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스네이프는 거울 앞에 서서 오랜만에 마법사들이 입을 법한 로브를 걸쳤다. 10년이 넘은 검은색의 로브는 해리가 처음으로 사주었던 것이라, 아껴 쓴 탓으로 새 것처럼 멀끔했다. 조지에게 처음 사랑의 물약을 납품했던 날, 해리가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준 그 로브는 특별한 날에는 꼭 걸치게 되었다. 이를테면 1년동안 숨어 살다 마법부에 요란하게 행차하는 날이라던가, 11년만에 호그와트로 다시 복직하게 되는 오늘 같은 날이라던가에.

작은 방. 거울 딸린 옷장과 책상 두 개, 침대 하나로 이미 꽉 찬 방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해리와 자신이 쓰던 비교적 큰 방은, 아이들이 큰 후로 반을 나눠 그들이 쓰게 내주었다. 물론, 작은 이 집에서 네 식구가 살기엔 터무니 없어 보이기도 했다. 드레이코는 놀러올 적마다 릴리에게 대궐 같은 저택이 필요하다 했지만, 해리는 이 집이 뭐가 어떻냐고 대저택의 도련님에게 반박했다. 스네이프조차 코웃음이 나오는 반박에도, 드레이코는 은사의 눈치를 보며 그저 릴리에게 제 집에 놀러 오기만 권했다. 릴리와 알버스는 제 아버지가 가진 부가 말포이 저택 같은 집도 충분히 살 수 있음을 모를 것이었다. 그럼에도 해리가 이사 계획을 논한 적은 없어, 스네이프는 그러려니 했다. 이 집에서는 행복한 기억밖에 없다는 자신의 반려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웃은 탓이다.

거울에서 시선을 돌린 스네이프는 옷장에 붙은 사진들에 잠시 눈을 두었다. 해리가 찍은 사진들이 영구보존 마법에 걸려서 선명한 색상으로 빛이 났다. 쌍둥이들의 기저귀를 가는 스네이프, 릴리를 안은 채로 재우다가 같이 잠든 스네이프, 스네이프에게 볼키스인 척 입에 키스하는 해리, 눈사람을 굴리는 해리와 쌍둥이들, 어린 쌍둥이들의 목욕 모습, 프랑스로 놀러갔을 때 에펠탑 앞에서 아이들을 각자 안은 포터 부부, 대부 2명과 대모가 쌍둥이들과 웃고 있는 사진 같은…….

“세베루스, 뭐해요? 아직 준비 덜 됐어요?”

열려있는 문에 똑똑 노크하며 해리가 물었다. 사진들에서 시선을 돌린 스네이프는 바닥의 짐가방을 들었다.

“아이들은?”
“알은 어젯밤에 짐을 다 싸놨다는데. 방금 릴리 꺼 다 싸주고 론의 차에 실었어요. 론이 출근 전에 태워준다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릴리는 널 닮았으니 그렇지.”

해리는 출발 아침에 급하게 짐을 싸던 저를 떠올리며 뜨끔했다. 실제 본 적도 없으면서, 뻔한 해리 포터의 행동에 정통한 스네이프였다.

“어제 자기 전에 애들 방에 가서 무슨 얘기했어요?”

계단을 내려오며 해리가 물었다. 이제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스네이프가 해줄 법한 이야기도 뻔하지만, 해리는 모른척 물었다.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면 집에서 쫓겨날 줄 알라 그랬지.”
“하하핫. 역시.”

현관을 닫고 나오니, 랜드로버의 짐칸 앞에 서있는 론이 보였다. 릴리와 알버스는 이미 뒷좌석에 앉아서 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제일 늑장을 부리네. 론의 투덜거림에 스네이프가 째려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 가슴을 더 넓게 펴며 뻗대는, 경력 12년차의 오러 팀장 론 위즐리였다. 몇 년 안 가 부장, 국장까지 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는 그의 모습은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론을 스네이프는 앞에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었다. 어쨌든 출근 전에 저희를 킹스크로스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알버스의 대부는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스네이프, 비행하는 걸 한 번만 눈 감아준다면 아주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이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를 꺼내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또 2학년 때 해리와 너처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싶나 보군. 유명세에 허덕이는 버릇 아직도 못 버렸나? 론 위즐리.”
“그 차는 고물이었고 이 차는 새차라고요, 스네이프! 투명해지는 마법도 헤르미온느가 도와줬…… 아, 이건 비밀이예요.”

론이 윙크 하며 씨익 웃었다. 헤르미온느가 도와줬다는 말에 스네이프마저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얼마나 더 빨리 도착할지는 몰라도, 해보던가. 툴툴대며 팔짱을 끼는 스네이프에 릴리와 알버스는 창 밖을 보며 들뜬 마음을 표출했다.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하는데다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에 타고 기차역으로 간다니!

앞의 보조석에 앉은 해리는 새삼스런 기분을 느꼈다. 도비가 역 입구를 막는 바람에, 하늘을 나는 아서 씨의 자동차로 론과 호그와트까지 날아갔다, 성질 더러운 나무에 패대기 쳐졌던 고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때 저와 론을 기다렸다가 퇴학시키겠다며 신이 났던 자신의 반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리는 손등으로 웃음을 막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 함께 차를 타고 날아서 킹스크로스역으로 가고 있었다. 릴리가 들떠 소리쳤다.

“비행기 같아!”
“비행기보다도 더 높게 날아오를 수 있지.”

론이 으쓱하며 말했다. 열두 살적과 달리 운전 실력도 많이 늘어, 유려하게 차의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머글의 음악을 틀어 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킹스크로스까지 편하고 빠르게 날아갔다.


진홍빛 급행열차가 연기를 뿜었다. 해리를 알아본 학생들이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스네이프를 알아보는 학생은 없었다. 대외 행사는 전부 해리 혼자 참석하고, 교직에 섰던 것도 11년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드레이코는 스네이프를 대신한 그 긴 대타 마법약 교수직을 그만둘 때, 시원하다는 반응이었다. 전혀 섭섭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부잣집 도련님다운 흥청망청 생활을 이제야 좀 보내 보겠다며 해리의 어깨를 짚고 웃었다. 그러면서 또 신종 마법약 연구중이라는 걸 해리도 모르지 않았다.

“아빠에게 인사 했어…!”

릴리가 흥분해 방방거렸다. 알버스는 으쓱해서 해리에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고학년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모두 호그와트 교수라는 것에 괜히 자부심이 샘솟는 열한 살짜리 쌍둥이들이었다.

“테디, 빅투아르!”

빌과 플뢰르가 에드워드를 데리고 빅투아르와 함께 다가왔다. 동갑 친구인 릴리와 빅투아르는 손을 맞잡고 꺄르륵 웃었다. 드디어 호그와트에 입학한다는 기쁨에 두 소녀는 나눌 말이 많았다. 알버스는 두 살 터울의 형인 에드워드와 ─오늘 머리카락 색은 매우 정상적인 금발이었다─ 인사를 나눴다.

스네이프는 빌과 해리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다가 바닥의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에 해리가 제가 들겠다며 뺏어 드는 것까지도, 사실 스네이프의 전략이었다. 얼른 기차에 오르자는 눈치에 해리도 결국 웃으며 그를 따랐다. 제 아이들은 에드워드와 빅투아르와 함께 오르면 될 일이었다. 릴리와 알버스도 또 부모끼리만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탄 건 해리나 스네이프나 모두 오랜만의 일이었다. 기차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스네이프에겐 더욱 까마득한 옛 일이었다. 앞서가는 해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스네이프는 붉은 머리카락을 찰랑이던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그 때 함께 기차에 올랐었는데……. 이제는 그녀의 아들과 함께 기차에 오르는군. 해리가 릴리의 아들인 것보다, 해리의 딸이 릴리인 게 더 익숙해졌지만 새삼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호그와트 급행열차의 복도를 걷고 있는, 이 순간에.

“오, 여기 비었다.”

해리가 찾아낸 빈 객실에 둘이 착석했다. 마주 보고 앉은 채, 둘 다 추억에 잠겨서인지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졌다.

“……넌 이름이 뭐야?”

창가에 팔꿈치를 얹은 채, 고개를 기댄 해리가 웃으며 물었다. 스네이프는 잠깐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역할극에 동참해주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내 이름은 안 물어봐?”
“해리 포터. 살아남은 아이. 번개 무늬 흉터를 보니 딱 알겠는데.”
“세베루스, 그건 네 목에도 있는 것 같은데?”

큭큭거리며 해리가 웃었다. 정말 장난기가 많은 신랑이다. 어린 신랑이라고 부르기엔 더이상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해리는 지금, 자신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스네이프의 나이였다.

“…어떤 놈이 내 목에다 지팡이를 대고 이렇게 만들어놨지.”
“저런, 누가 그런 악독한 짓을. 네 상처를 한 번 봐도 될까?”
“뭐, 그러든지.”

스네이프가 으쓱하며 거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스네이프의 옆에 냉큼 앉은 해리가 손으로 셔츠의 깃을 벌렸다. 오래 전에 새긴 흉의 위로 살이 조금 덮였지만 거의 그대로였다.

“아프진 않아?”
“전혀.”
“한 번 빨아봐도 될까?”
“아니. 죽고싶다면 그렇게 해, 포터.”

오랜만에 ‘포터’라 불린 해리가 빵 터져 웃었다. 거의 10년만인데도 불구하고 늘 그렇게 불린 듯이 익숙했다. 해리는 배를 잡고 웃다가, 스네이프의 어깨에 자연스레 머리를 기댔다. 해리가 기대는 순간 풍기는 체향에, 스네이프는 입꼬리를 미묘히 올렸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티도 나지 않을 움직임이었다. 스네이프는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괴었다.

“초면인데 너무 붙는 거 아닌가?”
“아, 왠지 모르게 네가 편안해서, 세베루스. 결혼까지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착각이 대단한데.”
“진짜로 편해. 잠 올 것 같아. 아침에 나갈 준비하느라 바빴거든.”
“그래? 난 같이 사는 사람이 다 알아서 해서 그닥.”

해리는 스네이프가 아침에 편했다는 사실에 그저 웃었다. 정말로 잠이 오기도 해서, 스네이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서 나는 마른 책의 냄새, 같은 샤워 용품의 냄새 따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네이프는 물끄러미 시선을 내렸다. 제 어깨에 기댄 반려가 색, 색 규칙적인 숨을 쉬었다. 잠이 온다더니 정말로 금세 잠들어버렸군. 조심스레, 해리가 깨지 않도록 스네이프도 제 머리를 그의 정수리에 기대었다. 해리의 텁수룩한 검은 머리카락의 부숭한 느낌에 스네이프는 잠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로 이대로, 해리와 함께 호그와트에 입학하는 열한 살 소년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또, 언제나 해리와 함께……. 그와 평생을 같이 살며 어느 순간이든 이런 생각이 또 들 것이었다.

기차가 움직였다. 알버스와 릴리는 기차에 잘 탔겠지, 스네이프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낳은 해리와 저의 자녀들은 똑부러지고 총명한 아이들이니까. 고대했던 호그와트 입학식 아침부터 그 아이들이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어쩌면 제 부모들이 저들보다 부부간 서로에게 더 관심이 많고, 애정이 넘쳐 그들도 제 나름 생존방식을 익힌 탓일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비뚜름히 입가를 올리고 어린 아이들을 키울 때를 회상했다.


“세상에, 멀린, 덤블도어시여, 미쳤나봐, 이 요정들…….”

갓 스무 살 대부 론과 대모인 헤르미온느는 비명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겨우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들 옆에 서있는 드레이코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해리는 첫째인 릴리의 대부가 된 드레이코에게 릴리를 안아보라고 시키고 싶었으나, 드레이코의 저 상태로는 절대로 제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알버스가 진짜 해리와 똑닮았다며 감탄했다. 아이들 둘 다 머리숱이 많고 부석부석했으나, 알버스는 눈을 살짝 뜨자마자 보인 초록 눈이 너무나 예뻤다. 릴리는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금발의 자신의 대부를 올려다보았다. 드레이코는 거의 울려고 했다.

“만져봐.”

해리의 재촉에도 드레이코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웃음 섞인 한숨을 쉰 해리가 드레이코의 손을 잡아 끌어, 릴리의 뺨에 두었다. 푹 들어가는 말랑한 아기의 볼살에 드레이코가 어깨를 움찔 튀었다. 제 딸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친구를 보며 해리는 키득거리고 웃었다.

에드워드를 몇 번 안아 보았던 헤르미온느가 알버스를 침대에서 안아올렸다. 해리, 꼭 널 안고 있는 기분이야! 진짜 이상해……. 헤르미온느의 웃음기 섞인 외침에 론도 동조했다. 포터 가의 유전자도 위즐리의 붉은머리에 주근깨 유전자만큼이나 미친 수준이었다. 입양했다고 둘러댈 수 있겠어? 론의 질문에 해리도 스네이프도 어깨를 으쓱였다. 남자의 임신보다는 믿겨지겠지. 아니면 마법세계의 신이 된 해리 포터는 사실 자웅동체라던가. 스네이프의 말에 세 명의 친구들은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애애우앵….”

웃음소리에 놀랐는지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놀란 친구들이 헙, 입을 다물고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폈다. 아이를 낳고 이틀 상간에 아기 다루기에 능숙해진 스네이프는 알버스부터 받아갔다. 얘가 남자애라 그런지 더 질기고 목청도 크게 울어. 제 아이에게도 단호한 평가를 내린 스네이프가 가슴팍의 섶을 벌리려 했다. 그에 깜짝 놀란 해리 포함 세 명의 제자들이 각자의 명칭대로 스네이프를 부르짖었다. 세베루스! 혹은 스네이프! 혹은 교수님! 이라고 소리를 지른 그들을 보며 스네이프가 시끄럽다는 눈을 했다.

“얘들 앞에서 젖을 물리려 하면 어떡해요!!”
“해리, 난 남자고. 마법으로 젖꼭지에서 애들의 먹이가 분비될 뿐인데 무슨 상관…….”
“당신 미쳤어!?”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씩씩거리는 해리를 보며 세 명의 친구들만 눈치가 보였다. 어쨌든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울고 난리가 났다. 해서, 해리는 한숨을 쉬고 릴리를 안아들었다. 흔들어주고 도닥였더니 젖 먹이는 것보단 느리지만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스네이프도 뚱한 얼굴로 알버스의 등을 토닥였다.

“남자 가슴인데 뭐 어떻다고….”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해리가 찌릿 째려보았다. 친구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둘의 냉전 아닌 냉전을 바라보았다. 해리와 스네이프가 서로를 향해 투덜거리고 째려보는 모습은 익숙한 그림이기는 했다. 그 내용이 민망해서 그렇지.

친구들이 가고난 다음, 해리는 당신 몸은 내 것이라고 2차 다툼을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열을 올리며 싸우다가, 결국에 해리가 ‘해리다운’ 방식으로 저의 몸이 어떻게 그의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함락되고 말았다.


“간식 수레입니다. 뭐 좀 드실래요, 교수님들?”

설풋 잠에 들었던 스네이프가 눈앞의 마녀를 올려다보았다. 뒤척인 스네이프의 몸짓에 덩달아 깬 해리가 안경 밑으로 눈을 비볐다. 어, 간식 수레! 해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해리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고 단호박샐러드 샌드위치와 개구리 초콜릿과 버티 보트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를 구입했다.

“저 이거 처음 봤을 땐 수레에 있는 거 전부 다 조금씩 샀었는데.”
“그걸 다 먹겠다고? 욕심도 많았군.”
“론이랑 나눠 먹었어요. 그 때까지 한 번도 누군가와 뭔가를 나눠 먹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법사들의 간식도 궁금하고. 어, 당신 카드가 나왔다! 개학 첫 날부터 운수가 좋네.”

개구리 초콜릿을 뜯은 해리가 스네이프 카드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차역까지 오며 들은 머글 가수의 노래였다. 카드 속의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며 눈을 깜박이더니 빙그레 미소지었다. 해리는 그에게 마주 웃어주며, 카드를 뒤집었다. 그리고 스네이프가 기존 문구에 화를 낸 이후 수정된 카드의 문구를 차근차근 읽었다.

[세베루스 포터, 최연소 포션 마스터이자 전 호그와트 교장, 전쟁 영웅. 1998년 호그와트 전투에서 해리 포터에게 전투의 승리를 이끌 기억을 건네주었다. 해리 포터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 두 명을 두었다. 드레이코 말포이와 저주 주문 치료약 개발을 하였다. 몇 가지 마법주문을 발명 했고 취미는 독서다.]

해리는 초콜릿을 반으로 나눴다. 제가 먹여주는 것에 익숙해서 스네이프가 입을 벌리는 것이 귀여웠다. 해리는 초콜릿의 더 큰 쪽을 스네이프의 혀 위에 올려주었다. 스네이프는 초콜릿을 넘긴 뒤,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해리는 금방 샌드위치를 삼키고 강낭콩 젤리에 손을 뻗었다. 스네이프는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았으므로, 해리가 해괴한 맛을 집어먹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나 기대했다.

“세브, 지금 나 이상한 맛 먹길 기대하고 있죠?”
“그럴리가. 내가 그렇게 성격이 못돼보이나?”

스네이프의 뻔뻔한 태도에 해리가 풉 웃음을 흘렸다. 그가 머글이었으면 배우가 되기를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혀를 놀리는지, 열한 살의 순진한 해리 포터였다면 깜박 속았을지도 몰랐다.

“음, 색깔이 정상적인 이걸 먹어봐야지. ……흐흣, 딸기맛.”
“아쉽군.”
“하하, 너무해.”

해리는 스네이프도 젤리를 집어 먹길 기대하는 것 같았다. 흠, 스네이프는 잠깐의 고민 끝에 젤리에 손을 뻗었다. 게다가 회색의 이상한 색깔이었다. 놀란 해리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저 사람이 저럴 리가 없는데. 그러나 곧 스네이프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강제로 해리의 입에 넣어진 회색의 젤리에서는 후추맛이 났다. 아, 진짜!! 세베루스 스네이프 포터!!! 해리가 성질을 내자 스네이프는 즐겁게 웃었다. 미간을 찡그린 해리가 그런 반려를 보더니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스네이프의 얼굴을 당겨 키스한 해리는 의기양양하게 후추맛 젤리의 반 쪽을 그의 입에 넘겼다.

스네이프는 바로 바닥에 젤리를 퉤 뱉어냈다. 기차 안에서 키스에다가, 해리에게 이런 식으로 보복당할 줄은 몰랐다. 먼저 장난쳐놓고 불쾌해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스네이프는 스스로도 제 성격이 더럽다고 인정했다. 대놓고 기분 상한 티를 내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듯 으쓱거렸다. 그리고 달콤한 체리맛을 씹고서 다시 스네이프의 얼굴을 끌어와 입을 맞추었다.

“응….”

여전히 키스할 때마다 귀엽게 앓는 소리를 내는 반려였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달래듯 등을 쓸어주고, 쪽 입을 맞추었다 떨어졌다.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자꾸.”
“부부인데 뭐 어때요.”
“네 학생들은 네가 이렇게 문란한지 아나?”
“스네이프 교수가 학교에 없는데 애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문란한 해리 포터의 부인, 세베루스 포터씨.”
“그래서 다시 학생들에게 알려주려고 첫 날부터 이러는 건가?”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스네이프가 툴툴댔다. 해리는 그렇게 되면 좋죠, 하는 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러고보니 세베루스가 복직하면 하고 싶던 수업이 있었는데.”
“나를 네 수업에 끌고 가려고? 그리고 너만 수업 있는 줄 아나? 나도 수업 있어, 포터 교수.”
“안 겹치는 날도 있을 거 아니예요.”
“무슨 수업을 하고 싶어서?”

귀찮다는 얼굴로 머리를 괸 채, 스네이프가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상상만 해도 행복해서 들뜬 얼굴로 스네이프를 보았다. 꼭 쥔 주먹이 신나서 붕붕거렸다. 해리의 나이도 어느새 삼십줄에 들어섰는데, 여전히 스네이프의 눈에는 애처럼 보이는 것도 저런 면 때문일까. 스네이프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귀여운 반려를 보았다.

“패트로누스! 당신 것이랑 내 것을 학생들 앞에서 보여주면 너무 멋질 것 같지 않아요?!”

스네이프는 살짝 움찔했다. 해리의 말을 듣자, 해리의 열여덟 생일에 선물로 주었던 암사슴 패트로누스의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건……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감동 받을만한 환상적으로 신비한 광경, 은백색의 사슴 한 쌍 패트로누스들. 해리의 머리로 이런 걸 떠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겹치지 않는 수업마다 너랑 같이 3층까지 올라가서 내 패트로누스를 보여줘야하나?”
“보여줄 생각은 있단 거네요?”

정곡을 찔렸다.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리고 팔짱을 꼈다. 해리에게는 자꾸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속마음을 들켜서 불쾌하기도 하고,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준다는 그 사실이, 속내를 감추는 저의 반려로는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쁘면 패트로누스만 교실로 올려줘도 되고요.”

흥,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다. 해리 역시, 스네이프를 옆에 두고서 함께 보여주는 것을 원할 터였다. 제 비위 맞춰주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건 여전하군. 스네이프가 손을 뻗어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해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스네이프의 손길을 받았다.

창 밖의 풍경이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풍경이 어두워지고 별빛이 하늘을 수놓을 때, 기차가 호그스미드 역에 섰다. 해리가 짐가방을 모두 들겠다는 것을 스네이프가 거절했다. 그에 해리가 뭐라 하려다가, 빈 손을 잡아오는 스네이프의 손에 금세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세스트랄 마차의 앞에서는 해리가 먼저 올랐다. 그리고 손을 뻗어 부인, 하고 스네이프를 부르며 씨익 웃어보였다. 하, 기가 막힌 웃음을 한 번 흘리고 그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른 스네이프였다. 꼭 소꿉장난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도 이런 장난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기분은 꽤 괜찮았다.


“네빌.”

방학 두 달을 보내고 오랜만에 만난 네빌에 해리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며 해리를 반긴 네빌이 해리의 뒤에 스네이프 교수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교수였다. 직장동료여서 그런지 사적인 만남은 잘 갖지 않던 네빌과 해리인데다, 버로우에서 모일 때만 1년에 한 두 번 본 게 다였다. 스네이프도 네빌과 악수를 하고 교수석에 착석했다.

네 개의 기숙사 테이블은 1학년을 제외하고 모두 앉아있었다. 낯선 스네이프의 얼굴에 궁금해하는 학생들과 개구리 초콜릿 스네이프 카드를 통해 그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혼재했다. 한 때는 호그와트의 교장 직도 했었는데,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며 여전히 교장실에 걸려있을 자신의 초상화를 생각했다.

문이 열렸다. 플리트윅의 뒤로 열한 살 1학년 신입생들이 쪼르르 따라들어왔다. 금발, 갈발, 적발의 아이들 틈에 까만 정수리의 두 아이를 발견한 해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를 보고 있던 릴리도 팔을 높게 들어 손을 흔들고 알버스도 가슴 앞에 살짝 손을 들어 짧게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처음으로 신입생들이 교수석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떡해, 우리 애들이 호그와트에 왔다니…. 믿기지가 않네. 언제 릴리랑 알이 저렇게 컸을까요, 세베루스….”
“어느 기숙사에 배정받는지 지켜보고 기뻐해도 안 늦는다, 해리.”
“릴리…… 아무래도, 집에서 쫓겨나겠네요.”

어딜 봐도 릴리가 슬리데린에 들어갈 가망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도 물론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를 슬리데린에 넣을 뻔 했던 것으로, 마법의 모자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떨어졌기에 그래도 스네이프는 약간의 기대를 했다. 제 아빠처럼 무모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

모자의 기숙사 배정식이 시작되었다. 여러 학생들이 불렸다, 각자의 테이블로 찾아갔다.

“릴리 포터!”

그리고 마침내 저희들의 딸아이의 순서였다. 포터라는 성에, 릴리가 마법세계 영웅이자 그들 학교의 교수인 해리 포터의 딸임을 알고, 기숙사 테이블이 술렁였다. 해리는 주먹을 꼭 쥐고 릴리가 의자로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왔어야 하는 건데. 해리가 중얼거렸고, 기억을 보관해서 펜시브로 보라는 스네이프의 다소 팔불출적인 핀잔이 있었다.

“─그리핀도르!”

그리핀도르의 사감인 네빌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다 옆에서 느껴지는 눈초리에 움찔거리며 손을 멈추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 뒤에서 쿡쿡 웃었다. 어쨌든 릴리가 집에서 쫓겨나면, 방이 많은 대부의 대저택이 있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릴리는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들썩거리며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신나게 달려나갔다. 제 엄마가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낸다 했던 협박따위는 기억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협박이 이렇게 전연 먹히지 않는 것은, 소녀 또한 ‘포터’의 피가 흘러서일 것임을 확신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에드워드가 릴리를 반겨주며 포옹하는 모습이 보였다.

“알버스 포터!”

또 한 명의 포터에 학교가 술렁거렸다. 게다가 누가 봐도 해리의 아들인 똑닮은 모습에 학생들이 들썩거렸다. 교수석의 해리는 흐뭇하게 웃으며 알버스를 보았다. 알버스는 충분히 제 엄마의 기대에 부흥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슬리데린!”

알버스가 그럼 그렇지, 으쓱해하며 모자를 내려놓았다. 드레이코처럼 건들거리지는 않았지만 자신만만하게 슬리데린으로 걸어가는 제 아들을 보는 해리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얼굴만 저를 닮았지, 성정은 제 엄마를 빼다 박은 모습이 해리는 마냥 귀여웠다. 스네이프는 알버스가 슬리데린을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큰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떡해요, 릴리는 그리핀도르에 가서.”
“알버스가 그리핀도르인 것보단 낫지. 네 얼굴이랑 똑같은 얼굴로 그리핀도르에 들어가는 꼴을 내가 봤으면…….”
“아, 심장마비 왔죠, 세브. 큰일이지.”

흥, 고개를 돌린 스네이프에 해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랬으면 내가 인공호흡 해줄게요. 다정하고 장난스런 말에도 스네이프는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네빌과 플리트윅만 민망해하며 교장이 일어서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듯 맥고나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생 여러분, 재학생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우선, 새로운 마법약 교수이며 슬리데린 사감을 맡으실 스네이프 교수님을 소개하죠. 사실 스네이프 교수님은, 원래 긴 시간 학교에서 일하셨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교수 직을 몇 년 쉬시다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를.”

스네이프는 일어서지도 않았다. 박수칠 놈들은 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해리와 네빌, 릴리와 알버스, 에드워드와 빅투아르는 열렬한 박수를 보냈지만 학생들은 벌써부터 싸늘한 기운을 감지하고 멈칫거리며 박수를 쳤다. 릴리는 스네이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버스는 슬리데린들 틈에서 피식 짧게 웃고,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익숙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바로 옆의 스네이프를 바라봤다가, 슬리데린 기숙사 앞쪽에 앉은 알버스에,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릴리, 에드워드에 시선을 두면서 찬찬한 미소를 띄웠다. 그들은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자신의 가족이었다. 한 살에 상실했다고 생각한 가족을, 지금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해리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슬며시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손을 잡았다. 식사를 앞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투덜대려던 스네이프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하는 해리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해리에게 손을 잡혀 주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은 해리에게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들어온 포터 부부용 슬리데린 사감의 방이었다. 이보다 작은 기존의 사감 방은 드레이코가 쓰고, 그간 여기는 해리 혼자 쓰던 방이었다. 도련님이 그 작은 방에서 10년을 넘게 지냈다니, 스네이프조차 자신들에게 코가 꿰인 불쌍한 제자가 안타깝게 여겨졌다. 드레이코는 저주 주문 치료제를 개발한 호그와트 마법약 교수로서의 생활이 제 명예를 찾아주고, 무엇보다 릴리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불편도 감수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다행스럽게도, 릴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침대에 털썩 걸터 앉았다.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왔더니 피로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 해서 기차를 탔지만, 다음 해부터는 애들만 기차에 태운 뒤, 저희들은 호그와트의 정문 앞까지 순간이동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친 스네이프의 얼굴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피곤한 해리였으나, 그래도 저보다는 반려가 걱정이 되었다. 스네이프에게 다가간 해리가 품에 그의 상체를 안았다. 속절없이 안겨오는 스네이프가 여전히, 당연하게도 사랑스러웠다.

“세베루스, 얼른 자요.”
“……씻어야…….”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씻고 다녔다고요.”

그 말에 스네이프는 없던 기력도 생겨서 해리의 등을 퍽 때렸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은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기름져진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얽어서 슥, 슥 쓸어내렸다.

“오늘 기차 탔을 때, 진짜 입학할 때 기분이 났어요.”
“……나도.”
“우리가 정말 열한 살이고, 동갑이고, 기차에서 처음 만나는 그런 상상도 했고…….”
“……나도, 해리.”

돌이켜보면, 언제나 서로는 같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사랑하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해리가 스네이프를 안은 팔을 풀고, 그의 옆에 앉았다. 기차에서처럼 스네이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해리가 잘록한 허리도 꼭 안아왔다.

“미래에서 온 나랑, 동거를 시작한 첫 날의 저녁 기억해요?”
“내가 기억력 하나는 좋아서.”
“나도 그 날은 생생하게 기억나요. 내가 그 때 ‘말실수’ 했었잖아요, 당신한테.”

스네이프는 해리가 가리키는 말실수가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아, 분위기가 완전히 싸해졌던 그 순간인가. 스네이프는 서로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던 당돌한 해리 포터의 발언이 떠올랐고, 자신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던 것도 떠올렸다. 그 때는 해리의 그 말이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는 면이 있었다. 저희가 친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희박하던 때에,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우리 이제, 좋은 ‘친구’가 된 것 같지 않아요?”

스네이프를 꼭 안고서, 어깨에 턱을 걸친 채 해리가 물어왔다. 스네이프는 앉아있는 것에 지쳐서 몸을 뒤로 눕혔다. 그에 따라 함께 침대에 쓰러진 해리가 저를 안은 채 하하 웃었다. 스네이프는 슬슬 졸음이 내려앉는 눈으로 해리의 녹색 눈을 찾았다. 늘 그랬지만 해리는 제 시선을 참 잘 알아차리고, 또렷하게 눈을 맞춰왔다.

“해리, 너는…….”
“응, 세베루스.”
“나한테는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지.”
“……맞아, 세베루스.”

해리는 눈이 감기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제 가슴에 끌어왔다. 늘 다정하고 안온한 해리의 품에 스네이프는 편안해졌다. 이 안에서 언제까지고 지친 숨을 쉬고나서, 안정을 되찾을 생각을 하면, 믿을 수 없게 행복해지고 말았다. 해리의 큰 손이 자장가를 부르듯 스네이프의 등을 다독였다. 스네이프는 잠에 들기 전 잠깐의 순간, 오늘도 왠지 해리와 같은 꿈을 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살, 동갑의 해리 포터와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기차 안에서 만나, 서로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꿈을.




(完)












완결... 입니다.
최대한 원작 바탕으로 스네이프 행복하게 해주고, 해스네 사랑하는 거 보고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어찌 됐든 제 목적엔 부합했습니다.
스네이프 사랑해... 근데 그게 해리랑 사랑해야 내가 좋은...... 그런 마음입니다.
짧지는 않은 글인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연재 중간에 텀이 길게 끊겼는데도(1년+3년...) 잊지 않고 제 글을 찾아와주신 분들도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겐 특별하게 읽혔기를... 이만 총총.(^^*)


'Harry Pot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스네] 구원자 34  (0) 2021.04.24
[해스네] 구원자 33  (0) 2021.04.23
[해스네] 구원자 32  (1) 2021.04.22
[해스네] 구원자 31  (1) 2021.04.20
[해스네] 구원자 30  (0) 2021.04.18

34.



2000년 2월 24일, 목요일. 스네이프는 창가에 앉아 눈이 내린 벽돌집 가득한 동네를 바라보았다. 불이 붙은 벽난로에서는 집 안 전체를 데우는 따듯한 열기가 퍼졌다. 저번 달 생일에 몰리로부터 받아 입은 초록색 스웨터에는 은색의 실로 S가 자수 되어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떠봤다는 슬리데린 느낌의 스웨터는, 넉넉해서 만삭의 몸에 입기에 적절했다. 몰리는 자신의 임신을 몰랐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그녀가 항시 몸에 맞지 않는 사이즈로 크게 만들었음을 알았다.

두 생명이 자라고 있는 배는, 마법으로 감추지 않으면 삐쩍 마른 몸의 배에 커다란 아이스크림 스쿱을 떠놓은 것처럼 볼록했다. 스네이프는 습관대로 배를 만지다가, 창 밖을 보다가, 책을 들었다가, 홍차를 한 모금 마시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이잉. 손목에서 울리는 진동에 스네이프는 어쩔 수 없이 반가운 눈을 했다. 해리의 생일에 자신이 선물했던 연락망에 H.P라고 글자가 떠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신가요?]
“재미없어, 해리.”
[하하하…. 거기도 눈 왔어요? 저는 오늘 크리스랑 다이애나랑 해그리드랑 눈사람 세 개나 만들었는데.]
“감기 걸릴라. 네가 애냐? 뭐, 여기도 눈 와서 지금 창 밖 보고있었다.”
[세브도 집 안 춥게 하고 있죠? 감기 걸리면 큰일나요. 출산이 코 앞인데. 눈사람 만든 건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요. 다이애나가 크리스마스에 카메라 선물 받은 걸로 찍었거든요.]
“네 사진만 보면 돼.”
[정말 냉정한 사랑꾼이라니까, 세베루스.]

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네이프는 시계판 위에 입술을 붙이는 해리를 상상하며 웃었다.

[보고싶어요.]
“저녁에 보잖아.”
[이거 영상으로는 통화 못해요? 위대한 마법사 세베루스는 가능하지 않아요?]
“좀.”

부른 배로 숨 쉬는 것부터가 힘든데, 마력까지 낭비하라는 철부지 어린 신랑에 스네이프는 한숨을 쉬었다. 해리도 제가 한 소리가 철 없던 걸 아는지, 판 너머로 머쓱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저녁마다 보면서도 유난인 해리였다. 그렇지만 사실, 스네이프 역시 하루 종일 해리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벽난로로 해리가 들어오기만을 줄곧 기다렸다.

[드레이코가 언제 애 나오냐고 닦달하면서, 벌써 드레스랑 정장 사주겠다고 난리예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한테.]
“흥, 벌은 돈 탕진하고 싶은 거지.”

그 말포이 가문의 돈과 드레이코가 저주치료제로 긁어 모으는 돈을 탕진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해리가 판 너머로 하핫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려의 농담이 진심으로 웃긴 것 같았다.

[근데 진짜 우리 애들 나오기까지 얼마 안 남았네요. 오늘 나올 수도 있을까?]
“그런 무서운 소린 하지도 마.”
[왜요, 세브는 우리 애들 안 보고싶어요? 하긴, 애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도 그러던데. 근데 전 아니거든요! 얼른 아이들 보고싶어요. 아이들 안고 있는 세브 모습도.]
“참 나…. 애가 세 명이 되는데 그럼 무섭지, 안 무섭나?”

자신의 세쌍둥이 발언은 여전히 유효했다. 해리 포터가 셋인 걸 상상하며 스네이프는 온 인상을 찡그렸다. 해리가 킬킬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을 일이 아니라고. 스네이프는 팔짱을 끼고 창 밖을 노려보았다. 저 밖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해리를 상상했다. 스네이프의 상상 속에서는 그리핀도르의 1학년들이 아닌, 저와 해리의 아이들이 아빠인 해리와 눈사람을 굴리고 있었다.

[제가 왜 애예요. 아, 시간이 벌써…. 저 수업 들어가요. 나중에 저녁에 봐요, 사랑해요 세브! ─포터 교수님, 안녕하세요!─]

일방적으로 해리의 전화가 끊겼다. 학생들이 옆에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종일 해리의 연락을 기다린 만삭의 임부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까맣게 물든 판을 가만히 내려다보는데 괜히 씁쓸해졌다. 여성호르몬이 과하게 분비되는 탓일 테지. 남성인 스네이프로서는 낯선 일이라, 그 빌어먹을 호르몬에 기분이 더 좌우되었다.

해리의 퇴근 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지, 스네이프는 고개를 들어 벽의 시계를 보았다. 순간, 고개를 들며 당겨진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스네이프는 눈가를 팍 찡그렸다. 아래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는 느낌까지……. 데번 부인이 가르쳐준 출산 전 전조인 듯 했다. 이를 악물었다가, 사라진 통증에 표정을 풀며 스네이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고도 진짜 진통이 오기까지는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터였다. 정말 거지 같은 일이군. 두 번 다시는 안 해. 스네이프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해리의 복부를 한 번 콱 걷어차줄 생각을 했다.


“제가 방해했나요?”
“아니, 다이애나. 끊으려던 참이었어.”

해리는 웃으며 그리핀도르의 1학년 우등생을 내려다보았다. 수업 전에 과제나 교과서, 책에서 본 것들에 대해 물어오는 것은 소녀의 습관이었다. 머글세계에서 온 소녀는 마법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남들보다 더 강했다. 소녀는 오늘 패트로누스에 대해 물어왔다. 볼드모트가 돌아왔을 당시, 영국 전역을 덮은 디멘터들에 대한 옛날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헤르미온느처럼 옛 신문까지 읽고 있는 소녀에 해리는 정말 어깨가 으쓱였다. 마법부에서 일 하느라 바쁜 친구에게 이 소녀를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

“이건 너무 고등마법이라서 1학년 수업에서는 다뤄지지 않겠죠? 패트로누스들의 실물은 정말 예쁘다고 들었어요….”
“맞아. 난 어떤 패트로누스를 보고서는 첫 눈에 사랑에 빠졌는걸.”

해리가 씨익 웃으며 복도를 걸었다. 소녀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걸음에 따라 흔들렸다. 3층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까지 가까워졌다.

“오늘 보여줄까?”
“네? 정말요…?!”
“응, 고등마법이라고 꼭 고학년 때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는걸. 난 패트로누스를 개인적으로 3학년 때 배웠고.”
“3학년이요……?!”

과연 영웅은 다르구나. 해리의 앞에서 영웅 소리를 했다간 1점 감점을 받기에, 다이애나는 얼른 제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소녀의 행동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보여, 해리는 작게 웃었다. 교실은 빈 의자 없이 차있었다. 다이애나는 언제나처럼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교과서는 가방 안에 넣고, 지팡이를 들으렴.”

시작은 늘 그렇듯, 여태 배운 마법들을 복습하는 것이었다. 해리가 가르치는 방어술 교실은 결투장처럼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학생들은 익숙하게 대련 상대를 찾고, 주문을 외쳤다. 기본적인 방어마법을 모두 완벽하게 익혀, 해리의 수업은 실습 위주였어도 부상자가 적었다. 학생들의 대련을 지켜보던 해리가 박수를 치며 연습을 종료시켰다. 해를 넘어가며 다들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이래서는 7학년 때 가르칠 것이 없겠는걸, 하는 생각까지도 들어 해리는 뿌듯했다.

“오늘 보여줄 마법은, 굉장히 어려워서 성공하는 마법사가 드문 마법입니다. 하지만 내 수업을 받는 여러분들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디멘터로부터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할 때도 유용하며,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주는 능력이 있는 마법이니까.”

교실 내의 아이들이 흥분해 술렁거렸다. 디멘터라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아는 것일 수도, 어렵지만 유용한 마법에 대한 열망일 수도 있었다. 다이애나가 푸른 눈을 빛내며 해리의 지팡이 쥔 손을 바라보았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해리가 수 십 번을 외친 그 주문은, 오늘도 가장 아름다운 은백색의 빛을 뿌리며 발을 구르고, 웅장한 뿔을 좌우로 흔들었다.


처음 피가 살짝 비친 이후로, 스네이프는 몇 번 더 속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아이들이 나오려는 건 확실해보였다. 통증이 없을 때 준비를 마쳐두기 위해, 스네이프는 허리를 짚고 볼썽사납게 뒤뚱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스스로의 꼴이 무척이나 한심스럽게 느껴진 게 솔직한 본심이었다. 이런 기분도 아이들을 눈앞에서 본다면 누그러질 수 있을지 스네이프는 궁금했다.

철저한 성미 탓에 산실의 준비가 다 되었다. 산실로 쓸 안방에는 새로 세탁한 시트가 깔린 침대와 그 옆의 아기침대 두 개까지 나란히 붙었다. 해리의 세 명의 친구들이 준비해준 육아용품도 한가득이었고 아이들의 옷까지 수십 벌이었다. 성장 전에 다 입혀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윽, 스네이프는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침대의 헤드를 꽉 쥐고 허리를 움츠렸다. 진통 간격이 최소 5분은 돼야 데번 부인을 부를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재었다. 아직 간격은 7분 정도…….

뒤뚱대며 준비를 했더니 땀이 흘렀다. 출산 전에 뭐라도 먹고, 씻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데번이 산모가 너무 마르고 골반도 좁다 하여 스네이프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날 때부터 이런 일과 거리가 먼 몸이니 당연하지만, 힘이라도 딸리지 않아야 할 텐데. 데번은 출산하기에도 괜찮은 나이라 했지만 그건 여자마법사일 때고 저는 남자였으며, 골반도 좁고 급하게 추가로 생성된 산도는 더 좁을 것이었다. 역시 아이를 낳자는 해리의 미친 소리에 반응해주는 게 아니었다……. 머리를 쓸어올리던 스네이프는 한숨 끝에 욕실로 내려갔다.

“……네들 눈치 보라고 하는 생각은 아니다.”

벗은 몸에는 더 적나라하게 부른 배가 드러났다. 스네이프는 태동이 눈으로 보이는 제 배를 내려다보며 몸을 씻었다. 두 명의 발버둥도 이젠 이 정도로는 아프지도 않았다. 고문 받는 것에 익숙했던 자신인데, 어차피 진통이 궤도를 탄 이후에는 무진통 약을 먹고 할 출산에 큰 걱정이 없었다. 다만 애초 출산을 위해 만들어진 적 없는 제 몸뚱이에서 힘겹게 나올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해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목요일이고, 해리가 점심 이후 2시간 연강 수업이 연달아 2개가 있는 날이었다. 참, 날짜도 이렇게 안 맞아주는군. 세베루스 스네이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욕실에서 나왔다. 지팡이로 한 번에 물을 증발시키고 몸이 보송해지니 한결 나았다. 스네이프는 부엌으로 가, 냉동해두었던 고기를 꺼냈다. 단백질 위주로 재료를 꺼내고 스네이프는 가볍게 요리를 시작했다.


“진짜 멋지다…!!”

학생들 모두 깊은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다. 패트로누스도 어쩜 저렇게 교수와 어울리는지 그 위엄 있는 수사슴의 자태가 눈이 부셨다. 특히나 포터 교수가 교감을 나누듯 수사슴과 눈을 맞출 때의 그림 같은 풍경은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까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반려가 그들도 익히 아는, 남자인 스네이프 교수이기 때문에 괜스레 그 교수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어때요? 멋있죠?”

우렁찬 대답들이 들려왔다. 저도 만들 수 있을까 들뜬 목소리들이 교실에 생기를 입혔다. 해리는 미소를 지으며 패트로누스에게 그들 주위 한 바퀴를 돌게 했다. 학생들은 그것이 가까이 왔을 때, 깊은 안정감과 가슴이 충만해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몽롱하게 풀린 눈이 되어서, 수사슴이 아름다운 달빛처럼 흩뿌려져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패트로누스는 시전하는 마법사의 행복한 기억으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들이 행복한 기억을 잘 떠올릴수록 성공이 쉬워질 거예요. 패트로누스의 모습은 각자 다르니, 내 것이 어떤 동물일지 기대하면서 노력해봐요.”

다이애나가 손을 들었다. 해리는 끄덕이며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은 패트로누스를 만들 때 어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셨나요?”
“아, 좋은 질문이네요. 다이애나, 그리핀도르에 5점 줄게. 나는 행복한 기억이 굉장히 많지만…… 늘 떠올리게 되는 건 역시,”
“스네이프 교수님이죠!”

여러 곳에서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아하하, 몇 개월 사이 그에 대한 사랑을 모조리 학생들에게 드러내고만 해리는 멋쩍게 웃었다.

“아, 또 수업 중에 자기 얘길 한 걸 알면 스네이프 교수님에게 혼나겠는데…. 뭐, 이건 어쩔 수 없잖아요, 그치? 나는 스네이프 교수님을 떠올리며 패트로누스를 만드니까. 그랑 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서.”

학생들 곳곳에서 속닥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부러워….” 그 소리에는 해리도 약간 얼굴이 붉어졌다. 스네이프도 사실은 저 못지 않은 사랑꾼인데, 오직 자신의 앞에서만 드러낸다는 점 때문에 해리 혼자 열렬해 보이기도 해서 쑥스러웠다. 뭐, 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드러낸다는 게 뿌듯할 때도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의 패트로누스는 뭐예요?”

슬리데린의 다니엘의 물음에 해리는 음, 하고 슬며시 웃었다.

“스네이프 교수님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 같이 보여주자고 설득해볼게요.”

그 모습을 저만 보는 건 솔직히 아쉬웠다. 언젠가는 수사슴과 암사슴 패트로누스를 모두의 앞에서 자랑하고 싶었다. 그 환상적인 한 쌍의 패트로누스에 감명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리는 학생들에게 주문을 외쳐보자고 독려하며 수업을 지속했다.


“데번 부인, 아이가 곧 나올 것 같습니다.”

오후 1시쯤에 시작된 전조와 진통이 4시간을 이어졌다. 진통 간격이 5분이 되어도 참던 스네이프는 간격이 3분으로 줄어들었을 때에야 벽난로의 불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그녀를 불렀다.

“왜 미련하게 3분이 되도록 버틴거죠? 세베루스.”
“고통 참는 거야 익숙하고, 그래야 당신이 오고 빨리 진행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미련하다는 거예요. 자, 무진통 약과 산도를 미끄럽게 늘리는 약, 장 내를 비우는 약. 지금 드세요.”

회진가방에서 약물을 꺼내며 데번이 단호하게 말했다. 스네이프는 별 감흥 없는 얼굴로 약을 받아 마셨다. 토 나오게 쓰군. 무표정으로 약물들을 끝까지 삼킨 스네이프는 3분이 지나도 느껴지지 않는 통증에 끄덕거렸다. 데번은 그동안 침대 위에 천을 깔고 스네이프는 아래가 뚫린 원피스형 환복을 입었다. 굴욕적이긴 하나 출산에 실용성을 위한 옷이었다. 스네이프는 침대에 누웠다. 형광연두색으로 띄워지는 제 바이탈과 진통 주기를 보며 데번이 가르쳐주는 대로 호흡을 했다.

“하나도 안 아픈데. 이러다 애 나오는 느낌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고통에 익숙한 티를 자꾸 내는군요, 세베루스. 마법사들의 출산이 머글과 같을 수 없죠.”
“내 어머니는 힘들게 날 낳았다던데. 그렇다고 푸념을 많이 하셨지.”
“머글 병원에 가셨나요?”
“아마도…….”

스네이프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에게 흠씬 두드려 맞은 저의 빼싹 마른 몸을 끌어안고 울며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낳았는데, 이럴 수는 없어,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 기억도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해리에게는 연락하셨나요?”
“아니, 수업 중이라….”
“미련하다 했더니 이런 것까지 제가 알려야 합니까? 당신은 똑똑하면서 이런 쪽에서는 영 아니군요. 지금 당장 연락해요. 아이가 태어나는데 아빠가 있어야지.”

지금 연락한다고 해봤자 금방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굳이 연락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두번째로 미련하다는 핀잔을 들었더니 스네이프의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짜증스레 데번을 노려본 스네이프가 손목을 들었다. 찰칵, 버튼을 눌렀다. 수업 중인데, 받을 리가 없…….

[세베루스!!! 웬일이예요?]

이 놈 자식이 수업 중에 사적인 전화를 이렇게 덥석덥석 받다니…….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데번의 눈치에 입을 열었다.

“학생들이 듣지 못하게 밖으로 나와.”
[밖으로 나와서 받은거예요! 무슨 일 있…… 잠깐.]

해리는 먼저 전화 오는 일이 잘 없던 스네이프와 예정일에 가까워진 오늘의 날짜를 떠올리고, 번개에 맞은 것처럼 소스라쳤다. 판 너머로 덜커덩 소리가 들렸다. “수업 끝!!!” 해리의 갑작스런 외침과 복도를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 스네이프는 피식 웃었다. 흘낏 본 진통 주기가 2분으로 줄어 있었다. 데번은 스네이프와 함께 우당탕거리는 해리의 질주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호그와트에선 순간이동이 불가능 하죠? 해리가 참 지금 애가 닳겠네. 진작 연락 하셨어야지, 세베루스.”
“아무리 해리라도 이렇게 대책 없을 줄은 몰랐어서 말이죠, 데번 부인.”
“아내가 애를 낳는 중인데 그럼 뭐를 최우선으로 두겠어요?”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치고 제 진통 주기를 바라보았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지만 아이들은 지금도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무던한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고통 끝에 결국 뭔가를 이루지도 못하던 삶을 살았던 스네이프는, 이렇게 전혀 아프지도 않게 애를 낳아도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감에 빠졌다. 역시 너무 안 아픈데, 이런데 제대로 나올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데번은 말없이 스네이프의 무릎 세운 다리만 조정할 뿐이었다. 그래서 스네이프는 그냥 판 너머로 들리는 해리의 헉헉거리는 숨소리에 집중했다. 3층의 교실에서 지하 슬리데린 사감의 방까지 미친듯이 달리고 있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의 모습을 상상했더니 우스웠다.

“세베, 헉, 세베루스…! 애, 헉, 나오고, 허억, 있어요…!?”

해리는 지팡이를 휘둘러 급하게 사감 방 문을 열어 젖혔다. 숨이 턱끝까지 차서 헉헉거리면서도, 반려가 저 없이 아이를 낳았을까 걱정돼 너무나 조급했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계판 너머 반려의 목소리는 몹시도 심상했다.

[곧 나올 것 같아. 벽난로에 다 왔나?]
“네…! 지, 금, 곧…!! 스피너즈 엔드!”

플루를 확 뿌리고 가쁜 숨을 참으며 외쳤다. 숨이 차서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몸이 좁은 벽난로에 여기저기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해리는 이러다 스네이프가 아니라 자신이 기절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데번 부인이 약을 써서 아프지 않은 출산이라고 설명했을 때도 믿지 않았는데, 곧 애를 낳는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평소와 똑같이 나긋했기 때문에 해리는 그제야 믿겨졌다. 어쨌든 그가 아프지 않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이었다.

“세베루스…!”

책장 뒤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갈비뼈가 비틀리는 기분이었다. 침실 문을 벌컥 열자, 데번 부인과 자신의 반려가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티타임이라도 즐기는 듯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는 모습에 해리는 맥이 탁 풀렸다.

“아이는 아직……?”
“해리, 이리와.”

스네이프의 부름에 가파르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가슴을 억누르며 해리가 다가갔다. 당장 바로 스네이프의 손을 잡고 해리가 제 얼굴에 비비자, 스네이프는 피식 웃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려니 좋았다.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이렇게 보고 싶어 못 죽는 게 스스로도 우스웠다. 해리, 손 잡고 같이 힘 주세요. 곧 아이들이 나올 겁니다. 데번 부인의 말에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실었다. 약물로 진통은 없었지만, 스네이프도 하반신에 최대한의 힘을 주었다. 산도를 부드럽게 넓히는 약의 도움인지 안 쪽에서 꿀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데번 부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생각이 들자마자, 해리는 눈물을 쏟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생경한 기분으로 제 다리 사이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데번이 아기침대 위에 먼저 나온 첫째를 올렸다. 당연한듯이 정수리를 덮은 흑발의 머리카락이 벌써부터 텁수룩했다. 머리만 봐도 누가 보든 해리 포터의 2세군. 스네이프는 속으로 웃으면서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걱정과는 달리, 마법 약물의 도움으로 출산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해리에게는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이었다. 또 낳자고 했다간 정말로 복부를 걷어차버릴 테니까.

“해리, 가까이 와서 보세요.”

둘째까지 아기 침대에 올린 후, 데번이 지팡이를 휘둘러 뱃 속에서 묻혀온 피와 불순물들을 아기들에게서 제거 했다. 안경을 들어 눈물을 벅벅 닦은 해리가 아기들이 눕힌 침대로 다가갔다. 보송보송해진 아기들이 갓 나왔을 때보다는 좀 더 사람 같아 보였다. 해리는 해사하게 웃으며 제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천사들을 낳았어요, 세베루스. 해리가 감격해서 중얼거리는 말에 스네이프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데번이 둘째를 안고, 해리가 첫째를 안아 들게 시켰다. 해리는 테디를 안던 감각대로 익숙하게 아이를 안아 들고 스네이프에게로 다가갔다. 스네이프의 왼쪽 가슴에는 둘째, 오른쪽 가슴에는 첫째 아이를 놓았다. 스네이프는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둘이나 낳았더니, 한 놈에게 집중을 못 하겠군. 그 말에 해리도 데번도 웃음을 터뜨렸다. 스네이프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행복에 양 손을 들어 아기들을 안았다. 제 아이들은 작고, 아주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 * *

똑똑.
붉은 원피스에 까만 스타킹을 신은 작은 꼬마 숙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까만 단발의 머리카락을 귀 밑으로 넘기는 손짓이 한껏 도도해보였다. 그 옆의 키가 같은 남자아이는 남색 더플코트를 입고 조용하게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찰칵이며 문이 열렸다. 아이들은 반가운 눈을 했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그들보다 키가 껑충한 열한 살의 소년이었다. 아이들과 같은 흑발의 머리카락에, 앞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길게 자란 소년은 꽤나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찰스!”

단발 소녀는 찰스의 다리를 꼬옥 안아 붙들었다.

“추워. 들어와, 릴리. 알도.”
“아주머니는? 웨이드도 있어?”
“마트에 갔어. 근데 둘만 온 거야? 스네이프 씨는?”
“엄마는 파티 준비하고 지금은 케이크 굽는대.”

릴리의 답변에 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TV에서 나 홀로 집에 하던데, 볼래? 릴리가 신난다고 들어오느라 밖에서 밟은 눈이 바닥에 묻었다. 알버스는 뒤에서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바닥을 닦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찰스의 말에도 민폐 끼친 건 릴리잖아, 하는 단호한 말을 내뱉었다. 알버스는 녹색의 눈까지 완벽히 해리를 닮은 얼굴에, 정말이지 스네이프 씨와 똑닮은 성격이다. 반면에 릴리는 얼굴은 스네이프와 해리를 섞은 느낌에, 성격은 대체 누굴 닮은 건지 천방지축 말괄량이가 딱이었다. 스네이프 씨 말로는 그녀의 할머니이자 이름을 물려주신 ‘원조 릴리’와 닮았다고는 하던데.

오늘은 2005년 2월 24일, 그들의 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알버스와 함께 거실로 들어가니, 릴리는 제 집처럼 소파에 앉아서 과자까지 뜯어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알버스는 그런 제 쌍둥이 남매에 고개를 젓고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았다. 찰스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직 갓난아기인 아이들과 함께 집 현관문에 나타난 해리 선생님을 기억했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여섯 살 찰스에게는 기적처럼 놀라운 재회였다. 체육 센터를 그만 두고 이사를 간다던 해리 선생님은 1년도 안돼서 다시 이 곳에 돌아왔다.

“해리, 어떻게 된 거예요?”

찰스의 옆에서 역시나 놀라 눈을 키운 엄마 레이첼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아이 한 명을 받아 안는 모습에는 따듯한 눈빛이 어렸다.

“레이첼, 오랜만이예요. 다시 돌아왔어요. 스피너즈 엔드에서 계속 살 거예요. 얘는 릴리, 얘는 알버스고요.”
“누구 아이예요? 해리의 아이? 하지만 스네이프 씨는 남잔데…… 입양한 건가요?”
“레이첼, 할 얘기가 있어요. 찰스와 웨이드가 우리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줬으면 해서.”
“물론, 당연히…….”

그리고 해리는 주머니에서 나무 막대기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해리? 레이첼이 되묻는 찰나, 해리가 막대기를 휘두르자 문이 닫혔다. 폴터가이스트의 장난인 것 마냥 무섭고 놀라운 순간이었다.

현관에서 소리가 났다. 찰스는 엄마와 동생을 마중하러 나갔다. 젖은 자국이 있는 바닥을 보고 릴리와 알이 왔는지 레이첼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찰스는 빵 봉투를 든 웨이드를 데리고 거실로 갔다. 릴리는 웨이드를 보고 덥석 안더니 바로 봉투를 열어 빵을 뒤적거렸다. 알버스는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무신경한 얼굴로 영화를 보았다. 간식으로 빵은 조금만 먹고, 다같이 포터 부부의 집에 가자고 레이첼이 말했다. 알버스는 애초에 엄마가 만든 음식들로만 배를 채우려고 다른 주전부리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찰스와 릴리, 웨이드가 손을 잡고 앞서 걸어 갔다. 레이첼의 옆에서 걷던 알버스는 집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후다닥 뛰어 나갔다. 아빠! 알버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인 해리였다. 알버스를 안아 올린 해리가 하얀 아이의 뺨에 입술을 붙였다. 다섯 살 릴리는 아빠보다 찰스와 웨이드가 좋다고 한창 뻗대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빠와 알의 유난한 인사에도 태연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보다 오빠가 좋다 이거지. 하지만 과연 ‘대부’의 앞에서도 저럴까? 해리는 릴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게 자신이 아니었지만, 스네이프조차 아니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레이첼, 찰스, 웨이드. 와줘서 고마워요. 릴리, 안에 누가 왔는지 알면 너도 난리가 날걸?”
“헐! 벌써 왔어?!”
“릴리!”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백금발의 청년이 뛰쳐나왔다. 방금까지 자석처럼 착 붙어있던 오빠들의 손을 떨쳐낸 릴리가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산가족 상봉 마냥, 서로에게 꼭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친구와 딸의 꼴을 보니, 해리는 눈꼴이 시려웠다.

“드레이코- 아빠랑 같이 왔어?”
“응.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왔지. 우리 릴리 생일이잖아-”
“디키 삼촌, 저도 생일인데요.”
“아, 그래, 알. 너도 물론 축하해.”

알버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해리의 품에서 내려왔다. 제가 어릴 적 아빠를 쏙 닮아서 드레이코 삼촌이 장난스레 틱틱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빠와 삼촌이 학교 다닐 땐 최고의 앙숙이었다고, 알버스는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다.

“안 들어오고 뭐하나.”

까만 스웨터를 입고 머리를 묶은 스네이프가 현관으로 나왔다. 눈 내린 추운 바깥에 선 사람들을 보는 눈초리는 한심스러웠다. 레이첼에게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스네이프는 아이들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릴리와 알버스는 그런 냉정한 엄마의 뒤를 쪼르르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 가득 풍기는 따듯하고 맛있는 음식의 냄새는, 방금까지 그토록 냉랭했던 스네이프가 만들어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식탁 위 가운데에는 분홍색 크림을 바른 생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릴리가 분홍색을 우겨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드레이코와 릴리, 웨이드는 카펫 위에 앉아서 드레이코가 가져온 온갖 과자와 장난감들을 보며 감탄했다. 허니듀크에 새롭게 나오는 게 있을 때마다 드레이코는 가장 먼저 릴리와 알에게 사주었다. 조지의 장난감 가게 물건은 조지가 보내주기 때문에, 드레이코가 들고오는 장난감들은 전부 외국의 것이었다. 혀를 쭉 내밀고 제 혀로 줄넘기를 시작하는 광대 장난감에 웨이드는 인상을 찌푸렸고, 릴리는 우스워했다.

“대부, 대모!”

벽난로로 들어오는 론과 헤르미온느에 알버스가 달려가 다리를 안았다. 잠깐, 재 좀 털자 대자여. 론은 짐짓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로 재들을 전부 지워주었다. 알, 생일 축하해. 바로 무릎을 굽혀 쭈그린 헤르미온느가 알버스를 안았다. 알버스는 그들의 집에 갔을 때 맡아지는 꽃냄새를 느끼며 그녀를 꼭 안았다. 론은 드레이코의 옆에 앉아 이 장난감은 어느 나라 것인지를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부엌으로 가서 스네이프가 차린 음식들에 감탄했다. 저는 몰리에게 배워도 잘 안돼요. 모범생도 못하는 게 다 있군, 비웃는 소리까지 알버스에겐 익숙한 대화였다.

“테디!”

품 가득 포장 된 선물 2개를 안은 에드워드가 벽난로에서 나왔다. 해리가 제일 먼저 대자를 반겼다. 오늘은 까만 머리구나? 저도 해리의 가족이니까 새까맣게 했어요. 해리는 그 대답에 웃었다. 해리, 스네이프, 릴리, 알버스 모두 당연한듯이 흑발이었기에 거기에 섞이고 싶었다는 대자의 말에 해리는 뭉클했다. 그리고 곧 대자가 스네이프에게 달려가 와락 안겨 세브! 를 외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루핀도 통스도 닮지 않았지만, 그래도 루핀의 아들인 그의 정수리를 쓸어주는 희고 마른 손이 좋았다. 해리는 기다란 식탁을 더 기다랗게 늘리고, 그릇을 옮겼다. 레이첼과 헤르미온느가 수저 놓기를 도왔다.

“다들 앉아! 론, 드레이코! 릴리랑 다른 애들도 다 식탁에 와.”

헤르미온느가 소리를 지르자 다들 식탁으로 모여 들었다. 찰스는 에드워드의 옆에 앉아 오늘의 머리색이 서로 같은 것에 대해 떠들었다. 난 네가 하늘색 머리였던 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찰스의 말에 몇 가닥 정도를 하늘색으로 물들인 에드워드가 씨익 웃었다. 알버스는 그들 옆에 앉아 음식들을 그릇에 덜었다. 엄마 음식을 먹으려고 계속 굶었더니, 배가 고팠다. 반면 릴리는 군것질을 많이 해서 생일 케이크만 먹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런 대녀도 귀여운지 드레이코는 싱글벙글해서, 릴리 옆에 앉아 음식을 이것저것 챙겨주며 먹이려 했다.

“세베루스, 고생했어요.”
“만든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고 그런 거지.”

스네이프의 빈정거림에 해리가 키득키득 웃었다. 주말엔 집에 있을테니까 내가 당신 손가락 하나도 까딱 못하게 할게요, 세브. 생일인 알버스가 엄마의 음식을 요구해서 차린 거지만, 스네이프는 괜스레 해리에게 툴툴거렸다. 제 투정을 귀엽게 보며 달래주는 해리의 모습이 좋아서였다. 사실, 학교에 나가지 않고 아이 둘만 집에서 기르는 게 스네이프의 적성에 몹시 잘 맞았지만 그것조차 해리에게 괜한 투정을 부린 스네이프였다. 그걸 눈치챈 해리도 오냐오냐 엉덩이를 두드려주었다. 그에 흥, 하며 스네이프는 새침히 고개를 돌렸었다.

그 사이, 부모는 쏙 빼두고 릴리와 알버스에게 선물 증정식이 시작된 듯 했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해리와 스네이프가 서로만의 세상에 빠져 있을 때, 주변인들이 ─그들의 아이들도 포함한─ 알아서 뭔가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말이었다.

“벌써 애들을 키운지 5년이나 됐다니…. 신기하지 않아요? 세브.”
“갓난이 시절 지나가서 너무 좋다, 난. 정말 끔찍했지. 뒤돌아서면 젖달라, 기저귀 갈아달라, 안아달라……. 해리 포터가 셋이었어, 아주.”
“기저귀는 인정 못하겠는데요. 젖이랑 안아달라까지는 인정.”
“해리, 다 들려.”

옆에 앉아있던 론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아직은 애들이 어려서 못 알아듣는다지만, 애들이 커서도 제 친구 부부가 저럴까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못해도 아이들의 머글 친구인 11살 찰스는 알아들었을 터였다. 정말 사회에서는 똑똑하고 카리스마 있는 두 사람이 둘만 있으면 저 지경인 것에 론마저도 고개를 흔들었다.

해리가 머쓱하게 웃자 친구들은 피식 웃었다. 그간 많이도 본 모습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스네이프는 받은 선물을 자랑하러 온 릴리를 허벅지 위에 앉혔다. 드레이코가 선물한 공주 세트의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머리에 쓴 릴리가 헤헤 웃었다. 알버스가 다가와서 론이 선물한 장난감 지팡이를 들고 릴리의 드레스를 찌르며 대부가 가르쳐준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햇빛, 데이지, 버터멜로여, 멍청한 이 드레스를 노랗게 바꿔주세요…….

“하하하. 론, 그 끝내주는 주문을 외우기에 우리 애는 아직 어린가 봐.”

아빠의 말에 알버스가 저는 어리지 않다고 버럭거렸다. 어른들은 그런 알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릴리도 까르르 웃으며 스네이프의 목을 안고, 다리를 방방거렸다. 해리는 턱을 괴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스네이프와 가족을 이룬 이후로 늘 보게 되는 이 행복한 광경에, 해리는 오늘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Harry Pot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스네] 구원자 35 (完)  (18) 2021.04.24
[해스네] 구원자 33  (0) 2021.04.23
[해스네] 구원자 32  (1) 2021.04.22
[해스네] 구원자 31  (1) 2021.04.20
[해스네] 구원자 30  (0) 2021.04.18

33.



“저 분이셔…?”
“세상에, 정말 너무 멋있게 생겼다….”
“나도 꼭 해리 포터처럼 그리핀도르에 들어 갈래!”
“나도!”
“나도! 난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도 전부 다 그리핀도르였어! 내가 슬리데린에 배정 받는다면 난 진짜로 집에서 쫓겨날 거야!”
“나는 엄마랑 아빠 모두 마법사가 아니였는데, 나만 기숙사에 배정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교감인 플리트윅이 해그리드에 인수 받아 데려온 열한 살 신입생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들은, 바로 앞의 교수석에 아주 잘 들려왔다. 스네이프는 시큰둥하게 신입생들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전쟁 후 슬리데린의 입지가 좁아졌다지만, 그리핀도르만 배출해냈다는 가문의 아이는 저와도 상극이어서 질색이었다. 해리는 스네이프의 옆에서 작은 뒤통수들을 내려다보며 싱글거렸다. 저 때의 기분이 생생한데, 지금 자신은 호그와트의 교수로서 교수석에 앉아있었다.

신입생들의 배정은 재미있었다. 해리와 네빌은 그리핀도르로 배정 받는 아이들마다 웃으며 박수쳐주었다. 그리고 다른 기숙사도 마찬가지지만, 슬리데린에 배정 받는 아이들에게는 해리는 특별히 더 열렬히 박수쳐 주었다. 기숙사 배정식이 끝나고, 신입 교수진들을 소개하는 순서가 되었다. 맥고나걸은 스네이프 교수의 재임을 우선 소개했다. 느슨한 부분도 있었던 슬러그혼의 마법약 수업을 들었었던 학생들은, 다시 돌아온 악마의 재림에 영혼 없는 박수를 쳤다. ‘교수 스네이프’를 잘 모르는 저학년들은 묘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올해부터 새롭게 약초학을 가르치며, 그리핀도르의 사감으로 부임하신 네빌 롱바텀 교수입니다.”

네빌을 아는 상급생들부터 어린 저학년들까지 와아아 환호를 보냈다. 저 분이 그 내기니, 마왕의 뱀을 그리핀도르의 칼로 죽였다는 그 분이시지! 되게 착하게 생기셨다, 신입생들은 흥분에 들떠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함성은 프레드와 조지가 돌아온 듯 시끄러웠다. 네빌은 머쓱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자리에 앉았다. 네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다음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실 해리 포터 교수님입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목의 오랜 악습을 끊고,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아주시길, 포터 교수님.”

맥고나걸의 유려한 소개와 함께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대연회장은 마법세계의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흥분에 찬 환호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거인이 건물을 잡고 흔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해리 포터! 해리 포터! 연호하는 10대 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해리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맥고나걸이 소노루스에 맥시마를 걸고 하울러 뺨치는 소리를 질렀다. “조용!!!” 그제서야 흥분했던 장내가 찬 물을 엎은 듯 조용해졌다. 스네이프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해리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음, 해리 포터입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후다닥 자리에 앉은 해리가 맥고나걸의 눈치를 살폈다.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친 기분이었다. 그리고 스네이프를 돌아보았을 때, 저 무시무시한 얼굴에 해리는 소름이 쫙 끼쳤다. 펜시브를 훔쳐봤을 때 봤던 분노어린 얼굴과 아주 흡사한 얼굴이었다. 이렇게까지 화날 일이신가……. 교수가 호그와트의 10대들을 왜 혐오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해리의 첫 수업은 점심 이후에 있어, 오전 시간 중에 있는 스네이프의 첫 수업 시간보다 늦었다. 그래서 해리는 느긋하게 슬리데린 사감 방에서 나와서 수업을 하는 스네이프를 훔쳐 볼 요량으로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복도였고, 마법약 교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해리는 숨을 죽이며 복도를 걸어 마법약 교실의 창에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개학의 첫 날, 첫 수업으로 스네이프 교수의 마법약 수업을 들은 불쌍한 아이들이 누굴까 궁금했다. 앳된 얼굴과 작은 덩치들로 보아, 그들은 심지어 어제 처음 호그와트에 입성한 신입생들인듯 했다. 해리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살폈다. 그 어린 얼굴들은 살얼음 위를 걷는 표정이었다. 매캐하고 거뭇한 연기를 뿜는 솥 앞에서 잔뜩 쫄아있었다. 안 봐도 반려의 얼굴은 뻔했다. 또 끔찍한 트롤의 후예들을 맞이했다고 표정이 썩어있겠지.

“아.”

찡그린 미간을 손끝으로 주무르던 스네이프와 눈이 마주쳤다. 해리를 본 스네이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까지 냉랭하던 교수의 표정이 풀린 것을 몇몇의 학생들이 ─이미 실패한 제 약물에 자포자기로 수업에 넋을 놨던─ 발견했다. 약간의 웅성거림에 정신을 차린 스네이프가, 금세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떠든 학생들을 걸러내었다. 이크, 이런. 불쌍하게 됐네. 해리는 얼른 창에서 얼굴을 빼냈다. 하지만 교실 안에서는 감점이 차례로 이루어지고 있을 터였다.


“아, 어서와요 세베루스.”
“해리, 내 수업 시간에 왔었지.”

해리의 옆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기분 나쁜 것 같진 않았지만,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해리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그릇에 닭 구이 조각을 두어 개 얹어주었다.

“1학년들이었죠? 저도 오늘 첫 수업이 1학년들인데. 어느 기숙사예요?”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이번 해도 머리에 썩은 고름만 찬 쓰레기들 뿐이야.”
“가차없으시네, 스네이프 교수님. 그리고 그 아이들은 제 첫 수업에도 들어오겠네요. 오늘 저도 1학년 그리핀도르-슬리데린 합동 수업이라.”
“흥. 너도 경악하게 될 거다, 포터 교수.”
“잘하는 애가 한 명도 없던가요?”

혼혈왕자의 열렬한 팬인 해리가 그의 마법약 수업에 흥미를 가지며 물었다. 제가 학생일 때 스네이프를 좋아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평범한 수준인 학생은 그리핀도르의 머글태생 걔야. 이름은 다이애나 헌트.”
“당신 입에서 평범하다고 나왔으면 아주 뛰어난 학생이겠군요?”
“…해리 포터.”

짐짓 화내는 톤의 목소리였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이고 베이크드 빈을 수저로 떠서 먹었다. 어제 기숙사 배정식에서, 머글 부모 탓에 기숙사 배정도 못 받을까 걱정하던 구불진 갈색 머리카락의 작은 여학생이 떠올랐다. 그 아이도 헤르미온느처럼 입학 전에 걱정하면서, 그리고 흥미롭게 교과서들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해리는 저도 입학하기 전에 재밌게 교과서를 읽었던 것을 떠올렸다.

“제일 끔찍한 건 역시 대대로 그리핀도르였다는 그 놈이야. 크리스 커비. 롱바텀을 다시 가르쳐야하는 기분이다.”
“하하하. 그렇지만 세베루스는 첫 날부터 학생들 이름을 다 외우네요. 역시 교수 일에 애정이 있는 거죠?”
“……?”
“왜요? 세베루스.”
“학생들 이름 외우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런 건 한 번 봐도 금방 외워지는 거잖아.”

아…… 그랬지, 참.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재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좋을 뿐이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은 3층의 교실에서 있었다. 해리는 움직이는 계단이 움직이지 않는 타이밍을 맞춰 가볍게 계단을 올랐다. 익숙한 길, 익숙한 걸음이었다. 교실에는 첫수업부터 스네이프 교수를 맞았던 불운의 신입생들이 앉아있었다. 슬리데린들은 해리를 보며 저들끼리 불안한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핀도르 출신인 영웅이 자신들에게 편견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인 신입생들은 해리를 보며 터질 듯한 심장을 꽉 부여잡았다.

“안녕,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게 된 해리 포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제 처음 호그와트에 왔고, 저는 지금이 첫 수업입니다. 서로 서로 처음이니까, 잘해봐요 우리.”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해리의 눈에는 정말 귀여운데, 스네이프의 눈에는 그저 무지함과 난폭성은 똑같은 작은 트롤들로만 보인다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첫 수업부터 뭔가를 배우긴 벅차겠죠? 오늘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보내고, 다음 수업부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갈게요. 음, 나에게 궁금한 것 있다면 물어봐도 좋아요.”

머글 어린이 체육 센터에서 일했던 그대로, 어린 신입생들을 대하기는 쉬웠다. 해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번쩍 든 학생은 스네이프가 롱바텀이 돌아왔다고 평가한 크리스였다.

“볼드모트를 죽이고나서 기분이 어떠셨나요?!”

첫 질문부터 강렬해서 해리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흐음, 해리는 손가락으로 턱을 쓸고 조용하게 있었다. 두려움이 얇게 깔린 호기심을 내보이며 열한 살짜리들이 해리를 보고있었다. 사실 그 질문은, 전쟁 후에 영웅 해리 포터 인터뷰만 몇 십 번을 했었는데 그 때마다 들었던 고루한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환호했을 것 같은가요?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드디어 어둠의 마왕을 내 손으로 죽였다고 기뻐했을 것 같나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질문을 한 크리스도 해리의 눈치를 보며 마르는 입술을 핥았다. 해리는 살짝 미소를 지어,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 한 사람, 볼드모트는 아주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긴 했지만, 결국 사람 한 명에 불과했어요. 순수혈통 어머니와 머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면서 머글과 머글태생을 혐오하고 마법세계를 악으로 물들이려 한, 원래 이름은 톰 리들이라는 사람이었죠. 그 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서 희생된 사람의 숫자를 정확하게 셀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내 부모님도 싸웠었고, 내 친구들도, 내가 모르는 많은 마법사들도 전부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내가 혼자 그를 죽인 것도 아니고, 그 희생들을 알기에 나는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때, 그냥 너무 지쳤고,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좀 자고 싶을 뿐이었어요. 어둠의 마법에 대항한다는 건 그런거예요.”

교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해리는 그들이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길 바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둠의 마법이 세계를 또 다시 장악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어요. 마법의 역사 속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했으니까. 그러니, 이 방어술 수업이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학생들이 크게 박수를 쳤다. 해리는 머글태생 아이인 그리핀도르의 다이애나를 눈여겨 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론을 생각나게 했고, 그녀의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헤르미온느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말에 제일 감명받은 것이 그녀란 것도, 그녀가 뛰어난 모범생일 것도 해리는 알 수 있었다. 다이애나가 손을 들었다. 다른 몇몇들도 번쩍 손을 들어왔지만, 해리는 우선 다이애나의 질문이 듣고 싶었다.

“다이애나?”

해리가 제 이름을 알고 있자, 그녀는 눈에 띄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진짜 귀엽다. 해리는 자신은 스네이프와 달리, 교사가 천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저는 머글태생이예요. 제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적은 없었지만……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공부하면서, 제 주변에서 있었던 이상한 습격이나 사건들이 다 그 볼드모트… 라는 마법사와 관련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마법사들은 머글들에게 우리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니까,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피해를 봤었겠죠. 대신 사과할게요, 다이애나.”
“포, 포터 교수님이 세계를 평화롭게 만든 영웅이신데 사과를 하시다뇨….”
“앞으로 내 수업에서 나를 영웅이라고 지칭하면, 기숙사 점수 1점씩 감점하겠어요.”

다이애나를 비롯 학생들 대부분이 움찔했다. 해리는 스네이프에게 감점의 맛을 제대로 당하고 온 그들의 반응에 웃음을 꾹 참았다.

“질문은 없나요, 다이애나?”
“아…. 저, 어제 학교에 와서 교수님의 친구분 중에 그리핀도르고 머글태생이었는데, 뛰어난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거든요. 기숙사에서 저 혼자…… 머글태생이라서. 마법사라는 것도 몰랐는데 제가 수업에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슬리데린 기숙사 쪽에서는 미묘한 분위기가 흘러 나왔다. 그들은 전쟁 이후 직접적으로 혐오를 티낼 순 없었지만, 집에서부터 배워온 머글태생에 대한 무시가 기저에 깔려 있음을 해리도 모를 수 없었다. 흠, 얼른 드레이코가 마법약 교수로 와서 저들을 계몽시켜주어야 할 텐데. 해리는 팔짱을 끼고 교실을 둘러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전 수업, 스네이프 교수님의 마법약 수업이었죠?”

교실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긴장과 두려움에 싸이는 것 같았다. 이런, 정말 학교의 첫 수업부터 스네이프 교수를 만나게 됐던 건 그들에게 정말 불행한 일이었다.

“그 수업에서 감점 당하지 않은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리핀도르에선 다이애나를 포함한 소수의 몇이 손을 들었고, 슬리데린에서도 손을 드는 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주 첫 날부터 신입생들에게 제대로 횡포를 부리셨군. 해리는 사랑스런 부인 세베루스에게 유감을 표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분의 수업에서 감점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그리고 점수를 깎였더라도, 저 또한 스네이프 교수님에게 점수를 많이 깎였던 학생이었는데, 보시다시피, 이렇게 학교의 교수로 일할 수 있을 만큼은 되도록 학교에서 공부를 배웠으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여러분.”

그 말은 신입생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 세계를 구한 위대한 영웅조차도 수업시간에 점수를 깎이는 학생이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무섭고 냉랭한 스네이프 교수와 자상하고 다정한 포터 교수가 부부가 됐다는 것은, 바로 2주 전에 마법세계를 발칵 뒤집은 엄청난 이슈였다. 열한 살의 어린 그들은 도저히 이 둘을 부부로 매치시킬 수가 없었다. 물론, 고학년이라고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느냐는 것 또한 생각해볼 문제이긴 했다.

“저….”
“응, 이름이?”
“알렉스 로더입니다, 교수님. 그, 저희 슬리데린의 사감이신 스네이프 교수님과…… 정말 결혼하신 거 맞으시죠?”

슬리데린 학생의 질문에 아이들이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음기 어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슬리데린 아이들은 그의 형제자매들이나 부모가 스네이프와 직접적으로 얽힌 적이 있을 터이니, 이 결혼 소식에 집에서의 반응이 더 재밌었을 것 같았다. 해리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쿵 저러쿵> 안 봤니? 거기에 키스하는 것도 크게 실렸던데.”

꺅! 여학생들의 비명이 손 틈새로 새어나왔다. 남학생들도 웅성거리며 키득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핀도르의 키 작은 남학생이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포터 교수님은 스네이프 교수님이 안 무서우신가요…?”
“풉…! 아, 미안, 큭, 아…. 질문이 너무 귀여워서.”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허리를 숙여가며 폭소를 참은 해리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허리를 다시 세우며 눈가를 훔치는 젊은 교수의 모습이 너무나 그림같이 멋있어서, 여학생들은 여전히 입을 가린 채로 감탄사를 삼켰다. 저렇게 젊고 잘생겼는데 유부남이라니, 그것도 그 무서운 스네이프 교수랑 결혼을 했다니……. 여자아이들의 선망은 금세 실망으로 변모했다.

“학생일 때도 무섭다기보다는 서로 싫어했던 거라서, 반항을 좀 했었죠. 지금은…… 귀엽고.”

스네이프가 귀엽다고……? 학생들은 안경을 낀 포터 교수의 시력에 대해 저들끼리 속닥이기 시작했다. 해리는 이 수업이 끝나고, 스네이프가 이 수업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게 되면 어떨지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자, 스네이프 교수님에 대한 질문은 넣어두고, 수업에 관한 거 궁금한 거 있으면 해요.”

그 질문에는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수업 외의 사적인 부분이 궁금하구나. 해리는 저였어도 확실히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웃음을 흘리고, 해리는 눈앞의 학생들과 동갑이었던 자신이 1학년일 때, 마법사의 돌을 지키려고 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제 반려 스네이프를 의심했었던 사실은 쏙 빼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 1층에 당도한 해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네이프와 혹시라도 복도에서 마주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학생들은 복도 가운데를 막고 선 해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수업을 연달아 2번 해놓고도, 해리는 자신이 교수라는 것이 아직 생경했다. 7학년들과의 나이 차이는 고작 2살밖에 나지 않아서 그들의 인사에는 더욱 쑥스러웠다. 결국 해리는 스네이프를 찾아 지하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식당으로 가는 학생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기도 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해리를 지나치며 흘깃거리고 인사를 했다. 전쟁 중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그들이, 영웅인 해리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해리는 스네이프가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미묘한 시선으로 해리를 보았지만, 스네이프가 지하 교실에서 나왔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해리는 고맙다고 답한 뒤, 걸음을 다시 옮겼다. 성의 지하는 서늘했다. 해리는 임신중인 스네이프를 위해 숄이라도 사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세베루스!”

교실 밖, 슬리데린 고학년 남학생과 대화중인 스네이프가 보였다. 스네이프도 키가 큰 편인데, 얼추 그와 비슷한 체격의 학생에 해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해리는 얼른 제 반려를 제 뒤에 가두듯 옆에 섰다. 그에, 대화중이었던 스네이프는 다소 어이가 없는 눈치로 해리의 옆통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해리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나누던 대화를 지속했다.

“…N.E.W.T 과정은 난 분명히 O만 받는다고 했다, 로버트.”
“저는 슬러그혼 교수님의 기준에 맞춰서, 당연히 수업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스네이프 교수님, 제발…. 갑자기 교수님이 바뀌셔서 저도 당황스러웠는데….”
“그럼 다시 O.W.L을 쳐서 O를 받아오던가, 슬러그혼 교수를 다시 모셔오던가 해, 로버트 호프먼.”

해리는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스네이프 교수에 경악스런 시선을 보냈다. 로버트가 쩔쩔매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방금까지 경계하던 학생에서, 앞 날이 걱정되는 학생으로 시선이 바뀐 해리가 스네이프의 손을 잡고 마주 보았다. 해리의 크고 따듯한 손이 저를 잡아오자, 냉정하던 까만 눈이 약간 흔들렸다. 해리는 그 시선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지 없이 교수가 바꼈으니 학생도 혼란스러울 거예요. 저는 반대로 O만 받는 당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E를 받았었지만, 슬러그혼 교수님 덕에 N.E.W.T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세베루스도 올해만 기준을 바꿔서 E 받은 학생 중에도 N.E.W.T 과정을 듣고 싶다는 학생들은 받아주면 안 될까요? 올해만요.”

해리의 뒤에서 로버트도 적극적으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스네이프는 이미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포터 교수, 알았으니까 손 좀…. 그 조그만 중얼거림에 해리는 됐다, 싶어서 싱긋 웃고 스네이프의 눈에 제 녹색 눈을 맞추는 쐐기를 박았다. 스네이프는 결국 고개를 틀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로버트가 몹시 기뻐하며 해리에게 꾸벅 인사를 해왔다. 로버트가 자리를 비키자마자, 해리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다시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다. 차가웠던 교수는 얼음이 녹아 없어진 것처럼 사라지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순종적인 눈에 해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말도 잘 듣고. 예뻐라.”
“해리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니까……. 뭐… 수업 인원이 그리 크게 늘 것 같지도 않고…….”
“응, 맞아요. 잘했어요.”

키스하고 싶다, 해리는 그 생각이 들자 스네이프의 뺨을 감싼 손을 그대로 끌어당겼다. 그런 해리에 못 이기는 척, 스네이프 역시 다가와 고개를 틀었다. 지하 교실 앞 복도에서, 둘의 입술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닿을락 말락, 애타는 느낌에 스네이프의 손이 해리의 로브 소매깃을 잡았다.

순간, 복도 끝에서 들려온 인기척이 있었다. 스네이프는 그 소리를 감지하자마자 해리의 배를 퍽 밀쳐내었다. 악 소리를 참은 해리도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슬리데린 기숙사의 학생인 듯 싶었다. 내가 미쳤지, 한순간 저 눈에 홀려서. 욕설을 내뱉는 스네이프에 해리는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등을 토닥였다. 학생과 교수의 밀회도 아니고, 우린 부부인데요. 해리의 속삭임에 스네이프는 어쩐지 더 부끄러워져 괜스레 해리의 정강이를 걷어 찼다.

그들은 식당이 있는 1층으로 올라갔다. 스네이프의 옆에 붙어서 학교 지하의 복도를 걷는 기분은 새삼 새로웠다. 6학년 때 이후로, 그와는 같이 학교에 있어보지도 못했다. 스네이프가 덤블도어를 죽이고, 불에 타는 해그리드의 오두막 앞에서 서로를 경멸하며 악에 받쳐 소리지르던 것이, 학교에서 서로를 마주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때의 스네이프를 다시 떠올리면, 그가 너무나 처절해 보였고, 가슴에 아팠다. 하지만 오해 속에 헤어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어째서 자신은 그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었을까. 사실 해리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 때까지 계속 그를 덤블도어를 죽인 살인자이자, 볼드모트의 총애를 받는 데스 이터로 보고 있었으면서도, 고작 뱀에 물려 주인에게 버림 받았다는 것 따위에 자신의 차가웠던 마음이 휘둘릴 수 있었던 건지. 왜 해리 포터는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죽음에서 눈 돌릴 수 없었는지를.

물론, 그의 생명을 구한 다음 순간부터는, 해리는 그 이유를 알 수밖에 없었다.

“입덧은 괜찮아요?”
“물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입덧 자체가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말 아침에는 복용을 끊고, 입덧이 괜찮아졌는지 확인해봐야겠군.”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들 재깍재깍 효도 하자, 엄마한테.”
“쉿, 조용히 해. 해리.”

대연회장에 가까워지자 스네이프가 해리의 입을 단속했다. 넵, 해리는 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스네이프는 그 행동에 피식 웃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네빌의 옆으로 붙어있는 두 자리가 비어있었다. 해리는 얼른 네빌의 옆에 앉았다. 스네이프도 해리의 옆에 앉아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너는 첫 수업 어땠어, 네빌?”
“간단하게 ‘도망치는 버섯’ 돌보기를 했어! 해리 너는?”
“나는 첫수업부터 진도 나가기 싫어서 질문 받고, 잡담 했어. 다음 수업부터는 간단하게 프로테고를 가르칠 거야.”
“……아, 그렇구나.”

그거 오러들이 유용하게 쓰는 주문 아니야?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뻔 했지만, 네빌은 잘 참았다. 해리는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네빌에게 물었다.

“학생들이 전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지 않아?”
“아, 물론…. 잠깐 대답은 했지만, 역시 그런 주제는 당황스럽고 수업과도 관계 없으니 불편했어. 아! 해리 너는 더 심하겠지만.”
“난 내 수업 시간에 날 보고 영웅 소리 하면 1점씩 감점 시키겠다고 했어.”
“하핫, 그거 되게 좋은 방법이다. 역시 스네이프 교수님이랑 천생연분이야, 해리.”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스네이프의 얼굴 근육이 씰룩거렸다.

“세베루스, 1학년들 감점 엄청나게 시켰었죠?”

해리가 스네이프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스네이프가 미간을 찌푸리며 스프를 저었다.

“그 놈들이 너에게 고자질을 하나?”
“아, 아뇨. 제가 물어봤거든요. 음… 당신한테 감점당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요.”
“네 수업 시간에 내 얘길 하지마. 그리고 교실 안 공기를 썩혀놓는 오물들을 만들어놓고 감점을 피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스네이프가 딱딱하게 말했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괜히 쑥스러운 얘기까지 나올까봐 미리 엄포를 놓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애들 귀엽던데. 세베루스는 안 귀여워요? 열한 살 꼬맹이들인데.”
“그 나이의 놈들이 귀엽다고? 차라리 날 보고 맨드레이크의 기저귀를 갈라고 해라.”
“풉, 진짜로 얼마 안 가 기저귀를 갈 거면서….”
“응? 맨드레이크를 기르고 싶은 거야, 해리?”

네빌이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물어 왔다. 아, 이런, 남들 듣는 곳에서는 스네이프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는 맨드레이크 사육법을 설명하는 네빌에게 붙잡힌 해리의 곤란한 얼굴을 비웃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정신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호그와트에 학생으로 있을 때보다 교수로서 있는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금세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것도 그런 걸까. 9월은 교수 직에 적응하는 데만도 금방 시간이 지났다. 10월, 11월에는 스네이프의 배가 조금씩 티가 나게 불러오기 시작했다. 달에 한 번씩, 슬리데린 사감의 방으로 데번 부인의 방문이 있었다. 해리와 스네이프의 아이들은 둘이라 더 좁은 뱃 속에서, 서로에 부대끼며 잘 자라나고 있었다.

12월의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올 해 마지막 호그스미드 외출날 아침이었다. 해리가 사준 짙은 녹색 캐시미어 숄을 두른 스네이프는 사감 방 식탁 앞에 앉아 턱을 괴었다. 이따금씩 뱃속에서 생명이 꿈틀대는 느낌에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면서.

“세베루스! 일어났어요?”

문이 벌컥 열렸다. 새벽부터 해그리드, 네빌과 집요정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치고 온 호그와트의 막내 교수 해리 포터였다. 검은 장갑에 묻은 눈을 털며 들어온 해리가 식탁 위의 작은 난로에 양 손을 갖다 대었다. 해리의 불긋한 얼굴과 확 끼치는 겨울의 새벽 냄새에 스네이프는 저도 바깥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손을 녹힌 해리는 바로 장갑을 벗고, 스네이프의 아래에 무릎을 꿇고 배를 안았다. 동그란 배 안에 저희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시간을 거듭해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스네이프는 손을 뻗어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군.”
“진짜 추워요. 나갈 때 단단히 껴입고 나가야겠어요.”
“무릎 아파, 일어나, 해리.”
“괜찮아요, 이 자세가 제일 안기 좋아서. 아, 방금 발로 찬 것 같은데? 힘이 좋은 게 알버스인가, 릴리인가.”
“둘이 번갈아 가며 차대는 것 같다. 성격들이 다 해리 널 닮았는지.”

고생길이 훤히 보인다는 눈이었다. 해리가 배를 안은 채 그를 올려다보며 큭큭 웃었다.

“당신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뱃속에서 얌전했냐고요.”
“인기척도 안 냈을 걸.”

그 말에 해리는 웃음이 터졌다. 귀여워, 정말.


스네이프는 제 목도리를 매주는 해리의 신중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까만 목도리를 얼굴의 반을 가리게 칭칭 감은 꼴이, 바람 한 점 틈으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해리의 목적이 보였다. 그리고 해리가 내민 손을 잡았다. 까만 해리의 장갑과 제 보라색 장갑 낀 손이 단단히 연결되었다. 아구스 필치가 탐탁치 않은 눈으로 부부의 모습을 훑었다. 학생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인사를 해왔다. 해리의 스킨쉽에 이제 적응할대로 적응한 건 스네이프도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응, 안녕. 감기 조심하고 잘 놀다 들어가. 해리가 학생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스네이프를 이끌었다. 둘은 스리브룸스틱스 앞으로 갔다.

“론, 헤르미온느, 드레이코!”

해리와 스네이프를 발견하고 눈 길을 걸어 다가오는 그들이 보였다. 허니듀크를 먼저 들렀는지 론이 든 가방에 초콜릿과 과자들이 한가득이었다. 드레이코는 회색 코트, 회색 목도리를 두르고 그들 옆에 한 발자국의 거리를 둔 채 다가왔다. 나눌 대화가 대화였던지라, 그들 다섯은 스리브룸스틱스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따듯한 버터맥주 다섯 잔이 그들 앞에 놓였다. 스네이프의 맞은편에 앉은 드레이코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식탁에 놓인 건 작은 크리스탈 약병이었다.

“완성한거야?”

해리의 물음에 드레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코트를 벗고, 왼팔을 식탁 위에 놓고서 까만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냈다. 섹튬셈프라에 베인 흔적도, 볼드모트의 어둠의 표식도 깨끗이 사라진 팔이 보였다. 스네이프도 코트를 벗고 왼팔의 팔꿈치까지 옷을 걷었다. 아주 희미하게 남은 해골 표식. 드레이코가 직접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약물을 흘렸다. 헤르미온느와 론도 그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해리가 손을 뻗어 스네이프의 팔 위로 약물을 펴발랐다. 약물이 스며들자, 표식의 흔적이 사라졌다.

“대단하다….”

제일 먼저 감탄사를 뱉은 건 헤르미온느였다. 이건 정말 위대한 발명이었다. 전쟁 후에 이 저주치료제를 필요로 할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셀 수 없었다. 론마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리와 스네이프는 깨끗한 그 왼팔을 조금 더 오래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맙다, 드레이코. 거슬리던 게 하나 지워졌군.”

옷을 내리고 코트를 다시 입으며 스네이프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특유의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으쓱였다.

“말포이 가문의 돈과 명예를 제가 되찾는 건 당연하죠, 교수님.”
“젠장, 진짜 돈방석에 앉겠잖아. 이미 말포이 네 방에 넘치는 거 아니었냐?”
“아, 물론이지. 네가 하나 가져가도 모를 정도야, 론 위즐리.”

론의 툴툴거림에, 드레이코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약병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해리도 주머니에서 사진 세 장을 꺼냈다. 데번 부인이 마법으로 양피지에 염색해준 아이들의 뱃속 모습이었다. 해리의 친구들 세 명은 그 사진에 눈을 떼지 못했다. 들뜬 그 얼굴들이 정말로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해리는 따듯한 온기가 뱃속에서부터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드레이코, 수고해줘. 론, 헤르미온느도 부탁해. 너희들이 없었으면 정말 막막했을 거야.”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고 드레이코가 스네이프를 대신해 대타 마법약 교수로 들어올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사감의 방과 스피너즈 엔드를 벽난로로 오가며 출산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론과 헤르미온느도 만삭이 될 스네이프를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걱정도 없이 교수님을 임신시킨 거야, 해리?”

드레이코가 장난스레 빈정거렸고, 헤르미온느는 높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론도 낄낄거리며 버터맥주를 들이켰다.

“아니, 너희들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쵸, 세베루스?”
“뭐, 해리 너보다는 저 녀석들이 믿을 만하지.”
“아, 세베루스!”

세 명의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론이 사온 과자들을 식탁 위에 몇 개 올렸다. 론이 뜯은 개구리 초콜릿에서 스네이프 카드가 나왔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스네이프는, 카드 뒷면에 적힌 글을 보고 눈을 부라리며 벌떡 일어섰다. 반려와 제자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홀몸도 아닌 몸으로 개구리 초콜릿 제조 공장에 테러범죄를 일으킬 뻔한 스네이프가 자리에 도로 앉아 씨근거렸다. 해리는 곧 문구를 바꿔주겠다며 스네이프를 달랬다. 스네이프는 제 카드를 박박 찢고서, 해리가 뜯은 두번째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해리가 뜯은 초콜릿에서 나온 해리 포터 카드에, 카드 속 해리가 저에게 윙크하는 모습을 보며 스네이프의 기분은 점차로 풀렸다.

밖으로 눈발이 날렸다. 해리와 세 명의 친구들은 누가 어떤 아이의 대부와 대모가 될 것인지를 정했다. 나한테 먼저 제안했으니까 내가 먼저 나온 쪽의 대부를 하지, 드레이코가 얘기했고 헤르미온느는 고개를 끄덕거렸으며, 론은 괜히 툴툴거렸다. 스네이프는 또 다시 뱃속을 차오는 감각을 느끼며 배를 쓸었다. 눈이 내렸지만, 스리브룸스틱스의 구석 자리는 다섯 명의 훈기로 따듯했다.




'Harry Pot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스네] 구원자 35 (完)  (18) 2021.04.24
[해스네] 구원자 34  (0) 2021.04.24
[해스네] 구원자 32  (1) 2021.04.22
[해스네] 구원자 31  (1) 2021.04.20
[해스네] 구원자 30  (0) 2021.04.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