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과 관계 없는 2차창작이지만 세계관은 소설 죽음의성물 마지막권 이후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흘이 지났다. 해리가 그리핀도르 탑의 제 방에서 자고 일어난 후로는 도저히 쉴 틈이 없었다. 달력이나, 시계가 없었다면 고작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아주 바빴다. 언론인터뷰, 전쟁피해자가족과의 만남, 추도, 축제, 장례식참가에 대한 문의, 친구들, 몰려드는 질문, 질문들. 해리포터가 이 전쟁을 끝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두는 해리가 모든 책임을 지기를 원했다. 탈력한 얼굴로 교장실에 들어서는 해리를 임시교장인 맥고나걸이 반겼다. 지쳐 보이는구나. 걱정의 말을 건네면서도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피곤한 두 얼굴이 서로를 마주했다.
앉으렴, 맥고나걸이 권유했다. 해리는 의자를 내려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이 의자에 앉아선 맞은편의 덤블도어를 봤던 기억이 났다. 해리는 맥고나걸이 앉은 뒤쪽, 이제는 초상화로만 존재하는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 아니었다. 의도를 가진 눈빛이었다. 덤블도어는 자상하게 눈인사를 건넸다.
“어떡하면 좋죠, 교수님...”
“무슨 일이냐, 해리.”
“스네이프의, 아니, 스네이프 교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었는데..”
해리의 두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자꾸만 쥔 손바닥에 땀이 스몄다. 덤블도어의 얼굴이 굳는 것을 보곤 해리 또한 괴로웠다. 맥고나걸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인기척에도 해리는 맥고나걸과 마주보지 못했다.
스네이프는 이중스파이였다. 현재는 오직 해리와 덤블도어, 그들 지인 몇 명만이 결백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리가 볼드모트와의 마지막싸움에서 공공연히 스네이프가 덤블도어의 사람이라 말했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알지 못했다. 또한 해리의 말 자체를 듣지 못한 사람이 마법세계의 태반이었다. 종전, 기쁨과 추도로 정신이 없었다. 축제와 장례가 동시에 존재하는 혼잡한 평화였다. 전적으로 스네이프 사후 책임을 맡아야할 해리는 그동안 너무 바빴다. 종전 사흘만에야 찾은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엔 피 웅덩이가 말라붙어 검붉게 자국만 남았을 뿐, 그 가운데 있어야할 사람이 없었다. 해리는 당황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생각할 수 있는 건 데스이터 잔당 밖에 없었지만 그마저 해리는 억지라고 생각했다.
그 날, 스네이프가 죽는 순간을 목격한 건 볼드모트, 내기니,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뿐이지 않은가. 볼드모트가 스네이프를 어디에 죽여 놓고 왔다고 떠들어댈 위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지, 숲속에서 데스이터들이 지금 스네이프는 어디 있냐고 물으면, 볼드모트는 대답해줄 수도 있었다. 아니면 공공연히 딱총나무지팡이의 주인이 완전히 되었다고 떠들면서 스네이프를 죽인 이야기를...... 어찌 됐든 데스이터들이 자신들도 도망치기 바쁠 형국에 이미 죽은 자의 시체까지 거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없었어요. 교수님이 없었어요.”
“세상에..!”
맥고나걸은 양 손으로 비명 같은 한탄을 틀어막았다. 주변에 걸린 역대 교장들의 초상화에서도 신음 소리들이 들렸다. 덤블도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좀 더, 좀 더 빨리 찾으러 갔었어야 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스네이프의 기억이었다. 그는 너무도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저를 구하고자 했던 사람에게 해리는 마땅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그런데 고작 그의 시신 수습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해리는 오두막에서 교장실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저지른 크나큰 실수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가슴 안에 까만 덩어리가 석탄처럼 달아올라 열을 뿜었다. 놀랍고 혼란스러웠다. 스네이프가 사라졌다.
스네이프가 살아있어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친 걸까? 그것이 해리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을 꿈꾼다는 자체로, 해리는 자신의 실수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이게 어떻게 된 현상인지 교수님은 알 수 있으세요..? 혹시 시체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 같은 게..”
“물론, 해리, 있었지. 이 기나긴 마법의 역사에 그런 일 한 두 번쯤 없었겠니?”
“...! 있군요! 그, 그럼 그 사라진 시체들은 다시 돌아왔나요...? 찾았나요?”
해리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손 전체가 벌벌거렸다. 두 다리는 잘 서 있기가 힘들었다. 덤블도어는 전혀 다정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찾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라진 채 찾지 못했단다. 하지만 그 시체들 모두 자발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의 저주나 마법으로 다른 장소로 옮겨진 거라고 대부분은 추측한단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그럼, 스네이프는... 교수님의 시신을 누군가가...?”
“그래. 아마도, 확실히 그런 것 같구나.”
“대체 누가.....”
모두 자신의 책임이었다. 해리는 눈물이 그렁거리는 자신의 눈조차 밉게 느껴졌다. 울어서 해결 될 문제였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교장실에 놓인 펜시브에는 스네이프의 기억이 은빛을 내며 고여 있었다.
구원자
w.기조
1.
전쟁이 끝난 지도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제 해리는 긴장 없는 평화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오러로 활동하고 있어 당연히 가끔씩은 정말로 목숨이 위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리에겐 ‘그’ 볼드모트를 물리친 사람은 본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건 이 마법세계에서도 단 한 명, 해리만이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이었기에 더욱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오늘 해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종전기념일이면서, 바로 스네이프가 죽은 날이었다.
금지된 숲에 불사조기사단원이 모여 조촐하게나마 스네이프 및 사망자 추도식을 가지기로 했다. 스네이프에겐 호그와트가 해리처럼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해리와 불사조기사단은 호그와트의 금지된 숲에 유골도 없이 스네이프의 비석을 세웠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해리의 속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자신은? 전쟁 후 선 재판장에서, 해리는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열렬히 변호해 그 공적을 기렸음에도,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죽어서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해리의 가슴이 쿡쿡 쑤셨다. 해리는 도리질을 치다가 욕실로 뛰어가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저도 찾고 있다구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건가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스네이프도 답답하겠지만, 살아남은 자인 해리는 더욱 그랬다. 혹시나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안전한 곳으로 피해있는 거라면, 재판 결과에서 본인의 결백이 증명되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하고 해리는 기대했었다. 덤블도어를 죽이고, 볼드모트의 총애를 받았던 한 데스이터에 대한 ‘영웅 해리포터’의 변호. 그래서 재판은 예언자일보 1면에 실리기도 했었다. 스네이프가 어떻게든 마법세계와 연이 닿아있다면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랬기에 해리의 절망도 컸었다.
정말로 스네이프는 죽었고, 그의 시체는 납치당했다고.
숭고함을 기렸어야할 죽음은 난도질당했다. 책임은 해리포터에게 있었다. 해리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구역 감을 느끼다가 힘들게 옷을 챙겨 입었다. 추도식은 모두가 모일 수 있게 아주 이른 시간에 열렸기 때문이었다.
새벽공기는 봄이었어도 서늘했다. 디멘터가 영국 전역을 뒤덮었던 1년 전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볼드모트가 1년 만에 부활해서 디멘터를 몰고 왔을 리는 없지. 그런 생각만 해도 해리는 진저리가 쳐졌다.
해리는 호그와트 근처까지 순간이동을 하고, 정문부터는 걸어서 이동을 했다. 학교를 다닐 땐 헤르미온느가 몇 번을 되풀이해서 언급했어도 기억하지 못한 사실이지만, 호그와트는 순간이동을 할 수 없게 방어되어 있는 장소였다. 오랜만의 방문은 귀향처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전엔 이곳을 해리는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대로구나. 전쟁으로 허물어졌던 건물은 몇 백년간 멀쩡했던 것 마냥 재건되었다. 해리는 돌 벽을 짚고 천천히 그 높다란 첨탑을 올려다보았다.
“해리, 왔구나!”
“해그리드!”
도저히 몰라볼 수 없는 덩치였다. 해리는 반갑게 달려가 해그리드와 포옹을 했다.
“모두들 와있단다.”
“아, 제가 좀 꾸물댔죠?”
“뭘, 시간은 딱 맞췄는걸! 어서 가자. 널 데리러 온 거란다.”
금지된 숲은 아침안개로 자욱했다. 두렵고 아름다운 숲이었다. 새벽공기. 발밑으로 밟히는 젖은 나뭇잎과 가지들. 사람들이 보였다. 아직 학교를 다니는 지니를 비롯한 일주일에도 몇 번을 만나는 위즐리 가족들이 있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호그와트의 교수들 몇 명도... 그들 앞에는 끝이 동그란 비석이 덩그러니 서있었다. 해리는 모두에게 빠짐없이 인사했다. 어느샌가 해리는 그들 제일 가운데, 비석의 맞은편으로 섰다. 모두들 해리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해리는 자신이 스네이프를 마주할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마 그 부끄러움을 앞에서 드러내지도 못했다.
Severus Tobias Snape
(1960년 1월 9일 탄생~1998년 5월 2일 사망)
목울대에 묵직하게 뭔가가 걸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1년만이네요. 해리는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옆에서 맥고나걸이 해리, 하며 어깨를 짚었다. 시작해달란 뜻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세베루스 토비아스 스네이프 교수님과 전쟁피해사망자들을 위한 추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동, 묵념.”
조용한 사람들의 무리 위로 가끔씩 새 울음, 잎이 바람에 스쳐나는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1년 전 오늘에 가득했던 아비규환은 아득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사람의 정신을 붙드는 노래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퍽스..? 해리는 자신도 모르게 입속에서 중얼거렸다. 맙소사, 그럴 리가. 해리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해리 말고도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저기! 하고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정말로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불사조가 금지된 숲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안개 너머로 흐릿한 불빛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모두들 넋이 나가 퍽스를 바라보았다. 퍽스의 노래는 끝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길고 여운 깊은 노래에 다들 심취해있을 때, 퍽스는 비석의 위에 앉아 곱게 날개를 접었다.
“너도 교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구나...”
해리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퍽스가 제 자그마한 머리를 내밀었다. 한 때 덤블도어의 새였던 새는, 이제 순종적으로 해리의 손길을 받았다. 해리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걸렸다. 불사조의 온도는 너무도 따듯했고, 해리는 죄책감으로 응어리진 것이 손 안에서 사르르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아... 해리를 올려다보던 퍽스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눈물은 스네이프의 회색 비석으로 떨어졌다. 퍽스 또한 스네이프를 추도하는 걸까? 멍하니 해리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다가, 순간 퍼뜩 깨닫고 망토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오러 임무를 하면서 채취한 것을 담기 위한 유리병이었는데, 그 병에 퍽스의 눈물을 담았다. 불사조의 눈물은 귀하며, 치유의 힘을 가졌다. 비밀의 방에서도 도움을 받아 살아났었지. 그 기억이 떠올라 해리는 퍽스의 눈에 제 눈을 맞춰 바라보며 고마움을 전했다. 퍽스는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이제 불사조는 다시 큰 날개를 펼쳐 날아갈 준비를 했다.
“퍽스, 잘 가! 와줘서 고마웠어!”
퍽스는 길게 울음을 흘리고 호숫가 옆, 흰 덤블도어의 무덤 위를 한 바퀴 돌고는 어딘가로 다시 사라졌다.
해리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방금까지의 광경에 크게 감명을 받은 얼굴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생각지도 못한 퍽스의 등장으로 스네이프의 추도식은 어둡지 않게 끝났다. 해리는 모인 사람들과 다시 한 명 한 명 인사를 했다. 다들 일을 하러 가야했기 때문에 길게는 있지 못했지만 얼굴들이 밝았다. 해리는 한결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문득, 해리는 다시 스네이프의 비석 쪽을 돌아보았다. 회색 비석에서 불사조의 눈물이 길게 흐른 자국을 따라, 묘하게 빛이 어른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법부로 출근한 해리는 익숙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해리를 본 사람들은 전부 그에게 인사를 했다. 해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피곤하긴 했지만 기분 좋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면서 주머니로 슬그머니 손을 넣었다. 딱딱하고 도톰한 무엇이 손에 잡혔다. 붉은 반지케이스.
해리는 주머니에 넣어놓은 반지케이스를 연신 만지작거렸다. 아까, 잠시였지만 추도식에서 연인인 지니를 마주쳤을 때, 바지 속 이것이 뜨끔해서 말을 잘 건네지 못했다는 걸 지니는 눈치 챘을까? 해리는 마법사식의 프러포즈는 잘 몰랐다.(부엉이로 특별히 예쁜 흰 생쥐라도 물어다주는 걸까?) 그래서 해리는 머글 식으로 반지를 준비했다. 마법사들이 머글들보다도 보석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기에(보석에는 마력이 깃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반지를 받는다면 지니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런던 어느 쥬얼리샵에서 구입한 머글이 만든 반지지만... 어쩌면 지니보다 아서 위즐리씨가 더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자 해리의 입가에도 미소가 잠시 떠올랐다.
지니와의 결혼. 해리는 올 해 고작 열아홉이었지만 지니는 곧 학교를 졸업하고, 열여덟이었다. 열일곱에 성년이 되는 마법사 나이로는 둘 모두 이미 완벽한 성인이었다. 지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 해리는 버로우에서 위즐리 가족과 저녁을 함께 가질 예정이었다. 그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지니를 따로 언덕으로 불러내서, 무릎도 경건하게 꿇고, 케이스를 열어 반지를 보여주면... 해리는 오래 전 프리벳가 4번지에서 페튜니아 이모가 보던 영화 속 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떠올렸다. 시뮬레이션은 늘 100%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걱정스러웠다. 지니도 분명 받아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음에도, 염려는 어쩔 수 없었다.
“해리! 새로운 임무다.”
“아, 휴 씨! 아... 그러니까.. 데스이터 잔당인가요?”
딴 생각을 하고 있던 해리는 등을 퍽퍽 치는 손길에 화들짝 놀랐다. 선배 오러인 휴였다.
“글쎄,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물건인지, 거래 덜미가 잡혔대. 잔당들은 물론이고 그 물건도 회수해 와야 해.”
“저주가 걸린 물건은 아님 좋겠는데.”
“그렇지, 곧 결혼할 몸이신데 성 뭉고 병원 신세를 질 순 없잖냐.”
휴가 해리의 어깨를 장난기 있게 가볍게 두드렸다. 주머니 속 반지케이스를 쥐고 있던 해리의 얼굴은 금방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아직 말도 안 꺼냈거든요?! 오러팀 중 가장 나이 어린 오러가 버럭 지른 소리에 부서에 있던 몇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볼드모트는 잡아도 한 여자 잡는 건 어려운가보네! 부장인 말버러가 또 한마디를 던지자 더 큰 폭소가 터졌다. 해리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받은 임무를 급하게 떠나기로 했다. 양피지를 쥐고 황급히 나가는 해리의 뒤로 휴가 소리쳤다.
“어이, 해리! 같이 가줄까!”
“됐어요! 가는 길 내내 놀릴 생각이시죠?!”
이래서 아저씨들이란! 오러는 험한 직업 때문에 일부러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오러 팀에서의 결혼행사는 다른 부서보다도 더욱 큰 경사였다. 더욱이 그게 열 아홉 살짜리 최연소 오러의 결혼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그 사람이 해리포터라면,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마법세계의 경사였다. 해리 본인은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해리는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 양피지를 펼쳤다. 거래추정시간과 장소... 외졌지만 분명 호그스미드 근처였다. 호그와트와도 가까운 곳에서, 대담하기도 하군. 게다가 대낮부터. 아니면 그 점을 노렸을지도 몰랐다. 해리는 턱을 긁으며 양피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반지케이스와 임무가 적힌 양피지가 묵직하게 주머니 안쪽을 뒹굴었다.
“호그스 헤드!”
해리는 거래장소와 가까웠던 호그스 헤드를 외치며 플루가루를 벽난로에 뿌렸다. 겸사겸사 애버포스 씨도 만나고 일을 끝낸 후에 버터맥주도 한 잔 마실 수 있을 거다. 해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물론 그러다 코로 벽난로 속의 재가 약간 들어왔다.)
“...흥, 포터. 웬일이냐.”
흘낏, 벽난로를 쳐다봤다 다시 고개를 돌리며 애버포스는 더러운 헝겊으로 잔을 계속 닦았다. 망토에 묻은 재와 먼지를 지팡이로 탁탁 털며 해리는 안녕하세요, 애버포스 씨. 하고 인사를 건넸다. 건성으로 해리의 인사를 받은 애버포스는 뭐 줄까? 하며 잔 하나를 더 꺼내려했다.
“아, 아뇨. 지금 임무중이라서요. 끝나면 와서 마실게요!”
“뭐, 그러던지.”
흥, 다시 콧방귀를 뀐 애버포스는 이제 더는 해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마법사세계에선, 유명인사인 해리에게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며 달라붙는 마법사들이 어딜 가나 판을 쳤다. 그래서 오히려 해리는 이런 무심한 애정이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이따 봐요!”
해리를 보지 않은 채 애버포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등을 돌리고 문 밖으로 나가는 해리도 그걸 보진 못했다.
“봄인데도 오늘은 엄청 쌀쌀한 걸.”
하늘이 어둑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습하고 어두운 낮이었다. 거래 시간까지 가까웠으므로 해리는 투명망토를 덮어쓰고, 거래장소로 종종걸음을 쳤다. 날씨가 이래서 대낮이라곤 하나 저녁이랑 다를 바 없었다. 이걸 알고 거래시간을 정한 거면 대단하다 싶었다. 그보다 거래하는 물건이 어떤 건지, 어떻게 생긴 건지 몰랐다. 해리는 그게 걱정이었다. 거래자들을 전부 단단히 붙잡아둬야겠는데, 괜히 혼자 왔나? 휴 씨랑 같이 올 걸 그랬나, 머릿속에 생각이 얽혔다. 줄곧 생각하다보니 나무들이 우거진 외진 장소에 와있었다. 금지된 숲과 연결된 장소인 것 같았다.
해리는 그들이 갑자기 순간이동으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해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사이, 빗방울인지 가볍고 차가운 게 콧잔등을 두드렸다. 이거 한바탕 쏟아지려나. 해리가 걱정스레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순간이동으로 날 법한 소리가 바로 근처에서 울렸다. 휙, 빠르게 해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망토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사람이 느닷없이 그 장소에 서있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근처에 탕 소리가 또 울렸다. 살짝 비틀거리며 나타난 두 번째 인물 역시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거래자들이다. 데스이터? 아니면, 또 다른 신종 범죄자들? 해리의 촉각이 예민하게 섰다. 해리는 손에 지팡이를 단단히 쥐었다. 물건을 꺼내는 순간을 기다리자...
“머플리아토.”
해리는 작게 주문을 외고 그들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빗방울이 좀 더 굵어졌다. 해리는 이제 그들 코앞에 있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투명망토를 쓰고, 자신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주문을 쓴 해리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해리는 그들에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존재였다.
“오오...! 이것이, 이것이 정말...”
첫 번째로 나타난 남자가 거래를 받는 대상이었던 모양이었다. 두 번째 남자가 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냈다. 겉으로 봐서는 뭐가 들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해리는 어쩐지 마법사의 돌이 들어있던 그린고트의 작고 낡은 꾸러미가 떠올랐다.
첫 번째 남자가 군침을 삼켰다. 두 번째 남자는 킬킬 웃으면서 꾸러미를 풀었다. 해리도 주의 깊게 꾸러미를 살폈다. 순간 해리는 물건에 체인이 걸려있어 목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꺼내어져 두 번째 남자의 손바닥에 놓인 것은 회중시계였다. 고대의 유물 같은... 도깨비가 봤다면 아주 탐을 냈을 것 같은 은으로 만든 시계였다. 첫 번째 남자는 그 물건이 정확히 어떻게 쓰는 것인지 알고 있는 듯, 감탄에 젖은 소리를 냈다. 이것이 은밀한 거래라는 걸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절로 큰 소리가 나온 것 같았다. 두 번째 남자는 그에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미리 대금을 받았었는지 곧 그 물건을 첫 번째 남자에게로 건네었다.
그 순간이었다. 머플리아토 주문으로 그들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던 해리의 무장해제 주문과 기절 주문이, 연이어 두 남자에게로 꽂혔다. 남자들은 무방비하게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공중으로 붕 뜬 회중시계는 스니치처럼 가볍게 해리가 한 손으로 잡아냈다. 나이스캐치! 해리는 투명망토를 벗고는 반지케이스가 들어있지 않은 쪽 주머니에 망토를 쑤셔 넣었다. 소나기로 변한 비가 아플 정도로 얼굴을 때렸다. 해리는 망토의 모자를 덮어썼다.
이제 회중시계는 해리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손으로도 가볍게 만질 수 있고, 어둠의 마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갸우뚱하면서도, 해리는 일단 기절한 그들 위로 지팡이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해리의 지팡이에서 뱀처럼 흘러나온 밧줄이 그들을 꽁꽁 묶었다. 마법으로 묶인 채, 기절한 남자들의 몸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두건 밑의 얼굴들은 낯설었다. 데스이터가 아닌가? 그럼 이 물건도 단순한 회중시계일지도 몰랐다. 잘못된 체포일까 봐 해리는 더럭 걱정이 들었다. 시계를 살펴보면 알겠지. 해리는 시계의 뚜껑을 열었다.
“흐음..?”
생각했던 대로 숫자가 적혀 있었어야할 동그란 판 안에는 숫자는커녕 문자조차 없이 하얗게 비어있었다. 시침, 분침도 없었다. 이 이상한 시계는 뭐지? 시계라고 생각했으나 로켓이었던 걸까? 하지만 해리는 이걸 보자마자 회중시계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주문을 외워야만 쓸 수 있다거나? 해리는 알고 있는 주문 몇 가지를 중얼중얼 거렸다.
“아무 반응도 없잖아.”
마법부로 돌아가서 조사를 해봐야겠다. 생각하면서도 해리는 멈칫거렸다. 임무를 너무 불확실하게 마치는 것 같아 선뜻 돌아가기가 망설여진 까닭이었다. 그래, 이 물건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임무에 포함돼있기도 하고. 해리는 근처의 평평한 바위를 하나 골라 앉았다. 비에 젖은 바위에 바지가 젖는 게 느껴졌다.
예전, 해그리드가 교수가 됐을 때 교과서로 쓰였던 난폭한 책은 쓰다듬으면 진정을 했다. 해리는 시계의 뚜껑과 안쪽, 뒤쪽을 모두 살살 쓰다듬어보았다. 지팡이로 톡, 톡 건드리기도 해보았다. 여전히 그것은 무반응이었다. 거래자들을 깨워서 이걸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쓰는 건지를 물어보면 간단할 것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자존심을 꺾을 수 없었다. 단순한 고집이어도 좋았다. 이건 본디 해리의 성정이었다.
“대체 어떻게 쓰는 물건이야..? 혹시 이거 미완성인가..?”
[...]
“시계인 것 같은데... 흠, 큼, 큼! 좋아... 시계여, 나는 현재 시간이 알고 싶다. 지금이 몇 시 몇 분이지?”
[...]
“아, 그래 이것도 아니라 이거지. 하... 음, 오늘은 1999년 5월 2일이다.”
[...]
“마법세계 평화의 날, 종전기념일이지. 1년만이야. 너도 시계라면 시간감각쯤엔 반응해야하는 거 아냐?”
[...]
“......하아.”
시계를 쥔 양 손을 이마에 얹으며 해리는 낮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금지된 숲이었다. 저 멀리, 새벽에 다녀온 스네이프의 비석이 있을 것이다.
“1년 전 오늘, 스네이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만 있다면...”
드르르르륵. 해리는 이마에 댔던 것에서 갑작스레 느껴진 진동에 파득 몸을 떨었다. 황급히 해리의 손이 시계를 펼쳤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던 하얀 원 안이 새카맣게 변해있었다. 너무도 어둠의 물건 같은 모습에 해리는 저주가 옮을까 얼른 그걸 손 안에서 놓았다. 그랬다. 놓으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시계는 해리의 손바닥에 딱 달라붙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해리가 저주에 걸린 것일까?
“..!”
까맣던 원에 투명한 바늘 세 개가 어른거렸다. 이윽고 세 개의 투명바늘은 시침과 분침과 초침의 형태를 띠었다. 선명한 황금색이었다. 까만 판 위에 황금색이, 눈을 현혹할 만큼 너무도 아름다워서 어둠의 물건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시계는 여전히 손 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 개의 황금 침이 갑자기 서로 엇갈리며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이 놀라운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마법세계로 들어온 지 벌써 8년째였으나 이런 건 처음 보는 것이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황금 침의 회전은 꽤 오래 시간을 끌었다. 해리는 조금 현기증이 났고 눈이 피로해졌다. 황금 침들은 시작했을 때 그런 것처럼 느닷없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황금 침이 다시 투명한 바늘로 변하더니, 아예 모습을 감추었다. 해리가 의아해하기도 전에, 까만 판 위에 황금색의 문자가 스르륵 나타났다.
[1998년 5월 2일]
“으...으아아아악~?!”
해리의 두 발이 공중으로 붕 떴다. 해리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포트키를 잡은 것처럼 해리의 몸이 그 회중시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해리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어보였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몸이 휘말렸다. 사방이 온통 벽이어서 둘러싸여 압박을 받는 느낌이었다. 해리는 자신의 몸이 종이처럼 납작하게 눌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시 펴질까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할 때쯤, 옆으로 사람이 스쳐간 것 같아 해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하지만 착각인 듯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는 사라졌다. 한참을 나무, 바위, 하늘만 휙휙 스쳐가는 똑같은 풍경이었다. 아까까지 있었던 거래 장소는 원래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해리는 그래서 사람의 등장이 드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다, 생각이 들쯤이었다. 해리의 납작한 종이 같던 몸이 공기를 주입한 풍선처럼 갑자기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여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풍경이었다. 해리는 방금까지 앉아있었던 평평한 바위를 발견했다. 저 바위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바위는 해리 바로 옆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마법의 밧줄로 묶어놨던 거래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해리의 머릿속으로 시계판 위로 떠오른 1998년 5월 2일이 스쳐지나갔다. 1년 전, 오늘의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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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입니다.
해리포터책 1권부터 정주행하고..몇 년만에 글 잡기.
쓰다 보면 다시 감 잡겠지.. 아가씨 OST 히데코 이모의 낭독회 피아노커버 들으며 씀
다음편부턴 해스네 같겠지요, 저 로맨스만 씁니다. 진짜로. 해스네 뜨거운 사랑을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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