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바깥을 돌아다니던 헤르메스가 쥐를 물고 집으로 들어왔다. 언제든지 들어오라는 의미로 열어둔 창이었다. 퍽스도 뒤따라 들어와 해리가 건넨 물을 받아 마셨다. 쉬었다가, 호그와트의 맥고나걸 교수님께 이걸 전해주고 와. 헤르메스의 머리를 쓰다듬자 올빼미가 제 다리를 내밀었다. 가는 다리에 돌돌 만 편지를 묶은 해리는 다시 방을 나왔다. 방이 많아서 이 방 하나는 헤르메스와 퍽스에게 온전히 내주었다. 나머지 세 개의 방은 침실, 자신의 서재, 스네이프의 서재로 나눠 쓰기로 했다.

새들이 돌아온 걸 알고 나갔던 해리가 다시 침실의 문을 열자, 스네이프는 침대에서 다리를 벌린 자세 그대로 해리를 맞았다. 바로 다리 사이로 들어와 앉은 해리가 성기를 밀어 넣었다. 으응, 해리이, 늘어지는 목소리에 해리는 또 금방 스네이프에게 빠져 들었다. 둘은 간밤에 잠이 올 때까지 교수와 학생 역할극을 즐겼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또 다시 눈이 맞았다. 이제 윤활 없이도 무리없이 들어가는 스네이프의 구멍은, 해리에게 맞춰진 것처럼 잘 벌려졌다.

“아아…하아… 응, 으응…좋아….”

해리의 어깨를 잡고 헐떡이던 스네이프가 몸을 일으켜 올라 앉았다. 해리는 침대에 등을 붙이고 누워서 제 위에서 움직이는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땀에 절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이 이마에 엉겨 있었다. 서로가 일어나고서 계속 섹스만 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허리를 양 손으로 쓸어내렸다. 흐읏, 아. 허리를 만지는 것도 자극이 되는지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조여 들었다.

“세베루스, 다른 연기도 할 수 있어요?”
“뭐, 어떤 거. 학생 연기는, 하아, 이제 질렸나?”
“그것도 끝내주게 꼴렸어요. 흠, 뭐 보고 싶다 하지.”

허리를 돌리면서 피식 웃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지나치게 섹시했다. 해리는 보고싶은 스네이프의 설정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그냥 바라보고 있는 자체로 머릿속이 그냥 희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너한테 보고 싶은 모습이 있어.”

의외의 말에 접합부를 보고 있던 해리가 시선을 올렸다. 세베루스가 나한테?

“근데, 그건 네가 싫어할지도 모르겠군.”
“제가요? 저한테 뭘 시키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그럴리가 있나요?”

스네이프가 상체를 내려 해리의 목을 안았다. 유두끼리 스치는 느낌이 아찔해서 해리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잘금잘금 허리를 움직이며 스네이프가 살짝씩 쿵쿵 찧었다. 스네이프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라 해리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오러 포터에게 당하는 범죄자 세베루스 스네이프.”

스네이프가 귀에 속살거렸다. 해리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범죄자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변호해서 당신의 결백을 입증했는데! 뜻밖의 취향이라기 보다, 오히려 듣고 나니 스네이프에게 어울려서 더 기분이 별로였다. 볼드모트 같은 자식에게 주인님, 주인님 하고 싶어서 데스 이터가 된 남자니 뭐 어련하겠냐만.

“그건 좀. 연기 같지가 않아서 별론데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픽 웃은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다물고 간간히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해리는 여전히 유쾌하진 않은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안을 처올렸다.


베란다로 헤르메스가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해리는 일어서서 베란다로 나갔다. 졸린 것인지 헤르메스는 다리에 묶인 답장이 풀리자 마자 방으로 비틀비틀 날아갔다. 맥고나걸의 답장이었다.

「해리, 반가운 소식이구나!
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를 희망한다는 말에 무척이나 놀랐고 기뻤단다.
우리들이 해답을 찾던 문제에 가장 깔끔한 답이 아닐까 싶었단다.
세베루스는 마법약 과목과 슬리데린 사감직을 맡는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덧붙여, 나는 다음 새학기부터 완전히 교장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 그리핀도르 사감직에서 물러나 네빌에게 위임하고자 했단다.
그러나 해리 네가 그리핀도르 사감 일을 맡고 싶다면, 네빌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렴.
9월 1일 새학기에 보자. 그 전에 만나도 좋고.」

해리는 편지를 다시 접었다. 내일 출근해서 부서에 사직서만 제출하면 끝이었다. 오러 일은 제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지만, 막상 그만두기는 쉬웠다. 다시금 해리는 오러 포터와 범죄자 스네이프 설정의 섹스를 하자던 스네이프 생각이 났다. 진짜 내 애인이지만, 참…….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식탁으로 돌아온 해리에게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답장을 건네고 해리는 토스트를 물고 질겅거렸다.

해리는 볼드모트가 낙인 찍어 놨던 스네이프 왼팔의 표식을 다시 떠올렸다. 옛날 일이지만 진짜 범죄자였던 사람이 그런 설정을 하고 싶다하니, 자연히 그 때 당시 애인의 주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질투 난다고. 해리는 토스트의 귀퉁이를 찢으며 스네이프의 몸 어디에 제 것이라는 낙인을 찍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문득, 스네이프의 목으로 시선이 갔다. 해리는 내기니가 물었던 부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러라는 직업이 거지 같은 이유가 있다. 일단 주5일제가 전혀 보장 되지 않았고, 주말에 반드시 쉬는 것도 없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오러 부서는 버글버글거렸다. 오프는 일주일 중 하루거나 바쁘면 그마저도 없을 때가 있었다. 물론, 야근에 새벽까지 근무가 연장 되는 경우도 있었다. 새내기 오러인 해리와 론은 그 때마다 굴려지는 막내들이었다.

사직서를 내미는 해리를 보며 오러국 부장 말버러는 입을 떡 벌렸다. 일요일 아침부터 이게 뭔가. 마법세계 영웅으로 특채 고용한 해리 포터의 오러 사직서라니……? 국장 아니고서야 주말에도 출근하는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기도 바쁜데, 해리를 놓친다니, 이건 말도 안됐다.

“이번 달 말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부장님.”

싱긋이 웃는 해리의 미소는 자주 신문 1면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그만두는 것에 상쾌해 보이기까지하는 해리를 붙잡을 방도가 없어 보였다. 말버러가 벌떡 일어나 해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 두고 어딜 가려고!”

다른 마법부 부서에서 해리를 채가는 거 아니야?!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인 해리 포터를 놓치고 싶지 않은 오러국 부장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해리는 슬그머니 그의 손에서 제 손목을 빼내었다.

“마법부에서는 일 안 하니까 걱정마세요, 부장님. 아무튼 사표 수리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하러 갈게요.”

경쾌하게 돌아선 해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말버러는 손에 쥔 사직서를 찢어 버릴까, 한참을 갈등했다.

“뭐야?”

부장과 해리를 보고 있던 론이 해리의 등 쪽의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해리는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하며 사직서를 냈다고 답했다. 론의 눈이 번쩍하며 커졌다. 왜?! 론은 소리를 빽 지를 뻔한 걸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새 직업 찾아서.”
“새 직업이라고???”

론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가득 띄워지는 게 보였다. 헤르미온느한테 들은 거 없어? 해리의 말에 론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왜 나는 모르고 헤르미온느가 알아?

“금요일에 네빌이랑 헤르미온느 만나서 식사 했거든. 네빌이 데려 왔더라고.”
“네빌이? 뭐, 헤르미온느가 딱히 편지 보낸 게 없어서 몰라. 시험 준비한다고 나한테는 편지도 잘 안 하면서 거긴 나왔다고?”

해리는 친구 커플의 대전쟁의 서막을 올리는 단초를 자신이 제공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얼른 말을 덧붙였다.

“세베루스랑 같이 네빌을 만나러 나갔거든. 그래서 네빌이 좀 걱정 됐는지 헤르미온느한테 같이 가달라고 졸랐대. 걔도 억지로 받아들인 것 같더라. 헤르미온느가 이제 시험 끝날 때까진 자기 못 만날 거라고도 했어.”
“스네이프랑? 네빌을 만나? 이게 뭔 소리야, 대체.”

어리둥절한 론의 반응에 해리는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론이 헤르미온느랑 싸울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 호그와트 교수로 임용 됐어.”
“뭣….”

론이 입을 떡 벌렸다. 교수? 해리 네가? 설마 어둠의 마법 방어술??? 론은 일터인 것도 잊고 언성을 높였다. 어흠흠, 주변의 오러들이 시끄럽다고 론에게 눈치를 주었다. 머리색과 비슷하게 얼굴을 붉힌 론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갑자기 왜? 아, 설마. 또 스네이프 때문이야?”

질렸다는 듯이 론이 얼굴을 찡그렸다. 진짜 염병할 사랑이다, 너네. 론은 대체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어떻게 제 친구를 이 지경이 되도록 꼬신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 딱딱하고 성질 더러운 교수가 대체 해리에게 뭘 어쨌길래?

“나만 빼고 다 스네이프를 만나보는 것 같네. 휴 씨가 나 보고 우리 가족 괜찮냐고 물었는데, 스네이프 심문할 때 해리 네가 연애중이라고 휴 씨한테 다 밝혔다며? 헤르미온느는 두 번이나 만나보고 심지어 네빌까지. 내가 '위즐리'라고 나만 따돌리냐?”

괜스레 툴툴거리며 론이 메모지에 깃펜을 휘갈겼다. 해리는 살짝 놀라 론을 보았다.

“너 세베루스랑 만나 보고 싶어?”
“그 작자가 널 어떻게 꼬신 건지 상상이 안 가서, 직접 보면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중이다, 친구.”
“아, 뭐야.”

큭큭 웃으며 해리가 론의 팔을 주먹으로 쳤다. 론도 피식 웃으며 해리의 어깨에 주먹을 박았다.


일요일에도 출근이라니. 스네이프는 어린 신랑을 마법부에 뺏긴 채로, 소파에 모로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 내내 해리와 섹스만 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해리의 사직 이후엔 3개월의 휴가가 생겼다. 그 땐 정말 그 짓만 하고 살면 어쩌지. 그 정도로 해대면 남성인 저도 진짜 임신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스네이프는 이내, 주말 오후를 이렇게 무료한 망상으로 보내는 게 한심스러워졌다.

스네이프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실로 가 옷장의 문을 열었다. 해리가 제 목숨을 구했던 날, 옷을 사러가서 해리가 부추겨 샀던 베이지색의 브이넥 얇은 니트가 눈에 들어왔다. 스네이프는 잠깐 머뭇거리다, 그 옷을 집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거울에 베이지색 니트를 입은 자신이 비쳤다. 조금… 파인 것 같기도 하고.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넥라인을 만지작거렸다. 스네이프는 항상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 입다보니, 흰 살이 보이는 자체로 조금 민망스러웠다. 다행히 마주치는 입주민 없이 스네이프는 집을 나섰다. 스네이프의 뒤로 10층 높이의 아파트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폐점 한 낡은 상점이 있었다.

장을 보려고 코 앞의 슈퍼마켓에 갔을 때 이후 첫 외출이었다. 스네이프는 아무 목적도 없이 머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꽃 화분으로 장식 된 카페의 바깥에는,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와 수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네이프가 베란다로 종종 구경하던 곳이었다.

“…얼그레이로 한 잔.”

주문을 받은 적갈발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점원은 해리의 또래처럼 보였다. 딱딱한 스네이프의 말투에도 점원은 밝게 웃었다. 스네이프는 이제는 익숙하게 머글 돈을 내 계산했다. 그리고 카페 안의 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챙겨 온 책이 마법 독초와 약초 대백과인 것만 빼면, 스네이프는 카페 안의 다른 머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얼그레이 한 잔,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새 메뉴로 낼 아몬드 쿠키인데 드셔보세요. 서비스예요.”

서비스치곤 고급진 그릇 위로 수북한 쿠키의 양이 많았다. 스네이프는 말없이 내려다 보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도 점원은 가지 않고 스네이프의 옆에 서있었다. 맛의 평가를 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스네이프는 쿠키를 집었다.

“…설탕을 15그램 정도 더 첨가해야 할 것 같군.”

마법약 교수처럼 평가하고 말았다. 스네이프가 제가 내뱉은 말에 찡그리자, 점원이 하하핫 웃었다. 미간을 꿈틀인 스네이프가 점원을 올려다 봤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손님의 표정에도 점원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신기하네요. 원래 엄청 단 커피에 곁들이려고 만든 쿠키라, 원 레시피에서 설탕을 15그램 빼서 만든 건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아셨지? 우리 가게 단골이세요? 아닌데, 그럼 내가 당신을 기억을 못할 리가 없는데…….”
“오늘 처음 왔소만.”

오늘부로 다시는 안 올 것 같긴 하군. 스네이프는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다.

“이 근처 사세요? 이사 오셨나? 우리 카페는 거의 이 동네 사람들만 오는데 처음 보는 분이어서.”
“일 하러 안 갑니까?”
“네, 손님. 제가 여기 사장이라 농땡이 쳐도 돼요.”

그 농땡이를 왜 저에게 부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건데. 스네이프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넘겼다. 빌어먹게도 차 맛은 맛있군. 스네이프는 제 앞의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젊은 사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시리우스라고 해요.”
“…….”

차 맛까지 뚝 떨어졌다. 생긴 건 전혀 안 닮아서 다행이랄까. 스네이프가 일어서려고 하자 젊은 사장이 어어어? 하며 따라 일어섰다. 머글 시리우스 씨와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단 1초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손님? 왜 그러세요?”
“내가 얼그레이를 마시는 건지 얼블랙을 마시는 건지 모르겠어서.”
“손님, 그래도─ 아직 한 모금밖에 안 드셨는데….”

제 차 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진 몰라도, 못내 애석한듯 저를 붙잡는 사장에 심기가 거슬렸다. 그냥 일개 손님 하나일 텐데,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리 붙잡지? 스네이프는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며 가게 문을 열었다.

초록색 문에 달린 종에서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덜컹이며 닫히는 문과 기어코 거리까지 쫓아나온 사장에 스네이프는 짜증이 폭발했다. 뒤이어 그가 제 손목을 잡아오는 것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님, 죄송해요. 사실, 이렇게까지 제 취향인 분은 처음 봐서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그런 건데─ 제발 제가 무례했던 건 용서해주시고 우리 통성명을…….”
“뭣….”

취향…? 뭐가 취향? 내가 취향이라고……?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은 대체─

“아악! 뭐야?!”

사장의 팔이 뒤로 꺾여 스네이프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놀란 눈으로 눈 앞의 붉은 머리 청년을 바라 봤다. 그는 방금까지의 스네이프 만큼이나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시네. 그 말은 분명, 저를 향한 빈정거림이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꾹 여물며 그를 노려 봤다.

“…론 위즐리.”

론이 고개를 건성으로 까닥였다. 그리고 그대로 론은 사장을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팔이 뒤로 꺾인 사장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프다고 고함을 계속 질러댔다. 그리고 잠시 후, 가게 안은 어떤 소란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카페 바깥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어리둥절해질 만큼이었다.

초록 문의 종이 딸랑이며 맑게 울렸다. 론이 문을 열고 나타나 스네이프에게로 다가왔다.

“돈 낸 거 있어요? 그것도 받아 와줄까요?”
“아니, 필요 없…. 위즐리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세베루스! 론!”

해리였다. 헐떡이며 달려오는 해리의 손에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저렇게 뛰어 오면 다 뭉개질 것 같은데. 그러나 지금 해리에게는 케이크 따위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론은 몹시도 애석한 표정으로 케이크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해리는 스네이프만 보며 달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앞에 와서는, 걱정과 분노가 어린 표정으로 스네이프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카페 문을 노려보는 해리의 표정이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스네이프는 해리가 이대로 폭파 주문을 쓰는 건 아닐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괜찮…아요? 빵집이 여기랑 거리가 좀 돼서 늦었어요, 젠장!”
“난 괜찮아, 포터. 그런데 무슨 수를 쓴 거지, 위즐리?”
“카페 내의 머글 모두에게 오블리비아테를 썼습니다만.”

어깨를 으쓱인 론이 스네이프를 돌아 보았다. 파인 브이넥의 니트를 입고 있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 게다가 머글 남자한테 추행까지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히, 환장할 재회라고 평할 만 했다.


스네이프가 뭉개진 케이크에 복원 마법을 걸었다. 멀쩡해진 케이크에 론이 눈을 빛내며 포크를 들었다. 해리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포크는 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스네이프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난 해리의 얼굴에 눈치가 보였다. 물론, 론은 그런 눈치는 개나 던져준 듯 했다. 아니면 신경이 안 쓰이거나. 이 머글 베이커리의 맛이 기가 막힌다며 론은 케이크를 큰 덩이로 퍽퍽 퍼먹었다.

해리는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쉬고 스네이프의 앞에 그릇을 소환해 케이크 조각을 덜어주었다. 이대로 두다간 스네이프가 한 입도 못 먹고 론에게 빼앗길 것 같았다.

“세베루스, 먹어봐요. 맛있어요, 여기, 이 집 케이크. 론이 좋아해서 오늘 집에 오기 전에 들렀는데 그런 광경을 보게될 줄은 몰랐지만…….”

으득, 이를 갈며 해리가 미간을 좁혔다. 스네이프는 포크로 조각을 작게 떠서 해리의 입 앞에 갖다 대었다. 론이 그걸 보더니 옘병, 작게 중얼거리며 케이크를 입에 쑤셔 넣었다. 해리는 살짝 표정을 풀고 케이크를 받아 먹었다.

“그 카페… 종종 갔었어요?”
“아니, 오늘 처음.”
“그 새끼가, 뭐라고 했어요? 당신 몸을 함부로 잡은 건 봤는데─”
“……그냥, 헛소리.”
“해리, 내가 들었는데 그 자식이 스네이프가 너무 자기 취향이라서 붙잡았댄다.”
“론 위즐리!”

론이 혀를 메롱 내밀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이잖아요? 그 말에 스네이프는 주먹을 꾹 쥐고 론을 노려봤다. 돌아본 해리의 녹색 눈은 이글이글 불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가 언제 쥐었는지 모를 지팡이를 쥔 주먹에 힘줄이 다 섰다. 스네이프는 현직 오러인 제 연인이 머글에 폭력 상해를 입힐까 염려스러웠다. 그 머글 놈은 어떻게 돼도 전혀 상관 없었다. 해리에게 해가 생길까봐 걱정스러웠다.

“포터, 그냥 손목만 잡혔어. 그리고 그 머글도 뭔가 착각했겠지. 내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어딨겠….”
“세베루스, 난 당신 남자친구라고요.”
“아, 뭐, 너 같은 특이취향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
“세베루스! 어째서 이 일이 당신 자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건데요?!”

쌓이고 쌓이는 분노에 결국 해리는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즉시 괴로워하며 지팡이를 놓고, 마른 세수를 했다. 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케이크 위의 딸기를 입에 넣었다. 이 상황에서 론만은 제3자 역할에 충실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 뭐, 이젠 저도 학생이 아니니까 스네이프라고 불러도 되겠죠?”
“…네 맘대로 해라, 론 위즐리.”
“스네이프. 해리가 좋아하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요? 당신 때문에 해리가 내 여동생을 찼다고요. 뭐, 그건 일단 제쳐놓고. 그리고 오늘은 내가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그 옷 해리가 골라준 거 맞죠? 잘못은 그 머글 자식이 했지. 마법사였으면 더 굴려줄 수 있는데, 머글이라 기억만 지워서 아쉬울 정도야.”

론은 오러가 천직인 것 같았다. 뚜둑 소리가 나게 손에 깍지를 끼고 비트는 것까지 기세등등해보였다. 스네이프는 어이없게도, 그 순간에 마법부 장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오러 국장 론 위즐리를 떠올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이 마법세계가 어찌 되려고…….

어쨌든, 스네이프는 론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제 얼굴에 미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었지만, 해리가 늘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말해줘서 그런걸까, 누군가에겐 나 같은 놈도 취향일 수 있겠지 하는 마음도 약간은 들었다. 스네이프는 죽은 눈을 한 채, 론이 헤집어 놓은 케이크 잔해를 깔작이는 해리를 바라 보았다.

“포터.”
“네….”
“나도 마법사야, 위즐리가 없었어도 그런 머글 정돈 쉽게 떼어 낼 수 있었고.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알아요, 전 단지…. 젠장. 론 앞에서 이런 말을 하려니. 야, 론. 귀 잠깐 막고 있어 봐.”
“진짜 너네…… 환장하겠다. 알았어, 알았어. 빨리 해, 해리.”

론이 투덜대며 양 쪽 귓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제야 해리가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다. 스네이프는 다시 저를 바라보는 녹색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세베루스, 저도 당신이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어요. 진짜 제 기분이 지금 어떤 줄 알아요? 이대로 세베루스를 집에 가둬놓고 저만 보고싶은 이기적인 생각까지 든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자기 외모 비하나 하고 있지….”
“해리 포터. 너야말로 이 세계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폭발인데, 지금 내가 맘에 든다는 사람 딱 하나 나타났다고 그런 마음이 드나?”

해리의 이기적 소유욕에 스네이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둬놓고 싶을 정도라고?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영웅은 확실히 이상성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해, 둘의 앞에 앉아있는 론은 아무리 귀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도 들리는 둘의 대화 내용에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요, 이 염병할 커플들아. 나 방금 쩔게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거든요? 비위 좀 맞춰주시죠.”
“귀 막고 있으랬잖아, 론.”
“다 들리는 걸 어떡하냐고. 어휴, 진짜. 지금 보니 지니랑 네가 결혼 안 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 고맙.”

스네이프는 또래 동성친구 옆에서 여즉 10대 티가 나는 해리에게 웃음이 났다. 제 앞에선 그래도 어른스럽게 굴려고 노력하더니. (그래서 더 애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엄마는 이제 좀 받아들이신 것 같더라. 해리 너랑 내가 직장에서 얘기는 나누냐고 물으셨어.”
“정말? 다행이다. 나도 빨리 네 가족들이랑 다시 만나고 싶거든.”
“그래도 아직은 좀…. 그리고 올 거면 너 혼자 와야할 것 같아. 스네이프는….”

흘낏, 스네이프를 본 론이 말꼬리를 흐렸다. 해리는 턱을 괸 채로 표정을 굳혔다. 스네이프는 평생 해리가 혼자 위즐리들을 만나러 가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해리 고집과 생각에 절대 그러고 살 수는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베루스는요? 위즐리 가족을 만나러 가긴 부담스럽겠죠…?”
“당연하지. 내가 그들을 본다는 건 지극히 뻔뻔한데다가, 원래 내 성격에도 안 맞고.”
“하아, 알았어요. 일단은, 봐서 제가 혼자 다녀올게요. 그렇지만…… 론, 내 결혼식은 위즐리 가족 없이는 못 열어. 그러니까 제대로 용서 구할거고 화해 할 거야.”
“……결혼식?”

론이 입을 떡 벌린 채, 넋을 놓고 스네이프와 해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론 너한텐 얘기 안 했었나? 해리는 뻔뻔한 얼굴로 냉수를 따라서 단숨에 마셨다. 음, 시원해.


론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벽난로에 플루 가루를 뿌렸다. 해리가 사준 케이크에 이어 스네이프가 차려준 감자 스프, 각종 가니쉬를 더한 훈제 오리 요리까지 대접 받은 론은 매우 만족한 얼굴로 버로우로 돌아갔다. 역시 론은 먹을 걸로 포섭하는 게 최고예요. 으쓱이던 해리는 스네이프와 함께 부엌으로 되돌아갔다. 지팡이를 휘두른 해리가 그릇에 세척 마법을 걸었고, 스네이프는 냉장고를 들여다 보며 살 것을 확인 했다. 말단인 해리의 오러 업무가 생각보다도 더 과중해서, 잘 먹이려 했더니 식재료가 금방 줄어들었다. 게다가 한차례 론 위즐리라는 폭풍까지 지나갔더니 냉장고 사정이 영 궁핍해졌다.

해리는 홍차와 함께 식탁에 다시 앉았다. 스네이프는 주문을 건 깃펜에 사야할 목록을 읊어주고 양피지에 쓰게한 뒤, 냉장고를 닫고 해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해리가 준비한 것은 얼그레이가 아닌 루이보스였다. 흐음. 눈썹을 까딱한 스네이프가 차를 받아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괜히 돈 내고 밖에서 사마실 필요는 없지. 이 세계의 구원자가 공짜로 끓여주는 홍차가 있는데 말이었다.

“세베루스.”
“뭐지? 포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당신 목에 내 거라고 낙인을 찍고 싶어요.”
“……키스마크 이야긴 아닌 것 같군, 보아하니.”

스네이프는 질렸다는 얼굴로 홍차를 들이켰다. 그래도 차 맛이 아주 뚝 떨어질 정도의 주제는 아니었다.

“오늘 그런 일도 있었고……. 당신이 내 거라는 표식이 필요해요. 장신구는 거추장스럽고, 눈에 바로 보이는 걸로요.”
“내가 네 건가?”
“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 거죠.”

눈썹을 으쓱하며 해리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유로워 보이는데, 포터. 스네이프는 픽 웃고는, 해리와 나란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식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내 목에 어떤 걸 새기고 싶은 건데?”
“남들이 보자마자 의미를 깨닫는 거요.”
“뭐지? 설마 네 이름이라도 새기고 싶은 건가.”

스네이프는 정말 변태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해리는 큭큭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처음엔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소유이다'를 새기고 싶었는데…….”
“미친. 제대로 돌았군.”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스네이프의 눈초리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리핀도르 10점 감점 소리가 들릴 것 같아, 해리는 웃음을 참았다.

달그락, 잔소음을 내며 해리가 찻잔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해리는 잔을 내려놓은 오른손으로 제 앞머리를 들어 이마를 드러냈다. 스네이프에게도 익숙한, 마법세계의 모두가 알아보는 그 번개무늬 흉터가 훤히 보였다. 하, 스네이프는 탄복하며 실소했다.

브이넥을 입어서 오늘따라 목덜미도 잘 보였다. 스네이프는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숨소리를 냈다. 해리가 아까부터 뚫어져라 제 왼쪽의 목 부근을 보고 있었다. 내기니가 물었던 곳─ 의도가 뻔히 보였다. 볼드모트의 흔적에 질투해 낙인을 떠올리는 질투의 화신이니, 어쩌면 해리가 이 자리를 원하는 것도 당연한 듯 보였다. 스네이프는 왼손으로 브이넥의 목라인을 잡고 팽팽히 당겼다. 드러나는 빗장뼈와 하얀 목선이 해리를 현혹했다.

“새겨 줘.”

해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야하게, 도발적으로 제 욕망을 받아들여주는 그 모습에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해리가 고작 세 발자국만에 스네이프의 앞에 섰다. 여전히 옷깃을 바짝 잡아 당긴 스네이프가 해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게 더 해리를 미칠 것 같이 만들었다. 해리의 지팡이 끝이 스네이프의 목을 꾹 눌렀다. 살짝, 스네이프가 미간을 좁혔다가 풀었다. 해리의 지팡이가 흰 살갗 위에서 세 개의 사선을 그렸다. 칼에 베인 듯한 목의 상처 위로, 방울방울 맺힌 핏방울이 스르륵 흘러 내렸다.

“…심지어 섹튬셈프라의 변형 마법인가?”

스네이프가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해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의 얼굴을 감싸 잡고, 급하게 입 속을 파고 들었다. 스네이프의 베이지색 밝은 니트에 핏물이 조금씩 스며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눈을 마주쳤다. 깊은 소유욕과 저를 향한 욕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 녹색 눈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헛웃음을 흘리며 제 목덜미를 해리에게 내어 주었다. 따가운 상처 위를 해리의 부드러운 혀가 지나가며 피를 핥았다.

정말 난 너의 것이구나.
스네이프는 눈을 감고,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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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금요일 저녁, 네빌은 헤르미온느와 함께 호그스미드의 작은 식당의 문을 열었다. 후플푸프 출신의 마법사가 개업한 이 식당은 작았지만 분위기가 따듯하고 음식의 맛이 좋았다. 협소한 공간 탓에 예약제로 이뤄져, 네빌이 만남에 수락하자마자 해리가 미리 예약해두었다. 다만 혼자서 스네이프 교수님을 만나러가는 건 아직 무서워서 네빌은 헤르미온느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시험이 코앞이라 거절할 줄 알았던 그녀는 해리-스네이프 커플을 만나러 간다는 네빌에 흔쾌히 승낙했다. 한번씩 이렇게 기분전환을 해줘야 머리도 돌아간다는 게 그녀의 말이었다. 네빌은 스네이프 교수를 만나는데 기분이 전환될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래도 동행은 다행스러웠다.

“아직 안 오셨네.”

헤르미온느가 예약석에 착석하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녀의 부스스한 머리칼에 머리를 맞으며 네빌도 옆에 앉았다. 조금 긴장이 되네. 네빌의 중얼거림에 헤르미온느가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스네이프 교수님도 전보단 나아지셨던데. 일전의 방문에 스네이프가 불러서 만났다는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어도, 네빌은 여전히 불안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선 해리가 보였고 뒤이어 스네이프가 보였다. 네빌과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스네이프는 오늘 까만 셔츠에 까만 진을 입고 머리를 묶은 모습이었다. 물론, 둘 다 저런 모습의 스네이프는 난생 처음 보았다. 헤르미온느는 입을 가리며 어머머, 하고 신나했다. 진짜 섹시한데?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네빌은 내심 동의하면서 놀란 눈을 깜박거렸다.

“헤르미온느, 네빌.”
“안녕,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늘 멋지신데요.”
“스네이프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 입니다. 돌아오신 걸 축하드려요.”

네빌이 조심스레 인사했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네빌을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네빌은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옷에 손을 닦은 뒤 악수를 받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해리가 가장 안 쪽으로 예약해둔 자리는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네빌은 스네이프를 몰래 힐끗거렸고, 헤르미온느는 대놓고 오늘 옷이 멋지시다, 머리스타일이 잘 어울리신다며 스네이프의 심기를 거슬렀다. 해리는 싱글거리면서 종업원을 불렀다. 유명한 전쟁 영웅들과 이번주 내내 마법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스네이프 교수가 손님이라니. 어린 종업원은 심장이 설레서 그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느라 혼이 났다.

“네빌, 나와줘서 고마워. 헤르미온느도.”
“뭘,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온 건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지?”
“응. 아직 나도 세베루스한테 얘기하진 않았어. 이틀 전에 슬러그혼 교수님이 사직하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그렇구나.”

네빌은 스네이프 교수를 가리켜 세베루스라고 칭하는 해리를 신기한 듯이 바라 보았다. 이미 호그와트에서 해리를 만났을 때 둘이 연인사이 라는 걸 듣긴 했지만, 둘이 그런 관계라는 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있어도 낯설었다.

스네이프는 네빌과 해리 둘만 통하는 주제에 눈썹을 꿈틀이며 해리를 쳐다 보았다. 나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해리가 저에게 비밀을 만들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스네이프는 인상을 구겼다. 네빌은 익숙한 그 표정에 살짝 겁을 먹고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해리, 네빌. 무슨 일인데?”

헤르미온느가 뺨을 괸 채 명랑하게 물었다. 그녀는 책 더미가 쌓인 도서관이 아닌, 분위기 좋은 식당에 있는 자체로 기분이 몹시 좋아보였다.

“내가 화요일 저녁에 호그와트에 왔을 때, 네빌을 만나서 대화한 게 있거든. 세베루스가 교수 복직을 하는 게 불만이라고, 사실 우리 둘이 사귀고 있다고 네빌에게 말했었어.”
“진짜 깜짝 놀랐다고, 해리. 무슨 그런 농담을 하는지 싶어서…… 죄, 죄송해요 스네이프 교수님…….”

네빌은 웃으면서 해리에게 대답하다, 스네이프를 쳐다 보고 움찔 굳어서 사과를 했다. 스네이프는 제 표정에 전부 반응하려 하는 네빌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설렁거렸다. 사과할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마침 구운 양고기나 감자튀김, 호박스프 등이 그들의 앞에 놓였다. 먹음직스런 음식들과 맛있는 냄새에 분위기는 한결 더 좋아졌다. 식당에서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다. 스네이프는 제자들과 이런 식당에 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그리핀도르의 마음에 안 드는 제자들만 쏙쏙 골라다 놓은 것 같아서 무척 우스웠다.

“아무튼, 그 때 네빌이 내 고민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줬거든. 세베루스가 복직해서 슬리데린 사감직을 다시 맡으면 계속 학교에 있어야 하잖아. 나는 세베루스랑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싫었어. 그래서 호그와트 교수직을 관둔다는 슬러그혼의 확답을 들었겠다, 네빌에게서 들었던 그 방안을 실천해보려 해.”
“그게 뭔데?”

헤르미온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해리를 바라 봤다. 스네이프도 옆에 앉은 해리를 곁눈질하며 양고기를 썰었다. 네빌 롱바텀이 제시한 해결 방안이라고? 썩 믿음이 가진 않는데.


“해리, 정말이야?”

네빌이 대연회장을 빠져 나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쉽게 디저트는 쓴 맛 나던 케이크로 끝낸 해리가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끄덕거렸다. 네빌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스네이프 교수와 해리의 예전 모습들을 떠올렸다. 같이 산다는 게 뭐길래 그 둘에 연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을까.

네빌은 해리의 옆에서 종종 마법약을 만들기도 했으므로, 그 둘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스네이프가 눈을 부라리며 저들의 마법약에 트집 잡을 것을 호시탐탐 노리던 것을 어떻게 잊겠는가. 해리가 분노하며 스네이프에게 말대꾸를 할 때마다 네빌은 해리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어쩌자고 스네이프 교수의 심기를 더 거스르는 거야, 해리! 교수의 입에서 그리핀도르 50점 감점이 튀어 나오는 상상만 해도 네빌은 앞섶을 적실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들들 볶고 미워하던 앙숙들인데. 해리는 이제 스네이프 교수가 학교에 복직하는 걸로도 조바심과 안달을 느껴하고 있었다. 그와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다며 슬퍼했다. 네빌에게는 지니와 사귀는 해리의 모습이 아직 더 익숙한데, 눈앞의 해리의 모습은 정말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럼… 넌 지금 교장실로 가니? 스네이프 교수님이 있다는….”
“응. 같이 집에 돌아가야지. 내 집에서 같이 살고 있어.”
“그래…. 스네이프 교수님이 복직하시게 되면, 나도 새학기부터는 약초학 교수가 되니까, 동료 교수가 되겠다. 신기하다, 그치? 해리.”
“그러게…. 부럽다…. 아, 아 맞다. 너는 교수님이 여전히 불편할 텐데. 나한테는 이제 전처럼 못되게 안 굴지만, 네빌 너는 여전히 어렵겠지. 나도 처음에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살게 됐을 때는, 내가 같이 살자 해놓고 진짜 같이 살기 싫다고 생각도 했었는데.”

푸흣, 웃음을 흘리며 해리가 네빌을 돌아 보았다. 네빌은 스네이프와의 처음을 회상하며 순수하고 부드럽게 웃는 해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어쩐지 그 얼굴에서 해리의 진심이 보였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해리, 내가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교수가 된다고 부러워만 할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뭐? 내가 뭘 아는데?”

해리는 어리둥절해서 네빌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교수 말이야. 어둠의 마법 방어술. 오러 일을 관두고 네가 호그와트 교수가 되는 방법도 있어. 네가 그렇게…… 스네이프 교수님과 떨어져 있기 싫어한다면.”

계단에 한 걸음 올라서며 네빌이 말했다. 네빌의 말투처럼 담백한 해답이었다. 해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빌을 올려다 보았다. 기차에서 두꺼비를 잃어버려 징징 짜던 그 어린 네빌은 어디로 갔을까. 벌써부터 네빌은 한 사람에게 이렇듯 길을 찾아주는 스승의 면모가 보였다. 해리는 놀라고 기뻐서 네빌을 덥석 안았다 놓았다. 얼떨떨해 하면서도 네빌이 씨익 웃었다.

“세상에,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네빌 네가 교수가 될 거라서 그런 생각이 난 건가…?! 와, 진짜 그런 방법이 있었네! 맞아, 그 수가 있었어. 고마워 네빌! 좋은 밤 보내!”

기숙사로 올라가는 네빌에 밝게 손 흔들며 해리가 교장실로 돌아섰다. 네빌은 계단에 서서 멀어져가는 해리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호그와트에 스네이프와 해리 모두가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예전과 달라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네빌은 궁금해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해리 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완전 덤블도어의 군대잖아!”

헤르미온느가 박수를 짝 치며 눈을 반짝였다. 해리가 5학년 때 엄브릿지 ─마법부─ 에 대항해 친구들에게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쳤던 건 전적으로 헤르미온느의 아이디어였다. 헤르미온느는 몇 수 앞을 내다 본 제 심미안에, 스스로의 빛나는 지성에 감탄했다.

스네이프는 스프를 수저로 천천히 저으며 해리와 네빌이 나눈 대화들을 생각했다. 해리가…… 저와 함께 교수가 된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네이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스프를 입에 넣으며 꿈틀거리는 제 입술을 가렸다. 어떡하지, 너무 좋은데. 스네이프는 제가 이렇게까지 해리와 같이 있고 싶었는지 몰랐다. 먼저 해리 옆을 떠나 학교에 있겠다고 말한 것도 자신이었는데. 해리가 저를 따라와 언제나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어떡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해리가 싱긋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돌아 보았다. 스네이프는 어쩐지 시선을 맞추기가 부끄러워 모른척했다. 세베루스, 속삭이며 해리가 살짝 스네이프의 손등을 감쌌다. 네빌과 헤르미온느의 시선이 해리의 손에 따라붙었지만, 그들은 못 본 척 딴청을 피웠다.

“그 날, 맥고나걸 교수님 앞에서 이 생각을 바로 말하려고 했는데요. 당신이 집에서 출퇴근을 먼저 요구했다는 걸 알고, 전 그 사실로도 충분히 기뻤어요. 그렇지만 이제 슬러그혼 교수가 학교를 떠난다니, 세베루스가 사감 직을 맡을 게 거의 확실해보여서 이렇게 말 하는 거예요. 저 나름대로 서점에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관련 책도 사서 틈틈히 보고 있었어요. 요즘 너무 바빠서 사실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오러 일을 그만둔 뒤에 교수 일을 제대로 준비해보려 해요. 전직 오러에 저는 해리 포터니까, 맥고나걸 교수님도 제게 바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직을 주실 것 같은데, 세베루스 생각은 어때요?”

언제나처럼 단단하고 힘 있게 말을 하는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옛 제자들 앞에서, 해리에게 가슴이 떨리고 있다는 걸 티낼 수 없어서 입술만 잘근거렸다. 목소리가 떨릴까봐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헤르미온느는 그 둘을 지그시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두 사람, 정말 잘 어울린다.”

옆에서 네빌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상도 못해 본 그림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어울리지? 그러나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네빌은 끄덕이던 고개를 털거덕거리며 기름칠 덜 된 갑옷병정처럼 딱딱하게 굳혔다.

스네이프는 덤블도어와 맥고나걸에 이어 또 다시 해리와 자신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은 것에, 약간 얼떨떨해졌고,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우리 둘의 어떤 부분이, 남들에게 어디가 그렇게 보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물을 수도 없었다. 이미 해리에게 두근거리고 있단 걸 티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네이프는 벅찼다.

“졸업하기 아쉽다. 스네이프 교수님이랑 해리, 네빌 교수의 수업 궁금한데.”

헤르미온느는 진심으로 아쉬워 보였다. 그러자 해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 같은 인재가 계속 호그와트에 있어서야 되겠어? 헤르미온느. 마법부가 너 기다리느라 눈알이 빠지고 있는데.”

해리의 말에 헤르미온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빌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그와트 동기들 중에 제일 잘 나갈 사람은 헤르미온느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세베루스 스네이프마저도. 스네이프조차 마법부 장관이 된 그녀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해리, 결혼식은 준비중이야?”

스네이프와 네빌이 동시에 입에 음식을 넣은 채 쿨럭거렸다. 해리가 냅킨을 들어 스네이프의 입을 가려주었다. 네빌은 씁쓸하게 자신이 냅킨을 찾아 입을 닦았다. 어쨌든 헤르미온느의 발언은 너무 놀라운 것이었다.

“두 사람, 결혼해…?”
“그렇대. 해리가 교수님께 청혼했다고 들었어.”
“와…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너무 놀라운 소식들이 가득하네….”

네빌은 슬쩍 스네이프를 쳐다 보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적응은 안 되는데, 스네이프가 해리를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세베루스는 식에는 관심이 없대. 그래서 나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 헤르미온느.”
“음… 그래? 하지만 교수님, 해리는 이 마법세계를 구한 영웅이예요. 그만큼 보는 눈이 많고, 해리에 대해 저들끼리 말을 지어내는 것도 많아요. 교수님도 과거 이력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이잖아요. 아무런 증명 없이 해리와 계속 함께 있으려면 방해 받을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주변에서 둘을 물어뜯으려고 들 거란 거죠.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해요. 그게 허례허식이어도요.”

헤르미온느의 통찰은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았다. 세련되고 뾰족한 날이 빛에 반짝이는 듯 했다. 스네이프는 잠시 헤르미온느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대로 해리는 마법세계의 모든 관심이 주목된 자였다. 그런 해리를 이성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노리는 자들이 태반인 이 세계에서, 전 데스 이터인 자신이 어떤 퍼포먼스도 없이 가지려드는 건 그들의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해리의 개인사가 신문 1면을 가볍게 차지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되는 사실이었다. 해리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단순한 표정이 아마도 헤르미온느가 엄청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 그런데…… 내 결혼식에 꼭 와줘야하는 사람들과 지금, 상당히 불편해졌어…….”

해리는 위즐리 가족을 떠올렸다. 헤르미온느의 안색도 해리처럼 어두워졌다. 하필이면, 해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영원히 끊어질 인연은 아니다. 그러니 그건 심려치 않아도 돼, 포터.”

스네이프의 말에 세 명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스네이프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할 말은 다 해야했기에 입은 다물지 않았다.

“론 위즐리의 태도를 봤잖아. 날…… 택하면 위즐리를 포기해야 할 수 있다 말했었지만, 그들은 결국 널 져버리진 않을 것 같으니.”

해리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끄덕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위즐리들과의 인연이 제가 스네이프를 사랑하는 걸로 끊긴다면, 해리야말로 그 얄팍한 연결에 넌더리가 났을 것이었다.

“결혼식은… 하객 수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대중에게 행사를 했다는 사실만 드러내면 되는 거지. 그러니 위즐리의 용서를 받은 날에 당장 열어도 상관 없어.”
“아니예요, 스네이프 교수님! 결혼식이 연인간에 얼마나 뜻 깊은 날인데 그걸 그렇게 속전속결로 해치워요?”

헤르미온느가 미간을 찌푸리며 성질을 부렸다. 식의 당사자보다 더 화를 내는 헤르미온느에, 네빌은 여자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스네이프도 네빌과 같은 생각을 했지만, 듣고 있던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말에 동의 했다. 저와 스네이프의 결혼을 만천하에 알리는 행사인데, 제대로 하고 싶었다.

“우선 내가 위즐리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 뒤, 식의 날짜를 잡을게, 헤르미온느. 식의 장소는…… 음, 우리집은 아파트고 세베루스의 집은 버려진 머글 동네인데 결혼식을 열 장소로는 마땅치 않아.”
“호그와트에서 열어도 되지 않을까? 아마 그 시기가 여름방학 중에는 가능하지 싶은데. 학생들이 없을 때 해야 하겠지. 스네이프 교수님 생각은요?”
“……그렇게 하던가.”

제 결혼식인데 헤르미온느가 더 열과 성을 다해 논의중이었다. 스네이프는 디저트를 물어오는 종업원에게 각자 아이스크림을 내달라고 말했다. 네빌은 딸기맛을 요청 했고, 스네이프가 자신과 똑같은 딸기맛을 선택한 것에 놀랐다. 달콤한 건 입에도 안 대게 생기셨는데. 해리는 스네이프에게 제 몫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반 스쿱 더 떠주며 많이 먹으라고 다정히 속삭였다. 그에 스네이프는 창피해 할 줄 알았더니, 또 그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떤 의미론 염병을 떠는 커플인지도. 헤르미온느가 왜 기분전환이랍시며 그들을 보러 신나게 나왔는지 네빌도 알 듯한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호그스미드의 밤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오늘 잘 먹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시험을 다 마칠 때까지는 이제 못 만날 것이라 말했다. 네빌 역시 덕분에 좋은 저녁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다음에 또 보자고 웃으며 제 친구들을 바라봤다. 스네이프는 한참 조용히 해리의 뒤편에 서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를 지켜 보다, 네빌의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네빌은 의아한 눈으로 스네이프를 올려다 보았다. 스네이프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롱바텀.”
“네, 네! 스네이프 교수님….”
“네가 내기니를 죽였다는 걸 포터에게 들었다. 고드릭의 칼을 썼다고.”
“아…! 아아, 네……. 우연한 일이었지만… 네, 제가 내기니를 죽였어요.”

네빌은 내기니의 독으로 죽었다고 알려졌었던, 그의 악몽 같은 옛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딱딱한 얼굴이었지만, 수업시간에 봤던 그 차가운 눈초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네빌은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스네이프가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그가 지금 제게 느끼는 감정이 전해져서 민망스럽고 쑥스러웠다.

“나 대신 복수해줘서 고맙군.”

스네이프는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네빌은 미소를 짓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멍하니 넋을 놓았다. 그래서 스네이프가 또 다시 내민 손도 금방 인식하지 못했다. 해리가 웃으며 네빌, 하고 재촉하는 소리에 뒤늦게 네빌은 스네이프의 손을 보고 허겁지겁 악수를 했다. 네빌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저를 떠나가는 게 느껴졌다.

“저야말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꿈틀였다. 저는 여전히 네빌에 대한 인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고, 그를 쥐잡듯이 잡았던 과거만 기억나기 때문이었다. 네빌은 악수한 손을 놓으며 한결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보였다.

“이런 순간이 올 줄은 몰랐어요. 교수님이 살았으니 이런 순간도 온 거니까…….”
“……그래. 학생일 적 너의 형편없는 실력에 대해 지나치게 괴롭힌 것에 대해선 사과 하마.”
“세베루스, 그거 사과 맞아요?”

해리가 어이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네빌은 이미 웃음을 터뜨렸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정말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사과였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스네이프 교수님. 식 날짜 정해지면 헤르메스 보내주세요. 꼭 갈게요. 해리, 잘 들어가!”

네빌의 인사를 끝으로, 헤르미온느와 네빌이 호그와트 정문 앞으로 순간이동 했다. 해리는 순간이동을 위해 스네이프에게 팔짱을 끼면서, 오늘 잘했다고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피식 웃고는 해리를 따라 해리와 자신의 집으로 이동했다.


“이거야?”
“네, 이제 눈치 안 보고 세베루스 옆에서 공부 해도 되겠다.”

플러리쉬 앤 블러트에서 사온 어둠의 마법 방어술 관련 서적들을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며 해리가 웃었다. 볼 시간도 없었을 텐데, 책의 몇 페이지가 접혀서 고정 되어 있었다. 스네이프는 손을 뻗어 거칠한 종이 질을 더듬었다.

천성으로 따지자면, 저보다는 해리가 훨씬 누굴 가르치는 것에 적성이 맞았다. 스네이프는 성인이 되고 가진 직업이 교수 뿐이었으니, 이 길 외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저와 맞는지 안 맞는지는 고려조차 할 사항이 아니었다. 덤블도어는 스네이프가 교수로 있으면서 호그와트에 입학 할 해리를 지켜 보길 원했다. 생각해보면 해리만을 기다린 세월이 10년, 해리를 알고 지낸 세월은 8년이었다. 그 중에 단 1년만을 해리를 사랑했다니. 스네이프는 그 시간이 흐를 동안 제 반려를 알아보지 못한 게 우스웠다. 물론, 해리 역시 그렇긴 하지만.

“오러 일은 언제까지 하게?”

스네이프는 책을 덮고, 몸을 돌려 팔짱을 꼈다. 해리는 책상에 한 손을 얹고 부드럽게 시선을 맞췄다.

“이번 달까지만요.”
“그럼 개학까지 3개월을 쉬겠군.”
“여행이라도 갈까요?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딱히.”
“전 지금 하고 싶은 거 있는데.”

해리가 배시시 웃었다. 스네이프는 눈썹 끝을 올렸다가, 고개를 숙여 해리와 입을 맞췄다. 해리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고개를 꺾었다. 다정한 큰 손이 스네이프의 뺨을 감쌌다. 해리는 살짝 두어 번 쪽, 쪽 입술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공부한다며.”
“꼭 선생님처럼 말 하시네.”
“난 네 선생이 맞다만, 포터.”
“저도 될 건데, 선생님. 포터 교수, 해 봐요.”

큭큭 웃음을 참으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허리에 팔을 얹었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해리를 보았다. 공부를 시킬지, 이대로 장단에 맞춰줄지 잠시 고민을 했다. 어차피 몇 달 후면 질리도록 들을 소리를 벌써부터 듣고 질리고 싶다는 데 도와줄까.

“포터 교수님, 무례하게 어디에 손을 얹고 계신 거죠?”

해리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가, 이내 실수였던 척 허리에서 손을 떼냈다.

“넘어질 뻔 해서요. 실례했어요, 스네이프 교수님.”
“그러십니까. 그럼 하시던 공부 계속 하시길, 포터 교수님.”
“엇, 잠깐 잠깐. 스네이프 교수님, 잠시만요.”

문고리를 잡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다급히 손목을 잡아왔다. 스네이프가 또 왜, 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해리는 왠지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 같은 눈이었다.

“저…… 그게, 있잖아요…. 세베루스, 저 꼴렸는데 계속 하면 안돼요?”
“하……?”
“이왕이면 제가 교수고, 세브가 학생인 걸로….”

아, 잊을 리 있을까. 해리 포터는 섹스만 하면 변태고 짐승이었다는 걸. 스네이프는 한숨을 쉬며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해리의 손이 제 손목에서 아쉬운듯 떨어졌다. 어린애 같은 게 지금 누군데 절 보고 학생인 척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제대로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나?”
“네?”
“포터, 네 교복 아직도 갖고 있나?”

해리가 입을 떡 벌렸다. 와, 헐, 대박. 진짜요?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휘둘러 아씨오로 교복을 소환했다. 그리핀도르의 붉고 노란 넥타이가 셔츠 깃 밑에서 팔랑이며 가라앉았다. 그리핀도르답게 험하게 입어서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다. 학생일 때의 해리도 저보다는 체격이 좋았으니 얼추 몸에 맞을 듯 했다. 스네이프는 변환마법을 걸어 넥타이를 초록색과 은색으로 바꾸었다. 해리는 그 때까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오히려, 저는 늘 해리가 해달라는 걸 다 해줬는데도, 새삼 해리가 이런 반응인 게 웃겼다.

“갈아 입을 건데, 나가지. 네가 변태 교수인 건 알지만.”
“아, 그, 네에….”

왠지 얼굴이 더웠다. 입고 나갔던 까만셔츠의 단추를 푸는 스네이프를 보다가 해리가 붉어진 얼굴로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제가 시켜놓고, 본격적인 스네이프를 보며 심장이 떨리다니. 과연 몇 년을 이중 첩자로 볼드모트 앞에서 연기해온 사람이라 그런가, 저 같은 초심자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상대였다. 해리는 제가 입고 있는 셔츠와 청바지를 내려다 보았다. 스네이프가 이렇게 본격적인데, 저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해리는 공식 행사에 갈 때 입는 까만 정장을 입었다. 괜스레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넘겼다가, 다시 내렸다. 좀 민망했다. 매무새를 정리하고, 해리는 방 문을 두드렸다. 스네이프는 지금 제가 학교 다닐 때 입던 교복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똑, 똑.

“세브, 들어갈게?”
“…네, 교수님.”

해리는 입을 틀어 막고 잠시 소리없이 발을 굴렀다. 어떡하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꼴을 보였다간 스네이프가 김이 새서 하기 싫다고 할 것 같았다. 해리는 심호흡을 길게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 너머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스네이프가 보였다.

해리는 한 번도 다 채운 적 없던 셔츠의 단추가 목 끝까지 단정히 여며져 있었다. 초록색과 은색의 슬리데린 넥타이는 스네이프의 흑발에 무척이나 어울렸다. 풀어내린 머리카락 한 쪽을 귀 뒤로 넘기며, 어둠의 마법 방어술 서적을 뒤적이는 하얗고 긴 손가락에 해리의 시선이 머물렀다. 펜시브에서나 본 슬리데린 교복을 입은 스네이프가 눈 앞에 있었다.

해리는 성큼성큼 걸어서 스네이프의 앞으로 갔다. 해리의 정장 차림에 스네이프 역시 놀랐다. 저렇게 음욕을 자극하게 입는 교수가 어딨지. 딱 달라붙는 양복의 핏에 벗지도 않았는데 해리의 몸 선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시작도 전인데 흥분이 되는 게 느껴졌다. 해리의 녹색 눈을 올려다 보니, 해리 역시 그런 듯 했다.

“세베루스, 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감실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 네가 아무리 모범생이어도 학교 교칙이 있잖아.”

교칙을 밥 먹듯이 무시했던 포터 교수가 할 말은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피식 웃으며 해리를 올려다 보았다. 턱을 괸 채 해리를 바라 보는 까만 눈이 맑은 밤처럼 깊었다. 해리는 멍하니 스네이프의 눈에 시선을 빼앗겼다.

“포터 교수님은 제가 이렇게 찾아오지 않으면… 저를 봐주시지 않잖아요.”

스네이프가 해리의 손등으로 손가락을 뻗어 쓸어 내렸다. 해리는 입으로 심장이 터져나오려 했다. 포터 교수를 유혹하는 슬리데린 학생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니.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해리의 셔츠 소매 안 쪽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손목을 쓸어 올리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흰 거미처럼 움직였다. 해리는 미간으로 힘줄이 서는 걸 느꼈다. 해리는 저를 희롱하는 스네이프의 손목을 꽉 잡고, 눈을 맞췄다.

“그만, 세베루스. 교수를 이런 식으로 놀리면 징계 감이야.”
“놀리는 거 아니예요. 포터 교수님이 주시는 벌이라면 뭐든 달게 받을게요.”

스네이프의 입술이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거의 키스할 듯 얼굴을 기울인 채, 해리는 스네이프를 애태우듯 멈췄다.

“교수님…….”

스네이프의 눈꼬리가 축 쳐졌다. 실망하는 얼굴에 해리는 책상 위의 주먹을 꽉 쥐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럽게 구는 걸까? 저한테만 스네이프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들뜨고 기쁘고, 만족스러웠다. 해리는 슬리데린의 넥타이 끝을 슬며시 쥐고 제 얼굴 가까이로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가 입을 벌리고, 해리가 혀를 파고 들었다. 음, 으응, 겉보기에만 얌전한 모범생의 신음이 잇새로 샜다.

해리는 키스하면서 책상을 비켜 걸어, 의자에 앉은 스네이프의 앞 쪽으로 다가왔다. 스네이프는 제 앞에 선 해리의 바지 앞섶에 손바닥을 얹었다. 손바닥으로 두툼한 해리의 음낭이 느껴졌다. 슥, 슥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해리가 발기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불순한 학생에게는 그에 맞는 벌을 줘야겠지, 세베루스?”

말 끝에 약간의 더운 숨이 흘렀다. 흥분한 성기가 옷 안에서 커져가며 천을 팽팽히 당겼다.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턱을 쥐고 고개를 위로 들렸다. 금욕적인 교복 차림에 색정적인 얼굴이 도전적으로 해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여전히 스네이프의 손은 해리의 다리 사이를 쓰다듬었다. 해리는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너무 야하잖아, 당신.

“…빨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무릎 꿇은 그가 해리의 바지 벨트를 풀었다. 그와중에도 스네이프는 해리와 계속 시선을 맞추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해리는 당장에라도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를 꿰뚫고 거칠게 박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스네이프는 스네이프대로, 지금 상황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았다. 정장을 입은 포터 교수라는 설정에다, 실제로 보이는 해리의 모습도 너무 멋있어서 손이 떨렸다. 도저히 해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계속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손이 해리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드로즈를 내렸다. 속옷에서 퉁긴, 발기 된 성기가 입술을 때렸다. 벌이라더니 진짜로 폭력적이네. 스네이프는 입술을 침으로 척척히 적시고, 성기의 끝부터 빨아들였다. 뒤통수에 해리의 오른손이 따라붙었다.

“쯔읍… 츱, 츠읏….”
“하아…! …윽.”

해리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가늘어진 눈이 흐릿하게 스네이프를 좇았다. 해리는 양 손으로 스네이프의 옆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걷어내며 고정해 잡았다. 스네이프는 점점 빠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하아, 아, 세베루스……. 해리의 신음에 스네이프는 제 허벅지를 붙이며 꿈지럭거렸다. 해리의 것을 빨면서 발기한 게 부끄러웠다.

“읍, 컥….”

스네이프의 벌어진 입 밖으로 불투명한 액이 뭉근하게 흘러 나왔다. 스네이프가 입을 벌린 채 해리를 올려다 보았다. 달뜬 숨을 흘리면서도, 해리는 스네이프가 제 허벅지를 붙여 앉은 채 허리를 꿈틀대는 걸 놓치지 않았다. 해리가 발을 뻗었다.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발이 앞섶을 꽉 눌렀다. 헉, 놀란 스네이프는 숨을 들이키다 해리의 정액을 꿀꺽 삼키기까지 했다.

“벌을 받는 건데 흥분하면 어떡해? 응?세베루스. 제대로 가르쳐줘야 하는 건가?”
“윽… 네에……. 포터 교수님…. 무지한 저를, 하아, 가르쳐 주세요……. 응, 흐윽.”

앞섶을 누르던 발이, 천 위로 발기한 기둥을 쓸어올리자 스네이프가 파드득 떨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멱살을 쥐고 바닥에서 일으켰다. 거친 기세에 스네이프는 살짝 목이 졸렸으나, 오히려 그래서 흥분이 되었다.

해리는 그대로 벽에 스네이프를 돌려 세우고 오른손으로 벽을 짚었다. 바지 벗어, 스네이프의 뒤에 바짝 붙어 선 해리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귓 속으로 침투한 낮은 음성에 움찔 떨며 교복바지를 벗었다. 발목으로 바지와 속옷이 떨어져 나갔다. 다리 벌려, 세베루스. 목덜미에서 해리의 숨결이 스쳤다. 스네이프는 배꼽에 닿을 듯 팽팽히 발기했다.

해리의 손가락이 스네이프의 회음부를 은밀하게 쓰다듬었다. 흐으읏…. 벽을 짚은 하얀 두 주먹이 옹송그려졌다. 달뜬 숨이 벽 위에 흩어졌다.

“세베루스, 기숙사에서는 이런 음란한 몸을 감추고 어떻게 지내고 있지? 사감실에서, 내 방에서 같이 지낼까?”
“아, 흣…. 좋, 아요, 포터 교수님…. 계속 같이 지내면서, 제 몸에, 헉, 벌을 내려주세요, 흐으응……!”

성기에 침을 뱉어 윤활한 해리가 급하게 스네이프의 뒤에 삽입했다. 스네이프의 배를 가로지른 왼손이 그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버거운 삽입에 스네이프는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허리를 쭉 빼 엉덩이를 내밀었다. 밑단이 말려 올라간 교복 셔츠 밑으로 잘록한 허리가 야살스러웠다.

“그래, 세브. 밤새 훈육해줄게. 착한 학생이 될 때까지.”

금요일 밤은 길었다. 해리는 제가 만족할 만큼 스네이프를 가르칠 생각이었다. 스네이프 역시 바라는 바였기에, '밤'과 '교육'은 끝나지 않았다.










20편이라니~!
연중 했던 구원자를 20편까지 쓰다니...ㅠ(감격쓰)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드는 내용으로만 가득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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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버로우에서 제일 먼저 예언자일보를 집은 건 퍼시였다. 막 일어나 내려오던 조지는 신문을 쥔 채 굳어 서있는 퍼시의 등을 퍽 내리쳤다. 잘 잤어 퍼시? 웃으면서 형을 보던 조지가 신문에 슬쩍 시선을 뒀다. 순간 숨 참는 소릴 낸 조지가 퍼시의 손에서 신문을 가져갔다. 기사를 빠르게 훑은 조지가 홱 고개를 돌려 퍼시를 살폈다. 퍼시의 얼 빠진 얼굴엔 황당함과 당황이 혼재했다. 조지는 어제 해리에게 직접적으로 언질을 듣긴 했어서 충격은 덜했지만, 가족들이 이 기사를 보고 보일 연쇄적인 반응들에 걱정이 됐다. 특히나 지금 학교에 있는 지니나 엄마 몰리가.

론 위즐리, 해리 포터─ 이 생각 없는 것들이 진짜! 남들 다 듣는 거리에서 뭘 한 거야? 조지 위즐리가 남을 보고 생각 없다 할 정도면 말 다 한거지. 이마를 벅벅 긁으며 조지는 뒤쪽 계단에서 끼익대는 소릴 들었다.

“야!! 론!”

론의 머리에 신문을 맞추며 조지가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어제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론이 욕설을 하며 짜증을 냈다. 시끄럽고 신문이나 쳐 봐, 임마! 조지의 호통에 론이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에서 떨어진 신문을 주웠다. 1면을 보는 론의 눈이 뜨악해 커졌다. 반사적으로 또 욕지거리가 나갔다.

“설명 좀 해 봐. 이 기사가 진짜냐 지금……?”

그 동안 말을 잃고 석상처럼 서 있던 퍼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넋이 나간 채 의자에 앉은 퍼시는 마른 세수를 두어 번 했다. 론은 신문을 식탁에 패대기 치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으아아, 소릴 질렀다. 망할. 빌어먹을. 엿 같은 해리 포터! 염병 할 스네이프!

“론 위즐리! 아침부터 소리는 지르고 뭐 하는 거니!”

닭장에서 알들을 가져온 몰리였다. 세 형제들은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적이 찾아온 부엌에 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나이들을 먹고 사고를 쳤나 싶어 여섯 아들을 키워낸 몰리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어, 엄마. 오늘 아침은 뭐예요?”

조지가 정적을 깨고 미소를 흉내 냈다. 등 뒤로 손짓 해서 신문을 치우라는 신호를 보내자 론과 퍼시가 눈을 굴리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가까이 있던 론이 제 잠옷 셔츠 안으로 신문을 넣으려는 찰나, 그런 얕은 수는 금방 파악해내는 몰리에게 들켜버렸다.

“뭔데 숨기고 그러냐? 이리 내놔.”
“엄마, 제발, 안 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
“퍼시! 너까지 왜 이러니? 당장 가져 와, 론!”

세 형제들의 눈이 도르륵 소릴 낼 듯 굴러갔다. 아무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자, 답답해진 몰리가 신문을 들고 있는 론에게 다가갔다. 우물쭈물거리며 신문을 상납한 론이 한숨을 쉬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신문을 펼쳐 든 몰리가 1면을 확인하고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조지는 탄식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몰리는 현기증을 느끼며 간신히 의자에 주저 앉았다. 손에서 놓친 달걀이 든 바구니는 퍼시가 주문을 날려 다행히 바닥에 안착했다.

“지니랑 해리가…….”

몰리는 마치 디멘터에 영혼이 빨린 모습이었다. 조지가 그녀 옆에 앉아 어깨를 쓸어 내렸다. 론은 머쓱하게 눈치를 보며 기사를 다시 제대로 읽었다.

“다들 모여 있구나!”

아서가 웃으며 들어 오다가 이상한 분위기에 멈칫했다. 론은 말없이 오늘자 예언자일보를 아서에게 건넸다. 헛기침을 하는 아서를 끝으로, 버로우의 아침이 엉망진창으로 시작 됐다.


해리는 모든 마법사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을 받았다. 젠장, 전 여자친구랑 헤어진 것도 새 연인도 다 기사로 나와야 하는 유명인의 삶이라니. 머글계에서 평화롭게 살던 게 그리웠다. 어차피 이런 연애 스캔들은 이번이 끝이긴 할 거다. 스네이프가 마지막 종착점인 건 확실했다.

아침부터 해리의 집 현관 밖에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시끄러워 죽겠군. 스네이프는 모두에게 기억 조작을 하고 돌려 보냈다. 해리는 죽을상을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쏟아질 질문과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볼 눈초리들이 벌써부터 버거웠다. 특히나 론을 마주할 일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시간을 돌려서 어젯밤 스네이프와의 오붓했던 순간으로 가고 싶었다.

“포터. 잘 다녀 와.”

벽난로 앞에서 벌써 지쳐보이는 해리에 스네이프가 살짝 안아주었다. 해리에게 모든 사회적 시선을 감당케하는 게 조금 미안하고 안쓰럽기는 했다. 저는 집에만 있으면 되지만, 해리는 밖에서 어떤 말과 시선을 당하고 들어올지 몰랐다. 이마에 번개무늬 흉터가 생겨난 때부터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로 살아낸 해리였다. 언제나 해리는 시선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해리가 보금자리로 찾은 사람이 스네이프였다. 그러니 스네이프가 해리를 보듬고 다독여주는 것이 맞았다.

“다녀올게요.”
“그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고 손을 흔들었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스네이프의 허리를 끌어 안고 입을 맞췄다 떨어졌다. 스네이프는 벽난로 너머로 사라지는 해리의 등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마법부로 들어서자 마자 시선은 시작됐다. 해리는 낯선이들의 시선은 익숙했지만 그게 편해졌다는 건 아니었다. 론을 비롯한 위즐리 가족의 반응도 걱정이었다. 기사로 이별 소식이 터지다니, 지니에게 큰 민폐고 실례였다. 호그와트의 학생들 틈에서 얼마나 힘겨울까. 지니가 비밀의 방을 열었을 때가 생각나서 해리는 마음이 쓰였다. 호그와트의 현재 재학생들은 심지어 스네이프에게 직접적으로 교육 받았던 학생들이었다. 그 시선과 쑥덕임들을 감당해야 할 그녀에게, 그녀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해리는 심장에 돌이 들어찬 듯 무거웠다.

“해리.”

복도에 서있던 제인과 동료 오러들 몇이 해리를 향해 손짓 했다. 해리가 다가가자 쉿, 하며 제인이 부서 안을 가리켰다. 힐끗 들여다 본 부서 안에는 론이 딱딱한 얼굴로 서류를 쾅쾅 소리를 내며 정리하는 게 보였다.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는 론의 모습은 정리라기보다 책상을 학대하는 걸로 보였다.

“건들지 않는 게 좋겠어.”
“저도 론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죽은듯이 있으려고요….”
“좋은 생각이다, 해리. 부서 내에서 주문 날리며 싸웠다간 끽, 알지?”

제인이 목에 지팡이 긋는 시늉을 했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었다. 동료들이 해리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해리, 스네이프랑 진짜야? 둘이 사귄다는 거? 물어오는 질문들에 새삼 그들도 스네이프의 제자였다는 게 느껴졌다.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 해리를 향했다. 그들도 스네이프가 해리의 엄마를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조금 민망했다. 다들 뒤에서 어떻게 스네이프에 대해 쑥덕거릴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썼다간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네, 사겨요. 사실이에요.”
“세상에, 해리 네가 왜 스네이프랑?”
“왜요? 제가 세베루스랑 사겨선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짙은 눈썹 사이 미간을 대번에 찡그린 해리가 그를 노려 보았다. 안 그래도 부서 내의 오러 하나가 있는대로 분노하고 있는 중에 또 한 명의 심기까지 거슬릴 필요는 없었던 오러들은 말실수를 한 오러를 바로 타박 했다. 그렇지만 해리는 다들 그 오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스네이프가 성질이 좀 ─많이, 엄청, 매우, 악랄할 정도로─ 더럽긴 하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인데.

“저한테는 엄청 잘해주니까 신경쓰지 마시죠.”
“스네이프가 잘해준다고……?”

오러들은 대부분 그리핀도르였기에 쉽사리 스네이프가 잘해주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 중에 슬리데린이 있었다면 납득했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해리는 친절한 설명을 생각지도 않았다. 직장 동료가 해리와 스네이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톰 리들이 그리핀도르 꼴찌를 할 확률과 같았다.

해리가 부서로 들어섰다. 론은 문 쪽을 돌아보다가 해리를 발견하고 인상을 더 사납게 굳혔다. 론의 손에 들린 증거물품 팩이 거칠게 서랍으로 들어갔다. 쾅, 쾅 요란한 론의 자리를 지나쳐 해리가 제 자리에 앉았다. 상사들이 들어올 때까지 론의 버라이어티 사운드 쇼를 듣고 있어야 할까. 해리는 어쨌든 말을 아끼는 게 답인 것 같았다.

쾅, 쿠당탕탕, 퍽, 퍼덕, 쿠당. 론은 책상을 아주 뒤집어 엎는 듯이 보였다. 주변에 앉아있던 오러들은 이미 마법으로 방음벽을 세우고 업무중이었다. 해리는 한숨을 한 번 쉬고, 탕비실에서 시원한 호박주스를 따라서 론의 책상에 두었다. 론은 해리를 사납게 째려 보았지만 가져다 놓은 호박주스를 깨진 않았다. 하지만 보란듯이 마시지도 않았다. 해리는 어쨌든 현장 콜이 올 때까지 지난 업무일지를 쓰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른 부서에서 날라온 긴급 쪽지를 확인하는 등 평소와 같이 일을 했다.


“안녕하세요, 애버포스 씨.”
“그래, 너냐.”

실로 오랜만에 호그스 헤드였다. 일전의 타임터너 일을 끝내고 한 잔 하러 온다한 게 겨우 오늘이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휴와 함께였다. 타임터너 때 같이 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는 휴였지만, 해리는 스네이프나 론의 일을 묻고 싶어하는 그의 꿍꿍이가 느껴졌다. 마침 해리는 휴가 저번에 스네이프에게 릴리를 언급한 것에 대해 주먹맛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애석하기도 했다.

버터맥주 두 잔이 둘의 앞에 놓였다. 해리와 휴는 이 곳, 호그스 헤드에서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얼굴을 감춘 채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이 곳은 오히려 얼굴을 드러내놓고 있는 마법사들이 잘 없었다. 차가운 버터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해리는 휴의 회갈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호기심이 드글드글한 아저씨의 눈이었다. (스네이프보다 그가 3살 어리다는 사실은 잊기로 했다.)

“넌 남들이 너한테 지대한 관심이 있단 걸 잊는 것 같다, 헤럴드. 그 거리 한복판에서 롭슨과 이별 얘기를 떠들다니.”
“그 땐 롭슨을 붙잡고 대화를 나눠야한단 생각밖에 안들어서요.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매 순간 절 쳐다보는 사람이 있어봐요. 반대로 의식을 안 하게 된다니까요.”
“나는 상상도 안돼. 가는 곳마다 날 알아 보고 쳐다 보고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니.”

버터맥주를 한 입 넘기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휴가 말했다. 해리는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즘 들어 너무 바쁘고 저와 주변에 대한 관심도 더 늘어서 머글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곤해 죽겠어요.”
“스네─ 스칼렛이랑 숨어 지내는 게 오히려 딱 좋았나?”
“물론이죠. 그냥… 행복하기만 했어요.”

해리는 백일몽 같았던 나날들을 회상했다. 귀여운 머글 어린이들과 좋은 직장동료들, 길거리를 걸어도 아무도 쳐다 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때의 세상엔 오직 해리와 스네이프 단 둘만 떨어져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둘만 있어도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다. 지금은 스네이프와의 관계를 지인들에게 알리러 다녀야 했고, 지니와의 이별 기사와 스네이프와의 만남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론과의 사이가 틀어졌다. 어느 쪽이 좋았냐 하면 당연히…….

휴는 흐음,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해리와 스네이프 선배님은 정말 자기들끼리 오지게 즐겁게 지냈나 보군. 휴는 1년 전 과거로 돌아가기 전의 해리를 기억했다. 해리는 자신이 마법세계의 구원자인 것에 강박이 있었다.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고, 이미 자신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어놓고도 무슨 일에든 나서려고 굴었다.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론은 그런 해리를 가리켜 영웅 콤플렉스라고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 그런데 스네이프를 만난 이후 해리는 마법세계 따윈 뒷전으로 두고 둘만의 세상이 그립다느니 하는 소릴 하고 있었다. 그 해리를 이렇게나 바꿔놓다니.

“스칼렛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 무뚝뚝하고 예민하고 까칠한 양반의 어디가. 얼굴은 뭐, 전보다 보기 좋아지긴 했지만, 해리 포터에게 추파를 던지는 미녀 마법사들이 마법세계에 줄을 이었다. 게다가 이제 해리가 남자 애인이 있는 걸 알았으니, 미남 마법사들도 대기표를 뽑고 제 차례를 염원할 것이다.

해리는 질문에 빙그레 웃어 보였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스칼렛이 친절하다면 믿어지세요?”

휴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표정으로 버터맥주를 쓰게 삼켰다.

“아니. 농담이지, 헤럴드?”
“스칼렛은 되게 엄청 많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착하고, 친절하고, 저밖에 모르는 푼수랍니다.”

해리가 설명하는 제 연인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와 대척점에 있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휴는 이 살아있는 콩깍지 수인에게 혀를 내둘렀다. 희귀 마법생물로 신비한 마법생물 단속반에 제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콩깍지가 버터맥주도 마시고 마법도 부리고 말도 하네.

“어마어마한 연애질을 하고 있구나, 너네.”
“물론이죠. 매일 밤 뜨겁고요.”
“와우, 스칼렛이 이 말을 들었다면 무슨 주문이 날아왔을까.”

휴는 제 앞으로 지팡이를 겨누던 무시무시한 얼굴을 기억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마법적 능력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굉장히 뛰어났다.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가 가장 아낀 부하이자 덤블도어의 가장 유용한 체스 말인데 어련할까. 그런 걸 생각하면, 자신이 릴리를 언급하며 그를 도발해놓고 아직까지 숨 쉬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롭슨하고는 제대로 풀어야 할 텐데 말이다, 헤럴드.”

휴가 론을 화제에 올리자, 웃고 있던 해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리가 입술을 잠시 깨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롭슨은 절 잘 알아서 그래요. 제가 또 저 같은 짓을 벌여서 진저리가 난 거죠….”
“어쩔 수 없지. 나도 왕년엔 삼각관계를 넘어 오각의 주인공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거란다, 누군가를 찬다는 것도!”
“버터맥주에 알콜 첨가 돼 있었어요?”

해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휴는 윙크를 했다.

“롭슨의 가족들 모두 너를 아끼는 걸 안다, 헤럴드. 롭슨도 물론 그렇고. 잘 될 거야.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했다 헤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주변인들이 거기에 대고 오래 뭐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배신감을 느끼는 것까진 이해해야지.”
“네, 저도 알아요. 제가 멋대로 과거로 돌아갔다가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거니까. 그래도─ 전 제 선택을 후회 안 해요. 그가 저를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기꺼이 죄인이 돼버리죠, 뭐. 스칼렛의 옆에 계속 있으려면.”

해리가 일어섰다. 소매 안에서 빠르게 지팡이가 꺼내지고, 동작그만 주문이 날아갔다. 호그스 헤드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휴는 먼지를 일으키며 돌이 되어 쓰러진 마법사의 후드를 훅 벗겼다. 애버포스는 걸레로 선반을 닦다가 벽에 붙어 있는 범죄자 전단을 보았다. 그 전단에 있던 마법사 얼굴 하나와 쓰러진 저 마법사의 얼굴이 똑같았다. 해리가 또 한 건 했군.


“해리, 잘했다. 요즘 활약이 대단해. 신문에도 계속 얼굴 도장 찍고.”
“역시 해리 포터야.”

론은 뚱하게 턱을 괸 채, 해리 주변으로 모인 오러 무리를 바라봤다. 언제나 익숙한 그림이었다. 오러가 돼서도 해리가 론보다 범죄자를 더 잘 잡고, 언제나 주변 관심 속에 있고, 이런 것들. 뛰어난 재능 앞에 그냥 남들보다 나은 재능 정도는 비교 대상도 될 수 없다. 론은 사춘기에 이미 충분히 해리와 저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꼈다. 성인이 된 지금은 크게 상처 받지 않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낄 질투심이 생겼다. 해리가 론 쪽을 돌아봤다. 시선이 마주친 론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해리가 론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야, 죽은듯이 눈치 보고 저를 피해다닐 생각인 줄 알았더니. 론은 입꼬리를 비틀며 해리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론.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침에 그런 기사가 나온 놈 주제에 뻔뻔도 했다. 나는 지니의 오빠라고, 망할.

론이 고개를 돌려 해리의 녹색눈을 노려 봤다. 해리는 입술을 다문 채 조심스러운 눈빛이었다. 론은 이대로 해리를 무시해버리자는 충동과 싸웠다. 해리가 제 눈치를 살피는 것에 묘한 쾌감도 있던 게 사실이었다. 그 대단한 해리 포터가, 별 볼 일 없는 친구 론 위즐리의 눈치는 대단히 살핀다는 같잖은 우월감일 터다.

론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결국 론은 끈질긴 해리의 눈초리에 졌다. 턱짓으로 론이 바깥을 가리키자 비어있는 휴게실까지 해리가 따라왔다. 천장에는 분홍색과 연보라색, 하얀색의 종이 비행기들이 할 일 없이 떠돌아다녔다.

“미안해.”
“…….”
“지니랑, 너랑, 몰리 아줌마랑 아서 아저씨, 형들에게 미안해. 많이 충격 받으셨을 거야. 내게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그 은혜를 이렇게 갚아서.”

론은 뭐라고 입을 열어야할 지 고민하다, 그냥 입을 닫았다. 진짜 미안하면 무릎 꿇고 빌라고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 대상이 지니인지 저인지 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론은 붉은머리를 손으로 헝클어뜨리며 종이비행기들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 저녁에…… 버로우에 들려도 될까?”
“맙소사, 멀린. 해리 너 대단하다.”

해리는 실로 오랜만에 론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어제 이후로 입 한 번 열지 않던 론이었다.

“기사 보고 엄마가 엄청 충격 받으셨어. 지니랑 네가 결혼할 거라고 우리 가족은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응. 맞아, 그러시겠지. 정말 죄송해….”
“당분간 충격이 크실 거니 찾아오더라도 나중에 와. 당장은 네 얼굴을 어떤 표정으로 봐야할 지 엄마도 모르실 걸.”
“…그렇겠다. 미안. 성급 했어.”

오래된 친구 둘은 다시 휴게실을 묵음상태로 만들었다. 론은 한참 제 호흡을 가다듬었다. 해리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복도 저 끝에서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파스락 부딪히는 종이비행기들의 스침, 주문에 펑 하고 터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언제부터… 스네이프랑 그렇게 된 거냐?”

론은 심상한 질문인 양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고 애썼다. 해리는 어, 음, 하며 헛기침을 했다.

“만난 지 한 두 달쯤? 돼서였던 것 같은데. 같이 고드릭 골짜기에 부모님 묘 보러 갔다가… 그 날 내가 세베루스를 좋아하는 걸 깨달아서….”
“세상에, 해리. 덤블도어의 턱수염 같은, 너 지금 세베루스라고 했냐?”
“응, 맞아. 그렇게 불러.”
“미친, 진짜 소름 돋는다. 스네이프랑 네가 정말 그런 사이라니.”

론은 정복 위로 팔을 벅벅 긁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상상이 안 간다, 론의 말에 해리는 쑥스럽게 웃었다. 론은 펜시브로 둘이 지내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연애적 요소는 전부 생략한 기억이었다.

“설마 앞으로 눈 앞에서 너랑 스네이프의 눈꼴시린 모습을 봐야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1학년 때부터 친구인 애들이 눈 앞에서 키스하는 걸 수 백 번 본 내 입장은 생각해봤어, 론?”
“야, 헤르미온느랑 스네이프가 같냐?”
“뭐가 다른데? 그리고 헤르미온느 앞에서 우린 이미 키스했어.”
“뭐라고─?!!!!!”

론의 목소리가 천장을 뚫을 듯 했다. 천장 저 위의 런던 지하철에 탄 머글들도 들었을 법한 데시벨이었다. 놀란 종이비행기들이 파다닥 소스라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서에서 제인이 론과 해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너희들 농땡이 그만 치고 얼른 안 들어 와?! 해리가 냉큼 대답하며 먼저 소파에서 일어섰다. 론은 눈이 튀어나갈 듯이 해리를 보다가 멍하니 따라 움직였다.

“스네이프랑 키스를 한다고…….”

론은 퇴근을 앞둘 때까지도, 넋이 나가 있었다.


스네이프는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아서, 이따금씩 시계를 확인했다. 곧 해리가 벽난로로 들어올 시간이었다. 스네이프의 손이 읽던 책을 덮었다. 오늘도 시무룩하게 들어올 해리를 생각하며 뭘 해줘야 좋을지 고민했다. 그런 가십이 터졌으니 오늘에야말로 죽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위로의 방법으로 3일 연달아 섹스는 좀 그렇지 않나, 뭐, 해리가 좋아하는 거긴 하지만. 물론 스네이프 역시 해리와의 관계를 좋아했다. 그래도 제 나이가 벌써 서른 아홉인데, 열여덟 살짜리 청년이 밀어붙이는 힘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다. 그러나 어차피 이렇게 따져봤자였다. 해리가 저를 벗기고, 저를 원한다면, 순종적으로 안겨줄 자신을 스네이프는 알았다.

생각에 골몰해있는 사이, 벽난로에서 기척이 들렸다. 재를 털며 고개를 든 해리가 스네이프와 눈을 마주치고 활짝 웃었다. 흐음? 저 모습은 스네이프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오늘 해리는 론과 얘기를 잘 푼 것 같았다. 스네이프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해리가 성큼 걸어와, 양 팔로 스네이프를 꽉 끌어 안았다. 언제나처럼 열정적인 사랑이군, 포터.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안긴 채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론과 다시 얘기하게 됐어요! 생각보다 금방 잘 풀린 것 같지 않아요? 뭐, 오늘 버로우에 가서 위즐리 가족들에게 사과하려던 계획은 아무래도 제가 성급했던 걸로 결론 내렸지만─”
“포터, 숨 좀 쉬고 말 하지.”
“세베루스에게 얼른 말해주고 싶었어요!”

스네이프는 해리의 머리를 개처럼 쓰다듬어 주었다. 또 다시 해리의 뒤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개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개새끼 시리우스 블랙의 대자라서 그런가. 해리가 제임스 포터보단 시리우스 블랙을 닮는 게 아주 조금, 트롤의 코딱지만큼은 더 나은 듯했다. 당연히 아예 닮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말이다.

스네이프는 소파에 다시 앉았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허리를 안아왔다. 길쭉한 하얀 손가락이 부드럽게 해리의 머리칼 사이로 들어와 결을 갈랐다. 해리는 그 손길을 느끼며 스네이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해리는 지금 이 순간, 완전한 행복을 느꼈다. 스네이프의 손길, 몸의 냄새, 체온, 촉감. 해리 포터의 가장 안락한 보금자리.

“오늘 뭐 하면서 보냈어요?”

스네이프의 몸에 여전히 코를 박은 채, 해리가 물었다. 스네이프도 여즉 해리의 머리카락을 쓸면서 입을 열었다.

“그 후로도 인터뷰를 하자면서 기자들이 계속 몰려 왔었다.”
“으, 진짜 무당벌레 같아요.”
“무당벌레? 보통 바퀴벌레에 비유하지 않나.”

해리는 지긋지긋하다는 어투로 애니마구스 리타 스키터에 대해 설명했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이며 설명을 들었다. 마법부에 등재 하지 않은 애니마구스 놈들은 어쩌면 하나 같이 다 제임스 포터스러운지. 제 연인이 그의 빌어먹을 애비 놈팽이를 닮지 않아 다행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기특하게 내려다 봤다.

“그런데 왜 호그와트에선 애니마구스가 되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통제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겠지. 동물로 변한 마법사들을.”
“아하….”

해리는 똑똑한 연인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컷 그의 체향을 맡은 코가 만족스럽게 콧김을 뿜었다. 몸을 일으키자, 아쉽게도 머리칼을 쓸던 스네이프의 손도 떨어져 나갔다.

“세베루스는 왜 애니마구스는 안 배웠어요? 포션마스터에 패트로누스, 레질리먼시, 오클러먼시, 비행마법…… 당신은 완전 대단한 마법사잖아요. 애니마구스가 못 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딱히, 내가 동물이 돼서 얻을 이점이 없지 않나? 누가 동물로 변한 내 머릴 쓰다듬는다면 뒷 발로 걷어차버릴테고.”
“혹시 암사슴 될 것 같아서 안 배운 거 아니에요?”

스네이프가 대번에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해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이라고 말했다. 동물로 변하는데 성별까지 바뀐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잠깐. 아빠는 수사슴 애니마구스였고, 패트로누스도 수사슴이었다. 패트로누스는 자신의 행복한 기억이자 본질의 반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해리도 애니마구스를 익힌다면 수사슴이 될 터이고, 패트로누스가 암사슴인 스네이프는 암사슴 애니마구스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는 건, 동물 모습인 채로 본딩을 하면 스네이프가 임신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해리는 다소 미친 또라이 같지만,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자신의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브, 있잖아요. 우리도 애니마구스가 되는 법을 익히면 어때요?”
“갑자기 왜?”
“제가 수사슴이 되고 세브가 암사슴이 돼서 임신시키면 우리도 아이를 가질 수 있─”
“랭록.”
“읍?! 으브븝?!?”

해리는 입천장에 딱 달라붙은 혀에 입을 틀어막았다. 혀묶기 주문이라니! 해리가 항의하는 눈으로 스네이프를 쏘아 보자, 황당한 쪽은 이 쪽이었기에 스네이프가 눈꼬리를 올렸다. 이 또라이 머저리 포터가 혼자서 어디까지 망상을 폭주한 건가?

“지금 나더러 사슴 몸으로 몇 개월 임신한 채 살라는 건가? 포터?”

제임스 포터를 닮지 않았다고 기특히 여긴 게 고작 몇 분 전인데, 이 자식을 정말 어쩌면 좋을까. 스네이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덮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계속 제 입을 가리키는 해리에게 걸린 랭록을 풀어 주었다. 푸하, 해리가 숨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가 만약 진짜 애를 낳았다 쳐, 그게 사람 모습이겠냐 사슴 모습이겠냐. 사슴들끼리 해서 낳았는데.”
“저는 우리 아이가 사슴이어도 상관 없……”
“랭록.”

스네이프는 이 골치 아픈 제 연인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나 고민했다. 학교가 6년을 가르쳤는데 이 모양이니 답은 없다고 봐도 될 듯했다. 해리는 제 기발한 생각이 단번에 거절되자, 스네이프가 이해는 되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제 생각이 제정신의 범주가 아니라는 것을 해리는 생각지도 않았다.

스네이프는 관자놀이를 손톱으로 슬슬 긁으며 잠시 생각했다. 해리는 '이상적인 가족'을 원해서 이러는 거지. 그가 가져본 적 없고 소망하는 유일한 것이 '가족'임을 스네이프도 잘 알았다. 저도 될 수만 있다면 해리의 아이를 기꺼이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마구스는 아니잖나, 포터. 한숨을 쉬며 스네이프는 다시 랭록을 풀어주었다. 이번에는 해리도 주문이 풀렸음에도 별 말이 없었다.

“포터, 우리가 아이를 갖는 것에 내가 아직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는데? 난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 그리고 넌 남자인 내가 임신이 불가하니 입양 쪽을 생각하자고도 하더니. 상식적으로 좀 생각하라고, 그게 그렇게 어렵나? 포터?”
“저는… 근데 제가 생각한 방법도 임신은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정말로 내 사람 에 임신이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해도 난 이미 마흔에 가깝다, 포터. 몸이 늙었다는 거지.”
“마법사들은 평균 수명 150살이라던데요. 생각해보니 마흔이면 아직 창창해요, 세브. 노산이 아닐 거예요. 주변 마법사들이 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서 노산이라 여겨지는 것일 뿐!”

싱긋 웃은 해리의 잘생긴 미소가, 스네이프의 눈엔 정말 멋진 머저리 같았다.


창을 두드리는 검은 올빼미가 보였다. 어두운 밤에 스며든 새는 노란 눈을 홉뜨지 않고 있었다면 거기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하얀 올빼미를 기억하며 창을 열었다. 호그와트 문양이 찍힌 편지였다. 스네이프는 빠르게 뜯었다. 그 사이 해리의 검은 올빼미 헤르메스는 밖에서 퍼덕이는 퍽스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퍽이나 자유로운 영혼들이군. 뜯은 편지에는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유려한 필체가 쓰여져 있었다.

「세베루스, 슬리데린 사감 일에 관한 안내를 보낸다.
슬러그혼은 자네가 돌아온다는 소식과 해리와의 관계에 대한 소식 모두 내게 들었단다. (그런데 오늘 유감스런 기사도 터졌더구나. 다음 학기 개학쯤에는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흘러 호그와트도 잠잠해질 거다.)
더해, 또 유감스럽지만 고민 끝에 슬러그혼 교수는 사직을 결심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감 직을 맡을 새로운 슬리데린 출신 교수를 찾아보는 것을 생각하기로 했다.
슬러그혼 교수가 자신의 슬리데린 애제자들 중에 여럿 편지를 보내 두었단다.
아직 4개월이란 유예가 있으니 좋은 소식을 꼭 들려주도록 노력하마.

해리와 잘 지내고 있기를, 미네르바 맥고나걸.」

예상한 소식이었다. 슬러그혼을 잘 아는 스네이프는 아쉬움조차 느끼지 않았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해리가 창가에 서있는 스네이프를 보고 다가왔다. 뭐예요? 해리의 눈이 금방 그의 손에 들린 편지에 머물렀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편지를 건네주었고, 찌푸려지는 해리의 얼굴을 지켜 보았다. 망할 민달팽이. 해리는 깔끔하게 일축 했다.

“지금 마법세계는 슬리데린에 대한 평판이 아주 나빠요. 전투에서 슬리데린 기숙사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그들 부모나 친척이 데스 이터였던 경우도 많아서……. 이런 시기에 선뜻 슬리데린 출신 마법사가 호그와트 교수 직을 맡을 것 같지 않아요. 당신은 다행히 재판 끝에 무죄가 됐고 전쟁 영웅으로 인정 받았지만.”

곤란한 얼굴로 맥고나걸의 편지를 보던 해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슬러그혼이라 해리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여상한 답변에 기운이 쭉 빠졌다. 꼼짝없이 호그와트에 제 연인을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가만 뺏기고 있을 해리는 아니었지만.

“이번 주 금요일에 네빌을 만나러 가지 않을래요?”
“……네빌 롱바텀을?”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제가 왜 그를 만나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네빌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잖아요. 그러고도 뻔뻔스럽게 동료 교수로 지내시게요?”
“동료…… 교수? 누가…? 설마 그 네빌 롱바텀이 호그와트 교수라는 건 아니겠지, 포터. 학교 수준이 그렇게까지나 떨어졌…….”
“세베루스!”

정말 변한 게 없으시군요, 스네이프 교수로서는. 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진심으로 네빌이 교수가 된 건 지 의심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해리가 저를 놀린다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네빌은 지금 스프라우트 교수 밑에서 약초학 조교 일을 하고 있어요. 다음 학기에선 정식 교수로 임명되고요. 그리고 네빌은 전투에서 내기니를 죽인 영웅이예요.”

내기니.
내기니를……?

스네이프는 무의식적으로 제 목덜미를 더듬었다. 자신을 죽일 뻔했던 그 포악한 짐승을 죽인 게 네빌 롱바텀이라니. 스네이프는 멍한 눈으로 목에서 손을 내렸다. 해리가 불사조의 눈물로 치료해서 물린 흔적조차 없지만, 내기니에 물리는 그 느낌만은 스네이프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 네빌을 만나러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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