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스네] 구원자 22
22.
새벽 어스름이 창에 어른거렸다. 푸르고 어두운 빛을 따라 스네이프의 살결도 물들었다. 해리는 조심스레 제가 새겨놓은 낙인 위로 입술을 맞붙였다. 스네이프의 왼쪽 목덜미에 자리한 번개무늬의 상처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살짝 발갗게 부어 있었다. 해리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려 했으나, 스네이프가 이를 거부했다. 깊게 흉이 지게 하기 위해선 그냥 두라고 했다. 해리는 참을 수 없이 감정이 북받혔다. 그대로 제 연인을 품에 안았다. 열락 속에서 스네이프가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했다. 제 욕심에 스네이프의 목에 상처를 내놓고, 해리는 이기적이었다.
상처 위에 붙였던 입술이 벌려지고, 혀가 나와 부은 살을 핥았다. 키스하듯이 목을 빨아들였다. 으응…. 뒤척이며 스네이프의 목 안쪽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해리가 정신없이 스네이프의 목을 빨아들였고, 혀로 핥았다. 어느 샌가 잠에서 깬 스네이프가 미간을 찌푸리며 해리의 어깨를 잡았다. 연인이 일어난 것을 알아 차렸음에도, 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눈을 뜨고 해리의 까만 정수리를 내려 보았다.
“출근 준비 해야지, 언제까지 이럴 건데.”
“아니, 오늘 일찍 눈 떠진 거예요. 아직 6시도 안됐어요.”
“그래서? 또 하고 싶다고? 일주일 상간에 우리가 몇 번을 한 줄 알아?”
“몰라요. 당신 임신 시키지, 뭐….”
뻔뻔한 자식. 스네이프는 해리의 정수리를 제게서 치워 버렸다. 아까까지 진득한 집착을 한 것치고는 꽤 순순히 떨어진 해리였다.
목의 번개무늬 낙인 외에도, 스네이프는 지금 온 몸이 불긋해져 있었다. 해리는 어젯밤엔 제 살을 빨고 핥는데 미쳐버린 것 같았다. 온 몸이 쓰라리고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다음부턴 침실에 근육 진정 물약을 구비해 둬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옆에서는, 해리가 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절 보고 있었다. 정말 넌덜머리가 날 정도의 집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이 정도까지 나에게……. 스네이프는 얼굴을 붉혔다. 결국 그것에 가슴이 뛰는 것도 자신이었다.
“진짜로…… 세베루스가 내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포터, 여전히 그 얘긴가.”
“세베루스는 보고싶지 않아요? 나랑, 당신을 닮은 아기를.”
“날 닮은 건 별로.”
“저는… 얼굴은 당신을 닮고 성격은 절 닮아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그 반대여도…. 그렇지 않아요? 저처럼 생겼는데, 차분하고 똑똑하고, 퀴디치도 못하고. 하핫.”
“그 놈의 퀴디치는.”
스네이프도 보는 것은 꽤 좋아했다. 슬리데린 퀴디치팀에도 항상 신경을 써줬고, 경기 관람도 꼭 갔었다. 교수 중에서는 막내의 위치라 어쩔 수없이 참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해리가 슬리데린팀을 위협하기 전까진 슬리데린이 무난히 퀴디치 우승컵을 따낸 영향도 있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제 기숙사를 애정했으니까.
“만약 아기를 정말 가진다면, 우리 애는 슬리데린으로 가야 해.”
“와, 세브도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동참해주는 거예요?”
“그리핀도르 따위에 들어갔다간, 고작 마법세계를 구하는데 목숨을 바치려드는 허무맹랑한 짓이나 벌일 게 뻔한데, 널 닮은 그 꼴은 못 보지.”
“세브, 당신도 목숨이 위험했어요.”
“난 세계를 구하는데는 전혀 관심 없어. 해리 포터, 네 목숨만 지키면 그만이야.”
해리가 빙그레 웃었다. 그거 되게 로맨틱한 말인데, 자각은 있어요? 그렇게 물으면, 스네이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언성을 높일 것 같았다. 귀여워, 사랑스럽다. 네 목숨을 지켜주겠다, 그 말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제 아래에서는 반항 없이 다리를 열어주는 것이 해리의 가슴을 들썩이게 했다. 그래서 이렇게 스네이프의 몸을 원하는 걸까. 그를 안으면 행복감과 욕망이 모두 충족 되며 살아있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스네이프를 살린 것은 저였지만, 해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스네이프였다.
“정말 진지하게…… 제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요? 세베루스?”
“……뭐, 그래.”
“방법을 찾아 봐요. 마법으론 안 될 게 없잖아요. 어떤 멍청한 마법사는 자기 영혼도 7개로 쪼개는데. 남자가 임신하는 것 정도야.”
그렇게 비유하니, 정말로 남자가 임신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웃음을 흘리고 몸을 돌렸다. 해리의 왼쪽가슴 위로 얼굴을 기대니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점차로 커지는 그 소리에, 스네이프는 마음이 안정 되는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눈을 감은 채, 일전의 해리의 의견을 떠올렸다. 애니마구스……. 암사슴……. 머릿 속으로 가지런히 단어들을 나열했다. 그리고 제 마법의 수준을 스스로 생각했다.
“애니마구스를, 연습해보겠다.”
“헉, 정말요?! 하지만…… 그 방법으론 사슴을 낳는다고 하셨잖아요? 사람 몸이어야 되는 거 아니었어요?”
“동물로 완전히 변하지 않고, 동물의 여성 생식기관만 가져와 몸 안에서 변화시키는 법을 생각해봤다. 물론……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마법 기술력을 요하겠지. 그런 걸 생각해내고 시도한 마법사는 역사적으로 아무도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짓거리기도 하고. 물론, 애초에 내 애니마구스가 암사슴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려요? 진짜 엄청난 창의력인데…. 그래서 마법 주문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건가? 머플리아토, 레비코푸스, 섹튬셈프라……. 당신의 천재적인 발명품들이 생각나네요, 세브.”
“흥, 이젠 아기까지 직접 만들어내야 하고 말이지.”
해리에게는 애니마구스가 암사슴이 아닐 수 있다 말했지만, 스네이프 역시 암사슴이 맞기를 바랐다. 기꺼이 해리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든 후로는, 가능성을 따져보게 되었다. 해리는 이미 스네이프가 임신이라도 한 것처럼 손을 뻗어 배를 쓸었다. 납작한 배에 무슨 큰 기대를 하는 것인지. 스네이프는 코웃음을 쳤지만, 구태여 해리의 손을 치워내지는 않았다.
“애니마구스를 배우고 싶다고?”
맥고나걸은 벽난로를 통해 나타난 스네이프의 얼굴에도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갑작스런 요구에 그 의중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마흔에 가까운 제자가 새로운 마법을 익히고 싶다는데 꺼릴 생각은 없었지만, 이유는 듣고 싶었다. 그러나 해리와의 관계를 말하지 못하고 망설인 것처럼 스네이프는 이번에도 이유를 회피했다. 그래서 현명한 스승은 이 역시 해리와 관련 있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배운다면 세베루스 너 혼자만? 해리는?”
“당신께 배운 뒤에 제가 가르치면 됩니다. 포터는 오러 일을 다녀서.”
“하긴, 오러들이 워낙 바쁘지. 세베루스 자네도 요즘 해리와 자주 못 만나나?”
“…지금까지는 퇴근 시간마다 들어옵니다.”
“운이 좋았군, 세베루스. 해리는 업무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간 적도 상당히 많았을 거야.”
스네이프는 입을 다물고 잠시 침묵했다. 안 그래도 연속으로 2주째 일요일에 출근한다는 해리를 보고 스네이프도 적잖이 놀랐다. 어제 론 위즐리 역시 퇴근 후에 같이 왔다 했고. 오러는 되는 것도 굉장히 어렵지만, 그 직에서 버티는 것 또한 굉장한 어려움을 요했다. 해리 포터 같은 제정신이 아닌 영웅 콤플렉스나 그 직업을 해야할 것이다.
“제가 애니마구스를 배우는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나는 한 달 걸렸네, 세베루스. 내가 가르치니까 자네는 한 달도 안 걸릴 거야.”
“오늘이 5월 10일이죠. 6월 1일이 오기 전에 마스터 하겠습니다.”
눈썹을 까딱 올리며 스네이프가 무심한 투로 대답했다. 맥고나걸은 픽 웃었다. 이토록 뛰어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교수를 오랜 업으로 삼은 제게도 기쁨이었다.
“기한을 맞추려면 오늘부터 시작해야겠군. 점심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오거라, 세베루스. 그 집에서 혼자 식사하지 말고, 같이 먹은 뒤에 수업을 시작 하지.”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벽난로에서 얼굴을 물러섰다. 살짝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해리가 출근하고 나면 이 큰 집에는 늘 저 혼자였다. 열렬하게 제 곁을 지키던 체온이 사라져서인지, 이 집은 더 넓고 썰렁하게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눈앞의 벽난로를 잠시 응시했다. 임신이니 아이니 하는 것에 들떠 웃으며 이 벽난로로 출근하던 해리의 모습이 생각났다.
스네이프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배에 손을 올렸다. 조금 살이 올랐다지만, 아직도 납작하게 내장에 붙은 거죽이 무언가를 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능한 일인지 스스로도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바라고, 해리가 기대하며 웃었으니까.
그리고 스네이프 자신도, 해리를 닮은 제 아이를 보고 싶었다. 연인을 닮은 또 하나의 녹색 눈이, 저를 부모로 바라보는 그 사랑의 시선이 궁금했다.
학교를 갈 것이니, 스네이프는 단추가 많은 제 옷을 찾아 입었다.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면 단추가 잠기며 부드럽게 제 몸에 감겨오는 검은 옷이었다. 해리와 살면서 머글의 셔츠가 익숙해졌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늘 입던 옷이었는데도 약간 불편하게 느껴졌다. 목부터 어깨와 허리, 그리고 허벅지까지 가리는 옷은 답답한 인상을 주었다. 아, 목…. 스네이프는 목깃을 살짝 들추었다. 새 흉터가 자리 잡은 목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이건 해리가 저를 제 것이라고 낙인 찍은 증명이었다. 이걸 가리고 다닌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스네이프는 흉터를 들여다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베루스.”
교장실 벽난로를 들어선 스네이프는 목례한 뒤, 로브의 재를 털었다. 하얀 셔츠와 검은 진에 구두를 신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맥고나걸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문으로 걸어갔다. 스네이프는 조용히 뒤따르며 교장실의 계단을 내려왔다. 헤르미온느와 해리를 데리고 들어갔었던 교실을 지나쳤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대연회장으로 가기 위해 복도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곧 교장 선생님께 인사했다가, 그 뒤에 선 스네이프를 발견했다. 눈이 커지는 그들을 스네이프는 여전한 무심함으로 지켜 보았다.
그들은 겁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으므로, 스네이프의 면전에서 스네이프가 나타났다고 수근거리지는 않았다. 볼드모트의 명으로 호그와트의 교장으로 있었던 때처럼, 학생들에겐 자신이 여전히 공포의 대상인 듯 보였다. 스네이프 역시 바라던 바였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다. 그리고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학생들 옆을 지나치는 순간, 스네이프는 지니 위즐리를 발견했다.
붉은 머리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스네이프는 저를 똑바로 쳐다 보는 지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당당한 태도 탓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었다. 스네이프는 표정 없이 그녀를 보다가 앞서가는 맥고나걸을 따랐다. 지니의 시선이 여전히 제 뒤통수로 따라 붙는 것이 느껴졌다.
“스네이프 교수님!”
교수석에서 스프라우트의 옆에 앉아 있던 네빌이 스네이프를 보고 반색했다. 스네이프는 네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런 스네이프의 등장에 교수석의 교수들은 물론,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들까지 웅성웅성거렸다. 죽은 줄 알았던 전 데스 이터 교장은,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 딱딱한 얼굴이었다. 저번 주에 그 해리 포터와 스캔들이 났던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루머였다며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게 들렸다. 스네이프는 맥고나걸의 옆에 앉아 그 떠들썩함을 무시했다.
“기사 이후로 호그와트가 시끄러웠단다.”
“동물원 원숭이 기분을 느껴 보라고 절 점심시간에 부른 건 아니겠죠, 미네르바.”
“물론 아니지. 뭐, 학생들도 매일 점심시간마다 널 보면 오늘 같은 반응은 보고 싶어도 안 나올 거다. 자네가 교수로 돌아오기 전에 적응하는 게 낫겠지.”
슬러그혼이 제 어깨를 두드리며 윙크하는 게 보였다. 스네이프는 표정 없이 인사를 받아내며 맥고나걸의 말에 끄덕거렸다. 미리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수업은 어디서 진행합니까?”
“교장실에서. 평일에, 매일 점심을 같이 먹은 뒤, 한시간 반. 그 정도면 내 업무에도 지장 가지 않고 수업 진행하기에도 빡빡하지 않을 듯한데, 세베루스?”
“그 정도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네르바.”
대단한 편의였다. 스네이프는 이유도 모르면서 개인 특별 수업을 해주겠다는 은사에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아까부터 저를 쳐다 보는 해그리드나 슬러그혼, 플리트윅 등이 제게 많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철저히 등 돌렸다. 원래부터 자신은 그들과 그다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애니마구스 수업이었다.
식탁에 음식이 한가득 쌓였다. 직접 차리지 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건 오랜만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제 때에 점심을 먹고 있을지 궁금했다. 굶지는 않고 일해야 할 텐데. 그리고 학생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스네이프는 지니의 시선을 쉽게 구별해내었다. 이 중 가장 저에게 할 말이 많을 소녀였다.
“롱바텀.”
“네, 네? 무슨 일이세요, 교수님?”
“지니 위즐리의 수업 일정을 아나?”
부름에 깜짝 놀라던 네빌이 지니의 이름을 듣고 더욱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스네이프의 눈치를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니는 졸업반이라서 수업이 많지 않아요. 월요일 오후에는 저녁 먹기 전에 일반마법 수업 뿐일 걸요?”
“그럼, 두시 반쯤에 교장실 앞으로 오라고 전해. 만나기 싫다면 안 와도 된다 하고. 그것까진 나도 상관 않을 거니까.”
“네, 교수님. 지니에게 전할게요.”
스네이프는 그걸로 저를 향한 관심들에 모두 신경을 꺼버렸다. 집요정이 준비한 음식들은 맛있었고, 애니마구스 수업에 대한 것도 긴장은 없었다. 단지, 급하게 추가 된 한 개의 일정에 마음이 조금 더 갔다.
교장실의 초상화들은 모두 잠에 든 척을 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알버스 덤블도어의 초상화 만큼은─ 반달안경 너머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그 옆의 제 초상화를 천으로 덮어 버리고 싶은 열망을 느끼며 지팡이를 쥐었다. 해리가 추진했다는 교장실의 자신의 초상화는 볼 때마다 흉물스러웠다.
“우선, 애니마구스의 이론적 접근에 대해 설명하마,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초상화들에서 시선을 떼었다. 맥고나걸은 교장실의 창가에 서서 조용하게 입술을 열었다. 스네이프처럼 그녀 또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도 사람의 주목을 이끄는 기질이 있었다.
“패트로누스를 사용할 줄 안다면 애니마구스 변신은 훨씬 더 쉬워지지. 이 두 주문의 상관 관계를 자네는 유추할 수 있을까?”
“……패트로누스는 주문을 쓴 사람의 본질의 실체화. 애니마구스 역시, 그 사람의 본질이 투영 된 동물의 모습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상 둘은 같은 것으로도 느껴집니다.”
스네이프는 자신의 흑단목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유려하게 쓸어 내렸다. 이 지팡이 끝에서 구현 되는 암사슴과 해리의 지팡이 끝에서 나온 숫사슴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작년, 해리가 원했던 생일선물은, 해리 본인만큼이나 스네이프에게도 깊은 감명을 불러 일으켰다.
맥고나걸은 스네이프의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패트로누스를 불러냈다. 얼룩 고양이가 공중을 겅중겅중 뛰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그 모습과 똑같이 생긴 실제 얼룩 고양이가 교장실의 책상에 올라 앉아 있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스네이프의 지팡이에서 암사슴이 뛰어 나와 고양이와 함께 춤을 추었다. 상당히 동화적인 모습이었으나, 스네이프는 숫사슴 때처럼 눈을 빛내며 보진 않았다. 맥고나걸은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암사슴이라……. 의외의 패트로누스군, 세베루스.”
“릴리의 것이었죠.”
짧게 대답했지만, 맥고나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젠 자네의 본질이야.”
스네이프는 조용히 제 패트로누스를 바라 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암사슴이 자신의 본질일 수 있을까.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제대로 자신이 암사슴 애니마구스가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애니마구스 마법은, 마법이라기보다 정신 수련에 가깝다. 그저 지팡이를 휘두르면 그만인 마법들과는 차원이 달라. 그래서 실패하는 마법사들이 그렇게 많은 거다. 마법사들은 지팡이는 쉽게 믿고, 제 정신적인 부분들을 들여다 보는 것엔 인색하지. 그래서… 애니마구스들은 지팡이 없이도 동물로 변하는 게 가능하다. 자신의 본질, 또 하나의 내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로군. 스네이프는 무뚝뚝한 얼굴로 제 지팡이를 책상 위에 내려 놓았다. 제임스 포터, 시리우스 블랙, 심지어 피터 페티그루까지 학생일 때 성공한 마법이었다. 그들보다 위대한 마법능력을 가진 자신이 해내지 못할 법은 없다 생각했는데, 이건 마법이면서도 마법이 아닌 분야였다.
“어떤 생각을 하며 시도해야 합니까?”
“나 자신에 집중 하고, 또 하나의 내 모습을 바라면 된다.”
잡스러운 생각을 비워야 했다. 스네이프는 오클러먼시를 할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머리를 비우고, 단단하게 주변과 벽을 세웠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집중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요구였다. 암사슴이 제 본질인 것에도 일말의 의심이 있는 가운데, 성공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해내야 해.
스네이프는 계속 생각했다. 해리가 기뻐할 얼굴을, 오직 그 하나만을 생각했다.
“헉, 허억….”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동안 억겁을 지나온 것 같았다. 지칠대로 지친 스네이프는 탈력해서 의자에 주저 앉았다. 첫 날부터 어떤 성과가 나올 것이라곤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답이 없을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막막했다. 식은땀을 닦아내며 스네이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맥고나걸은 오늘 수업은 이만 마치겠다고 말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꾹 다물고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집에 가서는 푹 쉬도록, 세베루스. 정신적인 소모는 쉽게 볼 것이 아니니까. 이런, 땀도 제법 흘렸군.”
맥고나걸이 지팡이를 휘둘러 부드러운 냉풍을 일으켰다. 스네이프의 땀이 금세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한 번 더 감사를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
“잠깐, 세베루스!”
“……?”
작게 바람을 일으켜주던 맥고나걸이 당황한 목소리로 스네이프를 잡았다. 스네이프는 의아해하며 그녀를 보다가, 맥고나걸이 제 옷깃을 벌리는 것에 아, 깨달았다. 그녀는 바람에 살랑이던 셔츠깃 너머로, 스네이프 목에 있던 번개무늬 흉터를 발견한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옷깃을 다시 여몄다. 맥고나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술을 가렸다. 어머나.
“해리가…… 그런 것 맞니?”
“……가보겠습니다.”
맥고나걸은 붉어진 스네이프의 귀를 보며 더 말 붙이지 않았다. 내일 점심시간 전에 오게, 세베루스. 마지막 인사 정도가 문 너머로 들렸다. 스네이프는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움직이는 계단을 내려 왔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위즐리.”
“안녕하세요, 스네이프 교수님.”
스네이프는 어쩐지 저 당당한 눈에서 해리를 떠올렸다. 제가 교장으로 있을 적에도 저런 모습이긴 했었지. 그녀는 해리의 걱정 만큼 호그와트 가십의 주인공으로서 괴롭진 않아 보였지만, 당연히 겉보기에만 그럴 수 있었다. 스네이프는 딱히 지니에게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먼저 부른 것도 저였기에, 빈 교실로 이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교실 문 쪽으로 걷는 스네이프에 지니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걸으면서 얘기 해요, 교수님. 퀴디치 경기장 쪽으로 가는 길은 한산하니까요.”
“알겠다.”
10대 여학생과의 대화는 사실 스네이프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제가 알던 릴리의 순간이 10대의 순간밖에는 없었다. 그 때처럼, 붉은 머리의 여학생이 옆에서 당차게 걸음을 옮겼다. 릴리와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길고 붉은 머리카락은 스네이프에겐 감상의 소재가 되었다. 그것이 현 애인의 전 여자친구라는 사실에도. 스네이프는 지니에게 '미안함' 같은 사치스런 감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봄의 호그와트는 벌써부터 무더웠다. 걸친 로브의 두께를 좀 더 얇은 걸로 입었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낙인을 발견한 맥고나걸 덕에 얼굴을 붉힌 영향도 있을 것이었다. 성을 나와 잔디밭으로 나오자 산들바람이 불어 훨씬 산뜻해졌다. 지니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멀리 해그리드의 오두막에 시선을 두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개인 용무. 앞으로 평일은 매일 올 거다.”
“절 부른 이유는요?”
“난 너에게 할 말 없어. 위즐리, 네가 나한테 할 말이 있어 보여서 부른 거다.”
“와, 진짜 스네이프 교수님 맞군요. 해리랑 사귄대서 뭔가 달라지셨을까 했는데.”
재수 없는 그 교수의 모습 그대로라서 오히려 놀랐다. 지니는 살짝 멍해졌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변한 게 없는데도 해리가 교수에게 반해버렸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웃겼다. 그리고 더 재밌는 사실은, 저 스네이프 교수가 해리의 마음을 받아주고, 쌍방이 통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니 위즐리는 사연을 듣고 싶어 좀이 쑤셨다. 짧은 며칠간 실컷 울고, 주변에서 저를 씹고 뜯고 즐기는 것에 박쥐 저주 주문으로 통쾌히 복수했더니 해리에게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앞에 나타난 전 남친의 현 애인을 보고도 주시하지 않을 전 여친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리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평소처럼 오러 일. 아는 사람들 만나러 가거나.”
“뭐, 그냥 똑같네요. 교수님은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해리랑 같이 사는 것 같던데…….”
스네이프는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지니를 곁눈질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니 위즐리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런 고약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게 알고 싶나?”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스네이프가 물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지니는 기가 막힌 웃음을 흘리며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진짜 심보 봐. 해리가 저런 사람에게 코가 꿰이다니. 지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팔짱을 꼈다. 5월의 바람은 부드럽고 상쾌했다. 퀴디치 경기장 근처의 들꽃 내음이 풍겨오는 것 같았다.
지니는 들판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끝내주는 날씨였다. 조만간 있을 N.E.W.T만 아니었어도 학생들은 노느라 정신 없을 봄날씨였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들꽃 냄새. 이걸 함께 즐기고 있는 게 해리가 아닌 지니 위즐리인 것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벌써 해리 잊었어요. 차이고 보니까, 우리 사랑이 얼마나 얄팍했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러니까 해리도 과거로 가서, 저 며칠 좀 못 봤다고 식었겠죠.”
“흐응.”
“스네이프 교수님, 근데…… 그거 혹시, 번개무늬 맞나요?”
이 놈의 바람. 스네이프는 미간을 찡그리며 제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지니가 본 게 보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지니가 목덜미를 가리키며 눈을 깜박거렸다. 스네이프는 쳇, 혀를 찬 뒤 지니의 옆에 앉았다. 지니가 조심스레 스네이프의 옷깃을 벌렸다. 목의 상처를 확인하고 동그래진 눈이 커지더니, 미간을 확 좁히며 찌푸려졌다.
“으윽……. 세상에, 안 아파요? 미친, 부은 거 봐. 이거 해리가 한거죠?”
“내버려 둬라. 일부러 치료하지 않아서 더 그런거니까.”
“네? 일부러 치료를 안해요? 대체 왜요?”
10대 여학생이 이런 또라이, 머저리, 사이코 짓을 받아 들이긴 버거울 터였다. 전 데스 이터에 이중 첩자 정도는 돼야 받아줄 수 있는 해리 포터의 미친 사랑이니까. 스네이프는 어깨를 으쓱이며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니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찜찜해, 다시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사실 되게 많았는데…… 직접 뵈니까, 그냥 별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생각도 안 나고 그렇네요. 아! 해리를 어떻게 받아주신 건지 그거는 진짜 물어보고 싶었어요. 해리, 엄청 싫어하셨잖아요.”
지니의 고개가 스네이프 쪽을 향했다. 스네이프는 무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그냥 평범하게 함께 살고 있다고 자각한 뒤로는, 싫은 감정도 잊어버렸다고 느꼈다.”
해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그릇을 치우고, 해리가 일을 나갈 때마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흘러가는 말도 기억해서 무언가를 사오고, 필요한 것을 챙겨 주고, 같은 샤워용품을 쓰고, 같이 계단을 올라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잤다. 그 일련의 행위들이 스피너즈 엔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다. 해리가 싫다는 감정은 어느샌가 증발해버려, 스네이프의 내면에 존재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무릎을 모아 끌어 안았다. 멀거니 퀴디치 경기장이 보였다. 저 곳에서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누비던 어린 수색꾼을 떠올렸다.
“그럼… 언제 해리를 좋아한다고 느끼셨는데요?”
지니는 열여덟 살의 소녀다운 질문을 했다. 주근깨가 옅은 얼굴에 명랑하고 높은 목소리였다. 스네이프는 웃는 듯한 숨을 쉬었다. 그 감정을 깨달은 건 해리와의 첫 관계에서였다. 스네이프는 자리에서 이만 일어섰다. 그리고 스치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분명한 발음이라, 지니가 놓칠 리 없는 말이었다.
“불건전한 순간에.”
지니의 얼굴이 타오를듯 붉어졌다. 와우, 멀린. 열여덟 살 그녀로선 정말 당해낼 수 없는, 전남친의 현애인은 너무나 어른이었다.
적막한 집에 다시 돌아왔다. 스네이프는 땀에 절은 옷을 다 벗고 세탁 마법을 걸었다. 한여름에도 늘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가. 더위에 한층 약해진 몸이 느껴졌다. 스네이프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그 밑으로 들어섰다. 상처 부위에 물이 닿으니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방수 조치를 취하는 걸 깜박했다. 스네이프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느끼며 그냥 그대로 물줄기를 맞았다. 상처가 따갑고 쓰릴수록 해리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미역처럼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질척하게 감겨오는 느낌이 꼭 누구를 닮았군. 피식 웃은 스네이프는 대체 해리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이 오긴 하는 건지 궁금했다. 요 며칠간 정말 한계도 모르고 붙어 먹어서 그런지, 몸도 해리를 원하는 것 같았다. 제가 먼저 달아오르는 경우는 적었는데, 오늘도 또 이렇게 혼자 흥분을 하다니. 스네이프는 물을 맞으며 발기한 제 앞을 내려다 보았다.
오른손이 성기를 감쌌다. 음…. 잇새로 비음이 새며 얕게 숨을 뱉었다. 해리가 뒤에서 안은 채, 제 것을 잡고 흔들어줄 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그 품에 편안히 저를 맡기고 해리가 이끄는 열락에 빠져드는 순간은 늘 기분이 좋았다. 스네이프는 연이어 포터 교수도 떠올렸다. 평소보다 해리가 훨씬 거칠고 난폭했었다. 제게 잔뜩 흥분해서 그걸 숨기지도 못하는 해리가 스네이프는 제법 귀여웠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다는 건 끝까지 안해준 해리가 우습기도 했다.
붉은색과 황금색이 섞인 오러 정복을 입은 해리가 멋스러웠고, 그 옷을 벗지 않고 했던 소파 위에서의 섹스가 자신은 무척이나 좋았다. 그리고 난 범죄자가 맞으니까, 포터. 그래서 더 쾌감을 느꼈는지 모르지. 오러에게 깔려서 성적흥분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었달까. 스네이프는 웃음기를 흘리며 성기를 더 빠르게 쓸었다.
“아…… 포터….”
순간적으로 제 안을 처올릴 때의 해리의 표정이 생각나, 스네이프는 불현듯 허리를 떨었다. 윽, 막힌 신음이 목구멍을 긁었다.
성기를 쥔 손에 더 힘을 실었다. 빠르게 기둥을 쓸어 내리고, 귀두를 긁고, 벽에 이마를 붙인 채 가쁜 숨을 뱉었다. 차가운 욕실의 벽과 뜨겁게 피가 몰린 성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포터, 포터어…. 끊임없이 그 이름을 찾았다. 지금, 런던 지하 땅 밑에서 일하고 있는 제 연인은 알지 못할 사실이었다.
“하아… 하….”
스네이프는 달뜬 숨을 흘리며 여전히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배수구로 정액과 물이 섞여 흘러 들어갔다. 제 부정의 산물이 하수구로 빨려 들어 간다. 스네이프는 탁하게 풀린 검은 눈동자로 그 흐름을 좇았다. 찬 물에 쓰라림이 덜해진 목의 낙인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젠장, 보고 싶어. 포터,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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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마구스 관련 서술은 원작과 관련 없는 저의 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