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걸……썼다고……?”

회중시계를 판 두 번째 남자가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이 기막힌 회중시계에 대해 듣게 되겠네. 해리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빗줄기가 굵었다. 남자들의 얼굴이 빗물에 흐려졌다.

“이 시계. 정확히 뭐죠?”
“…….”
“제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타임터너에 대한 부정을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제 기억을 증거자료로 제출할 예정이구요. 저는 이 시계의 출처와 원래 사용목적만 조사하면 당신들을 부서로 넘길 겁니다. 그러니 그저 솔직하게 밝혀주세요.”
“……그 시계를 쓸 수 있었다니, 그 해리포터가…?”
“……네?”

해리의 침착하고 단호했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두 번째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해리는 침을 삼키며 남자가 입을 떼길 기다렸다. 남자는 빗물로 얼룩진 얼굴을 여러 번 찡그렸다.

“……나는 그 시계로 백 년의 시간이 넘도록 워프하고, 또 워프하는 허송세월을 보냈지.”
“백 년이 넘게……? 무슨 목적이었죠?”
“그 시계는 나도 우연한 기회에 얻었소, 난 한 때 죽고 싶었어…. 성격이 예전과 180도 달라지고 어두워졌지. 어둠의 마법에도 관심이 갔을 적에… 저주에 가까운 물건이지 그것은……. 아니,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소….”

해리에게는 스네이프와의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준 기적과 같은 시계였다. 하지만 남자의 괴로워 보이는 얼굴 또한 사실이었다.

“해리 포터, 자네도 부모를 잃어 봤으니 알겠지.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 말이오. 나는 내 아내를 내 마법의 실수 때문에 죽였지. 그 일이 있고선 내 삶은 완전히 끝장이 난 거요…. 그런데, 난 이 시계를 얻었어. 우연한 기회였지, 정말로 우연한…. 나는 바로 아내를 잃었던 그 날로 돌아갔소. 그리고 백 년이 넘게 그 짓을 여러 번 반복해서 아내를 살렸고, 계속 함께 살았소….”
“그럼…… 행복한 것 아닌가요……? 어째서 저주라고 표현을…….”
“자네도 다녀와 봤으니 알 것 아닌가. 그 과거엔 과거의 나도 함께 존재해…. 나는 몇 번이나 나 자신을 내 손으로 죽였던 것이라오.”

해리는 말을 잃었다. 시계를 사려고 했던 첫 번째 남자도 넋을 잃은 눈치였다. 아마 남자는 이 사실까진 몰랐던 모양이었다.

“이 시계는 그럼….”
“그래. 저주받은 물건이 맞네. 나에게 이 시계를 처음 줬던 사람은 이걸 후회의 시계라고 부르더군…. 아마 그도 나 같은 인생을 살다가 지나가던 나에게 줘버린 걸 거야. 나도 오늘 그러려고 했다가…… 뭐 이렇게 보기 좋게 잡혀버렸군, 하핫….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르지…….”
“이 시계의 이름이 ‘후회의 시계’… 라고요?”
“그래… 해리포터가 인생에서 그렇게 후회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었지. 내가 보기엔 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

해리는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의 몸을 일으켰다. 둘 모두 반항의 의지를 잃고, 체념해서 순순히 해리를 따랐다. 해리는 머리 뒤를 커다란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무지근한 둔통이 멍하니 해리를 따라붙었다.


해리는 오러 부서 바깥의 휴게실에 앉아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이 시계가 후회라는 키워드에만 반응한다면, 스네이프를 데리고 미래로 갈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후회는 겪지 않은 미래의 일에서 기인하지 않으니까. 회중시계는 어쨌든 해리에겐 고마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같은 물건이 누군가의 인생은 비극으로 물들였다는 사실에 해리의 기분은 그 후로도 썩 괜찮아지지 않았다.

남자들을 심문하고 나온 선배 휴가 해리를 찾았다. 해리에게 그렇게 솔직히 진술 했었으니 심문도 금방 끝난 듯 해보였다. 휴가 해리의 어깨를 무겁게 짚었다. 오전에 가벼이 임무를 맡겼던 후배 오러가 1년이나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아왔다니. 휴는 해리가 못내 신경쓰였다. 같이 따라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고, 좋지 않은 해리의 표정에 걱정이 들었다.

“해리. 타임터너 제출 해야 해.”
“…휴. 중대발표가 있어요.”
“세상에 단 하나 남은 타임터너의 발견 말고 더? 이거 원, 이게 이런 큰 건인 줄 몰랐는데. 그래, 해리. 그게 뭐냐?”

휴는 해리의 진중한 표정에 의아해하면서도 별 대수롭지 않게 농담처럼 말을 내놓았다. 타임터너의 보고로 상부가 이미 발칵 뒤집혔기에 해리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하고자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해리는 회중시계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여다보고는, 마침내 증거물품 보관 팩에 집어 넣었다. 마법으로 봉인 되어 승인 후에만 열람이 가능했다. 이제 과거와 자신을 연결해주던 물건은 해리의 손을 떠나갔다.

“휴, 올 사람이 있어요. 제가 마법부에 도착하기 전에 부엉이를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누구지?”
“…당신도 잘 아는 사람이에요.”
“해리. 1년간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도 말을 의문스럽게 하는 구나.”

휴게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해리와 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는 누가 임시감옥에서 탈출이라도 한 건지 소리치며 물었다. 해리는 이 소란의 원인을 알았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복도에 마법부 직원들이 지팡이를 치켜든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휴 역시 스네이프를 발견하자 마자 지팡이를 빼 들었다. 해리는 그런 휴의 손목을 빠르게 잡아 아래로 내렸다. 의문 가득하던 휴의 눈빛에서 어느 순간 이해의 빛이 돌았다.

“설마 해리 네가 곧 올 거라 했던 사람이…!”

스네이프는 저로 인해 벌어진 소란에 미간을 구겼다. 박쥐처럼 검은 로브를 펄럭이며 복도를 걷는 당당한 걸음은 주변의 시선을 가볍게 떨쳤다. 스네이프가 입은 것은 예전에 조지에게 사랑의 물약을 납품하러 갔을 때 해리가 사준 로브였다. 해리는 로브가 스네이프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 분위기로 봤을 땐 나중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해리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스네이프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었다.

“다들! 지팡이 내리세요! 그는 진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맞습니다! 제가 데려왔어요!”

해리 포터가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데려왔다는 발언에 파장이 또 한 번 일었다. 설마하니 진짜 스네이프라고?! 살아 있었어! 죽은 게 아니었어,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진짜 스네이프라고? 속임수 아닐까? 늘어나는 귀를 갖다댄 것처럼 주변의 쑥덕임이 귀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스네이프는 힐끗 해리를 내려다 봤다. 1년차의 어린 오러는 마법세계의 구원자면서도, 이 상황에는 약간 식은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자신이 아닌 내가 의심 받는 상황이어서겠지, 스네이프는 해리의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나를 심문하시오.”
“세베루스.”
“그러려고 온 거니까. 날 심문 할 책임자를 불러 와라, 포터.”

휴가 앞으로 나섰다.

“세베루스, 해리, 내가 하도록 하지.”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팔짱을 끼고 휴를 쳐다보았다. 휴는 스네이프와 3살 차이의 후배로, 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던 그리핀도르였다. 학교 다닐 때 말 한 번 섞지 않은 그리핀도르가 자신의 이름을 선뜻 부른 것에 스네이프는 약간 신경이 거슬렸지만, 해리가 안심하는 표정이 된 것으로 잠자코 서 있었다. 해리가 믿는 자라면 잘 된 거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휴가 심문실로 스네이프와 해리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쫓으며 여전히 쑥덕거렸다. 마법부 전체에 소문이 퍼지는 것은 삽시간일 것이다. 셋은 심문실로 들어왔다. 문이 닫히자 마자 머플리아토 주문을 건 것 마냥 사위가 조용해졌다.

“…자. 해리, 스네이프 씨, 이 깜짝 방문에 대해 말씀해주실까! 해리 네가 과거로 간 줄은 알았지만 그를 찾아올 줄이야! 정말 놀랐다. 대사건이야. 역사가 어떻게 바뀌지 않았는지도 놀랍고.”
“역사를 바꾸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휴. 저는 타임터너로 돌아간 과거에서 내기니에 죽어가던 세베루스를 오두막에서 구출 했고, 과거의 저를 피해서 함께 1년간 숨어 살았어요.”
“스네이프 씨와 네가? 스네이프 씨, 왜 당신은 해리와 함께 사는 것에 찬성했죠? 사이가 좋진 않았던 걸로 아는데. 당시 바로 마법사들 앞에 나타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음은 이해하지만, 곧 몇 주 후의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 되었는데도 왜 같이 숨어 살았죠?”
“해리 포터의 고집이었지. 내가 당신을 살렸는데 나 혼자 숨어 살게 놔둘 거냐면서.”

스네이프가 팔짱을 낀 채로 비웃으며 말했다. 해리는 그것이 새삼 어린 투정이었음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휴는 으흠, 하고 눈썹을 위로 꿈틀이며 해리를 보았다. 해리의 벌건 얼굴을 보아하니 거짓이 아닌 건 분명했다.

“기억을 제출 해야겠군요. 두 사람 다 기억이 일치하는지 확인 절차가 있을 겁니다. 스네이프 씨는… 그렇게 요란하게 등장하였으니 이미 물론 기자들도 다 알게 되었겠지만, 어쨌든 우리 오러 측에서는 사실 관계 모두 검증 후에 당신이 살아있음을 마법세계에 발표 할 겁니다.”
“그렇게 하시오.”
“저, 휴 씨.”

필요 서류를 기록하던 휴가 고개를 들어 해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해리는 침이 마르는 지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스네이프는 슬쩍 그런 해리를 보더니, 벽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려 버렸다. 음? 뭔가 기류가 이상한데? 기민한 오러의 감이 아니더라도, 둘 사이의 분위기는 어쩐지 기묘한 데가 있었다. 보는 입장에서도 눈치를 보며 긴장하게 되었다. 휴는 괜스레 양피지를 돌돌 말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해리, 지금까진 거짓이었니?”
“아, 아뇨 아뇨! 지금까지도 다 진실이었어요! 그, 그런데… 아직 못 전해드린 말이 있어서.”

해리는 이제 론 위즐리의 머리색과 상당히 흡사한 얼굴 색을 하고 있었다. 휴는 오늘 론이 오프인 것이 몹시 아쉬워졌다. 론이 근무중이었으면 바로 심문실로 불러 해리의 피부톤과 머리색을 대조해 보자 했을 것이다.

휴는 양 손을 겹쳐 잡아 턱 밑에 두었다. 스네이프는 왠지 당장이라도 맨 몸으로 거인족 앞으로 뛰쳐 나가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휴는 옆눈으로 스네이프를 흥미롭게 지켜 보면서, 이 쪽의 홍당무 포터도 흥미진진하게 쳐다 보았다. 어쩐지 해리가 무슨 말을 터뜨릴 지 감은 왔으나 설마? 하는 일말의 의심은 있었다.

정말?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저, 저희 사랑하고 있어요!!!”
“……으윽.”

빙고였네.


해리는 옆 물품창고에서 s-731, h-19 라벨이 붙은 펜시브 두 개를 가져왔다. 문을 다시 열었을 때, 스네이프는 입을 꾹 다물고 휴의 빙글빙글 웃는 얼굴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아, 세베루스 어떡해…… 근데 귀여워……. 해리는 다소 팔불출스런 생각을 하면서 펜시브를 내려 놓고 의자에 앉았다.

“좋아, 해리가 펜시브를 가져왔으니! 기억 제출을 시작해볼까요? 해리, 타임터너가 발동된 순간과 과거로 넘어간 시점에서부터 스네이프 씨 구출 장면까지 편집 없이 제출 바란다. 스네이프 씨께는 내기니에 물린 직후부터 해리가 당신을 구하는 장면까지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연애행각은 넣지 않은 담백한 그 후 동거 부분도 부탁할게요.”

찡긋, 윙크를 날리는 휴는 굉장히 젠틀한 얼굴이었지만, 스네이프는 휴의 목에 지팡이를 들이대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느라 힘들어 보였다.

해리가 먼저 지팡이 끝을 관자놀이 옆으로 붙였다. 은색의 실 줄기가 가느다랗게 지팡이에 따라 붙어 나와, 하늘거리며 펜시브 안으로 떨어졌다. 스네이프는 눈을 감고 기억을 정렬한 후, 필요한 것 몇 개를 추려 제출했다.

“스네이프 씨,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두다가 위즌가모트에 제출하겠습니다. 걱정마세요. 해리, 보관실에 넣어 두고 암호는 25번째 순서의 그것으로 해둬라.”

해리가 부양마법으로 펜시브를 띄우고 다시 심문실을 나섰다. 부서에 앉아있는 오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심문실 안의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보관실에 펜시브를 안전히 넣어 둔 해리가 문을 열고 나오자 마자, 오러 제인에 의해 해리의 어깨가 붙잡혔다.

“해리! 스네이프라니! 도대체 어디서, 그를 어떻게 찾은 거야?! 심지어 살아 있다니! 내기니에 물렸었는데!”
“아. 제가 과거로 가서 그를 구했거든요. 지금 기억을 제출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나중에 열람 승인 받으시고 보세요.”
“대단하다, 해리! 사라진 스네이프 찾느라 그렇게도 힘들어 했었는데, 진짜로 네가 그를 찾아냈다니! 역시 해리 포터는 달라! 해리 포터, 선택 받은 아이~”
“아! 제인!! 그러지 좀 말라니까요. 그만 놀리세요 그걸로 좀!”
“아차차. 이제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지요. 제가 실례하였습니다, 해리 포터 나으리. 선택 받은 어른~ 해리 포터어~”

해리와 제인이 마주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심문실에 앉아있는 스네이프는 문 밖의 그들의 모습을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방음마법이 걸려 있는 지 바깥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해리가 지금 저 여자랑 무슨 대화를 하고 웃고 있는 지, 스네이프로서는 알 수 없었다. 썩 마음에 드는 광경은 아니라 스네이프의 얼굴이 굳었다. 휴는 그런 스네이프를 바라보다 마침내 입술을 떼었다. 침묵은 스네이프의 취미였지, 휴의 취미가 아니었다.

“실례지만 스네이프 씨, 해리와 언제부터 그런 관계가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실례인 걸 안다면 말을 아끼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기왕 오러라는 직업을 가졌으면 아는 게 좋을 것 같소만?”
“스네이프 선배님, 당신이 우리 기숙사 앞에서 에반스 선배님을 기다리던 게 기억납니다.”
“ …점점 더 무례해지는 군, 오러 휴.”
“저는 그 때 아직 2학년이어서 슬리데린 5학년이었던 당신 앞을 지나가기가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없었네요.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만.”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가?”
“해리는 에반스 선배님을 참 많이 닮았죠.”
“…….”

해리가 전 데스 이터 스네이프의 무죄가 걸린 재판에서, 자신이 죽기 직전 넘겼던 기억을 증거로 제출했던 건 알았다. 그러니 마법세계는 슬리데린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그리핀도르의 재능 있는 마녀에 대한 음험한 마음까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탐탁치 않았지만, 그걸 진심으로 역겨워 할 제임스 포터도 시리우스 블랙도, 리무스 루핀도 전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러니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직접적으로 자신의 첫사랑을 언급하는 현 애인의 직장동료를 보고 있자니 스네이프는 불쾌함에 속이 끓었다. 앞으로도 이딴 재밌지도 않은 과거가 들춰져야 하는 건가?

“해리는 착하고 귀엽고 센스 있고, 맘에 드는 신입 오러이자 후배입니다. 그래서 저랑 꽤 친하고요. 해리의 선택 받은 아이라는 타이틀은 수동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해리가 그 누구보다 능동적인 사람인 걸 전 알아요. 그런 해리가 스네이프 선배님의 과거를 다 알고도 선택했다는 건, 절대 한 순간의 불장난이 아닐 테죠. 여자친구도 있던 애가 엄마를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한다고 인정하기까지 속앓이를 많이 했을 거고. 물론, 스네이프 선배님도 마찬가지로 에반스 선배님의 아이를 사랑한다고 인정하기가 무척이나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어쩌면 해리보다도 더 많이.”
“……말이 많은 남자군.”

스네이프는 휴의 웃는 얼굴을 무시했다. 해리와 왜 친한 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둘 다 저돌적인 그리핀도르, 그자체였다.

“둘이 무슨 얘기중이었어요?”

막 문을 연 해리가 눈을 동그랗게 키우고 물었다. 즉시 스네이프의 표정을 살폈는데,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해리. 앉아 봐. 둘이 알콩달콩 사랑 얘기 좀 들어 보자.”
“휴 씨!! 세베루스를 괴롭혔군요!”
“아이고, 이 쬐끄만 팔불출아. 둘이 사귄다는데 그럼 그런 것도 못 묻냐?”
“세베루스 앞에서 어떻게 얘기해요!”
“어쭈쭈. 얼굴은 왜 붉히냐? 누가 둘만의 야시시한 사생활까지 듣고 싶댔나?”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치켜 들었다. 휴는 어이쿠, 양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했다. 당장에 저주 주문이 튀어나올 것 같은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안절부절 못하며 스네이프의 지팡이 쥔 손등을 감싸쥐자, 스네이프는 못내 아쉬운 눈치로 휴의 면전에서 지팡이를 내렸다.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속을 이 정도로 긁은 사람도 별로 없을 거라는 게, 휴의 남은 생에 굵직한 무용담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해리와 스네이프는 마법부 건물을 나와, 지상의 런던 땅에 올라 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점심 때인 만큼 음식점을 찾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마법을 써서 로브를 머글이 입는 자켓으로 바꾸고, 둘은 우산을 함께 썼다. 각자 하나씩 펼치고 가면 편할 것을, 해리의 고집이었다. 이런 것도 연인 같잖아요. 들뜬 해리의 목소리에 스네이프는 결국 져 주었다.

해리는 머글이 운영하는 이탈리안 식당을 찾았다. 5월 2일은 스네이프와 파스타, 피자 그리고 콜라를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제는 익숙하게 콜라부터 입에 넣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슬며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콜라를 먹은 스네이프의 입 안은 단 맛이 나서 좋았다. 키스하고 싶어졌지만 이 곳은 스피너즈 엔드가 아니었다. 눈만 맞으면 뒹굴 수 있었던 그 곳이 해리는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아까 저 없던 틈 타서 휴 씨가 짓궂게 물어댔을 것 같은데….”
“굉장히 무례한 남자더군. 너랑 친한 직장 선배라니까 뻔하지만, 포터.”
“휴 씨가 뭐라 했어요?”
“릴리 얘길 꺼냈어.”

스네이프가 예상했던 대로, 이 대답에 해리는 티나게 삐걱거렸다. 덜컹! 놀란 해리가 무릎으로 찍어올린 테이블이 흔들렸다. 그 탓에 포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네이프는 말없이 콜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설마요……!”
“내가 농담으로 릴리를 입에 담겠나?”
“세상에, 정말로 그랬다고요? 그가 그렇게까지 무례하게 굴었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제대로 휴에게 화낼 게요, 세베루스!”

해리는 진심이었다. 저와의 식사만 아니었으면 달려가서 선배 오러에게 머글식 주먹 맛이라도 보여줄 태세였다. 스네이프는 픽 웃고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릴리를 사랑한 내가 이제 릴리의 아이를 사랑하게 된 것을 인정하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다 하더군. 포터, 너도 마찬가지로 릴리를 사랑하는 날 사랑하는 걸 인정하는 게 힘들었겠다고도 그가 말했다.”
“그런 얘기를 했단 말이예요? 그래서 그걸 듣고 세베루스는 뭐라 했는데요?”
“말이 많은 남자라고 했지.”
“아아, 확실히.”

해리가 피자를 한 입 물며 끄덕였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저는 인정하는 데 오래 안 걸렸는데.”
“뭐?”
“감정을 깨닫자 마자 거의 바로 인정했어요. 다만, 세베루스에게 고백할 수 없는 마음이란 것 때문에 힘들었던 거지.”
“그게 언젠데?”
“고드릭 골짜기 갔을 때요. 세베루스가 엄마 묘 앞에서 울었던 날.”

머쓱하게 웃은 해리가 입에 피자를 왕창 밀어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민망해하는 눈치라 스네이프도 대꾸 없이 파스타를 입에 넣어 조용히 씹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 때부터였다고? 스네이프는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릴리의 묘 앞에서 울다가, 눈물을 겨우 갈무리하고서 일어섰다. 근처의 나무 그늘 아래의 해리를 발견 했고, 다가섰다. 어쩐지 저주 걸린 듯이 넋나간 얼굴은 제 감정이 혼란스러워서 그랬던 건가. 스네이프는 이제야 그 때의 해리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그 날 엄마, 아빠의 묘에 갔었고, 세베루스는… 세베루스는 아빠를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아빠와의 사이에서 저를 낳았으니까…. 제가 세베루스 입장이었으면 얼마나 화날 지 생각했거든요. 지니를 대입해서….”
“…….”
“그런데…… 화가 안 나더라고요. 지니 옆에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있고, 그 사이에 아이가 있다 생각해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전 그런 저에게 실망했어요. 고작 몇 주 못 봤다고,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이었는데 감정이 식었잖아요.”

스네이프는 해리의 말을 막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들어주기로 했다. 턱을 괴고서 해리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 보았다. 번개무늬 흉터 아래 까만 눈썹, 진중하고 또렷한 초록색 눈, 날 선 콧날, 부드러운 입술, 얄쌍한 턱선. 새삼 어리고, 새삼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저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어서 속이 싸했는데…… 세베루스가 다가와서 제 어깨를 짚는데, 그게 너무 뜨겁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절 걱정하는 그 눈빛이랑……. 그 때부터 제 머릿속과 가슴에는 당신밖에 없었어요.”
“상당히 낯뜨거운 고백인 걸, 포터.”

스네이프가 시원한 콜라 잔을 뺨에 살짝 대었다. 어쩔 수 없이 뜨거워진 얼굴에 차가운 게 닿아 기분이 좋았다.

“말 잘 하는데. 그런데 위즐리 앞에서도 그렇게 술술 얘기할 수 있을까?”
“저, 저 좀 믿어주세요 세베루스….”
“포터, 내가 널 못 믿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상대는 지네브라 위즐리 하나가 아니야, 날 선택한다는 건 위즐리 가족 전부를 배신한다는 거다. 너에게 위즐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아니까 넌 망설일 수밖에 없겠지.”
“세베루스…….”
“나도 여전히 완벽한 확신은 못 하겠군. 해리 포터가 위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날 선택한다라. 론 위즐리가 널 죽이려고 들지도 모르겠군. 내가 귀에 구멍을 냈던 조지 위즐리는 어떻고? 물론 몰리 그녀도.”

창 밖으로 빗소리가 시끄러웠다. 하늘에서 때려 붓는 듯 물줄기에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스네이프는 눈을 꾹 감고 있는 해리를 바라 보았다. 잠깐의 침묵. 곧 해리가 다시 눈을 뜨자 맑은 녹색 눈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또 홀린 듯이 그 눈을 들여다 보았다.

“세베루스. 조지는 그 일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요. 당신이 데스 이터를 공격하려다 빗맞춰서 다친 거였고, 이젠 그냥 구멍난 귀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오히려 뽐내요. 론은 분명 저에게 화내겠죠. 몇 대 맞아줄 각오는 하고 있어요. 하필 상대가 그 스네이프니까 더 기막혀 할 테죠. 하지만 저희가 그동안 몇 번이나 싸웠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때마다 우린 잘 풀었고, 여전히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포터, 정말 말 잘하는 군, 오늘따라.”
“몰리 아줌마에겐 저도 죄송해요. 어떤 부분에선 지니보다도 더요. 예전만큼 절 예뻐해주지 않으셔도 각오해야죠. 어쨌든 전… 지니만 제일 신경쓰여요. 제가 잘못했잖아요.”

해리가 생각보다도 더 단단한 사람인 걸 잊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선한 사람인 것을. 해리는 제가 지니에게 줄 상처만 생각할 뿐,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위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스네이프보다야, 이 관계에 훨씬 당당한 해리였다.

“…지네브라에겐 어떻게 말 할 거지? 지금은 학기중이잖아.”
“직접 말해야 하니까 호그와트로 찾아갈 거예요. 내일 예언자 일보로 당신이 살아 돌아온 게 공표 된 이후에요.”
“하루의 유예가 남았군.”
“그런 셈이죠.”

콜라를 꿀꺽거리면서 해리가 대답했다. 스네이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꺼낼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해리가 알아서 하겠지. 해리를 신뢰하면서, 스네이프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포터, 내일 같이 호그와트로 가지.”
“네???? 지니를 마, 만나시게요?!!”
“아니. 맥고나걸을 만날 거다.”
“아, 아아 맥고나걸 교수님을…….”

해리가 눈을 깜박깜박거렸다. 잠깐만, 맥고나걸 교수님?

“복직을… 하시려고요?”
“그래.”

해리는 지니를 신경쓰느라, 그리고 스네이프와 단둘이 집에서만 보내는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 있느라, 스네이프가 원래는 학교에서 늘 교수로 일 했었던 것도 생각 저편에 묻어 두고 있었다. 자신이 어린이 체육 센터에서 퇴근하고 나면, 집 안에 있던 스네이프가 따듯한 저녁과 함께 맞이해주는 일상이 약 1년 가까이 이어졌던 탓이다. 해리는 갑작스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잠깐, 교수님들은 항상 학교에 계셨는데? 게다가 스네이프는 오랜 기간 슬리데린 기숙사의 사감이었다.

“교수로 복직하시면 학기 중에는 학교에 머물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물론 그렇지.”
“저는 어쩌고요?”
“벽난로로 보러 오던가.”

해리는 망연자실과 분노가 함께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세베루스, 저랑 결혼하겠다면서요!”
“너랑 결혼하면 내가 직업을 잃어야 되는 건가, 포터?”

스네이프가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 고고한 태도에 해리의 머리 뒤로 핏줄 두 어개가 서는 것 같았다. 포크를 그릇 위에 내려 놓고, 해리가 심호흡을 내쉬었다.

“신혼인데 떨어져서 지내겠다고요?”
“벽난로로 보러 오라니까?”
“이게 그 정도로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포터, 또 징징대기 수법인가? 1년 전에 네가 날 살렸으니 혼자 숨어 살게 하지 말라고 징징대던 거에서 발전이 하나도 없군.”
“세베루스 스네이프! 나랑 한 마디 상의 없이 복직을 결정한 것부터 화가 난다고요!”

해리가 씩씩대며 스네이프를 쳐다 보았다. 스네이프는 이게 정말 어린애 생떼라고 생각했지만, 상의 없이 결정 된 사항이란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저는 늘 호그와트의 교수로서 일 해 왔는데, 새삼 해리의 반응이 어이 없기도 했다. 다름 아닌 해리가 자신의 제자였으면서.

“그래서 어쩌잔 거야? 내가 직업 없이 집에서 너만 기다리면서 밥이나 차려주길 바라나?”
“그─그건 아니지만…!”
“네가 화내는 이유는 그거 같은데.”

스네이프가 딱딱하게 말했다. 해리는 답답함에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베루스는 나랑 같이 살 부대끼고 지내는 것에 아쉬움이 없는 건가? 해리는 스네이프의 말을 듣자 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는데, 속상해서 눈물이 맺힐 것 같았다. 제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니, 진짜 어린애 같은 투정이라고 해리도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스네이프가 이걸 몰라주는 것도 미웠다.

“저는 세베루스랑 같은 집에서, 계속 같이 지내고 싶은 거예요.”
“어차피 둘 다 직장에 나가면 저녁에야 만나는 게 부부야.”
“그렇다 해도 학교 벽난로랑 집 벽난로가 같아요?”
“만날 수 있는 건 똑같잖아.”

아, 진짜 오랜만에 세베루스 스네이프 줘 패고 싶네. 해리는 남은 콜라를 파이어 위스키 마냥 원샷하고, 형형한 눈으로 스네이프를 노려 보았다.

“알겠어요, 저 퇴근한 후에 봐요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혀를 차며 포크를 내려 놓았다.















오랜만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시간이 흘렀네요. 최근까지도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늘 계셔서 신기한 마음입니다.
제가 해리랑 스네이프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래서 이 글을 붙잡고 끝까지 쓰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으나, 제 마음에 드는 다음 전개가 잘 떠오르지 않았고 저는 스스로가 재미 없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간 제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서 타자기 앞에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는 변명도 해 볼게요.^^;(사실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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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법으로 금방 하는데, 뭘 또….”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실패하면 약 먹고 다시 머리 기르면 되니까!”

“그 약을 네가 만드나? 내가 만들잖아.”

“아, 세베루스! 가만히 좀!”

 

 

해리가 가위와 빗을 든 채로 소리를 질렀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앞의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자신에게 이런 건방을 떨어도 된다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지만 스네이프는 천을 목 주변에 두른 채 그냥 가만히 팔짱을 꼈다. 해리의 손길에 맡겨지는 것에 익숙해진 탓일 터였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해리의 말대로 마법이면 다시 복구시킬 수도 있었다. 잠자코 하고 싶다는 대로 놔두는 게 시끄럽지도 않고 낫겠지.

 

아쿠아멘티. 해리가 중얼거리자 지팡이에서 물이 칙칙 나왔다. 얇고 까만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어, 빗에 정갈하게 빗겨졌다. 이전에 몇 번, 씻은 후에 해리가 머리를 빗어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았다. 스네이프는 뒤로는 눈이 달려있지 않아 볼 수 없었지만, 진지한 눈을 하고 있을 해리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전이랑 같은 길이로 자르는 게 좋겠죠?”

“그러던지.”

“이거 세베루스 머리라고요? 왜 이렇게 시큰둥해요.”

 

 

물론, 해리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미는 것도 보이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았다.

 

 

“알아서 해라. 망치면 죽여 버릴 테니.”

 

 

아, 예예…. 해리가 대답하며, 스네이프의 뒤통수에서 그를 장난스럽게 흘겨보았다. 이내 해리가 피식,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한 줌 쥐었다.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와 함께 까만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얀 커튼을 걷은 창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봄이라 그런지 햇살이 유독 달았다. 스네이프는 그대로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해리가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손길과 햇빛에 잠이 잘 왔다.

 

 

집 안을 가득 채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빛이 닿는 곳곳마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열어놓은 창밖으로 붉은 것이 기웃거렸다. 붉은 것은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한동안 감상하고 있었다. 퍽스, 이리와. 스네이프가 깰까봐 해리가 조용히 불렀다. 해리의 목소리에 날개를 한 번 퍼덕인 붉은 새는, 부드럽게 날아와 천장에 걸린 새장으로 돌아갔다. 다행인지, 아니면 당연한 것인지, 퍽스는 5월 2일, 내일이 오기 전에 돌아왔다.

 

 

“이번 사냥은 꽤 오래 걸렸네, 퍽스. 안 돌아올까 봐 맘 졸였잖아.”

 

 

팍스가 대답하듯 뭐라고 꽥꽥거렸다. 해리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긴, 네가 없었으면 지금 같은 날이 오지 않았겠지. 마음을 졸였다는 건 사실 거짓말일지 몰랐다.

 

 

작년 여름의 만남 이후로, 해리는 덤블도어의 새였던 퍽스를 기르게 되었다. 처음, 퍽스가 호그와트를 떠났을 때는 다시는 못 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되고, 기르기까지 하다니. 정말 해리로선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하긴, 내일 이후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제 인생에 일어날 거라곤 생각도 못한 일들뿐이었다. 그러니, 퍽스를 기르게 된 것 정돈 놀라운 축에 끼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 때, 세베루스가 뒤척이며 부스스 눈을 떴다. 이내 스네이프는 정면의 전신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과 마주쳤다. 전신거울은 책 더미를 잠시 마법으로 변신시킨 것이어서, 유리에 글귀 몇 개가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언뜻 봐서는 펠릭스 펠리시스를 만드는 법인 것 같았다.)

 

 

“다 자른 건가…?”

 

 

살짝 잠긴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린 해리가, 다듬는다며 황급히 몇 번 더 가위질을 했다. 스네이프는 거울을 통해 해리를 보다가, 새장에 돌아와 있는 퍽스를 발견했다.

 

 

“맘에 들어요?”

“…예전이랑 비슷하군.”

“제 솜씨가 세베루스보다 더 괜찮지 않아요? 제 더벅머리 관리한다고 잘라댔던 보람이 있는 것 같은데….”

 

 

스네이프가 보기에도 기대 이상으로 머리가 잘 잘리기는 했다. 하지만 은근히 뽐내는 해리의 말투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는 않았다. 스네이프는 목에 두른 천을 거둬내고, 지팡이를 휘둘러 떨어진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해리는 기대했던 칭찬이 들려오지 않자, 다시 불퉁한 얼굴이 되어 입술을 내밀고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퍽스가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삐이 삐이 울었다.

 

 

“…포터.”

“왜요.”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살펴보던 스네이프가 해리를 불렀다. 여전히 댓발 나온 입술로 대답한 해리가, 그를 흘겼다. 스네이프는 어이없이 거울에 비친 해리를 보았다.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자, 변신했었던 전신거울이 원래의 책 더미 모습으로 돌아갔다.

 

 

“몸에 붙은 머리카락 때문에 씻어야겠는데, 좀 도와주겠나?”

“…!! 무, 물론이죠! 같이 샤워할래요?!”

 

 

이렇게 금방 풀릴 거면서. 스네이프가 픽 비웃으며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스네이프가 옷을 벗을 때마다 짧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흰 목덜미와, 어깨와 등이 보였다. 아, 칭찬은 못 들었지만 자른 보람은 있었다.

 

 

해리는 물을 틀고,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뒷목에 입술을 맞추었다. 눈부시도록 창백하고 하얀 그의 피부는 예전 같은 차가운 온도가 아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어떤 것도 이렇듯 부드럽게 녹았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으면서 돌아온 계절을 체감했다. 이제 봄이구나. 그것이 몹시도 다행스럽고, 안온하고, 만족스러웠다. 해리는 양손을 스네이프의 배 언저리에 얹고는, 양손을 맞붙잡아 그를 꽉 끌어안았다. 너무 좋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이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스네이프는 아까부터 제 엉덩이를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해리는 상반신은 진지하고 싶은 듯 보였으나, 하반신은 노골적으로 솔직했다. 어린애. 그리고 그 어린애는 자신을 구원한 영웅이었다.

 

 

“…내일이네요.”

“….”

“마침내.”

 

 

결국 오는구나, 그 날이. 해리는 머릿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내일…. 제가… 실수하진 않겠죠?”

“뭐, 실수하면 내가 죽기밖에 더하겠나, 포터.”

“와. 정신 확 드네. 고마워요, 너무 좋은 충고였어요, 세베루스.”

“별 말을 다.”

 

 

아, 뻔뻔해라! 세베루스도 진짜 많이 바뀌었다니까. 해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스네이프는 너무도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다 벗은 몸을 해리가 껴안게 놔두고 있잖은가. 그만한 변화가 어디 있을까.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 꼭.”

“글쎄, 조금 걱정이 드는데. 몰리 위즐리가 나를 가만둘지.”

“어……. 제가 막아드릴게요!”

“아, 그래. 퍽이나 믿음 가는군, 포터. 그 시간에 지니 위즐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어…….”

“정말 자신없나보군.”

“그, 그래도! 말할 거예요! 요, 용서는 그, 그녀의 몫이죠…….”

 

 

해리의 얼굴엔 어느새 죄책감이 떠있었다. 그러고 보니, 엉덩이를 건들던 것도 풀죽어 시들은 것 같고. 스네이프가 생각하기에도, 해리가 내일 할 행동은 무책임하고 나쁜 짓으로 보였으니, 스스로가 느끼는 중함은 얼마나 더할까. 하지만 사실, 해리가 정말로 나쁜 건 아니라고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해리는 자신을 살렸으니까. 그 어떤, 모든 의미에서도. 그래서 오늘은 좀 봐주기로 마음먹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아래로 손을 뻗었다. 다리 사이로 들어간 손이 축 쳐진 것을 움켜쥐자, 해리가 반사적으로 파득 몸을 떨었다. 싱싱한 활어 같았다. 당황한 해리의 눈동자에는 금세 죄책감은 사라지고, 벌써부터 달뜬 기대가 어려 있었다. 그래, 이 얼굴이 보기엔 좀 더 좋았다.

 

 

 

 

5월 2일 새벽은 기억과 같이 서늘했다. 투명망토와 회중시계를 챙긴 해리는 스네이프의 옆으로 다가섰다. 과거로 돌아가기 전 오늘, 서늘한 새벽공기 탓에 디멘터가 다시 나타난 것 같단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같은 날, 같은 온도에도 해리는 별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그 때와 다르게 동반자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추도식은 6시에 열렸어요. 우리는 그 전에 도착해있어야 해요.”

 

 

현재 시각은 5시였다. 호그와트 정문 앞에서 스네이프는 검은 망토를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해리 역시 투명망토를 몸 위로 덮었다. 포터? 보이지 않는 해리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스네이프가 찾았다. 우두커니 서있는 스네이프의 손목을 해리의 손이 덥석 잡아 이끌었다. 둘은 추도식 참가자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금지된 숲으로 이동해야했다. 모습을 볼 수 없는 해리의 손길에 끌려가는 기분은 묘했다. 스네이프는 그러나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 숲 안으로 들어왔다.

 

 

묘비까지 도착한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목을 놓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스네이프는 제 묘비로 다가섰다. 자신의 이름과 생일, 그리고 기일이 적혀있었다. 그 앞에 검은 망토를 덮어쓴 채 서있는 스네이프의 뒷모습을 보는 해리의 가슴이 어쩐지 짠했다. 스네이프는 말없이 묘비의 모서리에 손을 얹었다. 작년, 오늘의 날짜로 자신이 사망했다고 적혀져 있는 것을 보니, 1년 전 해리가 내기니에 물린 제 앞에 나타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처음 보인 것은 제 몸이 쏟아낸 붉은 피 웅덩이였다. 죽는 게 당연한 출혈량이었다. 하지만 몸은 아프지 않았고, 다시 눈을 떠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다 흐릿한 시야의 한 구석으로 운동화코끝이 보였다. 해리가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눈을 찡그리고, 감았다 떠도 눈앞에는 계속 해리가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상하고 다정한 눈빛을 하고서.

 

 

“이 묘비는 그냥 여기 뒀으면 좋겠군.”

“왜요? 살아있는데 묘비가 있으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죽었다 살아난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 내가 너한테 고마워하겠지, 포터.”

“뭐야, 이거마저 없으면 안 고마워할 거란 소리에요?”

 

 

해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네이프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알 것 같아 싱긋 웃었다. 하여튼 돌려서 말하는 버릇은. 불치병이지.

 

 

“슬슬 숨어서 지켜봐야겠어요. 저쪽 큰 나무 뒤로 가요. 퍽스는 아까부터 어디에선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네.”

“가지.”

 

 

빼꼼하게 머리만 투명망토 위로 내밀고서 해리가 총총 나무 뒤로 가고, 따라서 검은 망토자락을 펄럭이며 스네이프가 움직였다. 배고프진 않아요? 조용하게 속삭이는 해리에 고개를 저은 스네이프가 나무에 등을 기대 눈을 감았다. 곧 있으면 살아있는 자신의 눈으로 저의 추도식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상한 기분. 그리고 이런 하루를 갖게 된 것은 해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래에서 해리가 저를 구하러 와주지 않았다면……. 아주 평범한 추도식인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았다. 죽은 자신을 기리는. 해리포터와의 1년이 없는. 아주 아주 평범한.

 

 

그런 건 생각하기도 싫군.

 

 

“아, 누군가 와요. 쉿.”

 

 

해리의 말대로 부스럭거리며 인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그리드와 맥고나걸이었다. 맥고나걸은 지팡이를 휘둘러 묘비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리고서 서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나머지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스네이프는 곁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은, 자신을 향해 공격주문을 날리던 맥고나걸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제 묘비를 성심성의껏 깨끗이 관리해주고 있었다.

 

 

해리는 생각이 많아 보이는 스네이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여러 생각이 들고 있을 것이다. 저도 볼드모트에게 주문을 맞은 후, 제가 죽은 줄로만 알고 슬퍼하는 사람들 앞에서 죽은 척 연기를 했었으니 그 기분을 아예 모를 것도 아니었다. 해리가 손을 뻗었다. 하얀 그의 손을 잡아주니, 스네이프가 묘비 주변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해리의 손을 맞잡았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났다. 스네이프는 꽤 많이 모인 사람들에 적잖이 놀랐다. 과거에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이 제 죽음을 기억하고 기려준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그 당시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지금도 그 때와 별반 다르진 않았지만, 모인 사람들에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네가 제일 늦는군, 포터.”

“아하하….”

 

 

해리가 민망하게 웃음을 흘렸다. 다들 부지런해서 그래요. 변명 아닌 변명을 주워섬긴 해리는, 사실 아까부터 지니를 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지니는 눈이 안 갈래야 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눈에 띄어서, 시야에 바로 보였다. 스네이프와 함께 옛 연인인 지니를 보고 있는 기분이라니. 해리는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곧 그녀에게 이별을 고할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암담했다. 해리는 누군가를 차본 적이 없는데다, 지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 생각해도 너무나 너무나 미안해서, 걱정만 가득했다. 그렇다고 스네이프를 두고 어영부영 이별을 질질 끌 수도 없었다. 그럼 이번엔 스네이프에게 미안해할 차례였다. 해리는 바로 일주일 전에 자신이 스네이프에게 프러포즈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왔군.”

“네, 네?!”

“…? 어디에 넋을 빼고 있는 거냐, 포터.”

 

 

미심쩍은 눈으로 해리를 흘긴 스네이프가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제야 해리는 눈앞에 자기 자신이 서있는걸 볼 수 있었다. 과거의 해리를 위해 사람들이 비켜주어, 해리는 묘비의 가장 앞에 서있었다. 해리는 마음속의 고통이 느껴지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과거의 자신은 스네이프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있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뒤에, 저 녀석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답을 찾을 것이었다.

 

 

퍽스가 나타났다. 모인 사람들 모두 경이로운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과거 자신의 표정의 변화를 눈여겨보았다. 굳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게 보였다. 해리는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바로 옆에 앉아있는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그를 찾아낸 것이 결국 자신이었다는 게, 뿌듯하고도 행복했다.

 

 

 

 

“조용하네요.”

 

 

추도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사라지자, 숲은 늘 그렇듯 고요해졌다. 스네이프는 몸을 일으켜 매무새를 정리했다.

 

 

“퍽스의 눈물을 이용했던 건가.”

“네, 언제나 도움 받고 있죠, 퍽스한테는.”

 

 

해리는 다시 투명망토를 몸 위에 안전히 덮었다. 묘비에서 퍽스가 흘린 눈물자국이 반짝거렸다. 다시 스네이프의 손목을 잡은 해리가 왔던 길을 거슬러 걸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스네이프는 보이지 않는 해리를 바라보았다. 분명 투명해져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하고 신중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걷는 해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순간이동이 가능한 호그와트의 정문 앞에 와서, 해리와 스네이프는 순간이동으로 스피너즈 엔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와, 힘이 하나도 없네.”

 

 

이제 겨우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내내 몸에 계속 긴장이 들어있던 탓이었다. 해리는 익숙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온 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스네이프는 입고 있던 검은 망토를 의자에 벗어두고 태연히 아침을 준비했다. 소파에 늘어졌던 해리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양송이스프와 마늘빵과 방울토마토가 그릇에 담겨 착착 날아왔다. 마늘빵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해리가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기분 괜찮아요?”

“왜 그런 걸 묻지.”

“그냥… 여러 가지로요….”

“쓸데없긴.”

 

 

앞에 앉은 스네이프가 스프를 한 숟가락 떴다. 해리는 따듯한 스프를 꿀떡꿀떡 넘기니 기운이 조금씩 나는 듯했다. 많이 먹고 힘내야할 일이 아주 많을, 오늘이었다.

 

 

“…나보다는 네 기분이 더 그렇지 않나? 포터.”

“예? ……저, 저요? 하하… 제가 왜…….”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해리는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했다. 눈앞의 빨간 방울토마토에서 지니가 오버랩 되었다. 해리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회중시계에 대한 걸 조사하고 부서에 이 물건의 불법거래자들과 같이 넘길 거예요. 타임터너는 모두 없어진 걸로 알고 있으니 파장이 있을 테죠. 금기물건이 돼서 봉인되거나 아예 파괴될 지도요.”

“그럼 네가 마지막으로 그걸 쓴 사람이 되겠군.”

“네. 아주 혜택을 톡톡히 봤죠. 고마운 물건이에요. 정말.”

 

 

스네이프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니까. 해리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입을 뗐다.

 

 

“그 후엔?”

“네, 네?”

“시계 일을 끝내고 나면?”

“아……음, 그렇죠 그럼….”

 

 

지니에게.

말을 해야.

 

 

해리의 등으로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착한 척 하지마라. 네 선택에 누구 하난 상처받으니까. 당연한 거다.”

“세베루스…….”

 

 

해리가 스네이프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스네이프는 완전히 해리의 속을 파악하고 있었다. 해리는 뜨끔 하는 한편, 스네이프의 말에 동감했다. 누구도 상처주지 않고 이 일을 끝낼 수는 없다. 마음은 아프지만, 지니에게 확실히 말을 해야만 한다. 결심이 서는 것 같았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향해 입가를 끌어올려 웃었다.

 

 

 

 

해리는 투명망토를 챙겨 입고 시간에 맞춰 순간이동을 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비틀대며 나타나는 망토를 쓴 사람이 보였다. 해리는 자신이 서있던 자리를 가늠해보았다. 과거 해리 역시 투명망토에, 머플리아토 주문까지 쓰고 있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해리는 적정간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 순간 탕 소리와 함께 두 번째 거래자가 나타났다.

 

 

물건을 보고 호들갑을 떠는 첫 번째 남자가 보였다. 아마 저 물건을 건네받던 순간에 자신이 바로 주문을 날렸을 것이다. 해리는 갑작스럽게 뒤로 나자빠지는 남자 둘과 투명망토를 벗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자기 자신을 바라봤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과거 자신이 망토의 모자를 쓰고 거래자들을 마법으로 묶었다. 축 늘어진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곤, 데스이터가 아님에 갸우뚱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거 자신이 근처 평평한 바위에 앉았다. 해리는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곧 과거 자신은 1998년 5월 2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스네이프를 만나고, 살리고, 함께 살고, 울고, 웃다가, 그러다보면 어느새 1년이 흘러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겠지.

 

 

과거 자신의 몸이 시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 과거 자신과 함께, 시계도 시공 속으로 사라졌다. 빨려들 때의 체감속도는 굉장히 느릿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켜보고 있으니 순식간이었다. 해리는 주머니 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바로 이 시계가…….

 

 

“에네르바테.”

 

 

해리의 주문과 함께 기절했던 두 거래자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여전히 밧줄에 꽁꽁 묶인 채라, 둘은 옴짝달싹도 못했다.

 

 

“이…이게 뭐…! 너, 너는…!?”

 

 

해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첫 번째 남자(회중시계를 산 남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두 번째 남자(회중시계를 판 남자)는 재수 옴 붙었다는 표정이었다.

 

 

“이 시계, 어떻게 난 거죠?”

“해리 포, 포터. 그, 그건 그냥… 평범한 시계요!”

“평범? 시계바늘도 없던데요?”

“그, 건… 내가 새 시계바늘을…끼워서 쓸 생각으로….”

“혹시 무슨 주문에 걸려있는 건 아니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해리는 엉뚱한 주문을 몇 개 중얼중얼 거렸다. 그 모습에 두 남자가 해리를 속일 수 있다고 확신했는지, 아까보다 기운찬 얼굴이 되었다.

 

 

“음… 대체 뭐지? 이거 완전히 고물인데요. 이런 걸 왜 사죠?”

“하, 하하! 거보라 했잖수. 그냥 평범한 고물시계요…. 자, 이제 풀어주시지? 우린 억울하다고. 마법부에 항의할 수도 있소?!”

“정말로요?”

“뭐, 뭐요? 왜 내가 못할 줄 알……”

“타임터너를 정부에 노출시킬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은밀한 곳에서 거래하셔놓고.”

 

 

두 남자의 눈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베리타세룸이 전혀 필요치 않겠는걸. 해리는 혹시나 해서 스네이프에게서 받아온 진실을 말하게 하는 약을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무, 무슨 헛소리를! 그런 건 다 없어졌지 않소?! 황당하군, 해리 포터가 약간 미쳤다고는 들었지만…….”

“아, 그건 맞는 말이에요. 요즘 제가 미쳐있는 존재가 있거든요. 하지만 그 앞의 말은 부정하고 싶네요. 타임터너가 다 없어지지 않았더라고요. 제가 방금 1년 전으로 돌아갔다가, 이제 겨우 1년을 채우고 당신들 앞에 나타났는데.”

 

 

남자들의 얼굴이 굳는 게 보였다.

 

 

“근데 이 시계, 과거로만 갈 수 있어요? 미래로 못 돌아가서 제가 1년이나 고생했잖아요.”

 

 

말을 한 후 해리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아, 하고 말을 수정했다.

 

 

“고생까진 아니고…. 약간의 고난과… 행복이 있었죠.”

 

 

찡긋, 윙크를 날리는 해리를 두 남자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완결을 내고 싶어서 오랜만에 써서 들고 왔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도 몇 분은 계셨을 거라 생각해요. 감사하고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해스네 행복하자ㅏㅏㅏ 행복하쟈아ㅏㅏㅏ~~~아프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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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오니 공연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앞에 유치원 애들이 단체로 1열에 앉아 시끄럽고 귀여운 방청객 노릇을 하던 기억이 난다.
춥지만 금방 산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핥아먹으며 신기+호기심+재미로 구경했다.
아저씨가 슬프고 감동적인 연기를 잘 했다. 새로운 삶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도 떠났던 여행인만큼 나에게 찌릿한 공감을 주는 극이었다.

지체 되기 전에 덴포잔마켓플레이스로 들어왔다. 쇼핑센터 같은 곳이구나.. 기념품 같은 걸 많이 파는.ㅇㅇ

들어오기 전에 있는 마트?잡화점?드럭스토어?에서 코로로젤리 청포도맛과 내사랑 이로하스모모를 구입했다.

물컹하고 쑹덩 잘리는 재밌는 식감. 이 젤리는 약간 시긴 해도 맛있었다. 또 사먹진 않고 누가 사주면 맛있게 먹을 젤리다.

젤리를 먹고 쉬던 의자 근처의 기프트샵에서 맘에 쏙 드는 얘를 발견했다.
사진만 찍어 남길까?하다가 자꾸 맘에 밟혀서 결국 지갑을 열어서 산 지갑...(ㅋㅋㅋㅋ)
아직도 사용은 못했는데 책상에 두고 본다. 얜 예쁘느라 늘 최선을 다하고있는데 뭐어떠랴...만지는 느낌도 보들하니 좋다.

같은 샵인데 여긴 일본적이면서 예쁜 디자인이 많았다. 부채도 예뻤고 다 예뻤지만 리무진차표도 사야 하고 공항에서 저녁도 먹어야하니 돈을 더 쓸 수 없었다.

앙 스파이더맨♡

여기는 소동물이 있었다. 체험하는 공간인가보다.

화장실이 너모 핑크핑크하니 예뻤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여기는 마켓플레이스 내 식당가이다.
옛날분위기로 특색적으로 꾸며놓은 곳.
호텔조식이 없었다면 원래 여기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었다.

이쁘네..하고 안은 구경않고 겉만 보고 지나칠 줄은ㅎ

그리고 걷다보니 나도 몰랐던 대관람차 탑승장이 나왔다.
마켓과 이어져있는지 몰랐다.

저 꼬질한 인형ㅋㅋㅋ 기억에 꽤 강하게 박혔다. 친근해..

500엔 동전은 일본 와서 처음 봐서 기념으로 함께 찰칵찰칵.
사실 바깥 구경보다는 비투비노래 크게 틀어놓고 혼자 사진찍는 재미에 빠져서 크게 인상깊은 풍경이 없다.ㅋㅋ

내릴 때 캐리어와 함께라서 휘청거렸다...
휴 쪽팔리지만 타국이니까 괜찮아.

저 물고기터널 예뻤는데.
사실 이 사진은 여유로워 보이지만 이 당시 나는 하나도 여유롭지 않았다.
곧 리무진버스 탑승시간인데 어디가 탑승장소인지 모르겠는 것...끝과 끝을 뛰어 오며 가며 전전긍긍했다ㅠ
같이 구글앱 보며 도움 주신 카이유칸굿즈샵 일본인알바생?직원 분? 고마워요...
그리고 정류장 앞 공사장인부님도 감사합니다. 코앞에 두고 헤매는데 바르게 인도해주심...(하 길치...)

제대로 찾아왔다ㅠ
안도감..ㅠㅠ
나밖에 없었다.

대관람차 바로 아래였는데 반대편 카이유칸까지 뛰어갔던 거 실화냐...

이것이 공항리무진.

바보 같이 캐리어를 들고 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붙잡고 있느라 괜한 고생을 했다.

일본의 고속도로.

바다가 보일 땐 좋았지만, 내내 첫날 탔던 기차 밖 풍경이 그리웠다.

공항 도착.

괜히 내 맘을 투영해서 외롭고 쓸쓸해보인다.

먼저 티웨이 위치를 확인하고 내부 좀 구경하다가 식당을 찾았다.
일본 왔으니까 돈가스는 먹고 가야겠다 싶어서(밥도 나오고) KYK돈가스를 찾아 갔다.
아늑한 안쪽 테이블. 맘의 안정이 찾아왔고 나는 정말 배고팠다...

난 화려한정식인가 뭔가 스페셜한 걸 시켰다. 밖에서 모형 보고 이거 주문해야지했는데 메뉴판에서 못찾고 헤매서 동공지진 약간..
결국 주문 성공^-^
저 옆에 소스통 있다.

소스 담고 미키마우스 완☆성

저 초록색 첨에 뭐지? 죽순인가했는데, 먹어보니 껍데기째 튀긴 완두콩이었다. 저게 너무 특이하고 식감도 아삭하고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ㅜㅠㅜㅜㅜㅠ

돈가스는 물론 쌀밥에 미소된장까지 맛있는 거 실화..? 내가 먹어본 외식 중 세손가락에 꼽히는 레전드 외식이었다. 진짜 이런 집을 외국에서 만나다니..ㅜㅠ 여기 가고싶어서 또 간사이공항 가야될 것 같다..ㅜㅠㅠ진짜 일본에서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은 맛집이었다. 또 가도 그 맛 그대롤지 아닐지 알고 싶으니까 나 또 오사카 보내주라...

1층에 와이파이 반납하고 그 옆 화장실.
공항이라서 칸 내부가 널찍하니 캐리어 잘 수납되는 거 보고 찍었다.
여기에 저 들고다니는 소듕한 가방 벽에 걸어둔채 나갔다가 식겁해서 돌아와 찾았던 기억이 난다. 지갑 들어있는 가방인데 잃어버리면..ㅠㅠ

그리고 출국수속.
운좋게도 딱 내 차례에 한국인이 와서 내 수속을 도와주었다. 운이 좋았던 일본여행.^^

급하게 수속밟아서 짐 체크도 제대로 안했는데, 액체류인 이로하스모모를 갖고 있어서 멘붕을 겪기도 했다.
폭풍드링킹으로 해결했지만..ㅋㅋ

면세점에서 음식선물을 사려던 계획이 있었지만 결국 다 맘에 안 들어 취소.
일본에서 옷을 못 산 게 아쉬웠는데 게이트 가는 길에 유니클로가 있어서 옷 두벌을 샀다. 나를 위해 돈 쓴 게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고, 옷도 맘에 든다.
수중의 지폐가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셔틀?을 타고 게이트로 이동.
앉아있던 외국아주머니가 내게 자신이 맞게 탄 것인지 물었다. 나도 초행인데ㅎ 어쨌든 티켓의 숫자만 잘 보고 움직이면 된다.

첫날 여기서 대기하는 사람을 보고 나도 앉았다가 게이트가 여기가 아님을 곧 깨달았다.

티웨이는 여기.
한 25분 기다린 거 같다.

떠나는 비행기로 고고고..

이번에도 첫날처럼 창가자리.
이번엔 첫날과 달리 왼쪽창가.
내 옆엔 한국인여자애 두 명이 앉았다.

안녕...오사카.
아쉬워서 이륙영상을 많이 찍었다.
이제 길었던 여행기도 끝났는데, 그리움이 한층 더 깊어진다ㅎㅎ

두고두고 꺼내 먹어야지 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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