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Potter

[해스네] 구원자 8

기조. 2016. 11. 8. 17:45

8.

 

 

 

 

이걸 교제한다고 표현하는지,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스네이프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날 이후 해리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직시했다. 물론 그게 선을 넘을 명분은 되지 않았다. 해리가 스네이프를 ‘사랑을 담아’ 바라보는 시선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은 확실한 변화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해리는 자신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사실 해리는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스네이프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욕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집착당하는 것은 기분 나빴던 경험뿐이었지만,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받는 시선은 즐길 수 있었다.

 

해리의 초록색 눈이 릴리를 닮아서 좋아한 것은 이제 예전의 일이었다. 스네이프는 해리를 해리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해리의 초록색 눈이 좋았다. 그 눈에 담긴 진심이 신선했고, 몹시 뜨거워서, 스네이프는 재밌었다. 해리가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예전의 스승은 제자를 기특하게 여기는지도 몰랐다. 한번은 안겨줘도 되지 않을까, 입술을 허락해줘도, 수고했다는 칭찬정도로 자신의 일부분을 내주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건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고 스네이프 나름의 방식이었다.

 

사실 스네이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를 참게하지 않으면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에너지가 쏟아질 것을. 스네이프는 늙지는 않았어도 해리만큼 젊지도 않았다. 사랑 받는 것은 처음이었으며 이미 평생을 사랑에 진저리치며 살아왔다. 해리는 제일 높은 곳의 태양이었다. 기울어진 달이 버텨낼만한 불의 세기는 아니었다. 간혹 왜 그런 애정이 자신을 향해 쏟아질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자존감이 낮아서일까? 하지만 스네이프는 객관적으로도 자신이 그렇게 매력 있는 남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리에게선 그런 스네이프의 예상을 넘어서는 사랑이 느껴졌다. 해리의 넘치는 뜨거움이 스네이프는 가끔 곤혹스럽고, 사실 조금 기뻤다.

 

 

스네이프는 양피지를 꺼냈다. 주문이 걸린 깃펜이 조지에게 보낼 답문을 작성했다. 일전의 사랑의 묘약이 완벽히 숙성 되었으니 오늘 사람을 통해 물품을 보내겠다는 편지였다. 해리가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마시고 옆 마을의 한 머글 모습을 빌려 다녀올 계획이었다. 언제나 다이애건 앨리에 다녀오는 건 해리였다.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스네이프는 해리를 보낼 생각이었다.

 

“교수님, 오늘 할 일 있으세요?”

 

언제나처럼 스네이프가 하는 양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해리가 양피지의 내용을 읽고 물었다. 스네이프는 대수롭지 않게 없다고 대답했다.

“같이 가지 않을래요?”

 

그 다음 말은 굉장히 의외였다. 마법사들에게 스네이프의 노출을 꺼리는 해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예상 밖이라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해리가 슬며시 웃었다.

 

“교수님이 너무 밖에 안 나가시니까... 외, 외출 신청이에요.”

 

데이트 신청이라. 항상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외출 신청을 하기에 스네이프에겐 낯선 단어였다. 물론 호그와트에 있을 땐 스네이프도 릴리와 외출을 했었다. 그녀가 제임스와 외출을 가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나도 변장을 해야 하나?”

“...음, 교수님은 안 하셔도 되지만... 제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네.”

“머리카락은 가져 왔나?”

“제가 가르치는 애들 중에 한 명인데, 여기... 머리카락을 가져왔어요. 어린아이면 데리고 다니기 편할 것 같아서요. 옷도 거기에 있는 체육복 하나를 가져왔어요.”

“데이트라더니 애를 데리고 다니면 기분이 나겠나, 포터?”

 

흥, 비웃으며 스네이프가 해리가 건넨 머리카락을 건네받았다. 제 것처럼 새카만 머리카락이었다.

 

“그, 그 애가 교수님이랑 제일 닮아서...”

 

해리가 볼을 긁적이며 쑥스럽게 답했다. 흠, 타인으로 변신시켜놓고서도 제 그림자를 보고 싶다는 건가. 스네이프는 해리의 그런 낯부끄러운 애정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어하지. 스네이프는 해리의 생각보다 훨씬 흔쾌히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해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짜 제 모습과 데이트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기뻐해서야. 스네이프는 이런 애정이 정말 때때로 곤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의 예전 여자 친구들에게도 저랬을까? 스네이프는 레질리먼시를 통해 초와 키스하는 해리를 본 적도 있었고, 지니와 교제한 것도 알고 있었다. 분명 과거로 돌아오기 전까진 지니 위즐리와 평범히 교제하고 있었지 않을까...

 

시간을 채우고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면, 해리는 어떻게 나올까? 스네이프는 그럼 이 연애 아닌 연애도 그 때까지만 유효기간이 남은 거겠지,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집주변을 돌고 있던 부엉이(예언자일보를 가져다주는 부엉이에게 부탁한 친구 부엉이였다.)의 다리에 답신을 묶었다. 스네이프는 다이애건 앨리의 위즐리 형제 가게로 먼저 떠난 부엉이를 부엌의 작은 창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식사로 때울 프렌치토스트를 구웠다. 해리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스네이프는 토스트를 썰어 입으로 넣으면서, 남은 애정의 유효기간에 대해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스네이프는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가져와서 한 컵씩 액체를 채웠다. 해리가 가져온 머글 머리카락을 약에 집어넣자 갈색으로 변했고, 머글 아이의 까만 머리카락을 넣은 약은 밝은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닮았다더니, 약의 색은 해리의 눈 색을 닮았다. 스네이프는 거리낌 없이 약을 들이켰다. 맛도 끔찍했지만 몸이 변형되는 기분 나쁜 느낌도 오랜만이어서인지, 변화하는 아이와 자신의 신체 차이가 커서인지 더욱 끔찍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스네이프의 눈높이는 한참 아래에 있었다. 스네이프는 어린 시절이 까마득했기에, 원랜 이렇게 세상을 올려다봤었던가 싶었다.

 

“교수님, 여기 옷...”

 

작아진 스네이프는 몸에서 흘러내리는 거추장스런 옷을 털어내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이 몸에 맞는 속옷은 사오지 않았는지 속옷이 없어 스네이프가 째려봤지만, 해리는 약을 삼키고 있어 눈치 채지 못했다. 해리는 까만색이 아닌 갈색이지만 자신과 같은 더벅머리의 남자로 변신했다.

 

“이 남자도 안경을 끼더라고요. 그래서 투명망토를 입고서 몰래 슬쩍, 했죠. 아무래도 안경을 끼는 게 편해서요.”

“포터, 내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을 뱉자마자 스네이프는 아이의 높은 목소리로 변한 제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해리의 눈엔 깜짝 놀라는 스네이프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아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해리는 그를 양 팔로 들어 올려 창문에 비춰주었다. 스네이프는 가볍게 해리의 품에 안긴 느낌이 신기했다. 그리고 창에 비친 아이의 얼굴이 조금 자신과 닮았나? 생각했다. 자신보다는 분명히 이 아이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울 테지만... 해리가 그 속에 자신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을 스네이프도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이 기뻤지만 아주 커다랗게 부풀어있기 때문에, 스네이프는 언젠가 그것이 펑 터져버리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여겼다. 해리의 사랑은 너무 크고 부풀고 뜨거워서, 그것의 영원함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외출 기분을 제대로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비축분의 폴리주스약과 머글 돈도 챙겨서, 순간이동이나 플루 가루도 쓰지 않고 둘은 머글식으로 런던으로 향했다. 열차를 타고 바라본 창밖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타인으로 변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해리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서, 스네이프는 어렵지 않게 그를 해리로 볼 수 있었다. 그가 안경을 껴서 더욱 해리와 닮아보였다. 해리는 가는 길에 보인 자판기에서 콜라 캔도 뽑아주었다. 훨씬 작아진 키로, 어른의 손에 작은 손이 잡혀서 걸으니 스네이프는 정말 자신이 보호받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 기분은 아주 마음 편했다.

 

스네이프는 최초의 기억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보호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보호’란, 스네이프에게도 아주 없는 경험은 아니었다. 릴리가 사람들 앞에서 저를 방어해준 것도 일종의 보호였다. 스네이프는 정말로 어둠의 마법에 빠진 어린 소년이었고 어둠의 마왕을 추종하는 슬리데린이었지만, 그녀는 친구로서 자신을 비방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하지만 또래의 보호와 어른의 보호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스네이프는 사실 교수들에게도 별 예쁨을 받지 못했고, 당시 기숙사사감인 슬러그혼은 차별의 대표 주자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머글 출신인 릴리를 좋아해준 것은 내심 기뻤다. 함께 민달팽이클럽에 갈 수 없었던 게 애석했을 따름이었다.

 

스네이프가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이만큼의 어른이 되어서, 한참 어린 그에게 보호받는단 느낌을 처음 느껴볼 줄은 몰랐다. 그건 제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해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가 해리였고, 자신이 스네이프이기 때문이란 걸 스네이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게 덤블도어가 늘 입에 담던 사랑인가. 계속 스네이프가 남은 기간을 생각하는 것도, 이것이 너무 행복하고 벅찬 일이라서 인걸 알았다. 너무 좋기 때문에, 끝나지 않았으면 하기에 스네이프는 끝을 셈해보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것은 여전하군, 세베루스 스네이프. 릴리를 그렇게 사랑해놓고서. 이렇게 자신이 사랑받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해리의 사랑이 표면으로 느껴져서,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하고 있다니 말이다. 한심했지만 스네이프는 해리에겐 티내고 싶지 않았다.

 

둘은 런던에 도착했다. 앞만 보며 걷는 런던의 머글들은 모두 바빠 보였다. 다이애건 앨리로 들어가기 위해 리키콜드런까지 걸어가면서 해리는 스네이프를 안아 올렸다. 교수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한적해지면 내려놓을게요. 변신한 낯선 사람의 목소리로 해리가 스네이프의 귀에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이렇게 안아들을 만큼 번잡한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해리의 목에 말없이 양 팔을 둘러 안겼다. 해리는 기쁨에 작은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여기, 사랑의 묘약입니다, 위즐리 씨. 효과는 보장합니다.”

“오, 누구에게 써본 적 있으신가요?”

“아, 전 쓸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이걸 팔러 온 거죠.”

“아하, 이런! 괜한 참견이었군요! 아, 이 꼬마가 그럼 아드님? 장난감 하나 줄까, 꼬마야?”

“...필요 없어.”

 

스네이프는 조지의 앞에서 팔짱을 낀 채 퉁명스레 답했다. 조지는 오, 그래? 그런데 난 네가 맘에 드는데, 꼬마야! 이거 가져라, 이거 가져. 하며 스네이프에게 끊임없이 하품을 하는, 작은 검은고양이 장난감을 쥐어주었다. 해리는 속으로 웃겨죽겠는 듯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스네이프는 질색하는 얼굴로 뒤편의 장식장에 그걸 도로 올려놓았다. 해리는 끅끅 소리를 내며 조지 모르게 웃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스네이프는 짜증스럽게 해리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현재 겉으로 보기에 스네이프의 또래로 보이는, 그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들도 가게 내의 온갖 신기한 장난감들에 신나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데 전혀 관심 없이 시큰둥하고 삐딱하게 서있는(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스네이프는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조지는 가게 주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이런 손님에겐 더 팔아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 법이라며 해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해리는 물약의 대금을 받고서 스네이프를 불렀다. 사고 싶은 것 없니? 하고 해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스네이프는 어이가 없어 얼굴을 팍 찡그렸다. 조지와 해리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정말 왠지 모르게 이 꼬맹이, 스네이프 교수가 생각난다니까! 아, 당신도 알죠? 그에게서 수업을 받았었죠?”

 

갑작스런 조지의 말에 해리는 뜨끔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천연덕스런 얼굴이었다. 그걸 보고 해리도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했다.

 

“어, 저도... 네! 물론, 그랬죠... 하지만 전... 음, 마법의 약은 잘 못해서... 그 교수님에겐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군요... 하하! 지금은 이렇게 물약 관련 배달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스네이프에게 안 혼나는 학생도 있었을까요! 저도 엄청 혼났었는데! 뭐, 저도 마법 약은 전문분야가 아니었죠. 제가 약을 잘 만들었다면 이렇게 약을 사서 되팔 필요도 없었을 테고~ 아아, 이 물약이 스네이프 교수의 사랑의 묘약이었으면 정말 최고였을 텐데! 아쉽지만 그 분은 이제 없는 분이죠... 아, 제가 해리 포터의 오랜 친구인 건 알고 있죠? 그러니까-”

“프, 프랭크예요.”

“그래요, 프랭크 씨! 해리가 열심히 그를 변호한 건 신문을 통해 보셨을 거예요. 근데 여전히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해리가 함께 식사할 때도 몇 번 침울하게 말을 했거든요.”

“아... 그, 그랬었군요.”

 

해리는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뒤편에 서있는 스네이프를 조심스레 힐끗 곁눈질 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서 잠깐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타인의 입을 통해 들으니 그 진실성이 더 크게 와닿았다. 하긴, 그렇게 궁금해 하지 않았으면 해리가 과거로 돌아올 일도 없을 것이었다. 스네이프는 새삼스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저희 가족끼리 생각하는 건데,”

“...?”

“제 여동생 지니와 해리가 결혼할 것 같아요. 지금 사귀고 있거든요. 마법 세계의 영웅이 우리 집안과 가족이 된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니까요.”

“...!”

 

해리는 정말로 당황했다. 해리의 뒷걸음질로 주변의 선반에 어깨가 부딪쳐 물건이 우르르 떨어졌다. 조지는 가볍게 지팡이를 휘둘러, 선반에서 떨어지는 장난감들을 다시 위로 안착시켰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스네이프는 해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반면에 해리는 스네이프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 그거 참...”

“축하할 일이죠! 고마워요, 프랭크 씨! 나중에 꼭 청첩장도 보내드리죠.”

 

조지가 사람 좋게 윙크를 해보였다. 해리는 머쓱하게 스네이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해리가 황급히 이제 가봐야겠다고 조지에게 말했다. 조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웃으면서 스네이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스네이프는 잠시 조지에게 시선을 줬다가, 휙 고개를 돌려 냉랭히 가게를 나섰다. 문을 나가는 해리와 스네이프의 뒤로 조지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 교수님.”

 

해리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과거의 너는 열심히 날 찾고 있는 모양이군.”

 

불쑥, 스네이프가 말을 뱉었다. 해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화제에 해리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렇지만 곧 의미를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네. 하, 하지만 그래도... 설마 모습을 드러내실 건...?!”

“글쎄. 저 위즐리가 과거의 네 녀석에게 나를 닮은 꼬마에 대해 말하면, 과거의 넌 약간의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 그 꼬마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

“서, 설마요!”

 

해리는 당황해서 소리쳤지만, 그 즉시 스네이프를 조지의 앞에 데려온 걸 후회했다. 과거의 자신은 버로우에 일주일에도 몇 번을 들를 만큼 자주 왕래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 스네이프와 단둘만의 동거 생활에 익숙해져 해리는 과거의 패턴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조지가 과거의 자신과 만난다면... 혹시라도 스네이프를 생각나게 했던 꼬마에 대해 자신에게 말한다면, 그러면 어쩌지? 조금의 희망의 꼬투리라도 잡는다면 바로 행동에 나설 과거의 자신이었다. 해리는 행동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과거의 해리는 절실하게 스네이프를 찾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절망에 가까운 해리의 얼굴을(정확히는 변신한 타인의 얼굴 너머로 느껴지는─) 바라보았다. 이제 해리는 지니와의 결혼에 대해 조지가 했던 말은 잊은 눈치였다. 다행이었다. 스네이프는 그다지 그에 대한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스네이프도 해리와 지니의 교제는 예상했지만, 결혼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듣는 순간 굉장한 충격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릴리와 제임스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해리는 자신에게 푹 빠져 있어서 그녀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해리가 지니 위즐리와 아직 만나기 전이라서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지금까지 뭐에 홀렸던 거라고 생각하며, 해리는 그녀에게로 돌아갈 게 뻔했다. 스네이프는 그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너에게 위즐리가 날 닮은 꼬마를 봤다고 말했었나?”

“네? ...어, 그, 그랬던가....... 으음, 음... 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말 않은 거겠지, 포터.”

“하지만 완전히 확신할 순 없잖아요...!”

 

스네이프는 관심 없는 듯 콧방귀를 꼈다. 해리는 과거의 자신이 스네이프의 존재를 알아차릴까 걱정이 돼 죽겠는데 말이었다. 이제 해리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마주치는 사태’가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자신에게 스네이프를 빼앗길까봐’ 불안해했다.

 

해리가 영 표정을 풀지 못하자, 스네이프가 쯧 혀를 찼다. 자신은 과거의 해리가 절 찾아낸다고 해도 따라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물론 스네이프는 이런 이야기를 해리에게 직접 해줄 생각도 전혀 없었지만, 일단은 심란해 보이는 해리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부족한 약재와 서적을 구입하고 싶다며 스네이프는 해리를 재촉했다. 해리가 마지못해 약재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해리는 아이스크림을 함께 사먹고, 스네이프의 진짜 몸에 맞을 법한 망토도 한 벌 사주었다.

 

스네이프는 해리에게 사랑 받는 느낌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그걸 해리는 몰라도 되었다. 어차피 1년 후면 떠나갈 녀석이니까.

 

 

“...후우, 피곤하군.”

 

짐이 늘어나서 돌아올 때는 순간이동을 썼지만, 오랜만에 오래 걸어서인지 스네이프는 피로해했다. 다만 아직 약효가 풀리지 않아서 스네이프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스네이프보다 약효가 먼저 풀린 해리는 원래 모습이 되어있었다. 소파에 늘어져있는 자그마한 스네이프의 다리를 해리의 손이 주물러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교수님이 원래 몸으로 돌아오면 이 옷, 찢어지겠는데요...?”

 

이 작은 아이 몸과 키가 큰 스네이프의 체격 차는 상당하니, 그 말 그대로 여린 옷이 찢어질 게 당연했다. 스네이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렇겠군, 귀찮은데...”

“그냥 가만히 계세요. 제가 대신 벗겨드릴 테니까요.”

“......”

 

평소엔 스네이프의 손등만 몸에 스쳐도 움찔 굳어버리는 녀석이. 스네이프는 지금 자신이 아이 몸이라고 해리가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기는 것이 기가 찼다. 뭐, 완전히 자신의 몸이 아니니 당연히 상관없겠지.

 

스네이프는 나른하게 다시 소파에 기대 드러누웠다. 얼굴 위로 하얀 티셔츠가 올라갔고, 반바지가 다리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해리가 아이용 속옷을 챙기지 않았었기 때문에, 바지를 벗기니 스네이프는 완전히 맨몸이 되었다. 해리가 교수님 옷을 가져올 테니 기다리라며 일어섰다. 스네이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가로누웠다. 종일 해리의 보호 속에 편하고 안락했던 스네이프는 긴장이 늘어졌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2층의 스네이프 방으로 들어온 해리는 서랍을 뒤져 속옷과 옷을 챙겼다. 여름이었지만 스네이프는 얇고 긴 옷을 입었으므로 최대한 얇은 것을 챙겼다. 스네이프 말고도 나이가 제법 있는 마법사들은 대체로 늘 긴 옷을 즐겨 입는 것 같았다. 해리는 하지만 스네이프는 젊었을 때도 몸이 노출되는 짧은 옷은 입지 않았겠지, 생각했다. 다행인건가... 다른 사람들이 교수님의 몸을 못 본 게... 하지만 해리의 개인적인 욕심으론, 집에선 짧게 입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해리는 고개를 붕붕 흔들고 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들리는 끽, 끼익 하는 소음도 해리는 이제 익숙해졌다. 여름이라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조량도 많이 늘어났다. 벽에 높게 달린 창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나뭇잎이 사사삭 바람에 마찰하는 소리도 시원하게 들려왔다. 해리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다 기울어져가는 폐가 같은 인상이었다. 사람이 오래 살아서인지 이 집도 점점 생기를 입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집도 마치 스네이프 같아. 해리는 생각하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쌀쌀맞던 스네이프가 요즘엔 해리의 앞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교수ㄴ...."

 

입가에 웃음을 걸고, 책장을 민 해리는 순간 자리에서 굳으며 얼굴에서 미소도 사라졌다. 눈앞의 응접실, 낡은 소파에 가로누운 나신의 스네이프가 보였다. 늘씬하게 길어진 다리 한 쪽은 소파 바깥으로 비죽이 나와 있었다. 흐트러진 길고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양팔을 포개고 기댄 뺨과 감긴 눈이 보였다. 낡고 때를 탄 소파에 대비되어 스네이프의 온몸은 눈부시도록 새하얗게 보였다. 그 광경은 어찌 보면 신성했을지 몰라도, 해리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못했다. 해리가 들고 있던 스네이프의 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리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해리는 떨리는 손을 억지로 얼굴로 가져왔다. 눈, 가려야 해... 보면, 보면 안 돼.......

 

스네이프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얼핏 잠에 들었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스네이프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시야가 분명해질수록 멀리 남자의 두 발이 선명해졌다. 해리...? 스네이프는 상체를 고쳐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 순간 달라진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려 몸 아래를 보았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의 몸이 보였다. 온전히 다 벗은... 스네이프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해리를 다시 제대로 쳐다보았다.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있는 해리는 한 팔로 눈을 가리고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좀 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해리의 바지 위가 터질듯이 봉긋했다. 순간 스네이프는 해리의 자제력이 너무 놀라워서 경탄할 뻔 했다.

 

“...포터, 왜 거기 계속 서있지?”

“교...교수님...”

“이리 와.”

“하, 하지만...”

 

해리의 목소리가 숫제 울먹였다. 어린아이 같았다. 스네이프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소파에 기대앉았다. 다리가 살짝 벌어져 밑이 확실히 보이겠지만, 뭐 어떤가. 스네이프는 조용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같은 남자의 몸이었고, 해리는 자신을 억지로 덮치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것이 사랑이구나. 스네이프는 아주 오래 사랑을 알았지만, 다시 또 사랑을 알게 되었다.

 

“포터, 괜찮으니까. 아니면 계속 날 벗겨둘 셈인가.”

 

해리의 어깨가 놀라 움찔 튀었다. 여전히 스네이프 쪽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해리가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웠다. 스네이프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해리를 지켜보았다. 해리의 떨리는 손이 옷가지를 건넸다. 스네이프는 가만히 그걸 내려다보다가, 툭 쳐내 바닥으로 다시 옷을 떨어뜨렸다. 해리가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몸을 숙였다. 스네이프의 손바닥이 해리의 뒤통수를 감쌌다.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든 해리가 스네이프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제야 나를 보는군.”

 

해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스네이프의 움푹 들어간 빗장뼈와 그 아래 하얀 가슴, 적은 음모 아래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해리는 서둘러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스네이프의 손이 단단히 잡고 있어 벗어나지 못했다. 마르고 피로해보였지만 스네이프 역시 성인의 남성이었다. 해리는 제 목덜미를 감싸 쥔 스네이프의 차가운 손바닥을 느낄 수 있었다.

 

스네이프의 손바닥에 좀 더 힘이 들어가 당겼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스네이프는 그 눈을 보더니, 피식 입 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그의 다리가 양 옆으로 벌어졌다. 해리의 머리가 그 다리 사이로 조금씩 더 들어왔다. 해리는 스네이프에게서 시선을 떼고 천천히,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입을 벌렸다.

 

“...윽.”

 

스네이프의 무릎이 움찔거리고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항상 손으로 수음하던 것이 사람의 입 안과 혀의 축축함에 닿자 허리가 절로 튕겼다. 해리의 두 손이 단단히 스네이프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머뭇거리던 고개와 떨리던 손은 어디로 갔는지, 힘이 들어간 다부진 손길이었다. 스네이프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꽉 감았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리의 입술이 너무도 강하게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기둥을 쓸며 내려오는 혀끝은 뾰족하게 간지러웠다. 턱을 위로 치켜들고 소파의 등받이에 목을 기댄 스네이프가 흑, 흐윽 애끓는 소리를 냈다. 해리가 두 손으로 허벅지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볼썽사납게 다리를 휘적거릴 것 같았다.

 

스네이프의 붉어진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 흥분해서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거의 사십 해 가까이 살아왔지만 이렇게 자극적인 흥분을 스네이프는 처음 겪었다. 늘 핏기 없던 하얀 얼굴에 완전히 열이 몰려 얼굴이 뜨거웠다. 얼굴이 뜨겁다는 게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불덩이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스네이프는 사정이 임박했음을 알았지만 해리가 성기를 물고 놔주질 않았다. 기둥을 쭈우욱 쥐어짜듯 올리는 단단한 손길에 스네이프는 탁, 힘을 풀었다. 해리의 입 안으로 울컥울컥 묽은 것이 튀었다.

 

스네이프는 기운이 쭉 빠져서 늘어지고만 싶었다. 하지만 여운이 남은 성기에 해리의 혀가 다시 닿고, 미끄러지며 빨아들이자 정신없이 허벅지가 튀어 올랐다. 안 돼, 너무, 이건 안 돼, 포터, 포터...! 스네이프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의식할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땐 얼굴에 온통 눈물이 범벅되어 있었고, 열이 오른 얼굴과 들뜬 가슴이 느껴졌다.

 

“흐윽...흑... 흐윽...”

“교수님...”

 

스네이프가 소파에 누워 원망스런 눈으로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미안한 얼굴과 흥분한 얼굴이 뒤섞여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리에게서 거친 남성을 느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지금만큼 강하게 의식된 적은 없었다. 해리의 가슴 역시 스네이프처럼 막 경주를 마친 선수처럼 가쁘게 들썩이고 있었다.

 

해리가 가타부타 말없이 곧장 스네이프의 입술을 삼켰다. 스네이프는 해리의 혀를 받아들이며 손을 내려 바지를 벗겼다. 해리도 스네이프에 의해 반쯤 벗겨진 바지를 황급히 무릎 아래로 걷어냈다. 스네이프는 두려웠지만 동시에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꿈과 비슷했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비교도 되지 않을 생동감이었다. 스네이프의 눈앞으로 초록색의 욕망이 스쳐지나갔다. 그 욕망, 해리의 눈이 보일 때마다 스네이프는 허리 아래가 아찔했다. 두려웠지만 원하게 되었다. 해리의 사랑을 받는 것이 기뻤고, 해리가 자제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스네이프도 사실 해리가 이래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스네이프는 언젠가 해리의 이 뜨거운 사랑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무엇을 원했다. 그건 섹스 자체의 행위라기보다, 해리가 욕구를 참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떨리는 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사랑해서, 차마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것. 그것에서 스네이프는 강하고 깊은 사랑을 느꼈다.

 

“내게 해 줘...”

“교수님...”

“해도 된다, 해리 포터. ...해리.”

 

해리는 스네이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걸 듣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네....... 세베루스.”

 

너무 아름다운 이름이에요. 해리가 울면서 스네이프의 귓가에 속삭였다. 스네이프는 눈을 꾹 감으며 그래, 그런 것도 같군... 하고 생각했다. 해리의 목소리로 듣는 자신의 이름은 정말로 그렇게 느껴지게 했다. 스네이프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더럽고 어둠에 도태되었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받아서, 소중한 존재로 속삭여질 수 있다는 게 두렵고 신기했다. 더, 더 오래... 이것을 느끼고 싶어지는 욕심이 안에서 커져가는 것을 스네이프는 느꼈다.

 

그렇구나, 난 해리 포터를 사랑하는군....... 스네이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해리만이 스네이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스네이프 자신 역시.......

 

“사랑해요.”

“......”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세베루스, 고마워요...”

“......”

 

너는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사랑을 말할 수가 있지? 스네이프는 목구멍이 꽉 막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리의 입술에 키스하며 비겁하게 그의 말을 막았다.

 

 

 

 

 

 

 

 

거보세요 제가 로맨스만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참나..)

수위에 대한 비번은 조만간 걸 생각이에요. 공지를 올리겠습니다.