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법으로 금방 하는데, 뭘 또….”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실패하면 약 먹고 다시 머리 기르면 되니까!”
“그 약을 네가 만드나? 내가 만들잖아.”
“아, 세베루스! 가만히 좀!”
해리가 가위와 빗을 든 채로 소리를 질렀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앞의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건방을 떨어도 된다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스네이프는 천을 목 주변에 두른 채 그냥 가만히 팔짱을 꼈다. 해리의 손길에 맡겨지는 것에 익숙해진 탓일 터였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해리의 말대로 마법이면 다시 복구시킬 수도 있었다. 잠자코 하고 싶다는 대로 놔두는 게 시끄럽지도 않고 낫겠지.
아쿠아멘티. 해리가 중얼거리자 지팡이에서 물이 칙칙 나왔다. 얇고 까만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어, 빗에 정갈하게 빗겨졌다. 이전에 몇 번, 씻은 후에 해리가 머리를 빗어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았다. 스네이프는 뒤로는 눈이 달려있지 않아 볼 수 없었지만, 진지한 눈을 하고 있을 해리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전이랑 같은 길이로 자르는 게 좋겠죠?”
“그러던지.”
“이거 세베루스 머리라고요? 왜 이렇게 시큰둥해요.”
물론, 해리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미는 것도 보이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았다.
“알아서 해라. 망치면 죽여 버릴 테니.”
아, 예예…. 해리가 대답하며, 스네이프의 뒤통수에서 그를 장난스럽게 흘겨보았다. 이내 해리가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한 줌 쥐었다.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와 함께 까만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얀 커튼을 걷은 창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봄이라 그런지 햇살이 유독 달았다. 스네이프는 그대로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해리가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손길과 햇빛에 잠이 잘 왔다.
집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빛이 닿는 곳곳마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열어놓은 창밖으로 붉은 것이 기웃거렸다. 붉은 것은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한동안 감상하고 있었다. 퍽스, 이리와. 스네이프가 깰까봐 해리가 조용히 불렀다. 해리의 목소리에 날개를 한 번 퍼덕인 붉은 새는, 부드럽게 날아와 천장에 걸린 새장으로 돌아갔다. 다행인지, 아니면 당연한 것인지, 퍽스는 5월 2일, 내일이 오기 전에 돌아왔다.
“이번 사냥은 꽤 오래 걸렸네, 퍽스. 안 돌아올까 봐 맘 졸였잖아.”
팍스가 대답하듯 뭐라고 꽥꽥거렸다. 해리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긴, 네가 없었으면 지금 같은 날이 오지 않았겠지. 마음을 졸였다는 건 사실 거짓말일지 몰랐다.
작년 여름의 만남 이후로, 해리는 덤블도어의 새였던 퍽스를 기르게 되었다. 처음, 퍽스가 호그와트를 떠났을 때는 다시는 못 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되고, 기르기까지 하다니. 정말 해리로선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하긴, 내일 이후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제 인생에 일어날 거라곤 생각도 못한 일들뿐이었다. 그러니, 퍽스를 기르게 된 것 정돈 놀라운 축에 끼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 때, 세베루스가 뒤척이며 부스스 눈을 떴다. 이내 스네이프는 정면의 전신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과 마주쳤다. 전신거울은 책 더미를 잠시 마법으로 변신시킨 것이어서, 유리에 글귀 몇 개가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언뜻 봐서는 펠릭스 펠리시스를 만드는 법인 것 같았다.)
“다 자른 건가…?”
살짝 잠긴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린 해리가, 다듬는다며 황급히 몇 번 더 가위질을 했다. 스네이프는 거울을 통해 해리를 보다가, 새장에 돌아와 있는 퍽스를 발견했다.
“맘에 들어요?”
“…예전이랑 비슷하군.”
“제 솜씨가 세베루스보다 더 괜찮지 않아요? 제 더벅머리 관리한다고 잘라댔던 보람이 있는 것 같은데….”
스네이프가 보기에도 기대 이상으로 머리가 잘 잘리기는 했다. 하지만 은근히 뽐내는 해리의 말투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는 않았다. 스네이프는 목에 두른 천을 거둬내고, 지팡이를 휘둘러 떨어진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해리는 기대했던 칭찬이 들려오지 않자, 다시 불퉁한 얼굴이 되어 입술을 내밀고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퍽스가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삐이 삐이 울었다.
“…포터.”
“왜요.”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살펴보던 스네이프가 해리를 불렀다. 여전히 댓발 나온 입술로 대답한 해리가, 그를 흘겼다. 스네이프는 어이없이 거울에 비친 해리를 보았다.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자, 변신했었던 전신거울이 원래의 책 더미 모습으로 돌아갔다.
“몸에 붙은 머리카락 때문에 씻어야겠는데, 좀 도와주겠나?”
“…!! 무, 물론이죠! 같이 샤워할래요?!”
이렇게 금방 풀릴 거면서. 스네이프가 픽 비웃으며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스네이프가 옷을 벗을 때마다 짧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흰 목덜미와, 어깨와 등이 보였다. 아, 칭찬은 못 들었지만 자른 보람은 있었다.
해리는 물을 틀고,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뒷목에 입술을 맞추었다. 눈부시도록 창백하고 하얀 그의 피부는 예전 같은 차가운 온도가 아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어떤 것도 이렇듯 부드럽게 녹았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으면서 돌아온 계절을 체감했다. 이제 봄이구나. 그것이 몹시도 다행스럽고, 안온하고, 만족스러웠다. 해리는 양손을 스네이프의 배 언저리에 얹고는, 양손을 맞붙잡아 그를 꽉 끌어안았다. 너무 좋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스네이프는 아까부터 제 엉덩이를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해리는 상반신은 진지하고 싶은 듯 보였으나, 하반신은 노골적으로 솔직했다. 어린애. 그리고 그 어린애는 자신을 구원한 영웅이었다.
“…내일이네요.”
“….”
“마침내.”
결국 오는구나, 그 날이. 해리는 머릿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내일…. 제가… 실수하진 않겠죠?”
“뭐, 실수하면 내가 죽기밖에 더하겠나, 포터.”
“와. 정신 확 드네. 고마워요, 너무 좋은 충고였어요, 세베루스.”
“별 말을 다.”
아, 뻔뻔해라! 세베루스도 진짜 많이 바뀌었다니까. 해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스네이프는 너무도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다 벗은 몸을 해리가 껴안게 놔두고 있잖은가. 그만한 변화가 어디 있을까.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 꼭.”
“글쎄, 조금 걱정이 드는데. 몰리 위즐리가 나를 가만둘지.”
“어……. 제가 막아드릴게요!”
“아, 그래. 퍽이나 믿음 가는군, 포터. 그 시간에 지니 위즐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어…….”
“정말 자신없나보군.”
“그, 그래도! 말할 거예요! 요, 용서는 그, 그녀의 몫이죠…….”
해리의 얼굴엔 어느새 죄책감이 떠있었다. 그러고 보니, 엉덩이를 건들던 것도 풀죽어 시들은 것 같고. 스네이프가 생각하기에도, 해리가 내일 할 행동은 무책임하고 나쁜 짓으로 보였으니, 스스로가 느끼는 중함은 얼마나 더할까. 하지만 사실, 해리가 정말로 나쁜 건 아니라고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해리는 자신을 살렸으니까. 그 어떤, 모든 의미에서도. 그래서 오늘은 좀 봐주기로 마음먹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아래로 손을 뻗었다. 다리 사이로 들어간 손이 축 쳐진 것을 움켜쥐자, 해리가 반사적으로 파득 몸을 떨었다. 싱싱한 활어 같았다. 당황한 해리의 눈동자에는 금세 죄책감은 사라지고, 벌써부터 달뜬 기대가 어려 있었다. 그래, 이 얼굴이 보기엔 좀 더 좋았다.
5월 2일 새벽은 기억과 같이 서늘했다. 투명망토와 회중시계를 챙긴 해리는 스네이프의 옆으로 다가섰다. 과거로 돌아가기 전 오늘, 서늘한 새벽공기 탓에 디멘터가 다시 나타난 것 같단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같은 날, 같은 온도에도 해리는 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그 때와 다르게 동반자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추도식은 6시에 열렸어요. 우리는 그 전에 도착해있어야 해요.”
현재 시각은 5시였다. 호그와트 정문 앞에서 스네이프는 검은 망토를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해리 역시 투명망토를 몸 위로 덮었다. 포터? 보이지 않는 해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스네이프가 찾았다. 우두커니 서있는 스네이프의 손목을 해리의 손이 덥석 잡아 이끌었다. 둘은 추도식 참가자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금지된 숲으로 이동해야했다. 모습을 볼 수 없는 해리의 손길에 끌려가는 기분은 묘했다. 스네이프는 그러나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 숲 안으로 들어왔다.
묘비까지 도착한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목을 놓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스네이프는 제 묘비로 다가섰다. 자신의 이름과 생일, 그리고 기일이 적혀있었다. 그 앞에 검은 망토를 덮어쓴 채 서있는 스네이프의 뒷모습을 보는 해리의 가슴이 어쩐지 짠했다. 스네이프는 말없이 묘비의 모서리에 손을 얹었다. 작년, 오늘의 날짜로 자신이 사망했다고 적혀져 있는 것을 보니, 1년 전 해리가 내기니에 물린 제 앞에 나타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 보인 것은 제 몸이 쏟아낸 붉은 피 웅덩이였다. 죽는 게 당연한 출혈량이었다. 하지만 몸은 아프지 않았고, 다시 눈을 떠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다 흐릿한 시야의 한 구석으로 운동화코끝이 보였다. 해리가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눈을 찡그리고, 감았다 떠도 눈앞에는 계속 해리가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상하고 다정한 눈빛을 하고서.
“이 묘비는 그냥 여기 뒀으면 좋겠군.”
“왜요? 살아있는데 묘비가 있으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죽었다 살아난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 내가 너한테 고마워하겠지, 포터.”
“뭐야, 이거마저 없으면 안 고마워할 거란 소리에요?”
해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네이프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알 것 같아 싱긋 웃었다. 하여튼 돌려서 말하는 버릇은. 불치병이지.
“슬슬 숨어서 지켜봐야겠어요. 저쪽 큰 나무 뒤로 가요. 퍽스는 아까부터 어디에선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네.”
“가지.”
빼꼼하게 머리만 투명망토 위로 내밀고서 해리가 총총 나무 뒤로 가고, 따라서 검은 망토자락을 펄럭이며 스네이프가 움직였다. 배고프진 않아요? 조용하게 속삭이는 해리에 고개를 저은 스네이프가 나무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곧 있으면 살아있는 자신의 눈으로 저의 추도식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상한 기분. 그리고 이런 하루를 갖게 된 것은 해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래에서 해리가 저를 구하러 와주지 않았다면……. 아주 평범한 추도식인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았다. 죽은 자신을 기리는. 해리포터와의 1년이 없는. 아주 아주 평범한.
그런 건 생각하기도 싫군.
“아, 누군가 와요. 쉿.”
해리의 말대로 부스럭거리며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그리드와 맥고나걸이었다. 맥고나걸은 지팡이를 휘둘러 묘비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서 서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나머지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스네이프는 곁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은, 자신을 향해 공격주문을 날리던 맥고나걸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제 묘비를 성심성의껏 깨끗이 관리해주고 있었다.
해리는 생각이 많아 보이는 스네이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여러 생각이 들고 있을 것이다. 저도 볼드모트에게 주문을 맞은 후, 제가 죽은 줄로만 알고 슬퍼하는 사람들 앞에서 죽은 척 연기를 했었으니 그 기분을 아예 모를 것도 아니었다. 해리가 손을 뻗었다. 하얀 그의 손을 잡아주니, 스네이프가 묘비 주변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해리의 손을 맞잡았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났다. 스네이프는 꽤 많이 모인 사람들에 적잖이 놀랐다. 과거에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이 제 죽음을 기억하고 기려준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그 당시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지금도 그 때와 별반 다르진 않았지만, 모인 사람들에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네가 제일 늦는군, 포터.”
“아하하….”
해리가 민망하게 웃음을 흘렸다. 다들 부지런해서 그래요. 변명 아닌 변명을 주워섬긴 해리는, 사실 아까부터 지니를 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지니는 눈이 안 갈래야 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눈에 띄어서, 시야에 바로 보였다. 스네이프와 함께 옛 연인인 지니를 보고 있는 기분이라니. 해리는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곧 그녀에게 이별을 고할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암담했다. 해리는 누군가를 차본 적이 없는데다, 지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 생각해도 너무나 너무나 미안해서, 걱정만 가득했다. 그렇다고 스네이프를 두고 어영부영 이별을 질질 끌 수도 없었다. 그럼 이번엔 스네이프에게 미안해할 차례였다. 해리는 바로 일주일 전에 자신이 스네이프에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왔군.”
“네, 네?!”
“…? 어디에 넋을 빼고 있는 거냐, 포터.”
미심쩍은 눈으로 해리를 흘긴 스네이프가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제야 해리는 눈앞에 자기 자신이 서있는걸 볼 수 있었다. 과거의 해리를 위해 사람들이 비켜주어, 해리는 묘비의 가장 앞에 서있었다. 해리는 마음속의 고통이 느껴지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자신은 스네이프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뒤에, 저 녀석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답을 찾을 것이었다.
퍽스가 나타났다. 모인 사람들 모두 경이로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과거 자신의 표정의 변화를 눈여겨보았다. 굳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해리는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바로 옆에 앉아있는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그를 찾아낸 것이 결국 자신이었다는 게, 뿌듯하고도 행복했다.
“조용하네요.”
추도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사라지자, 숲은 늘 그렇듯 고요해졌다. 스네이프는 몸을 일으켜 매무새를 정리했다.
“퍽스의 눈물을 이용했던 건가.”
“네, 언제나 도움 받고 있죠, 퍽스한테는.”
해리는 다시 투명망토를 몸 위에 안전히 덮었다. 묘비에서 퍽스가 흘린 눈물자국이 반짝거렸다. 다시 스네이프의 손목을 잡은 해리가 왔던 길을 거슬러 걸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스네이프는 보이지 않는 해리를 바라보았다. 분명 투명해져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고 신중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걷는 해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순간이동이 가능한 호그와트의 정문 앞에 와서, 해리와 스네이프는 순간이동으로 스피너즈 엔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와, 힘이 하나도 없네.”
이제 겨우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내내 몸에 계속 긴장이 들어있던 탓이었다. 해리는 익숙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온 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스네이프는 입고 있던 검은 망토를 의자에 벗어두고 태연히 아침을 준비했다. 소파에 늘어졌던 해리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양송이스프와 마늘빵과 방울토마토가 그릇에 담겨 착착 날아왔다. 마늘빵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해리가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기분 괜찮아요?”
“왜 그런 걸 묻지.”
“그냥… 여러 가지로요….”
“쓸데없긴.”
앞에 앉은 스네이프가 스프를 한 숟가락 떴다. 해리는 따듯한 스프를 꿀떡꿀떡 넘기니 기운이 조금씩 나는 듯했다. 많이 먹고 힘내야할 일이 아주 많을, 오늘이었다.
“…나보다는 네 기분이 더 그렇지 않나? 포터.”
“예? ……저, 저요? 하하… 제가 왜…….”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해리는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했다. 눈앞의 빨간 방울토마토에서 지니가 오버랩 되었다. 해리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회중시계에 대한 걸 조사하고 부서에 이 물건의 불법거래자들과 같이 넘길 거예요. 타임터너는 모두 없어진 걸로 알고 있으니 파장이 있을 테죠. 금기물건이 돼서 봉인되거나 아예 파괴될 지도요.”
“그럼 네가 마지막으로 그걸 쓴 사람이 되겠군.”
“네. 아주 혜택을 톡톡히 봤죠. 고마운 물건이에요. 정말.”
스네이프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해리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입을 뗐다.
“그 후엔?”
“네, 네?”
“시계 일을 끝내고 나면?”
“아……음, 그렇죠 그럼….”
지니에게.
말을 해야.
해리의 등으로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착한 척 하지마라. 네 선택에 누구 하난 상처받으니까. 당연한 거다.”
“세베루스…….”
해리가 스네이프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스네이프는 완전히 해리의 속을 파악하고 있었다. 해리는 뜨끔 하는 한편, 스네이프의 말에 동감했다. 누구도 상처주지 않고 이 일을 끝낼 수는 없다. 마음은 아프지만, 지니에게 확실히 말을 해야만 한다. 결심이 서는 것 같았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향해 입가를 끌어올려 웃었다.
해리는 투명망토를 챙겨 입고 시간에 맞춰 순간이동을 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비틀대며 나타나는 망토를 쓴 사람이 보였다. 해리는 자신이 서있던 자리를 가늠해보았다. 과거 해리 역시 투명망토에, 머플리아토 주문까지 쓰고 있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해리는 적정간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 순간 탕 소리와 함께 두 번째 거래자가 나타났다.
물건을 보고 호들갑을 떠는 첫 번째 남자가 보였다. 아마 저 물건을 건네받던 순간에 자신이 바로 주문을 날렸을 것이다. 해리는 갑작스럽게 뒤로 나자빠지는 남자 둘과 투명망토를 벗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자기 자신을 바라봤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과거 자신이 망토의 모자를 쓰고 거래자들을 마법으로 묶었다. 축 늘어진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곤, 데스이터가 아님에 갸우뚱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 자신이 근처 평평한 바위에 앉았다. 해리는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곧 과거 자신은 1998년 5월 2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스네이프를 만나고, 살리고, 함께 살고, 울고, 웃다가, 그러다보면 어느새 1년이 흘러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겠지.
과거 자신의 몸이 시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 과거 자신과 함께, 시계도 시공 속으로 사라졌다. 빨려들 때의 체감속도는 굉장히 느릿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켜보고 있으니 순식간이었다. 해리는 주머니 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바로 이 시계가…….
“에네르바테.”
해리의 주문과 함께 기절했던 두 거래자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여전히 밧줄에 꽁꽁 묶인 채라, 둘은 옴짝달싹도 못했다.
“이…이게 뭐…! 너, 너는…!?”
해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첫 번째 남자(회중시계를 산 남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두 번째 남자(회중시계를 판 남자)는 재수 옴 붙었다는 표정이었다.
“이 시계, 어떻게 난 거죠?”
“해리 포, 포터. 그, 그건 그냥… 평범한 시계요!”
“평범? 시계바늘도 없던데요?”
“그, 건… 내가 새 시계바늘을…끼워서 쓸 생각으로….”
“혹시 무슨 주문에 걸려있는 건 아니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해리는 엉뚱한 주문을 몇 개 중얼중얼 거렸다. 그 모습에 두 남자가 해리를 속일 수 있다고 확신했는지, 아까보다 기운찬 얼굴이 되었다.
“음… 대체 뭐지? 이거 완전히 고물인데요. 이런 걸 왜 사죠?”
“하, 하하! 거보라 했잖수. 그냥 평범한 고물시계요…. 자, 이제 풀어주시지? 우린 억울하다고. 마법부에 항의할 수도 있소?!”
“정말로요?”
“뭐, 뭐요? 왜 내가 못할 줄 알……”
“타임터너를 정부에 노출시킬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은밀한 곳에서 거래하셔놓고.”
두 남자의 눈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베리타세룸이 전혀 필요치 않겠는걸. 해리는 혹시나 해서 스네이프에게서 받아온 진실을 말하게 하는 약을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무, 무슨 헛소리를! 그런 건 다 없어졌지 않소?! 황당하군, 해리 포터가 약간 미쳤다고는 들었지만…….”
“아, 그건 맞는 말이에요. 요즘 제가 미쳐있는 존재가 있거든요. 하지만 그 앞의 말은 부정하고 싶네요. 타임터너가 다 없어지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방금 1년 전으로 돌아갔다가, 이제 겨우 1년을 채우고 당신들 앞에 나타났는데.”
남자들의 얼굴이 굳는 게 보였다.
“근데 이 시계, 과거로만 갈 수 있어요? 미래로 못 돌아가서 제가 1년이나 고생했잖아요.”
말을 한 후 해리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아, 하고 말을 수정했다.
“고생까진 아니고…. 약간의 고난과… 행복이 있었죠.”
찡긋, 윙크를 날리는 해리를 두 남자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
완결을 내고 싶어서 오랜만에 써서 들고 왔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도 몇 분은 계셨을 거라 생각해요. 감사하고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해스네 행복하자ㅏㅏㅏ 행복하쟈아ㅏㅏㅏ~~~아프지말고~~~♬
'Harry Pot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스네] 구원자 16 (0) | 2021.03.10 |
---|---|
[해스네] 구원자 15 (3) | 2021.03.08 |
[해스네] 구원자 13 Dear.교수님 생일 축하해요 (5) | 2017.01.09 |
[해스네] 구원자 12 (1) | 2016.12.20 |
[해스네] 구원자 11 (6) | 2016.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