 순간 어쩐지 첫 관계의 날을 떠올렸다. 조심스럽고, 이른 오후인데도 촉촉했고, 가슴이 잔잔하고도 빠르게 뛰었던 그 행복한 순간을 상기했다.

스네이프가 자신의 손을 내려, 제 마른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해리는 그 모습을 살짝 웃으며 바라봤다. 먼저 스스로 제 것을 만지려나 싶어, 그의 흥분이 귀여웠다. 스네이프는 제 다리 사일 더듬더니 허벅지를 모아 좁혔다. 동그래진 눈이 해리를 보았다. 언뜻, 술에 깬 것도 같아 해리는 그와 다정히 시선을 맞췄다.

“해리…… 나, 나 밑을, 벗겨줘…….”

기꺼운 요구였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이어 드러난 하얀 속옷이 어쩐지 질척하게 밀착 되어 보였다. 벌써 쿠퍼액을 이만큼 흘렸다니, 해리는 스네이프의 배꼽 밑에 입 맞추며 찬찬히 웃고, 속옷을 내렸다. 자연스레 드러난 스네이프의 성기의 끝은, 그러나 예상 외로 덜 젖어 있었다. 해리는 의아함을 느꼈다. 허벅지에 내린 속옷에는 분명히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와 길게 이어지는 맑은 액이 보였다.

해리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이어 입이 벌어지고 눈이 커졌다. 살로 덮여 있어야 할, 스네이프의 음낭과 항문의 사이 회음부에 새로운 여성기가 생겨 있었다. 젖은 액은 거기에서 질퍽히 흐르고 있었다.

“세베루스, 나한테 말도 없이…….”

마법을 성공시킨 것을, 왜 진작 저에게 말하지 않았냐는 타박이었다. 스네이프는 겁을 집어먹은 눈이었다. 그 자신조차 마법이 성공한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해리는 그런 스네이프에, 녹색 눈을 맞췄다. 자신의 눈을 보면 편안해하는 스네이프를 알고 있었다. 태어나 가져본 적 없는 새로운 생식기에,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어쩔 도리 없이 사랑스러웠다.

해리는 생각할 것 없이 그의 다리 사이에 코를 박았다. 혀를 내어 젖은 새 음부에 밀어 넣어봤다. 무릎을 세운 스네이프가 아으, 아, 당황한 신음을 토하고 다리를 펄쩍거렸다. 해리의 코와 입술, 턱 주변으로 스네이프가 흘린 애액이 묻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새 음부는, 줄곧 탐했던 뒷구멍과 다르게 애초부터 성교를 위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믿을 수 없게 부드럽고, 젖어 있었다.

“하, 흐으…. 생겼어…?”
“네, 생겼어요. 만져봐요.”

젖은 입주변을 소매로 대충 훔쳤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오른손을 잡아 미끌거리는 음부에 놓았다. 제 침과 스네이프의 애액으로 아래가 온통 투명하게 번들거렸다. 스네이프의 손끝이 녹은 얼음 위처럼 미끄러졌다.

“이상해…….”

겁먹은, 그러나 호기심 어린 소년처럼 스네이프는 새로운 자신의 육체를 탐구했다. 스네이프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제 여성기의 아래 위를 문질렀다. 음핵에 엄지를 얹고 굴리자, 절로 다리가 벌어지며 입술이 열렸다. 해리는 제 앞에서, 다리를 쫙 벌리고 여성기로 자위중인 스네이프에 성기 끝이 아릿하게 아팠다.

“해리, 나, 임신하고 싶어….”

눈이 풀린 채, 음핵을 문지르며 스네이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해리는 드레이코의 앞에서도 그랬지만, ‘임신하고 싶다’는 문장의 파급력이 이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다. 스네이프의 입에서, 스네이프의 목소리로, 스네이프의 의지로 말해서 그런걸까. 이미 해리는 흥분이 고통에 가까웠다. 이렇게 많은 물로 젖어 있으니, 넣어도 되지 않을까? 해리가 손가락 두 개를 질구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뒤와 다르게 너무 부드러운 삽입이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스네이프가 다리를 벌린 채 자위하는 걸 내려다보며, 해리는 머리 위로 티셔츠를 벗었다. 해리가 벗는 모습을 바라보는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빨라져갔다. 하읏, 흐으…. 흥분한 숨을 흘리면서 노골적인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독하게 솔직한 스네이프였다. 그의 욕망이 눈에 보이게 넘실거려서 해리는 웃었다. 해리의 바지와 속옷이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오금을 잡아 허공으로 처들었다. 녹색 눈과 검은 눈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뗄 줄을 몰랐다. 스네이프의 다리를 들어 잡은 자세 그대로, 해리가 삽입을 시도했다. 처음 들어가보는 곳이었다. 원래부터 거기에 있어 자신을 맞아들였던 것마냥, 새로운 음부는 해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해리는 삽입하는 내내,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제 음부보다 해리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황홀하게 저를 보는 그 표정이, 귀두가 입구에 걸렸을 때 찡그린 눈가가, 묵직한 삽입에 빠듯이 조여오는 좁은 안쪽이, 떨리는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해리를 미치게 했다.

“진짜 좁다…….”

목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내벽이 성기를 끊을듯이 압박해서 숨이 부족했다. 해리는 벌써 땀이 맺혀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꼭 취한 제 연인처럼 얼굴이 붉어져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첫 삽입에도 스네이프는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좁은 구멍 안 쪽 어딘가에 정말로 자궁이 있는 걸까? 해리는 스네이프의 밋밋한 배를 바라보았다. 저 배가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걸 상상했다. 하, 젠장. 해리는 너무 흥분했다. 허리 아래의 움직임이 성급해지기 시작했다.

“앗…. 어…? 으응……흐, 으응, 아-”

평소와 다른 곳이 쑤셔지는 느낌에, 스네이프는 살짝 놀랐다. 하지만 제 안을 꽉 채우는 해리의 것에, 금세 물을 질질 흘려보내며 잔뜩 달아올랐다. 흥분할 때마다 분비되는 애액에 시트가 푹 젖어들었다. 말포이가, 당신이 자기 집 침대에, 소변 봤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예요? 척척한 시트에 해리의 무릎이 닿였다. 박으면서 해리는 연인을 짓궂게 놀렸다. 스네이프는 너무나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세게 도리질 쳤다. 물론, 해리가 남이 보도록 둘의 정사 흔적을 남겨놓을 리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창피했다. 해리의 상체가 앞으로 내려와 스네이프의 귓가에 얼굴을 기대고 허릿짓을 했다. 세브, 진짜 물 많다…. 아래서, 질척이는 소리 들려요? 응? 해리가 속삭이는 말들에 정신이 아찔아찔했다.

해리의 것이 귀두 밑까지 빠져 나갔다가, 뿌리의 조금 더 앞까지 스네이프의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 구멍은 좁고, 길이 짧았다. 반려의 안쪽이 다칠까, 해리는 뿌리까지 박아넣는 건 본능적으로 피했다.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스네이프의 내장에 손상을 입혔다간, 제 욕심에 남성인 그에게 아이를 요구해놓고 상처까지 입혔다간……. 해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스네이프에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론에서 스네이프에게 계속 자기희생, 헌신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그의 전쟁영웅 타이틀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해리는 정말로 자신에 한해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이렇게 자기 몸을 바치는 헌신을 목도할 때면, 참을 수 없게 그가 사랑스럽고, 또 너무 미안했다.

“세베루스,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당신을….”

감정이 넘실거렸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한 것을 스네이프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자신의 이 마음은 사랑보다도 더 컸고, 아득히 깊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등을 끌어 안았다. 한 몸처럼 맞붙은 이 느낌이 좋았다. 어떻게 2주나 되는 시간동안 해리와 떨어져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너를 너무, 사랑해, 해리….”
“응, 알아요. 알고 있어요….”
“알아…? 아니, 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 아… 사랑, 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해리….”

스네이프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해리를 위해서는 못할 일이 없었다. 불가능도 전부 가능으로 바꿔서 해낼 것이었다. 그를 위해 저의 마법적인 능력, 자기자신, 모든 걸 이용해도 좋았다. 해리를 위해 존재하는 게 기뻤다. 나는, 너의 것이니까, 해리 포터. 스네이프는 해리의 등을 안고 어깨에 이마를 비비면서, 해리의 체온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7시가 되기 몇 분 전에 해리는 눈을 떴다. 스네이프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해리는 얼룩진 시트 부분에 지팡이를 대고 흔적을 지웠다. 연인의 다 벗은 몸에 감긴 이불을 다시 제대로 덮어주었다. 해리는 옷을 입으면서 그를 내려다 보았다. 스네이프가 간밤에 여러 번, 임신을 시켜달라고 보채며 울었던 게 생각났다. 취해서 그런지, 그는 그런 말을 쉽게도 내뱉었다. 마주 보며 누워서, 마주 보고 올라타 앉아서, 엉덩이만 치켜 올린 채 뒤로 고개를 돌려서 저를 바라보며, 스네이프는 끊임없이 사정을 요구하고 젖은 구멍을 벌렸다. 물론, 지칠 때까지 그를 몰아 붙이면서도 해리 역시 자제를 몰랐다. 야하고 아름다운 그를 앞에 두고 적당히를 찾는 게 어려웠다. 해리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방 문을 나섰다.

응접실은 집요정이 치워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해리는 크리처를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어차피 자신도 호그와트로 가게 되니, 크리처를 굳이 데려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해리가 나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포이가의 집요정이 갑작스레 뿅, 하고 나타났다. 이 집에 머글의 cctv 같은 게 달린 건 아니겠지……. 해리는 스네이프와의 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드레이코가 싫긴 하지만, 관음증은 없을 것이다.

“포터 씨, 따로 아침을 내드릴까요? 아니면, 드레이코 도련님께서는 늘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드십니다.”

드레이코와 대화를 하는 편이 좋았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깨워 같이 먹겠다는 대답을 했다. 집요정은 끄덕이더니 드레이코의 방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 오라는 드레이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새삼 여기가 드레이코의 방에 딸린 개인 응접실인 게 생각났다. 부내가 철철 흘러 넘치는군. 제 어린시절의 벽장이 지금 해리가 앉아있는 암녹색 카우치만 했던 것 같았다.

문이 열렸다. 얇은 회색 실크가운을 입은 드레이코가 집요정의 뒤에서 머리를 쓸어넘기며 해리를 보았다. 어딜 봐도 그는 권태로운 귀족의 도련님이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유치해 보이는 것도 없고, 이 대저택에 어울리는 품새였다. 짜증나네…. 해리는 팔짱을 끼고 드레이코를 노려봤다. 스네이프에게 언감생심 품었다간, 영웅의 이름을 앞세워 아즈카반에 처넣어 버려야지. 그제야 해리의 입꼬리가 만족스레 올라갔다.

“교수님은 주무시나?”
“그래. 피곤할테니.”

해리가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드레이코는 해리의 저 빤질한 낯짝에 홍차를 한 번 부어보고 싶었다. 어젯밤처럼 1인소파에 앉으며 드레이코가 집요정에게 손짓을 했다. 알아 들었는지 집요정은 따듯한 물을 따라 주인과 손님의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는 모양으로, 허리를 공손히 굽힌 뒤 사라졌다.

“궁금한 게 있는데, 포터.”
“뭐지?”

컵을 들어 물을 들이키며 해리가 흘깃거렸다. 드레이코는 심상한 투로 물었다.

“교수님이 정말로 임신이 가능한 것 같던데. 내 생각이 맞지 않나?”
“…….”

대번에 험악해진 해리의 표정을 보고서도 드레이코는 굽히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해리는 짜증스레 컵을 내려놓고, 다시 팔짱을 꼈다.

“네가 교수님에게 요구했다는 게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아서.”
“밤새 안 자고 그 생각만 한 건 아니겠지? 말포이. 이 집에 방음마법이 걸려있을 거라고 믿고 싶은데.”
“물론, 걸려 있어 포터. 어제 교수님이 취해서 하신 말씀 중에 들은 거야. 분명치 않은 발음이라 헷갈렸거든. 그런데 뭐…… 어제 그 모습을 보니.”

드레이코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야릇한 교수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매가 올라갔다.

“교수님은 남자인데, 어떻게 한거지?”
“마법사가 마법을 부렸겠지, 뭘 어떻게 하겠냐?”
“미친놈. 교수님이 한번에 동의 하셨을리 없는 일을. 자랑인가?”
“우리 일에 관심 꺼, 말포이. 세베루스는 내게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하니까.”

드레이코가 역겹다는 얼굴로 해리를 흘겼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물 컵을 내려놓고, 턱 밑에 손등을 괴었다. 그런 쪽으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자신의 기숙사 사감인데, 저 해리 포터가 어떻게 알고 이렇게 그를 꿰찼는지, 솔직히 욕심이 났다. 어쩌면 해리 포터를 그렇게 사랑하는 눈으로 보는 교수의 존재가 부러웠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까.

“이해가 안 가. 왜 세베루스가 네게 자기 과거를 얘기해준거지?”
“아끼는 제자라서 그런거겠지, 포터.”
“입 닥쳐, 말포이.”

오랜만에 뱉어보는 말이었다. 그에, 해리도 드레이코도 짤막히 웃음이 터졌다. 둘 사이에 어떤 유해한 공기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뭐, 내가 생각하기엔…… 스네이프 교수님이 내가 전쟁 이후로 혼자 박혀있는 모습을, 몹시 못마땅해 하시는데. 아무래도 지금 내 모습에서 교수님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시는 것 같아.”
“널 위로해주기 위해서라고?”

그건 더 마음에 안 드는 이유지만, 해리는 그냥 한숨만 한 번 쉬고 말았다. 드레이코 말포이를 싫어하고 한심해하긴 해도, 자신이 그를 진짜 아즈카반에 넣고 싶을 만큼 싫어하냐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말포이가가 보석금으로 풀려났다고 했을 때도 해리는 루시우스는 몰라도 드레이코는 다행이라고 지나가듯이 생각했을 정도였다.

해리는 머틀의 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드레이코를 떠올렸다. 덤블도어의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살인 저주를 결코 입에 올리지 못하던 나약한 모습도, 악마의 화염에 불타는 필요의 방에서 제게 구조를 바라며 간절히 올려다 보던 얼굴 역시. 그리고 지금도 나약한 정신으로 이 대저택에 저를 혼자 가두고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그리고 내게 네 얘기를 하기 위해서도, 교수님께선 당신의 과거 이야기를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신 거 같아. 나도 들었어, 포터… 그 ‘예언’……. 교수님이 처음 듣고, 어둠의 주인에게 전달했던 거라고….”

해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스네이프가 예언을 듣고, 볼드모트는 예언이 가리키는 아이가 저라고 생각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그리고 제 부모를 죽이고, 자신은 죽이지 못했다.

“교수님은…… 네 부모가 죽은 게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셨어. 그래서 포터 네게 가족을 꼭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으신 것 같…….”
“입 닥쳐라, 드레이코 말포이.”

흠칫 놀란 드레이코와 해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무시무시하게 화난 얼굴의 스네이프가 서있었다. 낭패를 느끼며 드레이코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꾹 물었다. 해리는 마음이 아팠다. 제게 죄책감을 가진 스네이프를 쳐다보기가 아플 정도로. 단순 죄책감만으로, 의무감으로 제 아이를 임신하겠다는 건 아닐테지만 스네이프가 정말로 그런 마음도 갖고 있을 거라는 걸, 이제 해리는 알았다.

스네이프는 둘의 뒤에서 주먹을 움켜쥐고 떨었다. 해리의 숙여진 뒤통수에서 저에 대한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런 감정을 해리가 느끼라고 자신이 노력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포터, 정말로 네 아이를……. 아니, ‘우리’의 아이를 원했다. 남자인 자신이 임신을 각오하는 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동반되는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간밤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분명한 건, 제가 노골적으로 임신을 원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자신이 의무라고만 여겨서 해리에게 재촉한 게 아님을, 해리는 알아주어야…….

스네이프는 드레이코를 한 번 힐끗거렸다. 천천히 해리에게로 다가가 옆에 앉았다. 해리가 크고 따듯한 손으로 제 찬 손을 잡아 쥐었다. 드레이코에게 들리지 않게 해리가 고개를 숙였다. 스네이프의 귀를 찾아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신경쓰지 말아요. 말포이 쟤가 뭘 알겠어요?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원하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지.”

스네이프는 해리가 저에 대한 연민을 티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위로하려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제 과오는 모른척해주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만 덮으려 하는 연인이었다. 해리의 가족을 잃게한 것이 자신이라는 죄의식. 이 죄책감이 스네이프에게서 완전히 사라질 일은 없었다. 그래도, 스네이프도 해리의 옆에서는 오직 이게 서로의 사랑때문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척 하기로 했다. 해리가 그러길 원할 것 같았다.


“그 상처가 아직도 있다고?”

이름 모를 외국의 스프를 숟가락으로 뜨던 해리가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생각도 못했는데, 드레이코의 몸에는 제가 쏜 섹튬셈프라에 베인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지난 저녁, 저주 주문의 상처 치료약을 개발중이라는 드레이코의 말만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싶었던 일이었다. 제가 실수로 날린 저주 주문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흉이 남았을 줄은, 해리는 뒤늦은 죄책감에 목이 막혔다.

혼혈왕자, 스네이프의 교과서에 ‘적에게 사용’이라는 설명이 적힌 주문이었다. 그 주문을 날리고, 피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드레이코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해리는 이기적이게도 스네이프가 그를 잘 보살폈겠거니 했다. 본인의 잘못에서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저질러놓고 도망쳐버렸던 자신의 과오가, 지금 이 순간 해리의 뒤통수로 강한 둔통을 일으켰다. 해리는 아침식사 전, 스네이프의 과오로 죽어버린 제 부모의 얘기를 들었다. 그랬는데, 제가 이런 잘못을 짓고 줄곧 몰라왔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해리가 숟가락을 스프에 내려놓았다. 야채 건더기가 떠다니는 스프에 수저의 머리가 깊이 빠져 들었다.

“……미안, 말포이. 전혀 몰랐어.”

거만한 눈으로 해리를 보던 드레이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사과 따위로 네 저주의 흔적이 사라지진 않지, 포터. 드레이코다운 가벼운 빈정거림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드레이코가 몸에 남은 상처만큼, 마음으론 그 일에 깊게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드레이코를 진정 외롭게 하고,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상처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과오였다.

“어차피 내 몸에 흉터가 있든 말든, 몸을 봐줄 애인도 없고 말야. 너처럼, 포터.”
“그 애인이 지금 우리 앞에 앉아있는 교수님인데, 말포이.”
“아, 이런. 실례했어요, 교수님.”

눈썹을 으쓱인 드레이코가 크큭 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제 앞에 해리와 스네이프를 앉히고 식사를 하고 있는 것도 우스웠고, 이 셋이 앉아 있는데 편안한 분위기인 것도 말이 되지 않게 느껴졌다.

“포터, 오러는 관뒀다며?”
“방구석 도련님이 소식통은 빠삭하시군.”
“그 소식통이 우리 앞에 앉아 있는 교수님이라서.”
“포터, 드레이코. 재미있나, 지금?”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학창시절 기싸움을 벌이던 두 제자들이 이제는 합심해서 저를 골리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저 둘이 합이 맞는 친구였다고. 그러나 성정들을 보았을 때, 충분히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뭐, 하여튼. 맞아, 말포이. 오러 일을 관두고 호그와트 교수를 준비중이야. 다시 공부 하려니까 머린 좀 아프더라.”
“잘 다니던 직장을 왜? 설마 포터, 교수님 옆에 있으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

벌써 정답을 알아버린 드레이코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해리는 뿌듯한 얼굴이었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젓고, 제 몫의 식사에만 관심을 두기로 했다.

“열아홉 살 교수라니, 어지간히 무시 받겠는데?”

드레이코가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해리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스네이프 쪽을 돌아보았다.

“세베루스, 첫 부임에 무시 당했나요? 당신, 스물두 살이었잖아요.”

드레이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고보니, 눈 앞의 스네이프 교수의 첫 부임 시기도 굉장히 일렀다. 학창시절에 집단 괴롭힘을 당했었다는 말 또한 생각났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학생들이 제자가 됐을 터인데…….

스네이프는 자신의 과거가 주제가 되는 상황이 불편스러웠다. 정말이지, 이 인생은 스스로 평가해봐도 마음에 드는 역사가 없군. 그것도 식사를 먹다가 나누기에는 적절치 않은, 술자리 안주감으로도 입맛을 떨어지게 하는 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일 것이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표정을 보고 얼굴을 한 번 더 굳혔다. 저 표정이 이미 질문의 답을 하고 있었다. 볼드모트가 종적을 감춘지 불과 몇 달만에 호그와트의 교수로 등장한 어린 데스 이터, 세베루스 스네이프……. 알버스 덤블도어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조건적 변호가 있었다지만, 해리 역시 스네이프의 기억을 보기 전까진 그의 진실을 오해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의심과 분노의 굴절이 어린 교수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릴리의 죽음 앞에, 그 모든 비난은 스네이프에게 어떤 생채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란 것도…….

“듣고 싶은 얘기가 뭐지? 포터, 드레이코. 스물두 살의 전 데스 이터, 학교를 다닐 땐 동급생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찌질하고 기름진 교수가 저보다 겨우 너다섯살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멸시와 조롱을 들었는지?”

해리는 치아를 꽉 물고 화와 슬픔을 참았다. 스네이프가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인 건 맞았다. 하지만 그가 피해자였던 것으로 조롱 당하는 분위기까지는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심지어 그 괴롭힘의 주동자가 자신의 아버지이고 사랑하는 대부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것도.

“그 어린 학생놈들이 날 괴롭히고, 놀리고 싶어해봤자 네 아빠와 친구들에 비해선 발톱의 때만큼도 못한 수준이었고, 난 그 당시 그것은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무너져 있었으니…… 쓸데없이 뒤늦은 동정 품지마, 포터.”

스네이프는 차갑게 일갈했다. 해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드레이코는 그 둘의 지독하게 얽힌 고리에 인상을 썼다. 악연도 저런 악연이 없지 싶었다. 어쩌다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게 된건지─

“하아, 죄송해요 교수님. 미안, 포터.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널 놀리는 것도 교수님 앞에선 자중해야겠네.”

드레이코가 불쑥 꺼낸 말로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다. 드레이코가 이런 노력을 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연인은 일견 서먹해보였다. 어젯밤, 밤새 뭔 짓을 했을지 남의 눈에 다 보이게 들어가 놓고서. 우스운 아침이었다.

“미안해요, 세베루스. 앞으로 과거 얘기 같은 건 묻지 않을게요. 다 지나간 일이니까.”

스네이프는 해리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저를 살린 이후의 삶에 집중하길 바랐다. 자신의 과거, 과오를 기억하고 신경써야 하는 건 오직 저 혼자만의 일이어야 했다. 자신의 구원자가 저의 무게가 아닌 것을 짊어져서는 안 되었다. 예언도, 본인의 가족을 잃은 것도, 그의 아버지와 대부가 저지른 잘못도,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저지른 모든 죄들도 모두 해리의 탓이 아니었다. 해리가 말했듯이, 모두 지나간 일이기도 했다. 이제 바꿀 수가 없는 과거였다. 그리고, 스네이프는 새삼 깨달았다. 미래에서 와서 자신의 목숨을 살린 해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건지 새삼 알게 되었다. 해리는…… 바꿀 수 있었다. 그 위대한 영웅은 그럴 수 있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 두번째 삶을 주고, 첫번째의 삶과 완전히 바꿔줄 수 있었다.


“다음에 ‘또’ 오지, 말포이.”
“나는 교수님을 초대한 건데, 포터?”
“그래서 온다는 거야, 말포이. 이 정신 나가게 넓은 집에 혼자서만 박혀 있으니까 뇌가 잘 안 돌아가나본데. 그래서야 마법약 개발이 되겠냐 싶어 내 애인이 널 도와준다는 거니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지.”
“하, 백수라 시간이 넘쳐나니 여기저기 간섭할 시간도 넘쳐나는군, 포터. 너 같은 무식한 놈이 들어와서 내 마법약 연구실의 기운을 흐려놓으면 어떻게 책임질거지?”
“나보다 더 오래 된 백수라서 넘쳐나는 시간에 대한 이해도는 높구나, 말포이.”

스네이프는 저 둘이 계속 이런 대화를 나눌 거면, 굳이 정원을 함께 걸어 대문까지 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오전에, 대저택의 아름답고 푸릇한 정원에서 두 청년은 하늘로 언성을 드높였다. 금방이라도 열한 살 꼬마들로 돌아가 서로에게 지팡이를 겨눌 태세라,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핀도르고 슬리데린이고 각자 점수를 깎아버리고 싶었다. (어느 쪽 기숙사의 점수를 더 많이 깎아버릴지에 대한 갈등은 조금 있었다.)

“포터, 그냥 여긴 앞으로도 나 혼자 오겠다.”
“무슨 소리예요, 세베루스! 저 자식의 어딜 믿고 당신을 혼자 보내요?”

드레이코는 그저 자신의 제자─ 이런 소리가 해리에게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한숨만 한 번 쉬고 말았다. 이어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부드럽게 휘둘러 육중한 검은 대문을 열었다. 해리도 뒤따라 문 밖으로 나왔다. 방금까지 소릴 높여가며 싸운 것이 무색하게, 스네이프의 두 제자는 뻔뻔스런 시선을 교환했다.

“다음 번엔 내 셔츠값 50갈레온과 함께 와라, 포터.”
“말포이, 다음엔 값 싸고 질 좋은 옷가게의 명함과 함께 찾아오지. 아무래도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을 상대로 한 사기범죄에 연루된 것 같은데, 전직 오러로서 널 도와줄게.”
“그것 참 고마운데, 조언을 할 거면 10갈레온을 더 내. 네 형편 많이 봐준 거야, 포터. 그럼, 안녕히 가세요 스네이프 교수님. 포터가 속 썩이면 절 찾아오시고.”
“세베루스, 말포이가 졸린지 헛소릴 지껄이네요. 잘 수 있도록 얼른 우리 집으로 돌아가요.”

둘이서 경쟁적으로 대화를 쏟아냈다. 스네이프는 표정 없이 그들을 보다가 드레이코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가지, 포터. 그 작은 목소리에도 해리는 바로 팔짱을 끼며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드레이코는 못마땅하게 해리를 보았지만, 이내 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드레이코는 어깨를 으쓱하며 저택의 안으로 순간이동했다. 모처럼 소란스러운 밤과 아침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집 거실로 순간이동한 해리와 스네이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히 서로의 얼굴이 굳어감을 느꼈다. 드레이코의 앞에서는 투닥대고, 빈정대며 평소와 같은 티를 냈었지만, 둘 다 속으로는 아침의 대화들을 신경쓰고 있었음을 서로 알아채었다.

해리는 베란다로 가서 난간에 팔을 올렸다. 담배는 피운 적 없는데, 꼭 이런 기분에는 그런 게 어울릴 것 같았다. 해리는 멍하니 담배연기 대신에 한숨을 내쉬었다.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해리에게 무게를 지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해리 포터가 자신의 애인이랍시고, 제 죄의 무게까지 얹으려는 오만은 스네이프도 사양이었다. 따지자면 자신이 데스 이터였던 것이, 어떤 것에서든 최악의 이유였다. 힘을 얻고자 했던 과욕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예언도, 릴리의 죽음도, 호그와트로 다시 돌아오고나서의 모든 비난과 멸시와 조롱도.

“세베루스. 이리 와봐요.”

그렇지만 이렇게, 단 둘만이 남은 상황에서, 해리가 자신을 불러 세우는 이 순간에는 스네이프는 두려움에 떨었다. 해리에게서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두려움에 눈꺼풀이 꽉 닫혔다가 겨우 떠졌다. 그렇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가 부르면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해리가 손가락으로 꽃 화분이 가득한 카페를 가리켰다. 일전에 스네이프가 제 취향이라며 초면에 집적거리던 머글 사장이 있던 카페였다. 그 후로 그 쪽 길로는 발길도 끊은 스네이프였다.

“저 가게 사장 이름, 시리우스더라고요. 알았어요?”
“…응.”
“그래서 저길 박차고 나온 거였어요? 가게 안에서의 추행은 없었는데?”
“포터,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기억도 지운 머글에게 보복하려고 다시 갔던 건가?”

스네이프는 베란다의 난간에 팔을 걸친 해리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안경 뒤의 가라앉은 녹색 눈, 평소와 다른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이 스산해졌다. 스네이프는 괜스레 주먹을 꾹 쥐었다 놓았다.

“그 날 제가 카페 앞에 도착했을 땐, 론이 사장을 가게 안으로 데려가서 제대로 얼굴도 못봤으니까…. 당신에게 관심있다고 손목까지 잡은 놈을, 내가 그냥은 못 두죠.”
“……어떻게 했는데?”

열여덟 살의 질투에 눈이 먼 오러가, 이미 기억을 지운 머글에게 정말로 상해를 입혔을까. 스네이프는 해리가 정말로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마법부가 그 사실을 모르게만 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여전히 이렇게 인성이 돼먹지 못했다. 제게 소중한 것들만 눈에 보였다.

“…아무 짓도 안했어요.”

아까보다 더 어두워진 얼굴의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 사람 이름을 듣는 순간……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하, 네 대부랑 이름이 같아서 전의를 상실했나 보지?”

스네이프가 조소를 흘렸다. 해리 포터가 그 이름마저 아끼고 사랑하는 대부이니 그럴만 했다. 하지만 해리는 스네이프의 비웃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 녹색 눈은 습하고 어두웠다.

“아니요. 또 다시 같은 이름의 사람이 당신을 괴롭혔다는 생각에.”
“…….”

스네이프는 왜 그 순간, 자신이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전조도 없이 턱 밑으로 흘러 내렸다. 순식간에 온 얼굴을 덮는 눈물을 손으로 가리려 애쓰며 스네이프는 울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제 몸에선 제 의지가 아닌 눈물이 미친듯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과거에 매여있는 자신이 한심하고 억울해서였는지, 해리가 저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에 어리석게도 감동 받아서였는지 스네이프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처럼 꺽꺽대며 울었다. 아무도 그 일로 자신을 안아준 적이 없었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는 일들만 목도해왔다. 그리고 자신도 그 중 하나였다. 펜시브에 기억을 덜면서 제 인생에서 삭제시키고 싶은 일이었다.

해리는 제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스네이프를, 차마 안지도 못하고, 안쓰럽게 바라보기만 했다. 해리 자신도 제가 느끼는 이 감정들과 생각을 가지런히 정렬할 수 없었다. 제 소중한 사람이, 또 다른 소중한 사람에게 지우지 못할 큰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기도 하고 미워하고 싶기도 했다.

“저도…… 마법세계에서는 마치 제가 숭고한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리지만…… 드레이코 말포이에겐 낫지 않는 저주를 날려 놓고, 피를 쏟는 꼴을 보고도 두려워서 회피하고, 여태 그 일로 걔가 얼마나 다쳤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어요.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아빠나 시리우스를, 당신을 괴롭혔다고 대놓고 미워할 수도 없어요. 그리고 저는 예언을 듣고 볼드모트에게 말한 당신도 미워하지 않아요. 그 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든 지나간 과거니까. 이미 끝났으니까. 세베루스, 사람이 어떻게 한 가지 면만 존재해요? 나도 좋은 놈은 아니예요.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살린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이기적인 놈이라고요…….”

해리의 말은 거짓이었다. 해리는 제 탓이 아닌 죽음까지도 저의 탓으로 몰아넣고, 이렇게 자신에게 책임을 뒀다. 그 죽음들에 눈 돌리지 못하면서 이기적을 운운하는 해리가 우스웠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해리의 앞으로 발을 움직였다. 해리는 그제서야 스네이프의 몸에 손댈 수 있었다. 스네이프의 허리를 안고, 어깨에 턱을 얹고 해리는 연인을 토닥였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품에서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미안해…. 내가 네 가족을 잃게 해서, 그리고 그 때문에 꼭 내가 네 아일 낳아주고 싶었어…. 그렇지만 처음에 내가 그런 마음이 든 건, 내가 해리 너를 사랑하니ㄲ…….”

스네이프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에게 입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 행위가 입을 막는 것처럼 느껴졌다가도, 이 다정한 온도에 스네이프도 모를 수가 없었다. 해리는 다 알고 있구나.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구나. 스네이프는 해리의 등의 옷깃을 꼭 쥐고 안겼다. 부드러운 입맞춤에 그냥 자신을 맡겼다. 언제나 자신을 구원해주는 저의 영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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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해리는 다급하지만 잔뜩 굳은 얼굴로 말포이 저택으로 들어섰다. 집요정이 현관 홀에 해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로브를 달라고 내미는 집요정의 작은 손을 무시하면서 해리는 스네이프를 찾았다. 대리석 바닥에 구둣발의 소리가 시끄럽게 부딪쳤다. 집 구조도 모르면서 성큼성큼 앞서나가는 해리에 집요정이 꽥꽥거리며 막았다. 드레이코 도련님의 개인 응접실로 손님을 모셨다고 소리쳤다. 해리는 안내하라고 약간 커진 언성으로 말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기에 최대한 냉정을 찾은 것이었다.

부엌의 식탁에 앉아서 얼굴만 감싸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렇게 행선지에 대한 말도 없이 저를 두고 가버리는 스네이프의 행동에 해리는 기가 막혔다. 제가 뭐, 그에게 마음에 안 들게 한 것이 있다면 이 정도로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리 포터는 무려 한 달을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충직한 개처럼 굴었다. 그가 섹스를 금했을 때, 그렇게 해주었다. 몸을 건들지도 말라고 했을 때도 결국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시킨 대로 다했더니, 돌아오는 행동은 저를 무시하는 스네이프였다. 창으로 날아든 드레이코 말포이가 보낸 부엉이였다.

기가 막혔다. 이 시간에 절 두고 찾은 곳이 드레이코 말포이의 집이라니. 말포이를 만나러 나간 것이었다니! 그린고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는 제자와 스네이프가 느닷없이 저녁의 만남을 가졌을 리 없었다. 해리는 헤르메스가 요즘 부쩍 바깥과 집을 오간다고 생각했다. 사냥하느라 바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네이프가 드레이코와 저 몰래 연락을 주고 받았다 생각하면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 핏발이 서는 느낌이었다.

벌써 열한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부엉이가 말포이 저택에서 자신의 집으로 날아오는 시간까지를 감안하더라도 스네이프는 이 곳에 너무 오래 있었다. 해리는 정말 피가 말라 죽는 줄 알았다. 스네이프를 찾아나서지 않은 이유는 제 반려를 믿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믿지 못해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스네이프를 찾았을 때 뭘 보게될 지 해리는 두려웠다.

“말포이……!!”

응접실 입구 쪽에 나와 있던 드레이코의 멱살을 잡아챘다. 드레이코는 미간을 찡그리며 해리의 면상을 쳐다 보았다. 도도한 도련님의 태도는 해리의 화를 더욱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세베루스는 어디─”

고개를 돌린 곳에 스네이프가 있었다. 암녹색 벨벳 카우치에 쓰러져 누운 채였다. 해리는 당장에 드레이코를 밀쳐내고 스네이프의 앞으로 달려갔다. 화났던 마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걱정밖에 들지 않았다. 스네이프의 뺨을 감싸자 살짝 열감이 느껴졌다. 붉은 뺨이 보였고, 꽤 진한 술냄새가 해리의 코를 스쳤다.

드레이코는 문간에 팔짱을 끼고 서서 유난을 떨어대는 연인을 지켜 보았다. 해리가 잡고 늘어진 옷깃이 뜯어져 너덜거렸다. 무식한 새끼, 이게 얼마짜리 셔츠인 줄 알아? 마법으로 수선할 수 있었지만 드레이코는 필히 해리에게 옷값을 청구할 생각이었다. 해리가 못 준다면 스네이프 교수님에게라도 받아낼 생각이었다. 제가 오늘 팔자에도 없는 상담가가 돼서 술 주정까지 받아줬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받을 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스네이프는 드레이코가 마법약 연구실로 쓰는 방을 함께 찾았다. 집요정이 있어 늘 정리가 잘 되어 연구실은 깔끔했다. 식사 중에 잠깐 보았지만 스네이프는 다시 제대로 살피기 위해 드레이코에게 탈의를 요구했다. 드레이코는 떨떠름하기도 했으나, 꽤 순순히 단추를 풀었다. 자학을 하고 있다는 교수의 지적은 정확했다. 요즘 들어 드레이코는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감각을 강렬히 느끼고 있었다. 하루하루, 의미 없이 반복 되던 나날들이었다. 드레이코는 종일 약재를 공부하고 조합하고, 끓여낸 것들을 덜 식힌 채로 제 환부에 바르는 자극을 즐겼다. 그 고통은 끔찍한 과거의 기억에서 한순간 저를 유리시키는 것 같았다.

드레이코는 이 상처가 생기던 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울보 머틀이 저를 얼마든지 가엽게 보고, 동정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정신은 뇌수가 바다처럼 출렁이는 것 같았고, 눈에선 수도꼭지가 틀어진 것 같았다. 목끝까지 찬 압박감과 정신적인 붕괴, 갑작스레 등장한 해리 포터, 벌어진 싸움, 온 몸이 칼날로 도배 당하는 감각…… 피가 분수처럼 터지고, 당혹감에 차서 저에게서 도망치는 해리 포터의 얼굴과…….

“이 저주 주문은 학창시절의 내가 만든 거다, 드레이코.”
“그 주문을 어떻게 포터가 알고 있었죠?”
“포터가 6학년 때 갑작스레 마법약의 천재가 되지 않았나? 나는 네가 포터에게 이 주문을 당한 걸 보고 알아챘지. 포터는 내 교과서로 마법약 수업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교과서에 내가 만든 마법주문을 여럿 적어 놨었지.”

드레이코의 환부를 살피며 스네이프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잠자코 진찰 받듯 앉아있던 드레이코가 인상을 찡그렸다. 역겨운 포터 자식. 남의 교과서, 주문을 훔쳐 제 실력인 양 굴었던 게 뻔뻔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놈이 뭐가 좋아서 만나고 계십니까? 포터가 그- 교수님이 사랑했다는 그 분과 닮은 구석은 조금도 없을 것 같은데요.”
“나는 포터가 릴리를 닮아서 만나는 게 아니다, 드레이코.”
“그럼요? 대체 뭘 잘못 보고?”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말들에 피식 웃었다. 노골적으로 해리 포터를 싫어하는 티를 내는 드레이코에게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 터다. 드레이코에게 셔츠를 다시 건네주고, 스네이프는 책상 앞에 앉아 드레이코가 적어놓은 마법약 수식들을 눈으로 훑었다.

“옻나무 껍질은 너무 과용 되었군, 수업 중에 집중하지 않았나? 이러니 수포가 나는 부작용이 생긴 거다, 드레이코. 정해진 수치가 있는데…….”
“포터 얘길 저에게 하러 온 거 아니세요? 계속 말씀을 돌리시는 것 같습니다만.”
“틀린 걸 눈으로 보고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슬러그혼 교수 밑에서는 정말 정신을 빼고 배운 듯 하군….”

드레이코는 6학년 때의 기억은 송두리째 삭제시키고 싶었다. 스스로의 뇌에 지팡이를 겨눠 오블리비아테를 쏘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스네이프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다 보였다.

“포터 얘기를 하기 전에. 내 과거 이야기부터 들어줬으면 한다, 드레이코.”
“저에게요?”

드레이코는 뜻밖이라는 눈을 하고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정말 제게 그 얘길 들려주신다고? 그건 듣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뭣 때문에 저 같은 놈 앞에서 스네이프 교수가 제 과거를 털어 놓는다는 건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몹시 궁금했다.

해리 포터가 위즌가모트에 스네이프 교수의 죽기 전 기억을 제출했다, 교수가 포터의 어머니를 어렸을 때부터 사랑해서, 볼드모트가 그녀를 살해했을 때부터 데스 이터에서 변절 해 반평생 포터를 지키는 데 삶을 바쳤다는 말들이 마법세계에 퍼졌고, 그게 드레이코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기억의 핵심은 있었지만 단순화 된 문장들은, 그저 동화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나는 머글 아비와 순수혈통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교수님이 혼혈인 건 알고 있었어요. 당신의 어머니가 프린스 가문이셨다고 아버지께 들었었죠.”
“내 가난한 머글 아비가 매일 술에 취해 어머니와 내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건? 집을 나가 며칠을 들어오지 않을 때면, 제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만약 집에 살아 돌아온다면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어 있기를 내가 기도했다는 것은? 그것도 루시우스에게서 들었나?”

드레이코는 감히 머글이(이 대목에서는 전쟁이 끝난 지금, 양심이 조금 찔려왔으나) 마법사, 그것도 순수혈통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꾹 쥔 주먹이 살짝 떨렸다.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가난한 머글 동네에서도 가장 구석이었지. 그리고 강 하나만 건너면 있는 마을은 중산층이 사는 좋은 동네였다. 포터의 엄마인 릴리는 거기에 살던 머글의 막내딸이자, 마녀였지. 나는 강둑 너머로 넘어가 릴리와 그녀의 머글 언니가 노는 모습을 자주 지켜 보았다. 릴리는 자신이 부리는 재주가 마법인지 알지 못했어. 나는 그녀에게 우리가 마법사라고 가르쳐 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마법사인 걸 알고 있는게 당연했던 드레이코로서는, 머글태생이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깨닫는 과정을 신선하게 받아 들였다. 예전 같으면 입학 전에 마법학교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그들이 혐오스러웠을 터인데, 약간이나마 제가 변한 게 느껴졌다.

“릴리는 내게 처음이자, 유일하게 생겼던 진정한 친구였다. 기차를 함께 타고 호그와트로 갔지만…… 그녀는 그리핀도르로, 나는 슬리데린으로 배정 받았다. 나는 그 때, 꽤 많이 슬퍼했던 것 같군…. 그녀의 성정이 나와 정반대라서 좋아했음에도.”

스네이프가 이마 옆으로 손을 괴었다. 드레이코는 덤덤한 까만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제임스 포터와 시리우스 블랙도 물론, 루시우스에게서 들어 알겠지. 그리핀도르의 구제불능 순수혈통들이었으니.”
“블랙은 제 어머니의 사촌이니까 꽤 잘 알고 있어요. 제임스 포터… 그는,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순수혈통을 혐오하고 학교에 말썽을 일으키는 주범이었다고─”
“이 마법사회는 제임스 포터를 그냥 귀여운 정도의 말썽을 일으켰던 학교의 못말리는 악동으로 미화하기 바쁘지. 제 친구들을 몰고 다닐 때마다 으스대며 날 공격하고 괴롭혔던 사실은 쏙 빼고. 집단으로 공격 받았던 나는 그들의 행복한 추억 미화 속에서 불필요한 오물일테니까, 깨끗이 닦아냈겠지.”
“잠시만요, 제임스 포터가? 교수님을? 그는 해리 포터의 아버지 아닌가요…?”
“드레이코, ‘말포이’인 네가 보기에도 마법세계 영웅의 친아버지가 찌질한 집단 폭력의 수장이었던 게 믿기지 않나 보군.”

스네이프는 빈 웃음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제임스 포터가 제가 만든 주문을 뺏어, 역으로 자신을 공격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스네이프가 가만히 앉아 있었어도, 복도를 그저 지나는 길일 뿐이었어도 상관없었다. 저를 향해 웃으면서 휘두르는 주문들은 저를 골리기 위해 갈수록 악질적으로 변해갔다. 저주 주문을 만들 때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마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은 떨어질 수 없는 연처럼 자신을 따라 붙었다. 자신이 먼저 폭력을 휘두르는 강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이 연쇄를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힘을 원했고, 릴리는 그런 스네이프를 끊어 내었다.

“……하루는 제임스 포터의 괴롭힘에 머릿속이 폭발해, 릴리에게 실언을 했다. 릴리를 잡종이라고 불렀다.”
“설마…….”

드레이코는 믿을 수 없어 눈을 부릅 떴다. 제가 입버릇처럼 머글태생들을 잡종이라고 불러댄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스네이프가 자신의 오랜 친구, 그것도 짝사랑하는 여자애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을 만큼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는 것이……. 드레이코는 정신적으로 몰린 상황, 그것이 막다른 한계를 어떻게 이끌어내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울보 머틀의 화장실 속 울보 드레이코는, 그걸 너무도 잘 알았다.

“사과하려고 계속 그리핀도르 기숙사 앞에서 릴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녀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난 적 없지.”

드레이코는 아랫입술을 짓씹고 셔츠의 밑단을 손톱으로 뜯었다. 실수 한 번에,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파도 벽이 된다. 드레이코는 왼팔의 흐릿해진 표식을 떠올렸다. 무의식적으로라도 왼팔을 붙잡지 않기 위해 드레이코는 부단히 노력했다.

“교수님…… 힘드시다면 이야기를 그만,”
“내가 직접 누군가에게 과거를 들려주는 건 자네가 처음인데, 드레이코? 포터도 기억을 봐서 아는 것일 뿐 내 입으로 친절히 설명한 적 없다. 그 영광을 기꺼이 걷어 차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스네이프는 조소에 가깝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드레이코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제 방이 있는 곳에 제 전용 개인 응접실이 있습니다. 정말 괜찮으시다면, 거기에서 더 들려주세요.”


집요정이 과일, 비스킷, 카나페, 치즈가 가득 든 그릇을 들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스네이프의 잔에 와인을 반 정도 붓고, 드레이코는 제 잔에도 조금 따랐다. 몸에 약물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금주가 나았지만, 드레이코는 무거운 주제를 들으며 술 생각이 간절했다.

“어디까지 얘기 했지?”
“그 분을 다시 만난 적 없다는 부분까지 하셨습니다, 교수님.”

교과서 페이지를 설명하듯 드레이코가 대답했다. 스네이프는 와인을 꿀꺽 넘기며 무표정을 유지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불쾌하고 토 나오는 영역이군. 뭐, 여태까지도 충분히 그랬나? 아무튼……. 그 제임스 놈이 릴리와 결혼했다. 나는 데스 이터로 지내는 동안에 그들은 불사조의 기사단이 됐고 어둠의 마왕과 대적하는 사이가 되었지. 그런 상황에 릴리가 그토록 무모한 집단에 들어간 건 나를 항상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릴리는 머글태생이었으니까, 언제라도 표적이 될 것 같아서 충분히 두려웠지. 그래도 그녀는 그 상황에 무사히 아이를 낳았고…… 그게 해리 포터다.”

스네이프는 제 반려의 탄생을 말 하면서 최대한 건조한 톤을 유지하려 애썼다. 입 안이 말라 와인의 남은 양을 한 번에 다 들이켰다. 드레이코는 잔이 비어질 적마다 와인을 다시 채워 주었다.

“포터는 예언…… 그것 때문에 마왕이 직접 나서 죽이려고 했지.”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마침내 떨리기 시작했다. 드레이코는 예언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소스라쳤다. 그 때문에 자신이 덤블도어 살해라는 말도 안 되는 명을 볼드모트에게 부여 받고, 왼팔에는 혐오스런 표식을 달았다. 물론,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들떠있었던 어리석고 어린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드레이코 말포이는 깊게 참회했다.

“루시우스도 몰랐을 거다. 그 예언을 처음 듣고 어둠의 마왕에게 전달한 건 나였다, 드레이코.”
“……?!”

예언……. 해리 포터의 이마에 번개무늬 흉터가 생기게 된 이유, 볼드모트가 자신의 숙적을 스스로 만들게 된 이유, 릴리 포터가 살해 된 이유. 드레이코는 번개를 맞은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스네이프가 이 사실을 받아 들여야 했을 때 감당했어야 할 격통과 후회,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자신이 명예와 영광의 수단을 찾아 주인께 달려가 바친 예언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인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스네이프는 잔을 쥔 채로 끝내 고개를 숙였다. 드레이코는 스승의 눈물을 못 본 체했다. 저까지 목구멍이 먹먹해왔다. 동화적인 헌신적 사랑 이야기 뒤에는, 한 사람의 끔찍한 나날들이 펼쳐져 있었다. 드레이코는 와인을 들이키며 쓴 맛을 삼켰다.

“덤블도어를 찾았다. 그는 나에게 포터가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다. 릴리가 죽었는데 그 핏덩이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 싶었지……. 정말로 나는 그 증오스런 존재에 어떤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릴리가 목숨 바쳐 지킨 존재를 죽게 놔둘 수 없어서, 살아 있었다.”

여기까지가 마법세계가 감동적이라고 생각하는 헌신적 사랑 이야기의 중반부였다. 드레이코는 구역감을 느끼면서 소파에 등을 기대 파묻혔다.

“내가 내기니에 물려 죽기 직전에 포터에게 기억을 넘긴 것은 다 알테지.”
“네, 교수님.”
“포터는 다음 순간, 미래에서 와서 나를 살렸다. 그리고 1년, 같이 숨어 살았다.”
“기사로 접했습니다. 그럼 같이 사는 동안 서로, 뭐랄까……. 오해? 아니지, 응어리? 그런 것들을 풀고…… 음, 포터에 대한 감정도 달라지신 건가요?”

스네이프의 과거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릴리의 아들이었던 해리 포터와 기억을 나눈 채 살아갔다면 확실히 전과는 달라졌을 것 같았다. 포터 놈은, 전쟁 이후에 스네이프 교수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걸 확연히 드러냈다. 전 데스 이터이자 이중 첩자 스네이프 교수의 법정 재판에서, 해리의 열띤 변호는 스네이프의 헌신적 사랑 이야기까지 마법세계에 퍼뜨리며 열성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스네이프를 전쟁영웅으로 인정시켰다.

“포터가 나를 살렸을 때, 어떤 얼굴을 한 줄 아나?”
“굳이 제가 그 놈 얼굴까지 떠올려야 합니까? 교수님.”

드레이코가 장난스럽게 툴툴거렸다. 스네이프는 와인을 꽤 마셔서 붉어진 얼굴로 작게 키득거렸다.

“그런 포터의 표정은 처음 봤어. 나를 보는데 다정하게 웃고…….”

드레이코는 턱을 괸 채 물끄러미 제 스승을 바라보았다. 릴리가 주제일 때와는 딴판이었다. 술기운일테지만 살짝 웃는 얼굴이 솔직히 보기 좋아 보였다. 교수가 해리 포터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게, 진정으로 가슴에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포터랑 사이가 안 좋나요? 오늘은 왜 그런 슬픈 얼굴로 절 찾으신 건지 모르겠어요, 교수님. 이런 안 하던 얘기까지 저에게 다 털어 놓으시고.”

살짝 웃던 스네이프가 그 말에 미묘히 입매를 내렸다. 그리고 연거푸 와인을 두 잔 부어 연달아 원샷을 했다. 저걸 저렇게 마시면 안될 텐데. 드레이코는 집에 숙취 물약이 있던가를 떠올렸다. 말포이는 귀족 가문으로, 거할 정도로 마시는 습관이 없어서 자신이 지금 직접 만들지 않으면, 약물창고에도 없을 듯 했다. 드레이코는 고개가 아래로 조금 꺾여 흐느적거리는 교수의 긴 흑발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포터가, 나에게, 바라는 게 있어…….”

교수의 느릿느릿해진 목소리가 그래도 분명하게 문장을 말했다. 드레이코는 과연 그게 뭘까 머릿속으로 추측해 보았다.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가진 제 교수가 해내기에도 힘든 일인가? 그런데 그 정도로 힘들다면, 포터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열 오르는 이마를 짚으며 나른하게 소파에 기울어졌다. 벨벳의 소파는 스네이프가 움직여 닿이는 대로 결을 드러냈다. 드레이코는 지팡이를 들어 교수의 잔과 와인병을 치워 버렸다. 이미 술에 먹힌 듯한 스네이프에, 진작 치웠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드레이코는 손을 겹쳐 잡고 제 턱밑에 두었다.

“그게 뭔데요, 교수님?”
“……신.”
“신?”

신을 바란다는 게…… 무슨 말이지? 드레이코는 대체 뭔 의미인지 몰라 머릿속이 알쏭달쏭했다.

“내가…… 포터의 가족을 잃게 했, 으니까 난 해내야…… 해.”

스네이프는 점점 더 취하는 것 같아 보였다. 집요정을 시켜 숙취 물약을 사오라고 할까? 아, 시간이 늦어 열려 있는 판매상이 없을 것이었다. 드레이코가 생각에 잠긴 사이, 취기에 붉어진 스네이프는 까만 눈을 멍하니 깜박, 깜박거렸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도 스네이프 교수인데, 술 주정이 아주 고약하진 않을지도. 지금도 저렇게 눈만 깜박이고 얌전히 계시는…….

“포터……?”

아니요, 교수님. 걔랑 저는 머리 색깔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드레이코는 떨떠름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스네이프는 초점이 잘 안 맞는 사람처럼 연거푸 눈을 찌푸리고, 손으로 비벼댔다. 그 정도 했으면 저를 해리 포터로 착각하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드레이코는 아무래도 큰 걸 바란 듯 했다.

스네이프가 나른히 풀린 상체를 억지로 바로 하려 애썼다. 드레이코는 그냥 교수에게 수면 물약을 먹일까 생각했다. 음, 몇 분 후면 잠에 드실지도 모르니 잠깐 상대하고 있다보면, 까지 생각할 찰나.

“포터, 날…… 이제, 진짜로, 만지기 싫나……?”

아……. 드레이코는 마른세수를 세 번 거칠게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과 해리 포터의 밤생활 같은 거 궁금해본 적도 없다고요, 빌어먹을, 살라자르 슬리데린이시여…….

스네이프의 몸이 앞으로 기우뚱 기울었다. 교수가 제가 앉은 쪽으로 움직이려는 것 같아서, 드레이코는 등받이가 있는 1인 소파에 앉아 있다는 것도 까먹고 몸을 뒤로 뺐다. 막다른 곳에 등이 닿자 드레이코는 한숨이 나왔다. 스네이프는 양 손으로 소파의 선단을 짚었다. 뜨거운 숨을 흘리니 제가 풍긴 술냄새에 더 취하는 것 같았다. 앞이 온통 흐릿해서 분간이 가지 않았다. 누군가 제 앞에 있긴 한데, 제 앞에 있을 사람은 해리 포터뿐이었으니까, 당연히 해리 포터려니,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포터……. 나는… 너한테 안기고 싶…….”
“교수님, 잠시만요. 저는 포터가 아니라-”
“이, 제 날 이름으로도 안, 부르는…. 교수라고 부르는 건, 가? 난 이제, 포터 너한테, 아무 것도 아닌가…?”

스네이프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드레이코는 멍하니 스네이프가 붉어진 눈가를 짓무르며 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 교수님은 저렇게 우시는구나. 생각 외로…… 굉장히…….

“그게 아니라, 저는 포터가 아니고 드레이ㅋ……!”

스네이프가 일어났다. 드레이코는 숨도 멈춘 채 교수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스네이프는 드레이코가 앉은 소파의 팔걸이에 양 손을 얹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흘러내리는 까만 머리카락이 제 백금발의 정수리로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 거리면 제가 포터가 아님을 알아야 하는 게 아닌지. 드레이코는 그러나 지팡이를 쥐고 교수를 밀어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네이프가 해리에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긴장감도 약물 실험만큼이나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의 술냄새에 저도 취했나 생각했다.

“하고 싶어, 해리….”

헉……. 드레이코는 숨을 멈췄다. 스네이프가 무릎을 들어 제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안돼, 드레이코 말포이! 멈춰! 제발, 제발. 서면 안돼, 서지 마, 서지 말라고……. 지체할 틈이 없었다. 드레이코는 지팡이를 급하게 쥐고, 교수에게 시전할 적당한 주문을 찾아 머릿 속 모터를 팽팽 돌렸다.

“임신시켜줘, 해리, 응……?”

드레이코는 입을 떡 벌리고 교수의 얼굴을 넋을 보고 보았다. 주문을 생각하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교수는…… 그러니까…… 너무 야했다. 이대로 스네이프가 저를 포터로 착각하게 두고, 안고 싶어질 만큼 드레이코는 강한 욕구가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이성이 드레이코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치며 뜯어 말렸다. 술에 취한 남의 애인을 데리고, 게다가 지금 네 은사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드레이코 말포이!

“모빌리코르푸스!”

스네이프의 몸이 원래 앉아있던 카우치로 옮겨졌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두고, 아씨오 수면 물약까지 외쳤다. 수색꾼이었던 드레이코답게, 날아온 수면 물약을 잡아채서 바로 스네이프의 입에 먹였다. 스네이프는 금세 소리도 내지 않고 잠들었다. 드레이코는 방금 전 경주라도 끝마친 것처럼 크게 가슴을 들썩이며 이마를 훔쳤다.


해리는 암녹색 벨벳 카우치에 앉아서, 스네이프의 머리를 제 허벅지에 뉘인 채 드레이코의 말을 들었다. 세베루스가 자기 과거 같은 걸 얘기하다니. 말포이 저 자식한테 왜? 그리고 심기가 불편한 걸 감추지 않는 해리만큼이나, 드레이코도 짜증스럽게 팔짱을 끼고 대치했다. 제 집에서 저보다 더 당당하게, 교수까지 꿰차 앉아있는 해리의 모습에 절로 이마에 힘줄이 서는 것 같았다.

“그래…… 약물 개발중이라고? 내 세브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눈에 보이는군, 말포이. 분수에 넘치는 행동이 아닐까, 재고도 해볼 줄 알아야 할텐데.”
“나에게 먼저 마법약에 소질이 있다고, 적성을 알아봐주신 건 스네이프 교수님이야, 포터. 교수님의 교과서를 훔쳐야만 수재 소리를 듣는 너랑은 난 차원이 다르거든…….”

으스대며 눈썹을 꿈틀이는 드레이코에 해리가 으득, 이를 갈았다. 저 자식이 혼혈왕자 교과서까지 알고 있다니. 뭘 얼마나 떠들어댄건지 스네이프를 깨워 화를 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뭐, 성공하길 빈다. 저주 주문에 듣는 약이 생기면 좋으니까.”

드레이코는 하, 기막힌 웃음을 흘리며 해리를 노려보았다. 진짜 저 새끼를 왜 좋아하는지 교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드레이코는 왼쪽 가슴 부근이 욱신거렸지만, 너무 열 받아서 그런거라고 넘겼다.

“포터, 너야말로 네 분수에 맞는 애인을 사귀지 그러냐?”
“……뭐라고?”

들짐승 같은 눈빛이었다. 안광이 비치는 녹색눈의 음험함에 순간 드레이코의 목 뒤가 오싹해졌다. 그러나 볼드모트의 앞에서도 있었는데 또래의 남자 앞에서 기가 죽고 싶지는 않았다. 드레이코는 부러 더 상체를 세우며, 입꼬리도 비뚤게 끌어 올렸다.

“교수님이 취해서 하시는 얘길 들었는데 말야…….”
“……?”
“요즘 네가 안 만져준다고, 네가 이제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 그럴거면 교수님을 놔주지 그래, 포터?”
“무슨…… 미친 소리야, 너?”

해리가 미간을 찡그리며 윽박질렀다. 안 만져준다고 애정이 식었다고 여겨? 누가 접촉을 금지했는데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기가 막혀서 웃음도 안 나왔다.

움찔, 그 순간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작은 움직임에 해리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스네이프의 미간이 살짝 좁혀 들었다. 드레이코도 해리의 반응으로 스네이프가 깨려고 하는 걸 알았다. 드레이코는 잠들기 전에 교수가 제게 보였던 행동을 떠올렸다.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드레이코는 교수의 찌푸린 미간에 시선을 두었다.

“해리……?”

스네이프가 멍하게 해리를 올려다 봤다. 해리는 작은 한숨을 내뱉고, 최대한의 다정으로 그를 내려다 보며 웃었다.

“걱정시키고 그래요, 왜.”
“해리, 네가, 싫어할까봐…. 드레이코, 니까….”
“그것보다는 말없이 날 두고 사라지는 게 더 싫거든요?”

어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실까. 스네이프의 눈 밑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자 푸스스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취해서 솔직한 세베루스는 이런 느낌이구나. 귀엽네, 평소보다 더.

“그것보다, 내가 요즘 안 만져준다고 말포이한테 다 일러바쳤다면서요. 그러면서 당신이 먼저 만지지 말라 했다는 소린 안 하고.”
“내가 그랬어도오…. 해리 네가 너무, 나를 안 만져줘서… 난, 너 만지고, 싶었는데…….”

아, 미치겠네 진짜. 해리는 참지 못하고 스네이프를 안아 일으켜 키스했다. 앞에서 드레이코 말포이의 눈이 썩어가든 말든, 제 알 바는 아니었다.

스네이프가 으응, 작게 웃으며 해리의 어깨를 팔로 안았다. 해리는 키스하면서 오른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쓸어 올렸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접촉이었다. 흥분이 마구 끓어 올랐다. 스네이프가 노골적으로 하반신을 붙여오는 게 느껴졌다. 해리는 입을 맞추면서도, 자꾸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아, 귀여워. 너무 좋아 세브…….

“우리 집을 삼류호텔 취급하지 말아줄래, 포터?”

신나게 혀를 섞는 중에 미간이 확 찡그려졌다. 여전히 입을 맞추면서,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 너머로 고개를 기울여 드레이코를 마주했다. 다리를 꼰 채, 소파 팔걸이에 팔꿈치를 얹고 머리를 괸 드레이코가 무표정으로 저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리도 말포이 놈이 관전 중에 제 연인을 끝까지 안을 생각은 없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와 대화를 하기 위해, 스네이프의 얼굴을 잠시 떨어뜨렸다. 그런데 스네이프가 다급히 다시 입을 맞춰 와, 당황하고 말았다.

“싫어…. 나 싫어진거야, 해리? 왜 키스 안 해줘?”
“아니- 세베루스, 잠시만…. 말포이랑 대화 좀, 잠깐, 아니, 안 싫어요….”
“빨리이…. 나 하고 싶어. 해리, 여보… 나 임신시켜줘…….”
“…….”

스네이프의 등을 안은 해리의 손이, 뚝, 소리가 날듯 굳어 멈췄다. 드레이코는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 데스 이터에게 가해지는 신종 고문이 따로 없었다. 드레이코는 돌처럼 굳은 해리와 눈을 마주쳤다. 표정 없는 드레이코가 엄지로 뒤쪽의 문을 가리켰다. 손님방이니, 자고 가. 해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레이코 말포이가 마음에 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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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조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 상자를 뜯었다. 선반에 착착 올라가는 개구리 초콜릿들을 보다가 약간 출출해 하나를 집었다. 입에 초콜릿을 물고 카드를 꺼내는 순간, 짜증스럽게 저를 노려 보고 있는 스네이프가 보였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카드는 볼 때마다 이 표정밖에 짓지를 않았다. 해리를 볼 땐 좀 다를까? 오독오독 초콜릿을 씹으며 조지가 카드의 뒷면이 보이게 돌렸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최연소 포션 마스터이자 전 호그와트 교장, 전쟁 영웅. 1998년 호그와트 전투에서 해리 포터에게 전투의 승리를 이끌 기억을 건네주었다. 해리 포터의 어머니 릴리 포터를 사랑하여, 릴리 포터 사후 해리 포터의 생명을 지키는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몇 가지 마법주문을 발명 했고 취미는 독서였다.]

스네이프가 이 카드의 존재를 아직까지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이 설명들을 읽고 개구리 초콜릿 회사에 불을 지르진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딸랑, 문에 달린 종에서 맑은 소리가 들렸다. 아직 오픈 전이라고 걸어 놨는데, 어떤 급한 어린 손님이신가? 조지는 바닥부터 시선을 두다가, 성인 남성의 두 다리가 보여 당황했다. 그대로 시선을 쭉 올린 끝에, 조지는 반가워하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삐딱하게 서서 어수선한 가게 내부를 둘러 보았다. 오픈 전이어서 여기저기 뜯지 않은 상자가 널려 있었고, 조명도 어두웠다. 스네이프는 대충 빈 선반에 제 품에서 꺼낸 상자를 올려 놓았다. 축소 마법을 건 상자에 복원 마법을 걸자, 상자는 원래의 크기로 커졌다. 조지가 다가와 얼른 뜯어보았다. 상자에는 크리스탈 약병들에 넣어진 사랑의 묘약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브라보! 오늘부터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 최고 인기 아이템이 될 물건이 드디어 들어왔네요.”
“돈이나 줘.”

시큰둥하게 제 물약들에서 시선을 뗀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교수였던 스네이프가 사채업자처럼 돈을 내놓으라 하는 게 웃겨서 조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스네이프는 멀린의 턱수염이라도 씹은 것처럼 표정을 구겼다.

“저번 물약 값보다 세 배를 넣었어요.”
“대체 값을 얼마나 뻥튀기 해서 팔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삿속이 혐오스럽군, 조지 위즐리.”
“최연소 포션 마스터에 걸맞는 약값을 받을 거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비싸도 제일 잘 나갈 거예요.”

정말 한심한 상품에, 한심한 가게 사장이었다. 스네이프는 갈레온이 가득 든 주머니를 받고 로브의 속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은 꽤나 묵직해서 로브의 한 쪽이 늘어져 내려왔다.

“받은 돈으로 뭐 사고 싶은 게 있으세요? 돈은 안 밝히실 것 같은 분이.”
“그냥… 포터의 생일이 다가오기도 하고.”
“아하, 해리 생일 선물.”

조지가 끄덕이며 지팡이를 휘둘러 병마다 라벨을 붙였다. ‘~최연소 포션 마스터~ ♡세베루스 스네이프 특제!! 아모텐시아♡’가 적힌 핑크와 보라색 라벨은 역겨움을 동반했다. 심지어 제 이름 옆에 하트가 뾰로롱 소리를 낼 듯이 생성 되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지만 조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돈을 받고 제 품을 떠난 물건이니, 뭐라 해봤자 결국 소용 없을 것이었다. 스네이프가 고개를 저었다. 가겠다며 등을 돌렸다.

“해리는 요새 뭐해요?”

문을 열려고 팔을 뻗던 스네이프가 잠시 멈춰, 조지를 돌아보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준비.”
“오러 그만두고 공부 삼매경이라니, 해리 걔도 어지간하다니까요. 난 이미 머리가 굳었는데.”
“학생일 땐 안 굳어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조지 위즐리.”
“지금보다는 덜 굳은 코딱지처럼 몰랑했었죠.”

질색한 스네이프가 로브를 털며 문을 열었다. 조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는 해리랑 같이 오세요! 스네이프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맞은편의 플러리쉬 앤 블러트에 들렀다. 서점에 간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추천할 만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관련 도서를 찾아 해리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도 없어, 스네이프는 여유롭게 서점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제가 읽을 ‘새롭게 발견 된 약초와 기존 약초의 새로운 이점들’이라는 굉장히 흥미로운 신간까지 구매하고, 스네이프는 모처럼 기분 좋게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그린고트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른 제 금고는 폴리주스를 마신 해리가 야금야금 꺼내가서 꽤 비어 있었다. 일은 안 하고, 계속 머글 돈으로 환전해서 금고를 축냈더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쓸 만큼을 빼두고 금고에 갈레온을 쌓고 나왔다. 그리고 그린고트를 나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스네이프는 은행 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백금발에 회색의 눈동자, 이전보다 약간 더 키가 크고, 살이 조금 빠진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이른 시각이라 다니는 사람도 몇 없는 다이애건 앨리였다. 드레이코는 일부러 조용한 시간을 노린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이 시간에 방문한 것이 무색하게, 아는 얼굴을 마주치자 드레이코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나 분명히 스네이프를 보는 눈에는 반가움이 살며시 어려 있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잠깐 얘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드레이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포이 저택은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공작새가 뒤뚱거리며 고아한 걸음을 걷고 있는 정원은 여름이 다가와 푸릇푸릇 했다. 볼드모트와 데스 이터들의 집합소로 전락했던 저택은 이제 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아름답게 빛이 났다. 스네이프는 응접실에서 집요정이 내주는 홍차를 받아 마셨다. 루시우스와 나르시사는 프랑스에 사업차 가서 장기간 여행도 즐기고 돌아온다고 했다. 드레이코는 전쟁 이후 거의 집에만 박혀 살았다고 쓰게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살아 돌아오셨다는 기사를 봤을 땐 놀랐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뭐, 연달아 나온 포터와의 기사는…… 정말 깜짝 놀랐지만요.”

어색하게 웃은 드레이코가 멋쩍은지 뺨을 긁었다. 스네이프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얹고, 다리를 꼰 자세로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교수님. 포터랑…… 음, 만나신다는 거요.”

어쩌다 그런 제정신이 아닌 짓을 하게 되신 거냐고, 그렇게 묻는 듯한 드레이코의 눈은 차라리 측은함에 가까웠다. 스네이프는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려 웃고, 차를 홀짝였다. 확실히 비싼 차는 맛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톤에 드레이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둘이 어떻게 연인이라는 건지, 아직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말이었다. 스네이프는 캐묻는다고 제대로 대답할 교수가 아니었다.

“일은 하지 않고 있나?”
“저야 뭐…… 말포이 가의 부동산이 전부 제 것이 될 테니까. 지금도 몇 군데는 증여받아서 먹고 살 걱정도 없고, 제가 데스 이터였으니까…… 그리고 막대한 보석금으로 풀려 났으니까……. 사회적인 시선도 안 좋고 해서요.”

드레이코의 경우엔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제 아버지가 데스 이터였고, 그 아버지인 루시우스가 예언을 가져오는 것에 처참히 실패한 보복을 볼드모트에게 당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볼드모트는 어둠의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섯 살을 꾀어내었다. 제 발로 볼드모트의 밑에 들어간 열여덟 살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와 드레이코 말포이는 달랐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그를 어리석게 여기면서도, 약간은 안타까워 했다.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소년이었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낼 거라면 학교는 왜 나왔지?”
“교수님…… 그건,”
“난 네가 마법약에 소질이 있는 걸 안다, 드레이코.”
“……! 교수님….”
“그 네빌 롱바텀조차 자신의 적성을 찾아 정진하고 있는데, 슬리데린의 수재였던 놈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니, 오랜 슬리데린의 사감으로서 기분이 나쁘군. 넌 대체 무엇때문에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경쟁한 거냐? 그녀가 단지 머글태생인데도 너보다 공부를 잘하는 게 열 받았었나? 우스운 학습동기군, 드레이코. 아, 퀴디치도 정말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팀에 빗자루도 전부 사서 나눌 정도로 애정 있었지 않나? 아니면 단지 포터랑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어서 퀴디치에서도 경쟁했었던 건가?”

드레이코는 주먹을 쥔 채 파르르 몸을 떨었다. 신랄한 비난은 오히려, 드레이코를 알아주고 있던 은사의 직선의 시선을 알게 했다.

드레이코는 O.W.L에서 마법약 O(최고점수;특출함)를 받았다. 슬러그혼은 스네이프와 달리 N.E.W.T를 준비하는 수업에 O.W.L에서 E(기대이상)를 받은 학생도 받아주었다. 때문에 해리와 론 같은 덜떨어진 자식들도 마법약 수업에 들어와 제 뛰어난 재능이 묻혔지만, 어쨌든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슬러그혼의 수업에선 사실 형편없는 모습만 보이기도 했었다. 6학년 당시의 자신은 덤블도어를 살해하라는 어둠의 주인의 명령에 정신도, 육체도 미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만났지만, 저와 대화를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로선 정말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대화한 것 같습니다…….”

드레이코의 회색 눈이 빠르게 깜박깜박거렸다. 기본적인 성정이 원래 나약한 녀석이었다. 그러나 우는 모습까지 티내고 싶진 않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못 본 척, 무심한 눈으로 일어섰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앞으로도 연락하고 싶다면 편지를 보내라, 드레이코.”

자신의 슬리데린의 애제자에게 기꺼이 그 정도는 허락할 수 있는 스네이프였다. 드레이코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 전보다 어른스러워진 얼굴로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포터가 늦어진다고 걱정하고 있을테니까.”

아, 그 말을 꼭, 굳이 덧붙이셔야 했을까요? 드레이코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다. 스네이프는 그 얼굴을 만족스럽게 비웃으며 말포이 저택의 벽난로에 플루를 뿌렸다.


해리는 제 손목시계를 벌써 여러 번 들여다 봤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이른 시각, 조지가 가게를 열기 전에 빠르게 돌아올 거라던 스네이프가 두 시간 가까이 증발 상태였다. 서점에서 시간을 꽤 오래 보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혹여나 다이애건 앨리에서 어떤 시정잡배에 걸려 시비를 털리고 있을까 걱정이었다. 오러 일을 했어서 드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전 데스 이터였던 그의 경력이 걸렸다. 게다가 저라는 유명인과 만나고 있어서 얼굴도 꽤 알려져 있었다. 스네이프가 한 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강력한 마법사라는 걸 알면서도 어린 신랑은 제 사랑스런 부인이 걱정이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해리는 초조하게 또 다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거실 벽난로에서 부시럭대는 소리에 해리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세베루스! 무심한 표정으로 저를 돌아보는 사람은 역시 제 연인이 맞았다. 스네이프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 분리불안 똥강아지가 저 없다고 계속 좌불안석이었던 게 눈에 보였다. 스네이프는 다가온 해리의 품에 안겨서 등을 살짝 토닥였다.

“늦었잖아요…….”

칭얼거리는 청년의 목소리에 스네이프는 한숨을 뱉었다. 고작 두 시간은 지났던가?

“그린고트에 들렸을 때 아는 얼굴을 만나서. 잠깐 대화했다.”
“네? 누구요?”

해리는 경계하는 사냥개처럼 바짝 긴장했다. 좁혀진 미간과 짙은 눈썹을 보다가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었다. 해리의 질투심을 뼈저리게 알고 있어서, 스네이프는 굳이 드레이코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때의 추궁과 경계를 감당하기도 싫었다.

“드레이코.”
“드레이코 말포이요……?”

전혀 뜻밖의 이름에 해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 아인 그냥 내 제자라고, 포터. 그러나 그 소리가 해리에게 씨알이나 먹힐지 모르겠다. 그저 제자를 만나고 대화했다는 대답에 이렇게 얼굴이 굳으면서, 저를 호그와트 교수로 보낼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인지. 물론, 드레이코와 해리의 관계는 저와 제임스의 관계와 비슷했다. 그러니 그냥 그 이름 자체가 불쾌한 걸수도 있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술에 입맞췄다. 굳어서 거의 노려보는 듯한 인상이던 해리의 눈이 동그랗게 풀렸다. 스네이프는 그 눈을 지켜보면서, 해리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금세 정신을 차린 해리가 집중해서 스네이프의 입 안을 혀로 훑었다. 으응, 스네이프의 앓는 소리에 해리가 키스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쪽, 소릴 내고 떨어진 해리는 어느새 눈매가 풀려 있었다.

“무슨 얘길 했는데요? 말포이랑.”
“그냥,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었지. 내가 가르친 제자 놈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낸다니 한심스러워서 조언도 해주고.”
“걘 아무 것도 안 해도 돈이 썩어나잖아요.”
“지금 네 재산이 말포이 가와 비등한 걸로 아는데, 포터?”

그 포터 가문에 그 블랙 가문의 재산이 전부 해리 포터의 것이었는데, 뻔뻔하긴. 물론 해리는 아이일 적 오랜 시간, 동전 몇 닢도 가져보기 힘들었던 시기를 길게 보내서 제 재산을 낯설어 했다.

“아……. 음, 뭐…. 부자 남편 얻어서 좋으시겠네요, 부인.”

해리는 멋쩍어서 아무 소리나 지껄였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혼하면 나도 포터가 되는 거니 네 재산은 다 내 것이지. 더 착실히 부를 쌓아놔라, 포터.”

‘트로피 남편’ 해리 포터 타이틀에 대한 생각은, 슬리데린 기질의 스네이프에게는 진심이었다. 해리는 기가 막힌 웃음을 흘리다가 스네이프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네, 세베루스 포터 부인. 그 말에는 스네이프도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쪽, 하고 이마 옆에 내려앉는 입술에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네이프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았다. 벌써 6월 중순이 넘어갔다. 그동안 암사슴의 생식기관─ 자궁, 난소, 질, 젖샘 같은 걸 제 신체에 적용하려는 마법실험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역시 허무맹랑한 소리로 보일 만큼 그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렇지만 생명도 없는 물건에 사람의 영혼을 부착시키는 마법도 있는데, 제 몸에 생명을 만드는 마법이 불가능하리란 법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처음 떠올린 생각을 믿기로 했다. 그래서 해리는 요즘 매일같이 제 집을 돌아다니는 암사슴을 바라보는 날들을 보냈다.

“저도 수사슴이 되고 싶어져요.”

카펫 위에 앉은 암사슴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암사슴의 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며 변신 모습을 꽤 오래 지속했다. 그렇다 보니, 사람인 해리와 동물인 스네이프의 소통이 어려운 건 당연했다. 해리는 오러 일 탓에 저도 같이 맥고나걸의 애니마구스 수업을 받지 못한 게 억울했다.

“세브, 계속 그 모습으로 있을 거예요? 나 혼자 떠들게 둘 거냐고요.”
“…….”
“아, 네. ‘암사슴 몸의 이해.’ 중요하죠, 물론. 임신하기 위해서니까.”

알면서도 해리는 다소 빈정거리는 어투로 말했다. 일을 그만 두면, 전보다 더 살 맞대는 일이 늘 줄 알았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스네이프는 긴 시간 암사슴의 모습을 했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와서도 관계까지 가는 건 막아섰다. 발기를 하거나 뒷쪽의 구멍을 쓰면 자꾸 자신의 남성의 신체를 의식하게 된다는 거였다.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지만, 해리는 결국 홀아비처럼 쓸쓸해졌다.

그러니까…… 둘은 지금 섹스를 안 한지 2주가 넘었다.

해리도 할 일은 있었다. 교수 준비를 하느라 구입한 서적과 교과서를 처음부터 훑으면서 정리했고, 학년 별 수준에 따라 분류도 했다. 루핀과의 수업을 떠올리면서 적절한 마법 생물들도 생각해놓고, 그것들을 구할 방법들도 여기저기에 자문을 구했다. 강의에 대한 준비는 생각보다도 더 많이, 해도해도 부족한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22살에 교수가 어찌 되었을까.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 자신이나 해당 과목에 대해선 가장 특출난 자인데도, 해리는 강의 준비가 버겁게 느껴졌다.

22살의 스네이프라. 해리는 책에서 그라인 딜로우를 읽다가 멍하니 또 스네이프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른손으로는 암사슴의 털결을 더듬으면서, 제 첫사랑이 죽은 상황에 교수로서의 일을 준비해야 했던 가여운 청년을 생각했다. 정말 덤블도어는 피도 눈물도 없나. 죽지 못해 살아있는 그에게 저를 지켜야 되니 살아있으라고 협박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을 제 아들에게 붙이려는 건, 혼 낼 때 제대로 화를 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암사슴의 정수리에 뽀뽀 했다.

스네이프는 암사슴의 모습으로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계속 마법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동물로 변하는 감각을 익혔으니, 그 동물의 신체 기관만 따내오는 방법도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간절함이 부족한가? 관계만 금지하고 있을 뿐, 신체적인 접촉─ 스킨쉽은 그대로였다. 사실 스네이프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을 느꼈고 행복했다. 아이에 대한 간절함은 애초 해리가 시작이었다. 스네이프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해리가 원하니까 기꺼이 방법만 찾으면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야, 나도 우리 아이를 갖고 싶다. 암사슴의 모습을 한 스네이프는 눈을 질끈 감고 각오를 되새겼다. 해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그 필연적인 사랑의 관계가 궁금했다. 스네이프도 겪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좋은 부모라는 걸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은 좋은 인생 역시 살아본 적도 없었다. 단지, 해리 포터의 옆에서라면 불가능도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영웅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다정하게 제 삶의 곁으로 이끈 것처럼.

“아, 드디어 돌아왔네요.”
“잠깐, 포터. 내 말을 들어 봐.”

스네이프가 변신을 풀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해리는 포옹을 하려 했으나, 저지하는 스네이프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보았다.

“무슨 일인데요…?”

해리의 맑은 시선에 스네이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으니까.

“신체 접촉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왜…… 이것도 그…… 마법에 도움 될까 싶어서 생각한 건가요? 세베루스.”
“……그래.”
“왜요? 접촉만 하는 건데, 그 정도론 발기도 안 될 것 아니예요.”

억울하다는 투로 해리가 입을 내밀었다. 스네이프는 어쩐지 해리의 눈과 마주칠 수가 없었다. 제 연인을 너무 괴롭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위해 제가 떠올린 나름의 방안이었다.

“포터, 간단한 접촉만으로도, 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임신을 하려는 노력이 덜 간절한 것 같기도 해.”
“덜 간절하다뇨….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걸 제가 다 봤는데…….”

해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 스킨쉽이 아무리 간단해도 만족을 느낀다는 스네이프의 말이 기쁘기도 했고, 이것도 스네이프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제가 좀 힘들면 어떤가, 스네이프는 더한 고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그럴 텐데.

결국 해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은 또 쏜살같이 지나갔다. 모처럼 스네이프가 사람의 모습으로 서재에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그의 뒤로는 벌써 다 팔렸다는 사랑의 묘약 재발주 주문에 새롭게 끓고 있는 솥이 보였다. 아직 7월도 되지 않았는데, 제 묘약이 폭발적인 인기라는 말은 사실인듯 했다. 시험을 끝마친 졸업반 학생들의 주문이 많았다는 조지의 설명을 떠올리다가, 스네이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네이프의 책상 한편에는, 끈에 묶인 편지 뭉치가 놓여 있었다. 드레이코가 여태껏 보낸 편지들이었다. 드레이코는 최근, 신종 마법약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넘쳐나는 자본과 시간이 있었다.

어둠의 저주 마법은 치료하기 힘든 상처들을 남겼다. 드레이코 본인에게도 해리가 날린 섹튬셈프라에 입은 절상이 있었다. 스네이프가 저주의 반대주문을 즉시 읊어 깊게 남지는 않았지만, 저주 주문은 드레이코의 몸에 보이는 흔적을 남겼다. 드레이코는 바로 그 저주 마법에 입은 상처를, 감화시키는 치료약을 개발하겠다는 각오를 제 교수에게 말했다. 개발에 성공하고 상용화가 된다면, 전쟁 중에 저주 주문에 피해 입은 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드레이코 말포이의 이미지 회복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이었다. 물론, 굉장히 쉽지 않은 시도였다. 드레이코는 약재의 조합에 대해 스네이프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했다. 실험대상은 자신의 몸이라는 걸, 스네이프는 드레이코가 한 번 말하지 않았어도 알고 있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와 자신이 편지를 나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간……. 스네이프는 한숨을 쉬었다. 드레이코의 몸에 또 한 번 치료하기 힘든 저주를 날리는 해리가 머리로 너무 쉽게 떠올랐다.

해리는 한 달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실전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해리가 이론까지 섭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간, 동거중인 연인 스네이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암사슴 모습을 했고, 사람일 때도 스킨쉽을 거부하고 있었다. 해리가 넘치는 시간에 할 만한 것이 공부 말고는 없었다. 새벽에 운동을 나가기까지 하고, 스네이프와 달리 해리는 무척이나 생산적인 한 달을 보냈다.

진전이 없는 건 저뿐인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양피지에 드레이코에게 줄 답장을 쓰면서 인상을 굳혔다.

‘나도, 얼른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어서 포터 너랑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그렇게 자주 관계를 갖다가, 섹스를 하지 않는 한 달, 접촉도 금지하는 이 주를 보냈다. 제 남성 생식기관에 최대한 관심을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네이프는 오히려 이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자신은 해리의 신체에 몸이 닿일까 신경을 썼다. 탓에, 정신은 쉽게 피로해졌다. 거리를 둠에 따라, 낯설어지는 해리의 건강한 근육질 육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했고─ 빌어먹을, 세베루스 스네이프. 이 무슨 삼류 여성지에 쓰일 만한 천박한 생각인가.

깃펜을 내려 놓고, 스네이프는 자괴감에 싸여 얼굴을 감싸쥐었다. 어떻게 해야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그것이 가능한 여자들이 부러웠다.

‘…릴리.’

스네이프는 오랜만에 릴리의 생각을 했다. 해리가 가족에 집착하는 이유도, 가족의 사랑 속에서 크지 못해서였다. 제임스 포터는 끔찍하게 혐오스러운 놈이었지만, 릴리랑 제 아들인 해리에게는 잘해줬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부유한 가정에서, 절 사랑해 마지않는 대부 개놈도 있고, 무엇에도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을 해리를 생각했다. 돈도 많고 사랑도 많은, 그 단란한 작은 가족의 행복함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예언을 훔쳐들은 날의 밤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파열 된 유리조각은 해리의 이마로 떨어져 번개무늬의 깊은 흉을 남겼다.

스네이프는 손가락을 더듬어 제 목의 번개 낙인을 만졌다. 탈각까지 다 일어난 상처는 완벽하게 제 목에 자리를 잡았다. 해리가 가족을 잃게 만든 책임은 저에게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해리의 가족을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스네이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세베루스?”

해리가 서재의 문을 열었다. 해리는 책상에 머리를 감싸쥐고 앉은 스네이프를 보고 조용히 물었다. 약 2주 전의 키스 말고는 제대로 된 접촉이 없었다. 손가락만 빨며 바라만 봐야 하는 제 반려가 오늘은 기분까지 안 좋아 보였다. 해리는 씁쓸하게 문가에 서서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가 어깨를 감싸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어려운 일인 거 아니까, 몇 달, 아니 몇 년 걸리더라도…….”
“그동안 포터, 네가 받을 스트레스는?”
“네? ……저요?”

모른척, 대답하지만 해리도 입술을 짓씹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스네이프를 만져보지도 못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이 참아야지, 뭐 어쩌겠는가.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전 괜찮아요. 세브, 힘내요.”

스네이프는 곁눈질로 해리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 난 이렇게 널 못 만지니까 괴로운데, 포터 넌 아니야? 정말 괜찮은 건가? 접촉하지 말자고 한 건 자신이 요구한 일인데도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침울하게 해리와 시선을 피하며 끄덕였다. 평소같으면 어깨라도 토닥여줬을 텐데, 제가 금지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런 마음이 없어서인 건지, 해리는 서재의 문을 닫았다.

스네이프는 울고 싶어졌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여성생식기관의 착상도, 저를 만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해리도, 자신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사실까지도 모두 저를 슬프게 만들었다. 스네이프는 깃펜을 다시 들었다. 드레이코에게 보낼 편지의 밑에 글을 더 이어서 썼다. 만남을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적고, 스네이프는 양피지를 접었다.


“어디 가세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던 해리가 놀라 물었다. 저녁시간이 다 됐는데 외출을 하는 스네이프라니? 얇은 여름용 로브를 걸친 모습은 누가 봐도 외출을 나가려는 모양새였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지 않으면서 약속이 있다고 대답했다. 해리는 미간을 좁히고 스네이프를 보았다.

“저녁시간인데요.”
“먹고 들어올 거니까 알아서 먹어라. 냉동 칸에 얼려둔 것들이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당신이 이 시간에 누굴 만나요?”

해리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스네이프에게는 친구도 없고, 만날만한 사람을 아무리 떠올려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늦지 않게 돌아올테니, 신경 쓰지 말고.”
“세베루스,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지금 누굴 만나러 가는지 말해줘요!”
“……다녀올게.”
“세베루스 스네이프!!”

제 이름을 저렇게 부른다는 건, 당황해서일까 화가 나서일까? 스네이프는 해리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볼 수 없었다는 게 맞았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집에 두고 사라지는 순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순간이동으로 해리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다. 스네이프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해리는 현관에서 철컥 소리가 들리는 걸 부엌에서 멍하니 듣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당연하게도 스네이프의 흔적조차 없었다.


다시 찾은 말포이 저택은 여전히 공허할 정도로 높고 넓었다. 스네이프는 천장의 샹들리에를 올려다 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 큰 대저택에 루시우스, 나르시사, 드레이코 말포이 세 명밖에 살지 않는다는 게 우스울 정도였다. 부를 자랑하는 말포이가 다웠다. 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유약한 제자가 혼자서 지내기엔 적절치 못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말포이 부부는 프랑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들을 혼자 두는 말포이 부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외아들 드레이코를 과대평가 하는 게 분명했다. 전쟁이 끝난지 1년이 지났다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처는 있는 것이었다. 상처를 아는 전 데스 이터 스네이프는 그래서 드레이코를 내버려둘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드레이코.”
“스네이프 교수님! 어서오세요.”

집요정이 의자를 끌어 주어 스네이프는 편하게 식탁에 착석 했다. 매일 이렇게 이 큰 식탁에서 혼자 먹는 건가? 스네이프는 차례로 차려지는 음식들을 내려다 보며 물었다. 이 식탁의 위에서 볼드모트에게 죽어나간 머글태생의 망령들이 보일 것만 같았다.

“그렇죠. 교수님은 포터랑 드시겠지만.”

쿡,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며 드레이코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었다. 드레이코는 프랑스에서 데려왔다는 집요정의 요리 솜씨가 좋다고 설명했다. 스네이프는 충분히 맛있는 식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에서 맴도는 해리 포터만 아니었다면 더 만족하며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포터와 어떻게 만남을 가지게 됐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편지로 주고 받은 대화로 미뤄 봐서, 교수님은 여전히 그대로시던데.”
“자네도 여전하던걸, 드레이코. 그러니 내가 포터에 대해 뭔 얘길 하든, 걸고 넘어질테니 귀찮아.”
“성가신 놈 아닙니까? 어떻게…… 전 교수님을 제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이 마법세계에 내가 그 놈의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다 퍼진 줄 알았는데? 그걸로 포터가 날 전쟁영웅으로 미화시켰으니. 머글태생을 사랑한 나를 말포이 도련님이 제정신으로 여겼다는 게 더 놀랍군.”

드레이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스네이프는 무심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

“저는… 교수님,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말을 정정해줄 필요성도 못 느꼈다. 릴리 사후로 제게 뭘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죽었다 다시 깨어난 것 같은 순간 이후, 해리 포터를 제외하고서는.

“어둠의 마왕이 아니라 덤블도어의 편이었던 것. 이유가 뭐든 그게 옳은 선택이었죠.”
“박쥐 같은 천성은 말포이답구나, 드레이코.”

와인을 넘기며 스네이프가 조용히 말했다. 어느 시대든 저희들의 집안에 유리한 편에 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문다웠다. 드레이코는 제 모욕적인 언사에도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이미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상의를 벗어라, 드레이코.”

드레이코의 칼과 포크를 쥔 손이 멈칫했다.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얼굴은 학창시절 교수의 모습 같았다. 혼내실 건가요? 드레이코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젓고 드레이코를 똑바로 보았다. 드레이코는 그릇 위로 칼과 포크를 내려 놓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질 좋은 실크 블라우스의 단추를 푸는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절상 위로 부풀어 오르거나 짓무른 새 상처들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너는 지금 너를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드레이코. 내가 이전에 말했던 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너를 격려하고자 한 거다.”
“하실 말씀은 그게 다신가요?”
“드레이ㅋ-”
“교수님이야말로 오늘 굉장히 외롭고 슬퍼 보이신다는 걸, 저도 말씀드려야겠어서.”

스네이프는 눈을 부릅 뜨고 드레이코를 노려 보았다. 어렸던 제자들이, 포터든 드레이코든, 이렇게 자신을 간파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드모트도 속였던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어디로 갔는지. 어쩌면, 내기니의 독니에 찔린 순간 그 스네이프는 죽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스네이프는 눈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시선을 틀어버렸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가 만나자는 편지를 보낼 때부터, 저 모습을 예감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 노잼..
다음편은 (제 기준) 진짜 재밋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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