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Potter

[해스네] 구원자 21

기조. 2021. 3. 28. 23:01

21.



바깥을 돌아다니던 헤르메스가 쥐를 물고 집으로 들어왔다. 언제든지 들어오라는 의미로 열어둔 창이었다. 퍽스도 뒤따라 들어와 해리가 건넨 물을 받아 마셨다. 쉬었다가, 호그와트의 맥고나걸 교수님께 이걸 전해주고 와. 헤르메스의 머리를 쓰다듬자 올빼미가 제 다리를 내밀었다. 가는 다리에 돌돌 만 편지를 묶은 해리는 다시 방을 나왔다. 방이 많아서 이 방 하나는 헤르메스와 퍽스에게 온전히 내주었다. 나머지 세 개의 방은 침실, 자신의 서재, 스네이프의 서재로 나눠 쓰기로 했다.

새들이 돌아온 걸 알고 나갔던 해리가 다시 침실의 문을 열자, 스네이프는 침대에서 다리를 벌린 자세 그대로 해리를 맞았다. 바로 다리 사이로 들어와 앉은 해리가 성기를 밀어 넣었다. 으응, 해리이, 늘어지는 목소리에 해리는 또 금방 스네이프에게 빠져 들었다. 둘은 간밤에 잠이 올 때까지 교수와 학생 역할극을 즐겼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또 다시 눈이 맞았다. 이제 윤활 없이도 무리없이 들어가는 스네이프의 구멍은, 해리에게 맞춰진 것처럼 잘 벌려졌다.

“아아…하아… 응, 으응…좋아….”

해리의 어깨를 잡고 헐떡이던 스네이프가 몸을 일으켜 올라 앉았다. 해리는 침대에 등을 붙이고 누워서 제 위에서 움직이는 스네이프를 바라 보았다. 땀에 절은 스네이프의 머리카락이 이마에 엉겨 있었다. 서로가 일어나고서 계속 섹스만 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해리는 웃으면서 스네이프의 허리를 양 손으로 쓸어내렸다. 흐읏, 아. 허리를 만지는 것도 자극이 되는지 스네이프의 허벅지가 조여 들었다.

“세베루스, 다른 연기도 할 수 있어요?”
“뭐, 어떤 거. 학생 연기는, 하아, 이제 질렸나?”
“그것도 끝내주게 꼴렸어요. 흠, 뭐 보고 싶다 하지.”

허리를 돌리면서 피식 웃는 스네이프의 모습은 지나치게 섹시했다. 해리는 보고싶은 스네이프의 설정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그냥 바라보고 있는 자체로 머릿속이 그냥 희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너한테 보고 싶은 모습이 있어.”

의외의 말에 접합부를 보고 있던 해리가 시선을 올렸다. 세베루스가 나한테?

“근데, 그건 네가 싫어할지도 모르겠군.”
“제가요? 저한테 뭘 시키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그럴리가 있나요?”

스네이프가 상체를 내려 해리의 목을 안았다. 유두끼리 스치는 느낌이 아찔해서 해리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잘금잘금 허리를 움직이며 스네이프가 살짝씩 쿵쿵 찧었다. 스네이프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라 해리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오러 포터에게 당하는 범죄자 세베루스 스네이프.”

스네이프가 귀에 속살거렸다. 해리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범죄자라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변호해서 당신의 결백을 입증했는데! 뜻밖의 취향이라기 보다, 오히려 듣고 나니 스네이프에게 어울려서 더 기분이 별로였다. 볼드모트 같은 자식에게 주인님, 주인님 하고 싶어서 데스 이터가 된 남자니 뭐 어련하겠냐만.

“그건 좀. 연기 같지가 않아서 별론데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픽 웃은 스네이프가 다시 입을 다물고 간간히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해리는 여전히 유쾌하진 않은 기분으로 스네이프의 안을 처올렸다.


베란다로 헤르메스가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해리는 일어서서 베란다로 나갔다. 졸린 것인지 헤르메스는 다리에 묶인 답장이 풀리자 마자 방으로 비틀비틀 날아갔다. 맥고나걸의 답장이었다.

「해리, 반가운 소식이구나!
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를 희망한다는 말에 무척이나 놀랐고 기뻤단다.
우리들이 해답을 찾던 문제에 가장 깔끔한 답이 아닐까 싶었단다.
세베루스는 마법약 과목과 슬리데린 사감직을 맡는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덧붙여, 나는 다음 새학기부터 완전히 교장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 그리핀도르 사감직에서 물러나 네빌에게 위임하고자 했단다.
그러나 해리 네가 그리핀도르 사감 일을 맡고 싶다면, 네빌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렴.
9월 1일 새학기에 보자. 그 전에 만나도 좋고.」

해리는 편지를 다시 접었다. 내일 출근해서 부서에 사직서만 제출하면 끝이었다. 오러 일은 제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지만, 막상 그만두기는 쉬웠다. 다시금 해리는 오러 포터와 범죄자 스네이프 설정의 섹스를 하자던 스네이프 생각이 났다. 진짜 내 애인이지만, 참…….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식탁으로 돌아온 해리에게 스네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답장을 건네고 해리는 토스트를 물고 질겅거렸다.

해리는 볼드모트가 낙인 찍어 놨던 스네이프 왼팔의 표식을 다시 떠올렸다. 옛날 일이지만 진짜 범죄자였던 사람이 그런 설정을 하고 싶다하니, 자연히 그 때 당시 애인의 주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질투 난다고. 해리는 토스트의 귀퉁이를 찢으며 스네이프의 몸 어디에 제 것이라는 낙인을 찍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문득, 스네이프의 목으로 시선이 갔다. 해리는 내기니가 물었던 부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러라는 직업이 거지 같은 이유가 있다. 일단 주5일제가 전혀 보장 되지 않았고, 주말에 반드시 쉬는 것도 없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오러 부서는 버글버글거렸다. 오프는 일주일 중 하루거나 바쁘면 그마저도 없을 때가 있었다. 물론, 야근에 새벽까지 근무가 연장 되는 경우도 있었다. 새내기 오러인 해리와 론은 그 때마다 굴려지는 막내들이었다.

사직서를 내미는 해리를 보며 오러국 부장 말버러는 입을 떡 벌렸다. 일요일 아침부터 이게 뭔가. 마법세계 영웅으로 특채 고용한 해리 포터의 오러 사직서라니……? 국장 아니고서야 주말에도 출근하는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기도 바쁜데, 해리를 놓친다니, 이건 말도 안됐다.

“이번 달 말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부장님.”

싱긋이 웃는 해리의 미소는 자주 신문 1면에서 보던 것과 비슷했다. 그만두는 것에 상쾌해 보이기까지하는 해리를 붙잡을 방도가 없어 보였다. 말버러가 벌떡 일어나 해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 두고 어딜 가려고!”

다른 마법부 부서에서 해리를 채가는 거 아니야?!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인 해리 포터를 놓치고 싶지 않은 오러국 부장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해리는 슬그머니 그의 손에서 제 손목을 빼내었다.

“마법부에서는 일 안 하니까 걱정마세요, 부장님. 아무튼 사표 수리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하러 갈게요.”

경쾌하게 돌아선 해리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말버러는 손에 쥔 사직서를 찢어 버릴까, 한참을 갈등했다.

“뭐야?”

부장과 해리를 보고 있던 론이 해리의 등 쪽의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해리는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하며 사직서를 냈다고 답했다. 론의 눈이 번쩍하며 커졌다. 왜?! 론은 소리를 빽 지를 뻔한 걸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새 직업 찾아서.”
“새 직업이라고???”

론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가득 띄워지는 게 보였다. 헤르미온느한테 들은 거 없어? 해리의 말에 론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왜 나는 모르고 헤르미온느가 알아?

“금요일에 네빌이랑 헤르미온느 만나서 식사 했거든. 네빌이 데려 왔더라고.”
“네빌이? 뭐, 헤르미온느가 딱히 편지 보낸 게 없어서 몰라. 시험 준비한다고 나한테는 편지도 잘 안 하면서 거긴 나왔다고?”

해리는 친구 커플의 대전쟁의 서막을 올리는 단초를 자신이 제공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얼른 말을 덧붙였다.

“세베루스랑 같이 네빌을 만나러 나갔거든. 그래서 네빌이 좀 걱정 됐는지 헤르미온느한테 같이 가달라고 졸랐대. 걔도 억지로 받아들인 것 같더라. 헤르미온느가 이제 시험 끝날 때까진 자기 못 만날 거라고도 했어.”
“스네이프랑? 네빌을 만나? 이게 뭔 소리야, 대체.”

어리둥절한 론의 반응에 해리는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론이 헤르미온느랑 싸울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 호그와트 교수로 임용 됐어.”
“뭣….”

론이 입을 떡 벌렸다. 교수? 해리 네가? 설마 어둠의 마법 방어술??? 론은 일터인 것도 잊고 언성을 높였다. 어흠흠, 주변의 오러들이 시끄럽다고 론에게 눈치를 주었다. 머리색과 비슷하게 얼굴을 붉힌 론이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갑자기 왜? 아, 설마. 또 스네이프 때문이야?”

질렸다는 듯이 론이 얼굴을 찡그렸다. 진짜 염병할 사랑이다, 너네. 론은 대체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어떻게 제 친구를 이 지경이 되도록 꼬신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 딱딱하고 성질 더러운 교수가 대체 해리에게 뭘 어쨌길래?

“나만 빼고 다 스네이프를 만나보는 것 같네. 휴 씨가 나 보고 우리 가족 괜찮냐고 물었는데, 스네이프 심문할 때 해리 네가 연애중이라고 휴 씨한테 다 밝혔다며? 헤르미온느는 두 번이나 만나보고 심지어 네빌까지. 내가 '위즐리'라고 나만 따돌리냐?”

괜스레 툴툴거리며 론이 메모지에 깃펜을 휘갈겼다. 해리는 살짝 놀라 론을 보았다.

“너 세베루스랑 만나 보고 싶어?”
“그 작자가 널 어떻게 꼬신 건지 상상이 안 가서, 직접 보면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중이다, 친구.”
“아, 뭐야.”

큭큭 웃으며 해리가 론의 팔을 주먹으로 쳤다. 론도 피식 웃으며 해리의 어깨에 주먹을 박았다.


일요일에도 출근이라니. 스네이프는 어린 신랑을 마법부에 뺏긴 채로, 소파에 모로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전 내내 해리와 섹스만 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해리의 사직 이후엔 3개월의 휴가가 생겼다. 그 땐 정말 그 짓만 하고 살면 어쩌지. 그 정도로 해대면 남성인 저도 진짜 임신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스네이프는 이내, 주말 오후를 이렇게 무료한 망상으로 보내는 게 한심스러워졌다.

스네이프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실로 가 옷장의 문을 열었다. 해리가 제 목숨을 구했던 날, 옷을 사러가서 해리가 부추겨 샀던 베이지색의 브이넥 얇은 니트가 눈에 들어왔다. 스네이프는 잠깐 머뭇거리다, 그 옷을 집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거울에 베이지색 니트를 입은 자신이 비쳤다. 조금… 파인 것 같기도 하고. 스네이프의 손가락이 넥라인을 만지작거렸다. 스네이프는 항상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워 입다보니, 흰 살이 보이는 자체로 조금 민망스러웠다. 다행히 마주치는 입주민 없이 스네이프는 집을 나섰다. 스네이프의 뒤로 10층 높이의 아파트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폐점 한 낡은 상점이 있었다.

장을 보려고 코 앞의 슈퍼마켓에 갔을 때 이후 첫 외출이었다. 스네이프는 아무 목적도 없이 머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많은 꽃 화분으로 장식 된 카페의 바깥에는,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와 수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네이프가 베란다로 종종 구경하던 곳이었다.

“…얼그레이로 한 잔.”

주문을 받은 적갈발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점원은 해리의 또래처럼 보였다. 딱딱한 스네이프의 말투에도 점원은 밝게 웃었다. 스네이프는 이제는 익숙하게 머글 돈을 내 계산했다. 그리고 카페 안의 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챙겨 온 책이 마법 독초와 약초 대백과인 것만 빼면, 스네이프는 카페 안의 다른 머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얼그레이 한 잔,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새 메뉴로 낼 아몬드 쿠키인데 드셔보세요. 서비스예요.”

서비스치곤 고급진 그릇 위로 수북한 쿠키의 양이 많았다. 스네이프는 말없이 내려다 보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도 점원은 가지 않고 스네이프의 옆에 서있었다. 맛의 평가를 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스네이프는 쿠키를 집었다.

“…설탕을 15그램 정도 더 첨가해야 할 것 같군.”

마법약 교수처럼 평가하고 말았다. 스네이프가 제가 내뱉은 말에 찡그리자, 점원이 하하핫 웃었다. 미간을 꿈틀인 스네이프가 점원을 올려다 봤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손님의 표정에도 점원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신기하네요. 원래 엄청 단 커피에 곁들이려고 만든 쿠키라, 원 레시피에서 설탕을 15그램 빼서 만든 건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아셨지? 우리 가게 단골이세요? 아닌데, 그럼 내가 당신을 기억을 못할 리가 없는데…….”
“오늘 처음 왔소만.”

오늘부로 다시는 안 올 것 같긴 하군. 스네이프는 무심하게 책장을 넘겼다.

“이 근처 사세요? 이사 오셨나? 우리 카페는 거의 이 동네 사람들만 오는데 처음 보는 분이어서.”
“일 하러 안 갑니까?”
“네, 손님. 제가 여기 사장이라 농땡이 쳐도 돼요.”

그 농땡이를 왜 저에게 부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건데. 스네이프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넘겼다. 빌어먹게도 차 맛은 맛있군. 스네이프는 제 앞의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 젊은 사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시리우스라고 해요.”
“…….”

차 맛까지 뚝 떨어졌다. 생긴 건 전혀 안 닮아서 다행이랄까. 스네이프가 일어서려고 하자 젊은 사장이 어어어? 하며 따라 일어섰다. 머글 시리우스 씨와도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단 1초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손님? 왜 그러세요?”
“내가 얼그레이를 마시는 건지 얼블랙을 마시는 건지 모르겠어서.”
“손님, 그래도─ 아직 한 모금밖에 안 드셨는데….”

제 차 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진 몰라도, 못내 애석한듯 저를 붙잡는 사장에 심기가 거슬렸다. 그냥 일개 손님 하나일 텐데,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리 붙잡지? 스네이프는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며 가게 문을 열었다.

초록색 문에 달린 종에서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덜컹이며 닫히는 문과 기어코 거리까지 쫓아나온 사장에 스네이프는 짜증이 폭발했다. 뒤이어 그가 제 손목을 잡아오는 것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님, 죄송해요. 사실, 이렇게까지 제 취향인 분은 처음 봐서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그런 건데─ 제발 제가 무례했던 건 용서해주시고 우리 통성명을…….”
“뭣….”

취향…? 뭐가 취향? 내가 취향이라고……?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은 대체─

“아악! 뭐야?!”

사장의 팔이 뒤로 꺾여 스네이프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놀란 눈으로 눈 앞의 붉은 머리 청년을 바라 봤다. 그는 방금까지의 스네이프 만큼이나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시네. 그 말은 분명, 저를 향한 빈정거림이었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꾹 여물며 그를 노려 봤다.

“…론 위즐리.”

론이 고개를 건성으로 까닥였다. 그리고 그대로 론은 사장을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팔이 뒤로 꺾인 사장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아프다고 고함을 계속 질러댔다. 그리고 잠시 후, 가게 안은 어떤 소란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카페 바깥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어리둥절해질 만큼이었다.

초록 문의 종이 딸랑이며 맑게 울렸다. 론이 문을 열고 나타나 스네이프에게로 다가왔다.

“돈 낸 거 있어요? 그것도 받아 와줄까요?”
“아니, 필요 없…. 위즐리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세베루스! 론!”

해리였다. 헐떡이며 달려오는 해리의 손에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저렇게 뛰어 오면 다 뭉개질 것 같은데. 그러나 지금 해리에게는 케이크 따위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론은 몹시도 애석한 표정으로 케이크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해리는 스네이프만 보며 달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스네이프의 앞에 와서는, 걱정과 분노가 어린 표정으로 스네이프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카페 문을 노려보는 해리의 표정이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스네이프는 해리가 이대로 폭파 주문을 쓰는 건 아닐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괜찮…아요? 빵집이 여기랑 거리가 좀 돼서 늦었어요, 젠장!”
“난 괜찮아, 포터. 그런데 무슨 수를 쓴 거지, 위즐리?”
“카페 내의 머글 모두에게 오블리비아테를 썼습니다만.”

어깨를 으쓱인 론이 스네이프를 돌아 보았다. 파인 브이넥의 니트를 입고 있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라. 게다가 머글 남자한테 추행까지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히, 환장할 재회라고 평할 만 했다.


스네이프가 뭉개진 케이크에 복원 마법을 걸었다. 멀쩡해진 케이크에 론이 눈을 빛내며 포크를 들었다. 해리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포크는 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스네이프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난 해리의 얼굴에 눈치가 보였다. 물론, 론은 그런 눈치는 개나 던져준 듯 했다. 아니면 신경이 안 쓰이거나. 이 머글 베이커리의 맛이 기가 막힌다며 론은 케이크를 큰 덩이로 퍽퍽 퍼먹었다.

해리는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쉬고 스네이프의 앞에 그릇을 소환해 케이크 조각을 덜어주었다. 이대로 두다간 스네이프가 한 입도 못 먹고 론에게 빼앗길 것 같았다.

“세베루스, 먹어봐요. 맛있어요, 여기, 이 집 케이크. 론이 좋아해서 오늘 집에 오기 전에 들렀는데 그런 광경을 보게될 줄은 몰랐지만…….”

으득, 이를 갈며 해리가 미간을 좁혔다. 스네이프는 포크로 조각을 작게 떠서 해리의 입 앞에 갖다 대었다. 론이 그걸 보더니 옘병, 작게 중얼거리며 케이크를 입에 쑤셔 넣었다. 해리는 살짝 표정을 풀고 케이크를 받아 먹었다.

“그 카페… 종종 갔었어요?”
“아니, 오늘 처음.”
“그 새끼가, 뭐라고 했어요? 당신 몸을 함부로 잡은 건 봤는데─”
“……그냥, 헛소리.”
“해리, 내가 들었는데 그 자식이 스네이프가 너무 자기 취향이라서 붙잡았댄다.”
“론 위즐리!”

론이 혀를 메롱 내밀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이잖아요? 그 말에 스네이프는 주먹을 꾹 쥐고 론을 노려봤다. 돌아본 해리의 녹색 눈은 이글이글 불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가 언제 쥐었는지 모를 지팡이를 쥔 주먹에 힘줄이 다 섰다. 스네이프는 현직 오러인 제 연인이 머글에 폭력 상해를 입힐까 염려스러웠다. 그 머글 놈은 어떻게 돼도 전혀 상관 없었다. 해리에게 해가 생길까봐 걱정스러웠다.

“포터, 그냥 손목만 잡혔어. 그리고 그 머글도 뭔가 착각했겠지. 내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어딨겠….”
“세베루스, 난 당신 남자친구라고요.”
“아, 뭐, 너 같은 특이취향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
“세베루스! 어째서 이 일이 당신 자신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는 건데요?!”

쌓이고 쌓이는 분노에 결국 해리는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즉시 괴로워하며 지팡이를 놓고, 마른 세수를 했다. 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케이크 위의 딸기를 입에 넣었다. 이 상황에서 론만은 제3자 역할에 충실 했다.

“스네이프 교수님, 뭐, 이젠 저도 학생이 아니니까 스네이프라고 불러도 되겠죠?”
“…네 맘대로 해라, 론 위즐리.”
“스네이프. 해리가 좋아하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요? 당신 때문에 해리가 내 여동생을 찼다고요. 뭐, 그건 일단 제쳐놓고. 그리고 오늘은 내가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그 옷 해리가 골라준 거 맞죠? 잘못은 그 머글 자식이 했지. 마법사였으면 더 굴려줄 수 있는데, 머글이라 기억만 지워서 아쉬울 정도야.”

론은 오러가 천직인 것 같았다. 뚜둑 소리가 나게 손에 깍지를 끼고 비트는 것까지 기세등등해보였다. 스네이프는 어이없게도, 그 순간에 마법부 장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오러 국장 론 위즐리를 떠올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이 마법세계가 어찌 되려고…….

어쨌든, 스네이프는 론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제 얼굴에 미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었지만, 해리가 늘 사랑한다고, 예쁘다고 말해줘서 그런걸까, 누군가에겐 나 같은 놈도 취향일 수 있겠지 하는 마음도 약간은 들었다. 스네이프는 죽은 눈을 한 채, 론이 헤집어 놓은 케이크 잔해를 깔작이는 해리를 바라 보았다.

“포터.”
“네….”
“나도 마법사야, 위즐리가 없었어도 그런 머글 정돈 쉽게 떼어 낼 수 있었고.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알아요, 전 단지…. 젠장. 론 앞에서 이런 말을 하려니. 야, 론. 귀 잠깐 막고 있어 봐.”
“진짜 너네…… 환장하겠다. 알았어, 알았어. 빨리 해, 해리.”

론이 투덜대며 양 쪽 귓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그제야 해리가 표정을 풀고 피식 웃었다. 스네이프는 다시 저를 바라보는 녹색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세베루스, 저도 당신이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어요. 진짜 제 기분이 지금 어떤 줄 알아요? 이대로 세베루스를 집에 가둬놓고 저만 보고싶은 이기적인 생각까지 든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자기 외모 비하나 하고 있지….”
“해리 포터. 너야말로 이 세계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폭발인데, 지금 내가 맘에 든다는 사람 딱 하나 나타났다고 그런 마음이 드나?”

해리의 이기적 소유욕에 스네이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둬놓고 싶을 정도라고?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영웅은 확실히 이상성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해, 둘의 앞에 앉아있는 론은 아무리 귀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도 들리는 둘의 대화 내용에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요, 이 염병할 커플들아. 나 방금 쩔게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거든요? 비위 좀 맞춰주시죠.”
“귀 막고 있으랬잖아, 론.”
“다 들리는 걸 어떡하냐고. 어휴, 진짜. 지금 보니 지니랑 네가 결혼 안 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 고맙.”

스네이프는 또래 동성친구 옆에서 여즉 10대 티가 나는 해리에게 웃음이 났다. 제 앞에선 그래도 어른스럽게 굴려고 노력하더니. (그래서 더 애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엄마는 이제 좀 받아들이신 것 같더라. 해리 너랑 내가 직장에서 얘기는 나누냐고 물으셨어.”
“정말? 다행이다. 나도 빨리 네 가족들이랑 다시 만나고 싶거든.”
“그래도 아직은 좀…. 그리고 올 거면 너 혼자 와야할 것 같아. 스네이프는….”

흘낏, 스네이프를 본 론이 말꼬리를 흐렸다. 해리는 턱을 괸 채로 표정을 굳혔다. 스네이프는 평생 해리가 혼자 위즐리들을 만나러 가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해리 고집과 생각에 절대 그러고 살 수는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베루스는요? 위즐리 가족을 만나러 가긴 부담스럽겠죠…?”
“당연하지. 내가 그들을 본다는 건 지극히 뻔뻔한데다가, 원래 내 성격에도 안 맞고.”
“하아, 알았어요. 일단은, 봐서 제가 혼자 다녀올게요. 그렇지만…… 론, 내 결혼식은 위즐리 가족 없이는 못 열어. 그러니까 제대로 용서 구할거고 화해 할 거야.”
“……결혼식?”

론이 입을 떡 벌린 채, 넋을 놓고 스네이프와 해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론 너한텐 얘기 안 했었나? 해리는 뻔뻔한 얼굴로 냉수를 따라서 단숨에 마셨다. 음, 시원해.


론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벽난로에 플루 가루를 뿌렸다. 해리가 사준 케이크에 이어 스네이프가 차려준 감자 스프, 각종 가니쉬를 더한 훈제 오리 요리까지 대접 받은 론은 매우 만족한 얼굴로 버로우로 돌아갔다. 역시 론은 먹을 걸로 포섭하는 게 최고예요. 으쓱이던 해리는 스네이프와 함께 부엌으로 되돌아갔다. 지팡이를 휘두른 해리가 그릇에 세척 마법을 걸었고, 스네이프는 냉장고를 들여다 보며 살 것을 확인 했다. 말단인 해리의 오러 업무가 생각보다도 더 과중해서, 잘 먹이려 했더니 식재료가 금방 줄어들었다. 게다가 한차례 론 위즐리라는 폭풍까지 지나갔더니 냉장고 사정이 영 궁핍해졌다.

해리는 홍차와 함께 식탁에 다시 앉았다. 스네이프는 주문을 건 깃펜에 사야할 목록을 읊어주고 양피지에 쓰게한 뒤, 냉장고를 닫고 해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해리가 준비한 것은 얼그레이가 아닌 루이보스였다. 흐음. 눈썹을 까딱한 스네이프가 차를 받아들고 한 모금을 마셨다. 괜히 돈 내고 밖에서 사마실 필요는 없지. 이 세계의 구원자가 공짜로 끓여주는 홍차가 있는데 말이었다.

“세베루스.”
“뭐지? 포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당신 목에 내 거라고 낙인을 찍고 싶어요.”
“……키스마크 이야긴 아닌 것 같군, 보아하니.”

스네이프는 질렸다는 얼굴로 홍차를 들이켰다. 그래도 차 맛이 아주 뚝 떨어질 정도의 주제는 아니었다.

“오늘 그런 일도 있었고……. 당신이 내 거라는 표식이 필요해요. 장신구는 거추장스럽고, 눈에 바로 보이는 걸로요.”
“내가 네 건가?”
“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 거죠.”

눈썹을 으쓱하며 해리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유로워 보이는데, 포터. 스네이프는 픽 웃고는, 해리와 나란히 차를 마셨다. 그리고 식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내 목에 어떤 걸 새기고 싶은 건데?”
“남들이 보자마자 의미를 깨닫는 거요.”
“뭐지? 설마 네 이름이라도 새기고 싶은 건가.”

스네이프는 정말 변태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해리는 큭큭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처음엔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의 소유이다'를 새기고 싶었는데…….”
“미친. 제대로 돌았군.”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스네이프의 눈초리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리핀도르 10점 감점 소리가 들릴 것 같아, 해리는 웃음을 참았다.

달그락, 잔소음을 내며 해리가 찻잔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해리는 잔을 내려놓은 오른손으로 제 앞머리를 들어 이마를 드러냈다. 스네이프에게도 익숙한, 마법세계의 모두가 알아보는 그 번개무늬 흉터가 훤히 보였다. 하, 스네이프는 탄복하며 실소했다.

브이넥을 입어서 오늘따라 목덜미도 잘 보였다. 스네이프는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숨소리를 냈다. 해리가 아까부터 뚫어져라 제 왼쪽의 목 부근을 보고 있었다. 내기니가 물었던 곳─ 의도가 뻔히 보였다. 볼드모트의 흔적에 질투해 낙인을 떠올리는 질투의 화신이니, 어쩌면 해리가 이 자리를 원하는 것도 당연한 듯 보였다. 스네이프는 왼손으로 브이넥의 목라인을 잡고 팽팽히 당겼다. 드러나는 빗장뼈와 하얀 목선이 해리를 현혹했다.

“새겨 줘.”

해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야하게, 도발적으로 제 욕망을 받아들여주는 그 모습에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해리가 고작 세 발자국만에 스네이프의 앞에 섰다. 여전히 옷깃을 바짝 잡아 당긴 스네이프가 해리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게 더 해리를 미칠 것 같이 만들었다. 해리의 지팡이 끝이 스네이프의 목을 꾹 눌렀다. 살짝, 스네이프가 미간을 좁혔다가 풀었다. 해리의 지팡이가 흰 살갗 위에서 세 개의 사선을 그렸다. 칼에 베인 듯한 목의 상처 위로, 방울방울 맺힌 핏방울이 스르륵 흘러 내렸다.

“…심지어 섹튬셈프라의 변형 마법인가?”

스네이프가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해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의 얼굴을 감싸 잡고, 급하게 입 속을 파고 들었다. 스네이프의 베이지색 밝은 니트에 핏물이 조금씩 스며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와 눈을 마주쳤다. 깊은 소유욕과 저를 향한 욕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 녹색 눈이 보였다. 스네이프는 여전히 헛웃음을 흘리며 제 목덜미를 해리에게 내어 주었다. 따가운 상처 위를 해리의 부드러운 혀가 지나가며 피를 핥았다.

정말 난 너의 것이구나.
스네이프는 눈을 감고, 조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