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론? 헤르미온느?!”
해리는 책을 들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주변의 광경은 너무도 익숙한 호그와트 성의 내부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본 옆에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자신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 옆을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지나쳤다. 마치 방금 수업을 마치고 나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론은 배고프단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가자고 앞장섰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도무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왜 내가 호그와트에 있지? 왜 론과 헤르미온느가 옆에 있는 거야? 해리는 분명 어젯밤에 스네이프의 집 2층의 제 방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 뜬금없는 워프는 대체 뭐란 말이야?!
“...헉!”
설마,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회중시계가 자신을 또 과거로 보낸 걸까? 맙소사, 최근엔 그 시계를 건드린 적도 없는데! 해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엄청난 혼란에 머리가 멍했다. 이제부터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는 해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헤르미온느가 어깨를 붙잡았다. 서둘러 식당으로 걸어가던 론도 뭔가 이상했는지 해리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니, 해리? 아까부터 혼자 깜짝깜짝 놀라는 것 같던데...”
“아, 그게, 헤르미온느... 음, 저기...”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데 말이야...’ 라는 이야기를 지금 이들에게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해리는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기억을 모조리 없애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난 대체 몇 살인거야?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5학년 이상은 된 것 같았지만, 제 나이를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때 론이 옆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해리, 너 계속 졸더니 꿈이라도 꿨냐? 설마... 또 우리 아버지가 뱀에 물린 꿈 같은 걸 꾼 거야?”
“뭐, 뭐라고?”
“설마, 진짜인거니 해리? 넌 지금 오클러먼시 수업을 받고 있잖아! 더는 그런 꿈을 꾸면 안...”
“아, 아니야. 난 그런 꿈을 꾸지 않았어, 헤르미온느. 그냥 좀, 어... 그래, 피곤해서 그런 거야...”
해리는 얼버무리면서 배가 고프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뒤에 서있던 론과 헤르미온느는 마주 보며 갸우뚱거리곤 해리의 뒤를 쫓아왔다. 오클러먼시 수업이라니... 설마 했더니 자신은 지금 5학년이었다. 대체 몇 년을 건너뛴 거지, 그럼 난 또 건너뛴 만큼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건가? 머릿속이 온통 복잡했다. 그러다 해리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현실이라고 믿던 게 전부 꿈이었고, 이게 현실인거라면? 해리는 그건 말도 안 된다 싶었지만, 자신은 볼드모트의 머릿속도 들어갈 수 있으니 예지몽 같은 걸 꿀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다시 또 몇 년을 기다려서 미래로 돌아간다는 걸 생각만 해도 암담했다.
호그와트에서의 저녁식사는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아니, 오랜만이라고 느껴지는 거겠지. 이게 현실일거야. 해리는 머릿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끊임없이 치열한 결투를 벌였다. 무엇이 정답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목에 회중시계를 걸고 있나 더듬어봤으나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해리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집요정이 차린 완벽한 저녁식사는 그 와중에도 굉장히 맛있어서, 자꾸만 입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스네이프 교수님도 요리를 엄청 잘 하시지만, 역시 호그와트의 집요정들은... 아, 잠깐. 지금 스네이프 교수님은 어디 계시지?
해리는 그제야 스네이프를 떠올리고 교수 석을 돌아보았다. 너무 정신이 없던 바람에 그를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요즈음 해리는 하루 온종일 스네이프에 대한 생각뿐일 정도였는데 말이었다. 해리는 곧 플리트윅의 옆에서 무표정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스네이프를 발견했다. 그는 작게 자른 고기 조각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고요한 하얀 얼굴은 기억보다 좀 더 젊어 보였다. 해리는 식사를 하는 스네이프를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있으니 그들 틈에 숨어 몰래 훔쳐보는 것은 쉬웠다. 스네이프와 단둘이 사는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선이 들키고 말테니까, 항상 눈치를 보다 가끔씩 슬쩍 그를 보곤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지금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짝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서 둘만 사는 건 솔직히 축복보다는 고문과 비슷했다.
식사를 마친 스네이프가 일어섰다. 해리는 시선이 들킬까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제 접시를 내려다봤다. 무심코 둘이 살던 집에서의 버릇이 튀어나왔다. 아, 맞아. 오클러먼시 수업... 언제지?
“저기, 오늘 나 오클...”
러먼시 수업이 있던가? 라고 물으려던 찰나에, 헤르미온느가 오, 맞아! 그렇지, 너 오늘 그 수업이 있었구나. 어쩐지 하루 종일 상태가 좀 안 좋더라니. 얼른 가봐, 해리! 하며 등을 떠미는 것에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됐다. 마침 오늘이 수업이 있는 날이었던 모양이었다. 스네이프와 단둘이 있을 수 있다니, 럭키! 라고 생각하기도 잠시, 해리는 자신이 끝내 오클러먼시를 익히지 못했던 걸 기억해냈다. 만약 스네이프가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보게 된다면... 해리가 지나온 모든 과거들(꿈일 수도 있지만)을 읽게 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지금 스네이프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까지 다 들키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큰일이다... 하지만 안 갈 수도 없잖아... 해리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현관 복도를 반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해리는 자신을 황급히 쫓아오는 초를 발견했다.
“초?”
어쩐지 이 상황이 굉장히 익숙했다. 해리는 그녀를 복도의 한쪽 구석으로 불렀다. 그의 옆에는 바닥을 다 드러낸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모래시계가 서 있었다. 오, 엄브릿지 그녀의 횡포로군. 해리는 잊고 있던 얼굴이 생각나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초가 그 얼굴을 본 것 같아서, 이내 해리는 표정을 풀었다.
“무슨 일이니?”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어서... 해리, 난 마리에타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아아.”
“사실은 아주 좋은 친구야. 이번에는 단지 실수로─”
해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생각해도 초가 마리에타라는 친구를 사귀었던 것은 유감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우리 모두를 적에게 팔았어. 초, 너도, 물론.”
“글쎄... 하지만 우리 모두 빠져나왔잖아, 안 그러니?”
그 후론 해리가 하는 반박에 초가 성을 내다가 홱 돌아서 가버리는 일련의 행동이 반복되었다. 덤블도어의 군대라, 이것도 해리에겐 추억 속의 일이었는데 여기선 현재의 일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과 다른 것은 해리는 이 때 굉장히 화가 난 상태로 지하 교실로 향했는데, 지금은 아니란 것이었다. 단지 그 때보다 더 많은 비밀이 머릿속에 들어있지만, 그걸 감출 방법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체념에 가까웠다. 해리는 마침내 지하 교실의 문 앞에 멈춰 섰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늦었구나, 포터.”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등을 돌린 채 서서, 펜시브에 기억을 옮겨 담고 있었다.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도 오랜만에 들으니까 짜릿한 것은 왜일까─ 해리는 등허리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욱신거리며 돋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오클러먼시 수업을 하러 가는 도중 초를 만난 날,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해리는 가만히 서서 골똘히 제 기억을 더듬었다. 그 때 기억을 모두 펜시브에 담은 스네이프가 해리 쪽으로 돌아섰다.
“그래, 연습은 많이 했나?”
“네.”
스스로 느끼기에도 뻔뻔스런 거짓말이었다. 연습을 안 해본지가 3년은 넘었다.
“좋아. 금방 드러날 테니까, 안 그러냐? 지팡이를 꺼내라, 포터.”
스네이프가 여유롭게 말했다. 아, 교수인 스네이프의 모습은 굉장히 오랜만인데. 그의 우아하고 차가운 태도에 해리는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예전엔 마냥 혐오스럽고 밉살스러웠던 모습이었다. 같은 행동에서 이제는 사랑을 자각하는 느낌은 굉장히 기묘했다.
“셋을 세겠다. 하나─둘─”
그 때였다. 갑작스런 말포이의 등장에 스네이프의 지팡이가 내려갔다. 말포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해리와 스네이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스네이프는 다시 여유롭게 지금 해리가 마법 약 보충 수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말포이가 고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해리는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말포이는 몬태규가 4층 복도의 화장실에 끼어있는 게 발견되었다며, 엄브릿지로부터 그의 도움을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수업을 내일 저녁으로 미루겠다고 말했다. 해리는 말포이가 입모양으로 ‘보충 수업이라고?’ 하고 비웃는 것을 고고하게 내려다보듯 쳐다봤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뒤에서 흔들리고 있는 펜시브의 빛을 돌아보았다. 오늘이 그 날이었다. 스네이프의 기억을 훔쳐보고 그에게 상처를 준......
어차피 본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스네이프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해리는 이대로 기숙사로 돌아가, 내일 저녁에 있을 수업을 대비해 오클러먼시를 연습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판단과는 별개로,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은빛 액체 안에는 어린 스네이프가 담겨 있었다. 제 아버지에게 놀림당하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지만, 왜소하고 창백한 열다섯의 스네이프를 해리는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갈등하던 해리는 자신이 펜시브를 보지 않으므로 해서 미래가 뒤틀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었지만 어린 스네이프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그래, 재미있더냐?”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분노로 더욱 하얗게 질린 스네이프가 해리의 팔을 꽉 잡은 채 물었다. 해리는 솔직히 말하자면, ‘네.’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살인주문이 날아올 것 같아 침묵했다. 해리는 스네이프 기억 속의 창백하고 가냘픈 스네이프를 실컷 훔쳐보았다. 게다가 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자신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의 몸을 쓰다듬거나 볼에 입을 맞춰보기도 했다. 유령처럼 해리의 몸이 스네이프의 몸을 통과했지만 그 기분은 달콤하고 짜릿했다. 해리는 늘 탐을 내던 과실을 입에 머금은 것 같은 하와의 쾌락을 느꼈다. 제임스가 스네이프를 허공에 매달아 드러난 앙상한 발목에도 해리는 욕망을 느꼈다.
다시 해리와 스네이프는 지하 교실로 돌아왔다. 스네이프가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팔에 감각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이를 악문 스네이프를 해리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가엾었다. 해리는 이번에는 알면서도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네 아버지는 꽤 재밌는 사람이었지, 안 그러냐?”
감정이 격해진 스네이프가 해리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해리는 아니요, 라고 말했지만 스네이프는 듣기 싫은 모양이었다. 해리를 바닥에 밀쳐버리려 하는 그를, 해리가 덥석 끌어안았다. 스네이프는 충격으로 얼어붙은 눈으로 해리를 바라봤다. 해리 스스로도 미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가 과거이든 현실이든 뭐든 그저 스네이프를 위로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화내고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그가 싫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충동적이었어요... 숨기고 싶어 한 과거를 봐버려서 죄송합니다...”
“포, 포터, 이것, 놓지 못하겠─”
“제 아버지가 교수님께 한 행동... 제가 봐도 끔찍했습니다. 저도 겪어봐서 알아요... 제 기억 속에서 보셨죠, 사촌 두들리가 절 괴롭힌 거요... 하나도 즐겁지 않죠, 재미있을 리가 없잖아요...”
“......”
스네이프는 혼란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해리는 이렇게 성숙한 발언을 할 수도 없었고, 이렇게 다정한 말투로 달래듯이 말할 리도 없었다. 해리는 그대로 굳어버린 스네이프의 몸을 조심스레 다시 안았다. 스네이프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해리에게 몸을 내맡긴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교수님, 좋아해요.”
해리는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었다. 오늘 하루가 혼란의 연속이었으니 지금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온통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엔 상처받은 스네이프가 서 있고, 그가 울고 싶은 마음일 거란 것은 알았다. 해리는 그를 달래주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를 뜨겁게 녹여주고 싶었다.
해리는 다부지게 그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스네이프의 가슴이 해리의 가슴팍에 닿았다. 어쩔 줄 모르는 스네이프의 입술을 찾아서 해리가 입을 벌렸다. 지팡이를 쥐고 있는 그의 손에 꾹, 하고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지만 해리는 무시하고 키스했다. 스네이프가 여태 키스를 해본 적이나 있었을까. 릴리만을 사랑하고 다른 무엇에도 관심 없던 남자인데, 그럴 리가 없지. 해리는 스네이프의 서툴게 벌어진 입 안에 혀를 밀어 넣고 섞었다. 스네이프가 흘린 침까지 농염하게 핥아먹었다. 제 가슴팍을 밀고 있는 스네이프의 주먹 쥔 손은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응, 읍... 포터, 음...!”
키스 사이에 간헐적으로 스네이프의 반항 섞인 신음이 터졌다. 해리는 절로 발기가 됐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앞섶에 비벼지는 딱딱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지? 제 기억을 훔쳐본 포터가 갑자기 자신을 좋아한다면서, 키스를 하고... 그리고 이것이 위로의 방식이라도 되는 양, 퍽 다정한 키스였다. 스네이프에게 반항의 의지만 없었더라면 정말로 부드럽고 달콤했을 키스였다. 해리는 눈가가 붉어져서 스네이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초록색 눈이 진하고 깊은, 시선으로 자신을 보자 전율을 느꼈다. 그 눈은 ‘욕망’ 그 자체였다.
해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움찔, 하며 순간 몸을 떠는 스네이프를 펜시브가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눕혔다. 해리는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내리누르며 혀를 빨았다. 스네이프는 키스 자체가 처음이었다. 당황스럽고 밀어내고 싶었던 마음은 어느 샌가 흐지부지돼있었다. 계속 자길 보고 있는 초록색 눈을 사실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쳐다봐줬으면, 계속 이 쾌락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해리가 자신의 기억을 본 것에 대한 분노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이것이 해리의 의도였을까? 그러나 어찌되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하아, 교수님...”
“하..하아.. 포, 터...”
“사랑해요... 너무요...”
“언, 제부, 터...”
“으음...”
해리는 다시 스네이프의 입술을 입으로 막았다. 스네이프는 더 이상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해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는 주먹이 책상 위에서 얌전히 쥐어졌을 뿐이었다. 떨고 있는 스네이프가 사랑스러워서 해리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해리 역시 발기한 것을 그의 안에 넣고 싶은 충동에 몸 전체가 벌벌 떨렸다.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스네이프도 받아줄 것 같았다.
해리는 손을 내려 스네이프의 바지를 벗겼다. 스네이프가 겁에 질린 까만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그 시선만으로도 쌀 것 같았다. 방금까지 펜시브 속에서 보고 온 어리고 유약한 스네이프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씨익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것을 잡았다. 제 것이 아닌 남자의 성기를 잡은 것은 해리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떤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스네이프의 맨 살갗을 만지고 있단 것에 대한 흥분만이 느껴졌다. 해리가 그걸 쥐고 흔들자, 스네이프가 허리를 꿈틀거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밭은 숨을 뱉던 스네이프가 해리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해리의 입술에 먼저 키스했다. 해리는 머리에 열이 몰려 펑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을 것처럼 황홀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자신의 바지를 훌렁 벗어 내리고, 흉흉하게 솟은 성기를 스네이프의 둔부 사이에 문질렀다. 해리를 끌어안은 스네이프가 더 바짝 끌어안으며 몸을 붙였다. 평소와 달리 붉게 들뜬 얼굴은 해리처럼 열락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해리는 이렇게 첫 섹스에 적극적인 스네이프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달콤했다. 스네이프에 대한 소유욕으로 가슴이 들끓었다. 당장 품 안에 넣고 싶다. 먹어치워 버리고 싶다. 사실 다정한 위로라는 명분을 벗어던지고 그를 엉망으로 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넣을... 넣고 싶어요. 교수님 안에, 윽...”
“앗, 아... 포터... 아아, 흣...”
“사랑해요, 예뻐요, 아, 미칠 것, 같...”
스네이프의 좁은 구멍에 귀두를 밀어 넣자 너무 조여서 벌써부터 머리가 아찔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성기를 마구 잡고 흔들었다. 이미 프리컴을 흘리며 아슬아슬했던 스네이프의 것에서 정액이 왈칵 튀었다. 해리는 손에 묻은 그의 정액을 제 성기에 묻혀 비볐다. 질퍽대는 음란한 마찰음이 헉헉거리는 숨 사이로 들렸다. 해리는 이 열락에 몸이 뜨겁게 폭발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이제 스네이프를 먹어치울 수 있었다.
정액을 바른 성기를 스네이프의 구멍에 쭉 밀어 넣었다. 스네이프가 허리를 위로 펄쩍 띄웠다. 아, 어떡해, 어떡해요, 너무 좋아, 세베루스... 해리는 헐떡이며 풀린 눈을 스네이프의 시선에 맞췄다. 고통과 기대감으로 짙어진 스네이프의 눈이 보였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양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겹쳐 끼워 넣었다. 그리고선 허리를 마구 흔들었다. 발작적으로 튀어나가는 스네이프의 신음성에 등골이 오싹했다. 찔꺽대며 물기어린 소음이 스네이프의 엉덩이에서 들렸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머리 위로 그의 팔을 올려붙이고 쾅쾅 몸을 박아 넣었다. 다정이라는 겉치레가 완전히 사라진 움직임이었다. 그래, 이러고 싶어서 해리는 단 둘이 사는 집에서 스네이프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해리는 죄책감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엄마를 사랑하는 남자를 품에 넣고, 안고 싶어서, 그 공간에서 자신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 아...!”
해리는 스네이프의 몸 안에 정액을 쏟아냈다. 엄청난 만족감이 밀려 왔다. 드디어, 가졌다. 해리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고, 스네이프의 몸 위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
해리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축축함에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어떤 온기도 제 몸에 닿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허탈함을 넘어선 공허함이 해리를 덮쳐 왔다.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드디어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꿈이라니...”
해리는 이불을 들추고 속옷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물컹한 정액이 손에 한가득 만져졌다. 몽정은 학생일 때도 별로 한 적이 없었다. 해리의 기분이 최악을 달렸다. 최악, 최악 중의 더 최악. 그 어떤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약을 먹어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더러운 기분이었다. 해리는 협탁을 더듬어 지팡이를 쥐었다. 짹짹짹, 창 밖에서 상쾌한 아침을 알리는 새의 지저귐이 들렸지만 지금 해리에겐 짜증스러운 소음일 뿐이었다. 해리는 지팡이를 속옷 안에 넣고 정액을 빨아들였다. 머글처럼 몰래 숨어 손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유일한 위로라면 위로였을까. 젠장, 위로라니까 또 생각나잖아...
해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오늘은 진짜 스네이프를 어떻게 봐야 하지... 최대한 피해 다녀야겠다. 해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바로 옆방에서 지냈다. 어렸을 적에 지냈던 방은 해리에게 내줬다. 그가 지금 지내는 방은 부모가 살던 방이었다. 이 방은 예전의 제 방보단 넓었지만 그만큼 텅 비었다. 그의 어머니 에일린 프린스는 순수혈통으로 태어났지만 굳이 머글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사랑해주지도 못할 남자를 선택했다. 순수혈통이나 자신과 같은 마법사 남자를 만났을 것이지, 과연 처음부터 선택이 어긋난 여자에게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피’라는 것은, 비웃는다 해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스네이프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역시 제 어머니와 마찬가지였다. 같은 처지니까 비웃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그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 스네이프는 평생 짝이 되지 못할 한 여자만을 사랑했다. 그래서 방금 꾼 꿈이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스네이프는 헛웃음만 흘렸다. 지금 내 나이가 몇 살인가? 그리고 그걸 따지기도 전에, 애초에 그런 꿈을 꿀 이유도 없었다. 그런 건 관심이 있어야만 꾸는 게 아니었던 건가. 스네이프는 점술 수업을 열심히 청강하던 학생이 아니었던지라 꿈의 해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물론, 알았다하더라도 해석할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굉장히 뜬금없고 헛소리 같은 꿈이었다. 게다가 하필 대상은 왜 ‘그’였는지. 스네이프는 그 점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매일 보는 얼굴이 그 뿐이라 뇌에 그 얼굴이 박혀버린 걸까. 확실한 것은 정말로 어이없었지만, 그 꿈에 스네이프는 몽정을 해버렸다. 서른여덟의 나이가 무색하게 말이었다.
스네이프는 자리에서 일어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반쯤 일으킨 몸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면 꿨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보통 꿈이라는 건 자고 일어나서부터 빠르게 희미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방금 꿈은 실제의 체험처럼 생생하고 선명한 감각으로 스네이프의 머릿속을 펄떡거렸다. 꼭 갓 잡아 퍼덕이는 생선 같군. 기억이 아주 요동을 쳤다.
스네이프는 고요한 얼굴로, 흥분으로 달떠 제 위에서 허덕이던 해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꿈이었지만, 저 같은 몸에 욕정을 해서 그 정도의 흥분을 느낄 수 있을지, 스네이프는 그것부터가 의심스러웠다. 좋아한다고? 넣고 싶다고? 그 모든 헛소리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윙윙거렸다. 이 말도 안 되는 꿈에 왜 이 정도로 휘둘리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스네이프도 알았다. 그 말들을 뱉는 해리의 얼굴이 너무나 진심 같아보였기 때문이었다.
“......”
스네이프는 느릿하게 손을 바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그시 감긴 눈에선 어떤 성적인 느낌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음모를 쓸어내렸다가, 닦아내지 않은 정액으로 미끈거리는 성기를 그러쥐었다.
“흣...”
이미 꿈을 되짚으며 반쯤 발기해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스네이프가 손으로 쥐자마자 더없이 딱딱해졌다. 스네이프의 발가락 끝이 시트에 주름을 만들며 긁어댔다. 허리가 위로 조금 떴다가 풀썩 내려앉았다. 좀처럼 가빠지는 법이 없는 가슴이 위아래로 빠르게 들썩거렸다. 스네이프를 가장 흥분케 하는 것은, 꿈에서 집요할 정도로 자신을 바라보던 해리의 초록색 눈이었다. 그 눈은 스네이프에게 있어 욕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눈이 거꾸로 자신을 향해 욕망으로 번뜩거렸다. 스네이프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그 눈에 취해서 꿈속에서 허리를 흔들었다. 릴리에 대한 것을 떠올릴 틈도 없었다. 그 눈으로 절 욕망하는 해리 포터에게 흥분했다.
“아....윽...”
눈을 감고 있는데 불꽃이 튀었다. 스네이프는 평소에도 금욕적으로 생활해왔다. 릴리가 죽고 나서는 그녀의 생각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스네이프가 성적으로 흥분할 땐 당연히 그녀를 떠올리게 돼있으므로, 항상 자제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삐가 풀린 것처럼 자신의 성적욕구에 솔직히 응했다. 처음으로 릴리가 아니었다. 그것으로 자유로워진 머리는 제 몸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이미 흥건했던 속옷 안에 두 번째 사정이 흘러 내렸다. 스네이프는 가쁘게 숨을 헐떡거렸다. 극상의 쾌감을 맛본 머리가 뜨겁고 어지러웠다. 해리 포터가 자신에게 박는 상상으로 이렇게 느껴버렸다. 끝나고 나서야 스네이프는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았지만, 이미 해버린 일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속옷에서 꺼내 눈앞으로 가져왔다. 백탁한 액체로 손이 더러웠다. 까만 눈이 가만히 그걸 보다가, 옆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포터가 나왔나보군... 오늘은 평일이었으니 해리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할 것이다. 스네이프도 이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팡이로 정액을 흡수해 치우면서, 그는 붉어진 얼굴을 가다듬었다.
“어, 교수님...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포터.”
문을 열고 나가 마주친 해리는 어쩐지 경직되고 불안해보였다. 스네이프는 의아했지만 그에게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곧장 부엌으로 들어갔다. 식모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일하러 가는 해리를 위해 이 정돈 해줄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호밀빵에 크림치즈를 바르며 마법을 건 주걱이 샐러드를 잘 젓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다가도 방금 본 해리의 모습이 이상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런 반응을 보일만한 건 오히려 내 쪽이 아닌가,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어디 아픈 것일지도. 바보는 여름감기에 걸린다고들 하니까.
감기에는 비타민C가 좋지. 스네이프는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 컵에 따랐다. 아침에는 물만 마시는 해리지만 강제적으로 먹이면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어쩌다 자신이 해리의 건강을 염려하여 비타민까지 챙겨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 아침에 꾼 꿈과 그 후에 한 행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 기억으로 목 뒤가 선득해지는 쾌감이 다시 떠올랐다.
“오, 오늘은 애들한테 농구를 가르쳐주려고요.”
“그건 뭐지?”
크림치즈를 바른 빵에 견과류를 뿌리며 스네이프가 물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해리가 말을 더듬었다.
“그건, 퀴디치랑 좀 비슷한, 음, 골은 하나뿐, 이지만, 퀘, 퀘이플만한 공을... 넣는 그런 게임이에요...”
“퀴디치밖에 해본 적 없으면서 머글 게임을 머글들에게 가르친다니, 재밌군, 포터.”
“제 운동실력으론 실제로 많이 해보지 않았어도 잘 넣을 수 있다고요!”
“그래, 너니까 잘 넣겠지, 포터.”
아침부터 ‘넣는다’는 말로 넘쳐나는 식탁이라니... 우연의 일치겠지만 스네이프는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어린이용의 농구골대는 실제보다 낮고 작아서, 장난감 수준이에요. 교수님도 쉽게 넣으실 걸요?”
“나는 그런 데 관심 없다, 포터.”
정말 기분이 이상하군. 스네이프는 호두 부스러기를 아작 씹었다. 해리가 멍청해서 이 뉘앙스를 못 알아차리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요? 교수님은 진짜 공부만 하시고... 운동 하는 걸 본 적이 없네요... 그럼 몸에 안 좋으실 텐데...”
“운동이라...”
그 비슷한 걸 아침에 하긴 했다. 스네이프는 픽 웃었다.
“전부터 느꼈지만 넌 나랑 굉장히 같이 하고 싶어 하는군, 포터. 가망 없는 희망은 영웅이라면 항상 품어야할 마음가짐인가?”
“또, 또 빈정거리신다...! 퀴디치를 하고 싶은데, 같이 할 론이나 다른 또래 남자친구들이 없잖아요... 교수님이 아니면 만나는 남자가 없다고요, 전.”
“꼭 남자랑만 운동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냥... 전 교수님이랑 같이 하고 싶은 거예요...”
스네이프는 왜 그 순간 그렇게 말이 나왔는지 몰랐다. 그저 그런 꿈을 꿔서 그러려니, 해리가 오늘만큼 신경이 쓰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넌 나를 너무 좋아하는군, 포터.”
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말에 컥! 하고 닭 목 잡고 비트는 소릴 낸 해리가 입에 있던 음식을 다 뿜어버리는 끔찍한 광경이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스네이프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그는 흩어진 음식 파편들을 향해 레파로, 하고 중얼거려 그것들을 다시 뭉치게 했다. 우아하게 손목스냅으로 공중에 띄워진 것들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혔다. 해리는 급한 대로 옆에 놓인 오렌지주스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스네이프는 그걸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음, 강제로 들이붓지 않아도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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