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음…. 머리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
“응. 예쁘다. 저는요? 앞머리 남길까요? 다 넘긴 게 낫나?”
“다 넘긴 게 나아.”
“아, 흉터 너무 잘 보이니까 민망한데….”
“……잘생겼군.”
드문 외모 칭찬에 머리를 매만지던 해리가 멈춰섰다. 거울로 가만히 해리를 들여다보던 스네이프가 저도 모르게 뱉은 감상이었다. 해리가 눈을 빛내며 저 잘생겼어요? 물었다. 스네이프는 끙,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해리의 눈에는 까만 예복을 입고 (이것도 조끼에 꽤 단추가 많았다.) 한 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스네이프가 살짝 뺨을 붉히고 서있는 모습이 비쳤다. 키가 크고 마른 스네이프가 몸에 맞게 예복을 갖춘 모습은, 기품이 있었고 우아했다. 해리는 푸른 빛이 비치는 검은 예복을 입고, 젤을 발라 이마가 보이게 앞머리를 넘겼다. 헤르미온느가 선물했던 암사슴과 수사슴 브로치까지 서로의 가슴에 달아주니 복장은 완성이었다.
“누구 부인인지 오늘 되게 멋있네요, 세브.”
“시끄럽다, 포터.”
짧은 옷깃에 스네이프 목덜미의 번개 낙인이 잘 보였다. 해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빈 교실에 간이로 설치한 커튼을 걷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루나가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몽롱하게 한 손을 흔들었다. 멋지다, 너 꼭 트윙글위글 같아, 해리. 해리는 그게 뭔지 몰라도 고맙다고 끄덕였다. 헤르미온느가 다가와 해리의 가슴팍의 브로치를 한 번 더 매만져주었다.
“우선 사진부터 찍자. 교수님, 오늘 진짜 멋져요. 평소에도 좀 꾸미고 다니세요. 이리 붙어 서, 해리.”
순식간에 스네이프에게 잔소리도 덧붙인 헤르미온느가 흰 커튼을 뒤로 해서 둘을 붙여 세웠다. 스네이프는 사진을 찍는 게 어색했다. 렌즈 앞에서 갈 곳을 잃은 시선에 헤르미온느가 교수님! 한 번 호통을 쳤다. 그레인저에게 역으로 혼나다니. 스네이프도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해리가 오른팔로 스네이프의 허리를 감쌌다. 우습게도 해리에게 단단히 안기자마자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사진을 찍고서는 헤르미온느가 준비한 문답에 해리와 스네이프가 대답을 했다. 루나가 엉뚱하게 적으려는 것을, 헤르미온느의 감시 아래 몇 번의 수정을 거쳤다.
“그럼 식 시작하기 전에 손님들 맞이해요. 괜찮겠죠? 세베루스.”
사람 대하는 거에 서툴다 못해 결함이 있는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제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게 못내 미안했다. 자신이 유명인인 해리 포터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요란히 행사를 열 필요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굳이 내가 입 열 필요 있나? 하는 말로 해리를 웃게 했다. 맞아요, 반기는 건 내가 다 할테니까 당신은 그저 내 옆에만 있어요.
복도를 지나 대연회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도착한 몇몇이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루나를 데리고 왔던 론이 팔짱을 낀 드레이코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맥고나걸과 해그리드는 대연회장을 꾸민 알록달록한 꽃 웨딩 장식을 둘러보고 있었다. 크리처의 주도 아래 엄청나게 화려하게 꾸며진 대연회장은 눈이 멀듯 아름다웠다. 스네이프는 전혀 감동 받지 않았지만, 크리처가 사모님, 어떠신가요, 저의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면서 자랑스럽게 제 작품을 뽐낼 때 자리를 빨리 뜨기 위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테디!”
통스 부인이 해리의 대자, 루핀의 아들 에드워드를 안고 막 식장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자를 덥석 안아들고 해리가 뺨을 비볐다. 아직도 젖내가 나는 아기의 뺨이 보드라웠다. 스네이프는 처음 보는 루핀의 아들이었다. 오늘 에드워드는 결혼식인 걸 아는지 옅은 분홍색 머리카락이었다.
“결혼 축하해, 해리. 세베루스 씨도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통스 부인.”
그녀의 사위인 루핀과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으나, 어쨌든 스네이프는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 있는 제 연인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기와 해리라니, 스네이프에게는 절로 미소가 나오는 모습이었다.
“안아볼래요? 세브. 테디, 세베루스한테 가보자.”
“세부우?”
엉겁결에 루핀의 아들을 품에 안은 스네이프는 생각보다 묵직한 아기의 무게에 깜짝 놀랐다. 떨어뜨릴까 무서워, 얼른 재차 품에 안으니 에드워드의 맑은 눈이 스네이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늑대인간 혼혈이라기보다 분홍색 풍선껌에 변환마법을 걸어 사람으로 바꾼 느낌이었다.
“제 대자 귀엽죠?”
“팔불출 대부였군, 포터. 이 녀석은… 루핀을 별로 안 닮았군.”
“통스랑도 별로 안 닮았고요. 머리색은 완전 통스지만.”
통스 부인이 스네이프에게서 다시 에드워드를 받아갔다. 묵직한 아기의 무게감이 품을 빠져나가자, 어쩐지 스네이프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네빌이 진초록 넥타이에 감색 체크무늬 양복을 입고 다가왔다. 해리가 반갑게 네빌을 안았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네빌은 어쩐지 우물쭈물하더니 해리의 귀에 귓속말을 했다. 눈썹을 올렸다 내리며 그를 지켜보던 교수는 문득, 문 쪽에 서있는 익숙한 소녀를 발견했다. 연노랑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지니였다. 제 전 남자친구 결혼식에 당당히 나타난 전 여자친구라니. 스네이프가 콧방귀를 뀌고 지니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니는 씨익 웃더니 네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윙크를 했다. 아, 그 날 이후로 그렇게 된건가. 스네이프는 짧게 웃음을 흘렸다. 해리는 네빌의 귓속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니를 발견한 해리가 네빌과 번갈아 보더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해리, 결혼 축하해. 교수님, 축하드립니다.”
“어…… 어, 지니…… 고마워?…….”
“스네이프 교수님 덕분에 네빌이랑 잘됐어요. 감사드려요.”
“우습군. 내 덕이라니.”
해리는 이게 무슨 말이냐는 눈으로 스네이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딱히 대답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네빌과 지니가 팔짱을 끼고 식장을 구경하러 가는 뒷모습을, 해리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더이상 죄책감 안 가져도 되겠군, 포터.”
“하지만…… 네빌이랑…… 지니가……. ……네빌이랑 지니라니.”
해리는 멍하게 서있다가, 다가온 해그리드에 등짝을 세게 맞고 정신을 차렸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과 근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호그와트의 개학도 2주가 남은 시점이었다. 부부인 해리와 방을 같이 쓸 수 있도록 전보다 넓은 방을 슬리데린 사감실로 바꾸었다는 교장에 스네이프는 감사를 표했다. 정말이지 그녀는 스네이프와 해리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해리! 스네이프!”
몰리였다. 아서와 조지가 뒤이어 들어왔고 퍼시도 보였다. 빌과 플뢰르 부부가 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들어섰다. 가족의 등장에 드레이코와 입씨름을 벌이고 있던 론이 다가왔다. 지니도 네빌을 이끌고 다가왔다. 위즐리 가족과 한 번씩 포옹을 한 해리는 그 옆에서 표정 없이 서있는 스네이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서와 조지가 스네이프에게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조지가 스네이프를 따로 불러냈다. 해리는 의아했지만 몰리에게 잡혀 있어서 조지를 따라가는 스네이프를 흘낏 돌아보기만 했다.
조지는 푸른 수국이 치렁하게 늘어진 장식 아래로 스네이프를 이끌었다. 약간 그늘진 느낌이 드는 구석이었다. 조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축소마법을 건 무언가를 꺼냈다.
“교수님, 결혼 축하 선물이예요.”
“자네가 주는 거면 받고 싶지 않은데, 조지 위즐리.”
“해리와의 결혼 생활을 조금 더 윤택하게 해줄 장난감 가게 사장의 선물이니까 받아두세요.”
“이게… 대체.”
축소 되어 있었지만 어떤 용도의 장난감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구기며 단번에 거절했다. 이딴 거 없어도 해리 포터와의 섹스는 녹초가 된다고. 하지만 스네이프의 거절에 이건 그러실 줄 알았다며, 다른 것을 꺼내드는 조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해리는 얼굴을 굳히고 돌아오는 스네이프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대충 짓궂은 무슨 짓을 조지가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 사이 위즐리 가족들은 화려한 식장의 모습을 구경하러 갔다. 그 틈에 드레이코가 해리와 스네이프의 곁으로 다가와 주머니에서 약병을 몰래 꺼냈다. 무취로 수정한 입덧 물약이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고마움을 표했다. 스네이프는 바로 물약을 마시고 시치미를 뗐다. 미묘하게 거슬리던 식장의 냄새들이 깔끔해졌다. 해리는 이걸 시장에 내놔도 떼돈을 벌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드레이코는 내 이름을 단 첫 개발 물약이 입덧용인 건 싫다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면서도 성공한 물약에는 뿌듯함을 보이며, 솥째 있는 약물을 부엉이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야, 너 해리랑 무슨 얘기해.”
“또 너냐? 론 위즐리.”
론이 어느새 다가와 드레이코에게 시비를 걸었다. 질 수 없이 으르렁대는 드레이코의 모습까지 옛날과 다를 게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헤르미온느는 그들이 그러던지 말던지, 다 모였으니 식을 시작하자고 해리와 스네이프에게 말했다. 해리는 아직까지 실감을 하지 못하다, 갑작스럽게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제 진짜, 스네이프와 자신의 결혼이었다.
헤르미온느가 사회를 보는 건 예정 된 수순이었다. 이 결혼식 자체가 그녀가 없었으면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주례를 해줄 맥고나걸은 교수석에 섰다. 루나는 식장의 꽃들을 찍으며 필름을 낭비하다가 이제서야 결혼식에 관심을 가졌다. 적은 수의 하객들은 신부석, 신랑석 나눔 없이 공평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차피 거의 전부 해리의 지인들이었기 때문에 나누는 게 의미가 없었다. 해리는 입구부터 교수석 앞까지 깔린 하얀 버진로드를 내려다보았다. 저 길을 걸으면, 스네이프가 공식적으로 제 사람임을 인정 받는 걸까. 해리는 제 왼쪽에 선 스네이프를 힐끗 보았다. 사람 앞에 서는 것도, 주목 받는 것도 싫어하면서 무덤덤한 얼굴은 저보다도 긴장을 않는 것 같았다.
“떨려요? 세베루스.”
“왜, 떨리나? 포터.”
스네이프가 비뚜름히 입매를 올렸다. 루나가 찍기 전에 표정 좀 피시죠. 걘 잡지에 그 얼굴을 넣을 애라고요. 해리의 그 말에 스네이프도 피식 웃었다.
“어떻게 안 떨려요? 당신과 내 결혼식인데…. 솔직히 아직도 좀 안 믿겨서…….”
“나도 그래. 그래서 별 생각 안 들어.”
꼭 남의 결혼식에 온듯, 와닿지가 않았다. 스네이프는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참여해본 적도 없었으면서 그랬다. 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해리가 손을 잡아왔다. 다정하고 따듯한 큰 손. 스네이프는 부케 대신에 해리의 손을 제 손에 쥐는 게 좋았다. 음, 내 트로피는 해리 포터니까.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해리, 스네이프 교수님, 입장해주세요.”
소노루스 주문으로 키운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홀을 맑게 울렸다. 박수 소리가 들리는데, 퀴디치 수색꾼이었던 해리에게는 이게 입장하라는 신호탄 같았다. 루나가 앞 쪽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에 웃음이 터져 해리는 치아를 드러내고 웃었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이 선 쪽만 바라보고 걷다가 문득 드레이코와 통스 부인이 ─드레이코의 엄마 나르시사와 자매인 안드로메다 블랙이었던─ 에드워드를 가운데 두고 앉아있는 걸 보았다. 아마도 통스 부인이 먼저, 혼자 앉아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을 터였다. 드레이코는 에드워드가 자신의 손가락을 잡아오는 걸 놔둔 채로, 저와 해리를 보고 있었다. 머글태생과 결혼해 집안과 의절한 이모와 늑대인간 혼혈 옆에서도 가만히 잘 앉아있는 그가, 전쟁 이후 성장한 면도 있음을 느꼈다. 혼자 있던 제자를 발견했던 스승은, 잠깐의 보람을 느끼고, 자신의 스승 맥고나걸의 앞에 섰다.
“부부가 된 걸 축하한다, 해리, 세베루스.”
부부라……. 여태 해리와 스네이프 둘이서 장난스럽게 부인이니, 남편이니 하던 것과는 다르게, 남의 입으로 듣는 그 말은 너무 뒷목이 간지러웠다. 해리는 머쓱해서 목을 긁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스네이프는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오클러먼시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을 만큼, 창백해 보이기도 했다.
맥고나걸의 주례사는 그녀답게 간결하고 핵심적이었다. 덤블도어였다면 늘어졌을 주례가 그리 길지 않게 끝난 것도 해리는 다행스러웠다. 스네이프를 너무 오래 사람들 앞에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주례가 끝나갈수록, 뒤에서 식탁보만한 손수건으로 훌쩍이는 해그리드의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도 듣기에 민망했다. 그걸 같이 듣고 있는 맥고나걸의 목소리도 점점 빨라져, 마침내 축사가 끝이 났다.
크리처가 밤새 준비한 7단짜리 웨딩 케이크 위에 수사슴과 암사슴 쿠키가 꽂혀 있었다. 둘은 칼을 같이 맞잡고 케이크를 반으로 잘랐다. 결실을 맺는 자리인데 굳이 반으로 가르는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해리는 열심히 절차를 따랐다. 스네이프는 그저 해리가 하는 대로 따라줄 뿐이었다.
“그럼, 두 분 마지막으로 맹세의 키스를 하세요!”
맹세의 키스는 또 뭐야. 참 거창하게도 이름을 붙인다고 스네이프는 생각했다. 거창한 걸 좋아하는 인간들이 만든 게 이런 결혼식 같은 행사일테지만. 루나는 이 순간에 보통사람들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번쩍 앞으로 들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와 조심스레 시선을 맞추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수고했다는 눈빛에 스네이프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으로는 맥고나걸만 보면 되고, 듣고 서있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팔을 감싸잡았다. 꽤 많은 눈들이 주목하는 가운데서 키스라니, 인간들은 이런 걸 왜 좋아하는 걸까,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었으나 스네이프는 그래도 고개를 기울였다. 해리의 입술이 제게 닿아올 때, 스네이프는 첫키스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 때보다도 더 서투르고 조심스런 입맞춤에, 스네이프는 해리를 사랑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저를 더욱 소중히 여겨주는 그가 느껴져서 좋았다.
“……해리가 요만할 때, 진짜 제 주먹보다도 작았다니까요. 그 자그만한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그 머글 친척들 집 앞에 내려 놓고 오는데, 그냥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제가 해리한테 처음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를 주었었죠. 그런데 어느새 이 놈이 다 커서 이렇게 호그와트에서 결혼식을 열고…….”
통스 부인과 몰리, 아서가 해그리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해리는 예복이 불편한지 윗단추를 기어이 풀고, 타이 끈을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구석에 있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이목을 끌 것이 분명해, 그냥 해리의 옆에서 상석을 지켰다. 스네이프의 맞은편에서는 빌과 플뢰르가 에드워드를 돌보고 있었다. 플뢰르도 현재 임신 중이었다. 스네이프는 플뢰르의 배가 아주 조금 나온 것을 바라보았다. 제가 임신한 것은 맥고나걸과 아이들의 대부, 대모가 될 세 명의 제자 외에는 이 중에서 아무도 몰랐다. 그 편이 시끄럽지 않고 좋았다.
“세베루스 씨는 아이를 좋아하세요? 계속 우리 테디를 보고 있네요.”
플뢰르가 스네이프에게 물었다. 빌은 스네이프에게 아이를 좋아하냐는 질문이 참 우습고 황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스네이프 교수의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기실 에드워드보다는 플뢰르의 임신한 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을 밝히면 그녀가 불쾌해할 수도 있을 듯해 그냥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를 돌보는 모습도 관찰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한 살이 지난 아기인데도 주변의 손길이 없으면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저보다 어린 아기를 자신이 한꺼번에 두 명이나 키워야 하다니……. 스네이프는 현기증이 일었지만 자신의 선택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헤르미온느는 루나와 <이러쿵 저러쿵>에 싣을 결혼 사진과 기사에 대해 의논을 ─또는 일방적인 쏟아냄─ 하고 있었다. 그 옆의 네빌과 지니는 서로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고, 지니의 퀴디치팀 합숙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는 양고기를 우물거리며 론과 드레이코를 구경했다. 론은 아직 조지를 데리고 말포이 저택에 퀴디치를 하러 오는 용기 혹은 객기가 없었다. 그래서 저 둘은 식장에서야 오랜만의 재회를 한 것이었다. 투닥대는 모습이 학생 때보다는 강도가 약해졌나 싶긴 해도 여전히 서로에 좋은 감정은 없어 보였다. 해리가 론, 드레이코- 를 부르자 응? 해리, 왜? 하고 돌아보는 두 친구의 얼굴은 순수함 그자체여서 해리는 웃음이 터졌다.
“다음주 론 오프 날에 말포이 저택에서 퀴디치 시합 어때? 조지, 형도 같이 껴서.”
퍼시의 옆에서 턱을 괴고 론과 드레이코를 구경하던 조지가 오? 좋지, 하고 신나게 입을 뗐다. 론은 어버버하다가 결국 거부의 의사가 없어 입을 다물고 드레이코를 흘깃거렸다. 드레이코는 위즐리 두 명을 말포이 저택에 끌고 들어오겠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2대 2 퀴디치 제안은 솔직히 솔깃했다. 게다가 조지는 뛰어난 몰이꾼이었고, 그가 학교를 다닐 때 벌인 장난들을 흥미롭게 생각했던 터였다. 론은 몰라도 조지는 괜찮았어서, 드레이코는 덤으로 껴오는 론 정도야 봐주기로 했다. 긍정의 뜻으로 드레이코가 끄덕이자 론은 괜스레 팔짱을 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모처럼 입덧 안 하니까 많이 먹어요. 크리처가 요리 되게 잘해요.”
귓속말로 해리가 속삭였다. 스네이프도 오랜만에 비린내를 맡지 않고 달콤한 케이크를 입에 넣으니 기분이 점차로 좋아졌다. 해리는 음식을 오물거리는 스네이프의 입술을 보면서, 그냥 크리처를 집으로 데려올걸 그랬나, 뒤늦은 생각을 했다.
“식사 다 하셨으면─ 사진 한 방 찍어요!”
식사의 끝자락에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저런 건 자신이 나서서 해야 했는데,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 무척이나 고마워졌다. 나중에 있을 그녀와 론의 결혼식에서 어떤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졌다.
해리와 스네이프를 중심으로 론, 헤르미온느, 드레이코가 섰다. 론의 옆으로 위즐리 가족들과 그 뒤로 네빌과 루나가 섰고, 드레이코의 옆으로 통스 부인과 에드워드, 맥고나걸과 해그리드가 섰다. 모인 인원이 많지 않은 것 같아도, 렌즈 화면 가득 사람이 선 모습은 보기에 흐뭇했다. 해리는 열한 살 적, 해그리드에게 선물 받은 가족사진 앨범의 표지에 이 사진을 인화해서 넣을 생각으로 행복해졌다. 주변에서 너도 나도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스네이프는 제 얼굴만 도려내고 싶은 자신의 결혼식 사진이 여기저기 퍼지려는 것에 미간을 찡그렸지만, 해리의 행복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그럼, 뒤풀이 잘 즐기시고 다음에 봐요!”
“주인공들만 쏙 빠지네.”
“세베루스가 피곤해 해서, 미안, 론. 조지랑 다음주에 말포이 저택서 보자.”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청년들은 청년들끼리 따로 결혼식 뒤풀이 모임을 갖기로 한 모양이었다. 정작 주인공인 해리와 스네이프만 빠지는 기묘한 자리였다. 드레이코는 혼자 어쩌지, 튀어야 되나, 눈치를 보며 서있다가 조지에게 어깨동무로 붙잡혀 있었다. 해리를 보는 드레이코의 표정이 자못 측은했으나, 해리는 웃으며 친구들에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갈까요? 세베루스.”
“그러지.”
스네이프는 저의 손을 잡아오는 해리의 큰 손을 느꼈다. 순식간에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조용한 자신들만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사람들 틈에서 결혼식이라는 행사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제일 먼저, 예복에 단 암사슴 브로치를 떼어서 유리상자 안에 잘 넣어두었다. 해리도 제 수사슴 브로치를 가지런히 놓고, 있던 자리에 상자를 뒀다. 소파에 기대 앉은 스네이프가 눈을 감았다. 많이 피곤해요? 그 옆에 앉으며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을 손에 감고 한 올 한 올 만지작거렸다.
“기 빨려.”
“학생들 수 백 명 앞에선 어떻게 있었대요.”
“사람이 아니라 수 백 개의 돌덩이라고 생각했다. 다를 게 없지.”
“와, 진짜 스네이프 교수 같다.”
“욕으로 쓰는 거냐, 포터?”
“당신도 해리 포터를 욕으로 쓰잖아요.”
스네이프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해리가 미소지었다. 흠, 그 말에 긍정하며 스네이프도 해리의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댔다. 해리의 체온과 체향으로 피로가 녹는 것 같았다.
“아, 맞다. 오늘 조지가 준 거 뭐였어요? 이상한 거 줬죠.”
한창 뒤풀이 중일 친구들을 생각하다가 조지가 떠올랐다. 스네이프도 잊고 있었다가, 예복의 재킷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조지의 선물’을 꺼냈다. 그것은 조그만 크리스탈 약병이었다. 의외의 물건에 해리가 의문 가득한 눈을 하고 받아들였다.
“처음엔 해괴하고 끔찍한 장난감을 주려고 하더군.”
“세베루스한테 그런 걸 주려하다니, 조지도 간이 크긴 커요. 그럼 그건 거절? 이건 뭔데요? 혹시 최음제?”
“그걸 내가 냉큼 받아올 것 같나, 포터?”
하긴, 그도 그랬다. 그럼 이건 진짜 뭐지? 해리는 투명한 물 같기도 한 액체를 약병을 기울여 바라보았다. 스네이프는 머리를 괴고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뗐다.
“조지 위즐리가 개발한 마법약이다.”
“조지가요…?”
저 빼고 다 마법약에 재능이 있던 건지 뭔지, 해리는 놀라서 눈을 키웠다. 그런데 포션 마스터의 결혼 선물로 조지가 제가 만든 약물을 줬다는 것도 희한했다. 무슨 마법약인데요? 해리가 물었고, 스네이프는 약병과 해리를 함께 시선에 담았다.
“트라이위저드 때, 나이 제한선을 넘기 위해 먹었던 나이를 먹게 하는 마법약의 개정판, 이라고 소개하더군.”
“나이 제한선……! 기억나요! 프레드랑 조지는 그걸 마시고 멋진 턱수염만 자랐지만. 그럼 이건 진짜로 노화가 오는 약인거예요?”
“마셔 보면 알겠지, 포터.”
“그런데 이걸 왜 결혼 선물로……?”
약물의 정체를 알았어도, 해리는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해리의 어리고 사랑스러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말랑한 뺨과 주름 하나 없는 눈가, 붉은 기가 도는 생기 있는 입술까지. 열아홉 해리 포터는 청춘 그자체의 가운데에 있는 모습이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자신의 진짜 열아홉 때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푸르름을, 해리는 지금 가지고 있었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서로간에 나이 차가 많이 나니까, 해리가 지금 제 나이가 될 즈음엔 자신은 너무 많이 늙어 있을 것이다. 해리와 함께 늙어가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정말로, 아쉽다고 느꼈을지도.
“한 방울만 마시면 된다고 하더군.”
해리는 약병과 스네이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 방울……. 다시 모습이 돌아오겠죠? 헤헤 웃으며 해리가 천진하게 물었다. 스네이프는 피식 웃고 조지 위즐리를 믿어야지, 대꾸했다. 그에 해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딱 한 방울을 혀 위에 떨어뜨렸다.
스네이프는 어쩐지 고개를 돌렸다. 해리의 모습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있기가 무언가 걸렸다. 해리는 폴리주스를 마셨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제 얼굴과 몸 전체가 녹은 반죽이 되었다가 다시 뭉쳐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지속시간은 얼마나 걸린대요? 해리가 물었고,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지금보다 낮은 발성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자의 중후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스네이프도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앞의 나이를 먹은 해리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 어때요…? 세베루스, 저 지금 나이가 몇이나 돼보여요…?”
스네이프의 눈에는 지금,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젤로 머리카락을 넘기고, 푸른빛이 도는 검은 예복을 입은, 오십 즈음으로 보이는 중년의 해리 포터가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있었다. 하, 스네이프는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하고 해리의 뒤통수를 오른손으로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욕구가 당겨 참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당황해서 팔을 황망히 휘두르다가 다급히 스네이프의 허리와 어깨를 안았다. 스네이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혀를 섞어오니 당황스러웠다. 해리는 조금 얼떨떨해하며 입술을 떼고, 시선을 맞췄다.
“왜, 왜요? 저 멋있어요?”
“응.”
단호한 긍정에 해리가 입을 벌리고 스네이프를 보았다. 그 멍청한 표정에, 나이 먹은 얼굴 너머로 열아홉 해리가 보여서 스네이프는 풉 웃음을 터뜨렸다.
“봐.”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쥐고 거실 테이블의 윗면을 거울로 바꾸었다. 해리는 고개를 숙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은 스네이프보다 좀 더 나이가 많아보였다.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낸 이 모습이 열아홉의 저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렸고, 녹색 눈의 옆으로 자리 잡히는 눈가의 주름도 어색하지 않았다. 멋있냐는 제 물음에 스네이프가 금방 긍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해리는 제 모습인데도 질투가 났다. 나이를 먹은 해리 포터는 어린 저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할 근사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자신의 미래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게 정말 제 미래 모습일까요? 세베루스.”
“그렇겠지, 지금 네 모습이랑도 닮았고. ……정말 이상하군. 네가 나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니. 포터, 네 지금 이 모습이 현재가 될 정도로 나이가 들면, 나는 대체 그 때에 몇 살일지가 우습군.”
“세베루스, 그런 걱정도 해요?”
해리의 다정한 큰 손이 스네이프의 두 뺨을 잡았다. 저에게 스네이프의 시선을 고정시킨 해리가 검은 눈에 녹색 눈을 비췄다. 스네이프는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이 맑은 에메랄드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해리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신의 눈을 빛내면서 저를 바라봐주는 걸까? 스네이프의 심장이 크게 박동하며 떨렸다. 해리의 모습이 어떻든 상관 없이, 그는 저의 심장을 늘 빠르게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와 제 안을 빠듯이 장악했다.
“나는 세베루스가 200살 먹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돼도 예쁘다고 할 건데요.”
“하! 웃기는군…. 포터, 네 논제는 전부 틀렸어. 난 200살까지 살고 싶지도, 예쁘지도 않으니까.”
“나랑 그 때까지 살고 싶지 않아요?”
“……너랑은,”
“네.”
죽어서도 함께이고 싶어. 어떻게 이런 깊은 마음을 솔직하게 해리 앞에 드러낼 수 있을까. 스네이프는 차마 그럴 용기가 없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리고, 모두에게 반려로 인정받아놓고서도 차마 그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감싼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제 반려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이 작은 머리통에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이 굴러다니는지 모를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단점이었다.
“세베루스.”
“…응.”
“우리 둘이 지금은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가 달라도요. 언젠가부턴 똑같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머리도 하얗게 새고, 알버스 덤블도어처럼 긴 턱수염이 어울리는 나이가 될 걸요? 그 때부터는 우리가 알아온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둘이서 함께 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보다 먼저 나이 좀 더 먹는다고 걱정하지 마요. 금방 내가 따라 잡을 거니까.”
금방은 무슨, 앞으로도 몇 십 년은 더 걸릴 텐데. 해리 포터는 길더로이 록허트만큼이나 허세가 가득한 반려였다. 피식, 스네이프는 짧은 웃음을 흘렸다. 가슴이 울컥거렸지만 스네이프는 결코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저 해리의 여전히 넓고 다정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허리를 안았다. 열아홉 때보다 좀 더 근육이 붙어, 체격이 커진 두툼한 상체에, 해리는 모르게 스네이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됐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포터 씨.”
“네?”
“조지 위즐리가 왜 이걸 첫날밤에 쓰라고 줬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줘.”
해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교수는 이미 조지의 의도를 100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해리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반말로 해줄까? 세베루스.”
“……좋아, 포터.”
“너는 존댓말 써야지, 세베루스?”
“풋…. 네, 포터 씨.”
스네이프의 미소 띤 입술에 해리도 웃으며 입을 맞췄다. 해리의 조심스런 손가락이 까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다음주에 조지를 만나면, 한 턱 크게 쏴야겠다, 생각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목 뒤로 팔을 둘러 제게 가까이 끌어당겼다. 해리는 그에 기꺼이, 자신의 반려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해리의 목을 안은 채, 소파에 누운 스네이프는 제 위를 차지한 ‘어른’ 해리 포터의 모습에 넋을 놓을 듯 올려다보았다. 열아홉의 몸에 맞춘 예복이 근육이 더 붙은 두툼한 상체에 조여있는 것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세베루스, 결혼하고 첫날밤인데 소파에서 할 거야?”
“…어디든 좋은데요.”
솔직한 대답에 해리는 다시 역할극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이걸 연기라고 생각하면 스네이프도 좀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그가 해리는 정말로 귀여웠다.
해리의 손이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잠자리를 가져놓고 새삼스럽게 조심스런 손길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도 부러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쩐지 정말 처음의 밤처럼 설레이고 있었으니까. 그게 해리가 낯선 모습으로 있어서인지, 결혼식을 한 날 밤이어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설레였다. 해리의 다정함에 늘 가슴 안쪽이 간질거렸다.
바지와 속옷을 벗고, 스네이프는 해리의 허벅지 위로 올라 앉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제 가슴팍부터 배꼽 밑까지를 그어 스르륵 조끼의 단추가 풀리게 했다. 해리는 두근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네이프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조끼 속의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해리는 귀 앞으로 흘러내리는 까만 머리카락과 그 아래 내리깔리는 눈, 굽이진 콧등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나이 든 저를 바라보던 스네이프의 시선처럼, 현재의 그를 눈에 담았다. 제 반려는 제가 이미 나이 들었다고, 저를 못나다고 여기는데, 해리의 눈에는 그저 여전히 젊었고, 아름다워보였다.
“……사랑해.”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마지막 단추를 풀던 스네이프가 고개를 들어 해리를 보았다. 갑자기? 그렇게 묻는듯한 시선이 해리를 웃게 했다. 늘 사랑하지만, 오늘은 정말 시시때때로 그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냥, 보고있으니까….”
조용한 해리의 대답에 스네이프는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중후하게 낮아진 목소리가 낯설기도 하고, 음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내가 벗고 있으니까 사랑한다고 하네요? 포터 씨.”
스네이프는 괜스레 툴툴대듯 말을 했다. 그 안의 쑥스러움이 느껴졌다. 해리는 상냥한 눈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나이를 먹어 조금 더 투박해진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귀 너머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고정해주었다. 제 눈을 보고있던 스네이프가 먼저 고개를 기울였다. 해리도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익숙하게 들어오는 따듯하고 축축한, 작은 붉은 덩어리. 사실 특별하지도 않은 것인데, 그것이 입 속에서 서로 뒹굴고 섞이는 행위가 이토록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입술에서 입술을 떼고, 해리가 웃으며 접히는 눈가의 주름에 다시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눈썹에도, 눈두덩에도, 콧등에도 차례로 입술을 옮겨 붙였다. 해리는 그 접촉 하나하나에 담긴, 스네이프의 자신을 향한 마음을 느꼈다. 지금 스네이프가 나이 든 제 모습을 입술로 덧그리듯, 해리는 저와 스네이프의 가장 어린 순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퀴렐의 터번을 본 순간 느껴지던 강렬한 이마의 통증, 그리고 그 통증보다 더 떨치기 어려웠던, 퀴렐의 옆에 앉아있던 스네이프가 저를 바라보던 시선. 자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느낌. 옆에 앉은 퍼시에게 그가 누군지를 물었고, 조금 더 그를 바라보았지만, 스네이프는 더이상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대답은?”
“알면서, 왜.”
“듣고 싶어서. 당신 입으로.”
“포터 씨, 사랑해요. 됐어요?”
“얼마나요?”
해리가 답지 않게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스네이프는 근사하게 나이 든 제 소년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 얼굴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더 속수무책으로 이끌어버리는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은 돼.”
똑똑한 대답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허리를 안고 가슴에 얼굴을 붙였다. 왼쪽 가슴에서 뛰는 일정한 심장소리가 들렸다. 나의 반려, 나의 세베루스.
“결혼 축하해요, 세베루스.”
“너도, 포터.”
그 차갑던 시선이 사라지고, 제 품에 안긴 이 온도에 해리는 그를 안은 채 슬며시 웃었다.
─
스네이프가 거실 테이블을 거울로 바꾼 것은 그 날 밤 굉장히 유용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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