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Potter

[해스네] 구원자 12

기조. 2016. 12. 20. 02:34

12.



스네이프는 비틀거리다 벽에 손을 짚었다. 턱 끝이 사정없이 떨려, 이가 딱딱 소리를 냈다. 처음, 이곳에 해리를 데려왔을 때 해리의 모습처럼 지금 자신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복제한 텐트 안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여긴 진짜 자신의 집이었다. 썰렁한 집 안은 인기척 없이 적막했다. 언제 해리가 제 뒤를 쫓아 이 집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갑자기 사라진 자신 때문에 해리가 경황이 없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그 짧은 순간을 노려야했다.


“아씨오, 투명망토!”


스네이프는 눈을 꽉 감고, 쥐어짜듯 소리쳤다. 2층의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벽장이 홱 젖혀지더니 투명망토가 빠르게 날아왔다. 스네이프는 투명망토를 낚아채서 바로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몇 백 미터를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숨이 가빴다. 지금 해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일 이후로 어떻게 되는 걸까.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과 후회가 난무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이 모든 생각으로부터 유리되고 싶었다. 스네이프는 눈을 감은 채, 복잡한 머릿속을 더듬어 한 장소를 떠올렸다.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푸르른 언덕의 위였다. 스네이프가 주변을 황급히 두리번거렸다. 언덕으로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투명망토의 밑자락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스네이프의 어지러운 머릿속과는 몹시도 다른 곳이었다. 이곳은 너무도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스네이프의 시야에 몇 번이고 무너졌다 아무렇게나 다시 쌓아놓은 것 같은 모양의 집 한 채가 들어왔다. 자신이 살던 네모반듯한 집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의 집.


1년 전 생일은 버로우에서 보냈다고 해리가 말했다. 생일 다음날인 오늘은 토요일이었고, 주말이 꼈으니 해리가 이 집에서 자고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피해서, 또 다른 해리를 보러온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이곳의 해리는 자신이 아닌 지니와 사귀고 있었다. 그런 해리를 보러오고 싶었다니, 스네이프는 스스로를 자조했다. 살에 난 생채기를 일부러 건드려보는 것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이곳, 자신이 알지 못하는 시간 속의 해리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지금 해리의 모습과, 지니를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이 다를지 스네이프는 궁금했다.


비교하고 싶었다니, 정말 우스운 동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해리의 모습에서, 그녀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것인지. 그 반대로 완전히 상처받을 수도 있었다. 사실 이 후자 쪽이 더 현실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리를 피해서 왔으면서도, 스네이프의 안에서 해리를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만 커졌다. 이상한 굴레. 스네이프는 해리를 사랑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 마음은 사실 당연했다.



스네이프는 버로우의 창가 근처로 조용히 다가갔다. 순간, 정원의 땅신령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스네이프가 있는 쪽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땅신령은 도로 흙속으로 돌아갔다. 스네이프는 투명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창문 안을 들여다보면, 바로 부엌이 보였다. 몰리가 냄비를 젓고 있었다. 해리가 아직 이 공간에 있을까, 스네이프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때 계단에서 조지 위즐리가 내려왔다.


“일어났니? 조지.”

“네, 엄마─. 하암─ 오늘 아, 아─침─ 은 뭐예요?”

“적당히 하품해라. 아침은 호박수프란다.”


의자를 빼어 앉는 조지의 옆으로, 막 내려온 퍼시와 지니가 자리를 잡았다. 스네이프는 한동안 붉은 머리카락을 매력적으로 찰랑거리는 지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그녀에게서 릴리의 모습이 보였다. 지니는 밝고 경쾌했고, 아름다웠다. 릴리 역시 그랬다. 스네이프는 해리가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지니를 좋아하다 왜 자신을 좋아하게 됐는지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 그대로, 스네이프 역시 평생 미워할 것 같던 해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논리적이지 못했다.


위즐리 가족이 식사를 시작했지만, 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이 집에 해리가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해졌다. 자신은 과거에 해리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해리가 마법부에서 오러로 일한다는 것밖에는.


“오오, 맛있는 냄새….”


기지개를 켜며 론 위즐리가 느지막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 곁에도 역시 해리가 보이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그만 여길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몰리 아줌마.”


스네이프가 뒤를 돌았을 때, 등 뒤로 익숙하지만, 더 예의바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일같이 듣던 목소리였는데. 스네이프는 그 목소리에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렇게 텐트에 홀로 둔 채 도망쳐놓고, 그 목소리가 반가워서 울컥했다. 스네이프는 다시 뒤를 돌았다. 창 너머로 해리가 보였다. 지금의 해리보다 머리가 좀 더 길어서, 그가 학생이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방금까지 울고 있던 해리가 거짓말같이 눈물을 그치고, 눈앞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닮았지만, 해리 본인이 맞지만, 지금 눈앞의 해리는 스네이프가 모르는 해리였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저 해리는 지금 자신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다.


스네이프는 빨래를 말리러 나온 몰리가 문을 열었을 때, 그 틈을 타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해리는 론과 조지와 함께 카드놀이를 했다. 지니는 해리의 옆에서, 거꾸로 앉아 의자의 등받이에 고개를 얹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스네이프는 그들 근처 소파에 앉았다. 해리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고작 1년 전의 얼굴일 텐데도, 해리는 지금보다 훨씬 앳돼보였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헝클어진 머리를 간간히 쓸어 넘기며 카드를 쥔 채 고심하는 얼굴. 해리는 고작 카드게임 정도에 고민하고, 열 올리는 모습이 어울렸다. 자신 때문에 고민하는 해리는 너무 아파보였다.


지니는 가끔씩 해리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지고 있는 해리를 격려하다가, 론의 실수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해리는 결국 카드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지니의 옆에서 해리는 계속 미소를 생글거렸다. 스네이프는 저 미소가 익숙했다. 해리는 자신을 보면서도 저렇게 다정하게 웃곤 했다. 아주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눈. 그러나 지금 그 녹색 눈이 향하는 곳은, 자신이 아니라 지니 위즐리였다. 스네이프는 지니를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과, 자신을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날 그녀보다 더 사랑해주길 바랐다니, 그것은 너무 우스운 욕망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해리는 언제나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해주었을 뿐이었다. 풍선처럼 팍, 터져버리는 얄팍한 재질이 아니라.


가끔씩, 해리가 뭔가를 아는 것처럼 자신이 앉아있는 곳을 똑바로 쳐다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스네이프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걱정이 들진 않았다. 저 해리는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해리 역시도, 자신의 행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해리가 절 얼마나 걱정할지. 스네이프도 퇴근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해리를 기다린 적이 있어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았다. 그 때는 해리를 사랑하기도 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날, 해리와 첫 키스를 했었다.


해리와 처음으로 나눈 것들.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많았다. 그게 얼마나 값진 가치인지 자신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저는 그걸 한참 몰랐다. 그랬다면, 오늘 아침같이 해리를 울릴 일도, 자신이 도망쳐 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왜 당연한 것처럼 미래의 이별을 받아들였을까. 해리와 헤어지기 싫었다. 한 번 자각하니 그것이야말로 아주 단단하고도 당연한 욕심이었다. 답은 단순했다. 사랑은 원래 그랬다.


지니의 손을 잡고 해리가 밖으로 나갔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들뜬 눈과 다정한 태도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놀랍도록 질투가 들지 않았다. 지금 그녀를 사랑하고, 그 후 저를 사랑할 해리 포터를 스네이프는 알았다. 몸을 일으킨 스네이프는 아까부터 눈길을 끌던 트리의 앞으로 다가갔다. 모든 물건들이 난잡하게 굴러다니는 버로우다웠다. 크리스마스는 벌써 반년 전의 일인데도, 트리는 덩그러니 구석에 세워져있었다. 하, 스네이프가 낮게 읊조렸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론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조지는 유령이라도 봤냐며 낄낄거렸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암사슴 모형이 트리에 걸려있었다.



해리는 한동안 충격에 얼어붙어 있었다. 사고는 멈췄는데, 하반신과 손의 떨림은 좀체 멈춰지질 않았다. 방금 있었던 일은, 스네이프를 재회한 뒤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내가 떠날 거라고 믿었다면서, 본인이 그렇게 훌쩍 사라져버렸다. 해리는 지난 1년간, 스네이프의 사라진 시신을 찾으며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실제의 그가 눈앞에서 또다시 사라졌다. 해리는 눈앞이 온통 캄캄해졌다. 왜? 어째서? 물음표가 계속 해리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지금 상황이, 누구 한 사람이 사라지지 않고는 해결될 수없는 상황이었던 걸까? 스네이프가 사라질 만한 곳을 해리는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과거의 자신도 금방 스네이프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항상 스피너즈 엔드의, 자신의 집에 있었다.


해리는 지팡이를 찾아 들고, 스네이프와 자신이 사는 집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적막한 집안에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직접 둘러보지 않았어도 직감적으로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며 해리가 울분을 토했다.


“젠장, 젠장, 제기랄……!!”


어디에? 어디로 가야 세베루스가 있지? 그의 머릿속을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해리는 눈물이 났다. 그를 모르는, 그를 몰랐던 자신이 한심했다.


우선, 다시 스네이프가 돌아올 가능성을 생각했다. 해리는 숲의 텐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온 텐트 역시, 적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적막은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커다란 바위처럼 아팠다. 해리는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와 뒹굴었던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렴풋이 마른 책의 냄새가 났다. 스네이프의 냄새였다. 해리는 이불을 꽉 끌어안았다. 그가 제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이렇게 꽉 붙들고 있었어야 했다. 후회는 언제나 가장 늦은 순간에 했다.


해리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텐트 주변을 정리했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있었지만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해리는 벌게져 따끔거리는 눈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스네이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찾아나서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가 돌아오기를 믿고 기다려야 맞을까. 해리는 예전부터 이런 유형의 선택지에 약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해리는 일단 이렇게 텐트 주변을 서성이며 물건을 정리하는 척, 시간을 끌어볼 뿐이었다. 울어서 뜨거운 얼굴 때문에 못 앞에 꿇어앉아서 세수를 했다. 못의 물 온도는 정신이 확 들만큼 차가웠다.


예전엔 이 못 속에서 고드릭의 칼을 보았다. 그 때처럼 어두운 밑바닥을 내려다보지만, 지금은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스네이프, 제발. 닿지 않는 대상자에게 해리는 간절한 목소리를 흘렸다. 이 못 속에 죽은 듯이 빠져있으면 스네이프가 나타나서 구해주지 않을까. 해리는 충동적으로 차가운 물에 머리를 반쯤 들이밀었다. 어지러운 해리의 머릿속으로 기이한 노랫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정신이 나갈 징조일까, 하지만 해리는 이 노래가 어딘가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제도 이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 스네이프와 끓인 찻물을 나눠 마시며, 이 연못을 바라볼 때 노랫소리 같은 새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 아니었던 걸까? 못 위로 비친 해리의 얼굴 그림자 위로, 큰 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해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퍽스!”


해리는 놀라 눈만 끔벅거렸다. 원체 어지러웠던 머리가 더 멍했다. 퍽스가 하늘을 빙빙 돌다가 해리의 팔에 내려앉았다.


“여기서…살고 있었니?”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밀어진 해리의 손가락을 퍽스가 애교 있게 깨물었다. 젖은 해리의 짧은 앞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추도식에서 만난 후, 퍽스와는 두 번째 재회였다. 하지만 시기상으로 따지면 첫 재회는 미래에 있을 일이었다. 해리는 과거로 돌아와 있기 때문이었다.


“어…혹시, 갑작스럽지만… 퍽스, 너 스네이프 교수님을 찾을 수 있겠니…?”


이 순간에 이렇게 불사조 퍽스가 나타난 건 운명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리는 생각했다. 스네이프를 살릴 수 있었던 것도 퍽스가 눈물을 흘려주어서였다. 그러나 퍽스는 가만히 해리의 눈을 응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간절함만큼은 절실했기에, 해리는 씁쓸해졌다. 하지만 따스한 생명체가 곁에 있다는 것은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교수님이 사라졌어. 세베루스가……. 내가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어야 했어. 잘못은 나한테도 있었는데. 그래, 서로 참고 숨겨둔 것들이 터진 거지. 나는 세베루스를 사랑한다면서 그에 대해 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퍽스의 눈이 해리의 그늘진 얼굴을 향했다.


“나는 바보야.”


퍽스가 대답이라도 하듯,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좀처럼 웃지 못했던 해리도 슬며시 웃었다.


“세베루스도 바보고.”


해리가 퍽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얌전히 쓰다듬을 받을 줄 알았던 퍽스는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펼쳤다. 다시 가려고? 해리는 위로가 되는 존재였던 퍽스가 금방 떠나려고 하자,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퍽스는 해리를 두고 미련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해리는 쓸쓸하게 서서, 사라지는 불사조의 꽁지에 대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운이 빠지자, 졸음이 몰려왔다. 이것이 일종의 도피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못 옆의 잔디에 몸을 천천히 뉘었다.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세베루스가 보고 싶어.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어……. 욕심은 그득그득 차올랐지만 정작 그가 없었다. 해리는 까무룩, 잠에 빠져 들었다.


꿈에서, 또 퍽스가 나왔다. 퍽스, 넌 참 따듯하구나. 불사조라서 그런가. 해리는 중얼거리면서 퍽스를 쓰다듬었다. 퍽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상하고 기묘하지만 불사조의 노랫소리는 듣기 좋았다. 해리는 점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도 점점 맑아졌다. 불현듯 해리는 눈을 번쩍 떴다. 해리의 눈앞에서 퍽스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거, 아직도 꿈속인가? 해리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 해리의 눈이 점점 더 크게 떠졌다.


암사슴 패트로누스였다.


“세베루스?! 돌아왔어요?!”


현실인지, 꿈인지. 태양 아래의 패트로누스는 밤보다 더 투명했다. 암사슴뿐만 아니라 그 옆엔 해리의 수사슴 패트로누스도 함께였다. 해리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네이프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해리는 약간의 실망과 동시에 여전한 놀라움을 느끼며 패트로누스를 바라보았다. 암사슴은 고개를 기우뚱거리며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퍽스는 암사슴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노래를 불렀다.


“퍽스, 설마… 네가 데려온 거야?”


퍽스는 대답인 듯이 해리의 머리 위에 앉아, 해리의 이마를 부리로 쪼았다. 해리는 이게 정말 놀랍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 숲속으로 사라진 패트로누스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목적이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목적이 생겨 그걸 이루기 전까진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해리는 허리를 굽혀 암사슴과 눈을 마주쳤다. 암사슴의 투명한 눈이 해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스네이프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맞아….”


‘패트로누스에게는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까.’ 바로 어제 스네이프가 제게 말해주었던 것이었다.


“내게 세베루스를 찾아줄 수 있겠니……?”


암사슴의 눈이 해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해리는 실제의 시간보다 더 길게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그 겨울,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암사슴이 저를 완벽한 장소로 인도해줄 거란 희망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곧이어 암사슴이 옆으로 몸을 틀었다. 퍽스가 해리의 앞으로 내려앉았다. 해리는 퍽스에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등 위로 올라타 목을 끌어안았다. 비밀의 방을 탈출했을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암수 한 쌍의 사슴 패트로누스들이 겅중겅중 하늘로 뛰어올랐다. ‘세베루스를 찾아낼 수 있다.’ 해리의 가슴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여름의 하늘은 태양에 부쩍 가까웠다. 게다가 불사조의 더운 몸을 끌어안고 있으니, 저절로 땀이 흘렀다. 하지만 눈물만 흘리고 있던 것보다는 땀이 훨씬 나았다. 그러나 이대로 언제까지 날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걱정과 기대로 범벅되어, 해리의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두근댔다. 해리는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앞장서서 달려 나가는 암사슴은, 정말로 자신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해리는 힘들어도 견딜 수가 있었다. 스네이프를, 다시 찾을 수 있어.



해리와 지니는 언덕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또 한동안 못 보겠다. 지니의 말에 해리가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지니의 개학이 성큼 다가왔다. 벌써 한 달 후구나…. 해리가 대답했다. 전쟁으로 무너졌던 성벽과 내부시설도 완벽히 복구되었다고 들었다. 크리스마스연휴 때까지는 지니와 편지로만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


“지니, 얼른 늘 함께 있고 싶어.”

“나도, 해리.”


해리는 지니의 손을 잡은 채로, 그녀의 손가락의 굵기를 어림잡았다. 이 손에 반지를 껴주는 상상을 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붉은색 루비가 좋을 것 같았다. 해리치고는 제법 섬세한 생각이었다. 해리는 지니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해리. 오늘 뭔가… 집 안에 있을 때, 이상한 기분 들지 않았어?”

“어?”

“그냥. 우리 말고 또 누가 집에 있는 것 같았달까.”

“설마…. 사실 나도 그랬는데, 지니 너도?”

“응. 누가 막 계─속 우리 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어.”


해리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지니를 쳐다보았다. 지니는 가벼운 태도로 해리를 마주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예민한가싶었는데…. 근데 진짜로 누가 있었다면 큰일이잖아! 당장 돌아가서 확인을 해봐야…!”

“해리, 해리도 느꼈다며?”

“지니?”

“그럼 알 거 아냐. 절대 악의적인 시선이 아니었어.”

“…….”


그 말에 버로우로 달려 나가려던 해리의 몸이 뚝, 멈추었다. 지니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해리는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라면 넌더리가 날 정도로 익숙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지만, 시선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쳐다보았다. 분명히 무언가와 시선이 마주친 듯한 느낌. 하지만 해리는 바로 지팡이를 잡고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해리가 받은 느낌에도, 지니 말대로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굉장히 따듯한 느낌이었다.



스네이프는 아래층에 사람이 없어지길 기다려서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하게 집을 나왔다. 당장 해리에게로 돌아가겠단 마음이 바로 서진 않았다. 다시 해리를 마주하면 해리가 어떻게 나올까. 사실 그것에 대한 걱정보다도,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다. 해리에게는 정말로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런 후회와, 죄책감이.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암사슴 모형을 보고서 스네이프는 그동안 과거의 해리에게, 사라진 자신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확실히 알았다. 얼마나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 자신을 만나게 된 걸까. 과거로 돌아와서까지…. 그런데 또다시 그의 앞에서 자신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생각할수록 해리에게는 버거운 아픔만 몰아준 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킨 기분이란, 익숙하게 비참했다. 스네이프는 입 안이 쓰고 머리가 아팠다. 해리를 다시 마주하기가 겁이 나는 건 당연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스네이프는 그저 언덕을 걸었다. 버로우와, 그곳의 해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어쨌든 결국엔, 자신을 기다릴 해리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스네이프는 슬프고, 한편으로 두려웠다. 스네이프의 생각이 무겁게 침잠했다. 고개를 숙인 채, 스네이프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가슴팍에서 잡고 당긴 투명망토가 그의 몸에서 흘러 떨어졌다.


“……?”


스네이프는 두 눈을 의심했다. 멋대로 몸이 의식을 잃고,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웠다.


“릴리……?”


이 상황은 현저히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스네이프의 맞은편에는 암사슴 패트로누스가 서있었다. 릴리와 자신 외에 그 패트로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암사슴 패트로누스가 자신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보며, 스네이프는 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저건, 다른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스네이프가 빠른 걸음으로 암사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암사슴은 스네이프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스네이프는 암사슴이 달려 나가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제야 스네이프는 저 멀리에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서있는 것을 알았다. 암사슴은 수사슴에게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스네이프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수사슴 패트로누스 옆에는, 불사조를 어깨에 얹은 채 나란히 해리가 서있었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불사조가 해리의 어깨 위에서 날아올랐다. 암사슴과 수사슴 패트로누스가 그 뒤를 따르는 것 같더니, 은빛을 반짝거리며 공기 중에 연기로 흩어졌다. 해리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며 언덕을 뛰었다.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늘은 파랗고, 오후의 태양은 무시무시하게 작열했다. 스네이프에게로 다다르자마자 해리는 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반동에 의해 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두 사람의 코로 풀냄새가 아릿하게 스쳤다.


“찾았다─!!”


해리가 밝고 경쾌하게 소리쳤다. 스네이프는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만났을 때, 해리가 이렇게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웃어줄 줄은 몰랐다. 자신을 향한 해리의 용서는 이렇게나 쉽고, 간단했다.


“어떻게……여길….”

“세베루스의 패트로누스를 따라왔어요. 진짜로 여기 있었네, 다행이다….”

“포터….”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스네이프의 목구멍 안으로 많은 말들이 꾸역꾸역 삼켜졌다. 그러다 스네이프는 겨우, 말 대신에 해리를 끌어안는 방법을 찾았다. 해리의 몸에서는 땀 냄새가 강하게 났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해리의 등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서로의 몸이 바싹 닿아, 붙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해리를 힘껏 호흡했다. 해리는 손을 뻗어서 눈물이 얼룩진 스네이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도망쳐놓고, 그렇게 울면 대놓고 미워할 수도 없잖아요. 해리가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다정한 목소리에선 다분히 스네이프를 웃게 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 버로우 근처 아니에요? 세베루스가 왜 여길…….”


아. 해리의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해리는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버로우에서 보낸 생일 다음날,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느껴지던 그 따듯한 시선에 대해.


“대체 왜 여길 온 거예요, 세베루스….”


지니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니. 해리는 갑작스럽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스네이프가 어떤 생각으로 여길 온 것이고, 과거 저와 지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해리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해를 등지고 있어, 해리의 얼굴은 더욱 어둡게 보였다. 스네이프는 눈물을 그친 채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해리가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럴 필요 없어.”

“세베루스…?”

“미안해하지 마라. 그래야할 건 나니까….”

“세베루스!”

“상처 준 거, 미안하다. 그리고……”


해리의 뺨에 스네이프의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간지러운 감촉에 해리는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사랑해줘서 고마워.”


해리의 눈에 빠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찾아 나선 보람이 있네요.

그래, 나도 여길 온 보람이 있는 것 같군.


해리의 입술과 스네이프의 입술은, 더 이상 말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휴 이번 편은 너무 안 써져서 본의아니게 늦게 올라왔지만...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사랑을 ㅎㅏ는 애들이 제일 이ㅃ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