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해리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스네이프가 아이를 갖는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었고, 직접 임신 가능성이 있는 마법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스네이프의 목에는 누가 봐도 제 것이라는 표식이 생겼다. 게다가 그는 아무렇지 않게 제 살을 내주고는, 흉이 깊게 질 수 있도록 약조차 바르지 않았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완전한 제 사람이라는 생각에 해리는 가슴 안을 가득 메우는 만족감을 느꼈다.
론은 어제 저녁 스네이프가 만들어준 요리들이 정말 맛있었다고 평했다. 호그와트의 집요정들과 비견되는 요리 실력이라며, 해리가 매일 그런 것들을 먹고 사는지 묻고는 부러워했다. 해리는 친구가 제 연인을 추켜세워주자 어깨가 으쓱했다.
그래서 지금, 입에서 피를 쏟으며 녹턴 앨리의 어느 골목에 쓰러져 있는 현실이 더 꿈처럼 느껴졌다. 해리의 얼굴 앞으로 방금 제가 토한 핏물이 고였다. 자갈에 끼인 흙에 피가 섞여, 보기에 추잡스러웠다. 기분 나쁘게도 해리는 그것을 보고 내기니에 물려 피를 쏟던 스네이프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베루스…….”
의식이 다시 흐려졌다.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해리가 의식을 붙잡았다. 이상하게 꺾인 다리를, 한 쪽 무릎을 세워 일으키려 해리는 무진 애를 썼다.
“타임터너를 노리는 움직임이 포착 됐다. 그러게 그렇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타임터너 존재 유무를 밝혀선 안됐는데…… 쯧!”
말버러 부장이 분노에 싸여서 신경질을 부렸다. 해리가 찾아내고, 오러국장이 국장실에 보관 중인 타임터너에 침입의 흔적이 드러났다. 속박주문을 풀고 달아난 용의자는 데스 이터로 거의 확실시 되었다. 아즈카반으로 보내졌던 타임터너 구매자는 소환 되어 고문에 가까운 심문을 받았다. 어둠의 상권 측에 데스 이터들이 어디까지 파고 들어있을지, 루시우스 말포이의 이름까지 오르내리며 오러국은 과열되었다. 타임터너 폐기 쪽에 투표했었던 측은 예상된 시나리오였다며 타임터너 보존 측을 힐난했다. 또 하나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에 해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론은 옆에서 입술을 짓씹으며 ‘최소’ 일주일치 야근을 예감했다.
루시우스 말포이는 재산의 반절을 마법부에 기부하고 보석 석방 되었다. 그래봐야 여기 저기 심어놓은 자신의 사업으로 가세가 휘청일 리 만무했다. 말포이는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지금 현실에 더 만족해할 거라고 해리는 확신 했다. 그도 볼드모트가 부활해 돌아온 시기에 지긋지긋하게 부려졌던 것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법정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본 드레이코 말포이의 표정은 제가 처한 현실에 넋이 빠져 있었다. 그의 옆에 서있는 디멘터들 때문에 영혼이 빨리는 느낌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오러 상관들은 어둠의 상권에 뿌리가 깊은 루시우스부터 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헛수고야. 해리는 짜증스럽게 운동화 끈을 다시 매었다. 해리와 론은 녹턴 앨리로 현장 파견이 결정 되었다. 말단인 해리와 론이기에 애시당초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와 론이 소속 된 A팀이 오전과 오후, B팀이 밤과 새벽을 맡아 녹턴 감시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었다. 어차피 유동적으로 변경 되는 시간과 업무량에 의미 없는 나눔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밤중에는 집으로 귀가할 수 있겠지 싶어 다행이었다.
“보진과 버크 쪽부터 탐문 수사를 할까?”
“보진이 술술 불겠어? 직접 묻는 방식으론 어려울 것 같은데.”
녹턴 앨리에 도착한 A팀은 즉시 흩어졌다. 론은 목소리를 낮추며 해리에게 답했다. 징그러운 민달팽이가 한가득 꿈틀대는 바구니를 든 마녀가 그들 곁을 지나갔다. 론은 헛구역질을 할듯이 입을 틀어 막았다. 으, 난 정말 저것들이 끔찍하게 싫어. 해리는 피식 웃으며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그럼 크로타루스 지하 쪽을 들어가 보자. 깊숙한 곳부터 파고 들어야할 것 같아. 밖에 간판 내놓고 있는 상점들보다.”
“단순한 접근인데, 해리. 아주 좋아.”
론이 윙크하며 해리의 의견에 동조했다. 녹턴 앨리에서도 구석 쪽에는 사창가와 바로 붙은 오래된 상점가 크로타루스(Crotalus;방울뱀)가 있었다. 낡고 음습한 거리라 밝은 낮에야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른 저녁만 돼도 환락의 온상이 되는 곳을 일반 마법사들이라면 절대 찾지 않았다.
해리는 까만 후드를 깊숙이 눌러 썼다. 운동화 정도만 보이게 온 몸을 까맣게 감싸고 있었어도 오러인 것이 들킬까 염려스러웠다. 크로타루스와 가까워지자 헐벗은 여자 스큅들이 점점 많이 보였다. 밝은 낮에도 장사를 하는 집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저 쪽까지는 수사할 필요가 없기를 바라며 시선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축축한 습기가 기분나쁘게 목덜미를 핥았다. 뱀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못하게 된 파셀텅마저도 이 곳에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사 닫은 집들이 많네.”
론은 물건들을 덮은 천 위로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으, 최소 30년은 방치된 것 같아, 해리. 검은 망토에 손가락을 닦으며 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후로도 열려 있는 가게들을 전부 빠짐없이 들렀지만 딱히 뭔가를 알아낼 순 없었다.
“잘못짚었나 봐. 다른 오러들과 합류 할까?”
마지막 가게를 나오며 론이 말했고, 해리가 끄덕였다. 계단을 다시 오르는 순간에도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해리는 크로타루스 입구에서 느닷없이 잡아채인 팔에 인상을 찌푸렸다. 스큅 창부……. 까만 머리카락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여자는 겨우 젖꼭지와 사타구니만 가릴 수준의, 옷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하얀 천을 두르고 있었다. 해리는 표정 없이 그녀의 손을 제게서 떼어내었다.
“들렀다 가요. 잘해드릴게요, 젊은 오빠들.”
후드 아래의 론의 표정도 해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리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오러입니다. 공무 중이니 물러나 주시길.”
“어머! 단속하는 건가요?”
놀란 여자가 얼른 해리에게서 물러났다. 그에 따라 출렁이는 가슴을 보지 않으려하며 해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다른 오러들과 합류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여자의 목소리가 해리를 순간 붙잡았다.
“해리 포터?”
이런, 고개를 저을 때 흔들리는 후드 아래로 얼굴이 보였던 걸까. 해리는 모른척 걸음을 다시 떼었다. 아니, 분명히 그러려고 했다.
“스네이프는 어떻게 지내고 있죠?”
스큅 창녀가 어떻게…… 그의 이름을. 해리는 공무 중에 그래선 안됐지만 이미 스네이프의 이름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즉시 뒤를 돌아보며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여자는 미묘하게 웃으며 해리에게 손짓 했다. 론이 다가오려 하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해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론에게 먼저 오러들에게 가있으라는 의미로 턱짓을 했다. 론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해리는 이 여자에게서 스네이프의 이름이 나온 연유를 알아내야 했다.
여자가 데리고 간 가게는 기묘한 오브제들이 많았다. 크로타누스 등에서 사모은 것 같은 온갖 기괴하고 끔찍하게 생긴 물건들이 많았다. 해리는 조금도 건들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리며 여자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갔다. 어둑한 붉은 조명이 비추는 작은 방이었다.
“세베루스랑 아는 사이인가요?”
문을 닫지 않고 살짝 열어둔 채 해리가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왼팔에는 데스 이터의 표식처럼 화려한 꽃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제 팔의 꽃 그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큅이고 성노동자인 당신이 어떻게 그를 알죠?”
“몇 년 전 데스 이터의 신분의 그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가 당시에 이중 첩자였다는 건 이제 알지만요. 여긴 어둠의 마법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거든요.”
“……그는 여자와 관계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곳을 올 이유는….”
어둠의 마법사들─ 그 중에서도 데스 이터 신분이었던 세베루스가 이 가게를 찾았다라. 지금 타임터너를 노리는 데스 이터와 이 곳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해리는 공무를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 가게를 찾았다는 몇 년 전의 스네이프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이런 곳을 왜……. 게다가 이런 스큅 창녀가 친근하게 안부를 물어올 만큼 자주 방문한 건가? 해리는 생각할수록 더 괴리감을 느끼며 괴로워졌다.
“그가 여기에서 뭘 했죠? 누군가와 함께 왔었나요?”
해리의 녹색 눈에 불안이 어렸다. 떨리는 동공이 여자를 맹목적으로 바라보았다. 여자의 미묘한 미소가 해리의 머릿속에서 울렁거렸다.
“스투페파이!”
해리의 옆으로 붉은 섬광이 날아왔다. 반사적인 행동으로 피했지만 하마터면 맞을 뻔 했기에 해리의 등골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주문이 날아온 문 쪽으로 몸을 틀며 지팡이를 빼들면서 바로 프로테고를 외쳤다. 예상대로 빠르게 날아온 두번째 붉은 섬광이 방어마법에 의해 간신히 막아졌다. 젠장! 해리는 이제야 여자가 제 왼팔의 그림을 쓰다듬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소환 방식은 볼드모트와 데스 이터간의 교신과 똑같았다. 저 여자는 데스 이터의 한 패였음이 확실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저 여자는 스네이프를 들먹였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관계가 신문을 통해 마법세계에 퍼진 게 바로 저번주였다. 절 알아보자마자 유혹의 수단으로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신의 큰 약점이 무엇인지 적들은 너무나도 잘 파악한 것이다.
어쨌든 후회하긴 이미 늦었어. 해리는 당황했던 얼굴에 냉정을 찾았다. 저 자가 타임터너를 탈취하려한 범인이 맞다면, 오히려 지금 자신이 잡아버리면 되는 거니까.
“잡아요! 그를 잡아!”
“엑스펠리아르무스!”
문 쪽으로 달려가며 날린 해리의 주문이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후드를 쓴 데스 이터는 해리가 쫓아 나오자 가게 밖으로 뛰쳐 나갔다. 거리의 스큅 창부들이 춤추는 주문 섬광들에 비명을 지르며 각자의 가게로 숨어 들어갔다. 해리는 후드를 얼굴 위로 벗고 인카서러스를 외쳤다. 밧줄이 아쉽게도 공중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리는 그러나 지치지 않고 계속 주문을 날렸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해리를 잡기 위해 미친듯이 주문을 날려댔다.
달리다 보니 꺾어지는 골목이었다. 해리는 주변에 다른 오러가 있기를 기대하며 몸을 틀었으나 막다른 곳이었다.
“임페디멘타!”
해리의 주문이 상대의 후드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문의 위력에 후드가 벗겨지고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구불거리는 금발머리에 회갈색 눈동자의 젊은 청년이었다. 데스 이터! 분명히 이름은─ 그리드 파인즈. 볼드모트가 부활한 모습을 드러낸 후, 뒤늦게 포섭 된 젊은 데스 이터였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제대로 짧은 영광조차 누리지 못하고 몰락한 젊은 데스 이터. 해리는 비웃음을 흘리며 그가 타임터너를 탈취하려 한 동기를 알아챘다.
그리드는 제 얼굴이 드러나자 뱀처럼 사나운 얼굴을 했다. 해리는 그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스투페파이!”
해리의 무장해제 주문이 그리드에 명중했다. 그리드의 지팡이가 날아오고 그의 몸이 막다른 벽으로 날아가 등부터 강하게 부딪혔다. 그리드는 척추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그대로 기절했다. 하지만 그리드가 날린 기절 주문이 먼저 해리에게로 꽂혔다. 복부를 강타한 스투페파이에 해리는 의식이 한순간에 흐려졌다.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는 게 나을 것 같은, 해리는 짧은 순간의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해리의 바람대로, 해리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스네이프! 해리가 다쳤어요! 성 뭉고 병원으로 지금 당장 오세요!”
론 위즐리의 목소리로 잭 러셀 테리어 패트로누스가 소리 쳤다. 베란다로 갑작스럽게 등장한 패트로누스에 당황하기도 잠시, 스네이프는 현기증이 일어나는 내용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침에 즐겁게 웃으면서 벽난로로 사라지던 얼굴이 훤한데, 해리가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해리가 다쳤다고? 해리 포터가? 해리가 다쳤다는 말인가? 내 연인을…… 누가? 스네이프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꼬였다.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의 부상일까? 스네이프는 떠오르는 의문들을 애써 누르려고 하며 지팡이를 쥐었다. 순간이동을 위해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자꾸만 머릿속으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연인의 얼굴이 상상돼서 순간이동이 어려웠다.
“제발, 제발, 빌어먹을…… 성 뭉고 병원!”
스네이프는 눈을 질끈 감고 병원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스네이프는 퍼지 앤 다우스 Ltd. 라고 적힌 간판이 달린, 빨간 벽돌로 지어진 구식 백화점 앞에 서있었다. 스네이프는 얼른 창에 붙어, 아주 못생긴 마네킹에게 해리 포터를 찾아 왔다고 빠르게 속삭였다. 마네킹은 작은 소리에도 알아들었는지 끄덕이며 손가락을 구부려 손짓 했다. 스네이프는 황급히 창 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흠칫, 스네이프는 병원 로비에 가득한 정복을 입은 오러들에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전 데스 이터라는 것은,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그들 앞에서 몸이 굳게 되어 있나 보았다. 스네이프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오러들을 쳐다 보았다. 그들도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긴장한 얼굴을 했다. 그 때, 그들 뒤에서 론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론은 스네이프의 앞으로 달려 왔다. 스네이프는 익숙한 해리의 친구의 등장에 안도를 느꼈다.
“포터는? 포터는 지금 어디 있지? 많이 다쳤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필시 얼굴도 걱정으로 무너졌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론의 입만 들여다 보며 해리가 무사하다는 대답을 기다렸다.
“해리는 괜찮을 거예요, 지금 치유사들 다섯이 달려들어서 치료중이예요. 아직 의식은 없지만….”
“어디를 다친 건데? 대체 어쩌다가─”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와 싸우던 중에 부상을 당했어요. 장기가 끊어져서 연결시켜야 한다고 들었고, 걱정마세요! 지금 성 뭉고 최고의 치유사들이 해리에게 붙어 있고, 회복할 수 있는 부상이니까…… 잠깐, 스네이프!”
장기가 끊어졌다는 말을 듣고나서도 서있을 수가 없었다. 론은 주저 앉은 스네이프를 급하게 부축하며 일으켰다. 아니, 그냥 쓰러지게 둬, 론 위즐리. 스네이프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생각으로만 외쳤다. 정말 쓰러지고 싶은 마음밖에는 들지 않았다.
“스네이프 선배님, 해리에게로 데려가겠습니다. 걸으실 수 있겠어요?”
휴가 다가와 스네이프의 어깨를 짚었다. 스네이프는 순간 멍해졌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휴와 론이 스네이프의 옆에서 걸을 수 있게 부축해주었다. 오러들은 그들을 주시하면서도 길을 터주었다.
“해리는 5층 주문상해과에 있어요.”
론이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앞으로 펼쳐질 장면들을 상상하며 공포에 떨었다. 스네이프에게 해리의 부상은 실존하는 최고의 공포였다.
5층에 들어서자마자 치유사들이 분주하게 복도를 돌아다니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오러들은 병원의 로비보다 5층 복도에 더 많이 깔려 있었다. 론이 입술을 짓씹으며 같은 층의 다른 병실에서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용의자는 해리의 주문을 맞고 벽에 부딪혀 낙상할 때, 척추가 완전히 으스러질 정도로 부러졌으며, 해리는 주문에 맞아 위와 장이 끊기고 오른쪽 발목이 반대로 꺾이는 등 자잘한 타박상이 있었다.
론의 말이 끝나는 순간, 스네이프는 론을 뿌리치고 걸어나왔다. 방금까지 걸을 힘도 제대로 내지 못했으면서,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쥐고 오러들 사이를 헤쳐 나갔다. 당황한 론과 오러들이 스네이프를 붙잡으려 달라 붙었다. 오러들에 붙들려 오도가도 못한 채, 스네이프가 용의자의 병실이 어디냐고 악을 질러댔다. 휴가 치유사들에게 급히 수면 물약을 받아왔다. 휴는 빠르게 스네이프의 등을 덮쳐 억지로 약물을 입 안에 부어 넣었다.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던 스네이프는 이내 휴의 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하아….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이런 사람인 걸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군….”
휴가 한시름을 놓고 스네이프를 안아들었다. 론이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어떡하죠? 스네이프가 해리의 보호자가 되어 줘야 하는데….”
“론, 너희 부모님을 불러라.”
“엄마를요? 알겠어요!”
론이 다시 제 패트로누스를 소환했다. 론의 목소리를 실은 채, 잭 러셀 테리어가 버로우를 향해 빠르게 공중을 도약해 달려나갔다. 휴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 해리의 병실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치유사들이 해리의 바이탈을 실시간으로 체크 하고 있었다. 부러졌던 발목은 이제 정상 위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휴는 빈 침대에 스네이프를 내려놓았다. 하얗게 질려 잠에 든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건…….’
스르륵 돌아간 스네이프의 머리 아래로 목이 드러나며 휴에게도 익숙한 무늬의 상처가 보였다. 번개무늬의 상처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휴는 짤막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해리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어서 일어나 정신차려, 임마. 네 마누라 실성하기 전에 좀 달래줘야겠다, 해리야.”
치유사들이 휴에게 다가와 해리 포터의 보호자를 찾았다. 휴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단 기다려 보세요,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몰리가 조지와 함께 해리의 병실을 찾았다. 론은 해리의 병실 앞 가드를 서다가 그들을 반겼다. 당황한 얼굴의 그들에게 론이 상황을 설명 했다. 지금 해리는 약물을 몸 안에 들이 부어 끊어진 장기의 연결을 기다리는 중이며 당분간 입원 치료가 불가피 했다. 그리고 몰리와 조지는 병실로 들어섰을 때 보인 또 한 명에 놀라서 눈을 끔벅거렸다. 까만 머리카락을 하얀 얼굴 위로 늘어뜨린 채 창백하게 잠들어 있는 저 남자는…….
“스네이프는 해리의 보호자로 불렀는데, 해리를 이렇게 만든 용의자를 죽이려고 했는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강제로 잠들게 해놨어요.”
론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몰리는 현재 해리와 만나고 있다는 스네이프를 이렇게 느닷없이 맞닥뜨리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부상 당해 눈을 감은 채 잠들어있는 해리와 그런 해리 때문에 난동까지 피웠다는 스네이프를 번갈아 바라보고 조용히 그들 사이의 의자에 앉았다. 치유사가 몰리에게 다가와 해리 포터의 보호자냐고 물었다. 몰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포터 씨는 현재 많이 좋아졌어요. 끊어진 장기의 연결이 36% 정도 이뤄진 상태입니다. 완전히 연결 되더라도 식이 하는 걸 지켜보면서 이틀 정도는 더 쉬어야 하고요. 의식은 곧 회복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치유사님.”
몰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는 해리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제 딸과 헤어졌어도 해리는 위즐리들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렸었던 은인이었다. 그간 해리도 제 나름 눈치를 보고 미안해했을 것을 몰리도 알았다. 하지만 제 딸과 결혼할 뻔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 해리를 집에 부르지도 못했다. 그런 해리가 임무 중에 다쳤다는 소식에 몰리는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 해리는 결국 몰리의 또 한 명의 막내아들이었다.
세 시간이 더 지났다. 조지는 스네이프가 누워 있는 침대의 난간에 팔짱을 올리고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기억 속의 모습보다 살이 조금 올랐나. 부드러워 보이는 뺨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음, 요즘은 머리를 감고 다니나 보지. 어쩐지 희게 질린 안색이 처연해보이기도 했다. 스네이프가 해리가 아프다는 소식에 정신이 나가, 앞뒤 안 재고 병원 복도에서 난동을 부렸다니. 예전 같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재밌는 모습을 본 론이 매우 부러워졌다.
“으…음….”
스네이프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지는 오, 하며 스네이프가 눈을 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깜박, 깜박 초점을 맞추는 눈이 여전히 멍해보였다. 그러다 불현듯 정신이 돌아왔는지 벌떡 일어나 앉다가, 현기증에 눈앞이 새카매져 고개를 숙였다.
“포…터…….”
골을 붙잡은 스네이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는 걸 인식했고, 절 보고 있는 얼굴이 학교의 유명했던 악동 조지 위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포터는…….”
“바로 옆에 누워 있어요, 교수님. 치유사가 그러는데 많이 좋아졌대요.”
스네이프는 대답하지 않고 옆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해리를 이렇게 죽은듯이 누워있게 만든 놈에게 저주든 죽음이든 내려주기 위해 찾아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였다. 누군가가 입으로 약물을 들이부은 것 또한 기억에 떠올랐다. 스네이프는 난간을 내리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몰리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해리. 스네이프는 평화롭게 자고 있는 해리의 얼굴을 보면서 울컥 울음이 받혔다. 손을 뻗어 말랑한 볼살을 쓸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따듯한 체온에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스네이프, 해리는 곧 눈을 뜰 거예요.”
“…몰리.”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시선을 천천히 돌려 몰리를 바라 보았다. 제가 미울텐데도, 몰리의 상냥한 말투에 스네이프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저녁시간인데, 같이 식사할까요? 그 뒤에 우린 갈테니까, 해리 옆에 있어줘요.”
“제가 불편하지 않습니까? 굳이 절 배려해줄 필요는….”
“어허어! 스네이프 교수님, 그냥 같이 식사 한 번 해요. 뭐 어려운 거라고 그거.”
조지가 씨익 웃으며 스네이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스네이프는 혐오스런 표정을 짓다가, 조지의 구멍난 귀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제가 저지른 실수인 조지의 귀를 눈앞에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지는 욕설이 날아올 줄 알았으나, 굳어버린 스네이프에 그가 자신의 귀를 신경쓰고 있음을 알았다. 하하, 그럴 필요 전혀 없는데.
“식사 한 번 같이 하면 제 귀에 바람구멍 내주신 거 용서할게요.”
결국에는 스네이프가 미간을 찡그렸다. 순식간에 약간의 죄책감마저 사라졌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을 뜨지 않은 해리 옆에 있기도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병원 밖의 식당에는 성 뭉고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로 온 마법사들이 제법 보였다. 리키 콜드런처럼 머글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조치 된 식당이라 안전했다. 론은 해리 병실의 가드 일 때문에 같이 오지 못했다. 혹여 용의자에게 다른 데스 이터 동료가 있어 병원 습격을 올까 오러들은 초비상 근무중이었다.
몰리와 조지를 맞은편에 두고, 스네이프는 해리를 생각하며 울적하게 메뉴판을 응시했다. 입맛도 없었다. 스네이프가 저는 됐다고 말을 하자, 몰리가 이따 간병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고 일축 했다. 그렇게 말랐는데 힘이 어디서 나오겠냐며 잔소리까지 했다. 스네이프는 평소같으면 얼굴을 굳히고 자리를 피했겠지만, 해리가 아픈 지금 제가 갈 곳은 그의 옆 뿐이었다. 그래서 몰리와 조지가 저를 잠시라도 해리 옆에서 떨어뜨려 주어 그냥 자리를 지켰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그럼 부담 안되는 감자스프를 시켜주죠, 엄마. 부드러운 빵도 곁들여 준대요. 나는 이걸로 시키고…. 엄마는 그거요? 네.”
종업원을 불러 조지가 주문을 했다. 학교를 무단으로 뛰쳐나간 뒤, 바로 일을 해서 그런지 조지는 나이보다 태도가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 악동 조지 위즐리에게 어른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스네이프는 조용히 물 잔을 내려다 보며 식사를 기다렸다.
몰리는 찬찬히 스네이프를 들여다 보았다. 예전에는 사나워 보일 정도로 예민했던 표정이 눈매가 풀려서 훨씬 유순해보였다. 해리의 곁에서 지내면서 그가 많이 안정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좋은 영향을 받는 관계구나. 몰리는 제 딸과 해리의 다정했던 모습을 떠올렸다가 살며시 웃었다. 이제 그건 기억 저편에 묻어둬야 할 모습임을 느꼈다.
“어떻게 지내요?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물 잔에서 시선을 들어, 몰리를 바라보았다. 상냥한 눈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평소엔 해리의 집에 있고, 오늘은… 개인적인 일로 학교에 갔다 왔습니다.”
“그렇구나. 교수로 다시 일 할 건가요?”
“……네. 그리고…….”
스네이프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몰리와 조지까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스네이프의 뒷말을 기다렸다.
“……오늘 지니 위즐리를 만났고.”
둘 모두 예상 외의 답변에 입이 벌어졌다. 그 순간에 음식을 나눠주는 종업원이 등장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스네이프는 숟가락을 쥐고 뜨거운 스프를 천천히 저었다. 몰리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결국 물어 보았다.
“지니가 뭐라고 했나요? 그리고 스네이프 당신도 지니에게 무슨 말을….”
“엄마!”
“괜찮다, 조지 위즐리. 그냥 그녀가 내게 할 말이 있어 보여서 따로 만났습니다. 전 그다지 할 말 없는 입장이니 질문에 답만 했고.”
“지니가 뭐라던가요…?”
“제게 화내도 상관없습니다, 몰리. 어쨌든, 지니 위즐리는 포터를 잊었다고 제게 말했고 저랑 포터의 관계에 대해 궁금했던 걸 물었습니다. 전 질문에 답했고, 그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어서 식힌 스프가 혀 위에서 미묘하게 뜨거운 태를 자랑했다. 몰리는 스네이프의 말을 듣고 약간 충격을 받은 듯했다. 조지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군옥수수를 우물거렸다. 지니가 해리를 잊었다고 스네이프에게 말했다니, 지니의 가족인 저들이 딱히 할 말을 찾을 수도 없긴 했다. 그리고 조지는 스네이프와 해리의 관계에 대해 저도 묻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옆의 엄마만 아니었다면 쏟아낼 질문들이 많았다.
“엄마, 식사해요.”
그녀의 앞으로 그릇을 밀어주며 조지가 다독였다. 스네이프는 빵을 찢어 스프에 조금 담가 먹었다. 따듯한 것이 들어가니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해리가 지금쯤은 눈을 떴을지 궁금했다.
“아, 예전에 폴리주스 마시고 해리랑 같이 제 가게 오신 적 있죠, 교수님?”
“포터가 얘기 했나?”
“아뇨, 제가 그냥 추측한 건데 맞았더라고요. 저번에 해리가 가게 들렀을 때 물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고. 그 때 사랑의 묘약 없어서 못팔았어요. 근데 또 주문을 넣으려 하니 다시 안 만든다고 해서 얼마나 아쉬웠다고요.”
“그냥 교과서의 약물을 차례대로 만들며 시간 떼운거니까.”
“한 번 더 주문 넣어도 되나요?”
조지가 싱글거리며 물었다. 사랑의 묘약 같은 한심한 물약에 돈을 쓰는 호그와트 학생들을 생각하면, 교수 스네이프는 한숨도 안 나올 만큼 표정이 썩었다. 그러나 거절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받은 돈 만큼 해리 생일선물이나 사줘야겠단 생각이었다.
“앗싸, 신난다! 최연소 포션 마스터의 특제 사랑의 물약 에디션 붙여서 팔아야지.”
“내 이름값을 쓴다고? 그럼 로열티도 더 지불해, 조지 위즐리.”
조지가 푸하하하 웃으며 식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스프를 떠먹었다.
“아─ 진짜 못참겠다. 해리랑 어떻게 사귀기 시작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해리에게 차인 여동생을 두고 친오빠가 매정하기도 하군. 게다가 엄마를 옆에 두고서도 제 궁금증 해결이 먼저라는 게 조지 위즐리다웠다. 스네이프는 호박주스를 조금 마시고 몰리를 힐끗 보았다. 몰리의 표정은 듣고 싶은 것 같기도, 귀를 막고 싶은 것 같기도 해서 아리송했다.
“잘 모르겠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돼서.”
애매하게 뭉뚱그리는 스네이프의 대답에 조지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인데 어쩌라고.
“그렇게 서로 싫어서 못 죽고 으르렁대고 싸워놓고. 어쩌다보니 사귀게 돼요? 그게 말이 되나?”
말이 되던데. 스네이프는 턱을 괴고서 숟가락을 스프에 담가 빙빙 휘저었다.
“뭐 특별한 계기를 찾고 싶은 거라면, 있긴 했는데, 굳이 내가 왜 밝혀야 하지?”
“역시 있었네! 들려줘요, 교수님! 엄마 신경쓰여서 그런거라면 엄마, 잠깐만 화장실 갔다와봐요.”
“조지!”
등짝 맞을 줄 알았다. 스네이프는 픽 비웃음을 날리고 남은 스프를 마저 먹었다. 몰리 위즐리가 아니더라도 물론, 절대 답할 리 없는 질문이었다. 해리 포터랑 섹스하는 꿈을 서로 똑같이 꾸고, 그 날 키스했다고 어떻게 말 할 수 있겠는가. 몰리가 조지에게 버럭버럭 화내는 걸 지켜보며, 스네이프는 해리의 걱정이 하나 풀린 것에 안도를 느꼈다. 위즐리 가족은 역시나 해리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 깊은 인연은, 그 사이에 자신이 끼더라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해리나 교수님이나, 진짜 서로 어떻게 좋아지게 된건지 너무너무 궁금하다고요! 이건 기사를 본 사람들 전부 다 공감할 걸요? 아, 엄마도 솔직히 궁금하잖아요!”
“얘가!”
몰리의 매서운 손바닥이 조지의 팔을 찰싹 내리쳤다. 스네이프는 큭, 하고 입술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조지는 스네이프의 웃음에 실실 웃으며 그를 바라 보았다. 능글맞은 그 얼굴에 스네이프는 금세 웃음을 지웠지만, 조지는 여전했다.
“해리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네? 제발~ 스네이프 교수님, 물약 값을 저번의 두 배로 드릴테니까!”
“내가 돈이 궁핍해 물약을 판 게 아니라 그 거래 제안은 실패로군, 조지 위즐리.”
“아, 정말. 돈이 안 먹히는 상대는 너무 어려운데. 그냥 싸게 싸게 들려줍시다. 우린 해리의 또 다른 가족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해리랑 만나고 계신 스네이프 교수님도 우리 가족이나 다름 없죠. 그쵸, 엄마?”
“뭐, 물론, 그렇겠지…. 그래요, 스네이프. 우리 어려워 말고 말해요.”
“역시, 엄마도 궁금했잖아요.”
끝까지 엄마인 몰리의 속을 긁는 다섯째 아들 조지 위즐리였다. 스네이프는 해리면 몰라도, 그들과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지의 말 속에 내포한 따듯한 의미는 알았다. 그들에게 해리와 저의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란 것도 알았다.
“포터가 왜 좋냐고?”
“네!!!”
조지는 기대감에 차서 눈을 반짝였다. 저런 눈을 수업시간에는 본 적이 없는데. 스네이프는 속으로 혀를 차며 턱을 괴었다. 그들 앞에서 느슨하게 자세가 풀렸으나, 스네이프 자신은 의식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포터가 날… 좋아해주니까…….”
말로 뱉고 나니, 새삼 부끄러운 문장이었다. 스네이프는 끙, 앓는 소릴 짧게 뱉고 턱을 괬던 손으로 눈을 가렸다. 조지가 꺅 소리를 질렀고, 몰리마저도 입을 가리며 탄성을 작게 내었다. 이런 말을 다른 사람 앞에서 하다니, 자신이 미친 게 분명했다. 스네이프는 붉어진 목덜미로 화끈거리며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스네이프는 비운 스프 그릇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해리의 병실로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저의 유일한 가족인 해리가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솔직하게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럽지 않은 상대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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