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타임터너는 봉인이 결정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계가 데스 이터 잔당들에게 넘어가면 큰일이었기에, 폭파와 봉인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걸로 추정 되는 타임터너의 가치에 결국 보존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해리는 어쨌든 자신과 스네이프를 이어주었던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 것에 다행스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타임터너의 기존 주인이었던 판매자는 개인의 삶에만 그것을 사용했기에 법적 처벌은 없었다. 구매자는 심문 끝에 어둠의 마법 물품 상권과 연관이 있는 자로 밝혀져 구속 되었다. 해리는 이 일로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론이 해리의 어깨를 짚었다. 해리는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론을 돌아보았다. 아직 론은 지니와 저의 일을 몰랐다.

“축하해, 친구. 1년 고생했으니 상장 한 장 정돈 받아야지.”
“고맙다, 론.”

론은 해리를 잠시 내려다 보았다. 해리에게서 저를 꺼리는 기색을 분명히 읽었다. 어제부터 수상하단 말이지. 론은 이게 스네이프와 관련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리와 스네이프 펜시브 열람 요청을 출근 하자마자 해두었다. 인기가 많은 기억이어서 벌써 오러 팀의 선배들은 단체로 봤다고 했다. 승인이 떨어지면 론도 오전 시간내로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진짜 바쁘다. 해리, 참. 오후에 우리 녹턴 앨리 순찰 같이 돌더라.”
“타임터너 구매자 측 상권 쑤셔본다고 그러던데.”
“별 거 없었음 좋겠다. 계속 바쁘니까 토 나오지 않냐.”
“맞아. 이제 출근 3일찬데 쉬고 싶어 죽겠다.”
“숨어 살 때는 일 안 하고 계속 쉬었어? 그럼 개부러운데.”
“아니. 머글 체육 센터에서 어린이들 가르쳤어. 머글들 운동.”
“와! 진짜 귀여웠겠다.”

론은 퀴디치보다 재밌는 운동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리가 운동을 가르쳤다는 사실 보다는 어린이들에 더 집중했다. 최근 헤르미온느와 둘이서 자식은 몇 명 낳을까 얘기도 나눴었다. 론은 무조건 형제는 적을수록, 가급적이면 외동이 좋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동인 헤르미온느는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 애들 진짜 귀여웠어. 그 중에서도 찰스라고, 동료교사 아들이 있는데 나를 진짜 잘 따랐거든. 막 번개 모양 나뭇가지 주워서 선생님 선물이라고 나 주고. 눈도 똘망하고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 지 몰라. 진짜 나도 그런 아들 하나 있음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 찰스 보고싶다.”
“낳으면 되지, 해리. 지니랑 결혼해서.”
“……!”

신나게 찰스에 대해 떠들던 해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론은 급작스럽게 바뀐 해리의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지니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된다는 부분에서, 왜?

해리는 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머쓱히 목을 긁었다. 론은 또 다시 찾아온 석연찮은 느낌에 입술을 잘근거렸다. 해리는 분명, 저에게 해야할 말을 아직 하지 않았다.

“론 위즐리! 열람 승인 떨어졌다.”

팀장과 함께 부서로 들어오던 휴가 론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론은 흘낏, 해리를 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리는 여전히 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러 로날드 위즐리, 오전 8시 5분자 예약, 오전 10시 승인완료. 네, 확인 되었습니다. 펜시브 h-19번, s-731번 기억은 1번 열람실로 들어가세요. 전원버튼을 누르시면 영상 재생이 시작됩니다. 빠른 재생을 원하시면 붉은 버튼, 느린 재생을 원하시면 노란 버튼, 정상 속도는 녹색 버튼, 뒤로 10초 돌리는 건 하얀 버튼입니다.”

열람실에 있던 담당 직원이 펜시브 재생 스크린의 컨트롤러를 건네 주었다. 이전에도 오러 임무로 열람실에 종종 와봤던 론이었다. 이제는 형식적인 설명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펜시브에 뛰어 들지 않고도 복사 된 영상을 간편히 스크린으로 옮겨 볼 수 있는 건, 마법부 내의 독자적인 마법기술 발전이었다. 현재 이 마법은 오러들이 임무 중에 단체로 또는 간편히 보기 편하도록 쓰이고 있었다. 1번 열람실에 론이 홀로 들어섰다. 문을 닫자마자 주위가 조용했고, 어둑한 실내에 벽 한 면을 채운 스크린이 있었다. 론은 컨트롤러의 전원을 눌렀다.

해리는…… 사라진 스네이프를 찾지 못한 마음의 그늘을 늘 가지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죽기 직전 ─살아있는 걸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해리에게 넘긴 기억을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같이 교장실의 펜시브로 들어가 보았었던 론이었다. 그 스네이프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인성 파탄난 성격 나쁜 선생이었던 건 변함없지만, 해리를 지키고자 뒤에서 노력했던 사람이란 건 알게 되었다. 직접적인 대상이었던 해리에게는 스네이프에 대한 관점이 송두리째 바뀔 기억이었을 것이다. 론은 제 3자의 입장이어서 스네이프를 여전히 재수 없게 여겼어도, 해리는 그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듯이 보였다.

론에게 있어 해리가 그를 살리는 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해리에게 방도가 있었고, 스네이프를 살릴 기회가 온다면 해리는 당연히 그렇게 했을테니까. 론은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가 스네이프와 해리의 동거 부분에서 녹색 버튼을 눌렀다. 별 것마다 딴지를 걸고 해리를 괴롭히는 스네이프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실제 기억 속의 스네이프는 그렇지 않았다.

스네이프가 만든 음식을 먹고 해리는 출근 준비를 했고, 스네이프는 해리가 없는 시간엔 마법약을 만들거나 대부분 책을 읽었다. 해리가 퇴근하고 해리가 사온 음식을 먹으면서 둘은 하루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스네이프의 빈정거리는 말투는 변함 없었지만, 둘 사이 분위기는 꽤나 다정했다. 자연스러운 온도가 그 둘에게 존재했다. 론은 그 평범한 일상에 한숨을 내쉬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지나칠 정도로 둘은 서로에게 안정되어 있다. 스네이프와 해리가. 둘의 동거 소식을 보자마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목도한 둘의 일상은 너무도 평범하게 잘 지냈다. 누가 끼어들 틈도 없어 보일 정도로, 그 분위기가 '가족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치 버로우의 위즐리 가족 같은.

론은 입맛이 쓴 채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에 떠 있던 해리와 스네이프는 사라졌다. 하지만 머릿 속을 채운 해리의 웃는 얼굴까지 없어지진 않았다.


오후의 녹턴 앨리는 평소와 똑같이 칙칙했다. 까만 후드를 덮어 쓰고, 오러 정복과 얼굴을 가린 채 해리와 론은 어둠의 마법 상점 거리를 단속했다. 빛의 세력이 승리한 뒤로 녹턴도 전보다는 기세를 잃었지만 여전히 어둠의 마법을 애호하는 마법사들은 많았다. 역사에 늘 있던 그들이었다. 오러인 해리와 론은 그저 감시의 역할로 온 것이어서, 비장한 긴장은 없었다.

보진과 버크를 마지막으로 나온 둘은 다이애건 앨리 쪽으로 향했다. 퇴근 전에 잠깐 쇼핑을 하려는 목적이었다. 다이애건 앨리로 들어온 해리와 론이 후드를 벗자, 주변의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며 바라보았다. 유명한 전쟁 영웅 둘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어린 아이가 눈을 빛냈다. 론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해리는 눈웃음을 지은 뒤 자리를 벗어났다. 붉은색의 눈에 띄는 정복을 입고 있는 둘이 근무중인 것을 알고, 마법사들은 쉴 새 없이 그들을 곁눈질 하면서도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책 산다고 했지?”
“응. 서점만 들렀다가 조지 네로 가자.”

해리는 플러리쉬 앤 블러트 서점에 들어서자 마자 어둠의 마법 서적 쪽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순찰해놓고 공부까지 하게? 론이 질렸다는 눈으로 해리를 바라 봤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필요해서.”

서적 세 권을 고른 해리가 계산을 했다. 어둠의 마법 생물, 주문과 방어에 관련 된 책이었다. 론은 해리에게 새삼 N.E.W.T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 준비라도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론은 간지러운 입을 다물고 서점 문을 열었다. 책을 넣은 봉투를 안고 있던 해리가 고마워했다. 천만의 말씀, 론은 어깨를 으쓱이고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답게 오늘도 문전성시였다. 해리는 다시 후드를 썼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과 젊은 부모 마법사들의 관심에 시달리면 끝이 없는 걸 알고 있었다. 론은 그런 관심을 즐겼으므로 그냥 들어섰다.

“해리!”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어도 조지의 눈썰미까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론과 함께 들어왔기 때문일 터다. 해리는 가게 뒤편으로 가서 조지와 마주 앉았다. 론은 헤르미온느가 부탁한 수정 깃펜 등을 본다고 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찾은 거 축하해.”
“고마워 조지. 나중에 교수님이랑 그 홀리한 귀 얘기도 한 번 해봐야지.”
“아, 물론. 내게 이런 멋진 귀를 선물해주신 분이잖아.”

조지가 윙크 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왜?”
“일전에, 사랑의 묘약을 배달한 프랭크라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지? 해리.”
“아…! 조지, 기억하고 있었구나…. 맞아, 프랭크는 폴리주스를 마신 나였어. 근데 어떻게……?”
“같이 온 꼬마는 그럼 진짜 스네이프 교수님이 맞지? 와우 멀린, 그래서 그 꼬마- 스네이프가 그렇게 깜찍하게 굴었구만. 그 때 그 사랑의 묘약, 호그와트에서 대히트였어. 효과가 장난 아니었나 보더라구. 그래서 마법약 실력이 스네이프 수준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네가 과거로 돌아가서 스네이프랑 같이 살았다고 하잖아. 그 꼬마도 스네이프랑 묘하게 닮았었고. 내 추리력 상당하지? 해리.”
“어, 진짜. 오러국에서 탐낼 인재인데, 조지?”

해리가 웃으며 조지를 보았다. 거만하게 팔짱을 낀 조지가 다소 과장스럽게 으쓱댔다. 기억력도 좋고 추리력도 좋았다. 정말 과거의 저에게 조지가 스네이프를 닮은 꼬마에 대해 언급을 했었다면, 자신이 스네이프를 찾아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싹해질 정도였다.

“스네이프랑 지내는 건 어땠어? 그 때 보니 둘 분위기는 괜찮더라. 진짜 아빠랑 아들로 보였다고, 해리.”
“그 때랑 비슷한 분위기로 지냈지, 뭐. 그런데, 있잖아 조지. 아직 론에게도 말 못했는데… 나, 지니랑 헤어졌어.”

해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니의 오빠인 조지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긴장 속에 바라본 조지의 눈은 살짝 놀랐다가, 이내 유하게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해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치를 봤다.

“…오래 못 만났다고 식은 거니? 며칠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됐을 텐데. 너무 돌아오자마자 찬 거 아니야? 우리 귀여운 지니를.”

조지의 부드러운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해리는 심장이 따끔거리는 압박을 느꼈다. 그녀와의 이별은 정말로 위즐리 가 전체에 대한 이별일 수도 있는 거였다. 스네이프의 말이 맞았다.

해리는 서적이 든 봉투를 안은 팔을 고쳐 안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 지니를 좋아했을까, 하는 한심한 마음까지 들었다. 해리 포터가 위즐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이 붉은 머리의 가족은 고아 해리를 품어준 첫번째 가족이었다. 다음은 헤르미온느, 다음은 시리우스, 그리고 다음은…….

“나, 스네이프 교수님을 사랑해.”

커튼이 열리고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수정 깃펜을 쥐고 있는 손이 문틀을 짚고 있었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론을 바라보았다. 타이밍이 너무 좋지 못했다. 론의 표정이 썩어있는 것 같았다. 론이 해리의 눈을 먼저 피했다. 조지 역시 해리의 고백에 놀라고 당황하긴 했지만, 론에게 이런 식으로 들키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론은 저보다도 더 배신감을 크게 느낄 성격이니까. 걱정스러웠다.

“……론.”
“나한테 숨기는 게 그거였어? 해리.”

론의 딱딱한 목소리가 해리의 가슴 위로 묵직한 돌이 되어 굴렀다.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니었다. 단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상대가 론이기에 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론의 반응은 이처럼 너무도 예상이 갔다. 차가운 파란 눈이 꼭 빙하처럼 서늘했다. 론은 나 이거 결제했다, 형, 말을 하고는 수정 깃펜을 쥔 채 등을 돌렸다. 해리는 조지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급히 론을 쫓아갔다. 조지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듣고 싶은 얘기였는데. 스네이프 교수를 사랑하게 됐다니, 해리가.


“론!”

성큼성큼 걸어가는 길쭉한 다리가 얄미웠다. 해리는 달렸기 때문에 금방 거리가 좁혀졌다. 다만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다이애건 앨리인 게 낭패였다. 론, 애타게 부르며 해리가 팔뚝을 잡았다. 론은 눈썹을 찡그리며 해리를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도 다 들었어, 해리. 스네이프가 좋다고? 그래, 그럼 되잖아. 불쌍한 우리 지니는 비록 너에게 차였지만, 며칠 울고나면 너 같은 건 싹 잊고 좋은 남자 찾겠지. 그래, 그거면 되는 거 아니야? 해리.”
“지니에겐 미안해, 나도! 근데 감정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어. 변명인 거 알아. 이거 변명이야, 맞아, 론─ 그렇지만 지니는 받아들여줬어! 이별을 받아들인 건 지니야.”

론이 해리를 지그시 노려 보았다. 자기 친구지만 정말 이기적인 놈이라고 론은 생각했다.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한다. 해리 포터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럼 지니가 네 말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 같은데? 구질구질하게 널 붙잡으려고 할 애냐? 걔가?”
“…….”
“나도 네가 스네이프랑 지냈던 기억 다 봤어, 해리. 네가 나한테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것도 다 눈치챘다고. 놀랍게도 론 위즐리에게도 눈치란 게 있어서 말야.”

론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해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론이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니가 제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해리도 떠올리고 있었다. 론은 제 여동생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변의 마법사들이 신경쓰였다. 해리는 더이상 어떤 얘기를 론에게 해야할 지도 알 수 없었다. 부서로 복귀 하자,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녹턴 앨리 순찰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해리는 시계를 확인 했다. 퇴근시간까지 3분여가 남았다. 론 쪽을 쳐다 봤다가도 다시 고개가 돌아왔다. 론이 자신의 태도에 화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론이 사실을 알게 된 타이밍도 최악이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예전에도 해리 스스로 풀기 보단, 자연히 해결되는 상황이 찾아 왔었다. 그 때를 기다리면 되는 걸까….

론은 냉정하게 해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해리는 우리 관계가 바람을 피우는 거라 말했던 스네이프의 말을 떠올렸다. 맞아, 맞는 말이었다. 여자친구랑 사귀고 있던 주제에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람과 섹스하고 결혼까지 약속한 거니까. 지니보다 그녀의 가족들이 해리에게 더 화가 나는 것도, 가족이라면 당연했다.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이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별이 존재할 수 있냔 말이었다. 해리는 답답함에 셔츠의 윗 단추를 풀었다.

세베루스가 보고싶다. 그와 그냥 스피너즈 엔드에서 영원히 숨어 사는 쪽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마법세계를 구원한 유명하고 인기 많은 젊은 영웅은, 그저 소박하고 음습하며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만 사랑하고 살고 싶을 뿐이었다. 마법부 벽난로에 들어서며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포터, 왔…!”

벽난로에서 나오자 마자 스네이프의 입술을 찾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던 스네이프가 당황해서 밀어낼듯 해리의 허리를 붙잡았다. 해리가 정신없이 혀를 섞으며 스네이프를 소파로 이끌었다. 푹신한 소파로 무너진 그의 위에 올라타서, 해리는 입술을 떼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스네이프는 놀란 눈으로 해리와 시선을 맞췄다. 해리의 눈이 지쳐 있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른 남자는 그냥 해리의 허리를 안았다. 동그란 뒤통수를 쓸어 내리자, 해리가 괴로운 신음을 냈다.

“세베루스, 난 진짜로…… 당신만 있으면 돼요…….”
“바보냐, 포터. 넌 나 하나만 있으면 큰일 나. 네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 줄 아나.”
“필요 없어! 난 당신만….”
“어린 소리 그만해, 포터.”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걱정 되는 해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론 위즐리에게 한 소릴 들은 게 분명했다. 울 것 같은 해리를 보고 있으니, 이 녀석의 단단함도 '위즐리' 앞에서는 흔들리는 게 보였다. 위즐리 가족이 해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스네이프도 잘 아니까. 하지만 그런 해리가 자신에게 어리광 또는 집착을 하며 매달리는 것도 스네이프는 싫지 않았다. 스네이프 역시 해리에 만만치 않게 이기적인 남자였다.

“착하지.”

어린애 다루는 선생처럼 말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네, 저 착해요. 울적한 목소리가 옷에 묻혀 웅웅거렸다. 스네이프는 앞치마 뒤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상반신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나자 해리도 몸을 일으켰다.

“세베루스?”
“왜? 지금 별론가? 저녁 먼저 먹고 할까, 포터?”

정말이지, 착하다는 소릴 들어야 할 건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제안한 위로의 방식에 금세 도취되었다. 셔츠만 벗겨내자 맨살에 앞치마만 두른 모습이 야릇했다. 해리는 앞치마를 가슴 옆으로 밀어 유두에 입을 대었다. 쪽, 소리 나게 빨아들이자 스네이프가 입가에 손가락을 놓고 흐응거렸다. 스네이프의 살이 아주 조금은 올랐어서, 전보다 가슴이 납작한 느낌은 적었다. 해리가 왼손으로 유두를 꼬집고, 오른손은 허리께를 쓸어내리니 스네이프가 다리를 벌렸다. 해리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어제도 먼저 몸에 거품을 묻히고 안겨와서 제 몸을 씻겨주더니. 왜 이렇게 음란하게 구냐고 스네이프를 희롱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위로해주려고 하는 스네이프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짓궂은 말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오러 정복을 입고 절 내려다 보는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정복의 황금단추와 장식이 멋스러웠다. 어리게만 보이는 해리가 그 옷을 입고 있으면 훨씬 어른스럽게 보였다. 자신은 금욕적인 정복을 여전히 단정하게 입은 채, 손으로는 저를 벗기고 있는 해리에게 스네이프는 음심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해리가 바지와 속옷까지 벗기면서 앞치마는 그대로 두는 게 우스웠다. 이런 보편적인 판타지를 제게 덧씌워보는 해리에 절로 비소가 났다.

“엄청 야해요, 세베루스….”

이렇게 삐쩍 마르기만한 몸이 대체 어디가. 스네이프는 해리의 이상성욕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몸에도 욕정할 수 있는 해리에게 고마운 쪽은 오히려 저였다. 그럼 계속 빠져 있어, 나한테. 스네이프는 속으로 생각하며 해리의 위로 올라 탔다. 소파에서의 기승위는 기시감을 일으켰다. 첫 섹스에서의 기억이 났다. 다이애건 앨리에 폴리주스를 마시고 다녀온 뒤, 스피너즈 엔드의 집 소파에서 나체로 변한 자신과 해리는 결국 몸을 섞었다. 그 때의 흥분은, 떠올리는 순간 지금도 스네이프의 허리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좋아? 해리.”
“응, 세베루스. 이런 위로라면 매일 밖에 나가 잔뜩 깨지고 돌아오고 싶을 정도예요.”
“흥, 그건 내가 싫은데. 해리 포터라는 트로피를 쥔 보람이 없잖아.”
“트로피? 하하핫. 트로피 부인 말고 트로피 남편인건가요?”
“그래, 구원자 해리 포터. 너 정도면 제법 쓸 만한 트로피지.”

노골적인 손길이 해리의 바지 앞섶을 쓸어 내렸다. 해리는 움찔하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웠다.

“저는 당신이 트로피 말고 다른 걸 손에 쥐어 줬으면 좋겠는데요? 부인.”
“흠, 한 번 봐보긴 하지.”

스네이프가 비뚜름히 웃으며 해리의 바지 벨트를 풀었다. 이어 버클이 풀리고 지퍼가 내려가, 앞섶이 벌어졌다. 이미 두툼하게 부어 오른 속옷이 보였다. 속옷을 내리자 바로 성기가 퉁겨 나왔다. 스네이프가 앞치마를 들추고 제 것을 해리의 성기와 겹쳐 손에 쥐었다.

“으음…….”

스네이프의 긴 손가락이 두 성기를 맞잡고 흔들었다. 해리는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기실, 그 피로의 원인이 스네이프와 제가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해리 포터를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스네이프 외의 사람들과 싸우는 건 해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결국 저를 용서해줄 거란 오만일 수도 있었다.

스네이프의 어깨 아래로 끈 하나가 흘러내렸다. 원래도 헐렁하게 묶여있는 앞치마라 벌어진 틈이 넓었다. 왼쪽 유두가 천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게 야릇했다. 해리가 손을 뻗어 붉은 유륜을 더듬고 엄지손톱으로 유두를 긁듯이 튕겼다. 으응! 제 위에 올라 앉아있는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조여 드는 게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숨이 달떴다. 해리는 흥분이 짙어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스네이프가 성기를 잡아 쓸어 올리는 손길이 빨라졌다. 해리 역시 엉덩이 뒤쪽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감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윽, 한 쪽 눈을 찡그리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등을 덮고 손을 움직였다. 살짝 지쳐있던 스네이프가 강하게 리드하는 해리의 손에 절정을 맡기는 게 느껴졌다. 가쁜 숨을 쉬는 스네이프의 얼굴 앞으로 긴 흑발이 쏟아졌다. 진짜 예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들으면 질색할 생각을 하면서 스퍼트를 올렸다. 불시에 두 성기에서 각자의 정액이 튀어 나왔다.

“하아… 흣, 하아….”

스네이프의 앞치마와 허벅지, 해리의 정복 위로 정액이 산발적으로 튀어 있었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바로 쓰러뜨리고 다시 위를 점령했다. 방금 사정한 흥분으로 스네이프의 눈동자가 탁했다. 야해, 세베루스. 속삭이면서 스네이프의 다리를 벌렸다. 넝마처럼 구겨진 앞치마가 스네이프의 매끈한 배 위로 올라가 있었다.

어젯밤, 욕조에서 섹스를 해서인지 오늘의 삽입은 비교적 쉬웠다. 해리는 정액이 발린 성기를 구멍에 금방 뿌리까지 박았다. 스네이프가 앞치마를 양 손으로 꽉 쥐었다. 구겨진 앞치마 뒤편의 하얀 나체와 까만 머리카락, 벌어진 입술에서 가쁜 숨이 새어 나오는 스네이프의 모습에 머릿속이 달떴다. 소파 위로 흐트러진 검은 물결이, 해리의 허릿짓에 찰랑거렸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보며 박는 게 좋았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한편 대담하기도 한 그가 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을 끌어 와 깍지를 꼈다. 살짝, 손가락에 입을 맞추니 스네이프의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해리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꾸만 스네이프에게 취하게 되었다. 뛰어난 포션 마스터의 달콤한 독이 해리의 머릿속을 몽롱하게 했다.

“사랑해, 해리.”

오늘 스네이프는 정말로 사려 깊었다. 해리는 차갑게 저를 보던 론의 파란 눈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것이 스네이프의 목적이었으므로, 기꺼이 해리는 그렇게 했다.


해리는 여전히 앞치마만 걸치고 있는 나신의 스네이프를 뒤에서 끌어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가 준비해놨던 저녁이 이미 다 식었다. 그렇지만 뱃 속을 가득 채운 충만감에 해리는 미적거렸다. 둘의 앞에 놓인 텔레비전에 그들의 모습이 비쳤다. 스네이프는 정복을 모두 갖춰 입은 해리에게 헐벗은 채 안겨 있는 제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부인이라기 보다는 창부 같았다. 그 편이 저에겐 더 어울리는 타이틀 같기도 했다. 그리고 새삼 제가 해리 포터의 부인이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웃겼다.

“배 안 고픈가?”
“세베루스, 밥 먹을까요? 배고프죠. 내가 퇴근하자 마자 붙잡고 안 놔줘서….”

스네이프는 속으로 네 껄 물고 안 놓은 건 내 쪽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얼굴만은 변함 없이 무표정했다.

“낮에 장 봐와서 냉장고 채워놨다. 이제 머글들이 만든 인스턴트는 먹고 싶어도 못 먹을 줄 알아.”
“세베루스, 제가 늘 그런 것만 먹고 산 건 아니었어요. 뭐, 어쨌든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나도 먹어야 하니까 당연한 거지.”
“네, 네. 우리 세브 많이 먹어요.”

은근슬쩍 애칭으로 부르는 꼴이 해리가 정말 벌써 남편 노릇을 하려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세브는 릴리가 저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창의력도 없는 놈.

“여보, 그만 제 몸 주무르시고 식탁으로 가죠?”

그리고 능수능란한 어른은 여전히 스네이프 쪽이었다. 해리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저를 비웃는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여보? 여보라고요? 바보 같이 앵무새처럼 여보 타령을 해대는 해리의 옆에서, 스네이프는 앞치마를 벗고 옷을 꿰어 입었다. 세브, 한 번만 더요. 한 번만 여보라고 더─ 스네이프는 그 간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식탁 앞에 앉았다.

식은 음식들에 보온마법이 걸리고 각자의 앞에 놓였다. 해리는 여전히 눈을 빛내면서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하여튼 욕심도 많은 놈이다. 해리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가장 사적이고 가벼운 틈을 채운 유일한 사람으로 만족할 줄을 몰랐다.

“얼른 식도 올리고 결혼했다고 남들한테 다 밝히고 싶어요. 진짜 세베루스가 내 사람이라고!”
“그 날 아무 생각도 없다가 청혼한 것치곤 꽤나 본격적인데, 포터? 미네르바가 식이니 어쩌니 한 말에 또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가 솔깃해서 그러는 거겠지만.”
“와, 정곡. 아파요, 세브.”
“포터 네가 아무 생각 없는 건 내가 잘 아니까.”

샐러드에 올린 귤을 씹자 입에서 상큼한 맛이 터졌다. 샐러드를 뒤적이는 스네이프는 감흥없는 눈이었다. 스네이프는 결혼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 앞에서 굳이 예복을 갖춰 입고 구경거리가 되는 일은 사양이었다. 해리가 하고 싶다하면 동참해줄 마음 정도야 있지만, 식 자체에 흥미는 전혀 없었다. 뭐, 남들 앞에 해리 포터를 온전히 제 것으로 인정 받는 일은 꽤 마음에 들었다. 잊고 있었던 슬리데린의 기질일 터였다. 제가 이 마법세계 영웅을 차지하는 일은 트로피를 얻은 양 기쁜 것이었다.

“결혼식 같은 건 관심 없어. 하지만 포터 네가 하고 싶다면.”
“왜요? 부를 사람 없어서 그래요?”
“그것 뿐 아니라… 뭐, 지금 내가 친구 없다고 비웃는 건가?”
“아뇨. 저도 제 결혼식에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딱 세베루스 스네이프 한 사람 뿐이라서요.”

입 안에 채소 잎파리가 굴러갔다. 스네이프는 씹는 것도 멈춘 채로 눈 앞의 해리를 봤다. 다정하게 웃는 얼굴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아는 해리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부르고 싶을 것인데. 저를 배려해준답시고 저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 것이 바보 같았다.

“그것보다, 헤르미온느가 청혼 얘기에 반지부터 확인하는 게 신경 쓰였어요. 새삼 제가 한 프러포즈가 진짜 허접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충분히 감동 받았었다. 오히려 스네이프는 해리를 괜스레 신경쓰이게 만드는 주변의 지인들이 짜증스러웠다.

“반지 같은 걸 사왔다간 리덕토를 쓸 테니 그런 줄 알아, 포터.”
“아…… 어, 네….”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난.”
“저 말고는요?”
“……그래.”

스네이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다시 포크를 깨작거렸다. 해리는 흐흣,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보았다. 귀여워.

“그래도 우리가 부부란 걸 티내는 증표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세베루스 생각은?”
“네가 원한다면 나도 상관 없다.”
“흐음.”

해리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창의력이 떨어지는 머리라 반지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애초에 그런 머리이니 지니에게 루비 반지나 준비했던 것이니까. 해리 생각에도 다툼의 원인이었던 반지를 준비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일 듯 했다. 스네이프가 리덕토를 쓸 거란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리덕토로 부서졌던 루비 반지의 붉은 잔상이 해리의 머릿속에 번졌다.

반지가 아니면… 목걸이? 귀걸이? 팔찌? 어떤 걸 떠올려도 반지보다 착용에 거추장스런 장식물이 떠올랐다. 그냥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소유이다, 이런 글자를 확 몸에 새겨 버릴까.

아. 해리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스네이프의 왼팔을 끌어당겼다. 식사 중에 느닷없이 팔이 잡힌 스네이프가 미간을 구겼다. 다행히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팔이라 식사는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끼가 왜 이래 하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해리는 그에 아랑곳 않고, 스네이프의 당겨진 왼팔의 셔츠 소매를 걷었다. 그 왼팔에는 볼드모트가 죽은 후 아주 희미하게 남은 데스 이터의 표식이 있었다. 티가 안 날 정도로 연해서 줄곧 크게 신경쓰이지 않던 것이었다. 스네이프가 눈썹을 치켜 떴다.

“뭐하는 거냐, 포터?”
“볼드모트…… 이 개자식.”
“정말 뜬금 없군, 포터. 갑자기 뭐지?”
“나보다 먼저 당신 몸에 흔적을 남기다니. 짜증나서요.”
“하, 이제서야?”
“우리 사랑의 증표. 몸에 새기는 건 어때요?”
“어둠의 마왕의 호크룩스였던 놈이라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거냐? 취향이 둘이서 아주 똑같군.”

신경질적으로 해리에게서 팔을 거둬간 스네이프가 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하지만 몸에 해리와의 관계에 대한 증명을 새긴다는 건. 솔직히 나쁘진 않았다. 입에서 뱀이 튀어나가는 해골 문신 따위를 팔에 새길 정도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였으니. 볼드모트랑 취향이 비슷한 건 오히려 스네이프 쪽일지도 몰랐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말에도 꽤 진지하게 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으며 식사를 마무리 했다. 입은 먹어라, 스네이프의 말에 해리의 포크가 다시 움직였다.


아침이었다. 스네이프는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최근 현실세계에서 시달리고 있는 해리는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소리나지 않게 움직이는 건 스네이프의 특기였다. 조용히 창을 여니 부엉이가 예언자일보를 떨어뜨렸다. 부엉이가 내민 주머니에 시클을 넣어주고 스네이프는 바닥에서 신문을 주웠다.

1면부터 아주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했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 한심한 유명인은 대체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스네이프는 발로 그 유명인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유혹은 상당했지만 보류했다. 스네이프는 의자에 앉아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해리 포터-지니 위즐리 결별! 영웅의 새로운 사랑 세베루스 스네이프> 라. 이번 부수는 기가 막히게 잘 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1면을 차지한 사진에는 마주 보고 대치하는 론과 해리가 있었다. 그 옆에 동그랗게 얼굴만 잘라 넣은 지니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도 있었다. 다이애건 앨리 한복판에서 마법사들 다 들리게 이런 대화를 나눴다니, 한심한 포터. 물론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 포터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음… 세브? 잘 잤어요?”

잠에서 깬 해리가 눈을 비비며 안경을 찾아 썼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앞으로 신문을 던졌다.

“축하한다, 포터. 큰 힘 안 들이고 네 소원대로 우리 사이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어리둥절하게 신문을 펴던 해리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리는 스네이프 교수의 관점에서도, 객관적으로도 변함 없는 그리핀도르의 사고뭉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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