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조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 상자를 뜯었다. 선반에 착착 올라가는 개구리 초콜릿들을 보다가 약간 출출해 하나를 집었다. 입에 초콜릿을 물고 카드를 꺼내는 순간, 짜증스럽게 저를 노려 보고 있는 스네이프가 보였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카드는 볼 때마다 이 표정밖에 짓지를 않았다. 해리를 볼 땐 좀 다를까? 오독오독 초콜릿을 씹으며 조지가 카드의 뒷면이 보이게 돌렸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최연소 포션 마스터이자 전 호그와트 교장, 전쟁 영웅. 1998년 호그와트 전투에서 해리 포터에게 전투의 승리를 이끌 기억을 건네주었다. 해리 포터의 어머니 릴리 포터를 사랑하여, 릴리 포터 사후 해리 포터의 생명을 지키는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몇 가지 마법주문을 발명 했고 취미는 독서였다.]

스네이프가 이 카드의 존재를 아직까지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이 설명들을 읽고 개구리 초콜릿 회사에 불을 지르진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딸랑, 문에 달린 종에서 맑은 소리가 들렸다. 아직 오픈 전이라고 걸어 놨는데, 어떤 급한 어린 손님이신가? 조지는 바닥부터 시선을 두다가, 성인 남성의 두 다리가 보여 당황했다. 그대로 시선을 쭉 올린 끝에, 조지는 반가워하며 문 쪽으로 다가갔다.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삐딱하게 서서 어수선한 가게 내부를 둘러 보았다. 오픈 전이어서 여기저기 뜯지 않은 상자가 널려 있었고, 조명도 어두웠다. 스네이프는 대충 빈 선반에 제 품에서 꺼낸 상자를 올려 놓았다. 축소 마법을 건 상자에 복원 마법을 걸자, 상자는 원래의 크기로 커졌다. 조지가 다가와 얼른 뜯어보았다. 상자에는 크리스탈 약병들에 넣어진 사랑의 묘약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브라보! 오늘부터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 최고 인기 아이템이 될 물건이 드디어 들어왔네요.”
“돈이나 줘.”

시큰둥하게 제 물약들에서 시선을 뗀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교수였던 스네이프가 사채업자처럼 돈을 내놓으라 하는 게 웃겨서 조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스네이프는 멀린의 턱수염이라도 씹은 것처럼 표정을 구겼다.

“저번 물약 값보다 세 배를 넣었어요.”
“대체 값을 얼마나 뻥튀기 해서 팔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삿속이 혐오스럽군, 조지 위즐리.”
“최연소 포션 마스터에 걸맞는 약값을 받을 거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비싸도 제일 잘 나갈 거예요.”

정말 한심한 상품에, 한심한 가게 사장이었다. 스네이프는 갈레온이 가득 든 주머니를 받고 로브의 속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은 꽤나 묵직해서 로브의 한 쪽이 늘어져 내려왔다.

“받은 돈으로 뭐 사고 싶은 게 있으세요? 돈은 안 밝히실 것 같은 분이.”
“그냥… 포터의 생일이 다가오기도 하고.”
“아하, 해리 생일 선물.”

조지가 끄덕이며 지팡이를 휘둘러 병마다 라벨을 붙였다. ‘~최연소 포션 마스터~ ♡세베루스 스네이프 특제!! 아모텐시아♡’가 적힌 핑크와 보라색 라벨은 역겨움을 동반했다. 심지어 제 이름 옆에 하트가 뾰로롱 소리를 낼 듯이 생성 되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인상을 사정없이 구겼지만 조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돈을 받고 제 품을 떠난 물건이니, 뭐라 해봤자 결국 소용 없을 것이었다. 스네이프가 고개를 저었다. 가겠다며 등을 돌렸다.

“해리는 요새 뭐해요?”

문을 열려고 팔을 뻗던 스네이프가 잠시 멈춰, 조지를 돌아보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준비.”
“오러 그만두고 공부 삼매경이라니, 해리 걔도 어지간하다니까요. 난 이미 머리가 굳었는데.”
“학생일 땐 안 굳어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조지 위즐리.”
“지금보다는 덜 굳은 코딱지처럼 몰랑했었죠.”

질색한 스네이프가 로브를 털며 문을 열었다. 조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는 해리랑 같이 오세요! 스네이프는 흥,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맞은편의 플러리쉬 앤 블러트에 들렀다. 서점에 간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이 추천할 만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관련 도서를 찾아 해리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도 없어, 스네이프는 여유롭게 서점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제가 읽을 ‘새롭게 발견 된 약초와 기존 약초의 새로운 이점들’이라는 굉장히 흥미로운 신간까지 구매하고, 스네이프는 모처럼 기분 좋게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그린고트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른 제 금고는 폴리주스를 마신 해리가 야금야금 꺼내가서 꽤 비어 있었다. 일은 안 하고, 계속 머글 돈으로 환전해서 금고를 축냈더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쓸 만큼을 빼두고 금고에 갈레온을 쌓고 나왔다. 그리고 그린고트를 나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스네이프는 은행 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백금발에 회색의 눈동자, 이전보다 약간 더 키가 크고, 살이 조금 빠진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이른 시각이라 다니는 사람도 몇 없는 다이애건 앨리였다. 드레이코는 일부러 조용한 시간을 노린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이 시간에 방문한 것이 무색하게, 아는 얼굴을 마주치자 드레이코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나 분명히 스네이프를 보는 눈에는 반가움이 살며시 어려 있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잠깐 얘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드레이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포이 저택은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공작새가 뒤뚱거리며 고아한 걸음을 걷고 있는 정원은 여름이 다가와 푸릇푸릇 했다. 볼드모트와 데스 이터들의 집합소로 전락했던 저택은 이제 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아름답게 빛이 났다. 스네이프는 응접실에서 집요정이 내주는 홍차를 받아 마셨다. 루시우스와 나르시사는 프랑스에 사업차 가서 장기간 여행도 즐기고 돌아온다고 했다. 드레이코는 전쟁 이후 거의 집에만 박혀 살았다고 쓰게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살아 돌아오셨다는 기사를 봤을 땐 놀랐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뭐, 연달아 나온 포터와의 기사는…… 정말 깜짝 놀랐지만요.”

어색하게 웃은 드레이코가 멋쩍은지 뺨을 긁었다. 스네이프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얹고, 다리를 꼰 자세로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교수님. 포터랑…… 음, 만나신다는 거요.”

어쩌다 그런 제정신이 아닌 짓을 하게 되신 거냐고, 그렇게 묻는 듯한 드레이코의 눈은 차라리 측은함에 가까웠다. 스네이프는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려 웃고, 차를 홀짝였다. 확실히 비싼 차는 맛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톤에 드레이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둘이 어떻게 연인이라는 건지, 아직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말이었다. 스네이프는 캐묻는다고 제대로 대답할 교수가 아니었다.

“일은 하지 않고 있나?”
“저야 뭐…… 말포이 가의 부동산이 전부 제 것이 될 테니까. 지금도 몇 군데는 증여받아서 먹고 살 걱정도 없고, 제가 데스 이터였으니까…… 그리고 막대한 보석금으로 풀려 났으니까……. 사회적인 시선도 안 좋고 해서요.”

드레이코의 경우엔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제 아버지가 데스 이터였고, 그 아버지인 루시우스가 예언을 가져오는 것에 처참히 실패한 보복을 볼드모트에게 당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볼드모트는 어둠의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섯 살을 꾀어내었다. 제 발로 볼드모트의 밑에 들어간 열여덟 살의 세베루스 스네이프와 드레이코 말포이는 달랐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그를 어리석게 여기면서도, 약간은 안타까워 했다.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소년이었으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낼 거라면 학교는 왜 나왔지?”
“교수님…… 그건,”
“난 네가 마법약에 소질이 있는 걸 안다, 드레이코.”
“……! 교수님….”
“그 네빌 롱바텀조차 자신의 적성을 찾아 정진하고 있는데, 슬리데린의 수재였던 놈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니, 오랜 슬리데린의 사감으로서 기분이 나쁘군. 넌 대체 무엇때문에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경쟁한 거냐? 그녀가 단지 머글태생인데도 너보다 공부를 잘하는 게 열 받았었나? 우스운 학습동기군, 드레이코. 아, 퀴디치도 정말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팀에 빗자루도 전부 사서 나눌 정도로 애정 있었지 않나? 아니면 단지 포터랑은 원래 사이가 안 좋았어서 퀴디치에서도 경쟁했었던 건가?”

드레이코는 주먹을 쥔 채 파르르 몸을 떨었다. 신랄한 비난은 오히려, 드레이코를 알아주고 있던 은사의 직선의 시선을 알게 했다.

드레이코는 O.W.L에서 마법약 O(최고점수;특출함)를 받았다. 슬러그혼은 스네이프와 달리 N.E.W.T를 준비하는 수업에 O.W.L에서 E(기대이상)를 받은 학생도 받아주었다. 때문에 해리와 론 같은 덜떨어진 자식들도 마법약 수업에 들어와 제 뛰어난 재능이 묻혔지만, 어쨌든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슬러그혼의 수업에선 사실 형편없는 모습만 보이기도 했었다. 6학년 당시의 자신은 덤블도어를 살해하라는 어둠의 주인의 명령에 정신도, 육체도 미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만났지만, 저와 대화를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로선 정말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대화한 것 같습니다…….”

드레이코의 회색 눈이 빠르게 깜박깜박거렸다. 기본적인 성정이 원래 나약한 녀석이었다. 그러나 우는 모습까지 티내고 싶진 않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못 본 척, 무심한 눈으로 일어섰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앞으로도 연락하고 싶다면 편지를 보내라, 드레이코.”

자신의 슬리데린의 애제자에게 기꺼이 그 정도는 허락할 수 있는 스네이프였다. 드레이코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 전보다 어른스러워진 얼굴로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포터가 늦어진다고 걱정하고 있을테니까.”

아, 그 말을 꼭, 굳이 덧붙이셔야 했을까요? 드레이코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다. 스네이프는 그 얼굴을 만족스럽게 비웃으며 말포이 저택의 벽난로에 플루를 뿌렸다.


해리는 제 손목시계를 벌써 여러 번 들여다 봤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이른 시각, 조지가 가게를 열기 전에 빠르게 돌아올 거라던 스네이프가 두 시간 가까이 증발 상태였다. 서점에서 시간을 꽤 오래 보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혹여나 다이애건 앨리에서 어떤 시정잡배에 걸려 시비를 털리고 있을까 걱정이었다. 오러 일을 했어서 드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전 데스 이터였던 그의 경력이 걸렸다. 게다가 저라는 유명인과 만나고 있어서 얼굴도 꽤 알려져 있었다. 스네이프가 한 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강력한 마법사라는 걸 알면서도 어린 신랑은 제 사랑스런 부인이 걱정이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해리는 초조하게 또 다시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거실 벽난로에서 부시럭대는 소리에 해리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세베루스! 무심한 표정으로 저를 돌아보는 사람은 역시 제 연인이 맞았다. 스네이프는 헛웃음을 흘렸다. 저 분리불안 똥강아지가 저 없다고 계속 좌불안석이었던 게 눈에 보였다. 스네이프는 다가온 해리의 품에 안겨서 등을 살짝 토닥였다.

“늦었잖아요…….”

칭얼거리는 청년의 목소리에 스네이프는 한숨을 뱉었다. 고작 두 시간은 지났던가?

“그린고트에 들렸을 때 아는 얼굴을 만나서. 잠깐 대화했다.”
“네? 누구요?”

해리는 경계하는 사냥개처럼 바짝 긴장했다. 좁혀진 미간과 짙은 눈썹을 보다가 스네이프는 고개를 저었다. 해리의 질투심을 뼈저리게 알고 있어서, 스네이프는 굳이 드레이코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때의 추궁과 경계를 감당하기도 싫었다.

“드레이코.”
“드레이코 말포이요……?”

전혀 뜻밖의 이름에 해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 아인 그냥 내 제자라고, 포터. 그러나 그 소리가 해리에게 씨알이나 먹힐지 모르겠다. 그저 제자를 만나고 대화했다는 대답에 이렇게 얼굴이 굳으면서, 저를 호그와트 교수로 보낼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인지. 물론, 드레이코와 해리의 관계는 저와 제임스의 관계와 비슷했다. 그러니 그냥 그 이름 자체가 불쾌한 걸수도 있었다.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술에 입맞췄다. 굳어서 거의 노려보는 듯한 인상이던 해리의 눈이 동그랗게 풀렸다. 스네이프는 그 눈을 지켜보면서, 해리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금세 정신을 차린 해리가 집중해서 스네이프의 입 안을 혀로 훑었다. 으응, 스네이프의 앓는 소리에 해리가 키스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쪽, 소릴 내고 떨어진 해리는 어느새 눈매가 풀려 있었다.

“무슨 얘길 했는데요? 말포이랑.”
“그냥,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었지. 내가 가르친 제자 놈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낸다니 한심스러워서 조언도 해주고.”
“걘 아무 것도 안 해도 돈이 썩어나잖아요.”
“지금 네 재산이 말포이 가와 비등한 걸로 아는데, 포터?”

그 포터 가문에 그 블랙 가문의 재산이 전부 해리 포터의 것이었는데, 뻔뻔하긴. 물론 해리는 아이일 적 오랜 시간, 동전 몇 닢도 가져보기 힘들었던 시기를 길게 보내서 제 재산을 낯설어 했다.

“아……. 음, 뭐…. 부자 남편 얻어서 좋으시겠네요, 부인.”

해리는 멋쩍어서 아무 소리나 지껄였다. 스네이프는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혼하면 나도 포터가 되는 거니 네 재산은 다 내 것이지. 더 착실히 부를 쌓아놔라, 포터.”

‘트로피 남편’ 해리 포터 타이틀에 대한 생각은, 슬리데린 기질의 스네이프에게는 진심이었다. 해리는 기가 막힌 웃음을 흘리다가 스네이프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네, 세베루스 포터 부인. 그 말에는 스네이프도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쪽, 하고 이마 옆에 내려앉는 입술에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스네이프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았다. 벌써 6월 중순이 넘어갔다. 그동안 암사슴의 생식기관─ 자궁, 난소, 질, 젖샘 같은 걸 제 신체에 적용하려는 마법실험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역시 허무맹랑한 소리로 보일 만큼 그건 불가능해보였다. 그렇지만 생명도 없는 물건에 사람의 영혼을 부착시키는 마법도 있는데, 제 몸에 생명을 만드는 마법이 불가능하리란 법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처음 떠올린 생각을 믿기로 했다. 그래서 해리는 요즘 매일같이 제 집을 돌아다니는 암사슴을 바라보는 날들을 보냈다.

“저도 수사슴이 되고 싶어져요.”

카펫 위에 앉은 암사슴의 머리를 쓸어주면서 해리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암사슴의 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며 변신 모습을 꽤 오래 지속했다. 그렇다 보니, 사람인 해리와 동물인 스네이프의 소통이 어려운 건 당연했다. 해리는 오러 일 탓에 저도 같이 맥고나걸의 애니마구스 수업을 받지 못한 게 억울했다.

“세브, 계속 그 모습으로 있을 거예요? 나 혼자 떠들게 둘 거냐고요.”
“…….”
“아, 네. ‘암사슴 몸의 이해.’ 중요하죠, 물론. 임신하기 위해서니까.”

알면서도 해리는 다소 빈정거리는 어투로 말했다. 일을 그만 두면, 전보다 더 살 맞대는 일이 늘 줄 알았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스네이프는 긴 시간 암사슴의 모습을 했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와서도 관계까지 가는 건 막아섰다. 발기를 하거나 뒷쪽의 구멍을 쓰면 자꾸 자신의 남성의 신체를 의식하게 된다는 거였다.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지만, 해리는 결국 홀아비처럼 쓸쓸해졌다.

그러니까…… 둘은 지금 섹스를 안 한지 2주가 넘었다.

해리도 할 일은 있었다. 교수 준비를 하느라 구입한 서적과 교과서를 처음부터 훑으면서 정리했고, 학년 별 수준에 따라 분류도 했다. 루핀과의 수업을 떠올리면서 적절한 마법 생물들도 생각해놓고, 그것들을 구할 방법들도 여기저기에 자문을 구했다. 강의에 대한 준비는 생각보다도 더 많이, 해도해도 부족한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22살에 교수가 어찌 되었을까.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 자신이나 해당 과목에 대해선 가장 특출난 자인데도, 해리는 강의 준비가 버겁게 느껴졌다.

22살의 스네이프라. 해리는 책에서 그라인 딜로우를 읽다가 멍하니 또 스네이프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른손으로는 암사슴의 털결을 더듬으면서, 제 첫사랑이 죽은 상황에 교수로서의 일을 준비해야 했던 가여운 청년을 생각했다. 정말 덤블도어는 피도 눈물도 없나. 죽지 못해 살아있는 그에게 저를 지켜야 되니 살아있으라고 협박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의 이름을 제 아들에게 붙이려는 건, 혼 낼 때 제대로 화를 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암사슴의 정수리에 뽀뽀 했다.

스네이프는 암사슴의 모습으로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계속 마법에 실패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동물로 변하는 감각을 익혔으니, 그 동물의 신체 기관만 따내오는 방법도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간절함이 부족한가? 관계만 금지하고 있을 뿐, 신체적인 접촉─ 스킨쉽은 그대로였다. 사실 스네이프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을 느꼈고 행복했다. 아이에 대한 간절함은 애초 해리가 시작이었다. 스네이프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해리가 원하니까 기꺼이 방법만 찾으면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야, 나도 우리 아이를 갖고 싶다. 암사슴의 모습을 한 스네이프는 눈을 질끈 감고 각오를 되새겼다. 해리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그 필연적인 사랑의 관계가 궁금했다. 스네이프도 겪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좋은 부모라는 걸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은 좋은 인생 역시 살아본 적도 없었다. 단지, 해리 포터의 옆에서라면 불가능도 가능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 영웅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다정하게 제 삶의 곁으로 이끈 것처럼.

“아, 드디어 돌아왔네요.”
“잠깐, 포터. 내 말을 들어 봐.”

스네이프가 변신을 풀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해리는 포옹을 하려 했으나, 저지하는 스네이프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보았다.

“무슨 일인데요…?”

해리의 맑은 시선에 스네이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으니까.

“신체 접촉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왜…… 이것도 그…… 마법에 도움 될까 싶어서 생각한 건가요? 세베루스.”
“……그래.”
“왜요? 접촉만 하는 건데, 그 정도론 발기도 안 될 것 아니예요.”

억울하다는 투로 해리가 입을 내밀었다. 스네이프는 어쩐지 해리의 눈과 마주칠 수가 없었다. 제 연인을 너무 괴롭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위해 제가 떠올린 나름의 방안이었다.

“포터, 간단한 접촉만으로도, 난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그래서 임신을 하려는 노력이 덜 간절한 것 같기도 해.”
“덜 간절하다뇨….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걸 제가 다 봤는데…….”

해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 스킨쉽이 아무리 간단해도 만족을 느낀다는 스네이프의 말이 기쁘기도 했고, 이것도 스네이프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제가 좀 힘들면 어떤가, 스네이프는 더한 고생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그럴 텐데.

결국 해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은 또 쏜살같이 지나갔다. 모처럼 스네이프가 사람의 모습으로 서재에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그의 뒤로는 벌써 다 팔렸다는 사랑의 묘약 재발주 주문에 새롭게 끓고 있는 솥이 보였다. 아직 7월도 되지 않았는데, 제 묘약이 폭발적인 인기라는 말은 사실인듯 했다. 시험을 끝마친 졸업반 학생들의 주문이 많았다는 조지의 설명을 떠올리다가, 스네이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네이프의 책상 한편에는, 끈에 묶인 편지 뭉치가 놓여 있었다. 드레이코가 여태껏 보낸 편지들이었다. 드레이코는 최근, 신종 마법약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넘쳐나는 자본과 시간이 있었다.

어둠의 저주 마법은 치료하기 힘든 상처들을 남겼다. 드레이코 본인에게도 해리가 날린 섹튬셈프라에 입은 절상이 있었다. 스네이프가 저주의 반대주문을 즉시 읊어 깊게 남지는 않았지만, 저주 주문은 드레이코의 몸에 보이는 흔적을 남겼다. 드레이코는 바로 그 저주 마법에 입은 상처를, 감화시키는 치료약을 개발하겠다는 각오를 제 교수에게 말했다. 개발에 성공하고 상용화가 된다면, 전쟁 중에 저주 주문에 피해 입은 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드레이코 말포이의 이미지 회복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이었다. 물론, 굉장히 쉽지 않은 시도였다. 드레이코는 약재의 조합에 대해 스네이프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했다. 실험대상은 자신의 몸이라는 걸, 스네이프는 드레이코가 한 번 말하지 않았어도 알고 있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와 자신이 편지를 나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간……. 스네이프는 한숨을 쉬었다. 드레이코의 몸에 또 한 번 치료하기 힘든 저주를 날리는 해리가 머리로 너무 쉽게 떠올랐다.

해리는 한 달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 실전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해리가 이론까지 섭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간, 동거중인 연인 스네이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암사슴 모습을 했고, 사람일 때도 스킨쉽을 거부하고 있었다. 해리가 넘치는 시간에 할 만한 것이 공부 말고는 없었다. 새벽에 운동을 나가기까지 하고, 스네이프와 달리 해리는 무척이나 생산적인 한 달을 보냈다.

진전이 없는 건 저뿐인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양피지에 드레이코에게 줄 답장을 쓰면서 인상을 굳혔다.

‘나도, 얼른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어서 포터 너랑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그렇게 자주 관계를 갖다가, 섹스를 하지 않는 한 달, 접촉도 금지하는 이 주를 보냈다. 제 남성 생식기관에 최대한 관심을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네이프는 오히려 이 방법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자신은 해리의 신체에 몸이 닿일까 신경을 썼다. 탓에, 정신은 쉽게 피로해졌다. 거리를 둠에 따라, 낯설어지는 해리의 건강한 근육질 육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했고─ 빌어먹을, 세베루스 스네이프. 이 무슨 삼류 여성지에 쓰일 만한 천박한 생각인가.

깃펜을 내려 놓고, 스네이프는 자괴감에 싸여 얼굴을 감싸쥐었다. 어떻게 해야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그것이 가능한 여자들이 부러웠다.

‘…릴리.’

스네이프는 오랜만에 릴리의 생각을 했다. 해리가 가족에 집착하는 이유도, 가족의 사랑 속에서 크지 못해서였다. 제임스 포터는 끔찍하게 혐오스러운 놈이었지만, 릴리랑 제 아들인 해리에게는 잘해줬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부유한 가정에서, 절 사랑해 마지않는 대부 개놈도 있고, 무엇에도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을 해리를 생각했다. 돈도 많고 사랑도 많은, 그 단란한 작은 가족의 행복함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예언을 훔쳐들은 날의 밤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파열 된 유리조각은 해리의 이마로 떨어져 번개무늬의 깊은 흉을 남겼다.

스네이프는 손가락을 더듬어 제 목의 번개 낙인을 만졌다. 탈각까지 다 일어난 상처는 완벽하게 제 목에 자리를 잡았다. 해리가 가족을 잃게 만든 책임은 저에게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해리의 가족을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스네이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세베루스?”

해리가 서재의 문을 열었다. 해리는 책상에 머리를 감싸쥐고 앉은 스네이프를 보고 조용히 물었다. 약 2주 전의 키스 말고는 제대로 된 접촉이 없었다. 손가락만 빨며 바라만 봐야 하는 제 반려가 오늘은 기분까지 안 좋아 보였다. 해리는 씁쓸하게 문가에 서서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스네이프가 어깨를 감싸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어려운 일인 거 아니까, 몇 달, 아니 몇 년 걸리더라도…….”
“그동안 포터, 네가 받을 스트레스는?”
“네? ……저요?”

모른척, 대답하지만 해리도 입술을 짓씹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스네이프를 만져보지도 못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자신이 참아야지, 뭐 어쩌겠는가.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전 괜찮아요. 세브, 힘내요.”

스네이프는 곁눈질로 해리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 난 이렇게 널 못 만지니까 괴로운데, 포터 넌 아니야? 정말 괜찮은 건가? 접촉하지 말자고 한 건 자신이 요구한 일인데도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침울하게 해리와 시선을 피하며 끄덕였다. 평소같으면 어깨라도 토닥여줬을 텐데, 제가 금지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런 마음이 없어서인 건지, 해리는 서재의 문을 닫았다.

스네이프는 울고 싶어졌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여성생식기관의 착상도, 저를 만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대답하는 해리도, 자신이 세베루스 스네이프라는 사실까지도 모두 저를 슬프게 만들었다. 스네이프는 깃펜을 다시 들었다. 드레이코에게 보낼 편지의 밑에 글을 더 이어서 썼다. 만남을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적고, 스네이프는 양피지를 접었다.


“어디 가세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던 해리가 놀라 물었다. 저녁시간이 다 됐는데 외출을 하는 스네이프라니? 얇은 여름용 로브를 걸친 모습은 누가 봐도 외출을 나가려는 모양새였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지 않으면서 약속이 있다고 대답했다. 해리는 미간을 좁히고 스네이프를 보았다.

“저녁시간인데요.”
“먹고 들어올 거니까 알아서 먹어라. 냉동 칸에 얼려둔 것들이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당신이 이 시간에 누굴 만나요?”

해리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스네이프에게는 친구도 없고, 만날만한 사람을 아무리 떠올려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늦지 않게 돌아올테니, 신경 쓰지 말고.”
“세베루스,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지금 누굴 만나러 가는지 말해줘요!”
“……다녀올게.”
“세베루스 스네이프!!”

제 이름을 저렇게 부른다는 건, 당황해서일까 화가 나서일까? 스네이프는 해리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볼 수 없었다는 게 맞았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집에 두고 사라지는 순간의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순간이동으로 해리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다. 스네이프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해리는 현관에서 철컥 소리가 들리는 걸 부엌에서 멍하니 듣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당연하게도 스네이프의 흔적조차 없었다.


다시 찾은 말포이 저택은 여전히 공허할 정도로 높고 넓었다. 스네이프는 천장의 샹들리에를 올려다 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 큰 대저택에 루시우스, 나르시사, 드레이코 말포이 세 명밖에 살지 않는다는 게 우스울 정도였다. 부를 자랑하는 말포이가 다웠다. 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유약한 제자가 혼자서 지내기엔 적절치 못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말포이 부부는 프랑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들을 혼자 두는 말포이 부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외아들 드레이코를 과대평가 하는 게 분명했다. 전쟁이 끝난지 1년이 지났다 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처는 있는 것이었다. 상처를 아는 전 데스 이터 스네이프는 그래서 드레이코를 내버려둘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드레이코.”
“스네이프 교수님! 어서오세요.”

집요정이 의자를 끌어 주어 스네이프는 편하게 식탁에 착석 했다. 매일 이렇게 이 큰 식탁에서 혼자 먹는 건가? 스네이프는 차례로 차려지는 음식들을 내려다 보며 물었다. 이 식탁의 위에서 볼드모트에게 죽어나간 머글태생의 망령들이 보일 것만 같았다.

“그렇죠. 교수님은 포터랑 드시겠지만.”

쿡,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며 드레이코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었다. 드레이코는 프랑스에서 데려왔다는 집요정의 요리 솜씨가 좋다고 설명했다. 스네이프는 충분히 맛있는 식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에서 맴도는 해리 포터만 아니었다면 더 만족하며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포터와 어떻게 만남을 가지게 됐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편지로 주고 받은 대화로 미뤄 봐서, 교수님은 여전히 그대로시던데.”
“자네도 여전하던걸, 드레이코. 그러니 내가 포터에 대해 뭔 얘길 하든, 걸고 넘어질테니 귀찮아.”
“성가신 놈 아닙니까? 어떻게…… 전 교수님을 제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이 마법세계에 내가 그 놈의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다 퍼진 줄 알았는데? 그걸로 포터가 날 전쟁영웅으로 미화시켰으니. 머글태생을 사랑한 나를 말포이 도련님이 제정신으로 여겼다는 게 더 놀랍군.”

드레이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스네이프는 무심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

“저는… 교수님,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말을 정정해줄 필요성도 못 느꼈다. 릴리 사후로 제게 뭘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죽었다 다시 깨어난 것 같은 순간 이후, 해리 포터를 제외하고서는.

“어둠의 마왕이 아니라 덤블도어의 편이었던 것. 이유가 뭐든 그게 옳은 선택이었죠.”
“박쥐 같은 천성은 말포이답구나, 드레이코.”

와인을 넘기며 스네이프가 조용히 말했다. 어느 시대든 저희들의 집안에 유리한 편에 서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가문다웠다. 드레이코는 제 모욕적인 언사에도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이미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상의를 벗어라, 드레이코.”

드레이코의 칼과 포크를 쥔 손이 멈칫했다.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얼굴은 학창시절 교수의 모습 같았다. 혼내실 건가요? 드레이코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젓고 드레이코를 똑바로 보았다. 드레이코는 그릇 위로 칼과 포크를 내려 놓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질 좋은 실크 블라우스의 단추를 푸는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스네이프는 드레이코의 절상 위로 부풀어 오르거나 짓무른 새 상처들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너는 지금 너를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드레이코. 내가 이전에 말했던 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너를 격려하고자 한 거다.”
“하실 말씀은 그게 다신가요?”
“드레이ㅋ-”
“교수님이야말로 오늘 굉장히 외롭고 슬퍼 보이신다는 걸, 저도 말씀드려야겠어서.”

스네이프는 눈을 부릅 뜨고 드레이코를 노려 보았다. 어렸던 제자들이, 포터든 드레이코든, 이렇게 자신을 간파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볼드모트도 속였던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어디로 갔는지. 어쩌면, 내기니의 독니에 찔린 순간 그 스네이프는 죽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스네이프는 눈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시선을 틀어버렸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가 만나자는 편지를 보낼 때부터, 저 모습을 예감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 노잼..
다음편은 (제 기준) 진짜 재밋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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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999년 5월 31일, 월요일. 오늘은 해리의 마지막 오러 근무일이자, 스네이프가 맥고나걸에게 약속했던 애니마구스 수업의 기한 마지막 날이었다.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를 잡은 공과 상해 피해를 입었던 점을 고려해, 오러국장이 지급한 보너스로 해리는 출근 마지막 날 오러들에게 간식을 나눴다. 론이 좋아하는 집 근처 머글 베이커리의 케이크와 쿠키들이었다. 다들 머글의 솜씨에 놀라워하며 위치를 묻기도 했다. 그 뒤에 동료들과 상사들은 해리가 오러 일을 관두고 뭘 할 건지에 대해 물어 왔다. 마법부가 아니라는 해리의 대답에 다들 놀라워 했다. 이미 해리 포터 이름 자체가 권력이긴 했지만, 실제의 권력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해리였다. 해리 대신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제 연인, 제 반려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그 어떤 동정도 가당치않았다.

“다쳐서 그만두는 건 아니지?”
“다치기 전 날 사표 냈다고 몇 번을 말해요! 그만 좀 장난쳐요, 네? 휴 씨.”
“하하, 녀석. 틱틱대지 말고. 또 언제 보겠냐, 이 꼬맹이.”
“저랑 키도 비슷하시면서. 하아, 나중에 식 날짜 잡히면 연락드릴게요. 서운해마시고 잘 지내세요. 주문 항상 주의하시고.”

오러들이 으레 하는 인삿말이었다. 주문 항상 주의하시고. 해리는 이제 안전하지 않은 직장을 떠나, 제 반려의 곁으로 가게될 것이었다. 휴는 그것에 상당히 부러워하는 눈을 하고 봤다. 자신은 여즉 솔로인 것도 쓸쓸해 죽겠는데, 친한 후배까지 직장을 떠나고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니……. 해리 포터에게 부족한 게 뭔가. 외모, 인성, 명성, 재력, 평생의 반려자까지. 휴는 이토록 완벽한 남자의 애인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이 머글의 케이크 맛있는데. 사러갈 때, 근처 네 집에 들리고 해도 되나?”
“글쎄요? 세베루스가 휴 씨 싫어해서.”

해리가 웃으면서 휴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게 왜 세브에게 엄마 얘길 해서. 그 순간엔 팔을 두드리는 게 손바닥이 아니라 강한 힘이 실린 주먹이었다. 해리는 여전히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하하, 휴는 약간의 오싹함을 느끼며 해리와 마주 보고 웃었다.

해리는 휴와 대화하며 스네이프를 떠올렸다. 스네이프는 저번주 금요일에 오늘, 학교에 같이 가자고 해리에게 말했다. 늘 점심 때에 수업을 받으러 가던 스네이프였다. 그래서 그 시간엔 근무 중이라 했더니, 저녁시간으로 미리 시간을 변경했다고 말하던 그였다. 해리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스네이프는 떨떠름한 얼굴로 맥고나걸 교수가 그러라고 했다고만 대답했다. 궁금했던 해리는 스네이프 몰래 맥고나걸에게 편지를 보냈다. 해리는 답장을 받고서야 상황을 알았다. 스네이프는 애니마구스를 성공할 수 있으면서도 계속 변신을 미루고 있었다. 암사슴이 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그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아서, 해리는 가슴이 찡하고 미안했다.

“그럼 한동안 못 만나니 끝나고 리키 콜드런 가서 한 잔 할까? 다른 오러들도 불러서. 론이랑 제인이랑 또….”
“아, 죄송해요 휴 씨. 오늘은 선약이 있어요.”
“하긴, 유명인 포터 씨가 출근 마지막 날에 선약이 없을 리가 없지……. 네 애인이지, 임마?”
“네, 당연하죠.”

뻔뻔한 얼굴로 해리는 끄덕였다. 그 때 긴급쪽지 여러 다발이 부서 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오러들은 주전부리를 먹으며 쉬다가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해리도 한 번 숨을 뱉은 뒤, 마지막 업무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맥고나걸 교수님.”

교장실 벽난로로 퇴근 한 해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맥고나걸의 옆에는 먼저 와 있던 스네이프가 팔짱을 낀 채 서있었다. 해리는 교장실의 스네이프 초상화가 저를 뚫어져라 보는 걸 느끼며 싱긋 웃었다. 해리에게는 출근 마지막 날이라 하더라도, 오러들의 월요일 업무 강도는 셌다. 퇴근 시간보다 좀 더 늦어져서 해리는 두 교수를 기다리게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은사는 이해해주었고, 애인은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심기를 표출했다. 스네이프의 옆으로 얼른 붙어 서며 해리는 움직이는 계단을 내려 왔다.

대연회장으로 맥고나걸이 앞섰고, 그 뒤의 연인은 늦었다며 타박하고 일이 많았다고 사과 하는 귀여운 대화를 나눴다. 맥고나걸은 미소를 띄운 채 복도를 걸었다. 스네이프가 학생이었을 적도, 해리가 학생이었을 적도 아직 눈에 훤한데 어느새 둘 다 저렇게 컸는지 몰랐다.

시험의 시작이 6월 1일 내일부터였다. 대연회장은 침체 된 분위기로 이미 식사중이었다. 그러나 오러 정복을 입고 교수석에 나타난 해리 포터를 발견하자, 학생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저기서 감탄의 욕설이 들려 와서 해리는 민망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호그와트의 학생들은 10대들이라 놀라움의 표현 방식이 다소 과격한 면이 있었다. 스네이프는 미간 사이를 구겨 좁혔다. 이 트롤의 발톱 때 같은 놈들.

해리를 보자마자 들떠서 소란스러워진 장 내에 맥고나걸이 조용! 외쳤다. 마법으로 키운 목소리라 홀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에 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멋있다, 잘생겼다, 섹시하다 등의 해리가 듣기에 매우 부끄러운 말들이 들려왔다. 해리는 모르는 척, 해그리드를 비롯 교수진들과 악수를 하며 바쁘게 굴었다. 스네이프는 가운데 교장석에 앉은 맥고나걸의 옆에 앉았다. 해리도 뒤따라 스네이프의 옆에 앉았다. 이제 학생들은 잊혀져 가던 스캔들의 두 주인공이 나란히 앉은 모습에, 저들끼리 미친듯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좋겠군, 포터.”
“네? 세브, 당신까지 저 놀리는 거예요?”
“아니, 기분 나빠.”

하, 해리는 그 대답에 웃음이 튀어 나오려 했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불특정 다수에게 인기 많은 애인에 질투하고,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하는 불퉁한 모습이라니. 진짜 정말 현기증이 나게 귀여워서, 해리는 입을 틀어 막고 잠시 제 안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 키스하고 싶어 어떡하지.

해리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그릇에 맛있어 보이는 건 무조건 다 덜어주었다. 스네이프가 인상을 구겼다.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 포터. 그러면서 제 그릇에 해리가 덜어준 음식을 해리의 그릇으로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들은 서로 투닥대며 음식을 나누는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충격적인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설마, 진짜로……? 저 둘, 사귀는 거 맞아?! 그럴 리가 있냐는 소리와 멀린, 세상에! 를 외치며 이제 둘의 관계를 믿기 시작하는 여론이 스네이프와 해리의 귀로 들려 왔다. 스네이프는 이 소리들을 다른 교수들도 듣고 있겠지, 생각하니 몹시 무안해졌다. 해리는 그러나 여전히 싱글거리면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잘 먹어요, 세브. 그래야 변신 성공할 힘이 나죠.”
“……먹고 있어.”

스네이프는 해리의 옆에서 더 포크를 깨작이게 됐다. 쳐다보는 시선과 쑥덕이는 소리들이 너무 잘 느껴지고, 잘 들렸다. 그래서인지 제 마음보다 해리에게 더 틱틱대는 투가 나가서 신경쓰였다.

“학생들은 우리가 연인인 게 신기한가 봐요.”

저들은 저학년을 제외하면 전부 스네이프가 가르친 학생들이고, 해리와 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 그들이 지금 얼마나 놀라고 충격받았을지 생각하면, 해리는 박장대소를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스네이프는 교수의 위치라서인지, 나이가 해리보다 훨씬 많아서인지 부끄러운 게 더 큰 것 같았지만 해리의 눈엔 귀엽기만 했다.

“앞으로 저도 교수로서 학교 나오면 이런 시선은 항상 따라올 텐데. 왠지 전 즐겁네요.”
“대체…. 난 너 같이 시선을 즐기는 데에는 면역이 없어서 말이다, 포터.”

스네이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해리는 싱긋 웃으며 찹스테이크를 포크로 찔렀다.

“전 지금까지 받아본 관심 중에 오늘이 제일 신나는데요. 세베루스 당신이랑 같이 주목되고 있는 게. 안 믿는 사람이 없도록 여기서 키스하는 건 어떨까, 지금 생각하고 있거든요.”

뭐라고?! 스네이프는 얼어붙은 얼굴로 해리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리가 저를 놀리는 데 취미가 붙어버려선 곤란했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해리를 향한 관심의 목소리를 불편하게 청취하며 포크를 깨작였다. 이렇게 타인이 제 연인을 탐내는 걸 듣고 있기가 거북스러웠다. 게다가 저는 해리처럼 잘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이도 너무 많고…… 성격도 더럽지, 그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스네이프는 넘어가지 않는 식사를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이는 걸 간헐적으로 힐끗거렸다. 성격 더러운 양반이니 질투가 심하게 나서일 수도 있고, 자학 경향도 있으니까 비난을 스스로에게 굴절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당신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데. 웅크리고 삐죽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작은 한숨과 더불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음, 어쩌지. 잠시 생각한 해리는 체리 하나를 포크로 찔렀다. 그리고 아- 하며 스네이프의 입술 앞에 갖다 대었다. 순식간에 붉어진 얼굴로 스네이프가 당황했다.

“너, 무슨….”
“세브, 내 체리 받아줘야죠.”

아, 이런 빌어먹을. 스네이프도 체리의 다른 뜻을 알고 있었다. 스네이프가 눈으로 해리를 흘겼다. 그러나 받아 먹기 전까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한참 망설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렸다. 씨익 웃은 해리가 스네이프의 입 속으로 체리를 넣었다.

“아-”

해리가 이번엔 손가락으로 제 입을 가리켰다. 스네이프는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해서 쿡, 포크로 체리를 쑤셔 박듯이 찔렀다. 자신의 체리를 해리의 입에 밀어 넣어준 뒤, 스네이프는 벌떡 일어나 식탁에서 나가버렸다. 해리는 큭큭 웃다가, 눈 앞의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 윙크 했다. 이 광경을 본 호그와트의 어린 10대들은 얼굴을 붉히며 저들끼리 모여 난리를 부렸다. 이 날 이후로 호그와트의 커플 사이에 체리를 나눠 먹는 유행이 생겼다는 사실은 교수들의 ─특히나 슬리데린의 오랜 사감의─ 뒷목을 잡게 했다.


“삐졌어요?”

맥고나걸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선 해리가 스네이프를 뒤쫓아 왔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절 쫓아옴에도 성큼성큼 복도를 앞섰다. 해리는 그런 스네이프가 귀여웠지만, 수 틀리면 바로 주문을 쏠 것 같아서 입을 사렸다.

“미안해요, 세베루스. 그래도 키스를 한 건 아니었잖아요.”

서로의 입 속에 체리를 넣게 해놓고, 키스가 아니었다는 방패를 내세우다니. 스네이프는 머리 끝까지 붉어져서 해리를 홱 돌아보았다. 갑작스레 멈춘 스네이프에 해리도 간신히 발을 멈췄다.

“아주 잠자리를 가진다고 광고를 하지?!”

새빨개져서 쏘아붙이는 스네이프를 보고 있자니, 해리는 당장 옆의 빈 교실에 그를 몰아 넣고 바지를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상상으로만 그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이제 아무도 우리 사이 의심 안 할 걸요?”
“미친 놈! 또라이─ 이 머저리 포터가─”
“세베루스, 흥분 가라앉히고 교장실로 올라가요. 애니마구스 연습하는 거 보고싶어요.”

스네이프의 어깨를 감싸면서 해리가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씩씩대던 숨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여전히 부끄럽고 창피하고 화가 났지만, 해리의 품 안에서 나는 체향에 안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스네이프는 그럼에도 해리를 툭 밀쳐내고 걸음을 다시 옮겼다. 교장실까지 가는 동안 해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교장실에 들어선 둘은 덤블도어 초상화를 마주하고 묘한 분위기를 애써 숨겼다. 가늘어지는 반달안경 뒤 눈에, 잘못 걸리면 큰 일이었으니까. 스네이프는 숨을 가다듬고 지팡이를 내려 놓았다. 해리는 처음으로 보는 연습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완벽주의자인 스네이프는 성공하기 전까지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 거다.

지팡이를 내려 놓은 스네이프는 표정을 지웠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초상화 옆에 서서 실제의 그를 지켜 보았다. 초상화가 저를 빤히 보는 시선을 해리는 내심 좋아했다. 해리가 초상화의 뺨을 손등으로 살짝 쓸어 내렸다. 초상화 속의 스네이프는 얼굴을 약하게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실제의 스네이프든, 그림 속 스네이프든 나를 좋아하는 구나. 해리는 미소 지으면서 스네이프가 눈을 감고 집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스네이프의 모습이 울렁이는 듯이 보였다. 이게 변신 전의 전조증상이군. 순식간에 금방 동물로 변하던 시리우스나 페티그루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울렁거리는 인간의 육체 너머로 동물의 형상이 잡힐 듯한 신기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금방이라도 변할 것 같은 순간에서 다시 돌아와 버렸다. 해리는 아쉽게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대단해요, 세베루스. 연습한지 한 달도 안됐는데.”
“…….”

해리를 잠깐동안 노려보며 스네이프가 호흡을 골랐다. 제 망설임을 들키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음,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님이 왜 절 부르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해리가 제 지팡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해리 쪽으로 다시 돌렸다. 해리는 사뭇 여유로운 태도로 저를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정복을 입고 제 초상화 옆에 기대 서있는 해리는, 연인인 스네이프로서도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근사하고 멋스러웠다. 제 초상화보다 더 그림 같아 보였다. 스네이프는 불시에 해리의 까만 흑발과 녹색 눈을 홀린듯이 바라 보았다. 해리의 오른손이 제 지팡이를 들더니 부드럽게 공중을 그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진중하고 청아한 해리의 목소리에 이어 발을 구르며 은백색의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지팡이 끝에서 튀어 나와 교장실의 공중을 빙글빙글 돌았다. 스네이프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 보다가, 수사슴이 웅장한 뿔을 흔들며 제 앞으로 다가와 서는 것에 움찔 놀랐다. 수사슴은 그러나 물러난 스네이프의 거리만큼 다가왔다.

스네이프가 침을 삼켰다. 달빛을 닮은 동물은 스네이프에게 애정어린 몸짓으로 머리를 기댔다. 해리는 지팡이를 쥔 손으로 팔짱을 끼고 선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반영인 수사슴은 제 반려를 알아보는 듯 했다. 스네이프는 제 목덜미의 번개무늬 흉터를 핥아주는 수사슴에 큭,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포터, 너랑 똑같군. 스네이프는 이제야 마음 가득 평온함을 느꼈다. 전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해리는 제 수사슴 패트로누스 옆에 선 암사슴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은백색이 아닌 실제 암사슴의 부드러운 갈색 털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암사슴의 유순한 까만 눈동자에서 해리는 익숙한 밤하늘을 느꼈다. 해리가 온 생을 걸고 헤매이고 싶은, 그 밤을 닮은 눈동자가 해리를, 해리만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무릎을 굽혀 앉아서 암사슴의 목을 끌어 안았다. 사랑해요, 세베루스. 암사슴은 해리의 정수리에 제 고개를 얹고 눈을 감았다.

“성공 축하한다, 세베루스.”

어느새 들어온 맥고나걸이 살짝 미소를 보이고 둘을 보았다. 해리가 몸을 일으켰다. 수사슴 패트로누스를 지팡이를 한 번 휘저어 없앤 해리의 옆으로,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스네이프가 다가가 섰다. 스네이프는 그간 절 가르쳐준 스승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감사하다는 말에 맥고나걸은 그간 저도 즐거웠다고 답했다. 그 긴 세월보다, 3주간의 애니마구스 수업 동안에 스네이프와 더 친해진 것 같아 은사도 기뻤다.

해리가 맥고나걸에게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해리를 올려다 보면서 그녀도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애니마구스를 배운 이유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은사의 물음에 스네이프도 해리도 흠칫 놀랐다. 스네이프는 또 한 번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세베루스가… 이유를 안 밝히고 배웠었나요?”
“그는 꽤 수줍음을 타잖니, 해리.”
“어…… 그런데도 가르쳐주시려고 이렇게 배려해주시고…… 정말 거듭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해리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스네이프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에, 차가운 제 손등을 대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 이유는 안 가르쳐줄거니?”
“……세베루스를 존중해서, 저희가 생각했던 일이 성공했을 시에 바로 알려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건…… 저희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해요, 교수님.”

스네이프는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을 것 같았으므로, 해리가 대신 말을 하고 마지막 인사까지 했다. 은사는 점점 더 궁금해졌지만 그들에게 간절한 일이라니 고개를 끄덕여 응원했다. 해리가 먼저 교장실의 벽난로로 넘어 갔고, 스네이프가 맥고나걸을 보고 망설이더니 결국에 살짝 그녀를 안았다가 떨어졌다. 스네이프가 먼저 한 포옹은 생전 처음이었다. 짧은 찰나였지만 맥고나걸은 몹시 놀랐다. 해리를 만나고 나서부터 스네이프의 변화가 놀라울 뿐이었다.

“잘 가거라, 세베루스. 또 보자.”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수님. …그럼.”

정중하고 칼 같은 제자는 금세 벽난로 너머로 사라졌다. 맥고나걸은 다음날부터 있을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책상으로 걸어 갔다. 어쩐지 앞으로도 재밌는 소식을 들려줄 것 같아. 그녀의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스네이프가 벽난로를 통해 집으로 넘어오자마자였다. 해리가 스네이프에게 와락 달려들더니, 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성공! 성공했다구요, 세베루스!! 성공이라고요!! 신이 나서 저를 안고 방방 뛰는 제 강아지를 내려다 보던 스네이프가 피식 웃었다. 어지럽다, 내려 놔, 포터. 그 말에 해리가 여전히 몸을 꽉 끌어 안은 채로 스네이프를 내려 놓았다. 스네이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면서 해리는 신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1단계가 성공했을 뿐인데 요란 떨기는. 그렇지만 스네이프도 해리가 좋아하는 걸 보면서 기뻤다.

“나는 오늘 세브가 성공할 줄 알았어요. 으으응, 너무 좋다.”

제 품에서 해리는 만족스러운 숨을 쉬었다. 스네이프가 언제까지 질척일 거냐고 물었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니예요? 해리가 짐짓 삐진듯이 스네이프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스네이프는 통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해리와 눈을 마주할 뿐이었다. 해리는 결국 떨어지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스네이프에게서 물러섰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다시 여유로운 표정이 되었다. 스네이프는 로브를 벗어 걸면서 해리를 흘낏 보았다. 저 놈 또 왜 저래?

“성공 보상이요, 세베루스.”
“아…….”

그거였나. 스네이프는 재는 듯한 시선으로 정복 차림의 해리를 훑어 보았다. 확실히, 지금 드는 이 기분을 천박하게 표현하자면 ‘꼴렸다.’

“하기 싫어하더니, 왜 네가 더 신난 것 같지, 포터?”
“연기잖아요. 저 이젠 오러 아니고 당신도 범죄자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인 해리가 허리에 양 손을 얹은 채 뻔뻔하게 스네이프를 보았다. 몇 시간 전까지도 오러 업무를 보고 왔으면서, 정말 뻔뻔하게 선 긋는군. 스네이프는 지팡이를 들어서 제 서재의 문을 열었다. 조지에게 납품 할 사랑의 묘약이 숙성중인 서재였다. 지금 스네이프에게는 온통 해리의 냄새가 서재에서 가득 풍겨왔다. 해리에게는 저의 냄새가 느껴질 공간이었다. 스네이프는 그 생각으로 살짝 아래가 서는 것을 느꼈다.

“저기서 하자고요? 흐음.”

정말 음탕하시네.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서로의 향이 느껴지는 공간은 최음제를 다량으로 풀어놓은 느낌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몽롱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벌써부터 풀린 해리의 얼굴에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그 자신도 그렇게 여유는 없었다.

“범죄도 종류가 있는데…. 어떤 설정으로 해요?”
“다른 데서 죄목을 찾을 필요가 있나? 난 데스 이터였다.”
“그럼 제가 너무 과하게 몰입 될 것 같아서 그렇죠! 그건 싫어요.”

그렇게도 볼드모트의 수하였던 자신이 싫은가 보다. 스네이프는 웃음을 흘리며 곰곰히 생각했다. 역시, 처음 생각했던 그대로가 좋았다.

“……나는 과하게 몰입한 너에게 당해보고 싶은데.”

멈칫, 해리의 풀렸던 눈에 형형한 기가 어렸다. 스네이프는 허리 뒤축에서 찌릿하게 올라오는 흥분을 느꼈다. 순식간에 오러 해리 포터에게 붙잡힌 데스 이터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해리는 이미 저를 집어 삼킬듯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가 하, 하고 스스로를 조소했다. 눈 앞의 해리는 제 연인인데, 순간 겁을 먹었다는 게 우스웠다.

스네이프는 제 서재를 눈에 담았다. 세 개의 벽에 천장까지 세운 책장에는 책이 가득 꽂혀있었고, 약물을 만드는 테이블에는 사랑의 묘약이 솥째 놓여 있었다. 문 옆에 위치한 자신의 책상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는─ 붉은색의 오러 정복을 입고 지팡이를 손에 든 잘생긴 오러가 서있었다. 그 오러의 음험한 암녹색 눈빛이 금방이라도 저를 해칠 것 같아, 데스 이터는 다리 사이가 뻐근해왔다.

“스네이프.”

학생일 때, 지긋지긋하게도 교수님을 붙이지 않고 저를 부르며 자신을 분노하게 하던 해리였다. 스네이프는 최근 1년간 들어본 적 없던 단조로운 스네이프에 뒷덜미부터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부르는 해리의 목소리에서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러 포터는 그저 날 잡아야 하는 데스 이터로밖에 보지 않는 구나. 그 사실에 흥분해버리는 자신이 스네이프는 역겹기도 하고, 파르르 몸이 떨리기도 했다.

“…포터, 네까짓 풋내 나는 오러 한 명이 나,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잡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 물론 당연히 다른 오러들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겠지만.”
“아니, 스네이프. 넌 나 혼자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너야말로…… 네 주인이 없는 곳에서는 별 볼 일 없다는 걸 나도 알거든.”

해리는 ‘주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살짝 망설였다. 아직 몰입이 덜 됐군. 스네이프는 그런 해리를 비웃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벤투스!”

해리에게만 특정 된 돌풍이 불었다. 책장 쪽으로 날아간 해리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책들을 프로테고로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집중 해, 포터. 네 앞에 있는 건 데스 이터다.”

해리는 짜증어린 눈으로 스네이프를 보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인카서러스!” 스네이프의 입을 제외한 가슴과 무릎이 밧줄에 묶였다. 바닥에 무릎 꿇어 주저앉은 스네이프가 하, 기가 막힌 웃음을 토했다. 해리는 꽤 화가 나 보였다. 차가운 얼굴로 해리가 책더미 사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묶인 스네이프에게 다가온 해리의 손이 머리채를 쥐고 위로 처들었다. 스네이프는 발기하는 것을 느꼈다. 허벅지 사이가 더욱 바짝 모여들었다. 머리채를 쥔 손에 두피가 당겨 화끈거리고 아프기도 했다.

“건방지게 굴지마,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이제 완전히 발기했다. 당장에 저 난폭한 오러의 아래에 깔려 다리를 벌리고, 숨을 헐떡이고 싶어졌다.

“내 ‘주인님’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당할 애송이가…… 윽!”

머리채를 쥔 손에 힘이 더 가해졌다. 스네이프는 더욱 홧홧하게 당기는 두피에 인상을 찡그렸다. 제 도발이 기가 막히게 먹혀 든 모양인지, 해리는 진심으로 열이 받은 표정을 했다. 저렇게 화가 난 해리 포터도 오랜만이었다. 스네이프는 우습게도 웃음이 나와서 한 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절 비웃는 스네이프에 해리가 이를 꽉 물었다. 욕설을 짓씹으며 그의 등 뒤로 돌아갔다. 스네이프는 제 시야에서 사라진 해리에 불안해졌다.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제 뒤에 앉은 해리가 지팡이를 칼처럼 들고 무릎을 묶은 밧줄을 한 순간에 끊어냈다. 이제 스네이프의 몸에는 팔과 가슴을 함께 조이는 밧줄만이 남았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다리가 자유로워지자마자 뒷목을 손으로 잡고 꽉 눌러 머리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스네이프는 목 안으로 고통의 신음을 참았다. 정말로 지금 자신은 오러의 아래서 제압당하는 모습이었다.

주인님이라는 말에 이 정도로 진심이 되다니. 스네이프는 해리의 순정을 비웃었다. 어차피 오물처럼 더러웠던 자신의 진짜 과거인데, 해리가 부정한다고 사실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스네이프는 기꺼이 저의 과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하… 이 정도로 나를 제압했다 믿는 건 아니겠지? 해리 포터.”
“아직까지 나불거릴 힘이 남았나, 스네이프? 넌 지금 지팡이도 없고, 내 손에 붙잡혀 있-”
“날 지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둠의 마왕 뿐이다, 포터. 너 같은 애송이는 그 분의 위대한 힘 앞에선…… 아윽!”
“입 닥쳐, 스네이프!!”

해리는 정말로 화가 났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질투심과 소유욕, 정복욕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한해선 볼드모트에 비할 바가 못됐다. 당신은 내 거야, 세베루스. 어둠의 마왕 따위의 것이 아니라고. 해리는 스네이프의 바지를 붙잡고 아래로 당겼다. 벨트 탓에 벗겨지는 것이 어렵자 생각할 것도 없이 지팡이로 벨트를 끊어 버렸다.

스네이프의 하반신에 싸한 기가 돌았다. 무릎까지 벗겨진 바지 탓에 아래가 서늘했다. 해리는 하얀 엉덩이를 보는 순간, 왼쪽 눈을 찡그리고 인상을 구길 정도로 흥분했다. 눈 앞으로 스네이프의 몸이 저에게 먹히기 위해 하얗게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팔이 뒤로 묶여 엎드린 채, 뒤에서 벨트를 푸는 철컥이는 쇳소리를 들었다. 이미 발기했었던 제 것에서 물이 질질 흘렀다. 스네이프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제 성기를 비빗거리며 아래를 움찔였다. 해리는 그 모습에 비웃으며 성기만 꺼내서 제 오른손으로 쥐고 주물렀다.

“볼드모트만이 널 지배할 수 있다고?”

해리의 싸늘한 목소리에서는 기묘할 정도로 흥분이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응? 스네이프. 네 아래는 지금 내게 벌리고 싶어서 움찔대고 있는데.”
“흐, 읏….”
“지금 누구에게 지배 당하고 있는지 똑똑히 느껴, 스네이프.”
“헉….”

스네이프는 숨을 힘껏 들이쉬고 참았다. 해리가 제 입에 넣었다가 뺀 타액에 젖은 손가락 두개를 스네이프의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최근 관계를 가진지 조금 되었더니 삽입이 버거웠다. 진짜 해리에게 억지로 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스네이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점점 숨을 쉬기도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해리에게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제 안을 아프게 파고 들고 익숙하게 드나드는 손가락에, 스네이프는 눈이 풀려서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렸다. 하아, 아아…. 스네이프의 몸은 지나칠 정도로 해리에 길들여져 있었다. 사랑의 묘약에서 풍기는 해리의 냄새까지 콧속으로 짙게 스며 들어 정신이 몽롱했다.

해리는 미간을 좁혔다. 얼른 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제 성기에 피가 잔뜩 몰렸다. 성기 끝이 욱신이며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팠다. 당장 스네이프가 자신의 것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육신이 난리를 쳤다. 그러나 아직 제 큰 것을 밀어 넣기엔 윤활이 부족했다. 이성이 나갈 것 같은 순간에도, 스네이프의 몸에 흠집이 나는 것까진 원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침을 뱉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헉…… 앗….”

해리가 스네이프의 머리채를 쥐고 제 쪽으로 상체를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는 옆으로 기울어져서 해리의 하체에 얼굴을 처박았다. 눈앞으로 핏줄이 불거져 벌겋게 발기한 해리의 성기가 보였다. 스네이프는 잴 것 없이 입에 그것을 물고 흡입하듯 빨아 들였다. 하, 으윽…. 해리는 찡그리며 스네이프의 축축하고 더운 입 속으로 저를 바짝 밀어 넣었다. 스네이프의 좁은 목구멍에 귀두가 닿이고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는 그제서야 만족을 느꼈다.

스네이프는 벌써 머릿속이 흐릿했다. 해리의 성기를 본능적으로 빨아대면서 혀를 내어 밑둥을 핥았다. 선 굵은 핏줄마다 혀끝을 움직이니 해리의 몸이 움찔거렸다. 스네이프도 손을 내려 제 것을 만져대고 싶었다. 그러나 밧줄에 팔이 뒤로 묶여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런 압박적이고 강제적인 상황에, 만지지도 못하는 제 성기에서는 부끄러운 액이 조금씩 질질 새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귀 옆을 양 손으로 잡았다. 상체가 부자연스러워 제대로 고갯짓도 어려운 스네이프를 도와 그의 머리를 움직였다. 으응, 흠, 우, 읏…. 스네이프의 것에서 얇고 길게 끈적한 물이 떨어졌다. 해리는 숨을 거칠게 쉬며 허리를 처올렸다. 뜨겁고 습한 숨이 선단에 훅 끼쳤다.

“아……!”

해리가 급히 스네이프의 입 속에서 제 성기를 빼냈다. 멍하게 벌어진 입술과 붉은 혀가 시선을 현혹했다. 그러나 해리는 스네이프의 몸을 돌리고 팔을 배 밑에 넣어, 그의 엉덩이를 위로 들렸다. 골 사이에 사정이 임박한 귀두를 비볐다. 한순간에 정액이 뒷구멍과 회음부 아래쪽으로 뿌려져 흘러내렸다. 해리는 여운을 즐기면서 정액이 발린 엉덩이 골 사이에 성기를 몇 번 더 비볐다.

“하아…아……. 스네이프….”
“흐으응……포터….”

스네이프가 재촉하듯 엉덩이를 움직였다. 박아달라는 움직임이었다. 해리의 흥분에 흐려졌던 녹색 눈에 다시 안광이 돌았다. 스네이프는 팔이 묶인 채 겨우 머리만 바닥에 붙이고 엉덩이를 들어올린 자세였다. 저의 구속에 온전히 몸이 묶인 그의 모습이, 해리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해리가 빠르게 허리를 잡고 스네이프의 엉덩이를 더 들어 올렸다. 힘없이 딸려오는 하반신에 방금 전 사정했던 성기가 바로 반응했다. 하얀 엉덩이와 가느다란 허벅지가 벌려졌고, 골 사이에서 뭉근하고 불투명한 액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해리는 지체하지 않았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약속 된 천국에 바로 성기를 쑤셔 넣었다. 이 안을 맛본 건 나 뿐이야. 그에 대한 만족감에 해리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 잘난, 스네이프의 어둠의 주인마저 몰랐을 이 쾌감의 장소를 해리는 알고 있었다. 해리는 깊게 삽입하며 스네이프의 등에 제 가슴을 붙이고 몸을 숙였다. 스네이프는 순식간에 몸 안을 채우는 부피감에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다시 몽롱하게 눈이 풀렸다. 드디어 들어 왔다, 하는 생각에 앞이 왈칵 젖었다.

“이런… 만져준 적도 없는데 앞을 이렇게 적셨네? 이런 음탕한 노예를 네 주인은 알고 있을까?”
“으응, 흣…. 그 분을, 함부로 더러운 네 입에 올리지…… 마, 포터, 하윽….”

해리의 오른손이 빠르게 스네이프의 앞을 지분거렸다. 스네이프는 침을 흘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헉헉거렸다. 너무 기분 좋아, 멍한 머릿속을 채우는 건 오직 성적쾌감밖에 없었다.

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골을 바닥에 붙인 채 허리를 흔들었다. 아, 아으, 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머리로 스네이프는 멍청하게 신음만 내보냈다. 해리는 제 아래에 흩어진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붉은 귀와 내리깐 속눈썹 아래 탁하게 검어진 스네이프의 눈동자를 보았다. 이 사람은 내 거야.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내 거야……. 오직 그 생각만 하면서 스네이프의 안을 거칠게 들락거렸다. 제 아래에서 엉덩이에 힘을 주는 이 야해빠진 조임에 성기가 끊어질 것 같았다. 의식도 못하면서 제 성기를 꽉 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미칠 것 같았다.

“씹, 너무 조여….”

해리의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스네이프의 허리를 잡은 손바닥에도 질척이는 땀이 베였다. 해리가 겨우 바닥을 짚어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등 뒤에 팔이 묶여있던 밧줄을 풀어내자, 스네이프의 몸이 스르륵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밧줄에 조여지던 팔이 풀렸지만 스네이프는 그 팔을 꼼짝도 못했다. 인형 같이 늘어진 스네이프를 안아들며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과 마주 보며 박았다.

“좋아? 스네이프?”
“시끄, 러워…. 개소리 하지, 으앗, 헉….”
“내 자지를 이렇게 물어 놓고 아직도 반항하나? 네 위에 있는 게 지금 누군지 봐. 눈 감지 마,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 떴다. 해리를 보는 순간에는, 음습한 늪처럼 가라앉은 녹색의 눈에 빠져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스네이프가 힘없는 팔을 들어 해리의 목을 안았다. 해리가 허리 아래를 움직이며 스네이프의 목덜미에 번개 낙인을 미친듯이 핥았다. 발정기의 수캐처럼 제 아래의 암컷을 정복하듯 스네이프를 탐했다. 스네이프의 입에서 끊임없이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앙, 핫, 흐아, 포터, 흐응, 으, 읏- 싫… 싫어, 그마안, 으으응, 포터어…….

제 이름이 섞여 들리는 신음이 듣기 좋았다. 제 아래에서 맥을 못추며 허리를 흔드는 나른한 마른 몸이 좋았다. 대리석처럼 하얀 몸을 불긋하게 물들이는 게 저인 것이 좋았다. 해리는 이를 세우고 스네이프의 가슴 곳곳을 깨물었다. 유두를 물고 늘어지는 해리에 허리가 벌벌벌 떨렸다. 흐응…! 스네이프는 발끝을 오무리며 손끝까지 곱아들었다. 해리가 주는 자극이 온통 쾌감이었다. 사랑의 묘약을 몸 안에 솥째 들이부은 것만 같았다. 해리, 해리……. 풀린 까만 눈동자가 해리의 녹안을 쫓았다. 해리는 제 아래의 암사슴을 끌어 안고 키스했다.

“응…음….”
“으음…스네이프….”

역할극 중임에도 그가 사랑스러워, 어쩔 수 없이 해리의 눈이 부드럽게 풀렸다. 내 연인. 제가 이 세상에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오직 단 한 사람이었다. 다른 누구에게 뺏기고 싶지도, 그가 다른 누구를 원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었다. 다른 주인을 입에 올리는 그에 해리는 견디기 힘들게 화가 북받쳤다. 사실 더 엉망으로 스네이프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다. 제 분노는 이 정도가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바닥 아래의 그가, 결국에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서, 해리 포터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스네이프를 안은 채 급하게 허릿짓을 했다. 스네이프가 바르작거리며 흥분에 몸을 뒤틀었다. 해리의 뒤통수를 쓸어내리고, 붙잡고 얽히는 손가락에 해리는 슬며시 웃었다.

“당신 주인이 누구야? 스네이프.”

스네이프의 달뜬 눈이 해리를 보았다. 가슴이 흥분에 들썩거렸다. 빠르게 뛰는 심장이 해리를 향하고 있었다.

“포터…….”

스네이프가 고개를 꺾어 입을 맞춰 왔다. 해리가 손을 뻗어 그의 뒤통수를 받치고 혀를 깊게 섞었다. 서로에게 빠져서 키스하며 해리는 스네이프의 안에 사정했다. 안을 적시는 느낌에 스네이프의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엉덩이 사이로 흐르는 미묘하게 뜨거운 끈적임이 느껴졌다. 스네이프의 성기에서도 느슨한 분출이 이어졌다. 해리가 손으로 기둥을 쓸어, 진득하고 질척하게 사정을 도왔다.

스네이프의 혀가 해리의 혀를 옭아매었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두 눈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사랑해요, 세베루스.”
“나도, 해리.”

내 주인은 너야, 귀에 속삭이는 낮은 중얼거림에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 웃었다. 오늘밤은 유독 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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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스네] 구원자 22  (1) 2021.03.30

24.



바이탈 신호가 삐삐삐 규칙적으로 들렸다. 공중에 띄워진 형광연두색의 제 생체신호를 바라보다가 해리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치유사 한 명이 서있었다. 해리는 시선을 내려 환복을 입은 제 몸을 바라봤다. 병실에는 특유의 약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용한 병실로 미루어, 그 진동하는 약물 냄새는 제 몸에 들이부어진 약물의 냄새인 듯 했다.

치유사가 눈을 뜬 해리를 발견했다. 해리 포터씨? 물음에 해리는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치유사는 곧장 밖으로 나가, 가드 중인 오러 론에게 해리가 눈을 뜬 사실을 알렸다. 다시 해리에게 돌아온 치유사는 지금 속이 어떤지 물었다. 울렁거려요? 메스껍나요? 구토 하고 싶으신가요? 불편한 거 있어요? 해리는 살짝 속이 메스껍다고 말했다. 치유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약물을 준비하러 나갔다. 병실은 다시 제 생체신호의 소리만 들렸다.

세베루스는, 아직 내 소식을 듣지 못했나? 해리는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절 걱정하는 스네이프의 얼굴만 봐도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을 것이다. 게다가 말도 안되는 함정에 빠져 제 발로 적의 소굴까지 들어갔던 걸 알면…… 얼마나 한심스러워하고 제게 화를 낼지.

“해리.”
“론.”
“진짜 사람 좀 놀래키지 마, 너.”

A팀 오러들과 합류한 뒤, 론은 해리가 있을 사창가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이미 격전은 벌어진 뒤였다. 녹턴 앨리의 목격자들은 비협조적이다. 오러들과 론은 골목을 발로 뛰며 해리를 찾았다. 막다른 골목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해리를 발견했을 때, 론은 온 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다른 오러들이 근처의 데스 이터를 발견하고 병력을 소집했다. 론은 들것에 해리를 옮기고 오러들과 성 뭉고로 순간이동했다.

길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해리에게 치유사가 다섯이 달라 붙어 진단을 하고 치유마법과 약물 투여를 실시했다. 숨가쁘게 돌아가던 현장이 조금 나아졌을 때, 론도 제 숨을 토할 수 있었을 때에야 스네이프를 부를 생각이 났다.

“스네이프는 잠깐 밥 먹으러 갔어.”
“세베루스도 불렀어?!”

해리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윽! 바로 느껴지는 배의 통증에 해리는 웅크려서 소리도 못내고 앓았다. 이렇게 아플 수 있다니…. 론은 치유사가 두고 간 진통제를 해리에게 건넸다. 다행히 왼팔은 멀쩡해서 해리는 왼손으로 받아 마셨다.

“치유사들이 보호자가 필요하대서. 근데 스네이프가 너 다친 거 보고 눈 돌아가서 어쨌는 줄 알아?”
“뭐……?”
“널 이렇게 만든 용의자 어디 있냐고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오러들 밀치고 찾으려고 난리였어. 방금 전까지 충격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니. 네 마누라 무섭더라, 야.”

휴에게 듣고 웃은 호칭을 그대로 써먹으며 론이 싱긋 웃었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론을 쳐다보았다. 네가 지어낸 얘기 아니고? 그에 론은 웃음을 터뜨리며 목격한 오러가 스무 명은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휴 씨가 수면 물약 먹여서 억지로 재웠고, 깨고나서는 엄마랑 조지가 스네이프 데리고 저녁 먹으러 나간 거야.”
“뭐? 몰리 아줌마랑 조지…?”

해리는 더 기가 막혀서 눈만 동그랗게 키웠다. 몰리 아줌마랑 조지가 세베루스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수백 개는 뜨는 느낌이었다.

“해리 네 보호자가 잠들어 있는데 별 수 있냐. 치유사들은 자꾸 해리 포터씨 보호자 찾고, 그래서 우리 엄마 불렀어.”
“세상에…… 너무 죄송하고 감사해서 어떡하지. 세브가 잘 있을까?”

해리는 이런 식으로 스네이프가 위즐리, 특히 몰리와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어떨지 걱정도 되었다. 론은 너무 걱정 말라고, 조지도 같이 있다고 해리를 안심시켰다. 확실히 그 말에 마음이 좀 놓였다.

치유사가 메스꺼움을 없애는 약을 들고 들어왔다. 해리는 감사합니다, 인사 하고 약물을 받아 마셨다. 먹는 순간엔 메스꺼움이 증폭 되는 비린 맛에 토할 뻔 했지만, 금방 속이 편안해졌다. 치유사는 현재 포터 씨의 장기가 끊어져서 연결중이며 현재 시점까지 62%가 이어졌다고 가르쳐주었다. 또한 부러졌던 발목은 정상이 되었으나, 걷는 건 다음날부터 하기를 추천했다. 해리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유사가 나가자 해리는 론에게 물었다.

“그리드는?”
“벽에 부딪히면서 척추가 손상 됐어. 지금 치유사들이 뼈를 다시 재구축 중이야. 정신은 아직 안 돌아왔어. 정신 차리는대로 베리타세룸 먹이고 조사 시작될 거고. 그건 국장님이 할 거래.”
“그래? 그럼 뭐, 됐네.”

입원 핑계로 난 쉴 수 있겠다. 해리가 씨익 웃으며 론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게, 네 몫까지 앞으로 고생은 내 차지네, 해리. 론이 허리에 손을 차고 짐짓 한숨을 흘려 보였다. 해리는 배의 통증탓에 제대로 웃을 수가 없었다. 윽, 으흑, 웃기지 좀, 마, 론! 해리가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론이 통쾌하게 웃었다.

끼익, 뒤쪽의 문이 열리고 복도의 환한 빛이 길쭉하게 들어왔다. 해리는 바로 문을 돌아 보았다. 스네이프였다. 해리는 순식간에 죄인이 된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스네이프는 걱정으로 굳은 얼굴로 해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해리가 눈을 뜬 걸 보았다. 스네이프가 손을 뻗어 해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론은 연인간 특유의 손발이 곱아드는 분위기에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가드 일을 하러 병실을 나갔다. 약간 어둑한 병실에는 해리와 스네이프만이 남았다.

“세베루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많이 놀랐을 텐데….”
“그래. 많이 놀랐다, 포터. 네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니까.”

스네이프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 해리는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과 코 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바로 맺혔다. 세베루스를 이렇게 걱정시키다니 자신이 죽일 놈이었다. 스네이프는 어린 신랑이 눈물을 흘리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스네이프가 손등으로 해리가 흘린 눈물을 훔쳐냈다. 침상의 난간을 내리고 해리 옆에 앉았다.

“해리. 눈 떴으니까 됐어.”
“미안해요…… 미안해, 세베루스. 다치지 않도록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맞아. 그랬어야지.”

스네이프가 작게 웃으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의 오른뺨에 손을 올린 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두 얼굴이 마주 보았다. 해리는 물기 어린 시야로 스네이프가 흐려 보이는 것에 짜증이 났다. 해리는 고개를 숙여 스네이프의 뺨에 제 뺨을 붙이고 살끼리 비볐다. 눈물 탓에 축축하고 부드러운 해리의 뺨을 느끼면서 스네이프는 눈을 감았다.

“난동 부렸다면서요. 용의자를 찾아내서 어쩔 생각이었어요?”
“우선 네 장기처럼 그 놈의 내장을 다 끊어놓고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선사해줬겠지.”
“세상에. 세베루스, 토 나와요.”

큭큭 웃다가 또 해리는 배의 통증에 악 소리도 못내고 앓았다. 스네이프는 인상을 찡그리고 해리를 바라봤다. 아픈 걸 제가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속만 상했다. 이런 거지 같은 직업을 대체 왜 가졌냐고 해리에게 따지고 싶기도 했다. 제가 평화롭게 만든 세상에 목숨 걸고 또 무얼 지키고 싶어서. 해리는 바로 어제 오러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오늘 죽을 뻔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해리는 절대 죽을 뻔한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스네이프에겐 심각한 공포였다.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짓씹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괴로움이 가득차 보였다. 해리는 제가 느끼는 아픔까지 본인도 느끼려 하는 것 같은 스네이프에 미안하기도 하고, 애처로울 만큼 그가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해리는 스네이프 목의 번개 흉터를 찾아 입술을 맞췄다. 스네이프는 오늘 이른 아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해리에 저를 맡기고 있었다.

“해리, 용의자가 깨어났…! ……!!!!!”

스네이프는 밝은 복도의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문 앞에는 론이 서있었다. 론은 제 오랜 친구가 스네이프의 목덜미를 애무하는 듯한 모습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해리는 론이 문을 연 걸 알았음에도, 아직까지 스네이프의 목에서 얼굴을 거둬가지 않았다. 결국 스네이프가 해리를 떼어내었다. 론은 기가 막힌 듯 둘을 바라봤다. 해리는 아쉽다는 얼굴로 스네이프의 목을 보다가 짜증스런 시선을 론에게 던졌다.

“국장님이 알아서 조사 하신다며. 왜 방해하고 난리야, 론.”
“하…! 하…! 나 참내…! 야, 해리, 내가 너 발견해서 살려서 여기까지 데려왔거든…!!”
“그건 고마워.”

론은 기가 막혀서 하! 참나! 하! 하고 헛숨을 쉬며 문을 쾅 닫았다. 해리는 또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횡격막을 붙잡고 꾹 참았다.

“헤르미온느랑 키스해대던 론에게 복수하는 기분이라 즐겁네요.”
“지니 위즐리랑은 안 이랬나?”

컥! 해리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레에 들릴 뻔했다. 사레를 참았다지만, 허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아서 해리는 난간 한쪽을 붙잡고 목 안으로 고통스런 비명을 참았다. 스네이프는 쯧, 혀를 차고 쌓여있는 진통제를 건넸다. 해리는 이제는 생리적인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약을 또 받아 마셨다.

“지니는 아직 학생이라고요. 아으으….”
“그래? 네가 날 물고 빠는 걸 보면 거의 섹스중독 수준이지 않나.”
“세베루스, 그건 당신이니까….”

당신이 날 꼴리게 만들어 놓고 어떡하라고요, 해리는 입 안으로만 맴도는 말을 짓씹어 넘겼다. 갑작스레 스네이프가 지니를 언급해서 너무 놀라, 사리분별 없이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해리는 진통제를 마신 입술을 닦으며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표정.

“오늘 학교에 갔어. 미네르바에게 애니마구스를 배우기로 했다.”
“아, 정말요?! 잘 배우고 왔어요?”

해리는 반색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에 빛이 들어왔다.

“내 생각보다 더 어려워. 짜증스럽더군. 이렇게까지 했는데 결국 내가 암사슴이 안 되면 어쩌나 싶고.”
“당연히 되죠. 너무 걱정말아요. 당신은 내가 아는 마법사 중에 제일 대단하니까요, 세브.”
“흥, 우습군….”

아부 하지 않아도 노력할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해리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내렸다. 기분 좋게 웃으며 저를 보는 해리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수업을 받고 돌아왔는데, 다쳤다는 심장 떨리는 소식이나 전해주는 미운 연인이라니. 퇴원하자마자 집에 가둬놓을까, 스네이프는 바로 어제 자길 가둬놓고 싶다던 해리의 말에 기겁한 걸 스스로 뒤집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지니 위즐리를 만나서 대화도 했다.”
“네?”

해리가 눈을 키웠다. 스네이프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해리를 봤다.

“이제 널 다 잊었다던데? 몰리보다 받아들이는 게 낫더군.”
“아…….”
“이제 부담 갖지 마라, 포터. 위즐리들은 이미 널 받아줬으니까.”
“세베루스도 함께요? 몰리 아줌마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어요?”
“뭐, 예전과 비슷하게.”

해리는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네이프가 거짓말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큰 산 이었던 벽 하나가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위즐리 가족, 헤르미온느를 비롯한 해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차례로 스네이프와 자신의 관계를 받아들여줘 간다. 그들이 저를 아껴서일까? 세베루스가 사실은 사랑 받아 마땅한 사람이어서일까? 이것이 제 주관적인 기준이라 해도 좋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그 견고한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해리가 스네이프의 어깨에 멀쩡한 왼팔을 둘러 끌어 당겼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얼굴 옆으로 제 머리를 붙이며 얌전히 안겼다. 해리의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고, 물약 냄새가 섞인 체향이 코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평소와 다른 냄새에 스네이프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병원의 냄새가 묻은 해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른 회복해라, 포터.”
“네, 빨리 나아서 집으로 돌아갈게요.”
“그래…. 나도, 애니마구스 열심히 배워 놓겠다.”
“응. 고마워요. 정말 사랑해요, 세베루스.”

부드럽게 입술이 닿였다. 살짝, 살짝 서로의 입술을 축이듯 조심스럽고 간지러운 키스였다.


해리가 입원한 후로 나흘이 지났다. 타임터너 탈취미수 용의자였던 그리드 파인즈는 베리타세룸을 마시고 오러국장의 앞에서 진실을 술술 불었다. 연계 돼있던 다른 데스 이터 두 명이 더 잡혔고, 스큅 창부는 여럿이 매수 된 상황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해리를 노린 이유는 역시나 해리 포터가 이 마법세계의 구원자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해리는 오러이기까지 했다. 오러국장실에 보관중인 타임터너를 탈취하기엔 해리를 이용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해보였을 터였다. 그리드는 해리의 머리카락을 채취해, 폴리주스로 변신을 한 뒤 마법부에 침입할 예정이었던 것까지 아낌없이 발설했다. 마법세계 영웅의 모습에다, 오러가 오러국장실을 찾는 것은 전혀 의심 받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해리는 자신이 그들에게 납치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수사 결과를 듣고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 신물 나는 마법사회는 해리 포터를 어떻게든 이용하려 들려고 야단이었다. 운명의 장난으로 그 빌어먹을 번개무늬 흉터가 이마에 새겨진 이후로, 해리의 인생은 해리의 것만이 아니었다. 물론 스네이프의 인생도 스네이프의 것이 되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스네이프 또한 해리에게 삶이 종속되었다. 그리고 이제 스네이프는, 기꺼이 해리 포터만을 지키며 살겠다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파인즈, 그 놈은 꼭 내 손으로 죽여 놓겠어.”

말포이 저택의 식탁에도 앉지 못했던, 그 젊은 데스 이터 놈 따위가, 감히. 스네이프가 그 말을 할 때, 너무나 차갑고 매서워 보여서 해리는 이미 그리드가 아즈카반에 수감된 상황을 몹시도 다행히 여겼다. 아무리 대상이 데스 이터라고 해도 사람을 죽여서는 제 연인이 살인자가 돼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그걸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인 걸 알았기에, 해리는 차갑게 분노를 표출하는 그의 앞에서 등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해리의 끊어졌던 장기는 다시 잘 연결되었다. 과연 성 뭉고 최고의 치유사들다웠다. 산재 처리 되어 해리의 치료비, 입원비도 마법부에서 모두 내주었다. 해리는 다른 오러들이 바쁘게 일하는 동안, 그저 병실의 침대에 편안히 누워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맞아주기만 하면 되는 날들을 보냈다. 유일한 고난은, 장이 연결된 후 첫 식사로 나온 오트밀 죽이 정말 엄청나게 맛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스네이프가 챙겨주는 고단백, 고영양에 맛까지 끝내주는 식사가 그리워 해리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포터 씨, 오늘 퇴원하셔도 됩니다. 주말까지 머무르고 싶으신가요?”

해리는 토, 일요일 출근을 할까, 병원에 주말 이틀 더 박혀 있을까를 두고 잠깐 고민했다. 어쨌든 직장에 나가더라도 스네이프가 덜 고생하게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간 스네이프가 보호자 침대에서 그 긴 몸을 쭈그리고 자는 게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마법으로 더 늘린 침대였는데도, 해리 눈엔 정말 불쌍해 보였다. 집에 가라고 해도 네가 없는 그 큰 집이 싫다, 하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그가 사랑스러웠다. 그렇지만 스네이프가 계속 해리의 병실만 지킨 건 아니었다. 점심 때부터 2시 반까지는 호그와트로 애니마구스 수업을 받으러 다녀왔다.

애니마구스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스네이프는 굉장히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해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텐데, 스네이프는 이상하게 초조해보였다.

“…세베루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팡이를 내던지며 보호자침대에 주저앉은 그는 짜증스럽게 팔짱을 꼈다. 해리는 머쓱하게 스네이프를 보았다.

“오늘 퇴원하기로 했어요. 짐은 챙겼고, 3시까지 퇴원 수속하면 된대요.”
“뭐? 퇴원? 정말로 가도 된다고? 아직 아픈데 네가 고집부린 건 아니겠지!”

짜증이 묻어난 신경질적인 말에 해리는 한숨을 쉬었다. 저 모습은 애니마구스 수업 탓이다.

“저 진짜 괜찮아졌어요. 치유사가 퇴원해도 된다 그랬다니까요.”
“확인하고 오지.”

스네이프가 로브를 펄럭이며 일어섰다. 해리의 미간도 순간 좁혀졌다.

“세베루스! 내 말 못 믿는 거예요?!”
“그냥 확인한다고! 소리 지르지 마.”
“제가 언제 소리를 질렀다고 그래요! 세브 당신이나 나한테 짜증부리지 말라고요.”
“내가 누구때문에 그 수업을 받는데……!”

왈칵 분노를 쏟아내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정말이지 익숙한 교수의 모습 그자체였다. 해리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고 찡그렸다.

“세베루스, 맥고나걸 교수님조차도 애니마구스 익히는 데는 한 달이나 걸렸다고 하셨다면서요. 힘든 마법인 건 이해해요,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면 오히려 좋아질 수도…….”

이미 해리가 여러 차례 얘기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스네이프는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초조함을 숨겼으나, 갈수록 자신의 응원에도 쉽게 반박하고 짜증을 부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콧방귀를 뀌고 차갑게 병실을 나가 버렸다. 아마도 치유사에게 퇴원 확인을 물으러 갔을 것이다. 해리는 한숨을 내쉬면서 환복의 단추를 풀었다. 피와 흙이 묻은 정복에 대충 얼룩을 제거 하는 마법을 걸고 입었다.

스네이프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말없이 해리의 짐가방을 들고 병실을 먼저 나갔다. 병원의 벽난로에는 퇴원 줄이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플루 이동도 퇴원하는 환자 몸에 부담일 수 있지만, 순간이동보다는 나은 방법이긴 했다. 스네이프는 긴 줄을 보더니 해리의 손목을 잡고 문 쪽으로 이끌었다.

“뭐예요?”
“지하철이나, 택시… 그걸 타도록 하지.”
“머글 돈이 지금 없는데요?”
“컨푼더스를 걸면….”
“세베루스, 그걸 범죄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난 아직 오러 신분이거든요.”

돈을 안 내려고 머글에게 혼동마법을 쓰자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머글의 운송수단이 느리긴 하지만 제 몸에 부담이 덜 가는 방법이긴 했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갔다가 기사를 기다리게 하고, 머글 돈을 쥐여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성질을 부렸다. 해리는 더 이상 스네이프의 화를 돋우기 싫어서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택시를 타고나서도 스네이프는 냉전을 지속했다. 해리는 원하지 않은 전쟁이긴 했지만, 그걸 받아들여주는 것도 제 몫인 듯 했다. 스네이프는 지금 제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여전한 남성의 몸으로 그런 생각을 해주고 있는데다, 실제 마법 배우기에 애쓰고 있는데 제대로 되고 있지도 않았다. 애니마구스를 성공한 이후에도 그가 진짜 암사슴이 될지, 정말 암사슴이 된다 하더라도 스네이프가 생각한 여성생식기관만 몸에서 변화시키는 방법이 가능할지 아무도 몰랐다. 그가 초조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 같았다.


해리가 현관문을 닫았다. 스네이프는 집으로 가서 머글 돈을 찾아와 기사에게 돈을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의 뒤통수를 내려다 보던 해리가 스네이프 옆의 바닥에 앉았다. 슥, 슥 뒤통수를 쓸어내리니 스네이프는 움찔하더니 그냥 그대로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먼저 아이를 원했는데, 당신 혼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어서요.”
“시끄러워. 나도 내 아일 갖고 싶어져서 하는 거니까.”

그 말엔 해리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사락, 사라락 소리가 들리는 스네이프의 얇고 까만 머리카락의 느낌도 좋았다.

“빌어먹을, 그 제임스 포터 놈도 했는데 내가 이렇게 갈피를 못 잡다니.”

그게 제일 분했다. 스네이프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삭혔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스네이프의 등을 토닥였다. 어쨌든 해리에게는 제임스가 아버지였으므로 이럴 때마다 눈치를 보게 됐다. 게다가 외모적으로도 너무 닮아서, 이젠 스네이프가 절 아빠와 겹쳐 보지 않는다지만 역시 신경이 쓰였다.

“우리 아기 이름이나 생각해볼까요?”

이럴 땐 화제를 돌려야 한다. 스네이프가 소파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돌려 해리 쪽을 보았다. 귀여워…. 해리는 또 눈에서 하트가 튀어 나오며 스네이프를 보았다.

“딸일지 아들일지도 모르는데.”
“왠지 우리 사이 첫 애는 아들일 것 같아요.”
“ ‘첫 애’? 너 지금 첫 애라고 했나, 포터?”

대체 몇 명을 원하는 거야 이 자식. 스네이프는 황당한 눈으로 해리를 쳐다 봤다. 해리는 제 말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헤실거리며 넘겼다.

“딸이면 에일린…? 세브, 어때요?”
“내 어머니의 이름? 어떻게 알았지?”
“아, 혼혈왕자 교과서 때 헤르미온느가 호그와트 신문에서 프린스라는 성을 찾아 왔거든요. 교과서 주인이 이 사람일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 분이 당신 어머니잖아요.”
“그런 기구한 인생을 산 내 어머니의 이름을, 우리 딸 이름에 붙이겠다고?”

스네이프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해리는 바닥에 여전히 앉아서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팔을 올리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릴리는 더 이상하지 않나요……?”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딸 이름이 릴리라니, 그건 진짜 터무니 없는 작명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여자는 릴리 뿐인데, 왜?”

아…… 그 말에 질투를 느껴도 되는 걸까……. 해리는 아들인 제가 자기 어머니를 질투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좋아요, 딸 이름은 릴리. 해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절대 딸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딸이 태어난다면 이 생각이 무색하게 엄청나게 사랑해버릴 것 같긴 하지만.

“아들 이름은 알버스 어때요?”
“알버스 덤블도어? 그 이름 달고 태어났다가 그 괴짜 닮아가면 어쩌려고.”
“우리 아이인데 우릴 닮지, 누굴 닮아요.”
“흠, 그리핀도르에 들어갈 것 같은 이름인데….”
“하핫, 그게 제일 걱정되는 거예요? 그럼 미들네임에 슬리데린인 당신 이름을 넣는 거 어때요.”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라. 정말 괴이한 조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알버스에, 세베루스에, 성은 ‘포터’라니. 무척이나 이상한 이름인데, 왜인지 마음에 꼭 들었다. 스네이프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리도 저를 올려다 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저도 모르게 무엇도 들지 않은 배를 쓰다듬었다가, 스네이프는 웃음을 흘렸다. 얼른 아이를 가지고 싶어져서 괴로운 애니마구스 수업도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주말이라 애니마구스 수업이 없어. 집에서 혼자 연습해볼 생각이다.”
“아, 저도 진짜 출근 안 하고 옆에서 봐주고 싶은데 일을 안 나갈 수는 없고…….”
“이제 2주 정도 남았나.”
“네, 이번 달 말까지만 일 하기로 했으니까요. 국장님도 사직서도 냈는데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따로 보너스도 챙겨준대요.”
“흥, 오러국장이라는 놈이 국장실의 타임터너도 제대로 간수 못하고 말이야.”

스네이프는 불만스런 얼굴로 팔짱을 꼈다. 해리는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음, 정말 내 걱정밖에 안 하시긴.

“타임터너는 계속 보관한다고 하던가?”
“이번 일도 그렇고, 시간을 돌려서 볼드모트가 돌아올 가능성이 아무래도 보이다 보니까, 타임터너를 없앤데요.”
“진작 그랬어야지. 괜히 포터 너만 다치고….”
“그래도 이번 계기로 데스 이터 세 명도 잡고, 녹턴 앨리 어디에 영향이 퍼져 있는지도 윤곽이 좀 잡혔어요.”
“무슨 상관이야, 네가 다쳤는데.”

정말 스네이프는 마법세계의 안전 같은 것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해리 포터만 제 시야에 두고, 신경 쓰는 모습에 해리는 진작 이렇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너무 오랜 시간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뭐, 앞으로는 해달라는 거 다 들어주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런 가벼운 생각도 들었다.

“…세베루스.”
“왜, 포터.”
“애니마구스 성공하면, 그… 오러랑 범죄자, 그거 해줄테니까…… 힘내봐요.”
“풉.”

그런 걸 응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다니. 내가 포터 너 같은 줄 아나? 스네이프는 빈정대려다 그냥 말았다. 어쨌든 꽤 마음에 드는 성공 보상이기는 했다. 해리는 거절 없는 스네이프에 하, 하고 그냥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1999년 5월 28일, 금요일.
벌써 다음주 월요일이면 5월도 끝이 났다. 스네이프가 애니마구스를 연습한지도 오늘로 19일째였다. 스네이프는 이제 감각을 꽤나 익혔다. 실제로 동물로 변신한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동물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이미 제 몸은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약간의 두려움이 모종의 불안을 야기해 동물로의 변신까지는 막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오늘 역시 맥고나걸의 옆에서 대연회장으로 걸어갔다. 3주째 학교를 드나들었더니 이제는 학생들도 스네이프에게 익숙하게 인사 했다. 스네이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 번의 눈길을 주면서 그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여전히 해리와 스네이프의 신문에 난 스캔들이 루머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네이프의 강직하게 냉정한 태도가 그 믿음을 견고히 했다.

네빌은 이제 꽤 자연스레 스네이프와 대화를 했다. 맥고나걸과의 용무가 끝나고 약초재배실에 같이 가서 박하의 어린 가지를 수확해가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하기까지 했다. 스네이프는 오늘도 해리가 출근해서 집이 비었으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만 보내고 나면 연인은 오러 일을 관두게 된다.

“세베루스, 내가 보기엔 이미 자넨 성공하고도 남았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변신 직전에 멈추는 건가?”

매쉬드 포테이토를 떠서 그릇에 담으며 맥고나걸이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샐러드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대답을 미뤘다.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어떤?”
“꼭 돼야하는 동물의 모습이 될 수 있을지가 저를 두렵게 하는군요.”
“자네는 패트로누스와 똑같은 동물이 아닌, 다른 모습을 원하는 건가?”
“아뇨, 그 반대입니다. 반드시 패트로누스와 같은 동물이 돼야 합니다.”

맥고나걸은 감자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걱정으로 변신을 실패하고 있구만. 그러나 구태여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어차피 결국에는 치밀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똑똑한 제자가 변신에 성공할 것이니 말이었다.

다음주부터 학교는 O.W.L과 N.E.W.T가 실시 되었다. 교내에 도는 기운도 시험이 임박해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스네이프는 음식을 먹으며 학생들의 식탁 풍경을 감상했다. 책을 읽느라 바쁜 졸업반 학생들 중에서도,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직접 정리한 길고 긴 양피지 두루마리에 푹 빠져 있었다. 지니는 퀴디치 선수로 선발 되어 졸업시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주에 해리를 데리고 오게, 세베루스.”
“포터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 혹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건으로….”
“아니, 뭔가 변화를 주지 않으면 자네의 변신이 성공하기 어려워 보여서 말이야.”
“미네르바, 포터가 있다는 차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다고는─”
“세베루스, 이건 스승으로서 하는 조언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데리고 오도록 하죠. 대신 포터가 직장에 다녀오니 저녁 시간으로 시간을 변경했으면 합니다.”

맥고나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네이프는 괜스레 동의했다고 생각하며 마저 식사를 했다.


“교수님, 이 가지를 따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이렇게 유연하게 늘어나는 게 안에 수분이 더 많고, 말렸을 때에는…….”

오늘도 동물로의 변신은 직전에서 멈춘 애니마구스 수업이 끝나고, 네빌의 제안대로 스네이프는 약초 재배실에 들렀다. 마법약에서는 자신이 학생이 아니라 트롤을 가르치고 있는지 헷갈리던 네빌 롱바텀이었다. 그러나 네빌은 제 전공 분야에서는 스네이프에게 조언까지 해주며 수확을 도왔다. 마법약과 약초학은 연관성이 굉장히 높은 학문이었기에, 스네이프는 네빌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었다. 덕분에 1시간 쯤 뒤에는 매우 훌륭한 박하의 어린 가지를 한 바구니 가득 담을 수 있었다.

“고맙다, 롱바텀.”

그리고 스네이프는 네빌에게 감사의 표시를 쉽게 내뱉었다. 네빌은 귀까지 빨개져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내 흙 묻은 장갑을 벗고 이마의 땀을 훔친 네빌이 생수를 가져 왔다. 스네이프는 물을 받아 마시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시험이 코앞이라 이 좋은 날씨에도 그들은 생기를 잃어 보였다. 스네이프는 그런 모습들이 썩 마음에 들었다.

멀리서 붉은 머리 여학생이 주문을 몇 가지 선보이고, 주변 학생들 몇이 까르르 웃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그녀가 지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빌은 물병을 손에 꼭 쥔 채 그들을 계속 지켜 보았다. 스네이프는 무심한 눈으로 네빌을 보다 입을 열었다.

“고백 하지 그러나?”
“푸웁─!”

아, 더럽군. 스네이프는 부드럽게 그 옆을 비켜 서서 네빌의 입에서 물이 튀는 것에 맞지는 않았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네빌이 미친듯이 콜록거리면서도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해리도 그러더니 이 놈들은 입에 뭔가를 물고 있다가 뱉는 게 취미인가. 고상하지 못한 그리핀도르의 습성이려니, 슬리데린의 오랜 기숙사 사감은 생각했다.

“티…… 티가 많이 나나요…?”

네빌은 쑥스러움에 얼굴을 가리려 애쓰며 간신히 물었다. 스네이프는 관심 없다는 얼굴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네빌은 민망해서 열 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꾹꾹 눌렀다. 늦봄의 따가운 햇살이 네빌을 더 무덥게 했다.

“그러고 보니, 지니 위즐리의 수업 일정까지 외우고 있었지.”
“아… 그…… 저기, 교수님…. 노, 놀리시는 건가요?”
“포터랑도 헤어졌는데 왜 여태 내버려 뒀지?”
“해리랑 헤어졌다고 지니가 저랑 이어질 수는…….”
“왜 없지?”

스네이프는 마법약 수업에서의 네빌을 보듯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네빌은 땀이 나는듯 옷깃을 빠르게 펄럭였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연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감정이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네빌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네빌의 조언 덕에 해리가 교수 직을 생각하기도 했고, 학교에 방문할 때 종종 자잘한 도움을 받았으며, 오늘도 좋은 약재를 덕분에 얻었기에 이 정도 참견은 해줄 수 있는 것 같았다. 고작 열아홉, 열여덟 주제에 무슨 심각한 사랑이라고 혼자 쭈그러들어서 말도 못하는지 스네이프는 어이가 없었다. 그럴거면 완벽하게 티도 내지 말던가. 쯧, 스네이프는 혀를 찼다.

“나랑 포터가 만나는 것보다는 말이 되잖나, 롱바텀.”

무뚝뚝한 교수의 말에 네빌은 눈을 번쩍 뜨고 그를 올려다 봤다. 이런 말을 하실 줄은. 근데 그러면 안 될 것 같긴 한데, 정말로 힘이 되는 말이긴 했다. 네빌은 스네이프와 지니 쪽을 번갈아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다 역시 안되겠는지 입을 열었다.

“해리랑 교수님, 정말 잘 어울려요!”

아, 그래?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네빌을 보았다.

“그런 평가 없이도 어차피 포터랑은 이미 만나고 있고, 변하는 건 없다, 롱바텀.”
“펴, 평가가 아니….”
“남이 뭐라든 네 스스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내가 너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여전히 네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군, 롱바텀.”
 “…….”

네빌은 생수 병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해리, 헤르미온느, 론이 없는 학교에서 네빌은 주도적으로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며 지니와 의견을 나누고 행동했었다. 그 때부터 그녀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깊어져 갔지만, 지니는 해리와 사귀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해리에게 지니와 헤어졌다, 스네이프 교수님과 만나는 중이다 말을 들었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네빌은 계속 갈팡질팡 했다. 지니는 매력적이라 멋진 남자가 금방 고백할 것 같기도 했고, 곧 졸업하면 퀴디치 선수가 돼서 볼 일도 없어지니 이대로 묻으려고 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들킨데다, 그 타인이 절 한심해하며 고백도 못하는 놈 취급을 하니 발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타인이 해리와 지니를 헤어지게 만든 장본인인 게 네빌을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해리는…… 저보다 더 두려웠을 텐데 어떻게 교수님께 고백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지니가 졸업하는 날짜를 세면서 한심하게 망설이기만 하고…….”
“포터라고 특별히 뭐 용기 있게 굴진 않았다. 영웅이라고 다를 것 없지.”

스네이프는 제 눈치를 보며 눈도 못 마주치던 스피너즈 엔드의 해리를 떠올렸다. 그걸 보고 절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곤 저도 생각도 못했다. 몽정을 하게 했던 그 꿈이 아니었으면 해리가 어떻게 고백을 할 수 있었을지, 스네이프는 궁금해졌다.

“이만 가보겠다. 박하 가지는 잘 쓰지, 롱바텀.”
“아,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스네이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네빌은 힐끗, 지니가 있는 쪽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을 들었는데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건 바보 같겠지……. 스네이프 교수가 저를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평했던 게 떠올랐다. 네빌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지니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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