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타임터너는 봉인이 결정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시계가 데스 이터 잔당들에게 넘어가면 큰일이었기에, 폭파와 봉인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걸로 추정 되는 타임터너의 가치에 결국 보존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해리는 어쨌든 자신과 스네이프를 이어주었던 물건이 없어지지 않는 것에 다행스런 느낌을 받았다. 또한, 타임터너의 기존 주인이었던 판매자는 개인의 삶에만 그것을 사용했기에 법적 처벌은 없었다. 구매자는 심문 끝에 어둠의 마법 물품 상권과 연관이 있는 자로 밝혀져 구속 되었다. 해리는 이 일로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론이 해리의 어깨를 짚었다. 해리는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론을 돌아보았다. 아직 론은 지니와 저의 일을 몰랐다.

“축하해, 친구. 1년 고생했으니 상장 한 장 정돈 받아야지.”
“고맙다, 론.”

론은 해리를 잠시 내려다 보았다. 해리에게서 저를 꺼리는 기색을 분명히 읽었다. 어제부터 수상하단 말이지. 론은 이게 스네이프와 관련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리와 스네이프 펜시브 열람 요청을 출근 하자마자 해두었다. 인기가 많은 기억이어서 벌써 오러 팀의 선배들은 단체로 봤다고 했다. 승인이 떨어지면 론도 오전 시간내로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진짜 바쁘다. 해리, 참. 오후에 우리 녹턴 앨리 순찰 같이 돌더라.”
“타임터너 구매자 측 상권 쑤셔본다고 그러던데.”
“별 거 없었음 좋겠다. 계속 바쁘니까 토 나오지 않냐.”
“맞아. 이제 출근 3일찬데 쉬고 싶어 죽겠다.”
“숨어 살 때는 일 안 하고 계속 쉬었어? 그럼 개부러운데.”
“아니. 머글 체육 센터에서 어린이들 가르쳤어. 머글들 운동.”
“와! 진짜 귀여웠겠다.”

론은 퀴디치보다 재밌는 운동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리가 운동을 가르쳤다는 사실 보다는 어린이들에 더 집중했다. 최근 헤르미온느와 둘이서 자식은 몇 명 낳을까 얘기도 나눴었다. 론은 무조건 형제는 적을수록, 가급적이면 외동이 좋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동인 헤르미온느는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센터에 애들 진짜 귀여웠어. 그 중에서도 찰스라고, 동료교사 아들이 있는데 나를 진짜 잘 따랐거든. 막 번개 모양 나뭇가지 주워서 선생님 선물이라고 나 주고. 눈도 똘망하고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 지 몰라. 진짜 나도 그런 아들 하나 있음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 찰스 보고싶다.”
“낳으면 되지, 해리. 지니랑 결혼해서.”
“……!”

신나게 찰스에 대해 떠들던 해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론은 급작스럽게 바뀐 해리의 분위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지니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된다는 부분에서, 왜?

해리는 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머쓱히 목을 긁었다. 론은 또 다시 찾아온 석연찮은 느낌에 입술을 잘근거렸다. 해리는 분명, 저에게 해야할 말을 아직 하지 않았다.

“론 위즐리! 열람 승인 떨어졌다.”

팀장과 함께 부서로 들어오던 휴가 론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론은 흘낏, 해리를 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리는 여전히 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러 로날드 위즐리, 오전 8시 5분자 예약, 오전 10시 승인완료. 네, 확인 되었습니다. 펜시브 h-19번, s-731번 기억은 1번 열람실로 들어가세요. 전원버튼을 누르시면 영상 재생이 시작됩니다. 빠른 재생을 원하시면 붉은 버튼, 느린 재생을 원하시면 노란 버튼, 정상 속도는 녹색 버튼, 뒤로 10초 돌리는 건 하얀 버튼입니다.”

열람실에 있던 담당 직원이 펜시브 재생 스크린의 컨트롤러를 건네 주었다. 이전에도 오러 임무로 열람실에 종종 와봤던 론이었다. 이제는 형식적인 설명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펜시브에 뛰어 들지 않고도 복사 된 영상을 간편히 스크린으로 옮겨 볼 수 있는 건, 마법부 내의 독자적인 마법기술 발전이었다. 현재 이 마법은 오러들이 임무 중에 단체로 또는 간편히 보기 편하도록 쓰이고 있었다. 1번 열람실에 론이 홀로 들어섰다. 문을 닫자마자 주위가 조용했고, 어둑한 실내에 벽 한 면을 채운 스크린이 있었다. 론은 컨트롤러의 전원을 눌렀다.

해리는…… 사라진 스네이프를 찾지 못한 마음의 그늘을 늘 가지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죽기 직전 ─살아있는 걸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해리에게 넘긴 기억을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같이 교장실의 펜시브로 들어가 보았었던 론이었다. 그 스네이프에게 그런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인성 파탄난 성격 나쁜 선생이었던 건 변함없지만, 해리를 지키고자 뒤에서 노력했던 사람이란 건 알게 되었다. 직접적인 대상이었던 해리에게는 스네이프에 대한 관점이 송두리째 바뀔 기억이었을 것이다. 론은 제 3자의 입장이어서 스네이프를 여전히 재수 없게 여겼어도, 해리는 그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듯이 보였다.

론에게 있어 해리가 그를 살리는 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해리에게 방도가 있었고, 스네이프를 살릴 기회가 온다면 해리는 당연히 그렇게 했을테니까. 론은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가 스네이프와 해리의 동거 부분에서 녹색 버튼을 눌렀다. 별 것마다 딴지를 걸고 해리를 괴롭히는 스네이프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실제 기억 속의 스네이프는 그렇지 않았다.

스네이프가 만든 음식을 먹고 해리는 출근 준비를 했고, 스네이프는 해리가 없는 시간엔 마법약을 만들거나 대부분 책을 읽었다. 해리가 퇴근하고 해리가 사온 음식을 먹으면서 둘은 하루에 대해 담소를 나눴다. 스네이프의 빈정거리는 말투는 변함 없었지만, 둘 사이 분위기는 꽤나 다정했다. 자연스러운 온도가 그 둘에게 존재했다. 론은 그 평범한 일상에 한숨을 내쉬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지나칠 정도로 둘은 서로에게 안정되어 있다. 스네이프와 해리가. 둘의 동거 소식을 보자마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목도한 둘의 일상은 너무도 평범하게 잘 지냈다. 누가 끼어들 틈도 없어 보일 정도로, 그 분위기가 '가족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치 버로우의 위즐리 가족 같은.

론은 입맛이 쓴 채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에 떠 있던 해리와 스네이프는 사라졌다. 하지만 머릿 속을 채운 해리의 웃는 얼굴까지 없어지진 않았다.


오후의 녹턴 앨리는 평소와 똑같이 칙칙했다. 까만 후드를 덮어 쓰고, 오러 정복과 얼굴을 가린 채 해리와 론은 어둠의 마법 상점 거리를 단속했다. 빛의 세력이 승리한 뒤로 녹턴도 전보다는 기세를 잃었지만 여전히 어둠의 마법을 애호하는 마법사들은 많았다. 역사에 늘 있던 그들이었다. 오러인 해리와 론은 그저 감시의 역할로 온 것이어서, 비장한 긴장은 없었다.

보진과 버크를 마지막으로 나온 둘은 다이애건 앨리 쪽으로 향했다. 퇴근 전에 잠깐 쇼핑을 하려는 목적이었다. 다이애건 앨리로 들어온 해리와 론이 후드를 벗자, 주변의 마법사들이 깜짝 놀라며 바라보았다. 유명한 전쟁 영웅 둘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어린 아이가 눈을 빛냈다. 론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해리는 눈웃음을 지은 뒤 자리를 벗어났다. 붉은색의 눈에 띄는 정복을 입고 있는 둘이 근무중인 것을 알고, 마법사들은 쉴 새 없이 그들을 곁눈질 하면서도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책 산다고 했지?”
“응. 서점만 들렀다가 조지 네로 가자.”

해리는 플러리쉬 앤 블러트 서점에 들어서자 마자 어둠의 마법 서적 쪽으로 향했다. 방금까지 순찰해놓고 공부까지 하게? 론이 질렸다는 눈으로 해리를 바라 봤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필요해서.”

서적 세 권을 고른 해리가 계산을 했다. 어둠의 마법 생물, 주문과 방어에 관련 된 책이었다. 론은 해리에게 새삼 N.E.W.T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 준비라도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론은 간지러운 입을 다물고 서점 문을 열었다. 책을 넣은 봉투를 안고 있던 해리가 고마워했다. 천만의 말씀, 론은 어깨를 으쓱이고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로 향했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답게 오늘도 문전성시였다. 해리는 다시 후드를 썼다. 이 곳에서 어린이들과 젊은 부모 마법사들의 관심에 시달리면 끝이 없는 걸 알고 있었다. 론은 그런 관심을 즐겼으므로 그냥 들어섰다.

“해리!”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어도 조지의 눈썰미까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론과 함께 들어왔기 때문일 터다. 해리는 가게 뒤편으로 가서 조지와 마주 앉았다. 론은 헤르미온느가 부탁한 수정 깃펜 등을 본다고 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찾은 거 축하해.”
“고마워 조지. 나중에 교수님이랑 그 홀리한 귀 얘기도 한 번 해봐야지.”
“아, 물론. 내게 이런 멋진 귀를 선물해주신 분이잖아.”

조지가 윙크 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왜?”
“일전에, 사랑의 묘약을 배달한 프랭크라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지? 해리.”
“아…! 조지, 기억하고 있었구나…. 맞아, 프랭크는 폴리주스를 마신 나였어. 근데 어떻게……?”
“같이 온 꼬마는 그럼 진짜 스네이프 교수님이 맞지? 와우 멀린, 그래서 그 꼬마- 스네이프가 그렇게 깜찍하게 굴었구만. 그 때 그 사랑의 묘약, 호그와트에서 대히트였어. 효과가 장난 아니었나 보더라구. 그래서 마법약 실력이 스네이프 수준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네가 과거로 돌아가서 스네이프랑 같이 살았다고 하잖아. 그 꼬마도 스네이프랑 묘하게 닮았었고. 내 추리력 상당하지? 해리.”
“어, 진짜. 오러국에서 탐낼 인재인데, 조지?”

해리가 웃으며 조지를 보았다. 거만하게 팔짱을 낀 조지가 다소 과장스럽게 으쓱댔다. 기억력도 좋고 추리력도 좋았다. 정말 과거의 저에게 조지가 스네이프를 닮은 꼬마에 대해 언급을 했었다면, 자신이 스네이프를 찾아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싹해질 정도였다.

“스네이프랑 지내는 건 어땠어? 그 때 보니 둘 분위기는 괜찮더라. 진짜 아빠랑 아들로 보였다고, 해리.”
“그 때랑 비슷한 분위기로 지냈지, 뭐. 그런데, 있잖아 조지. 아직 론에게도 말 못했는데… 나, 지니랑 헤어졌어.”

해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니의 오빠인 조지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긴장 속에 바라본 조지의 눈은 살짝 놀랐다가, 이내 유하게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해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눈치를 봤다.

“…오래 못 만났다고 식은 거니? 며칠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됐을 텐데. 너무 돌아오자마자 찬 거 아니야? 우리 귀여운 지니를.”

조지의 부드러운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해리는 심장이 따끔거리는 압박을 느꼈다. 그녀와의 이별은 정말로 위즐리 가 전체에 대한 이별일 수도 있는 거였다. 스네이프의 말이 맞았다.

해리는 서적이 든 봉투를 안은 팔을 고쳐 안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왜 지니를 좋아했을까, 하는 한심한 마음까지 들었다. 해리 포터가 위즐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이 붉은 머리의 가족은 고아 해리를 품어준 첫번째 가족이었다. 다음은 헤르미온느, 다음은 시리우스, 그리고 다음은…….

“나, 스네이프 교수님을 사랑해.”

커튼이 열리고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수정 깃펜을 쥐고 있는 손이 문틀을 짚고 있었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론을 바라보았다. 타이밍이 너무 좋지 못했다. 론의 표정이 썩어있는 것 같았다. 론이 해리의 눈을 먼저 피했다. 조지 역시 해리의 고백에 놀라고 당황하긴 했지만, 론에게 이런 식으로 들키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론은 저보다도 더 배신감을 크게 느낄 성격이니까. 걱정스러웠다.

“……론.”
“나한테 숨기는 게 그거였어? 해리.”

론의 딱딱한 목소리가 해리의 가슴 위로 묵직한 돌이 되어 굴렀다. 숨기려고 숨긴 건 아니었다. 단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상대가 론이기에 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론의 반응은 이처럼 너무도 예상이 갔다. 차가운 파란 눈이 꼭 빙하처럼 서늘했다. 론은 나 이거 결제했다, 형, 말을 하고는 수정 깃펜을 쥔 채 등을 돌렸다. 해리는 조지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급히 론을 쫓아갔다. 조지는 뒷머리를 긁적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듣고 싶은 얘기였는데. 스네이프 교수를 사랑하게 됐다니, 해리가.


“론!”

성큼성큼 걸어가는 길쭉한 다리가 얄미웠다. 해리는 달렸기 때문에 금방 거리가 좁혀졌다. 다만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다이애건 앨리인 게 낭패였다. 론, 애타게 부르며 해리가 팔뚝을 잡았다. 론은 눈썹을 찡그리며 해리를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나도 다 들었어, 해리. 스네이프가 좋다고? 그래, 그럼 되잖아. 불쌍한 우리 지니는 비록 너에게 차였지만, 며칠 울고나면 너 같은 건 싹 잊고 좋은 남자 찾겠지. 그래, 그거면 되는 거 아니야? 해리.”
“지니에겐 미안해, 나도! 근데 감정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어. 변명인 거 알아. 이거 변명이야, 맞아, 론─ 그렇지만 지니는 받아들여줬어! 이별을 받아들인 건 지니야.”

론이 해리를 지그시 노려 보았다. 자기 친구지만 정말 이기적인 놈이라고 론은 생각했다.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한다. 해리 포터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럼 지니가 네 말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 같은데? 구질구질하게 널 붙잡으려고 할 애냐? 걔가?”
“…….”
“나도 네가 스네이프랑 지냈던 기억 다 봤어, 해리. 네가 나한테 말하지 않는 게 있는 것도 다 눈치챘다고. 놀랍게도 론 위즐리에게도 눈치란 게 있어서 말야.”

론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해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론이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니가 제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해리도 떠올리고 있었다. 론은 제 여동생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변의 마법사들이 신경쓰였다. 해리는 더이상 어떤 얘기를 론에게 해야할 지도 알 수 없었다. 부서로 복귀 하자,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녹턴 앨리 순찰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해리는 시계를 확인 했다. 퇴근시간까지 3분여가 남았다. 론 쪽을 쳐다 봤다가도 다시 고개가 돌아왔다. 론이 자신의 태도에 화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론이 사실을 알게 된 타이밍도 최악이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예전에도 해리 스스로 풀기 보단, 자연히 해결되는 상황이 찾아 왔었다. 그 때를 기다리면 되는 걸까….

론은 냉정하게 해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해리는 우리 관계가 바람을 피우는 거라 말했던 스네이프의 말을 떠올렸다. 맞아, 맞는 말이었다. 여자친구랑 사귀고 있던 주제에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 사람과 섹스하고 결혼까지 약속한 거니까. 지니보다 그녀의 가족들이 해리에게 더 화가 나는 것도, 가족이라면 당연했다.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이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별이 존재할 수 있냔 말이었다. 해리는 답답함에 셔츠의 윗 단추를 풀었다.

세베루스가 보고싶다. 그와 그냥 스피너즈 엔드에서 영원히 숨어 사는 쪽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마법세계를 구원한 유명하고 인기 많은 젊은 영웅은, 그저 소박하고 음습하며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만 사랑하고 살고 싶을 뿐이었다. 마법부 벽난로에 들어서며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포터, 왔…!”

벽난로에서 나오자 마자 스네이프의 입술을 찾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던 스네이프가 당황해서 밀어낼듯 해리의 허리를 붙잡았다. 해리가 정신없이 혀를 섞으며 스네이프를 소파로 이끌었다. 푹신한 소파로 무너진 그의 위에 올라타서, 해리는 입술을 떼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스네이프는 놀란 눈으로 해리와 시선을 맞췄다. 해리의 눈이 지쳐 있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눈치가 빠른 남자는 그냥 해리의 허리를 안았다. 동그란 뒤통수를 쓸어 내리자, 해리가 괴로운 신음을 냈다.

“세베루스, 난 진짜로…… 당신만 있으면 돼요…….”
“바보냐, 포터. 넌 나 하나만 있으면 큰일 나. 네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 줄 아나.”
“필요 없어! 난 당신만….”
“어린 소리 그만해, 포터.”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걱정 되는 해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론 위즐리에게 한 소릴 들은 게 분명했다. 울 것 같은 해리를 보고 있으니, 이 녀석의 단단함도 '위즐리' 앞에서는 흔들리는 게 보였다. 위즐리 가족이 해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스네이프도 잘 아니까. 하지만 그런 해리가 자신에게 어리광 또는 집착을 하며 매달리는 것도 스네이프는 싫지 않았다. 스네이프 역시 해리에 만만치 않게 이기적인 남자였다.

“착하지.”

어린애 다루는 선생처럼 말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가슴에 이마를 묻었다. 네, 저 착해요. 울적한 목소리가 옷에 묻혀 웅웅거렸다. 스네이프는 앞치마 뒤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상반신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나자 해리도 몸을 일으켰다.

“세베루스?”
“왜? 지금 별론가? 저녁 먼저 먹고 할까, 포터?”

정말이지, 착하다는 소릴 들어야 할 건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제안한 위로의 방식에 금세 도취되었다. 셔츠만 벗겨내자 맨살에 앞치마만 두른 모습이 야릇했다. 해리는 앞치마를 가슴 옆으로 밀어 유두에 입을 대었다. 쪽, 소리 나게 빨아들이자 스네이프가 입가에 손가락을 놓고 흐응거렸다. 스네이프의 살이 아주 조금은 올랐어서, 전보다 가슴이 납작한 느낌은 적었다. 해리가 왼손으로 유두를 꼬집고, 오른손은 허리께를 쓸어내리니 스네이프가 다리를 벌렸다. 해리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어제도 먼저 몸에 거품을 묻히고 안겨와서 제 몸을 씻겨주더니. 왜 이렇게 음란하게 구냐고 스네이프를 희롱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위로해주려고 하는 스네이프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짓궂은 말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스네이프는 오러 정복을 입고 절 내려다 보는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정복의 황금단추와 장식이 멋스러웠다. 어리게만 보이는 해리가 그 옷을 입고 있으면 훨씬 어른스럽게 보였다. 자신은 금욕적인 정복을 여전히 단정하게 입은 채, 손으로는 저를 벗기고 있는 해리에게 스네이프는 음심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해리가 바지와 속옷까지 벗기면서 앞치마는 그대로 두는 게 우스웠다. 이런 보편적인 판타지를 제게 덧씌워보는 해리에 절로 비소가 났다.

“엄청 야해요, 세베루스….”

이렇게 삐쩍 마르기만한 몸이 대체 어디가. 스네이프는 해리의 이상성욕에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몸에도 욕정할 수 있는 해리에게 고마운 쪽은 오히려 저였다. 그럼 계속 빠져 있어, 나한테. 스네이프는 속으로 생각하며 해리의 위로 올라 탔다. 소파에서의 기승위는 기시감을 일으켰다. 첫 섹스에서의 기억이 났다. 다이애건 앨리에 폴리주스를 마시고 다녀온 뒤, 스피너즈 엔드의 집 소파에서 나체로 변한 자신과 해리는 결국 몸을 섞었다. 그 때의 흥분은, 떠올리는 순간 지금도 스네이프의 허리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좋아? 해리.”
“응, 세베루스. 이런 위로라면 매일 밖에 나가 잔뜩 깨지고 돌아오고 싶을 정도예요.”
“흥, 그건 내가 싫은데. 해리 포터라는 트로피를 쥔 보람이 없잖아.”
“트로피? 하하핫. 트로피 부인 말고 트로피 남편인건가요?”
“그래, 구원자 해리 포터. 너 정도면 제법 쓸 만한 트로피지.”

노골적인 손길이 해리의 바지 앞섶을 쓸어 내렸다. 해리는 움찔하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웠다.

“저는 당신이 트로피 말고 다른 걸 손에 쥐어 줬으면 좋겠는데요? 부인.”
“흠, 한 번 봐보긴 하지.”

스네이프가 비뚜름히 웃으며 해리의 바지 벨트를 풀었다. 이어 버클이 풀리고 지퍼가 내려가, 앞섶이 벌어졌다. 이미 두툼하게 부어 오른 속옷이 보였다. 속옷을 내리자 바로 성기가 퉁겨 나왔다. 스네이프가 앞치마를 들추고 제 것을 해리의 성기와 겹쳐 손에 쥐었다.

“으음…….”

스네이프의 긴 손가락이 두 성기를 맞잡고 흔들었다. 해리는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기실, 그 피로의 원인이 스네이프와 제가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해리 포터를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스네이프 외의 사람들과 싸우는 건 해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결국 저를 용서해줄 거란 오만일 수도 있었다.

스네이프의 어깨 아래로 끈 하나가 흘러내렸다. 원래도 헐렁하게 묶여있는 앞치마라 벌어진 틈이 넓었다. 왼쪽 유두가 천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게 야릇했다. 해리가 손을 뻗어 붉은 유륜을 더듬고 엄지손톱으로 유두를 긁듯이 튕겼다. 으응! 제 위에 올라 앉아있는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조여 드는 게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숨이 달떴다. 해리는 흥분이 짙어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스네이프가 성기를 잡아 쓸어 올리는 손길이 빨라졌다. 해리 역시 엉덩이 뒤쪽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감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윽, 한 쪽 눈을 찡그리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등을 덮고 손을 움직였다. 살짝 지쳐있던 스네이프가 강하게 리드하는 해리의 손에 절정을 맡기는 게 느껴졌다. 가쁜 숨을 쉬는 스네이프의 얼굴 앞으로 긴 흑발이 쏟아졌다. 진짜 예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들으면 질색할 생각을 하면서 스퍼트를 올렸다. 불시에 두 성기에서 각자의 정액이 튀어 나왔다.

“하아… 흣, 하아….”

스네이프의 앞치마와 허벅지, 해리의 정복 위로 정액이 산발적으로 튀어 있었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바로 쓰러뜨리고 다시 위를 점령했다. 방금 사정한 흥분으로 스네이프의 눈동자가 탁했다. 야해, 세베루스. 속삭이면서 스네이프의 다리를 벌렸다. 넝마처럼 구겨진 앞치마가 스네이프의 매끈한 배 위로 올라가 있었다.

어젯밤, 욕조에서 섹스를 해서인지 오늘의 삽입은 비교적 쉬웠다. 해리는 정액이 발린 성기를 구멍에 금방 뿌리까지 박았다. 스네이프가 앞치마를 양 손으로 꽉 쥐었다. 구겨진 앞치마 뒤편의 하얀 나체와 까만 머리카락, 벌어진 입술에서 가쁜 숨이 새어 나오는 스네이프의 모습에 머릿속이 달떴다. 소파 위로 흐트러진 검은 물결이, 해리의 허릿짓에 찰랑거렸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보며 박는 게 좋았다. 부끄러워 하면서도 한편 대담하기도 한 그가 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손을 끌어 와 깍지를 꼈다. 살짝, 손가락에 입을 맞추니 스네이프의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해리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꾸만 스네이프에게 취하게 되었다. 뛰어난 포션 마스터의 달콤한 독이 해리의 머릿속을 몽롱하게 했다.

“사랑해, 해리.”

오늘 스네이프는 정말로 사려 깊었다. 해리는 차갑게 저를 보던 론의 파란 눈을 머리에서 지웠다. 그것이 스네이프의 목적이었으므로, 기꺼이 해리는 그렇게 했다.


해리는 여전히 앞치마만 걸치고 있는 나신의 스네이프를 뒤에서 끌어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가 준비해놨던 저녁이 이미 다 식었다. 그렇지만 뱃 속을 가득 채운 충만감에 해리는 미적거렸다. 둘의 앞에 놓인 텔레비전에 그들의 모습이 비쳤다. 스네이프는 정복을 모두 갖춰 입은 해리에게 헐벗은 채 안겨 있는 제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부인이라기 보다는 창부 같았다. 그 편이 저에겐 더 어울리는 타이틀 같기도 했다. 그리고 새삼 제가 해리 포터의 부인이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웃겼다.

“배 안 고픈가?”
“세베루스, 밥 먹을까요? 배고프죠. 내가 퇴근하자 마자 붙잡고 안 놔줘서….”

스네이프는 속으로 네 껄 물고 안 놓은 건 내 쪽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얼굴만은 변함 없이 무표정했다.

“낮에 장 봐와서 냉장고 채워놨다. 이제 머글들이 만든 인스턴트는 먹고 싶어도 못 먹을 줄 알아.”
“세베루스, 제가 늘 그런 것만 먹고 산 건 아니었어요. 뭐, 어쨌든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나도 먹어야 하니까 당연한 거지.”
“네, 네. 우리 세브 많이 먹어요.”

은근슬쩍 애칭으로 부르는 꼴이 해리가 정말 벌써 남편 노릇을 하려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세브는 릴리가 저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창의력도 없는 놈.

“여보, 그만 제 몸 주무르시고 식탁으로 가죠?”

그리고 능수능란한 어른은 여전히 스네이프 쪽이었다. 해리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저를 비웃는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여보? 여보라고요? 바보 같이 앵무새처럼 여보 타령을 해대는 해리의 옆에서, 스네이프는 앞치마를 벗고 옷을 꿰어 입었다. 세브, 한 번만 더요. 한 번만 여보라고 더─ 스네이프는 그 간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식탁 앞에 앉았다.

식은 음식들에 보온마법이 걸리고 각자의 앞에 놓였다. 해리는 여전히 눈을 빛내면서 스네이프를 보고 있었다. 하여튼 욕심도 많은 놈이다. 해리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가장 사적이고 가벼운 틈을 채운 유일한 사람으로 만족할 줄을 몰랐다.

“얼른 식도 올리고 결혼했다고 남들한테 다 밝히고 싶어요. 진짜 세베루스가 내 사람이라고!”
“그 날 아무 생각도 없다가 청혼한 것치곤 꽤나 본격적인데, 포터? 미네르바가 식이니 어쩌니 한 말에 또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가 솔깃해서 그러는 거겠지만.”
“와, 정곡. 아파요, 세브.”
“포터 네가 아무 생각 없는 건 내가 잘 아니까.”

샐러드에 올린 귤을 씹자 입에서 상큼한 맛이 터졌다. 샐러드를 뒤적이는 스네이프는 감흥없는 눈이었다. 스네이프는 결혼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들 앞에서 굳이 예복을 갖춰 입고 구경거리가 되는 일은 사양이었다. 해리가 하고 싶다하면 동참해줄 마음 정도야 있지만, 식 자체에 흥미는 전혀 없었다. 뭐, 남들 앞에 해리 포터를 온전히 제 것으로 인정 받는 일은 꽤 마음에 들었다. 잊고 있었던 슬리데린의 기질일 터였다. 제가 이 마법세계 영웅을 차지하는 일은 트로피를 얻은 양 기쁜 것이었다.

“결혼식 같은 건 관심 없어. 하지만 포터 네가 하고 싶다면.”
“왜요? 부를 사람 없어서 그래요?”
“그것 뿐 아니라… 뭐, 지금 내가 친구 없다고 비웃는 건가?”
“아뇨. 저도 제 결혼식에 부르고 싶은 사람은 딱 세베루스 스네이프 한 사람 뿐이라서요.”

입 안에 채소 잎파리가 굴러갔다. 스네이프는 씹는 것도 멈춘 채로 눈 앞의 해리를 봤다. 다정하게 웃는 얼굴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아는 해리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부르고 싶을 것인데. 저를 배려해준답시고 저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는 것이 바보 같았다.

“그것보다, 헤르미온느가 청혼 얘기에 반지부터 확인하는 게 신경 쓰였어요. 새삼 제가 한 프러포즈가 진짜 허접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충분히 감동 받았었다. 오히려 스네이프는 해리를 괜스레 신경쓰이게 만드는 주변의 지인들이 짜증스러웠다.

“반지 같은 걸 사왔다간 리덕토를 쓸 테니 그런 줄 알아, 포터.”
“아…… 어, 네….”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난.”
“저 말고는요?”
“……그래.”

스네이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다시 포크를 깨작거렸다. 해리는 흐흣,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보았다. 귀여워.

“그래도 우리가 부부란 걸 티내는 증표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세베루스 생각은?”
“네가 원한다면 나도 상관 없다.”
“흐음.”

해리는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창의력이 떨어지는 머리라 반지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애초에 그런 머리이니 지니에게 루비 반지나 준비했던 것이니까. 해리 생각에도 다툼의 원인이었던 반지를 준비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일 듯 했다. 스네이프가 리덕토를 쓸 거란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리덕토로 부서졌던 루비 반지의 붉은 잔상이 해리의 머릿속에 번졌다.

반지가 아니면… 목걸이? 귀걸이? 팔찌? 어떤 걸 떠올려도 반지보다 착용에 거추장스런 장식물이 떠올랐다. 그냥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소유이다, 이런 글자를 확 몸에 새겨 버릴까.

아. 해리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스네이프의 왼팔을 끌어당겼다. 식사 중에 느닷없이 팔이 잡힌 스네이프가 미간을 구겼다. 다행히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팔이라 식사는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끼가 왜 이래 하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해리는 그에 아랑곳 않고, 스네이프의 당겨진 왼팔의 셔츠 소매를 걷었다. 그 왼팔에는 볼드모트가 죽은 후 아주 희미하게 남은 데스 이터의 표식이 있었다. 티가 안 날 정도로 연해서 줄곧 크게 신경쓰이지 않던 것이었다. 스네이프가 눈썹을 치켜 떴다.

“뭐하는 거냐, 포터?”
“볼드모트…… 이 개자식.”
“정말 뜬금 없군, 포터. 갑자기 뭐지?”
“나보다 먼저 당신 몸에 흔적을 남기다니. 짜증나서요.”
“하, 이제서야?”
“우리 사랑의 증표. 몸에 새기는 건 어때요?”
“어둠의 마왕의 호크룩스였던 놈이라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거냐? 취향이 둘이서 아주 똑같군.”

신경질적으로 해리에게서 팔을 거둬간 스네이프가 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하지만 몸에 해리와의 관계에 대한 증명을 새긴다는 건. 솔직히 나쁘진 않았다. 입에서 뱀이 튀어나가는 해골 문신 따위를 팔에 새길 정도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였으니. 볼드모트랑 취향이 비슷한 건 오히려 스네이프 쪽일지도 몰랐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말에도 꽤 진지하게 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으며 식사를 마무리 했다. 입은 먹어라, 스네이프의 말에 해리의 포크가 다시 움직였다.


아침이었다. 스네이프는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최근 현실세계에서 시달리고 있는 해리는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소리나지 않게 움직이는 건 스네이프의 특기였다. 조용히 창을 여니 부엉이가 예언자일보를 떨어뜨렸다. 부엉이가 내민 주머니에 시클을 넣어주고 스네이프는 바닥에서 신문을 주웠다.

1면부터 아주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했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 한심한 유명인은 대체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스네이프는 발로 그 유명인의 엉덩이를 걷어차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유혹은 상당했지만 보류했다. 스네이프는 의자에 앉아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해리 포터-지니 위즐리 결별! 영웅의 새로운 사랑 세베루스 스네이프> 라. 이번 부수는 기가 막히게 잘 팔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1면을 차지한 사진에는 마주 보고 대치하는 론과 해리가 있었다. 그 옆에 동그랗게 얼굴만 잘라 넣은 지니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도 있었다. 다이애건 앨리 한복판에서 마법사들 다 들리게 이런 대화를 나눴다니, 한심한 포터. 물론 아주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해리 포터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음… 세브? 잘 잤어요?”

잠에서 깬 해리가 눈을 비비며 안경을 찾아 썼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앞으로 신문을 던졌다.

“축하한다, 포터. 큰 힘 안 들이고 네 소원대로 우리 사이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어리둥절하게 신문을 펴던 해리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리는 스네이프 교수의 관점에서도, 객관적으로도 변함 없는 그리핀도르의 사고뭉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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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맥고나걸은 오랜만에 흥미진진 해졌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비교적 평화로운 한 해를 보냈더니, 그녀 자신도 몰랐던 무료함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머글들이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 소비에 대한 취미를 즐긴다는 건, 기초적인 머글 지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맥고나걸도 정보로써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취미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는 지금이었다. 해리와 스네이프를 보고 있자니 그랬다. 머글들이 이래서 드라마를 보는 구나, 맥고나걸은 비로소 납득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와서 옆에 앉은 뒤로 전에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한껏 유해진 눈매가 놀라울 정도로 안정돼 보였다. 해리 역시 입꼬리를 연신 씰룩이며 옆에 앉은 스네이프를 흘낏거렸다. 맥고나걸은 해리에게 스네이프 쪽으로 틀어 앉으라고 친절히 말해줄까, 잠시 고민했다. 그랬다가 두 제자들의 못 볼 꼴까지 보게 될까 저어돼 생각으로만 그치기는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정말 그러셨나요? 사감 일은 관두고 집에서 출퇴근을 하겠다 하셨어요?”

들뜬 목소리로 해리가 질문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깨물더니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놀랍게도 지금 스네이프는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부끄러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려 했단다. 그 때 해리 네가 들어왔고.”
“저한텐 그런 말 없었잖아요!”

해리가 신난 얼굴로 스네이프의 팔뚝을 주먹으로 아주 살짝 때렸다. 그에 맥고나걸은 다소 놀란 눈으로 둘을 쳐다 보았다. 교수와 제자 모습이 익숙한 둘의 관계에 저런 친근한 터치는 아주 낯설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해리가 주먹으로 저를 친 것엔 개의치 않아 보였다. 대신 얼굴이 더 빨갛게 익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우선, 전통적으로 각 기숙사의 사감은 그 기숙사 출신의 교수가 맡게 되어 있단다, 세베루스. 하지만 현재 교수 중에 슬리데린 출신은 너와 슬러그혼 교수 뿐인데, 마법약 교수로 자네가 들어온다면 슬러그혼 교수는 직함을 내려 놓으실 거야.”
“그럼 슬러그혼 교수님이 마법약과 사감 일을 계속 담당하시게 하고, 제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계속 이어 하겠습니다. 재작년에 가르쳤으니까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지금 해너 링튼 교수가 맡고 있는데, 만약 세베루스 자네가 가르치겠다면 그 과목의 오랜 악습답게 1년째에 또 교수가 바뀌게 되겠구나. 하지만 우선 슬러그혼 교수님과도 얘기해 봐야 겠다. 아마도 슬러그혼은 자네가 돌아온다면 교수직을 아예 관두려 할 것 같아서….”

맥고나걸은 슬리데린 사감직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걸 느꼈다. 개인 사정이란 것이 있으니 학교의 오랜 전통을 깨고 타기숙사 출신의 슬리데린 사감을 고려해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스네이프가 계속 사감직을 맡도록 좀 더 설득해볼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유를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맥고나걸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집에서 출퇴근 해야 하는 이유가 어떤거지? 세베루스.”
“아……. 크흠, 미네르바…….”

어쩐지 맥고나걸은 뜸을 들이는 스네이프가 아닌, 해리 쪽으로 시선이 갔다. 입을 달싹거리고 있는 해리를 건드리는 게 더 빠른 답을 들을 수 있는 방법 같았다. 해리? 할 말 있니? 그래서 맥고나걸은 해리에게 말 할 기회를 주었고, 스네이프는 해리를 쳐다보더니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스네이프의 이런 감정적인 모습들은 정말로 신선했다.

해리가 의자를 좀 더 당겨 앉았다. 스네이프와 해리의 어깨가 전보다 더 가까이 붙었다. 맥고나걸은 새삼 이 둘이 이렇게 잘 어울렸던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차라리 깨달음에 가까웠다. 까만 흑발을 가진 한 쌍의 마법사들은 둘 다 키가 컸고, 해리 쪽이 훨씬 다부졌지만 양쪽 다 골격이 좋았다. 나란히 까만 눈동자와 녹색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는 것이 맥고나걸의 마음에 흐뭇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분명하고 맑은 목소리는 또렷했다.

“저희가 1년 간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스네이프 교수님은 저를 더 이상 증오의 감정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주셨어요. 이젠 더 이상 제 얼굴을 보고 제 아빠가 떠오르지도 않고, 제 눈을 보고 제 엄마가 떠오르지도 않게 되었다고요. 저 또한 지난 과거에 스네이프 교수님을 미워하던 감정은 기억을 봤을 때부터 풀려 갔었지만, 실제로 함께 지내면서 그가 제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맥고나걸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다문 채, 해리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 가엾은 오해투성이 제자의 가슴이 지금, 뜨겁게 울컥이고 있음을 알았다.

“저는… 사실 스네이프 교수님을 이제 세베루스라고 불러요. 세베루스는 아직까지 저를 포터라고 부르는 게 불만이긴 한데, 하핫, 가끔씩 해리라고도 불러 줘요. 아주 약은 것 같지만 쑥스러워하는 거니까 제가 이해해야죠.”
“잠깐, 포터─”
“쉿, 세베루스. 내 말 끊지 마요.”

해리가 무릎 위에 놓인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둘 다 무의식적인 스킨쉽으로 맥고나걸이 보고 있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했다. 두 제자의 진일보에 은사는 즐거운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세베루스, 해리. 행복해 보이는 구나. 1년간 둘이서 잘 지내왔던 게 눈에 보인다.”
“맥고나걸 교수님….”
“그래, 알겠다. 둘이 계속 같이 살기로 한 거구나. 그래서 세베루스가 집에서 출퇴근을 하겠다고…. 이제 이해가 되는 군. 그렇다면 물론 학교에 계속 머무르는 사감직은 어렵겠지.”
“…그, 미네르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네이프가 어렵게 입을 떼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해리의 입술은 아직까지 달싹거렸다. 분명 더 전해야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고, 스네이프는 지금 말려봤자 언젠가 터질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당장의 쑥스러움을 묻어두고, 현재 이 세상에 남은 가장 어른다운 어른에게 말을 전해야 함은 맞았다. 차마 스네이프에게 그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해리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그리핀도르였다. 그리고 듣고 있는 대상자인 미네르바 맥고나걸 역시, 마찬가지의 그리핀도르였다.

“저희는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그래, 보고 있으면 절로 알게 되는 구나.”

뒤에 있던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즐겁게 웃었다. 해리와 스네이프 모두 부끄러워져 잠시 고개를 숙였다. 스네이프는 앞으로 이 고비를 몇 번을 더 넘겨야 될는지를 생각하자 암담했다. 특히나 제가 가르친 어린 놈의 제자들 앞에서 이 사실을 밝혀야 하는 순간에는 차라리 내기니가 그리워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리가 살려준 자신의 두번째 생이 너무나 행복한 순간들로 채워져 갔기에 쉽게 내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나. 그 소식은 정말 놀라운 걸. 세베루스, 정말이니?”
“…….”

짓궂은 질문이었다. 지금 스네이프가 얼마나 창피한 지 뻔히 알면서도 나이 든 은사는 능글맞게 물었다. 결혼, 신혼, 집. 모든 이유가 납득되었다. 이유는 거두절미 다 잘라먹고 냅다 사감직을 그만 두겠다 말한 스네이프도 물론, 이해되었다. 아마 해리가 아니었다면 대답을 듣는 것은 평생 무리였을 성 싶었다. 물론, 그 전에 식을 치른다면 자연히 알게 될 답이었다.

“식의 날짜는 정했니? 참, 이 소식을 들으면 놀랄 사람이 아주 많겠구나…. 기대 되네, 즐겁겠어. 너희 둘이 너무 놀라운 한 쌍이잖니, 해리, 세베루스.”
“저, 교수님. 그게… 식의 날짜는 아직 너무 이른 질문인데요. 저는 고작 일주일 전에 세베루스에게 청혼 했고, 숨어 살다 이제 막 현실로 돌아와서 저희 관계를 밝혀야 할 사람들도 아직 너무 많아요.”
“지금까지 날 포함해서 누가 알고 있지? 설마 내가 처음 밝힌 상대는 아니길 바란다. 그건 너무 부담스럽거든.”
“다행스럽게도 몇 명은 이미 알고 있어요. 오러 선배인 휴스턴 로우왈드, 네빌, 지니─ 이렇게요.”

지니, 의 이름에서 맥고나걸도 스네이프도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남의 남자를 앗아간 약탈자처럼 느껴지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시간이라는 수단으로 해리 포터를 그녀에게서 훔쳐 낸 도둑. 물론 해리가 먼저 스네이프의 주머니 속으로 뛰어 들어온 에메랄드 보석이지만, 자신은 해리보다 스무 살이 많은 어른이었고 그를 가르친 선생이었고, 심지어 해리의 엄마와 친구였고 그녀가 첫사랑이었던 자신임을 알기에 한없이 지금의 관계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해리를 돌려준다는 선택지는 이제 버리기로 결심했다. 우습게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이제 해리 포터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한 때 해리의 엄마인 릴리 에반스가 생의 이유이고 전부였던 것처럼. 스네이프는 그 때와 똑같이 자기 자신을 해리 포터에게 모두 내던지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제게서 해리를 지운다면 스네이프에게 남는 것은 공허한 껍데기 뿐일 것이다. 물론 해리에게 솔직히 이 사실을 밝히기엔, 스네이프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남자였다.

“아직 론, 헤르미온느 너의 가장 친한 친구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구나, 해리.”

곰곰히 생각하던 현명한 은사는 그들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해리의 또 다른 가족, 해리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

“네, 교수님. 그렇지만 헤르미온느는 분명 이해해 줄 거예요. 헤르미온느는 지니랑도 친하지만… 뭐, 어쨌든. 론은 걱정이에요. 솔직히 6개월 이상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거든요. 트라이위저드 때보다 절 무시하는 게 더 길어질 지 궁금할 정도로─ 그래도 고작 이 정도로 저희 우정이 박살나진 않을 거예요.”

해리는 확신하는 말투였다. 확실히, 해리와 론의 우정이 평생 깨질 거라는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주 아주 적은 확률로 그 사실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스네이프에게 자신이 해리의 짐인 것 같은 느낌을 안겨 주었다. 스네이프에겐 잃을 것이 해리밖에 없었지만, 해리는 가진 게 많아서 잃을 것도 많았다.

자신이 해리 하나만을 욕심내도 될까? 나는─ 해리 포터가 없으면 안돼. 스네이프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거의 다물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지금 그레인저는 학교에 있습니까?”
“물론. 그 아이가 학교에 남아 정규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려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지.”
“이 자리에 그레인저를 불러 주십시오, 미네르바.”
“세베루스!”

해리는 놀라서 자신의 내성적인 연인을 돌아 보았다. 기뻐하는 해리의 얼굴에 스네이프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해리를 기쁘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제 마음이 편하려면 어떤 소리든 듣고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이것은 이기적인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방식이었다. 해리가 저 때문에 누구를 잃든, 자신은 해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해리가 저 때문에 뭔가를 잃는 것도 싫었다. 계속 그런 불편한 걱정 속에 있는 게 싫었기에,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해리, 네가 헤르미온느를 데려오겠니? 그녀는 지금 도서관에 있을 거다.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

해리는 N.E.W.T 시험 준비중인 예민한 헤르미온느에게 사실을 전하기엔 지금 시기가 상당히 좋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합격 통보는 졸업 후에야 받게 될 것이므로, 그 때까지 기다릴 사안도 아니었다. 해리는 일어서서 정복의 매무새를 정리하고 교장실의 문을 나섰다. 스네이프 혼자 맥고나걸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최대한 빠르게 다녀올 생각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예상했듯이 교장실엔 침묵이 내려 앉았다. 맥고나걸과 덤블도어 초상화를 비롯, 다른 교장의 초상화들도 이 새롭고 신선한 스캔들에 몹시 구미가 당겨 보였으나 당사자인 스네이프는 꿋꿋하게 입을 다물 셈이었다. 그러나 덤블도어가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던 게 더 놀랄 일이었다.

“세베루스, 우리 곁에 돌아온 걸 환영하기도 전에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네. 결국엔 자네도 마음이 쌍방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하는구만.”
“닥치십시오 덤블도어.”

맥고나걸과 덤블도어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의 제자를 상냥한 눈으로 바라 보았다.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마 자네가 먼저 좋아한 건 아니겠지?”
“그 정도의 양심은 놀랍게도 이중 첩자에게도 남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블랙 개새끼한테 던져줬다 보면 되겠죠.”

스네이프는 빈정거리며 덤블도어를 노려 보았다. 초상화 속에 저 노인이 어찌나 살아 생전 그 모습과 똑같았는지 모른다. 맥고나걸은 한 쪽 눈썹을 으쓱하고는 원래 보고있던 서류를 넘겼다.

“잘 어울리더군.”

스네이프는 이 말에는 어떤 대꾸도 못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자신과 해리 포터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저와 해리의 외모의 차이는…….

해리는 누가 봐도 준수했다. 정신 산만해지는 더벅머리의 흑발도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해리의 모습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반듯한 이마에 드러나는 멋스러운 번개무늬 흉터, 짙은 눈썹 아래 보석 같은 녹색 눈과 동그란 검은테 안경. 자유분방하면서도 단정해 보이는 모순 된 해리의 외견은 그에게 너무도 잘 어울렸다. 퀴디치로 단련 된 체격은 늘씬한 몸에 탄탄한 근육이 잡혔고, 저보다는 작았지만 충분히 키가 컸다. 하지만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어머니 에일린을 쏙 빼닮아 삐쩍 마르고, 창백하고 예민한 인상에다 매부리코였다. 외견상 자랑할 만한 건 부족한 영양상태에서도 쑥쑥 자란 큰 키 말곤 없을 터였다. 그런 저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면, 솔직히 해리에게 실례였다.

“그렇지 않소, 미네르바?”
“그럼요, 알버스. 잘 어울리는 예비부부던데요.”

스네이프는 지체 없이 일어나 교장실 문을 성큼성큼 나섰다. 저 둘 앞에서 그레인저까지 마주하려 했다니 내가 미쳤지. 맥고나걸과 덤블도어 초상화의 웃음소리가 등 뒤로 들려 와 스네이프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가고일 석상 앞으로 나오자 복도는 조용했다. 익숙한 풍경에 스네이프는 조금씩 차분해졌다. 몇 분여를 서성였을까, 복도 끝에서 저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해리가 보였다. 옆에는 해리의 오랜 친구인 헤르미온느가 눈을 반짝이며 따라 오고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기억에 오류라도 있는 것인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으니 새롭게 태어난 인간을 기대하는 것인지 헤르미온느가 저를 저런 눈으로 보는 것은 소름이 돋았다. 문득,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에서 내기니에 물렸다 눈을 뜬 자신을 보던 해리의 눈빛이 떠올랐다. 전에 없이 다정한 그 눈빛은 낯설고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레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인 스네이프가 해리를 보았다. 왜 나와 계세요? 교수님들이 괴롭혔나요? 웃으며 물어 보는 해리의 맑은 얼굴에 그저 스네이프는 끄덕였다.

“살아 계셨을 줄 알았어요! 얼굴도 전보다 훨씬 좋아 보이세요, 교수님.”
“형식적 겉치레는 그만 두지.”
“아뇨, 정말인데! 예전보다 인상이 좋아지셨어요. 맞지, 해리?”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동의를 구하듯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스네이프는 주변의 빈 교실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깜깜했던 교실은 적당히 어둑할 정도로 등이 켜졌다.

“기사는 읽었어요 교수님. 해리가 언제 말을 해주러 올 지 궁금했는데 퇴근하자 마자 바로 온 차림새로 도서관엘 들어 와서 깜짝 놀랐어요. 해리 포터의 등장에 도서관은 비명 소리에, 책도 날라가고, 완전 폭탄맞은 것처럼 돼서 거기 남아 있었어도 공부는 안됐을거예요.”

스네이프는 이게 헤르미온느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큰 착각이었다. 스네이프는 전교에서 가장 뛰어난 머리를 가진 마녀가 저와의 잠깐의 만남으로 공부가 방해된 것 정도야 상관치 않았다.

“포터, 무슨 얘길 해서 데려왔지?”
“음, 스네이프 교수님이 나랑 같이 호그와트에 와 있고, 할 얘기가 있다는 정도요?”
“네, 정말 궁금해요. 스네이프 교수님이 돌아오자 마자 저를 굳이 불러내서 하실 말씀이 뭔지. N.E.W.T를 위한 마법약 보충수업이라면 기꺼이 받고 싶고요.”

전쟁을 겪었던 소녀는 한층 더 뻔뻔해진 게 틀림없었다. 스네이프는 플라스크를 내밀며 해리가 제 기억을 담게 도와주었던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네가 포터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불렀다.”
“제가 해리의 친구라서요? 해리와 관련 된 얘기인가요? 전 교수님이 저에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해리에게 들어서 교수님과 관련 된 것인 줄─ 잠깐, 둘 다 관련 있는 건가? 맞아요?”

해리는 머쓱하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스네이프는 점점 인상이 나빠지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에게 사실을 직접 밝히려니 갈수록 심각하게 창피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장소가 장소였다. 여긴 교실이었다. 그들의 스승이었던 제가 그렇게 괴롭히며 못살게 굴었던 제자를 현재 사랑하고 있고, 또 여전히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또 다른 제자이자 연인의 친구인 그녀에게 사실을 밝혀야 하는 순간이라니. 어쩌자고 이렇게 남들에게 밝히기도 낯부끄러운 관계를 해리와 시작해 버렸나 ─물론 그게 해리가 들이대서였긴 하지만─ 싶기도 했다.

헤르미온느는 도서관에 해리가 오러복장으로 나타났을 때부터 뭔가 큰 일이 일어날 느낌이었다. 게다가 1년 만에 나타난 스네이프 교수님이 자신을 찾는다는 해리의 말까지. 그래서 당장 달려 왔더니 둘 다 이렇게 급하게 부른 것치곤 미적거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도 스네이프 교수를 안 세월이 6년이었다. 그런데 스네이프가 이렇게 제 앞에서 입도 못 떼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팔짱을 끼고서 스네이프와 해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분위기는…… 하지만 해리는 지금 지니와…….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건 알고 있었지만, 헤르미온느는 지금 해리와 지니의 관계를 걱정스레 떠올리고 있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설마 저 하나 만나 보겠다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시죠?”
“당연히 아니다, 그레인저. 넌 여기 온 진짜 용무에 덤일 뿐이지.”
“네, 역시 그러시군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무슨 용무인데요?”
“교수 복직.”
“아하. 잘 풀리시길 바랄게요, 교수님. 해리? 너는? 스네이프 교수님이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보호자로 따라온 건 아니겠지?”

미취학 아동─? 스네이프는 눈썹을 꿈틀였고 입 근육이 경직됐다. 그러나 이 건방진 제자의 언동을 가만 지켜보기로 했다. 해리는 어느새 안절부절 못하며 제 친구와 제 연인의 분위기를 살폈다.

“음… 헤르미온느, 말투를 좀…. 그러니까, 나는, 지니와 볼 일이 있었어. 저녁식사 전에 만나고 왔고.”
“지니와 무슨 볼 일? 어제도 교수님의 추도식에서 둘이 만났잖아. 아, 맞아 넌 과거로 갔다가 어제 돌아온 거지. 어제 봤더니 헷갈리네.”
“어… 내가 1년동안 스네이프 교수님과 같이 살다보니… 감정에 변화가 좀 생겨서……. 지, 지니와 오늘 헤어졌어.”
“뭐라고?!”

헤르미온느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위로 들썩였다. 해리가 죄를 지은 건 지니 뿐인데도 헤르미온느에게 더 혼날 것 같은 느낌에 식은땀이 다 났다. 지니도 이렇게 나오진 않았는데……. 도와달라는 해리의 간절한 눈빛이 스네이프를 향했다. 스네이프는 뚱하게 쳐다 보더니 그레인저, 하고 입을 열었다. 헤르미온느의 눈이 빠르게 다음 목표를 향했다.

“교수님! 설마 제가 생각하는 게 맞나요?! 제발 그건 사실이 아니니 그리핀도르 마이너스 50점이라고 외쳐 주셨음 좋겠는데요!”
“네가 생각하는 게 사실이라면 너한테 그게 무슨 문젠데, 그레인저?”
“맙소사… 정말이에요?! 해리, 너 스네이프 교수님과 진짜야…?!!”

자신의 오랜 친구가 난데없이 학창시절에 제일 싫어했던 교수와 설마 싶은 그런 관계가 돼서 돌아왔는데 놀라지 않을 친구가 세상 어디 있을까! 게다가 스네이프는…… 스네이프는 해리 엄마의 친구셨는데! 해리도 물론 그걸 잘 알고, 마법세계에는 이미 다 알려진 이야기였다. 아름답고 헌신적인 사랑이야기라고 동화로 후세에 각색 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첫사랑의 아들과……!

“세상에. 믿기지 않아!”

헤르미온느는 입을 틀어 막았다. 이거 진짜 환상적으로 영화 같은 설정 아니야?

“너 정말 미쳤다, 해리! 둘이 사귄 지 얼마나 됐어요? 먼저 좋아한 것도 고백도 당연히 해리 너였겠지? 스네이프 교수님은 언제 해리에 대한 감정을 자각했나요? 맙소사 멀린, 정말! 교수님이 해리를 받아주시다니, 옛날 모습이 전 아직 생생해서 상상도 안돼요.”

해리는 이제 헤르미온느가 아닌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가 말이 많다는 사실과 스네이프의 분노 발화점이 낮다는 사실은 별로 좋은 사실 관계가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두 손을 모으고 열렬한 시선을 보내는 헤르미온느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녀는 이제 발표차 손을 들었으나 제게 무시 당해 눈물을 글썽이던 저학년의 그리핀도르가 아니었다. 못된 심보를 부려봐야 통할 상대도 더이상 아니고, 스네이프 스스로도 별로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진짜로 죽었다 다시 태어나 새 사람이 된 것도 아니었는데. 해리나 헤르미온느가 자신을 전에 없는 눈빛으로 보던 것처럼, 자신도 시선이 달라졌을 수는 있겠지.

“둘 다 이런 장난은 절대로 안 칠 거라는 걸 알지만, 여전히 현실 감각이 없네요! 그래서 더 진짜겠지만, 물론, 해리나 교수님이 서로 사랑한다는 장난을 제게 굳이 왜 치겠어요?”
“맞아, 헤르미온느. 예전같으면 우리가 더 발끈할 농담이잖아. 그렇죠, 세베루스?”
“헙, 해리 너 이제 교수님의 이름을 막 부르는 구나! 정말이었어!”
“그럼 정말이지! 그리고 난 세베루스랑 결혼 할 거─”

스네이프가 구둣발로 해리의 발등을 콱 내리찍었다. 그러나 이미 헤르미온느는 결혼이란 단어를 들은 뒤였다. 이 놀라운 소식에 헤르미온느는 완전히 넋이 나가고 말았다. 해리는 발등을 붙잡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스네이프는 혼자 태연을 가장하며 팔짱을 바투 꼈다.

“결혼?! 언제?!”
“세베루스! 진짜 아프잖아요! 허윽, 아, 아직 안 정해졌어, 헤르미온느. 일주일 전에 내가 청혼을 했거든.”
“청혼? 와! 해리 너 정말…! ……근데 둘 다 반지도 없는데?”

청혼이라는 해리의 폭탄선언에 눈을 빛내던 열아홉 살 소녀 헤르미온느는, 문득 두 사람의 손가락이 모두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아, 민망함에 입을 달싹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일상적으로 대화하다가 튀어나온 프러포즈는 허접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반지가 없어서 못 믿겠다는 건가?”

스네이프가 피식 비웃었다. 그런 것에 돈을 쓰느니 귀한 마법약 재료를 박스째 구입하는 게 이득일 터였다. 소장하고 싶은 서책을 더 주문해도 좋을 테고. 하지만 머글태생의 소녀는 머글이 혼인할 때 필요한 반지부터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해리 역시 머글들과 자라서인지 지니를 생각하며 루비 반지를 준비했었던 걸 스네이프는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걸 자신이 어떻게 잊겠는가? 그것 때문에 해리와 싸운 걸 생각하면, 오히려 반지 따위는 스네이프가 절대로 갖기 싫은 물건이었다.

“증명하면 되는 거겠지?”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잠깐 생각했다가, 금방 끝나는 걸 하기로 결정했다. 스네이프에게 중요한 건 헤르미온느가 저희들의 관계를 인정해주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해리와의 관계를 해리의 친구에게 확실히 낙인 찍어버리고 빨리 해치우는 것이 중요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정복 옷깃을 잡아 제게 끌어 당겼다. 헤르미온느는 어머, 짧은 감탄사와 함께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마치 전과목 O(특출함)가 적힌 성적표를 보는 듯했다. 해리는 설마 하는 눈으로 자신의 내성적인 연인을 ─곧 수정이 필요한 타이틀일 것 같은─ 바라보았다.

마른 책 냄새가 났다. 해리는 입술이 닿자마자 스네이프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꺾었다. 옷깃을 잡은 스네이프의 손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부드럽고 강하게 서로의 혀를 빨자 질척한 소리가 났다. 물기 섞인 소리가 조용한 교실을 울렸다. 헤르미온느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나 호기심을 못 이긴 그리핀도르의 눈은 여전히 곁눈질로 그들을 훔쳐 보고 있었다. 해리와 스네이프 교수의 연애 행각은 생각도 못했던 것인데, 그들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다정했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해리의 눈이 스네이프의 눈과 시선을 맞추며 휘어져 웃었다. 스네이프를 바라보는 해리의 눈빛엔 사랑과 따듯함이 가득했다. 역시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자신이 아는 가장 용기 있는 슬리데린임에 틀림 없다.


벽난로에서 막 나온 스네이프가 로브를 털었다. 떨어진 재는 지팡이를 휘둘러 치우니 바닥이 여전히 반짝거렸다. 먼저 도착한 해리는 벌써 옷걸이에 로브를 걸고 정복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풀어진 정복 재킷 안으로 보이는 흰 셔츠로 해리의 근육질 몸태가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로브를 옷걸이에 걸며 해리를 바라보았다.

“크리처는 안 만나 봤네요?”
“사감 일이 어떻게 될 지 결정 되고 만나는 게 낫겠지.”
“근데 기숙사 사감이 꼭 있어야 돼요? 똑똑한 슬리데린들이 알아서 잘 하겠죠.”

스네이프는 이렇게 뻔뻔한 그리핀도르는 처음 본다는 눈으로 해리를 봤다. 해리 포터가 슬리데린을 포장하는 너스레를 떨다니. 그렇게도 저랑 떨어지기가 싫은 건지. 스네이프는 솔직하게, 기분이 좋았다. 해리가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을 티 내주는 게 좋았다. 그리고 지금 이 곳은 해리와 둘 뿐인 해리의 집이었다. 스네이프 또한 솔직해져도 되는 공간이었다.

사실, 스네이프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앞에서 키스했을 때부터 살짝 흥분 된 상태였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상태에서 해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스킨쉽은 생전 해본 적 없던 경험이었다. 해리는 친구의 앞에서도 생각보다 더 몰입해서 진득한 키스를 했다. 헤르미온느가 뭐라하기 전에 스네이프가 밀어내서 그만 둔거였지, 아니었음 교실에서 끝까지 가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부끄러움도 없는 놈 같으니.

해리가 욕실의 전등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옆에 다가 선 스네이프에 고개를 들었다.

“아, 세베루스. 먼저 씻고 싶어요?”

셔츠 단추를 배꼽 밑까지 푼 해리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스네이프의 표정이 미묘해 보였다. 해리가 갸웃거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왜 저러지?

“포터, 넌… 친구 앞에서 그래놓고 아무렇지도 않나?”
“네? 아. 론이랑 헤르미온느도 제 앞에서 많이 하는데. 걔네 거의 키스중독이에요.”

스네이프는 불시에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정보를 얻게 되자, 인상을 팍 찡그렸다. 해리가 하하핫 웃었다. 그게 신경쓰였던 거예요? 시작은 세베루스가 먼저 해놓고? 해리가 싱글거리면서 셔츠를 마저 벗었다. 스네이프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를 힐끗 보다, 탄탄한 해리의 벗은 상체에 시선이 고정됐다. 아까보다 훨씬 흥분되었다. 스네이프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섹스가 해리의 들이댐으로 시작됐는데, 오늘은 스네이프가 먼저 달아올라 버렸다.

해리의 등 뒤에 선 스네이프가 목덜미에 이마를 묻었다. 답지 않게 먼저 부벼오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웃으며 세베루스? 작게 속삭였다. 뒤쪽으로 손을 뻗은 해리는 스네이프의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짐작한 대로 스네이프의 것이 살짝 서 있었다. 아, 정말 귀여워, 해리는 생각하며 고개를 틀어서 입술을 찾았다. 금방 입술과 혀를 맞춰 오는 스네이프가 너무 귀여웠다.

“같이 씻을까요?”
“…응.”

스네이프의 얼굴이 살짝 붉었다. 해리는 그의 입술 주변에 묻은 침을 다시 핥으며 짧은 키스를 한 번 더 했다. 스네이프가 옷을 벗는 동안, 해리는 얼른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욕실로 들어섰다.

스피너즈 엔드에는 없지만 해리의 집에는 큰 욕조가 있었다. 해리는 물을 틀고 욕실 전체에 보온마법을 약하게 걸었다. 마법이 걸린 욕조엔 금방 물이 가득 찼다. 옷을 다 벗은 스네이프가 들어와 물에 손을 살짝 담갔다. 온도가 괜찮냐는 해리의 물음에 스네이프는 끄덕이고 물 속에 앉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하며 등 뒤에 앉았다. 따스한 물에 피로가 용해되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하루종일 바빴다. 현실로 돌아오자 마자 할 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서는 위즌가모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타임터너와 펜시브 기억 조사가 있었다. 남들 앞에서 스네이프와 저만의 시간을 공유하려니 부끄러운 장면은 없었어도 괜히 신경쓰였다. 퇴근하자 마자 지니를 만나는 일도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었다. 그나마 지니가 이별을 흔쾌히 받아줘서 다행이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배를 끌어안았다. 마른 몸이 부드럽게 안겨왔다. 해리가 제 목덜미를 쪽쪽거리자 스네이프가 피식 웃었다. 세베루스, 사랑해요. 귓가에 해리의 맑은 목소리가 닿였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가슴팍에 더 붙어 앉아서 제 것을 손으로 감쌌다. 해리가 계속해서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스네이프가 손을 움직이자 해리도 손을 겹쳐 잡고 움직임을 도왔다.

“으응… 하아… 해리….”
“세베루스… 흥분했구나? 해리라고 불러주고.”

해리의 다정한 목소리가 스네이프를 취하게 했다. 어떻게 이 정도로 따듯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지 스네이프는 궁금할 정도였다. 피곤할 텐데도 해리는 정성을 다해 스네이프의 사정을 도왔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술을 찾았고 정신없이 혀가 섞였다. 으응, 흐응…! 입술을 맞붙인 채로 스네이프가 신음을 흘려댔다. 해리는 팔에 더 속도를 올리고 귀두 부근을 엄지로 쓸어주었다. 일찍부터 달아올라 있던 몸이라 금방 사정감이 들었다. 힉, 순간 스네이프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물에 정액이 섞여 들었고, 스네이프는 힘이 빠져 해리의 품으로 늘어졌다. 기분 좋다, 스네이프는 멍하니 생각하면서 해리가 지팡이로 정액을 없애는 걸 바라 보았다.

“세베루스는 혹시 남한테 보여지는 것에 흥분하는 타입?”
“…매를 버는 군, 포터.”

흐흣, 웃은 해리가 스네이프를 다시 뒤에서 꽉 안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때릴 기운이 안 나 스네이프는 가만히 안겨 있었다.

“절대 안 보여줄 거예요. 예쁜 모습은 나만 다 볼 건데?”
“그 놈의, 예쁘다는 말 좀.”
“어쩔건데요? 당신 애인이 당신 좀 예뻐한다는데. 세베루스 근데 진짜 너무 예뻐요…… 너무너무…….”

해리의 목소리에 어느새 잠이 어려 있었다. 스네이프는 대충 거품을 일으켜 제 몸에 묻혔다. 그리고 뒤를 돌아, 해리와 마주 보고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서비스가 훌륭한데요, 세베루스? 해리는 퍽 여유롭게 웃었지만, 어느새 잠이 달아난 것 같은 눈빛이었다. 스네이프는 거품 묻은 몸을 해리에게 안겨 비비면서 녹색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네가 피곤해 보여서 대신 씻겨주는 것 뿐이다, 포터.”
“아, 맞아요, 맞아요. 저 진~ 짜 피곤해요, 세베루스. 근데 당신이 엄청 야해서 잠이 확 깨네.”
“그럼 혼자 씻게 놔둘까?”

흥, 비웃으며 스네이프가 엉덩이를 떼려 했다. 해리는 황급히 스네이프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그가 벗어나는 걸 막았다. 어딜. 해리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미끈한 거품이 밑으로 들어가 스네이프의 엉덩이가 미끌거렸다.

“이렇게 야한 와이프를 그냥 두고 자는 건 남편 된 도리가 아니겠죠? 세베루스.”
“말만 많은 건 별론데.”
“하하. 좋아요, 말이 안 나오게 해줄게요.”

오늘 밤처럼 당신이 먼저 도발하는 것도 드문 일이니까. 해리의 손가락이 좁은 구멍을 찾아 들었고, 스네이프는 해리의 입술을 다시 찾아 들었다. 이내, 욕조 밖으로 물이 한 차례 크게 넘쳐 타일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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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타임터너로 인해 1년만에 돌아온 집이라지만, 사실상 하루도 비워지지 않았던 해리의 집은 당연히 그대로였다. 그런 집에 스네이프와 그의 짐들이 들어왔을 뿐이었다. 해리는 부서로 복귀했고, 스네이프는 혼자서 이사를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거실에 짐을 두고서 해리가 혼자 살던 집을 찬찬히 둘러 보았다.

머글 집 사이에 오래 전 문 닫은 상점처럼 보이지만, 해리의 집은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높은 아파트였다. 층마다 1가구 씩 들어서 있었고 해리의 집은 7층이었다. 스피너즈 엔드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고 환하고 쾌적한 환경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다가 하루 아침에 스피너즈 엔드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했을 해리가 스네이프는 아주 약간이지만 애석해졌다.

거실, 부엌, 화장실 2개, 방 4개, 바베큐 시설이 놓이고 정원을 꾸밀 수 있는 큰 베란다. 혼자 사는 집치곤 욕심이 너무 큰 거 아닌가, 했지만 곧 스네이프는 해리가 지니와 결혼하려 했던 걸 상기했다.

스네이프는 소파에 앉았다. 비가 소강 상태에 접어 들었지만 날이 흐렸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살 미래를 생각하며 이 집을 구했을 해리를 생각하니 기분이 영 가라앉았다. 게다가 아직 그 둘은 헤어지자는 말조차 안 한 관계이니까. 해리와 지니가 현재진행형인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스피너즈 엔드에 있었던 것이 까마득했다.

스네이프는 제 복직에 대해 화를 내던 해리를 떠올렸다. 어리고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함께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던 해리에게 갑작스런 복직 소식은 화낼 만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넓고 큰 집에 혼자 앉아 있으니 드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애가 셋은 있어야 시끄럽게 공간을 채울 것 같은 집이었다. 스네이프가 학교에 머무는 동안 이 집에서 혼자 출퇴근하는 해리를 떠올려 봤더니, 좀 안쓰러운 듯도 했다.

기숙사 사감 일은 그만 두고 집에서 출퇴근하겠다고 맥고나걸에게 얘기 할까? 수업준비를 하고 학생들의 레포트들을 채점하고 개인 연구를 하는 것엔 학교에서 지내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기에, 스네이프는 자신이 이런 비효율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전부 해리 포터 때문이었다. 결혼이라, 함께 산다라. 혼자 살았던 때와 패턴을 똑같이 할 순 없을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그럼 어떻게 바꿔야할 지는 스네이프도 알지 못했다.


“세베루스, 세베루스. 일어나 봐요.”

스네이프는 자신의 가슴을 안고 흔드는 손길을 어렴풋이 느꼈다. 부드럽고 따듯한 체온. 익숙한 느낌에 스네이프는 저도 모르게 그 품으로 파고 들었다. 스네이프의 얼굴 근처에서 웃음을 삼키는 숨소리가 들렸다.

“포터….”

삐져서 마법부로 돌아갈 땐 언제고, 저를 안고 소파에 길게 누워있는 해리가 보였다. 스네이프는 천천히 눈을 깜박여서 초점을 맞췄다. 해리의 녹색 눈이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팔을 들어 해리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해리의 쇄골 부근에 얼굴을 파고 들자, 따끈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해리의 손가락이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내렸다.

“왜 여기서 잠들어 있어요. 추운데.”

그러고 보니 벽난로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많이 내린 터라 거실의 공기가 싸늘했을 터였다.

“앉아서 밖을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나 보군.”
“그랬어요? 난 퇴근하니까 이 집에 당신이 있는 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어요.”
“아, 짐도 못 풀었는데….”
“천천히 해요.”

해리가 스네이프의 귓바퀴에 바짝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흠칫, 스네이프의 허리가 떨렸다. 머리칼을 쓸어내리던 해리의 손이 어느덧 등 선을 따라 내려 와 엉덩이를 지분거렸다. 그동안 약간 살이 붙은 동그란 엉덩이에 해리의 손바닥이 밀착되었다. 스네이프는 잠깐 동안 그 손길을 내버려두다 몸을 일으켰다. 아쉬워하는 해리의 이마에 딱콩을 한 번 날렸다.

“배 안 고프냐?”
“으응, 그래서 세베루스 먹으려고─ 악!”

스네이프는 아예 해리의 이마에 손을 얹어 머리통째로 밀어 버렸다. 골을 붙잡은 해리가 부루퉁해서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하여튼 간에 팔팔한 놈.

냉장고를 열었더니 인스턴트 식품과 스포츠 음료가 몇 개 쌓여 있었다. 이런 걸 먹고 오러 일을 해도 체력이 버틴단 말인가? 스네이프가 쯧쯧 혀를 찼다. 차라리 집요정을 데려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블랙 가의 유산은 전부 해리에게 상속 되었으므로, 크리처도 해리의 소유였다. 어쨌든 당장 먹을 것이 부족했다. 스네이프는 레토르트 미트볼과 간편식 스프를 꺼내 보온마법을 걸었다. 샐러드 한 통이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도 꺼냈다. 마법을 걸어 다시 싱싱해진 샐러드가 파랗게 반짝였다.

“나가서 빵이라도 사올까요?”

뒤에서 스네이프가 하는 양을 머쓱히 지켜 보던 해리가 말했다.

“크리처는 왜 안 데려왔지?”
“네? 아, 혼자 사는데 집요정을 부린다는 게 어색해서요. 그냥 호그와트에서 일하게 놔뒀어요.”
“집요정은 주인인 널 위해 일 하는 걸 제일 기쁘게 여길 거다. 특히나 포터, 네가 이런 시답잖은 음식 쪼가리나 먹고 사는 걸 알면─”

탐탁치 않게 그릇에 미트볼과 스프를 부으면서 스네이프가 말했다. 퉁명스러운 타박에는 해리에 대한 걱정이 스며 있었다. 뒤통수를 긁적대던 해리가 수저를 가져 와 식탁에다 놓았다. 어쩐지 자신의 집인데도 오랜만이어선지 너무 넓고 낯설었다. 식탁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길었었나? 혼자 살 때도 못 느꼈던 집의 크기가 새삼 와닿았다. 스피너즈 엔드의 앙증맞은 크기에 적응이 된 탓이었다.

둘이서 먹기엔 확실히 적은 양이었다. 다 먹은 그릇을 박박 긁던 해리가 스네이프의 눈치를 봤다. 제대로 못해먹고 살았다고 어른에게 혼나는 기분이었다.

“내일 크리처도 데려와야 겠군.”
“세베루스, 여태 우리 둘이서도 충분히 잘 살았잖아요?”
“곧 내가 매일 끼니를 챙겨줄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네가 혼자 있으면서 이딴 음식이나 먹고 사는 건 봐줄 수가 없어.”
“……진짜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군요.”

해리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푹 숙인 고개가 꼭 산책 못 나간단 소릴 들은 강아지 같았다. 의자 뒤로 축 늘어진 꼬리가 보이는 듯도 했다. 이 놈을 혼자 두고 학교로 돌아가도 될까. 해리가 이런 걸 노리고 저를 불쌍해 보이게 작전을 펼친다면, 어느 순간 자신도 넘어가버릴까봐 스네이프는 한숨이 나왔다.

“해리.”

오랜만에 이름으로 불렀더니 해리의 머리 위로 귀가 쫑긋 서는 듯 했다. 솔직히 귀여웠지만, 스네이프는 그 모습이 얄밉기도 했다.

“이리 와.”

스네이프가 의자를 뒤로 물리고 앉아 양 팔을 벌렸다. 쪼르르 다가 온 해리가 스네이프를 덥석 끌어 안았다.

“세베루스, 미안해요. 내 욕심만 부려서. 당신도 나만 보면서 살 순 없는 건데. 오러 일은 체육 센터 때보다 집도 더 오래 비울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해리의 목소리엔 망설임과 서운함이 스며 있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어린 신랑의 품에 안겨서 등을 살짝 토닥여 주었다. 고작 이 정도로 마음이 풀어지는데, 저를 이렇게나 사랑해주는데, 자신이 잘못한 걸까. 분명 제가 잘못한 건 없는데, 해리는 자신으로 하여금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당장 복직하는 건 아니니까, 하는 미적지근한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아직은 5월 2일이었고, 학기의 시작인 9월 1일은 멀게 느껴졌다.


해리는 양피지에 쓴 편지를 들고 새장으로 다가섰다. 해그리드가 작년 생일에 선물한 올빼미 헤르메스가 다리를 비죽이 내밀었다. 눈처럼 새하얀 올빼미였던 헤드위그와 달리, 헤르메스는 2살 된 까만색의 올빼미였다. 해그리드가 첫 올빼미를 선물해주었고, 해리가 해그리드의 오토바이를 탔을 때 그의 옆에서 헤드위그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해그리드는 꼭 다시 올빼미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며, 금지된 숲에서 발견한 헤르메스를 해리에게 주었다. 그 때 횃대에 앉아 있던 퍽스가 편지를 묶는 헤르메스의 옆으로 다가와 친근하게 머리를 붙였다. 그새 둘은 친한 친구가 된 모양이었다.

“너네들 되게 보기 좋다? 응? 둘이 사귀기로 한 건 아니지? 야, 퍽스 너는 몇 살인데 두 살짜리 애를.”
“꾸끅.”

퍽스가 장난스레 해리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헤르메스가 울음을 흘리며 날개를 퍼드덕 거렸다.

“하핫. 알았어 알았어. 친하게 지내. 헤르메스, 이걸 지니에게 전달해 줘. 퍽스 너도 헤르메스랑 같이 다녀오고 싶으면 또 호그와트에 갔다 올래? ”

새벽에 스네이프의 묘비 위에서 울었던 퍽스가 이번에도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헤르메스와 퍽스가 날개를 펼치고 창 밖으로 날아갔다. 해리의 웃던 얼굴에서 점차로 미소가 사라졌다. 지니,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텐데. 내일 아침, 예언자 일보에 실릴 타임터너와 그걸 사용해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되찾아 온 해리 포터의 소식과 함께, 지니는 이 편지를 받게 될 것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호그와트 대연회장이 시끄러웠다. 신문을 구독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1면을 가득 차지한 기사를 보고 저마다 떠들어댔고, 구독하지 않는 학생들도 기사를 읽어 보자고 난리였다. 교수 석에서도 놀라움과 흥분으로 한껏 술렁대는 것이 보였다.

<돌아온 영웅? 세베루스 스네이프 ~해리 포터가 찾아낸 두 가지~>. 굵은 볼드체 제목 밑으로 크게 인쇄 된 사진에는 오러 부서 앞 복도에서 스네이프와 그의 옆에 서서 지팡이를 치켜 든 해리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흥분한 지니의 친구들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 와 어깨를 흔들었다. 지니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신문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어제 새벽의 추도회 때만 해도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해 마음이 무거워 보였던 해리였다. 그런데 당장 다음 날인 오늘 이런 반가운 기사라니!

그러나 기사를 읽어 내려갈수록 지니의 낯은 어두워졌다. 타임터너? 과거로 돌아가서 1년 간 스네이프 교수님과 함께 살았어야 했다고? 모두들 이 놀라운 소식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해리와 그 스네이프가? 그 앙숙들이? 주변의 여학생 무리에게서 어떻게 해리가 안 죽고 살아 있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들렸다. 혈압이 올라 죽거나 스네이프랑 싸우다 저주 주문을 맞거나 독약 탄 음식을 먹고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깔깔깔 웃었다.

지니는 그것보다, 자신도 모르던 사이에 1년간 숨어 지냈어야 했을 해리에 대한 안쓰러움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때, 해리의 올빼미인 헤르메스가 날아와 익숙하게 지니의 앞에 다리를 내밀었다. 까만 올빼미가 해리의 것인 걸 아는 학생 몇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니를 흘낏거렸다. 지니는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자친구의 편지에 기분이 들떠서가 아니었다. 뭔가,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니, 나야 해리.
너에게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어.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할 말이야.
좋은 얘긴 아니라고… 미리 알려둘게.
너무 기대하지 말아줬음 좋겠어, 미안해.
저녁식사 전에 호숫가의 고목나무 밑에서 기다릴게.」

해리의 편지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1년간 숨어 지내느라 고생했었단 말도 없었다. 물론 그게 직접 얼굴을 보고 해야 할 말일 수도 있었지만, 해리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늘 해리가 편지 말미에 적었던 사랑해, 좋은 하루 보내 같은 말 또한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지니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어디에서 기인한 불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니의 눈이 흘낏 기사 속 스네이프의 얼굴에 머물렀다.


“해리!”
“…아, 론.”

어제 오프였던 론이 신문을 들고 해리에게 다가 왔다. 해리는 론의 붉게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보자마자 급격히 속이 울렁거렸다. 물론, 지금 론을 마주하는 것도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해리는 호박주스를 컵에 따르고 론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시 제 몫의 주스를 따랐다.

“기사 진짜야? 우리 가족 완전 다 뒤집어졌어! 네가 스네이프랑 같이 살았다니! 내가 출근 안 한 하룻밤새 과거로 돌아 갔었다니, 친구! 고생 많았네.”

론이 엄지를 척 들고 윙크 했다. 론의 질문은 해리가 출근 길에만 300번은 더 들었을 질문이었다. 해리는 자신이 너무나 유명하단 사실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마법부에서 근무하다 보면 더 그랬다.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이 해리 포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무리 열심히 피해도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해그리드의 동생이 등장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숨이 턱 막히게도, 제 친구이자 지니의 오빠인 론이었다. 해리는 단짝친구와 같은 직장인 것이 이제 와서 후회될 줄은 정말 몰랐다. 차가운 호박 주스를 목으로 넘겨도 입 안이 깔깔했다.

“스네이프랑 살았다니, 상상이 안돼. 완전 지옥 아니었냐? 어떻게 계속 살았대. 난 진짜 해리 네가 존경스럽더라니까?”

론이 가벼운 목소리로 떠들었다. 해리는 얼굴에 미소조차 띄우지 못했다. 완벽한 표정 관리 실패였다.

“…론, 네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았어. 오히려…… 아니, 좋았어. 서로 응어리 졌던 걸 풀고 지내서.”
“…그래?”

론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해리를 쳐다 봤다. 해리의 시선이 묘하게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바빠서. 나중에 제대로 얘기 하자.”

해리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론은 호박주스를 쥔 채로 해리 쪽을 보며 서 있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해리가 저를 속이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숨기는 게 있다거나. 론 역시 오러로 일 하면서 직감이 늘었다. 그리고 그런 건 늘 오차 없이 들어맞는 일이었다.

책상마다 오늘자 예언자 일보가 놓여 있었다. 1면을 장식한 스네이프와 해리의 투샷이 론의 파란 눈에 가득 찼다.


지니는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해리가 보낸 편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벌써 종이 끝이 너덜대며 구겨진 편지지가 꼭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 미안하단 문장이 해리의 목소리로 들리며 자꾸만 가슴을 콕콕 찔렀다. 곧 다달이 하는 월경이 다가와서 괜스레 감정이 너울을 타는 것일 거다. 지니는 그렇게 생각하고자 했다. 그러나 해리를 만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시간과 멀어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해리는 1년이나 내가 모르는 시간 동안에 있었어.'

……스네이프 교수님과.
그런데 그 사실이 왜 그렇게 신경쓰이는 지 지니는 알 수 없었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얼마나 싫어했는 지, 아니, 호그와트 학생들 중 슬리데린을 제외하면 누가 그를 좋아했을 지 몰랐다.

물론, 지니는 스네이프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의 해리의 모습도 알았다. 직접 교장실에 스네이프의 초상화를 추진하고 무죄 재판에 전쟁 후 가장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해리였다. 신문에 기사가 1면으로 보도 되었고, 해리는 어쩌면 그 기사가 나오면 스네이프가 다시 나타나줄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첫번째 추도식이 있을 때까지 스네이프는 마법세계에 어떤 흔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당시에 스네이프는 다름아닌, 과거로 돌아간 해리와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체 해리는 무슨 생각이었는 지……. 지니는 머리가 아팠다.

“지니? 수업 끝났어. 저녁 먹으러 안 가?”
“아, 나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먼저들 먹고 있어!”

멍하게 있다 보니 수업이 끝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황급히 교과서와 지팡이를 챙긴 지니가 성의 정문으로 향했다. 다들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가 호숫가는 인적 없이 조용했다. 고목나무 근처에는 음영이 하나 앉아 있었다. 해리. 지니는 입 안으로 그녀의 남자친구의 이름을 웅얼거렸다. 어쩐지 목소리가 쉽게 터져나오지 않았다.

성 쪽을 돌아보던 음영은, 붉은 머리카락의 여학생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섰다. 평소 같으면 달려 와서 안아줬을 텐데, 지니는 여전히 멍한 정신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해리.”

이제야 입이 열렸다. 해리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자신의 앞에 선 지니를 바라 보았다. 지니가 멋쩍게 두 팔을 벌렸다. 해리가 아, 하더니 포옹을 해주었다. 지니는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아 해리에게 안긴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지니. 마른 것 같다.”

포옹을 풀었더니 해리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어제도 봤잖아.”
“아, 아… 미안. 예언자일보 읽었지? 1년 만에 현실로 돌아왔더니….”

해리가 머쓱하게 헛기침을 했다. 지니는 어제 본 해리의 모습이 아직 선명했는데, 해리의 모습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저를 낯설어하는 태도가 어쩔 수없이 서운했다.

해리는 오늘 붉은색의 오러 정복 차림이었다. 퇴근 후에 바로 왔구나. 문득, 지니는 처음 해리가 그 옷을 입었을 때의 기억이 났다. 사진으로 그 날의 추억을 남겼었다. 지니는 그가 너무 멋있고 자랑스러워서 환하게 웃으며 그 품에 안겼다. 언제까지나 지니에게 해리는 멋있고, 자랑스러운 존재인 건 변함 없을 것이었다.

“해리, 걱정했어. 1년이나 우리 모르게 숨어 살며 지냈어야 했다니. ……스네이프 교수님과.”
“…지니, 잠깐 앉자.”

해리가 지니의 손을 잡고 나무로 이끌었다. 둘은 그 아래에 앉아, 조용히 호수에 어둠이 깔리는 걸 지켜 보았다. 별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해리, 할 얘기란 게 뭐야?”

침묵이 길어지자, 지니가 먼저 웃으면서 입을 뗐다. 해리만 믿고 있다간 이대로 날 밤을 새야할 지도 몰랐다. 해리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지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맑고 단단한 초록색 눈은, 지니가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았다.

“헤어지자, 지니.”
“역시. 그거였구나.”

지니는 하루종일 자신의 가슴을 꽉 죄어오던 불안에서 오히려 해방된 기분이었다. 한계까지 찌부러졌던 심장이 탁, 하고 놓아 풀린 듯했다. 해리는 예상했다는 반응인 지니에 얼떨떨해보였다. 머릿속으로 제 편지 내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중인 게 뻔히 보였다. 지니는 크큭 웃으며 해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맑은 밤 하늘, 고요한 호수, 해리와 함께 다녔던 학교. 그것들을 지니는 눈에 새겼다.

“어떻게……?”
“전부 해리 너답지 않았잖아. 편지에 사랑한다는 말도 없고, 날 보자마자 안아주지도 않고.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선 나를 보는데 어떻게 몰라.”
“아, 지니, 정말 미안─”
“미안하단 말은 됐어! 그래서, 이유가 뭐야? 과거로 갔을 때 어떤 심경변화가 있었어?”

지니가 무릎을 모아 안고 해리를 돌아보았다. 해리의 안경 밑 뺨이 조금 붉어져 보였다.

“들으면 다들 놀랄 거야…. 나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서. 세베루스, 아니 스네이프 교수님을 사랑하게 됐어. 그래서 지니 너랑 계속 사귈 수가 없어. ……많이 놀랐지?”

지니는 고개를 저었다. 해리가 지금까지 누구와 계속 있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리 상대가 의외의 사람이었어도 말이다. 해리는 말없이 지니의 눈치를 살피다가, 호수에 시선을 두었다. 대왕오징어는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지 표면은 고요하기만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도 해리 너를 좋아하셔?”

지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해리는 저도 모르게 풉, 하고 터지듯 웃음을 흘렸다. 지니가 해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봄의 밤에 청명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응. 서로 좋아해. 지니, 미안, 네 앞에서 이렇게 웃으면서 할 얘기는 아닌데…….”
“왜 안돼?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를 나만 모르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나저나 해리 대단한데? 어떻게 스네이프 교수님을 꼬셨지? 역시 내가 만났던 남자는 다르네. 앞으로도 내가 고를 남자는 멋지겠지, 그렇지, 해리?”
“응…… 맞아, 지니. 넌 분명히 좋은 사람을 또 만날 거야. 아, 맞아 저녁! 미안해, 배고플 텐데 너무 붙잡고 있었다. 아직은 남아있을 거야. 같이 들어가자, 지니.”

해리가 손을 뻗어 지니의 손을 잡았다. 전애인 손을 이렇게 덥석덥석 잡아도 돼? 스네이프 교수님은 질투 없으셔? 지니가 재잘재잘 물으며 해리와 걸음을 맞춰 성으로 돌아갔다. 아마 해리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부터는 눈물을 쏟겠지만, 해리의 앞에서 지니는 어쩐지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아침에 신문 1면까지 도배했던 해리가 오러 정복을 입고 대연회장에 들어서자, 늦은 시간까지 남아 저녁을 먹고 있던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니는 이렇게 멋진 남자가 방금 제게 이별을 고했다는 게 못내 애석하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쿨하게 받아줬다고 생각했는데.

그리핀도르 식탁에 해리가 착석하자 다들 난리가 났다. 학년과 기숙사를 가리지 않고 학생들이 해리의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지니가 해리는 지금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좀 이따 와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7학년 졸업반의 지니 위즐리의 호통에 다들 쭈그러져서 물러 났다. 해리는 웃으면서 그릇에 남아있는 음식들을 덜었다. 본식이 있을 때 들어와서 다행이었다.

“해리!”
“네빌!”

스프라우트 교수의 밑에서 조교를 하고 있는 네빌이었다. 다음 새 학기에는 정식 교수가 될 네빌이 교수석에서 내려와 해리의 옆에 앉았다. 반갑게 등을 친 해리가 나머지 손으론 바쁘게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무슨 일로 온 거야? 오러 용무?”
“아니. 지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해리, 그렇게만 얘기하면 네빌이 오해해. 우리 사이가 아직도 이상 없는 줄 알잖아.”
“잠깐, 너희 둘 무슨 얘기야?”

네빌이 어리둥절하게 지니와 해리를 번갈아 보았다. 지니가 팔꿈치로 해리의 어깨를 툭 쳤다. 해리는 방금 감자를 삼키려고 한 것을 후회하며 가슴팍을 퍽퍽 때렸다. 네빌이 센스 있게 물 잔을 건넸다.

“우, 우리 헤어졌어.”
“뭐?! 언, 언제?”
“방금. 해리에게 차이고 온 길이야. 네빌, 그래서 말인데 나 옆구리 시리니까 해리 말고 내 옆으로 와서 앉아줄래?”

지니의 너스레에 이게 진짠지 아닌지 어리둥절해하며 네빌이 해리를 쳐다 보았다. 해리는 머쓱해서 호박주스까지 찾아 마셨다. 이별이란 게 이런 거라면 앞으로 두 번 다신 하지 말아야지. 물론 스네이프랑은 이별 할 일이 없을 테니 다행이었다.

“왜? 해리, 왜?”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할 얘긴 아닌 것 같아…. 네빌.”

해리가 진땀빼는 걸 보았는지 착한 심성의 네빌은 궁금했지만 더 물어보진 않았다. 대신에 오늘 신문을 봤다고, 스네이프 교수님을 되찾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해리 만큼, 아니 해리보다도 더 많이 스네이프에게 괴롭힘 당했던 네빌이었지만, 그의 말에서 진심이 보여서 해리도 고마웠다. 진정한 용기의 그리핀도르는 역시 저보다는 네빌 롱바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네이프에게는 무조건 네빌에게 사과하라고 시킬 생각이었다.

“네빌, 지니, 사실 지금 스네이프 교수님도 호그와트에 있어.”
“뭐? 진짜?!!”

1년간 감감무소식이던 남자의 ─게다가 다름아닌 어제 추도식을 가졌던─ 호그와트 깜짝 방문 소식에 지니와 네빌 모두 놀랐다. 특히 지니는 어떤 얼굴을 해야할 지 몰라 난감했다. 반갑긴 한데, 이젠 그가 자신을 방금 찬 전 남자친구의 현 애인이라는 게. 어쨌든 당장은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지니는 대충 샌드위치를 챙겨서 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리는 지니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미안해하며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진짜 죄인이 된 기분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해리는 정말 이걸 끝으로 두 번 다시는 이별을 겪지 않을 결심을 세웠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왜 오신 거야? 지금 어디에 계셔?”
“교장실에서 맥고나걸 교수님을 기다린다고 했어. 음, 맥고나걸 교수님이 교수석에 안 보이시는 걸 보니 지금 만나고 있겠다. 그─ 호그와트 복직 문제로.”
“헉! 정말?! 호그와트로 다시 돌아오시는 구나!”

네빌이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다. 해리는 막 입 안 가득 생크림 케이크를 밀어 넣었는데, 기묘하게도 씁쓸한 맛이 혀 끝에 돌았다. 물론 집요정들이 정성껏 구운 케이크가 상했을 린 없었다.

“해리? 왜 죽상이야?”
“어, 그게…… 솔직히 난 스네이프 교수님이 복직하시겠다는 게 맘에 안 들어.”
“왜?? 그 분은 늘 호그와트에 계셨잖아. 교장까지 지내셨는 걸.”
“네빌, 있잖아…. 그게 말야, 사실….”

해리가 네빌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붙이고 속삭였다. 주변에 앉아있는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었다. 네빌은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양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앉았다. 그 요란한 반응은 멋쩍었지만, 다행히 소리치지 않아준 네빌이 해리는 고마웠다.


“─세베루스!”
“맥고나걸 교수님.”

스네이프는 목례를 했고, 맥고나걸은 이미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인 채 다가가 스네이프를 안아 주었다. 비록 저보다 훨씬 큰 키의 스네이프에게 안긴 것처럼 보이긴 했어도, 스네이프는 나이 든 자신의 은사가 저를 품어주었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저에게 공격 주문을 날리던 그녀였는데. 그녀는 이미 그 날을 후회하고 스네이프를 다시 안을 수 있는 오늘이 온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해리 외의 사람에게 이렇게 긴 포옹을 당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해리때문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마음이 울렁여서 그런 지 선뜻 그녀를 먼저 밀어낼 순 없었다. 그녀에게 안겨있는 뒤로 초상화 속 덤블도어가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의 자신의 초상화까지. 딱딱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교장실에 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는 기분이란. 자신은 이런 곳에 걸릴 만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민망함에 스네이프는 시선을 틀었다. 맥고나걸이 긴 포옹을 풀고, 스네이프를 따스하게 올려다 보았다.

“잘왔다. 잘 돌아왔어, 세베루스. 너에게 하고 싶던 말도 많고 용서를 구할 일도 많단다.”
“미네르바, 용서라니요. 저에게 당신이 용서를 구하실 일은 전혀 없습니다. 용서는 제가 구해야할 일입니다. 당신 입으로 그런 내용은 일절 듣지 않겠습니다.”
“고집은. 여전하구나, 세베루스. 물론 정말 자네인 게 느껴져서 기쁘기도 하지만.”

맥고나걸이 의자를 불러냈고 스네이프는 그녀와 마주 앉았다. 덤블도어가 너무 잘 보이는 위치였다. 스네이프는 일부러 시선을 벽 쪽으로 틀었다. 껄껄 웃는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못 들은 척했다.

“그래, 복직 상담이라고 했지. 우선, 지금 마법약과 슬리데린 사감 일은 슬러그혼 교수님께서 여전히 맡아주시고 계신다. 하지만 원래도 교편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고 계셨던 만큼, 자네가 돌아온다면 당장 직함을 넘기고 떠나주실 거다.”

맥고나걸의 깊게 패인 주름만큼, 좀 더 너그러워진 미소가 스네이프에게 머물렀다. 스네이프는 말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기숙사 사감 일은 하지 않는 쪽으로 하고 싶습니다.”
“아니, 왜? 슬리데린 기숙사에 자네 만큼 애정이 있는 사람도 없는데. 혹시 업무가 과중했나?”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싶어서… 사감 일이 있으면 학교에 계속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집에서? 물론 그러는 교수도 있긴 하지만─ 갑작스럽게 패턴을 바꾸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구나,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고 답을 어물거렸다. 맥고나걸은 신선한 느낌을 받으며 그가 내놓을 이유를 기다렸다. 그 순간, 교장실 밖의 계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네이프와 맥고나걸 모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리.”

해리가 스네이프에게 윙크하며 들어 왔다. 지니에게 제대로 말하고 왔다는 해리 나름의 신호였다. 스네이프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가 웃었다. 그 둘의 모습을 맥고나걸이 보고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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