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바이탈 신호가 삐삐삐 규칙적으로 들렸다. 공중에 띄워진 형광연두색의 제 생체신호를 바라보다가 해리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치유사 한 명이 서있었다. 해리는 시선을 내려 환복을 입은 제 몸을 바라봤다. 병실에는 특유의 약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용한 병실로 미루어, 그 진동하는 약물 냄새는 제 몸에 들이부어진 약물의 냄새인 듯 했다.
치유사가 눈을 뜬 해리를 발견했다. 해리 포터씨? 물음에 해리는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치유사는 곧장 밖으로 나가, 가드 중인 오러 론에게 해리가 눈을 뜬 사실을 알렸다. 다시 해리에게 돌아온 치유사는 지금 속이 어떤지 물었다. 울렁거려요? 메스껍나요? 구토 하고 싶으신가요? 불편한 거 있어요? 해리는 살짝 속이 메스껍다고 말했다. 치유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약물을 준비하러 나갔다. 병실은 다시 제 생체신호의 소리만 들렸다.
세베루스는, 아직 내 소식을 듣지 못했나? 해리는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절 걱정하는 스네이프의 얼굴만 봐도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을 것이다. 게다가 말도 안되는 함정에 빠져 제 발로 적의 소굴까지 들어갔던 걸 알면…… 얼마나 한심스러워하고 제게 화를 낼지.
“해리.”
“론.”
“진짜 사람 좀 놀래키지 마, 너.”
A팀 오러들과 합류한 뒤, 론은 해리가 있을 사창가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이미 격전은 벌어진 뒤였다. 녹턴 앨리의 목격자들은 비협조적이다. 오러들과 론은 골목을 발로 뛰며 해리를 찾았다. 막다른 골목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해리를 발견했을 때, 론은 온 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다른 오러들이 근처의 데스 이터를 발견하고 병력을 소집했다. 론은 들것에 해리를 옮기고 오러들과 성 뭉고로 순간이동했다.
길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해리에게 치유사가 다섯이 달라 붙어 진단을 하고 치유마법과 약물 투여를 실시했다. 숨가쁘게 돌아가던 현장이 조금 나아졌을 때, 론도 제 숨을 토할 수 있었을 때에야 스네이프를 부를 생각이 났다.
“스네이프는 잠깐 밥 먹으러 갔어.”
“세베루스도 불렀어?!”
해리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윽! 바로 느껴지는 배의 통증에 해리는 웅크려서 소리도 못내고 앓았다. 이렇게 아플 수 있다니…. 론은 치유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해리에게 건넸다. 다행히 왼팔은 멀쩡해서 해리는 왼손으로 받아 마셨다.
“치유사들이 보호자가 필요하대서. 근데 스네이프가 너 다친 거 보고 눈 돌아가서 어쨌는 줄 알아?”
“뭐……?”
“널 이렇게 만든 용의자 어디 있냐고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오러들 밀치고 찾으려고 난리였어. 방금 전까지 충격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니. 네 마누라 무섭더라, 야.”
휴에게 듣고 웃은 호칭을 그대로 써먹으며 론이 싱긋 웃었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론을 쳐다보았다. 네가 지어낸 얘기 아니고? 그에 론은 웃음을 터뜨리며 목격한 오러가 스무 명은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휴 씨가 수면 물약 먹여서 억지로 재웠고, 깨고나서는 엄마랑 조지가 스네이프 데리고 저녁 먹으러 나간 거야.”
“뭐? 몰리 아줌마랑 조지…?”
해리는 더 기가 막혀서 눈만 동그랗게 키웠다. 몰리 아줌마랑 조지가 세베루스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수백 개는 뜨는 느낌이었다.
“해리 네 보호자가 잠들어 있는데 별 수 있냐. 치유사들은 자꾸 해리 포터씨 보호자 찾고, 그래서 우리 엄마 불렀어.”
“세상에……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서 어떡하지. 세브가 잘 있을까?”
해리는 이런 식으로 스네이프가 위즐리, 특히 몰리와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어떨지 걱정도 되었다. 론은 너무 걱정 말라고, 조지도 같이 있다고 해리를 안심시켰다. 확실히 그 말에 마음이 좀 놓였다.
치유사가 메스꺼움을 없애는 약을 들고 들어왔다. 해리는 감사합니다, 인사 하고 약물을 받아 마셨다. 먹는 순간엔 메스꺼움이 증폭 되는 비린 맛에 토할 뻔 했지만, 금방 속이 편안해졌다. 치유사는 현재 포터 씨의 장기가 끊어져서 연결중이며 현재 시점까지 62%가 이어졌다고 가르쳐주었다. 또한 부러졌던 발목은 정상이 되었으나, 걷는 건 다음날부터 하기를 추천했다. 해리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유사가 나가자 해리는 론에게 물었다.
“그리드는?”
“벽에 부딪히면서 척추가 손상 됐어. 지금 치유사들이 뼈를 다시 재구축 중이야. 정신은 아직 안 돌아왔어. 정신 차리는대로 베리타세룸 먹이고 조사 시작될 거고. 그건 국장님이 할 거래.”
“그래? 그럼 뭐, 됐네.”
입원 핑계로 난 쉴 수 있겠다. 해리가 씨익 웃으며 론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게, 네 몫까지 앞으로 고생은 내 차지네, 해리. 론이 허리에 손을 차고 짐짓 한숨을 흘려 보였다. 해리는 배의 통증탓에 제대로 웃을 수가 없었다. 윽, 으흑, 웃기지 좀, 마, 론! 해리가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론이 통쾌하게 웃었다.
끼익, 뒤쪽의 문이 열리고 복도의 환한 빛이 길쭉하게 들어왔다. 해리는 바로 문을 돌아 보았다.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순식간에 죄인이 된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스네이프는 걱정으로 굳은 얼굴로 해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해리가 눈을 뜬 걸 보았다. 스네이프가 손을 뻗어 해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론은 연인간 특유의 손발이 곱아드는 분위기에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가드 일을 하러 병실을 나갔다. 약간 어둑한 병실에는 해리와 스네이프만이 남았다.
“세베루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 많이 놀랐다, 포터. 네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니까.”
스네이프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 해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과 코 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바로 맺혔다. 세베루스를 이렇게 걱정시키다니 자신이 죽일 놈이었다. 스네이프는 어린 신랑이 눈물을 흘리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스네이프가 손등으로 해리가 흘린 눈물을 훔쳐냈다. 침상의 난간을 내리고 해리 옆에 앉았다.
“해리. 눈 떴으니까 됐어.”
“미안해요…… 미안해, 세베루스. 다치지 않도록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맞아. 그랬어야지.”
스네이프가 작게 웃으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의 오른뺨에 손을 올린 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두 얼굴이 마주 보았다. 해리는 물기 어린 시야로 스네이프가 흐려 보이는 것에 짜증이 났다. 해리는 고개를 숙여 스네이프의 뺨에 제 뺨을 붙이고 살끼리 비볐다. 눈물 탓에 축축하고 부드러운 해리의 뺨을 느끼면서 스네이프는 눈을 감았다.
“난동 부렸다면서요. 용의자를 찾아내서 어쩔 생각이었어요?”
“우선 네 장기처럼 그 놈의 내장을 다 끊어놓고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선사해줬겠지.”
“세상에. 세베루스, 토 나와요.”
큭큭 웃다가 또 해리는 배의 통증에 악 소리도 못내고 앓았다. 스네이프는 인상을 찡그리고 해리를 바라봤다. 아픈 걸 제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속만 상했다. 이런 거지 같은 직업을 대체 왜 가졌냐고 해리에게 따지고 싶기도 했다. 제가 평화롭게 만든 세상에 목숨 걸고 또 무얼 지키고 싶어서. 해리는 바로 어제 오러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오늘 죽을 뻔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해리는 절대 죽을 뻔한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스네이프에겐 심각한 공포였다.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짓씹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괴로움이 가득차 보였다. 해리는 제가 느끼는 아픔까지 본인도 느끼려 하는 것 같은 스네이프에 미안하기도 하고, 애처로울 만큼 그가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 목의 번개 흉터를 찾아 입술을 맞췄다. 스네이프는 오늘 이른 아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해리에 저를 맡기고 있었다.
“해리, 용의자가 깨어났…! ……!!!!!”
스네이프는 밝은 복도의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문 앞에는 론이 서있었다. 론은 제 오랜 친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를 애무하는 듯한 모습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해리는 론이 문을 연 걸 알았음에도, 아직까지 스네이프의 목에서 얼굴을 거둬가지 않았다. 결국 스네이프가 해리를 떼어내었다. 론은 기가 막힌 듯 둘을 바라봤다. 해리는 아쉽다는 얼굴로 스네이프의 목을 보다가 짜증스런 시선을 론에게 던졌다.
“국장님이 알아서 조사 하신다며. 왜 방해하고 난리야, 론.”
“하…! 하…! 나 참내…! 야, 해리, 내가 너 발견해서 살려서 여기까지 데려왔거든…!!”
“그건 고마워.”
론은 기가 막혀서 하! 참나! 하! 하고 헛숨을 쉬며 문을 쾅 닫았다. 해리는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횡격막을 붙잡고 꾹 참았다.
“헤르미온느랑 키스해대던 론에게 복수하는 기분이라 즐겁네요.”
“지니 위즐리랑은 안 이랬나?”
컥! 해리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레에 들릴 뻔했다. 사레를 참았다지만, 허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아서 해리는 난간 한쪽을 붙잡고 목 안으로 고통스런 비명을 참았다. 스네이프는 쯧, 혀를 차고 쌓여있는 진통제를 건넸다. 해리는 이제는 생리적인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약을 또 받아 마셨다.
“지니는 아직 학생이라고요. 아으으….”
“그래? 네가 날 물고 빠는 걸 보면 거의 섹스중독 수준이지 않나.”
“세베루스, 그건 당신이니까….”
당신이 날 꼴리게 만들어 놓고 어떡하라고요, 해리는 입 안으로만 맴도는 말을 짓씹어 넘겼다. 갑작스레 스네이프가 지니를 언급해서 너무 놀라, 사리분별 없이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해리는 진통제를 마신 입술을 닦으며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표정.
“오늘 학교에 갔어. 미네르바에게 애니마구스를 배우기로 했다.”
“아, 정말요?! 잘 배우고 왔어요?”
해리는 반색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에 빛이 들어왔다.
“내 생각보다 더 어려워. 짜증스럽더군.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내가 암사슴이 안 되면 어쩌나 싶고.”
“당연히 되죠. 너무 걱정말아요. 당신은 내가 아는 마법사 중에 제일 대단하니까요, 세브.”
“흥, 우습군….”
아부 하지 않아도 노력할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해리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기분 좋게 웃으며 저를 보는 해리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수업을 받고 돌아왔는데, 다쳤다는 심장 떨리는 소식이나 전해주는 미운 연인이라니. 퇴원하자마자 집에 가둬놓을까, 스네이프는 바로 어제 자길 가둬놓고 싶다던 해리의 말에 기겁한 걸 스스로 뒤집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지니 위즐리를 만나서 대화도 했다.”
“네?”
해리가 눈을 키웠다. 스네이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해리를 봤다.
“이제 널 다 잊었다던데? 몰리보다 받아들이는 게 낫더군.”
“아…….”
“이제 부담 갖지 마라, 포터. 위즐리들은 이미 널 받아줬으니까.”
“세베루스도 함께요? 몰리 아줌마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어요?”
“뭐, 예전과 비슷하게.”
해리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네이프가 거짓말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큰 산 이었던 벽 하나가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위즐리 가족, 헤르미온느를 비롯한 해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차례로 스네이프와 자신의 관계를 받아들여줘 간다. 그들이 저를 아껴서일까? 세베루스가 사실은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이어서일까? 이것이 제 주관적인 기준이라 해도 좋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그 견고한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어깨에 멀쩡한 왼팔을 둘러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얼굴 옆으로 제 머리를 붙이며 얌전히 안겼다. 해리의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고, 물약 냄새가 섞인 체향이 코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평소와 다른 냄새에 스네이프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병원의 냄새가 묻은 해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른 회복해라, 포터.”
“네, 빨리 나아서 집으로 돌아갈게요.”
“그래…. 나도, 애니마구스 열심히 배워 놓겠다.”
“응.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 세베루스.”
부드럽게 입술이 닿였다. 살짝, 살짝 서로의 입술을 축이듯 조심스럽고 간지러운 키스였다.
해리가 입원한 후로 나흘이 지났다.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였던 그리드 파인즈는 베리타세룸을 마시고 오러국장의 앞에서 진실을 술술 불었다. 연계 돼있던 다른 데스 이터 두 명이 더 잡혔고, 스큅 창부는 여럿이 매수 된 상황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해리를 노린 이유는 역시나 해리 포터가 이 마법세계의 구원자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리는 오러이기까지 했다. 오러국장실에 보관중인 타임터너를 탈취하기엔 해리를 이용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해보였을 터였다. 그리드는 해리의 머리카락을 채취해, 폴리주스로 변신을 한 뒤 마법부에 침입할 예정이었던 것까지 아낌없이 발설했다. 마법세계 영웅의 모습에다, 오러가 오러국장실을 찾는 것은 전혀 의심 받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해리는 자신이 그들에게 납치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수사 결과를 듣고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 신물 나는 마법사회는 해리 포터를 어떻게든 이용하려 들려고 야단이었다. 운명의 장난으로 그 빌어먹을 번개무늬 흉터가 이마에 새겨진 이후로, 해리의 인생은 해리의 것만이 아니었다. 물론 스네이프의 인생도 스네이프의 것이 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스네이프 또한 해리에게 삶이 종속되었다. 그리고 이제 스네이프는, 기꺼이 해리 포터만을 지키며 살겠다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파인즈, 그 놈은 꼭 내 손으로 죽여 놓겠어.”
말포이 저택의 식탁에도 앉지 못했던, 그 젊은 데스 이터 놈 따위가, 감히. 스네이프가 그 말을 할 때, 너무나 차갑고 매서워 보여서 해리는 이미 그리드가 아즈카반에 수감된 상황을 몹시도 다행히 여겼다. 아무리 대상이 데스 이터라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는 제 연인이 살인자가 돼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그걸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인 걸 알았기에, 해리는 차갑게 분노를 표출하는 그의 앞에서 등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해리의 끊어졌던 장기는 다시 잘 연결되었다. 과연 성 뭉고 최고의 치유사들다웠다. 산재 처리 되어 해리의 치료비, 입원비도 마법부에서 모두 내주었다. 해리는 다른 오러들이 바쁘게 일하는 동안, 그저 병실의 침대에 편안히 누워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맞아주기만 하면 되는 날들을 보냈다. 유일한 고난은, 장이 연결된 후 첫 식사로 나온 오트밀 죽이 정말 엄청나게 맛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스네이프가 챙겨주는 고단백, 고영양에 맛까지 끝내주는 식사가 그리워 해리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포터 씨, 오늘 퇴원하셔도 됩니다. 주말까지 머무르고 싶으신가요?”
해리는 토, 일요일 출근을 할까, 병원에 주말 이틀 더 박혀 있을까를 두고 잠깐 고민했다. 어쨌든 직장에 나가더라도 스네이프가 덜 고생하게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간 스네이프가 보호자 침대에서 그 긴 몸을 쭈그리고 자는 게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마법으로 더 늘린 침대였는데도, 해리 눈엔 정말 불쌍해 보였다. 집에 가라고 해도 네가 없는 그 큰 집이 싫다, 하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그가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스네이프가 계속 해리의 병실만 지킨 건 아니었다. 점심 때부터 2시 반까지는 호그와트로 애니마구스 수업을 받으러 다녀왔다.
애니마구스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스네이프는 굉장히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해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텐데, 스네이프는 이상하게 초조해보였다.
“…세베루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팡이를 내던지며 보호자침대에 주저앉은 그는 짜증스럽게 팔짱을 꼈다. 해리는 머쓱하게 스네이프를 보았다.
“오늘 퇴원하기로 했어요. 짐은 챙겼고, 3시까지 퇴원 수속하면 된대요.”
“뭐? 퇴원? 정말로 가도 된다고? 아직 아픈데 네가 고집부린 건 아니겠지!”
짜증이 묻어난 신경질적인 말에 해리는 한숨을 쉬었다. 저 모습은 애니마구스 수업 탓이다.
“저 진짜 괜찮아졌어요. 치유사가 퇴원해도 된다 그랬다니까요.”
“확인하고 오지.”
스네이프가 로브를 펄럭이며 일어섰다. 해리의 미간도 순간 좁혀졌다.
“세베루스! 내 말 못 믿는 거예요?!”
“그냥 확인한다고! 소리 지르지 마.”
“제가 언제 소리를 질렀다고 그래요! 세브 당신이나 나한테 짜증부리지 말라고요.”
“내가 누구때문에 그 수업을 받는데……!”
왈칵 분노를 쏟아내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정말이지 익숙한 교수의 모습 그자체였다. 해리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고 찡그렸다.
“세베루스, 맥고나걸 교수님조차도 애니마구스 익히는 데는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하셨다면서요. 힘든 마법인 건 이해해요,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면 오히려 좋아질 수도…….”
이미 해리가 여러 차례 얘기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스네이프는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초조함을 숨겼으나, 갈수록 자신의 응원에도 쉽게 반박하고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콧방귀를 뀌고 차갑게 병실을 나가 버렸다. 아마도 치유사에게 퇴원 확인을 물으러 갔을 것이다. 해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환복의 단추를 풀었다. 피와 흙이 묻은 정복에 대충 얼룩을 제거 하는 마법을 걸고 입었다.
스네이프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말없이 해리의 짐가방을 들고 병실을 먼저 나갔다. 병원의 벽난로에는 퇴원 줄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플루 이동도 퇴원하는 환자 몸에 부담일 수 있지만, 순간이동보다는 나은 방법이긴 했다. 스네이프는 긴 줄을 보더니 해리의 손목을 잡고 문 쪽으로 이끌었다.
“뭐예요?”
“지하철이나, 택시… 그걸 타도록 하지.”
“머글 돈이 지금 없는데요?”
“컨푼더스를 걸면….”
“세베루스, 그걸 범죄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난 아직 오러 신분이거든요.”
돈을 안 내려고 머글에게 혼동마법을 쓰자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머글의 운송수단이 느리긴 하지만 제 몸에 부담이 덜 가는 방법이긴 했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갔다가 기사를 기다리게 하고, 머글 돈을 쥐여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성질을 부렸다. 해리는 더 이상 스네이프의 화를 돋우기 싫어서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택시를 타고나서도 스네이프는 냉전을 지속했다. 해리는 원하지 않은 전쟁이긴 했지만, 그걸 받아들여주는 것도 제 몫인 듯 했다. 스네이프는 지금 제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여전한 남성의 몸으로 그런 생각을 해주고 있는데다, 실제 마법 배우기에 애쓰고 있는데 제대로 되고 있지도 않았다. 애니마구스를 성공한 이후에도 그가 진짜 암사슴이 될지, 정말 암사슴이 된다 하더라도 스네이프가 생각한 여성생식기관만 몸에서 변화시키는 방법이 가능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가 초조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 같았다.
해리가 현관문을 닫았다. 스네이프는 집으로 가서 머글 돈을 찾아와 기사에게 돈을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의 뒤통수를 내려다 보던 해리가 스네이프 옆의 바닥에 앉았다. 슥, 슥 뒤통수를 쓸어내리니 스네이프는 움찔하더니 그냥 그대로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먼저 아이를 원했는데, 당신 혼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어서요.”
“시끄러워. 나도 내 아일 갖고 싶어져서 하는 거니까.”
그 말엔 해리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사락,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스네이프의 얇고 까만 머리카락의 느낌도 좋았다.
“빌어먹을, 그 제임스 포터 놈도 했는데 내가 이렇게 갈피를 못 잡다니.”
그게 제일 분했다. 스네이프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삭혔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스네이프의 등을 토닥였다. 어쨌든 해리에게는 제임스가 아버지였으므로 이럴 때마다 눈치를 보게 됐다. 게다가 외모적으로도 너무 닮아서, 이젠 스네이프가 절 아빠와 겹쳐 보지 않는다지만 역시 신경이 쓰였다.
“우리 아기 이름이나 생각해볼까요?”
이럴 땐 화제를 돌려야 한다. 스네이프가 소파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돌려 해리 쪽을 보았다. 귀여워…. 해리는 또 눈에서 하트가 튀어 나오며 스네이프를 보았다.
“딸일지 아들일지도 모르는데.”
“왠지 우리 사이 첫 애는 아들일 것 같아요.”
“ ‘첫 애’? 너 지금 첫 애라고 했나, 포터?”
대체 몇 명을 원하는 거야 이 자식. 스네이프는 황당한 눈으로 해리를 쳐다 봤다. 해리는 제 말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헤실거리며 넘겼다.
“딸이면 에일린…? 세브, 어때요?”
“내 어머니의 이름? 어떻게 알았지?”
“아, 혼혈왕자 교과서 때 헤르미온느가 호그와트 신문에서 프린스라는 성을 찾아 왔거든요. 교과서 주인이 이 사람일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 분이 당신 어머니잖아요.”
“그런 기구한 인생을 산 내 어머니의 이름을, 우리 딸 이름에 붙이겠다고?”
스네이프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해리는 바닥에 여전히 앉아서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팔을 올리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릴리는 더 이상하지 않나요……?”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딸 이름이 릴리라니, 그건 진짜 터무니 없는 작명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여자는 릴리 뿐인데, 왜?”
아…… 그 말에 질투를 느껴도 되는 걸까……. 해리는 아들인 제가 자기 어머니를 질투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좋아요, 딸 이름은 릴리. 해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절대 딸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딸이 태어난다면 이 생각이 무색하게 엄청나게 사랑해버릴 것 같긴 하지만.
“아들 이름은 알버스 어때요?”
“알버스 덤블도어? 그 이름 달고 태어났다가 그 괴짜 닮아가면 어쩌려고.”
“우리 아이인데 우릴 닮지, 누굴 닮아요.”
“흠, 그리핀도르에 들어갈 것 같은 이름인데….”
“하핫, 그게 제일 걱정되는 거예요? 그럼 미들네임에 슬리데린인 당신 이름을 넣는 거 어때요.”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라. 정말 괴이한 조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알버스에, 세베루스에, 성은 ‘포터’라니. 무척이나 이상한 이름인데, 왜인지 마음에 꼭 들었다. 스네이프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리도 저를 올려다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저도 모르게 무엇도 들지 않은 배를 쓰다듬었다가, 스네이프는 웃음을 흘렸다. 얼른 아이를 가지고 싶어져서 괴로운 애니마구스 수업도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라 애니마구스 수업이 없어. 집에서 혼자 연습해볼 생각이다.”
“아, 저도 진짜 출근 안 하고 옆에서 봐주고 싶은데 일을 안 나갈 수는 없고…….”
“이제 2주 정도 남았나.”
“네, 이번 달 말까지만 일 하기로 했으니까요. 국장님도 사직서도 냈는데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따로 보너스도 챙겨준대요.”
“흥, 오러국장이라는 놈이 국장실의 타임터너도 제대로 간수 못하고 말이야.”
스네이프는 불만스런 얼굴로 팔짱을 꼈다. 해리는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음, 정말 내 걱정밖에 안 하시긴.
“타임터너는 계속 보관한다고 하던가?”
“이번 일도 그렇고, 시간을 돌려서 볼드모트가 돌아올 가능성이 아무래도 보이다 보니까, 타임터너를 없앤데요.”
“진작 그랬어야지. 괜히 포터 너만 다치고….”
“그래도 이번 계기로 데스 이터 세 명도 잡고, 녹턴 앨리 어디에 영향이 퍼져 있는지도 윤곽이 좀 잡혔어요.”
“무슨 상관이야, 네가 다쳤는데.”
정말 스네이프는 마법세계의 안전 같은 것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해리 포터만 제 시야에 두고, 신경 쓰는 모습에 해리는 진작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너무 오랜 시간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뭐, 앞으로는 해달라는 거 다 들어주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런 가벼운 생각도 들었다.
“…세베루스.”
“왜, 포터.”
“애니마구스 성공하면, 그… 오러랑 범죄자, 그거 해줄테니까…… 힘내봐요.”
“풉.”
그런 걸 응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다니. 내가 포터 너 같은 줄 아나? 스네이프는 빈정대려다 그냥 말았다. 어쨌든 꽤 마음에 드는 성공 보상이기는 했다. 해리는 거절 없는 스네이프에 하, 하고 그냥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1999년 5월 28일, 금요일.
벌써 다음주 월요일이면 5월도 끝이 났다. 스네이프가 애니마구스를 연습한지도 오늘로 19일째였다. 스네이프는 이제 감각을 꽤나 익혔다. 실제로 동물로 변신한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동물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이미 제 몸은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약간의 두려움이 모종의 불안을 야기해 동물로의 변신까지는 막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오늘 역시 맥고나걸의 옆에서 대연회장으로 걸어갔다. 3주째 학교를 드나들었더니 이제는 학생들도 스네이프에게 익숙하게 인사 했다. 스네이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 번의 눈길을 주면서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여전히 해리와 스네이프의 신문에 난 스캔들이 루머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강직하게 냉정한 태도가 그 믿음을 견고히 했다.
네빌은 이제 꽤 자연스레 스네이프와 대화를 했다. 맥고나걸과의 용무가 끝나고 약초재배실에 같이 가서 박하의 어린 가지를 수확해가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하기까지 했다. 스네이프는 오늘도 해리가 출근해서 집이 비었으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만 보내고 나면 연인은 오러 일을 관두게 된다.
“세베루스, 내가 보기엔 이미 자넨 성공하고도 남았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변신 직전에 멈추는 건가?”
매쉬드 포테이토를 떠서 그릇에 담으며 맥고나걸이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샐러드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대답을 미뤘다.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어떤?”
“꼭 돼야하는 동물의 모습이 될 수 있을지가 저를 두렵게 하는군요.”
“자네는 패트로누스와 똑같은 동물이 아닌, 다른 모습을 원하는 건가?”
“아뇨, 그 반대입니다. 반드시 패트로누스와 같은 동물이 돼야 합니다.”
맥고나걸은 감자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걱정으로 변신을 실패하고 있구만. 그러나 구태여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어차피 결국에는 치밀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똑똑한 제자가 변신에 성공할 것이니 말이었다.
다음주부터 학교는 O.W.L과 N.E.W.T가 실시 되었다. 교내에 도는 기운도 시험이 임박해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스네이프는 음식을 먹으며 학생들의 식탁 풍경을 감상했다. 책을 읽느라 바쁜 졸업반 학생들 중에서도,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직접 정리한 길고 긴 양피지 두루마리에 푹 빠져 있었다. 지니는 퀴디치 선수로 선발 되어 졸업시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주에 해리를 데리고 오게, 세베루스.”
“포터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혹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건으로….”
“아니, 뭔가 변화를 주지 않으면 자네의 변신이 성공하기 어려워 보여서 말이야.”
“미네르바, 포터가 있다는 차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다고는─”
“세베루스, 이건 스승으로서 하는 조언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데리고 오도록 하죠. 대신 포터가 직장에 다녀오니 저녁 시간으로 시간을 변경했으면 합니다.”
맥고나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네이프는 괜스레 동의했다고 생각하며 마저 식사를 했다.
“교수님, 이 가지를 따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이렇게 유연하게 늘어나는 게 안에 수분이 더 많고, 말렸을 때에는…….”
오늘도 동물로의 변신은 직전에서 멈춘 애니마구스 수업이 끝나고, 네빌의 제안대로 스네이프는 약초 재배실에 들렀다. 마법약에서는 자신이 학생이 아니라 트롤을 가르치고 있는지 헷갈리던 네빌 롱바텀이었다. 그러나 네빌은 제 전공 분야에서는 스네이프에게 조언까지 해주며 수확을 도왔다. 마법약과 약초학은 연관성이 굉장히 높은 학문이었기에, 스네이프는 네빌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었다. 덕분에 1시간 쯤 뒤에는 매우 훌륭한 박하의 어린 가지를 한 바구니 가득 담을 수 있었다.
“고맙다, 롱바텀.”
그리고 스네이프는 네빌에게 감사의 표시를 쉽게 내뱉었다. 네빌은 귀까지 빨개져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내 흙 묻은 장갑을 벗고 이마의 땀을 훔친 네빌이 생수를 가져 왔다. 스네이프는 물을 받아 마시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시험이 코앞이라 이 좋은 날씨에도 그들은 생기를 잃어 보였다. 스네이프는 그런 모습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 붉은 머리 여학생이 주문을 몇 가지 선보이고, 주변 학생들 몇이 까르르 웃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그녀가 지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빌은 물병을 손에 꼭 쥔 채 그들을 계속 지켜 보았다. 스네이프는 무심한 눈으로 네빌을 보다 입을 열었다.
“고백 하지 그러나?”
“푸웁─!”
아, 더럽군. 스네이프는 부드럽게 그 옆을 비켜 서서 네빌의 입에서 물이 튀는 것에 맞지는 않았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네빌이 미친듯이 콜록거리면서도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해리도 그러더니 이 놈들은 입에 뭔가를 물고 있다가 뱉는 게 취미인가. 고상하지 못한 그리핀도르의 습성이려니, 슬리데린의 오랜 기숙사 사감은 생각했다.
“티…… 티가 많이 나나요…?”
네빌은 쑥스러움에 얼굴을 가리려 애쓰며 간신히 물었다. 스네이프는 관심 없다는 얼굴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네빌은 민망해서 열 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꾹꾹 눌렀다. 늦봄의 따가운 햇살이 네빌을 더 무덥게 했다.
“그러고 보니, 지니 위즐리의 수업 일정까지 외우고 있었지.”
“아… 그…… 저기, 교수님…. 노, 놀리시는 건가요?”
“포터랑도 헤어졌는데 왜 여태 내버려 뒀지?”
“해리랑 헤어졌다고 지니가 저랑 이어질 수는…….”
“왜 없지?”
스네이프는 마법약 수업에서의 네빌을 보듯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네빌은 땀이 나는듯 옷깃을 빠르게 펄럭였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연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감정이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네빌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네빌의 조언 덕에 해리가 교수 직을 생각하기도 했고, 학교에 방문할 때 종종 자잘한 도움을 받았으며, 오늘도 좋은 약재를 덕분에 얻었기에 이 정도 참견은 해줄 수 있는 것 같았다. 고작 열아홉, 열여덟 주제에 무슨 심각한 사랑이라고 혼자 쭈그러들어서 말도 못하는지 스네이프는 어이가 없었다. 그럴거면 완벽하게 티도 내지 말던가. 쯧, 스네이프는 혀를 찼다.
“나랑 포터가 만나는 것보다는 말이 되잖나, 롱바텀.”
무뚝뚝한 교수의 말에 네빌은 눈을 번쩍 뜨고 그를 올려다 봤다. 이런 말을 하실 줄은. 근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긴 한데, 정말로 힘이 되는 말이긴 했다. 네빌은 스네이프와 지니 쪽을 번갈아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다 역시 안되겠는지 입을 열었다.
“해리랑 교수님, 정말 잘 어울려요!”
아, 그래?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네빌을 보았다.
“그런 평가 없이도 어차피 포터랑은 이미 만나고 있고, 변하는 건 없다, 롱바텀.”
“펴, 평가가 아니….”
“남이 뭐라든 네 스스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내가 너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여전히 네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군, 롱바텀.”
“…….”
네빌은 생수 병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해리, 헤르미온느, 론이 없는 학교에서 네빌은 주도적으로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며 지니와 의견을 나누고 행동했었다. 그 때부터 그녀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깊어져 갔지만, 지니는 해리와 사귀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해리에게 지니와 헤어졌다, 스네이프 교수님과 만나는 중이다 말을 들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네빌은 계속 갈팡질팡 했다. 지니는 매력적이라 멋진 남자가 금방 고백할 것 같기도 했고, 곧 졸업하면 퀴디치 선수가 돼서 볼 일도 없어지니 이대로 묻으려고 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들킨데다, 그 타인이 절 한심해하며 고백도 못하는 놈 취급을 하니 발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타인이 해리와 지니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인 게 네빌을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해리는…… 저보다 더 두려웠을 텐데 어떻게 교수님께 고백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지니가 졸업하는 날짜를 세면서 한심하게 망설이기만 하고…….”
“포터라고 특별히 뭐 용기 있게 굴진 않았다. 영웅이라고 다를 것 없지.”
스네이프는 제 눈치를 보며 눈도 못 마주치던 스피너즈 엔드의 해리를 떠올렸다. 그걸 보고 절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곤 저도 생각도 못했다. 몽정을 하게 했던 그 꿈이 아니었으면 해리가 어떻게 고백을 할 수 있었을지, 스네이프는 궁금해졌다.
“이만 가보겠다. 박하 가지는 잘 쓰지, 롱바텀.”
“아,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스네이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네빌은 힐끗, 지니가 있는 쪽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을 들었는데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건 바보 같겠지……. 스네이프 교수가 저를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평했던 게 떠올랐다. 네빌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지니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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